인터뷰 : 안평환(시민운동팀장)/정의춘(시민운동팀) 작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원론적인 의미에서 ‘풀뿌리 자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정당성은 우리 시대 최대의 화두는 아닐지언정, 지방자치, 나아가 생활 속에서의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당연하게 치부되는 운동론이다. 맨땅을 기면서 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시도만큼 중앙의 빈틈을 파고드는 운동도 중요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제도권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건, 국부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제외하고 ‘풀뿌리 자치’와 상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볼 때, 접근 방식이 상이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시민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보더라도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광주YMCA에서 운영하는 ‘좋은 동네 시민대학’의 경우가 맨 땅을 기면서 주민과 밀착한 교육프로그램의 성격을 띠고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구체적인 동네의 생활인들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풀뿌리 자치’는 요원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좋은 동네 시민대학’을 찾아 나섰다.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그대로 옮기면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우리 동네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실제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의 학습 과정이 이런 물음으로 진행된다. 참, 여기서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고 ‘학습’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실무를 맡았던 안평환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은 대규모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규모 단위로 한 20여 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동네를 위해 20명 단위로 사람이 모이는 것도 기적 아닙니까? 그리고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쌍방향 교육을 해보자, 그래서 저희는 ‘교육’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교육’이라는 낱말이 ‘일방성’을 내포하고 있고, ‘학습’이라는 낱말은 ‘쌍방향’을 나타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은 쌍방향 수업, 토론식 수업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거죠.”
학습 과정의 내용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보통 2주 동안 6개의 강좌가 진행된다. 1, 2강좌는 좋은 동네 만들기에 대한 이해와 외국의 사례 및 선진지 견학, 3, 4강의 경우 우리 동네 문제 파악하기 및 동네 디자인하기, 그리고 너머지 5, 6강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실현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그러니까 학습의 내용이 전혀 추상적일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살고 있는 구체적 동네를 대상으로 한다는데 있다. 또, 안 팀장의 설명대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은 토론하고 합의하는 쌍방향 형식을 취한다. 이를 테면, 3강에서 진행되는 “다함께 돌자 동네 한바퀴”라는 프로그램은 학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실을 돌아보면서 마을의 대표적인 지형지물, 살고 있는 사람들, 각종 기관, 마을의 분위기, 역사 등을 조사함으로써 마을 구석구석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의 생각들을 교류하게 되고 우리 동네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찾아나간다. 자연스럽게 학습은 쌍방향 토론으로 이어진다.
쌍방향 수업 방식이 모두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지적 사유를 음미할 수 있도록 지식을 전달해주는 수업 방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수업 방식은 동네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즉,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파악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아 가는 과정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함께 이루어지는 공동의 작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쌍방향 수업은 이런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쌍방향 수업 방식은 마을의 변화를 이끄는 지도자, 즉 ‘변화추진자’를 발굴하는데 유용한 방식이다.
“저희가 어떤 지역에서 ‘마을만들기’운동을 벌이려고 해도 그 바탕이 미천했기 때문에 시민교육을 통해 그런 바탕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풀뿌리 자치’가 주민들의 마음에 와 닿으면, 이를 토대로 ‘마을만들기’ 등의 자치운동을 펼쳐 나가려고 시작했는데, 이를 진행하려면 마을의 리더가 있어야겠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죠. 마을의 리더, 즉 ‘변화추진자’가 필요했던 겁니다. 교육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변화추진자’가 될 수는 없지만, 단 한 분이라도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교육을 시작한 것은 작년이지만, 그 역사는 1999년으로 올라간다.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스터디 그룹이 만들어졌고, 이 모임에서 공동체의 상을 마련할 수 있었다. 2년 정도 공부를 하면서 “좋은 동네 만들기, 왜 공동체인가”라는 단행본을 출판,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2천부 정도를 판매,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함) 이론의 무장을 갖춘 후, 자연스럽게 눈을 돌린 곳은 구체적 현장이었다. 공동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현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좋은 동네를 만들자는 당위에는 공감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현장은 냉엄했다. 현장 경험의 부재가 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큰 원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주민자치센터’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고, 주민자치위원을 대상으로 적게는 7-80명, 많게는 120여 명에게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주민자치센터의 이해와 역할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었지만, 실제로 지역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싹을 틔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광주YMCA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결국 마을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면,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지도자를 발굴하는 일, 즉 ‘변화추진자’의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 아무리 좋은 내용이더라도 동네 단위에서 그런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변화추진자’가 없이는 일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발굴할 것인가로 귀착한 것이죠. 그래서 주민교육이라는 형태로 시도하였는데, 여기에도 많은 의문점이 들더군요. 교육이 일반 시민들에게 어려운 것이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성의 물꼬를 틀까? 해서 아이디어를 모은 것이 주민들을 오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찾아 가자, 즉 ‘찾아가는 교육’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외국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죠. 소위 지역 단위부터 풀뿌리민주주의를 시도하려 하는데, 결국 그 일을 할 사람들의 발굴이 중요했던 거고, 이런 사람들을 발굴하기 위해 이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조금한 동네에서 ‘변화추진자’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자치정책센터에서 실시한 ‘시민자치학교’의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수강생은 흔치 않을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지속적 참여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좋은 대학 시민대학”은 대량으로 ‘변화추진자’들을 발굴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 단 한 명이라도 ‘변화추진자’의 가능성이 있다면 언제라도 발 벗고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좋은 동네를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역사가 짧아 두드러진 활동은 없지만, 지금까지 학습이 진행된 동네는 꾸준히 모임을 갖고 있고, 지산동 같은 경우는 그 곳에 유원지가 있는데, 유원지를 활성화시키면서 동네까지 잘 살게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 곳에 벚꽃이 많기 때문에 벚꽃 축제를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교육은 학습의 지속성을 위해 ‘전문가 파견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강의가 끝나면 강의를 맡아주셨던 분들에게 ”명예주민“으로 위촉하게 되고, 주민들이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강의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의욕적이고 자발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을 실시하기 전에 주민과의 사전 간담회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는 주민뿐 아니라 동장, 주민자치위원장 및 부위원장, 담당 공무원 등이 참여하며, 마을의 실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다음에 전문가들은 마을을 둘러본다.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다. 책상에 앉아 연구한 내용만으로 구체적 현장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과정은 형식적인 강좌를 방지한다. 학습하는 사람과 학습을 도와주는 사람, 그리고 실무자의 정확한 현장 인식은 학습의 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실무자들은 이런 교육 방식을 “현장 중심의 강좌”라고 표현한다.
“옛날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자치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자치’라는 것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자치의 실현’이 최대 화두입니다. 저희의 목표는 이 대학을 꾸준히 개최하고 지금은 일반과정뿐이지만, 전문가 과정, 고급과정 등을 거치도록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추진자들을 한 천명 정도 양성을 해서 광주를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 분들이 일반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 겪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제시하려고 합니다.”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 꿈꾸는 것은 각 동네에 ‘변화추진자’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당산나무 아래 주민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마을의 여러 사안을 공론화 하며 제2의 고향으로 삼았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마을, 고향공동체가 형성된 마을, 궁극적으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천 명 정도의 ‘변화추진자’, 그리고 그들에 의한 지역공동체 형성. 어쩌면 벅찬 과제일 수 있다. 한 세대 안에 실현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좋은 동네 시민대학’은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올 상반기에 벌써 두 군데, 하반기에는 5-6군데가 예정되어 있다. 광주가 전체 87개 동 임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모든 동네에 발자취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부터는 학습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의욕만으로 지역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겠지만,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민주화의 성지, 빛고을 광주는 여전히 민주주의 열망에 목말라 있다. 광주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진행형이다.
※ 홈페이지 : www.jymca.or.kr 문의 : 안평환(an-peace@hanmail.net)/정의춘(j8559@yahoo.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