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사업은 “사회와 관계 맺기” " - 노원자활후견기관
인터뷰 : 여광천 실장/이경주 팀장
작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자활운동, 즉 생산공동체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논하고 넘어가자. 생산공동체운동은 지향하는 이념, 사회적 배경, 역사성 등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공동 노동하며, 함께 경영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공동체운동의 역사는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불씨를 지폈던 때는 90년대 이후이다. 주로는 빈민운동진영에서 시작하여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불합리한 하청구조의 극복, 빈민들의 조직 등이 중심 목적이었다. 잘 알려진 하월곡동의 ‘건축일꾼 두레’, 상계동의 봉제협동조합 ‘실과 바늘’, 인천 송림동의 전자제품조립 공동체 ‘협성’ 등이 바로 90년대 들어오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민정부 시절인 지난 96년, 전국에 5개의 ‘자활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것으로 처음 제도화 과정을 겪게 되지만, 워낙에 취약한 시장경쟁력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활로 모색이 필요한 시기가 된다. 그러던 중, 1997년, IMF라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량실업상황이 초래되자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근로 위탁사업이 실시되고 이 과정에서 전국에 많은 실업관련 단체들이 자활생산공동체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정부’는 2000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국기법)’을 제정함으로써 노동능력이 있는 수급권자들에게 생계비를 지급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자활지원정책을 제도화시켰다. (주1)

현재 국기법에 의해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후견기관은 180여 개를 넘고 있다. 생산공동체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노원자활후견기관의 역사도 함께 묻혀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국기법 내 ‘후견기관’은 96년에 실시된 ‘자활지원센터’의 발전적 모습이다. 그 내용은 2년여 동안 자활근로사업을 통해 나름대로 자활공동체로 전환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말한다.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그 역사는 아직 짧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생산공동체운동의 역사는 단절적으로 2000년, 또는 96년부터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까이는 90년, 넓게는 70년대로 넘어간다. 노원자활후견기관도 90년대 후반, 지정위탁을 받고 국기법이 통과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활동하고 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노원자활후견기관의 활동을 살펴보자. 세간에 잘 알려진 노원자활후견기관의 대표적인 사업은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이다. 노원자활후견기관이 음식물처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제3섹터형 일자리 만들기 차원에서였다. 제3섹터란 뜻은 여러 차원으로 쓰이고 있지만, 자활운동에서의 제3섹터는 1섹터인 시장영역과 2섹터인 공공영역을 제외한 영역을 일컫는 말이다. 음식물쓰레기를 예로 들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던 5년 전, 노원구의 폐기물 관리 조례에 의하면 30평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은 반드시 사업자 등록을 마친 음식물 처리업체에 음식물쓰레기를 맡겨야 했다. 문제는 30평이하였다. 즉, 30평 이하의 영세하고 소규모사업장이 일반적이었고, 이들 업체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대한 제도적 걸림돌이 없어 마음내키는 대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들 30평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의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인근 소각장에 침출수 현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다이옥신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조례의 규정상, 이들에 대한 법적 통제수단이 전무한 상태였다.

노원자활후견기관은 바로 이런 공백을 파고들었다. 비감량업체인 중․소형음식점을 대상으로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한 다음 인근 경기도 지역 축산농가에 무상으로 제공하여 사료화하는 형태로 첫 발을 디뎠다. 음식물쓰레기재활용 사업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1)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환경 리스크를 줄였고 2) 중․장년 실업자들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3) 버려진 음식물을 재사용하며 4) 제도적인 허점의 공백을 메우는데 기여했다. 5) 무엇보다 이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장 큰 자산이다. 제3섹터의 영역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시장영역과 공공영역에서 제외된 제3의 영역을 말한다.

“음식물 사업의 경우 30평 이상의 규모의 사업장에 대한 환경적인 처리는 시장이 갖고 있었고 30평 미만인 경우엔 손을 안 데고 있었죠. 그래서 이런 것을 우리가 하자, 이것이 제3섹터 영역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무료 수거라도 진행을 해서 지역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 환경문제도 줄이고 소각장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피해 등을 줄이고, 모아진 음식물을 영세한 농장에다 보내주면 인근 지역의 영농사업자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면 새로운 운동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이런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제3섹터였던 거죠. 당장 필요한 서비스 영역이었고, 일자리가 있었고, 이런 것을 찾는 것이 저희의 주된 관심거리입니다.”

제3섹터운동으로 시작한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은 현재 그 규모도 솔찮게 커졌다. 참여업소도 400개로 늘었고 월매출 1,6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지금의 규모로 커지기까지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99년 공공근로민간위탁의 형태로 시작할 때는 중․소형음식점에서 무상수거, 그리고 경기도 지역 축산농가에 무상제공의 성격을 띠었다. 우선은 이 사업의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업에 참여하는 업소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다. 음식물자원화조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실시하면서 조례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 이와 함께 시민협의체를 결성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2000년에 노원구 음식물쓰레기재활용조례를 개정을 이뤄냈다. 조례의 개정은 이전까지 무상수거를 기본으로 하던 사업을 일자리 창출로 연계시키기 위한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기여했고, 같은 해 1kg 당 100원의 수집운반비를 고시하게 된다. 현재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4명의 일반참여자와 2명의 수급권자들이 사회적기업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혹자는 수 만개가 넘쳐나는 직업세계를 살고 있는 나라에서 아직도 미개척의 영역이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3섹터 일자리 만들기 운동은 단지 아이디어 차원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익과 효율성만 따지는 시장경제가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역을 경제적인 가치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적인 마인드가 토대가 된다. 그늘지고 소외 받는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분야도 이에 해당된다.

“간병인사업이 대표적인 사업입니다. 의료보험제도의 경우, 국가에서 관리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보험회사에서 개인적으로 보장을 받는 시장이 존재합니다. 이런 두 가지의 틀이 모든 사람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제도상으로 시장과 공공영역에 뻥 뚫려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저희는 봅니다. 거기에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활성화된다면 복지와 일자리가 함께 개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복지서비스가 제공이 되고 거기에 우리가 만나는 주민 분들이 새로운 직업으로 주민들이 전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험해본 사람도 있겠지만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병원에 입원하려면 필히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입원비 미납을 방지하기 위한 병원 측의 보호막일 게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처지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날품팔이라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간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환자를 대신해 거동을 움직일 수 있겠지만 이후 생계에 대한 책임 마저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복지간병인 사업은 이들을 위한 사업이다. 보호자를 대신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족들은 안정적으로 생계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복지간병인 제도의 골간이다. 1999년 서울시 공공근로민간위탁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서울자활후견기관협회 산하 공동간병인사업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노원자활후견기관이의 제3섹터 운동은 뛰어난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미비점으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국기법은 2-3년 간 자활근로로 지원 후 공동체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로서 제3섹터 운동은 기존의 노동시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일이다. 단순히 아이템의 차별화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초기부터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운동이다. 따라서 ‘일거리’가 아니라 ‘일자리’로의 이행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복지간병인과 같은 복지 분야의 경우, 수익발생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와 같은 도식화된 틀로 바라볼 수 없다는 점이 있다. 수입발생보다는 복지에 무게를 두어야 하고 분명하게 자리잡아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물쓰레기재활용사업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 여광천 실장의 생각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공무원과의 관계다. 후견기관 사업의 생리상 공무원들과의 접촉이 불가피하다. 행정부가 얼마나 자활사업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마인드를 가지느냐는 이 사업이 브레이크 없이 잘 달릴 수 있느냐 와도 관련이 있다.

“저희 같은 경우는 10년-20년간 활동할 수 있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주기적으로 바뀌잖아요. 사업을 좀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올라가면 바뀌게 되죠. 그리고 다른 파트에 있던 사람이 오거나 하면 한 1-2년 동안 사업 설명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죠. 지방의원의 경우 오히려 대화하기 용이한데, 담당 공무원들은 참 힘듭니다. 간병인 사업은 돈도 안 되는데 왜 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에 대한 이해가 개별 공무원들이 개별적인 능력으로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관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하겠지만, 자활 사업을 구청이나 지자체 전반적으로 인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음식물의 경우, 사회복지과를 넘어서 청소행정과가 긴밀해야 되는데, 이들 부서가 긴밀하게 연계가 되어야 누가 담당이 되든 지속적으로 관계가 정립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전국적으로 그런 체계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는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을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개별 능력 또는 이해 수준, 관심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복지간병인 사업이 수익모델이냐를 놓고 따지기 전에 얼마나 사회적으로 유의미한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관과의 관계가 소원할 때도 있지만, 사업의 성격상 이런 관계가 크게 작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여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들에게 일거리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술잔을 기울기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어야 한다. 경제적인 자립은 물질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노원자활후견기관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활사업이라는 것이 사업 아이템을 중심에 놓고 접하다보니 논의의 공간이나 관계가 협소해지기 마련이다. 월 2회의 전체 참여자 교육도 담당 실무자와 함께 교육받는다. 현장에서 노동을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일거리’를 통해 생활 외적으로 관계 맺기를 한다면 심리적 또는 문화적 코드를 같이 나눔으로써 생활 내적인 부분까지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동, 일 이전에 서로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활사업은 참여자들의 경제적 자립이 일차적 목표라고 볼 수 있지만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일거리’를 통한 ‘사회와 관계 맺기’인 듯 싶다. 사람과의 관계, 사회적 자원들과의 관계, 지역사회의 당면한 과제들과의 관계, 지역사회(주민)와의 관계 등 자활사업의 지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회의 mail stream이 아닌 부류였기에 당당하게 사회와 대면할 수 있는 것 자체도 어찌 보면 지난한 과정의 산물일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당당해지기 위한 연마의 과정일지 모른다. 인터뷰가 끝나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활기’였다. 새로운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해, 총체적인 전망과 가능성을 점치기 이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는 실무자의 진정이 담긴 대답을 듣고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희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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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한국사회 자활운동의 역사와 과제, 김홍일, www.nowonnanum.org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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