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들어와서 보니 하승수 씨와 비슷한 논조이네요.^^
------------------
한국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1962년 12월 31일에 제정되었다. 집시법 제1조는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그런데 1960년 4․19와 5․16 군사쿠데타를 뒤이어 등장한 집시법은 민심을 듣기는커녕 억누르는 역할을 해왔다. 정부는 적법과 위법의 경계를 정하는 권한을 독점하고 공공질서를 내세워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억압해 왔다.
2008년 촛불시위로 달궈진 뜨거운 여름이 지난 뒤에 권력의 차가운 손길은 소리 소문 없이 그 촛불들을 하나씩 꺼트리고 있다. 예전에는 집시법이 빨간 머리띠 질끈 동여맨 특정한 사람들만 대상으로 삼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손길이 아고라의 논객, 유모차부대, 예비군부대 등 다양한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심지어 경찰청장은 촛불집회의 한 상징인 유모차부대에게 집시법만이 아니라 아동학대죄까지 적용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했다. 촛불집회의 참석자만이 아니다. 이미 이랜드노조, 알리안츠생명노조, 공무원노조, 민주노총 등 노동계도 그동안 집시법 위반이라는 낙인을 찍혀 왔다.
사십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집시법은 시민의 권리와 아무런 상관없는 통제장치일 뿐이다. 집시법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억압하는 폭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정부는 집시법을 더 강화시키겠다며 설레발을 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옛날에는 공공질서가 통제의 명분이었다면 이제는 국가경쟁력이 그 명분이다. 지난 9월 25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나서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집회시위 선진화 방안’이라는 해괴한 제안을 했다. 잦은 시위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니 이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망측한 논리이다.
한 술 더 떠서 한나라당은 집시법을 위반한 민간단체에게 정부보조금 지원을 제한하거나 환수하고, 시위를 주도한 단체에게 집단소송제를 적용한다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사이버 모욕죄 도입이나 정보통신법의 전면개정 등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나누는 곳이라면 어디든 개입하고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며 과거 ‘막걸리 보안법’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지금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집시법의 개정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눈에 보이는 문제는 그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탄압을 받고 있다면, 고엽제전우회의 가스통 협박사건같은 불법사건들은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폭력시위를 저지른 고엽제전우회나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HID) 등은 버젓이 수억 원의 정부지원을 받고 있다. 법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법전에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집회나 시위의 권리는 약자들의 보호막이 되어 왔다. 강한 자들은 굳이 집회나 시위를 하지 않아도 권력이나 돈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집회나 시위의 권리는 훼손될 수 없는 권리이고,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도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집시법의 개정방향은 현 정부가 1%의 상위층의 자유만 보살핀다는 비판에 더욱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또한 가톨릭조차도 조금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사결정과정에서 무조건 반대하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다양한 의견의 충돌 속에 진리가 드러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는 것은 잘못된 결정으로 흘러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한 걸음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피와 땀을 흘려 왔다. 힘들게 얻은 결실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정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풀내음 팀블로그 > 하승우의 "일상과 자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존경쟁과 묻지마 살인(경인일보) (1) | 2008.10.31 |
---|---|
사상의 자유, 희망의 세상을 꿈꿀 권리 (0) | 2008.10.21 |
편견과 망각의 정치 (1) | 2008.10.02 |
가족,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교차로? (2) | 2008.10.02 |
누가 역사의 발목을 잡는가(경인일보) (2) | 2008.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