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처럼" - 강릉경실련


인터뷰 : 김진욱(강릉경실련 시민환경센터 사무차장)/김세윤 간사
작 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회귀성 어류들이 있다. 바다에서 자라 성숙한 다음 산란(産卵)하기 위해 태어난 하천으로 다시 돌아오는 습성을 지닌 어류들. 연어, 송어, 뱀장어, 황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회귀성 어류들에게 산란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본능에 의해 저 멀리 바다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하천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급류와 맞서야 하고 둑을 넘어야 하며, 돌덩어리에 몸을 으깨야 한다. 그야말로 순리와는 정반대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산란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강릉에는 큰 줄기의 강이 두 개 있다. 남대천과 연곡천이 그것인데, 회귀성 어류들이 산란을 위해 찾는 곳이다. 지금도 연곡천은 다양한 회귀성 어류들이 찾아온다. 회귀성 어류가 찾아온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남대천의 상황은 다르다. 하천의 중요성을 잠시 잊어버린 사이, 수질오염이 급속히 악화되었던 것이다.(현재, 연어로 유명한 하천은 양양 남대천이다)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연어, 은어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도대체 강릉 남대천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강릉경실련을 비롯해 강릉시, 그리고 지역의 여러 단체들은 지난 99년부터 남대천을 살리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해왔다. 강릉시민들에게 있어서 남대천은 단순히 흐르는 물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각별하다. 이런 노력을 일본에서도 높이 샀는지 지난 ‘강의 날’행사(밑에 윤여창의 글 참조)에서 “히로마쯔 상”이라는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히로마쯔는 일본에서 강 살리기 운동의 대부로 통하기도 한다.

남대천을 살리자는 운동은 지난 99년부터 일어났다. 이전까지 남대천은 죽어 있는 하천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하천을 살리려는 시민들이 움직임은 전문한 상태였다. 시민들이 남대천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는 남대천의 오염원이 강릉수력발전소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지역의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강릉수력발전소는 흐르는 물줄기를 변경해서 다른 곳으로 유도한 다음, 떨어지는 낙차에 의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이를 유역변경식 발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발전소의 방류수가 그대로 남대천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면서 남대천의 수질은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일종의 냉각의 역할을 하는 이 방류수는 원래의 하천 온도보다 무려 5배가 높다. 더구나 이 방류수의 발원지역이 고랭지의 농약, 축산폐수, 스키장 등으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라 자연스럽게 남대천의 수질도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1년부터 방류하기 시작했으니 무려 10년 동안 그렇게 방치됐던 것이다. 결국 남대천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강릉 시민들은 남대천 살리기 운동은 전개하게 된다.

“죽어 있는 하천을 살리려고 보니까, 오염원이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죠. 9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릉수력발전소가 원인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발전소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이하 한수원)은 이 사실을 발뺌했습니다. 현재에도 명확하게 인정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공급위주의 전력정책을 펴왔다. “전력이 부족하니까 발전소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아직까지 먹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수력발전소를 해양선 근처나 백두대간 곳곳에 무차별적으로 건설해 왔다. 물론 이후에 벌어진 환경파괴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 없이 말이다. 강릉수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김진욱 사무차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강릉수력발전소의 무용론을 펼친다. 남대천을 오염시키는 주원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발전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데 원인을 들고 있다. 즉, 강릉수력발전소는 첨두부화용(주1) 발전소로서 전력이 모자라는 7-8월에 가동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예산만 낭비하고 남대천 생태계만 파괴한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원성이 높았던지 다행스럽게도 작년 3월부터 발전소 방류수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99년부터 남대천을 살리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거세졌고, 강릉시를 비롯해 시민단체, 관변단체 등이 모인 ”남대천살리기범시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작년 3월, 투쟁위원회는 한수원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방류수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을 어기고 작년 7월 한수원이 방류수를 내보내겠다고 발표하자 지역민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한수원 앞에서 약 두 달 간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의 저항이 완강하자 한수원도 한 발 물러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한 차례도 방류수를 내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의 정도는 매우 높았다고 한다.

“저희 단체뿐만 아니라 관변단체의 참여,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매우 높았습니다. 남대천이 그저 죽어 있는 강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시민들이 오염 원인을 인식하고부터는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한수원과 한창 싸움을 할 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플랜카드를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명운동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수원 앞에서 두 달간 농성할 때도 여러 단체가 돌아가면서 참여했기 때문에 농성장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김 사무차장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죽어 있는 하천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오염원의 유입이 없었던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남대천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파괴된 환경과 그렇지 않은 환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느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는 것. 이를테면, 하천을 콘크리트로 메우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복개 하천을 생각해보자. 시민들은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상상할 수 없다. 덮여 있음으로 해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남대천은 시민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접근할 수 있다.

“......지금은 꼬마 아이들이 소(沼)(주2)에서 놀기도 합니다. 예전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들어갈 수 있으니까,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민들이 방류하면 안된다, 이 상태로 보호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철새들이 남대천 등으로 날라 오기도 했습니다. 수질이 많이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남대천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하천이 생활 속의 하천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만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강릉경실련에는 ‘남대처친구들’이라는 자발적인 시민모임을 꾸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수질조사, 자전거 타고 식생조사 등을 해왔고 청소년체험환경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하천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했던 쓰레기 줍기 운동도 전개했으니 말이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지금의 남대천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불씨는 남아 있다. 강릉수력발전소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시와 시민단체가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산업자원부의 조정안을 두고 한수원이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세는 시민의 입장 쪽으로 흐르고 있지만, ‘국책사업’이라는 미명아래 한수원의 돌발 행동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강릉경실련은 남대천을 반면교사로 삼아 연곡천 의제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남대천보다 생태계가 잘 보존된 연곡천을 그대로 방치하다간 어느 틈에 개발의 물결로 더럽혀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릉시에는 남대천 뿐만 아니라 연곡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있습니다. 연어, 은어, 황어, 뱀장어 등의 회귀성 어류들이 서식처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 여러 기업들이 온천 등의 관광지를 만들려고 하고 했지만, 시민들이 막아냈습니다. 남대천의 오염을 거울 삼아 올해부터 ”하천의제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의제사업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주민들과 함께 하는 사업입니다. 올해 중으로 의제를 작성할 예정이고, 지금은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개발에 대한 욕구가 남아 있긴 합니다만, 연곡천 주변의 식당 주민들도 ”연곡천이 잘 보존되어야 사람들도 찾지 않겠느냐“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제만들기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가꿔나가는 모범적인 하천의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관에 맞서 싸워 이긴 하천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해 가꾼 하천”을 위해 강릉경실련은 시민들과 함께 실험을 하고 있다. 하찮은 마을의 작은 도랑이라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켜나가고 있는 일본의 하천 살리기 운동을 배운 것도 큰 소득이었다. 김세윤 간사의 “메이저 단체만이 참여하는 운동이 아니라 지속성을 지닌 소규모 자치모임들이 힘을 발휘하는 하천 살리기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결국 무임승차하지 않으려는 시민들이 많아 질 때, 인간과 인간에 대한 불평등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불평등이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 모쪼록 남대천과 연곡천이 강릉 시민들에게 사랑 받는 하천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노래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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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약간 전문용어인데, 쉽게 설명을 달자면, 발전소는 크게 기저부화용과 첨두부화용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365일 발전소를 가동함으로써 매일 사용해야 하는 기초가 되는 전력인데 비해 후자는 위급한 시기, 특히 여름 같이 전력이 모자랄 때에 가동하는 발전소를 말한다. 보통 5% 예비전력이 남았을 때를 위기상황이라고 말하는데, 최근 10년 간 이런 상황은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전력이 부족한 편이 절대 아닌 것이다. 필자가 반핵운동을 하면서 귀동냥한 내용이다

(주2) 호수보다 물이 얕고 진흙이 많으며 침수 식물이 무성한 곳을 일컫는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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