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학교도서관을 열자" - 좋은 학교 도서관 만들기 협의회
인터뷰 : 류명화 사무국장
정 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운영위원)


기억을 더듬어 보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럼 중학교는 어떤가? 고등학교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학교도서관의 이미지는 장서로 가득 찬 최신식 시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칙칙한 조명 밑에 칸막이 책상과 의자, 그리고 띄엄띄엄 장서가 꽂힌 책장 위에는 오래된 거미줄도 보였던 것 같다. 물론 관리 선생님이나 사서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 항상 문이 닫힌 버려진 공간이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의 기억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은 어떨까?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 종이에 인쇄된 장서를 일부러 찾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강산이 변한 만큼 양이나 질적 수준은 많이 좋아졌으리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대체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19세기의 시설에서 20세기의 선생님이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그냥 비아냥으로 들리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학교도서관의 실정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다.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제34조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이에 준하는 각종 학교를 포함한다)에는 학교도서관을 설치하여야 한다.”라는 의무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래 표를 보자.(2000년 교육통계연보) 도서관이나 도서실이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학교가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100% 가깝게 설치되었다. 법적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구분 한국 일본설치율(%)
학교수 학교도서관(실)수 설치율

초등학교 5,267 3,056 58.0 99.8
중학교 2,731 2,160 79.1 99.0
고등학교 1,957 1,801 92.0 100.0
합계 9,955 7,017 70.5


“90년대 초, 수원여성회 내에는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모임」이라는 소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의 활동을 통해 느낀 것은 학교도서관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토대로 96년도에 “우리아이 독서 환경 이대로 좋은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학교도서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사 내내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도서관에 지원되는 예산이 연평균 100만원을 넘지 못했고, 맞춤법 이전 책들이 다수였으며, 사서 선생님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조차 열리지 않는 곳이 허다했습니다. 그나마 점심 시간이나 방과후에 잠깐 열리는 정도였습니다. 이 토론회를 통해 학교도서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었고, 이후 학교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고민들을 끊임없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협의회(이하 협의회)”의 류명화 사무국장은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질적인 수준을 접어두더라도 절대적인 시설의 수준이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학교도서관 현실이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닫힌 공간으로 간주되었던 학교도서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신념이 생기자 해야할 일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주목한 것은 도서관 전문 사서들의 영입이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이렇게 고민할 즈음, 국가적인 환란(IMF)이 몰아친 지난 98년, 실직자를 위한 공공근로 사업이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수원여성회는 학교도서관 사서 파견 계획서를 제출하게 되고, 수원시가 이를 선정하여 이 운동이 가속을 받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안산과 군포에서도 사서파견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난 99년 12월, 지금의 협의회가 구성되었다. 현재는 9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대상 지역은 20여 곳을 넘는다. 참여하고 있는 학교 수도 점차 늘어 2002년 상반기 현재 175개교에 사서를 파견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10개교가 늘면 185개교에 달한다. 이런 노력으로 이 사업은 모범적 공공근로 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공근로 사업이라는 제도는 상당히 불합리합니다. 3개월마다 다시 등록을 해야하기 때문에 학교에 파견된 사서로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퇴직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전혀 받을 수 없다보니 직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수밖에 없지요. 학교 사정은 더욱 우리를 난감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사서를 보낼테니 상주만 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로 학교장들은 사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죽어 있는 공간을 살리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첫 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생소한 사업에 대한 학교장들의 거부감, 불합리한 제도로 인한 사서들의 불안감, 그리고 교사나 학부모들의 인식 부족 등은 이 운동의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시나브로 진행되면서 눈에 띄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공간에 사서가 들어서는 것 자체가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상주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특히 사서가 파견된 농촌 지역 학교에는 학기 중은 물론이고 여름방학에도 학교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집에 가도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류명화 사무국장이 가장 흐뭇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점이다. 아직은 방과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만, 방과후 특별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도서관은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옛날을 생각해보세요. 도서관은 발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는 곳으로 여겨졌잖아요. 그러나 활동력이 왕성한 아이들에게 ‘정숙’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거든요. 아이들은 뛰어다니기도 하고, 누워서 책도 보고, 큰 소리로 읽기도 하고...이런 분위기가 아이들에 맞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은 단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통해 교육환경개혁운동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문화공간, 공동체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류명화 사무국장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급한 것은 죽어 있는 도서관을 살리는 일이다.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아직까지는 필요한 것이다. 류국장은 올해가 마무리하면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내년부터 사서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협의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교육을 통한 학부모들의 의식 변화이다.

“2001년도에는 18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습니다. 32개교의 학교에 사서를 파견하는데 15억을(학교 파견 사서 인건비로 사용), 나머지 3억원은 자원봉사자 교육으로 사용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학부모들은 학교에 눈 도장을 찍기 위해 학교에서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원봉사의 형태는 매우 사적인 영역입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굉장한 힘이 될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일은 교육개혁이라는 거대한 일에 비하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실질적인 봉사를 위해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총 5일 동안 20시간의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약 2,000명 정도 교육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고, 엄마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개혁을 이야기 할 때, 제도 못지 않게 학부모들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 학부모들의 비판과 협력 없이는 개혁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 학부모들의 자원봉사 능력은 많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서는 헌신성을 발휘한다. 이런 풍토에서 학부모들에게 학교와 자식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한다면, 학교운영의 일주체로서 큰 힘이 될 것이다. 수원여성회를 비롯해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고양, 파주, 군포, 의왕, 성남, 용인. 안산, 시흥, 안성, 평택 등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문화자원봉사자 교육을 여러 차례 실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래 표는 성남에서 실시된 문화자원봉사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1강 : 독서의 중요성
2강 : 마음 열고 얘기해요 - 상담기법
3강 : 부모의 역할
4강 : 가정과 학교에서의 독서지도
5강 : 자원봉사의 의의
6강 : 어린이 책의 이해 및 선정방법
7강 : 앞서가는 여성, 당당하게 사는 여성
8강 : 학교도서관 운동의 방향


협의회가 구성된 지 만 3년아 안됐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류명화 사무국장은 말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활동은 미비하지만, 중앙 차원에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면서, 경기 지역에 한정된 운동을 전국으로 전파할 수 잇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에 담당 사서가 한 명도 없었는데, 올해 정식으로 6명의 사서를 채용하게 되었다. 이 뿐이 아니다. 교육청은 2001년에 51억을 시작으로 2003년까지 179억 원을 투입해 학교도서관 정보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장학사가 담당한 무수히 많은 업무중 하나에 불과했던 학교도서관 업무를 부족하지만 한 명의 담당 직원이 담당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물론 경기도 지역에 1,000개가 넘는 도서관을 한 명이 관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전담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학교장들의 마인드도 차츰 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평균 예산 배정이 100만원도 넘지 못했던 것을 요새는 수천 만원의 돈을 들여 학교도서관을 바로 새우는 일을 스스로 챙기고 있다. 가시적으로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점도 많은 것 같다.

“이 사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있는데, 사서들이 공공근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기도 지원금의 대부분은 사서들의 인건비로 충당되는 데다, 이에 따른 부대비용(보험금 등)도 만만치 않아 경기도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많은 인력을 어떻게 가동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고, 또 하나는 학교에서 사서들의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식 교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서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싶어도 학교에서 No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학교도서관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위해서라도 사서들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이런 문제점들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학교도서관에 대한 각 주체들의 의식을 바꾸는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실적수준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이 운동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절대적 시설을 늘리는 일과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 지금 협의회는 두 마리 토끼를 몰아가고 있다. 특히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에는 문화자원봉사자들로 대변되는 학부모들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서들이 역할이 중요하며, 이들을 운동의 주체로 어떻게 세우는가가 관건이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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