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천선혜(주민자치위원) 작성 : 김현
주민자치센터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공무원들에게는 주민자치센터가 눈엣가시일지 모를 일이다. ‘주민자치’라는 그럴싸한 말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실제로 몇 몇 주민자치센터를 제외하고 자치적인 주민들의 활동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민자치센터 무용론은 과도한 평가일 수 있다. 자치할 수 있는 능력이 미흡한 주민에게 덜렁 주민자치센터를 던져주고, 처음부터 잘 할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현재 수준에서 주민자치센터의 모든 문제점들이 다 드러난 상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개별 단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새로운 모델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양이나 질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 모습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으면서 그 해답이 눈에 보였다. 결국 ‘주민’에 있었다. 훌륭한 제도가 훌륭한 주민들을 만들 수도 있지만, 훌륭하지 못한 제도라 할지라도 주민들이 올곧게 서 있다면 제도는 단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주민자치센터의 그림은 정부나 공무원이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생력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반복하자면 센터를 변화시키는 Key Word는 ‘주민’이다.
인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창조적인 변화의 모습도 결국 주민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민자치위원들이 서서히 '자치'에 눈을 떠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제도적인 한계로 인해 주민자치센터가 도대체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느냐의 문제, 즉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체성이란 그 조직의 개별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총화한 것이라면, 결국 개별 구성원들의 특성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핵심구성원인 주민자치위원들의 개별 정체성은 곧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를 대변하고, 가뭄에 콩 나듯 “잘 운영되는 주민자치센터”가 드문 현실에서 선례로 삼을만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연수2동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주민자치센터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좋은 사례다. 거리를 두고 본다면 주민자치센터를 비판할 대목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잘만 운영되면 지방자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토대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말만 많을 뿐, 정작 그 곳에 안착해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활동가들은 의외로 적다. 비단 활동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민자치센터의 필요성을 인지한 의식 있는 주민들의 참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수2동의 사례는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천선혜 주민자치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주민을 대상으로, 지역을 거점으로 생각하지 말자
“물론, 운동단체의 활동가가 지역에 내려오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주민부터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 상황을 고려했을 때 옳은 목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선적으로 단체 활동가들이 지역운동을 하려 한다면 지역운동가로서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짧은 소견입니다만, 앞으로는 여러 운동단체가 지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운동으로서의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지역주민들의 눈 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거죠. 사실, 자기 욕구가 없으면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 자신이 꿈꾸던 삶의 모습과 운동간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나가면서 서로 같이 변화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을 대상화시키지 않는 것이예요. 그 사람과 나 하고 다 똑 같은 지역주민이고, 모두 같은 고민을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지역민들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배웁니다. 생활상의 문제를 더 많이 알고, 오히려 개방적입니다.”
시민단체 활동의 경험은 많은 장점을 지니지만,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주민자치위원들의 구성을 상기해보면 얼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상당수의 주민자치위원들은 동정자문위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들의 면면은 소위 관변 위주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에 적을 둔 사람의 출현은 그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가 색안경을 끼고 적대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주민자치센터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주민자치센터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려고 보니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비롯해 몇 몇 시민단체에 적을 둔 사람들이 공부방을 운영했던 거죠. 우리는 선입관을 버리고 상당히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헌신적으로 하다보니 공부방이 잘 운영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런 모습을 지켜본 주민자치위원들이 “저렇게 하면 잘 되는구나!”라는 판단이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즈음, 주민자치센터가 언론을 통해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공부방을 축으로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 축제를 만들어서 대성공을 거두었죠.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분명히 방관자였던 주민자치위원들을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주민자치위원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작년 개최된 “주민자치센터 박람회”에서 우수 주민자치센터로 선정된 이유도 주민자치위원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이 높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천선혜 위원도 주민자치센터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역에 애착이 있는 위원들의 참여가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위원을 선출할 때에는 한 개인의 친분관계를 떠나 지역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있다. 올해 초, 주민자치위원들을 영입하는 문제로 주민의 10% 가까이 설문을 받았고, 이 중에서 주민들이 가장 신뢰할만한 3명의 주민을 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이렇게 선출된 위원에게 자부심과 함께 지역사회로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위원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내용의 질도 업그레이드 될 수밖에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프로그램
“프로그램 몇 가지만 소개시켜 드리면, 공부방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구요. 우리는 일반 학교나 학원에서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합니다. 올해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자원봉사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 즉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일들을 교육했습니다. 아동프로그램 중에 특색 있는 내용은 두 달에 한번 꼴로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 벌써 6회를 했습니다. 생태, 문화 등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은 무척 재밌어 하고,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인대중강좌는 학부모와 강사들 간담회를 가져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인 강좌가 끝나고 나면 수강생, 특히 어머니들이 자체적인 모임을 통해 연극 등의 공연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수지침 강좌의 경우, 강좌가 끝나면 수강생들이 노인관이나 복지관에 찾아가서 배운 것을 실습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하는 일도 합니다.”
위원들의 활발한 활동과 프로그램의 차별화로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역시 공무원들이다. 주민자치센터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공무원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위원들을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주민자치센터를 잘 운영해주길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 천선혜 위원의 설명이다. 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일손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주민자치센터가 본래의 취지와 어긋나면 결국 공무원들의 업무만 부과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는 공무원들에게 옥동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무원과 위원간에는 갈등의 골이 깊지가 않다. 갈등은 서로의 위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역할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다면, 공무원과 위원의 역할이 명확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경우는 그런 갈등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밑으로 뿌리내리기
그렇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멀다.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이제 만 3년을 넘긴 셈이고, 짧은 역사만큼 새로운 모델도 적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마을의 그림, 즉 큰 틀에서의 주민자치센터의 방향을 잡아야 가야 한다. 프로그램이 우수하고 위원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만으로 그림을 완성할 수는 없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러려면 주민들의 지지와 호응을 기반으로 해야할 겁니다. 위원들의 구성 자체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그렇다고 해서 기존 위원들의 물갈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에 대한 의식과 애착이 있는 위원들과 주민자치센터에 한번쯤 몸담았던 수강생들, 그리고 발굴된 지역의 여러 분야 강사들이 실제로 위원들로 들어오면서 센터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는 구조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방향도 교육이나 복지 쪽으로 가면 그 동안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도 관심을 보일 거고, 이 중에서 자치적인 모임들이 활성화되면 이런 모임을 통해 신뢰할만한 주민들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지역자치가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지금보다 더 밑으로 뿌리내리는 것이 과제지요.”
연수2동의 사례를 다른 지역으로 보편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의 상황과 구성원들의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천선혜 위원이 지적했듯이, 비록 주민자치센터가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지방자치’, 또는 ‘주민자치’라는 커다란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흐름의 구심점이 주민자치센터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 지금은 제도가 도입된 초기보다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라는 것에서 그 가능성이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풍문이 여기 저기 봇물처럼 흘러나오지만, 주민자치센터가 지역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발전적인 조망이 이루어진다면, 미궁 속에 빠진 실타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또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