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뜬금없는 것같지만, 요즘 대운하 반대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우려도 있습니다. 단순한 이슈파이팅은 이슈를 소멸시킬 수는 있지만, 그런 이슈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고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한반도 대운하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새만금은 진행중이고, 이제는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자기 지역에 내국인카지노허가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아직은 중앙정부에서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국이 땅투기장이 되었는데, 이제는 전국을 도박장으로 만들려나 봅니다.

대운하 뿐만 아니라 여러 개발사업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지역의 개발세력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가 중앙정치인, 중앙정부관료들과 연계되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그것을 두고 '개발동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물론 공식적인 동맹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슷한 생각과 지향을 가지고 있고 긴밀하게 움직이는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세력들은 지역주민들의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보다는 단기적인 땅값상승과 건설이익, 투기이익을 선호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들은 평등, 인권, 평화, 생태 등의 단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때로는 적대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력들은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선거 때에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있고, 지역내의 각종 단체들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차원과 전국차원의 노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지역-전국적 운동의 연계도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지역차원에서 보면, 시민사회운동의 역할도 있고, 대의정치의 변화를 위한 시도도 필요합니다. 꼭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같습니다.

그 중에서 지역대의정치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10년에는 또다시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변화는 없을 것이고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개발이익에 골몰하는 세력들이 계속 지역대의정치를 장악하게 된다면, 이들이 중앙정치인, 중앙정부와 결합해서 끊임없는 개발사업들을 추진할 것이고, 다른 목소리들은 무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역에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개별화되어 있고, 조직적으로 참여하지를 못합니다.

소위 '진보' 또는 '대안'적이라는 정당(정치세력)들도 지역에서는 지역주민들과 밀착하지 못하였고, 지역주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습니다. 선거때면, 중앙에서 내세우던 추상적 슬로건들을 공허하게 반복하거나, 보수정당과 별 차별성없는 지역공약들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정말 대안적 가치들을 지역에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들은 부족했습니다. 사실 그런 정책들은 실천의 경험들과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바탕이 없다보니 그런 정책들이 나올 수가 없었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대의정치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어느 단체, 어느 정당 이런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수적으로도 의미가 없고, 각 주체들이 가진 내용도 빈약합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열린 자세로 학습하고, 새로운 사람들(건강한 생각을 가진)을 발굴하고, 그런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에 지역정치참여네트워크라는 형식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외국의 경험들을 나름대로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해 본 생각이었습니다. 2006년 선거 당시에 과천에서는 초보적이나마 이런 형태의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과천지방자치개혁연대라는 명칭으로 지역의 시민단체 회원, 진보정당 당원 등 다양하지만 건강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시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에 여러가지 시행착오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식의 시도는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이런 시도를 하려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사람들앞에, 그리고 이 시대가 던지고 있는 과제들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그 사람들이 가진 지혜와 경험을 배우고, 그 사람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열정을 모으고,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이 시대의 문제들에 함께 맞설 용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일본 동경도에 있는 구니다치시의 사례(한영혜교수님이 쓴 '일본의 지역사회와 시민운동(한울출판사, 2004)'에 소개되었던 사례인데,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와 지역정치참여네트워크에 대해 2006년 당시의 생각을 정리했던 글을 덧붙입니다.
구니다치시의 경우에는 1999년 지역내에서 광범위한 연대(생활자네트워크에서 공산당까지를 포괄하는)를 형성함으로써 시민파 여성시장을 당선시켰고, 그 시장이 연임을 한 이후, 2007년 지방선거에서 이시하라 신타로 동경도지사(극우적 발언으로 유명하지요)의 영향을 물리치고 다시 시민파 시장이 당선되기도 한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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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니다치시의 사례>

1999년 일본 동경도에서 최초로 무당파여성시장이 당선된 구니다치시에서는 1993년부터 고도제한을 완화하고 고층아파트건축을 허가하려던 행정에 맞서 경관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이 벌어졌었다. 시민들은 청원서를 시의회에 내기도 했고, 경관조례를 주민발의하기도 했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후 1997년 경관권운동의 리더들은 기존 시장의 재선을 막기 위해 시민후보를 출마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선거를 1년 앞두고 1998년 1월 24일 시정교체를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시민참가로 마을을 바꾸자는 모임(이하 '바꾸자는 모임')’이 발족했다.


 '바꾸자는 모임'은 출범후 복지,환경,교육,산업의 4개 분야 정책검토회를 구성하고, 시의 재정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이들은 그동안의 시 행정이  구니다치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을 무시하였고, 시민의 의사를 무시한 개발정책은 ‘이념부재’, ‘시민부재’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바꾸자는 모임'은 개발정책이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정악화의 주된 원인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바꾸자는 모임은 ‘문교도시'를 구니다치 지역발전의 이념으로 ’환경‘과 ’시민참가‘를 정책의 입각점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입장에 기초해서 경제우선의 개발정책으로부터 환경보존형 정책으로 전환하고, 시민이 참가하는 ’도시계획 마스터플랜‘과 ’환경기본계획‘을 책정하고 환경자치체를 선언하겠다고 했다. 또한 바꾸자는 모임은 개발사업에 편중된 재정운영방향을 수정하여 시민생활에 밀착된 복지,환경,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시민이 알기 쉬운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시민의 참가로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또한 '바꾸자는 모임'은 정보공개조례의 개정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시민참가조례를 제정하여 정책계획단계부터 시민참가를 보장할 것과, 시민도 참가하는 공공사업 재평가제도 도입, 시민.행정 합동정책형성연수제도 설치 등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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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대의정치 참여의 모델과 고려사항들>


  이 문제는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지역별 실정을 고려해서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시민사회내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방향을 정립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와 그동안의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한번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 대의정치 바깥의 시민사회운동과는 별개로 대의정치내에서의 정치활동을 하기 위한 지지역적 주체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지역정당(local party)’이 그러하다. 그러나 일본의 지역정당은 일본의 것일뿐, 한국에 곧바로 수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용적으로 보아도, 시민사회운동단체와는 구분되는 주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 주체의 역할은 선거운동 지원뿐만 아니라, 선거이후의 의정활동 지원, 시민사회운동과의 소통구조로서의 역할, 공론의 장 형성을 통한 정책개발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주체는 시민사회운동단체들간의 연대가 될 수도 있고, 단체 차원이 아닌 개인들의 연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지역정당 이외에도 ‘000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형식으로 개인들이 모여서 선거운동 뿐만 아니라 선거이후의 활동을 지원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런 대의정치 참여의 주체를 ‘지역정치 참여 네트워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지역에서는 이런 이름조차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00시(군,구) 시민(주민)정치 네트워크”라는 식의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 “지역 정치참여 네트워크”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하나의 집중된 조직이 아니라, 지역내에 있는 다양하고 건전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분권형 조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내”의 정치참여네트워크라는 것은 중앙집중적 정당의 지부나 지구당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자치적으로 풀기 위한 네트워크, 지역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한 네트워크라는 의미이다.


-  그렇다면 중앙정당이나 국가적 차원의 정치조직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잠정적으로는 이중멤버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이 정당의 당원이라고 하더라도, 지역내에서의 대의정치활동에 있어서는 지역정치주체의 멤버일 수도 있다고 본다.


- 반드시 지역정치까지 중앙정당에 의해 독점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잘못이 정치적 무관심을 더욱 강화시키는 면이 있다. 현실적으로 어떤 주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고 해도, 중앙정당의 조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벽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한국의 정당은 지역의 실정에 맞는 정책, 지역의 비젼, 지역의 대의정치활동까지는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중앙권력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정치는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보다 개방적인 형태로 변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선거제도도 변해야 하고, 실제 정치활동도 변해야 한다.


-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단지 '구경꾼'이 아닌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스스로 정책도 제안하고, 스스로의 관심에 대해 토론도 하고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도 참여하는 '정치의 활성화'는 지역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것이 바탕이 될 때에만 새로운 정치세력이 의미있는 존재로 발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축복이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에게는 절대적 장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지역정치네트워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국가의 문제나 국가적 비전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당히 추상적인 차이이다.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중요한 지역사회에서는 그런 차이가 얼마나 추상적인지가 쉽게 드러날 수도 있다. 따라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연대'는 지역에서부터 가능할 수 있다.



-  정당도 지역정치참여 네트워크에 한 주체로서 참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 실질적으로는 정당의 당원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지역의 정치참여네트워크는 당선이후에 의정활동 지원구조, 일상적 의사소통구조, 공론의 장 형성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공론의 장에서는 지역정책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정책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관계도>


지방의원(대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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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치운동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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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풀뿌리조직(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시민단체, 생협 등등)/시민


- 당선 이후의 소통도 단지 몇몇 활동가들과 지방의원이 만나서 협의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통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방의원은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시민사회운동이나 지역주민들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1년에 한두번하는 의정평가회가 아니라, 지역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토론하고 활동방향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표자 혼자하는 정치활동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고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대의정치활동이 되어야 한다.


-물론 지역정치참여네트워크가 최선이라거나 장기적 모델이라고까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특히 지역에서부터 대의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 채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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