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 단체간의 상호인정, 상호신뢰, 상호협력"
- 울산 양정동 주민자치센터


인터뷰 : 이태우(주민자치위원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지역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해결하는 주민자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자생단체들이 존재해야 하며 활동단체들 상호간의 유기적인 협조와 역할의 분담이 있어야 한다. 적지 않은 자생단체들이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어떤 단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마을에서 누가 어떤 단체에서 활동하는지 잘 알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에서 주민활동을 하고 있는 인적 자원이 매우 빈약한 실정에 비추어 활동가들이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데 장애가 된다. 더구나 지역단체 상호간에 오해와 갈등이 만연된 경우에는 지역활동의 활성화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참여자들의 의욕을 상실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주민자치의 정착을 위한 자생단체간의 상호관계, 주민자치위원회와의 관계설정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울산시 양정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위촉을 받은 이태우위원장은 오랜 동네 주민활동경험에 비추어 지역자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마을에서 봉사하는 일꾼들 상호간에 안면을 익히고 서로의 활동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각 주민활동단체에 “자생단체단합대회”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 협의회, 새마을 부녀회, 자연보호위원회, 여성자원봉사회, 바르게 살기위원회, 통정회(통장들 모임), 체육회 등 여러 단체에서 회원들을 참여시켰다. 첫해인 2001년에는 88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지리산 노고단으로 등반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회원상호간의 소개와 얼굴 익히기, 등반중 대화, 회식 등을 통하여 마을에 어떤 활동가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서로 알게 되고 상호간의 활동에 협조하려는 분위기에 조성되어 앞으로도 계속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데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의견을 같이 하였고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자생단체단합대회를 통하여 자생단체회원간의 교류에 있어 물꼬는 터졌으나 각 자생단체의 장 상호간에는 적지 않은 오해와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로 활동에 대해서 비방을 하는가 하면 정부나 민간으로부터 지원 받은 지원금의 사용용도가 불명확하고 사적 용도에 부적절하게 사용한다는 비난, 활동은 하지 않고 지원금만 챙긴다는 비난, 어느 단체의 장이 마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고 한다는 상호비난, 각종 인신공격과 험담 등이 끊이지를 않았다. 특히 소각장 건설 반대운동을 통해서 마을발전기금을 10억 2천만 원을 소각장 설립자로부터 받아낸 다음부터는 발전기금의 활용방안을 둘러싸고 악화된 마을 분위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이지 않게 되었다.

동네 일을 하다보면 자생단체간의 문제가 없는 동네는 별로 없다. 상호 알력과 불신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감하면서도 어깨를 나란히 생활하는 동네에서는 터놓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상호불신과 비방은 은밀히 감추어진 지하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마침내 동네에 풍파를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 그리하여 주민을 향하여 봉사하여야 할 단체가 험담하느라고 상호 비방하고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활동에 열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동네의 발전을 위하여 단체장간의 반목과 시기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 위원장은 각 자생단체장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위한 회합을 제안하였다. 일부 자생단체장 중에는 단체장회합제안이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을 넘는 월권행위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하였다. 이에 이 위원장은 동장에게 유권해석을 의뢰하였다. 동장은 단체끼리 불화가 있어 말썽이 되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심의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었다. 동네에서 활동하는 10여 개의 단체 중에서 2개의 단체장을 제외한 모든 단체장들이 일요일 오후에 모여서 장장 6시간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 동안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서운한 감정, 단체의 활동현황, 단체의 수입과 지출, 사용내역 등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로 하였다. 서로 맺혀있던 얘기를 풀어놓으면서 뿌리 깊었던 불신의 장막은 서서히 걷혀갔고 다른 단체의의 활동내역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의심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을 요구하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단체장간의 앙금은 상당히 해소되었다. 얘기가 끝난 후에는 이를 증빙하는 자료를 갖추어 제출하기로 하고 서류로 남기기로 하였다. 긴 시간 동안 해묵은 얘기를 털어 낸 단체장들은 굳었던 표정은 풀고 누가 먼저 제안할 것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을 함께 하였다. 앞으로 동네활동에 대해서는 서로 알리기로 하고 주요한 동네행사에서는 서로 협조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적지 않은 성과였다. 뒷감당이 무서워 처음에 단체장회합에 대해서 우려를 했던 동장도 원만한 대화의 결과에 대해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각 단체는 단체의 회원 수, 활동현황, 지원금과 회비 등 수입과 지출내역, 주요활동사항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모임이 있은 후 단체상호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관계는 상당히 진전되었다. 작년에 이어 개최된 제2회 자생단체 단합대회에는 100여명이 참여하여 화합과 협력을 다졌다. 주민자치위원회가 개최한 경로잔치행사와 한마음 구민행사에는 모든 자생단체들이 지원금을 지원하고 고루 회원을 파견해 주어서 음식준비 등 행사를 준비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행사잉여금 등의 배분 등을 둘러싼 잡음 등도 사라졌다. 단체별로 활동을 계획하거나 기획하는 모임에는 주민자치위원장을 초대하여 설명하기도 하고 자문과 협조를 구하기도 하게 되어 자치위원장의 일정은 더욱 바빠져 가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원만한 활동을 위해서는 자생단체와 관계설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 위원장은 갖고 있다.

“풀뿌리 주민자치가 올바로 정착되어 동네문제를 ‘아래에서 위로’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단체가 주민자치위원회와 유기적인 협조를 맺으면서 활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단체의 장들이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와서 주민자치의 활동방향을 결정하는데 참여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각 단체를 지원하고 각 단체는 주민자치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실현하는데 협력하여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주민자치위원으로서 함께 하고 있으나 2 개 단체 대표가 주민자치위원 위촉을 수락하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자생단체들이 건전하게 육성되고 주민참여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자생단체들이 주민을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주민을 위한 활동을 하여야 한다. 현재는 이들 자생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상부 즉, 시청이나 구청 등에서 직접 이들 단체에 시달되기 때문에 이들 단체는 주민을 의식하기보다는 지원금 지급기관인 상부의 관심에 너무 민감하게 된다. 돈 생기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면서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을 뒷전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 단체의 시각이 주민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원금의 지원과 그 지출내역에 대한 검증이 주민의 대표기관인 주민자치위원회 권한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자생단체들의 지원금의 사용내역에 대한 검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신뢰성이 없는 간이영수증으로도 충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말썽이 생길 소지가 항상 있고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문제를 해결하는 자치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자생단체대표와 통과 반을 통하여 추천 또는 선임되는 인사로 구성함으로써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동네 일을 맡을 사람은 없고 그나마 동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면 누가 동네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주민자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을 끌어안아야 한다. 주민의 자치활동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동네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인정하고 주민들도 이들의 활동을 존중해 주는 상호 인정이 필요하다. 상호 인정을 위해서는 단체의 활동을 투명하게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하고 알려야 한다. 이점에서 이 위원장이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손대기 어려운 단체장간의 앙금문제를 털어 내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은 앞으로 주민자치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소망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우리 동네는 원래 주민이 20,000명에 이르렀으나 IMF 이후에 12,000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고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가고 있다. 주변에 현대자동차가 있으나 지역사회와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에 권한은 없으나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종합적인 동네발전계획을 구안하여 실현하는데 헌신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이 마을이 잘되도록 헌신하여 ‘떠나고 싶은 마을’을 ‘머물고 싶은 사람 사는 동네’로 가꾸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동네의 여건과 발전가능성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였다.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 활동에 개인의 사업활동보다도 많은 시간을 동네 일에 헌신하는 지역일꾼들의 모습에서 주민자치 나아가 지방자치의 미래상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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