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연은 복지운동 영역에서는 꽤 잘 알려진 운동가다. 복지운동가들로부터 한덕연이라는 이름을 여러 차례 들어본 바가 있고, 언제가 그와의 조응을 기대하기도 했다. 마침, 지난 주, 풀뿌리자치공부모임에서 그를 초대할 기회가 생겼고, 처음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와 함께 했다.

그는 흐트러짐이 없는 성직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명함을 건넬 때도, 꼿꼿이 눈을 응시하며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았다. 내가 엉거주춤한 자세였다면, 그는 미동도 허용하지 않는 바른 자세였다. 말하는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자기 신념에 대한 확신이라고 할까. 그의 언(言)과 행(行)은 다르지 않으며,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가 자주 쓰는 용어들이 있다. ‘복지기계’는 현 우리사회 복지서비스의 문제점은 압축해서 표현한 말이다. 인간적 관계없이, 돈으로써, 기술로써 당사자에게 베풀어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복지기계는 당사자의 자주성과 자기결정권을 빼앗고,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성을 방해한다. 그래서 그는 주저 없이 지금의 복지서비스를 기계적으로 대처하는 복지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력’을 강조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사회가 사회답게 형성되는 것일 때, 복지도 제대로 이룰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사회사업’이라는 용어 앞에 ‘자연주의’라는 말을 붙인다. ‘자연주의 사회사업’. 자연주의 사회사업을 통해 이루는 복지는 특별히 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나누고 교류하면 굳이 돈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회사업가는 자연력으로 복지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자연주의 사회사업이 존재하는 수단으로서 ‘걸언(乞言)’은 최고의 방식이다. 시혜를 베풀듯, 반찬을 만들어 당사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반찬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도울 것인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떻게 전달할지 등등. 해답은 실무자가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것이 자연력이고 ‘걸언’의 힘이다.

한덕연이 생각하는 사회사업의 철학과 이상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명확하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흐르게 하고 마을 단위에서 복지가 스며 흘러야 한다.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일방향의 복지가 아니라 쌍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외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든, 부자든, 서로 공생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나름대로 복지운동의 하나의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가 얘기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회운동이 추구하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복지의 주류는 제도 중심에 치우쳐 있다. 이러한 복지기계를 접하고, 그가 분노하고 실망했을 것이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바람이 있다면, 운동의 여러 영역과 소통하고 교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는 분명 돌아가는 사회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답답해할 것이고,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가 나서서 말할 의무는 없지만,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자연주의 사회사업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겠지만, 서로 넘나들지 않고서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철암어린이도서관이 자연주의 사회사업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편한 것을 찾게 되고, 학원이 몰려 있는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하나 둘, 인간의 욕망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어찌 막을 수 있는가? 열 가정만이 자연력으로 복지를 이루는 것보다, 백 가정이, 아니 수백 가정이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자연주의 사회사업 이외의 운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서로 넘나들고 소통할 때,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고여 있지 않고 흘러야 하고, 열림과 넘나듦이 자유로워야 하고, 더 밑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 사회운동의 방식이라면, 앞으로 여러 공간에서 자연주의 사회사업과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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