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마을만들기 사업과 참여예산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마을만들기와 지역만들기
정부에서 추진하는 ‘살기좋은 지역만들기’라는 용어는 몇 가지 점에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수행해 오던 ‘마을만들기’와 차별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과 ‘지역’의 차이이다. 지역은 영어로 area 또는 region이라 번역된다. 이는 물리적인 지역적 범주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마을은 neighborhood이라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이 용어는 물리적인 지역적 범주를 나타내기보다는 인근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주로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마을은 community와 더욱 유사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커뮤니티는 그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물리적 지역 범주를 설명하기보다는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민들의 범주에서 형성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마을은 생활권이 일치하고 또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면(顔面)이 높은 그러한 공간적 범주를 갖는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로 할 것이냐, 지역만들기로 할 것이냐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지 단순히 비슷한 개념의 용어를 달리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민간 차원에서 지금까지 수행해 온 마을만들기는 그러한 점에서 지역만들기와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고, 또한 단순히 어떤 물리적인 편익시설을 만들려는 행위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만들기는 무엇보다도 ‘마을’을 만들려는 의도적 실천행위이다.
이러한 공동체라는 용어는 사람들마다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그 용어의 사용에 있어 공통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힐러리라는 학자는 이러한 공동체의 공통적 요소로 세 가지를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지역성(locality), 사회적 상호작용(interaction), 공동의 유대(common tie)이라는 것이다. 즉, 특정한 지역에 기반하여 그 구성원들이 상호 안면성이 높은 상태에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자신들이 같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일체감을 갖는 상태를 공동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이란 공동체의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 진 집단이 거주하는 공간적 범주를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마을만들기는 바로 그러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마을의 구성요소가 충족되었는지를 어떻게 측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역적 범위의 정도와 사회적 상호작용의 정도, 그리고 공동의 유대감 정도는 매우 다양한 질적 층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공동체의 발전에 따라 이러한 요소들의 질적 수준이 끊임없이 향상되거나 하락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정태적(情態的) 현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 지속적으로 외연히 확대되고 그 정도가 심화되는 ‘과정’을 밟아 나가는 ‘운동(運動)’이라는 동태적(動態的)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는 지역주민들이 자신들과 이웃들의 공동체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즉 마을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지향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용어이다. 하지만, 지역만들기에는 그러한 ‘가치’가 생략되어 있다. 지역주민들이 살고 싶은 또는 살기 좋아 하는 지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주민들은 보다 번듯한 물리적 시설이나 편익시설이 많은 것을 ‘살기 좋은 지역’이라 할 수 있겠고, 또 어떤 이들은 ‘친환경적인 자연조건’으로 ‘살기 좋은’ 지역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는 애초부터 그 사업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이들의 관점에서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 실천적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실천의 지원과 기획에 있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어지는 현 정책의 라인은 지역주민들을 지역만들기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애초부터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민들 간의 공동체적 관계가 아닌 편익시설을 건설하는 것이라면 누가 주체가 되든 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단지, 의견을 수렴하여 참고하는 정도로도 족할 수 있다.
2. 마을만들기의 주체와 과정
마을만들기는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주민들 간의 끈끈한 공동체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일정한 방법론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즉,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실천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마을만들기는 누군가 타인에 의해 주민들을 위한 생활환경 등을 만들어 주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마을만들기는 그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또는 살아갈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행정과 외부의 전문가들이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 주는 마을은 진정한 마을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 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조성된 마을은 그 구성원들에 의해 곧바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따라서 마을을 만들어 가는 가장 주요한 주체는 그 마을에서 살아가고 앞으로 살아갈 그 구성원들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마을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채 진정한 마을로 유지・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험된 몇 가지 마을만들기 사례에서도 마을을 만드는 주체의 중요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농동의 차없는 골목만들기 사업의 경우 동장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되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으나, 동장의 의지에 비해 주민들의 의지는 비교적 수동적이었다. 이에 동장이 바뀌자 이 사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마을만들기는 그 지속적 생명력의 부분에서나 그 주체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과정 등에 있어 위의 사례와는 차별적이다. 예를 들면, 마을만들기의 사례 중 가장 유명한 대구 삼덕동의 ‘담장 허물기’사업은 담장을 허물었다는 것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이 사업이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여기저기에서 주택가의 담장을 허무는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삼덕동에서는 담장을 허문 이후의 운동적 실천과정이 더욱 중요하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삼덕동에서는 담장을 허문 후 만들어진 공간을 단지 주차장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활동 및 잔치(어린이들의 발표회 및 인형마임 축제 등), 마을지도 그리기를 통한 지역의 정체성 찾기 프로그램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 강북구와 은평구에서 실시된 어린이 놀이터 만들기 사업 역시 이와 비슷한 마을만들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쓰레기를 적치하고 어른들이 모여 술 마시는 공간으로 변질된 어린이 놀이터를 마을 어린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하여 실시된 이 사업은 결국 어린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은 한 시민단체가 어린이 놀이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조직하여 이들이 직접 이 사업에 팔 걷고 나서도록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어린이들과 지역의 주민들이 이 놀이터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하여 백일장 및 한 밤의 영화제 등 지속적인 공동체 프로그램을 이 공간에서 시도하였다. 결국, 이 사업을 주도한 주민들은 이러한 성공에 고무 받아 다양한 지역사업을 꾀하는 주체로 성장・발전하였다.
이렇듯 우리가 비교적 성공적이라 여길 수 있는 마을만들기의 사례들은 그 주체들이 주민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며, 그 사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내에서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마을만들기에 있어 그 주체를 명확히 하였다는 점 이외에도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가 명확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반면, 행정 또는 전문가의 주도에 의한 마을만들기 실천들은 이러한 마을만들기의 의의를 아직은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 건교부에서 추진하는 ‘살기 좋은 도시만들기’와 관련하여 건교부는 대한국토・도시계획 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학자들에게 국내외의 사례를 조사토록 하여 그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마을만들기와 관련한 일단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언급한 사례들 속에는 주민들의 주체적 마을만들기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 대신 주민 편익적인 시설을 저비용으로 제공한 성공사례들이 주요하게 언급되는 편이다. 이는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주체들이 생략된 채, 시민들을 위한 도시계획의 사례들을 마을만들기로 호도하기도 한다. 물론, 시민들의 참여를 계속해서 언급하고는 있지만, 이들의 주체적 역량이 어떻게 만들기의 과정에서 발휘되는가 또는 이 과정을 통해 그 도시의 주체적 역량이 어떻게 길러지고 형성되는가 하는 운동적 관점이 생략되어 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마을만들기는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는 사회운동의 한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의 마을만들기 관련 전문가가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 사례 몇 가지를 평가한 적이 있다. 이 학자는 서울의 청계천과 광주시 문화동의 문화마을만들기, 서울의 성미산 지역을 그 사례로 언급하였다. 이 중 청계천은 시민들의 동참이 생략된, 시민들을 위한 행정의 실천일 뿐이고, 광주시 문화동의 경우에는 단지 특정한 지역을 문화적으로 특화시킨 것이므로 향후 이 지역주민들의 지속적 실천행위의 여부와 그 방향에 의해 마을만들기의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는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성미산의 경우 행정의 일방적 개발계획에 반대하는 것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향후 이 마을을 어떻게 주민들이 가꾸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 학자가 우리나라 사례를 평가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평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마을만들기는 단순히 주민들을 위한 어떠한 개발계획 또는 일회적인 물리적 시설 및 환경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의 참여를 배제한 일방적 개발계획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대안을 창출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즉,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힘으로 강화하여 자신들의 마을을 자신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지칭한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는 지역사회의 풀뿌리운동이 지향하는 일체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지역사회운동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3. 마을만들기의 실천
마을만들기는 어떤 이념이나 궁극적인 지향점을 나타내는 개념이라 볼 수 없다. 마을만들기는 매우 실천적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정확한 개념을 정립하는 것보다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가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실천의 방식과 만들고자 하는 대상은 지역 및 그 구성원의 상황에 따라 매우 창의적이고 다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실천방법을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마을만들기를 실천하는 데에 있어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 주체의 형성이 필요하다
어떤 사업을 함에 있어 그 주체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주체를 형성한다고 하는 것은, 최근의 실천활동에서 알 수 있듯이, 자주 간과되기도 한다. 즉, 마을만들기의 주체인 마을의 구성원들이 마을을 만들기 위한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만들기의 주체는 결코 시민운동단체나 일부 전문가 또는 전문적 운동가가 아니다.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나 일부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특정한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자 할 경우에는 그 마을의 중심적 구성원이 될 주민들을 우선 조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주민들을 조직한다는 것은 만들 대상을 결정하기 전에 지역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갖는 주민들을 먼저 모으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특정한 필요로 도출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을 모으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로를 거치든 간에 그 마을의 구성원이어야 할 주민들이 모여야 어떠한 실천이라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주체와 그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마을만들기가 상정하는 마을이 결코 만들어 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만들어 진다 하더라고 그 마을이 지속적으로 유지・발전될 수 없다.
▶ 주민들의 생활욕구에 기초해야 한다
마을의 구성원인 주민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욕구가 먼저 명확해야 한다. 즉,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때, 그러한 욕구를 가진 주체가 나서거나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만들기의 주요한 주체가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갖는 사회운동가나 사회운동단체가 아니듯이, 마을만들기 사업의 구체적 주제 또는 소재 역시 주민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많은 경우,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에서의 욕구가 무엇인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라도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해보도록 자극하는 작업(다양한 방법의 조사나 프로그램 등을 통해)이 우선되어야지, 조급하게 주민들에게 특정한 주제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경우, 비록 특정한 사업 한 가지는 잘 수행할 수 있을지라도, 주민들의 주체적인 지속적 행동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민들의 생활욕구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환경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활욕구는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개별화, 익명화되어 있는 도시에서의 삶을 보다 공동체적인 관계가 풍만한 삶터로 바꾸려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을을 구성할 주민들이 과연 어떠한 대상을 어떠한 내용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 구체적인 실천사업이 필요하다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실천활동을 통해서 진행된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장을 마련하고, 그를 통해 수렴된 주민욕구를 해결하는 실천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실천활동이라는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마을만들기가 주로 물리적인 환경 및 시설을 개선하고 설립하는 분야에서 주로 실천되는 것은 그것이 가시적으로 매우 명확한 실천의 과정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주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애초에 바라던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구체적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전체 사업을 이루기 위한 각 분야의 역할이 참여자들 모두에게 주어져야 그 사업이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전과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단지, 주민들에게 의사결정권한만 준다거나 실천꺼리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에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참여자들이 각자의 구체적 역할을 맡을 수 있을 때, 마을만들기는 가시적 성과의 여부를 떠나서 마을을 건설하고 지속적 발전을 위한 주체적 역량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4. 마을만들기와 주민참여예산
1) 주체의 형성과 그들의 욕구로부터 출발
앞서 마을만들기에 대한 설명은 지방정부의 예산기획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한 주체와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그 구체적 실천의 소재에 있어서도 물질적 시설뿐만이 아니라, 문화・역사 등의 비물질적 소재도 중요한 실천꺼리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참여예산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서 지역의 발전과 자신들의 삶의 질 발전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마을만들기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즉, 주민들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자신들의 직접적 참여를 통해 발전의 구체적 실천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는 매우 유사한 주체 설정과 과정을 보여준다.
마을만들기는 무엇보다도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전문가들이나 전문적 운동가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주민설득을 통해 이루려는 시도는 참여 주민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 주민참여예산 역시 이와 비슷하다. 아무리 공적인 지출에 대한 필요성이 있더라도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의 예산책정이 이루어져야 주민들의 주도적 참여가 보장될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제의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는 브라질 뽀르또 알레그리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뽀르또 알레그리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브라질 노동당의 전 시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지출의 우선순위와 주민들이 원하는 지출의 우선순위가 다르자, 과감하게 주민들의 지출 우선순위를 보다 앞에서 배치하였다. 결국, 몇 년이 지나면서 주민들 스스로 전 시장이 생각했던 시급한 재정지출 사항인 대중교통체계 개선을 제시하게 됨으로써, 시장의 이러한 판단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주민참여예산에서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직접 그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토론장을 조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한 지방자치단체가 하나 둘 늘어가지만, 결국 핵심적으로 발생하는 걸림돌은 주민들의 참여와 이를 통한 토론의 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과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마을만들기와 주민참여 예산은 모두 다 공개와 공모의 원칙으로부터 시작되어야 그 사회적 의의가 달성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업 모두에 있어서의 핵심은 참여의 주체를 형성하고, 이 주체들이 참여하고픈 일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이 일반 주민들의 참여가 가능하고, 또한 자신의 참여에 보람을 느낀 주민들의 지속적 참여가 가능하다.
2) 참여자의 역량강화
마을만들기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실천을 통해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주인으로서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하는 민주시민 교육 및 훈련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역사회에 잠깐 ‘빌붙어’ 살고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진정한 주인이냐 하는 것의 위상과 역할의 차이는 가옥주와 세입자의 경우를 빌어 잘 설명할 수 있다. 세입자는 자신이 사는 집에 문제가 있을 경우, 그 문제의 해결을 집주인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가옥주의 경우에는 자신의 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기꺼이 자신이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된다. 마을만들기는 그 참여자들로 하여금 바로 이와 같은 ‘가옥주’로서의 자기 위상을 실천을 통해 인식케하는 과정이다.
참여예산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여예산은 그 참여자들로 하여금 지역사회의 주인으로서 자기 위상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뽀르또 알레그리에서는 참여예산제가 실시된 이후 자신들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금을 내지 않던 불법 정착민들이 자진해서 세금을 내겠다고 시정부에 신청을 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참여예산이든 마을만들기든 그 실천의 과정에서는 참여자들의 주체적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의 기능을 명확히 설정하고, 또 그러한 기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지역사회의 변화는 주민들이 스스로의 주체적 힘을 가질 때에만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역시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를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다양한 주민들이 참여하면 제각기 다른 이해와 요구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의 배타적 이해는 공동체의 공공 이해로 귀결되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번거롭고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론장에서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고 그러한 충돌과 갈등을 봉합해 가는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해를 공동체의 이해와 조화시키는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주민들, 시민들이 그 지역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은 배타적 소유권이 아니라 공동체적 소유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해와 이웃의 이해를 조화하는 과정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가장 최적의 교육・훈련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운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민조직화가 지향하는 핵심적 가치 중의 핵심적 내용이다.
정리하면, 마을만들기와 참여예산은 모두 참여자들의 개인적 역량을 육성하고 이를 집단적 역량강화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지역사회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효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바로 지역사회운동이 지향하는 운동적 핵심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마을만들기나 참여예산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실천되는 많은 마을만들기 사례나 참여예산의 사례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도록 의도적이고 세심한 계획의 수립과 실천, 그리고 핵심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실천을 통해 이러한 과정은 서서히 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사회운동(社會運動)이 과정을 말하고 있듯이, 바로 그러한 실천과정 그 자체가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실천하는 사회운동의 핵심적 내용이라 할 수 있다.
3) 행정과 전문가와의 관계 고려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들 중에서 간혹 지나친 주민참여의 강조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원칙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핵심적 가치를 현실적 어려움으로 포기하려는 것은 과거 행정이 주민들을 동원의 대상 이상으로 설정하지 않으려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당장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러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아야 미래가 보인다. 하지만, 당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현실적 판단만을 하게 된다면, 10년 후 우리의 지역사회운동 기반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전술적 실천은 유연하게 채택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전략적 가치를 구체적 실천 속에 녹여내려는 노력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예산이나 마을만들기가 전문가나 행정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주도한다고 하는 것은 그 실천에 있어서의 주도뿐만이 아니라, 결정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마을만들기에서 행정과 전문가의 바람직한 역할은 주민들의 주체적 결정과 실천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를 간단한 그림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즉, 행정의 역할은 주민들의 실천활동에 행/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실천활동에 안정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주민들에게 이러한 실천활동의 동기를 부여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동기부여란 주민들의 참여에 대한 권한 부여를 통해 가능하다. 전문가와 시민단체 및 그 활동가들의 역할은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고 행정과의 관계를 중재하며, 참여한 주민들의 의견과 욕구를 조정하고 이를 통합하여 실천가능한 청사진을 제시해 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먼저 주민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줄 수도 있다고 보는데, 이는 행정의 동기부여와는 달리 주민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5. 마을만들기식 참여예산 실천
예・결산에 대한 감시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참여예산은 그만큼 제도적 보장을 더욱 필요로 한다. 따라서 참여예산에 관심 있는 주체들은 그 제도를 만드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제도를 만드려는 노력과 더불어 그 제도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주민참여를 조직하는 일은 제도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참여예산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을만들기와 결합된 방식의 사업을 구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즉, 단지 예산을 책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참여자들이 이를 직접 실천하는 영역으로까지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뽀르또 알레그리에서도 이러한 사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뽀르뽀 알레그리시의 한 빈민가는 주민들이 먹고 살 길이 없어 마약을 판매하는 범죄의 온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스스로의 자활을 위해 재활용사업장을 만들고 이를 위한 예산을 시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자신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고, 나아가 마을에 도로를 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등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단지 예산을 지원받는 것만으로 달성될 수 없고, 주민들 스스로 자활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또한 한 빈민가에서는 열악한 주거와 기반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지구재생사업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지구재생사업이란 단지 주거환경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교육, 복지, 위생, 치안, 소득 등의 지역문제를 총체적으로 해결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해결의 주체로 자신들을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참여예산이 단지 예산 기획에 있어서의 주도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산의 집행에 있어서도 주민들의 자발적 실천에 의한 가시적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진정한 지역사회의 변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만들기와 주민참여예산이라고 하는 것은 비슷한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운동에, 지역사회 발전에 있어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주체들이 같다는 것이며, 보다 구체이고 대안적인 사업을 통해 이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어떻게 기획하고 조직하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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