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0.07.08 [서평]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1
  2. 2010.04.27 풀뿌리 여성지도자들의 성장기 간담회 후기 4
  3. 2010.04.08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 토론회 안내
  4. 2010.03.09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③, 대구참여연대 정희성 간사와의 만남 7
  5. 2008.10.07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전략을 위한 풀뿌리들의 역할] 집담회에 초대합니다. 2
  6. 2007.11.09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실상과 과제-3
  7. 2007.11.05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8. 2007.10.22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장애인 담장' 허물어 공동체를 만들다
  9. 2007.10.16 '이음' 활동가 집담회 [2] _ 중견활동가 역할은 무엇일까
  10. 2007.10.16 '이음' 활동가 집담회 [1] _ 조직 중책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
  11. 2007.10.15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아시아의 풍물, 지역민과 함께 만끽해요"
  12. 2007.10.02 [영상자료] 포르투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
  13. 2007.10.02 [영상자료] 참여예산제 소개
  14. 2007.09.28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의 개혁
  15. 2007.09.24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풀뿌리 자치 불모지 부산에 희망을
  16. 2007.09.24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주민 힘으로 외부시선 턴 ‘반송의 기적'
  17. 2007.07.11 필리핀 사회복지와 주민운동 현황
  18. 2007.06.26 [칼럼]끝나지 않은 꿈 - 포르뚜알레그리 참여예산 ① 1
  19. 2007.06.25 왜 풀뿌리 운동이 희망인가?
  20. 2007.06.25 시민사회의 구조와 변동, 1987-2000
  21. 2007.06.04 "일상의 정치"-이호
  22. 2007.06.04 "‘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정상호
  23. 2007.06.04 지역사회조직화(Community Organizing)의 실천사례에 관한 연구
  24. 2007.06.04 지역운동에 관한 세상의 모든 지식!! -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가 뜬다!!
  25. 2007.05.15 왜 풀뿌리운동이 희망인가?
  26. 2007.04.03 세계화의 대안, 지역운동으로서의 생협운동
* 2010년 7월에 발간된 [녹색평론]에 실은 글입니다. 출판된 글은 소제목이 더 재미있게 변경되었고, 문장도 많이 손을 본 것입니다만, 여기에 올리는 글은 그러한 정성의 손길이 가기 전 제가 쓴 원고입니다.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 서평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저자 하승우 선생에 대한 소회(所懷)

  어느 날 사무실에 출근을 했더니 출판사에서 책이 한 권 우편으로 배달되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2010, 북하우스)였다. 하승우 선생이 시민참여와 관련한 매뉴얼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출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내게 증정판을 보내준 것이다. 하승우 선생이 쓴 책이라면 내 돈 주고 사서 볼 용의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 대가가 바로 이 서평을 쓰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아무튼, 이 책이 출판되기 전부터 하승우 선생의 새 책에 대해 기대가 컸던 것은 지금까지 나온 하승우 선생의 책을 읽어보고 많은 도움과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자 하승우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한국도시연구소 시절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개인적 친분을 맺개 된 것은 2003년경 이었는데, 당시 <시민자치정책센터>(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결합하면서부터였다.

  당시 하승우 선생은 인터넷 상의 필명 ‘도끼’로 주변 사람들에게는 꽤 알려져 있었다. 주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에 대한 댓글을 ‘도끼’란 이름으로 달았는데, 필명만큼이나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없이 가하곤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든 느낌은 “참 속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댓글의 내용이 모두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랄하게(하지만 천박하지는 않게)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크게 일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물론, 최근으로 들어올수록 필명도 바꾸고 예전의 그 ‘도끼’와 같은 날카로움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는 점이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승우 선생도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한 자체검열(?)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하승우 선생에 대한 관심은 솔직히 표현하면 ‘괜찮은 후배’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변에서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예리한 문제를 제기하는 후배는 선배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승우 선생은 필자에게 단순히 그러한 후배의 위치를 훌쩍 벗어났다. 그 결정적 계기는 하승우 선생이 쓴 책 한 권을 읽고 난 이후부터였다. 그 후 나는 하승우 선생의 팬이 되었고, 사상적 스승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 하승우 선생이 쓴 책을 모두 열독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개인적으로, 그 책은 시민운동이나 풀뿌리운동, 그리고 공동체운동을 하는 이들의 필독서가 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는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시에 그 책을 함께 읽던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물론, 모두 하승우 선생의 논리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그 책은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2006, 그린비)이다.

   

‘새로운’ 하승우 선생의 책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엉뚱하게 다른 책을 너무 홍보한 듯하다. 하지만, 저자인 하승우 선생을 이야기함에 있어 아나키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과 아나키즘을 설명한 이 책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도시생활자의 정치백서』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책이 너무 ‘두껍다’는 것이었다. 두꺼운 책을 보면 마치 교과서, 그것도 원론 교과서를 보는 것 같이 답답해진다. 일반 시민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을 쓰겠다는, 내가 알고 있던 하승우 선생의 의도와 어긋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저자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또 ‘공짜’로 책을 받았다는 일종의 의무감 등에 이끌려 첫 장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는 거의 한 달이 걸렸다. 물론, 소설책을 제외하고는 손에 잡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다는 등은 이야기는 내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도 좀 오래 걸린 편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읽었다는 것은 이 책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첫 장부터 가장 의아스러웠던 것은 이 책이 무척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책이 쉽게 쓰여졌다고 해서 의아스럽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스러울 수 있지만, 하승우 선생의 책들은 주로 사상과 철학에 대해 다루었고 박사 논문을 제외한 책들은 비교적 간결한 글들로 이루어진 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자가 쓴 책들 두께가 그리 두꺼운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매우 쉽고 다소 장황하게 관련된 이런 저런 정보들와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서문에 아내의 글쓰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신혼이라 의무적(?)으로 아내 자랑을 하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승우 박사가 갑자기 글 쓰는 취향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런 글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 아내인 공동저자 유해정의 노력이 이 책에 상당히 많이 녹아들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가만히 내용을 살펴보면, 공동저자인 유해정의 노력이 단순히 글쓰기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인권 관련된 정보들이 풍부하게 들어간 것을 보면, 인권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유해정이 공동저자인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그럼에도 공동저자의 한 명이 하승우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 한 것에 대해 용서해 주시길...)

  이 책은 매우 다양한 소재들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하승우 선생은 풀뿌리운동 현장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생각이나 말, 글 등을 보면 영락없는 학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현장을 잘 이해하고 이를 풀어내는 학자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하승우 박사의 가치는 그러한 데에서 주로 찾아졌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학자의 글쓰기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한 느낌을 갖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심오한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기보다 현실에 유용한 정보들을 장황히,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두께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다 다룰 수 없는 정보들을 다루면서, 더욱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웹 주소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책이 두껍지만 술술 잘 읽힌다. 그리고 때로 내가 잘 알고 있는 정보들이 나올 때면 그냥 넘어가도 무방하다.

   

다양한 정보의 소개

  이 책은 도시생활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모아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혼자서만 혹은 자기 가족들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는 않다.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제시하고자 하는 행복한 도시생활은 건강하고 건전하게 행복한 삶을 전제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공동체적인 행복, 건강함 등을 도시에서 되살리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저자는 그 중요한 요건을 ‘정치’로 이해하고 접근한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각 장의 제목만 봐서는 이 책이 왜 친절한지, 어떻게 다양한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각 장의 내용들로 들어가 보면, 일반 시민들이 이 책을 읽고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친절하게 설명・소개되고 있다. 

  제1장의 제목은 “정치란 무엇일까?”이다. 이 장의 제목만 보면, 다소 강의식으로 재미없게 글이 전개될 듯하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장에서 처음 다루는 내용은 ‘정치의 의미’이다. 정치의 의미에 대해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41%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정치가 특정 집단의 이해에 보다 잘 봉사할 수 있도록 이루어질 여지가 많다거나, 우리의 세금이 정작 필요한 곳,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매우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가 필요 없다고? 그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짜증나는 정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철학자들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정치는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사라진다면 공동체도 해체한다. 그러므로 정치는 없어져야 할 과정이 오히려 새로이 구성되어야 하는 과정이다”라고 독자들을 설득한다. 따라서 “사라져야 할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이지 정치 자체가 아니”라는 주장을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쇄신책으로 많이 호감을 갖는 기업의 정치 대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며, ‘그것은 아니죠’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우리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정치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소위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는 소제목으로 것으로 집약된다.

  그래서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소시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 중요한 정치변화를 위한 정치참여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그 이후 장부터 매우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2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선거와 참여제도 활용하기”이다. 저자는 먼저 선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도 오래전부터 뜻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박사논문에서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지도자를 뽑는 방법에 주목했는데, 그것은 ‘선거’가 아닌 ‘추첨’이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모든 시민들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았다. 대신, 선거 때마다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는 원인을 분석하며,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러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어떻게 선거에 참여해서 어떤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데, 선거에서 어떻게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많은 후보자들 중에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싶은 후보가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럴 경우, 그래도 최소한 정치 지도자로 선출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떨어뜨리고 괴롭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누굴 괴롭히는 데에는 하승우 선생이 남들보다 뒤질 수 없다. 그래서 후보자 또는 당선자들을 괴롭히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선거 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정신 못 차리는 정치인 쫓아내”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는 주민소환제라는 법적 규정을 통해 이미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외에 주민발의를 통해 정치인을 끼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그외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제도인 주민참여예산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우리나라 정당의 운영 시스템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면서, 현존하는 정당들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물론, 이 책이 우리나라 정당들의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만다면 별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20가지 체크리스트를 통해 독자 개인에게 맞는 정당을 찾도록 도와주고 있다. 사실 이 체크리스트에 답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정당이 내 취향에 맞는 것으로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체크리스트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제4장은 엔지오(NGO)에 대한 설명이다. 엔지오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 사회에 어떠한 기여를 해왔고 할 수 있는지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가 소속되거나 지원할 만한 건강한 NGO를 찾고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 내용 중에는 NGO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속한 NGO가 과연 건강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건강하게 받아들여질 만한가 하는 것을 체크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세상을 바꾸는 도시생활자의 하루 1・2”가 실려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서 나온 것과 같이 살아간다면 하는 행복한 상상을 잠깐 해볼 수 있는 저자의 독자에 대한 서비스인 듯하다.

  제5장과 제6장은 이러한 변화를 위해 개인이 아닌 여럿의 의견과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법들인 “여론 만들기”와 나로부터 조그만 실천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를 자세히 안내하는 “직접 맞서기”이다. 여론 만들기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블로그를 포함한 인터넷 미디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어떤 방법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설명하면서, 친절하게도 이와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직접 맞서기”는 저자인 하승우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책으로도 출판한 적이 있는 ‘직접 행동’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시민불복종의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그 외에 생활협동조합, 도서관과 복지관, 주민자치센터 등의 적극적 역학과 이에 참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시민불복종과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라는 소로의 말을 인용한 것은 매우 인상 깊다. 즉, “인간의 양심과 권리가 정부의 그릇된 정책보다 우선한다”는 저자의 강조는 자칫 ‘왜곡된’ 애국주의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겠다. 역시, 이 장의 마지막에 또 하나의 서비스를 배치했는데, 그것은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처하는 방법과 그와 관련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자세히 소개한 것이다.

  마지막 장은 부록으로, “권리 찾기 매뉴얼”이라 이름 부쳤다. 첫 번째로는 세계인권선언과 생활권 관련한 국제적 규칙 및 선언 등을 통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권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힘으로 바꾸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구체적 참여와 실천의 방법을 다섯 고개로 제안한다. 첫 번째 고개는 “정보 얻기”이고, 두 번째 고개는 “공공기관이나 정치인에게 요구하기”이다. 세 번째 고개는 “정당과 엔지오를 활용하기”, 네 번째 고개는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압력 가하기”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고개는 “직접 나서기”이다. 물론, 이 책의 전체적 흐름과 마찬가지로 각 고개마다 필요한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일회용이 아닌 참고서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한 번 읽고 다른 사람에게 줘버려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서’ 답게 도시생활자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이러저러한 정보들을 잔뜩 모아놓았기 때문에 살아가다 필요할 때 참고서와 같이 들여다 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때로는 개인적 관계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권력기관으로부터 그러한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이 경우, ‘힘 없고, 빽 없는’ 소시민들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 걸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해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한 번 이 책을 손에 들고 내가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 때 내게 필요한 내용을 빨리 찾아보기 위해서는 대충이라도 한 번 다 읽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책꽂이에 고이 모셔놓자. 언제라도 필요할 때에는 꺼내 볼 수 있도록...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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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뿌리운동에서 나름 훌륭한 리더로서 성장한 분들은 대체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겪어왔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들은 많은 사람들, 특히 풀뿌리운동을 하는 이들은 참 알고 싶은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녹색마을사람들(전, 녹색삶)에서는 오늘(4월22일) 풀뿌리운동에서 건장한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네 분을 모시고, 그 동안의 고민과 과정 또 지금의 고민 등에 대해 수다 떠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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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수다는 사실 5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이번의 수다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의 내용에 대한 수다라 할 수 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웃고 공감하며, 때론 가슴 찡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리였던 관계로 참석자로서의 느낌을 간략히 여기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맨 처음 물꼬를 트신 인미화 씨는 녹색삶 초창기부터 활동하다 동탄으로 이사한 후 그 곳에서 다시 주민들과 함께 여러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달랑 아파트들만 있는 곳에서 몇몇 주민들과 함께 뜻을 이뤄 인문학 강좌로부터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녹색삶에서 '맨 땅에 헤딩'하며 성과를 거두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미화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껏 함께 일 할만 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만다'는 풀뿌리운동 활동가들의 불만이 떠올랐습니다. 도시의 정주성이 약해 풀뿌리운동이 뿌리 내리기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미화씨의 사례에서 처럼 이는 그 역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들체 꽃씨가 사방에 퍼져나가 그 곳에 새로이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활동과 영향력이 주변으로 확장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수다를 시작하신 분은 현재 어린이 도서연구회 교육국장으로 계시는 남경화 씨로, 이 분은 광명지역에서 동화읽는 어른모임을 주도적으로 운영하셨던 분입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의 경우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경화씨는 그 이후의 전망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사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고 다른 회원들고 지속적으로 그 활동을 함으로써 스쳐 지나가는 활동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세 번째 수다 주자인 초록나라 도서관의 이순임씨는 5년 전에 왜 풀뿌리운동을 해야 하지, 내가 왜 지도자인가 등의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더랬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진 노력했지만,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 동안의 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신이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매우 생생한 풀뿌리 지도자의 성장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수다 주자로 나선 김미선 전 녹색마을사람들 대표는 스스로 지도자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하게 된 과정을 제한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다 수다를 떨지 못한 듯 아쉬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상이 조직 내에서 점점 더 커지는 과정으로 이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분들이 직접 쓴 수다 원고를 소개하면 더 좋을 듯 싶은데, 예의상 그것은 제 블로그에 올리기보다는 녹색삶에서 직접 얻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아래의 글은 제가 이 네 분의 수다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하여 이날 지정 토론자로 발표한 원고입니다.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 토론문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저는 우리 사회가 보다 행복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우리 사회를 의도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회운동, 시민운동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도를 통해 변화를 유인하려는 노력, 우리 사회의 관행과 관습을 바꾸려는 노력,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킨다고 하는 것은 매우 총체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본성에서부터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행태까지가 다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형태는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삶의 행태를 바꾸는 것으로부터도 자신의 삶의 본질에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행태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관계는 곧 자신의 본질적 삶의 문제를 돌아보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때로는 매우 의도된 노력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비교적 원만히 일어나느냐의 여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히 대면하는 과정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결국, 사회의 변화는 자신과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는 외형적 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변화가 다시 자기 자신의 본질적 삶의 변화로 다가서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변화’가 아닌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라 함은 그러한 변화가 단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지도자’라는 용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풀뿌리운동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영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침으로써,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변화를 겪도록 자극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이루겠다는 운동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발표자로 나선 네 분의 이야기는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앞서 네 분의 성장기에 대해 적절한 코멘트를 할 자격이 있지 못 합니다. 이 분들의 경험을 읽고 듣고 배울 따름입니다. 다만, 네 분들의 발표 내용을 통해 생각나는 몇 가지 시사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관계를 통한 감동과 배움이 미친 영향을 잘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기 힘듭니다. 물론, 길고 치열한 자기 자신의 수련 속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지루하고 견디기 힘듭니다. 하지만, 일상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감동을 느끼고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관계의 긴밀성이 더욱 강화되는 과정뿐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무엇을 하려 했고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 자신이 보다 단련된 지도자로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관성은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회운동,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관성을 너무 자주 쉽게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신용복 선생의 ‘처음처럼’(소주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도 신용복 선생의 사상과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이라는 화두가 항상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셋째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사실,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앞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에게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을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어려움, 막막함’ 등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내일 또 다시 이곳에 이 모습으로 자리해야 할 일이 무척 답답하기도 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접근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무언가를 항상 결정하도록 강요받는 것도 무척 곤혹스럽습니다. 또 관계를 넓히려 애쓰다보니 사람들은 자신을 오해하기도 하고, 그런 오해가 자신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하게 부딪히는 문제도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큰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평생을 함께 산 배우자와도 크게 싸울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항상 좋은 관계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배우자야 한 번 크게 싸워도 이런 저런 복합적인 관계로 인해 원만히 해결되거나 잊고 지낼 수가 있지만, 맘 한 번 먹으면 평생 안 보고 지낼 수도 있는 동료들과는 맘껏 싸우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을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라는 거창한 명분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맘 같은 사람’ 한 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 관계는 보다 넓어지고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것이 항상 어려움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행복한 요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내공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네 분의 이야기 속에서 그러한 경험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과정이 혼자만의 외로운 여정 속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자리가 갖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앞서 사회운동은 ‘의도적’ 방향을 실현하기 위한 삶이자 활동이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맺는 관계도 초기에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방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감추인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이 어리숙해 보이지만 각각은 나름대로 삶의 경험이 몇 십년에 이르는 사람들입니다. 의도한 접근이 성공하는 경우도 그 의도가 상대방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질 때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는 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순간 단절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의도된 관계설정으로 시작한다 하여도, 그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솔직한 자기 모습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젊은 시절 지역사회 활동을 하면서 맺었던 관계가 왜 순간에 불과했는지를 저에게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관계의 증진이 상호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험했느냐 하는 것이라 보여지는데, 그런 점에서 앞서의 네 분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도 제 젊은 날(?)의 경험이 가지는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풀뿌리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귀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다섯째, 굳이 네 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역량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권한, 책임만큼 커지고 강화됩니다. 저도 그래왔고,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네 분의 발표문에서도 그러한 점은 잘 나타납니다. 그런데,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자기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앞으로의 방향에 있어 여러분이 겪었던 그러한 성장의 과정이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도록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데에는 여러분들이 겪었던 그 어려움과 그 속에서 느꼈던 삶의 기쁨과 보람의 경험이 매우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도력도 물과 마찬가지로 고여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물처럼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지나간 자리에 신선한 다른 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할 때 물은 그 깨끗함과 신선함을 유지한 채 바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섯째, 좀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앞서, 지도력도 물과 같이 흘러서 바다로 가야한다고 말씀드렸듯이,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새로이 물이 흘러들어오도록 하는 관심과 더불어 그 자리에 있던 물들이 바다로 잘 나아가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풀뿌리 지도자의 성장은 우리 사회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산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저 같은 입장에서는 이 분들의 경험과 역량이 하류도 흘러가면서 어떻게 자신이 지나가는 곳의 물을 변화시키면서 바다로 잘 흘러갈 것인가 하는 것에도 관심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사회 나름의 또는 그러한 지역사회를 넘어서는 풀뿌리 지도자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충만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는 꾸준히 성장하는 지도력을 한 단체에만 묶어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도력의 성장과 더불어 그 분들에게는 또 다른 그 나름의 역량에 맞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다로 향해 흐르는 물줄기와 같이 지금 있는 자리는 뒤를 이어오는 물줄기에 자리를 내주고 항상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역할들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든 과정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 하는 지도력의 끊임없는 흐름과 성장의 과정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풀뿌리 지도자들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이 일을 자신의 과제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민 지도자가 겪는 어려움과 왜 이 운동을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과 관련하여 이들이 소속된 단체나 조직은 자신의 문제로 이를 인식하고 공동모색을 시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조직활동임에도 개인이 혼자 헤쳐나가야 할 과제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개인과 사회를 성장시키는 단체의 중요한 자기 과제를 소홀히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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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몇 년전 풀뿌리 여성지도자들의 성장과 관련한 사업을 진행하여 풀뿌리 지도자들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고, 또 당시의 고민과 전망 등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정리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 5년 정도가 경과한 현 시점에서 이 분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녹색삶 1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토론회 입니다.
아마, 이 주제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모임에 참여하여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를 듣고 공유하고 싶은 분들이 참여하면 이 모임이 더욱 풍성해 지리라는 녹색삶의 연락을 받고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하도록 홍보하기 위해 초청장을 이 블로그에 올립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사전에 02-903-6604/6204로 연락달라고 하네요.

- 날짜 : 2010년 4월22일
- 프로그램:
  * 10:20 ~ 11:00  총회
  * 11:00 ~ 13:00 수다로 푸는 골목이야기,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
    # 발표: 남경화(사당법인 어린이 도서연구회 교육국장)
               이순임(초록나라 도서관)
               인미화(동탄 후마니타스 아카데미 사무국장)
               김미선(전 녹색삶을 위한 여성모임 대표, 현 녹색마을 사람들 이사)
- 장소: 서울시 강북구, 삼각산 문화예술회관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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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③

 

대구 참여연대 정희성 간사와의 만남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역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젊은 활동가들은 대체 어떤 계기와 경로로 시민운동에 발을 담글까? 과거와 같이 학생운동을 거쳐 시민운동으로 넘어오는 경우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학생운동이 과거와 같은 활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각 단체들에서는 활동가 재생산 구조가 사라졌다는 걱정을 많이 한다. 물론, 이러한 걱정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학생운동 출신으로 새로운 활동가들을 영입하기보다는 새로운 조직화 사업을 통해 필요한 활동가들을 재생산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의 경우 그러한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젊은이들을 조직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명분만으로는 새로운 활동가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없다. 최근에는 학생운동을 거치지 않은 이들이 새로운 직업 개념으로 시민사회단체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흔치 않게 발견된다. 이는 적은 월급과 힘겨운 노동을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대구에서 만난 참여연대의 정희성 간사는 약간 특이한 케이스로 시민운동에 발을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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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기 시작했다.

  정희성 간사는 주위의 누구도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계를 중재하지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 인터넷을 뒤져 대구 참여연대의 회원이 되었고, 지금은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처음 정희성 간사를 소개한 분도 그러한 특이점 때문에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특이점에 끌려 대구까지 가서 정희성 간사를 만나게 되었다.

 

2.

  정희성 간사는 집이 경북 영천이다.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성격이었고, 다니던 학교(대구대)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지만, 자취나 하숙을 한 번도 고려해 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대학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성격이 외향적으로 많이 바뀐 편이란다. 정 간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 매우 외향적이라고 느꼈는데, 이는 사회생활을 통해 변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하였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며 현장 실습도 해보고 복지기관에서 자원봉사 활동도 해보면서 자기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사회복지 영역이 직업적인 면보다는 종교적 신념과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간사가 주로 실습과 자원봉사를 한 곳이 종교복지시설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더욱 많이 한 듯하다. 정 간사는 자기 자신의 행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복지 기관들의 분위기는 이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졸업 후 복지기관에서 일하지 않았고, 일반 회사에 취직을 했다.

  정희성 간사는 우리 나이로 30세이다. 그리고 대구참여연대에서 일한 지는 5개월 조금 넘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여성의 대학 졸업 나이가 대체로 20대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5년 이상은 다른 곳에서 사회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대학 졸업 뒤 복지기관이 아닌 다른 곳에 취직을 했는데, 자세히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한 곳에 오래 일한 것은 아닌 듯하다. 매우 다양한 일들을 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통해 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희성 간사는 학교 다닐 때에도 학생운동을 접한 적이 없다. 그리고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의 참여연대를 스스로 인터넷에서 찾아 회원이 되고 결국 상근자가 되기까지는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 간사의 가족들은 모이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도 자주 언급되는 대화 주제들이다. 그러던 중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이 정 간사를 포함한 가족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다. 가족들과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자기가 이런 생각과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단 한 번도 무언가 사회적인 실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뭔가 적은 것이라도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자기가 참여할 수 있는 조그만 일거리라도 찾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발견한 것이 대구참여연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원으로 가입했다.

  참여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한 후에도 몇 달 동안은 회사에 별 일 없이 다녔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으로부터 “왜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죠?”라는 질문으로 받았다. 사실, 대구의 20대는 정말 정치에 관심이 . 그리고 정 간사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한 명이었다. 대구라는 지역이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는 듯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정 간사는 해석하고 있다. 즉, 대구의 젊은이들은 다른 지역의 젊은이들보다 보수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선거결과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정 간사는 이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행복한가?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평생 즐겁게 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일인가” 결국 정 간사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애초에 직장을 그만 둔 후에는 당분간 쉬고자 했다. 그러나 며칠 쉰 후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간사를 공채한다는 홍보를 접했다. 이 홍보를 접하자 정 간사는 바로 이 일이 내가 찾던 일이라 여겼다. 회사를 그만 두자 바로 참여연대에서 간사를 공채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에게는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공채에 응모했다고 해서 바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종 면접에 3명이 올라왔다. 경쟁률이 3:1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 간사는 당당히 합격되었다. 이렇듯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된 이유에 대해 정 간사는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이력서와 면접시 밝힌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나는 당연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력서를 이렇게 쉽게 쓴 적이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운명이고 필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대구 참여연대 면접관이라 하더라도 이런 이력서와 대답을 듣고도 합격 통보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묻자, “당연히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물론, 아직은 대구 참여연대에서 일한 지 6개월이 채 안된 정도니 행복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 경험이 그만큼 적으니 함께 일하는 선배들도 아직은 정 간사에게 큰 짐을 지우지는 않은 것도 한 요인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찾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운명처럼 참여연대에 입사한 정 간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행복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민운동을 자기희생으로 여기지 않는 자세는 더욱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한다.

  나도 한 때는 대학 졸업 후 빈민지역으로 들어가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한 사실에 대해 ‘투신=희생’으로 연결시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선택이 희생이 아닌 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직 시민운동 경력 1년도 안 된 사람으로부터 내가 몇 년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을 듣게 될 줄이야...

 

3.

  젊은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반복해서 하는 질문이지만, 후배 활동가들이 선배 활동가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끼칠 수 있는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기존의 활동에 대해 신선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하는 곳 또는 선배들로부터 어떤 문제점들이 느껴지는가 하는 질문을 마찬가지로 던졌다. 아직 그런 문제점을 많이 느끼지는 않고 있단다. 그래도 몇 가지에 대해서는 나름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첫 번째 문제제기는, 사람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 간사는 소식지 발간을 실무적으로 맡고 있는데, 마감 약속을 잘 안 지키고 마감 직전에 원고를 쓸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물론, 참여연대의 특성상 돌발적인 사건・사고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고정된 스케줄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은 잘 이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통적으로 드러나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편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제제기가 꼭 일의 특성 때문이라고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 간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너그러운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는 참여연대에서 상근을 하면서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에 들어와 보니, 활동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연 등의 개인적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식지를 위해 한 회원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그 회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무슨 시민단체가 이렇게 학연으로 엮여져 있지?” 정 간사 스스로도 이는 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 회원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상근자나 임원, 기존 회원들의 추천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대부분이 주로 학연 등 개인적 인맥으로 엮여있는 편이다. 그만큼 참여연대에 참여하는 시민의 범주가 협소한 것이다. 정 간사는 이러한 인맥의 구성은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일반 시민들의 정서에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정희성 간사도 처음 회원으로 가입했을 때 회원활동에도 참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원회원이 되어주셔서 고맙다는 연락 이외에는 무엇을 함께 하자는 연락을 전혀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참여연대에서 상근을 시작하면서 회원들에게 문자를 여러 번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회원들끼리 만나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아직까지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정희성 간사를 비롯해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라 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 자체가 일반 회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일반적으로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대구 참여연대가 일반 회원들의 참여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이지만, 워낙 적은 인원으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원들의 참여를 고려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정 간사의 상황인식이다.

이에 비해, 대구 참여연대 소속이기는 하지만, 동구 주민회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형태로 모임이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정 간사는 그런 모임과 분위기가 아직은 낯설어 긴밀히 결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동구 주민회는 주로 인근 지역 주민들로 모임이 구성되어 있는데, 자신은 결혼도 안하는 등으로 이 분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그리 큰 불만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 함께 일하는 선배들이 전에 자신이 일했던 곳의 그 어느 선배들보다도 긍정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정 간사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 간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선배들이 존경스러운데, 선배들 하는 일을 아직 전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자신도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자신에게는 아직 그런 다양한 일들을 맡기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이 일 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4.

  30대 후반을 넘어선 선배들로부터 그 경험이나 정보를 들을 때면 그것들이 새롭고 즐거울 때도 있다. 정 간사는 이러한 선배들의 운동역사에 대해 일정 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운동, 시민운동과 무관하게 살아온 자신으로서는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잘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고 그래서 편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들은 정 간사에게 동료라기보다는 어른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정 간사는 선배들로부터 무조건 배우려고만 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운동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해왔던 것에 집착하거나 그 과정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부담이고, 이에 집착하면 자신이 행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는 선배들과 인식의 차이로 갈등이 발생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이 분들이 일반 시민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선배들은 이제 갓 입문한 나의 의견보다는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 간사는 학생때부터 아르바이트 등 여러 기업문화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데, 다른 직장보다 이 곳에서는 선배와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자신에게 의견진술의 기회가 훨씬 많이 제공되는 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관성에 젖는 것이다. 사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려는 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것보다는 자기의 지나간 경험을 더욱 중요시 하는 순간 관성에 젖어들기 쉽다. 그 순간 이 사람의 운동은 그 효용을 잃게 된다. 그런 점에서도 정희성 간사에게 장점이 발견된다.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 시민운동을 할 생각이지만, 현재 일하는 단체에서만 계속 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럴 경우 자신이 타성에 젖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5.

  자기와 다른 삶의 역사와 경험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 지내는 것이 답답하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은 있단다. 얼마 전 대구의 다른 단체에서 일하는 비슷한 또래의 간사를 만났을 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와는 다른 반가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과는 아무래도 말이 더 잘 통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 간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음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도 이와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워크숍 등을 통해 또래의 사람들과 만나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을 한답시고 일방적으로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쌍방향 소통이 좋고, 강의를 하더라도 일반적인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을 재미있고 쉽게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한다. 지난 해 초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들의 평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욕구는 정 간사 개인의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면 외부에서 워크숍 또는 교육 등이 있다는 홍보는 잘 접하고 있는 편인가? 다행히 대구참여연대에서는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단체 공식 이메일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외부의 토론회 등에도 아직은 사무처장이 자기를 챙겨서 데리고 다니는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기가 외부에서 이메일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6.

  이음에 대해서는 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 모임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 블로그에도 몇 번 들어와 본적이 있다고 한다. 비록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좋고 시민들로부터 운동을 출발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단다. 정확하게 본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50대 이상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이다.

이런, 나도 이제 50대가 다 되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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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주민자치센터박람회' 하는 거 아시죠?
이번주 9-11일, 시흥 일대에서 열립니다.
이 세션 중에 하나로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전략을 위한 풀뿌리들의 역할"이란 주제로
주민자치센터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풀뿌리단체 활동가들과
현재 고민들, 쟁점들, 전략 등등을 자유롭게 토론하고자 합니다.

장소가 좀 복잡한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커뮤니티 포럼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전략을 위한 풀뿌리들의 역할”

•사회: 김일식 YMCA 사무총장

•발제: 최봉익(좋은동네시민대학, 공동체 모닥 대표)

❙일시: 2008년 10월 9일 오후8시~10시

❙장소: 대교연수원(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305-3, TEL 031-3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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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월간 자치행정 2007년 10월호에 실은 원고입니다.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실상과 과제③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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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자치를 위한 노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치’의 개념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 자치는 “스스로 다스림”이라 정의된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는, 첫 번째 연재에서 정의 내렸듯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시민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더불어, 풀뿌리라는 말이 “근본적 원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풀뿌리 자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는 대의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간접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매우 가깝다.

그렇다면, 풀뿌리 자치의 강조는 직접 민주주의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인가? 얼핏 생각해 봐도 현대 사회, 특히 산업화된 도시지역과 같이 이웃 간에도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이해를 갖고 살아가는 지역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가능해 보이지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들 대의제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다면 주민참여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외형적으로는 대부분의 주민참여제도를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참여제도만으로 자치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는 없다. 자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 실천적 의미에서의 자치는 과연 어떠한 형태를 지칭하는가? 그에 관한 본격적 논쟁과 설명을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치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 지향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풀뿌리 자치는 정태적인 개념이기보다는 현실의 조건들을 자치라는 이념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가려는 ‘운동(運動)’, 동태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치의 주체가 정치권력이나 행정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풀뿌리 자치는 일반 시민들이 벌이는 풀뿌리 자치‘운동’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풀뿌리 자치가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자치를 현실태에서 육성하고 강화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은 이미 지역사회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론,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에 모두 풀뿌리 자치운동이라는 위상과 격(格)을 부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풀뿌리 자치운동은 일반 시민사회운동 중에서도 몇 가지 특징적인 활동들을 지칭한다. 그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 특징은 누군가에게 한시적이고 즉자적인 요구나 반대가 아니라, 지역사회 시민들이 스스로 지역사회 발전의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러한 활동이 가시적 성과를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empowerment)하는 과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풀뿌리 자치의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민간의 자발적 노력으로 진행되어 왔다. 널리 잘 알려진 유명한 사례로는, 대구 삼덕동에서는 주택가의 주차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담장을 허물면서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례는 단순히 담장을 허물면서 주차문제를 해결했다는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 사례가 보다 주목받을 필요가 있는 것은 담장을 허문 공간에 주민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들 스스로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의 대안을 만들었다는 것과 더불어, 그 활동의 성공으로 인해 이에 참여한 주민들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즉, 주민들의 참여역량이 강화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는 지속적인 지역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형성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서울시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적 활동을 벌이다 점차로 지역사회 저소득층 자녀들의 문제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에 이들은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자비를 모아서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이들의 욕구를 조사하여 행정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공부방을 건립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현재는 주민자치센터의 공간을 활용하여 또 다른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경기도 과천시 주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설립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지리산권에서는 지리산을 보호하고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주민들이 모여 공동학습을 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공동육아협동조합이나 대안학교, 보육시설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활동, 지역사회의 자원들을 모아 지역복지활동을 전개하는 다양한 사례들,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전개하는 사례 등등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있어 행정의 지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서울 은평구 갈곡리 마을과 강북구 미아동 주민들이 쓰레기 적환장으로 방치된 어린이 놀이터를 스스로 개선하여 어린이들의 놀이공간과 지역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관할 구청은 초기에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쓰레기 적환장의 이전 문제는 행정의 협조 없이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였기에 주민들은 담당 공무원과 구청장을 만나는 등으로 노력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에 주민들이 한 편으로는 행정에 항의를 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 자구적으로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행정은 뒤늦게 쓰레기 적환장 이전문제와 개선비용 일부를 부담하였다. 이 정도의 지원으로도 주민들은 충분했다. 결국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린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데 성공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공간을 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은 주민들을 고무시켜, 또 다른 활동을 모색하도록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 유럽의 풀뿌리운동 사례를 탐방하고 돌아온 여성단체 실무자들이 유럽의 ‘돌봄과 나눔’ 활동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풀뿌리 자치운동 활동가들은 그 정도의 활동 사례는 우리에게서도 많이 발견된다는 자부심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먼 거리를 비싼 돈을 들여가며 모범사례라고 조사한 데에서는 우리와 차별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민간의 이러한 자발적이고 대안적인 활동에 대한 행정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유럽의 사례들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에 대해 행정이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에서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공간을 제공하는 등 행・재정적 지원을 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들의 활동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실정은 열악하다. 물론, 우리의 행정도 외형적으로는 시민들의 참여와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높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자신들의 업무라 여기지 않는 경향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 그것도 외형적인 성장이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권한의 배분을 통한 시민들의 실제적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시민사회가 성숙해 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또 다른 의미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시민들의 참여를 집단이기주의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행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데에 지원하고, 이들의 활동에 적절한 권한과 책임을 분배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정 시민들의 참여가 공적인 성격을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믿음직한 시민들을 조직하고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시민사회와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준비되지 않았으니 아무런 권한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10년 후에도 똑같은 이유로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풀뿌리 자치는 우리 사회의 풀뿌리들이 자치의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밟아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이 바로 지역사회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길이며, 진정한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길이다. 더구나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면, 성가신 존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보듬어 안는 것이 행정의 진정한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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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어리석은 사람도 머무르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산이 있다. 가수 안치환은 그 산에 가려면 온몸을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의 마음으로 올라야 한다고 노래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그 산에서 투쟁했고 죽었으며 다시 존재했다.
 
지리산, 그곳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특별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지리산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겹기만 하다. 사람들은 떠나고 주머니 사정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은 결국 돈 있고 권력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리산권 지역의 문제들이 좌지우지되면서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생명과 평화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고심했다. 지난 1997년 전국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키면서 결국 백지화까지 이끌어낸 지리산댐 건설 반대운동의 경험이 이들에겐 있었다. 당시 중심활동을 펼쳤던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이 지난 2002년 이름을 바꾼 지리산생명연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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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지리산문화제에서 협동화를 그리는 어린이들

또한 지난 2005년 문화관광부의 지리산권 관광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조직된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의 소속 단체들도 지역운동, 주민자치운동을 하기 위해서 지역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의 역량을 키우자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개발반대가 시작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제5회 풀뿌리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씨상을 받은 지리산권 공동학습 프로그램 ‘지리산희망씨앗찾기 I’이다.

주민들도 떠난 지역에서 주민자치를 하려면 어떤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서로 던지던 중 그전까지 지리산권 지역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고 해봐야 농민강연이나 노동자강연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최화연 지리산생명연대 총무부장은 “일회성이거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심도 깊은 공동체적 학습이 필요하다는 데에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커리큘럼과 학습 방식이 문제였다. 주최 측에서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보다는 지역에 정말 필요한 구체적 사안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다.

이번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한 전국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10여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커리큘럼이 짜여졌다.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의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광범위한 지리산권을 아우르면서 지역 활동가와 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에만 함몰되는 게 아니라 생각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직접 참여하기”

총 6회의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70~80명 정도였고, 매번 강의를 빠지지 않고 열정을 보인 사람들은 20명 정도였다. 풀뿌리운동, 지방자치단체의 발전계획 분석, 지리산권관광개발계획, 지방자치단체 예산분석, 주민조직화 방법, 주민자치 사례연구 등 실무적인 내용의 강의들이었다.

올해 진행한 ‘지리산희망씨앗찾기 II’는 이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직접 대안을 모색해 실천가능한 사업을 도모하고 현재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는 사업이었다. 구례의 사포마을, 남원 생협의 직장인모임, 구례북중학교 등에서 작게 나마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주민자치와 풀뿌리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사업을 진행할 때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구체적인 지역에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내용들을 참고해 지난 9월부터는 하동지역에서만 2차 교육이 진행됐다. 

협의회는 느슨한 사안별 연대를 지향한다. 향후 ‘지리산대안포럼’의 형태로 나아갈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의회가 딱딱한 사업만 진행해온 것은 아니다. 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부터 지리산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1회는 지난해 11월 구례의 산동 들녘에서 진행됐다. 주민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현수막을 꾸민 순수한 주민잔치였다.

올해는 지난 8월 벚꽃길로 유명한 섬진강변 19호선 국도에서 열렸다. 하동군에서 19호선 국도를 확장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 뜻을 담은 행사였다. 매회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순수하게 주민들이 만드는 축제를 즐겼다.  

주민축제의 장 마련

계속해서 지리산 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세력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고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상 지리산은 계속해서 어머니 산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소통의 장으로, 민족의 성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구례=전상희 기자 sang2@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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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담장' 허물어 공동체를 만들다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시민운동을 조금이라도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풀뿌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흔히 풀뿌리 운동은 ‘지역’운동이라는 범주로 이해된다. 때문에 특정한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부분’운동을 풀뿌리 운동에서 간과하기 십상이다. 

올해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꽃상을 받은 대구 성서공동체 FM의 ‘담장 허무는 엄마들’들은 지역보다는 부분에 방점을 둔 사례다. 소출력 방송국의 한 코너로 시작되었던 프로그램을 매개로 장애인 어머니들이 사회에 발언할 수 있게 된 활동이 그것이다.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는 장애아동 부모 전정순 씨의 “담장만 허무는 게 아니고 진짜 울타리도 넓혔다”는 말처럼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장애인 엄마들에게 마이크를”

이경희 성서공동체FM PD는 “‘엄마들에게 마이크를 주자’고 방송을 기획했다”며 “처음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도 알아서, 대본도 다 알아서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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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동체FM 진행자 양금자 씨가 '담장허무는 엄마들'을 진행하고 있다.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은 지난 2005년 7월 처음 계획됐다. 9월부터 본격적인 기획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장애 아이와 함께해야 하는 엄마들의 환경에서 방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시작했다. 배경음악을 담당하는 엄마, 대본을 구성하는 엄마, 방송 CD를 배포하는 엄마 등으로 역할을 세분화해 방송을 준비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십시일반으로 방송이 본 모습을 갖췄다. 이렇게 15분 방송분으로 시작한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은 이후 37분, 60분으로 방송분량을 늘렸다.

현재 방송은 매월 넷째주 금요일 전파를 탄다. 프로그램에선 장애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육아일기’, 장애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교원일기’, 장애인 보육 관련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초대석’ 등으로 구성된다. 

드러냄’을 시작하다 

방송을 시작하며 엄마들의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경희 PD는 “방송을 계속하면서 어둡기만 하고 자신이 없었던 엄마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며 “피해의식과 편견의 굴레라는 담장을 허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엄마들이 자녀가 장애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행동이다.

“장애가 엄마의 죄인 양 미안하고, 미안해서 한 시도 아이를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엄마들이었
지만 아파서 감추고, 드러내면 행여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엄마의 품속에 꼬옥 숨겨왔던 아이들을 이제 담장 밖 세상으로 내어놓기 시작했다.” 방송 기획을 담당하는 전정순 씨의 말이다.

장애자녀의 엄마들은 아이를 드러냈을 때 자신의 아이와 다른 아이가 피해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 혹은 남편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염려 등 때문에 아이를 자신의 품에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방송을 만들어가는 엄마들은 장애아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 아이’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꽁꽁 감추기만 할 때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은 컸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그들의 활동을 정리한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이란 단행본에 아이와 엄마의 사진을 게재할 정도로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제도 환경변화 목소리를”

방송을 하면서도 엄마들이 늘 하는 얘기는 ‘힘든데 그만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한두 달 하다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송 진행을 맡고 있는 양금자 씨는 “처음에는 힘들면 쉬자고 했는데 후원해 주신 분들에 대해서 책임이 느껴졌다”며 “병원의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장애인 어머니들의 모임을 방송을 통해 알려나가면서 각 학교에 보조교사를 두도록 하는 등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쪽으로 활동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중앙 일간지나 지역방송 등 언론에서 미담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미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의미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엄마들은 장애인 부모운동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운동은 외부에서 보기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무엇보다 의미있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용훈이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패혈증 감염으로 뇌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인지기능 부분은 다치지 않아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담장초대석’에 지체 장애학생이 편입된 일반학교에 승강기를 설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용훈이가 다니는 시지초등학교에 승강기 설치가 확정됐나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애운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이 아니지만 엄마들은 스스로 교육청을 찾아가고, 언론사를 방문하고, 법조문을 뒤져 문제 해결의 방법을 만든 것이다. 이들의 힘으로 대구지역 특수학교의 교과과정을 학교와 협의 하에 바꾸기도 했다.

지난 4월 그동안 방송내용을 정리한 ‘담장 허무는 엄마들’ 단행본을 출간하고 엄마들은 또다른 변화를 경험한다. ‘사적으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속적인 방송제작물 CD제작 등을 통해 장애부모운동을 지역사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벽과 대화는 계속된다

처음부터 굳이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이들의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도 아이의 예쁜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2년 전엔 상상 못했던 일이다.

드러냄과 나눔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극복해 가는 엄마들은 오늘도 방송을 만들고 있다. 
 
대구=심재훈 기자 cyclo201@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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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인맥을 조직하라"
'이음' 활동가 집담회 [2] _ 중견활동가 역할은 무엇일까

전상희
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1266

“공자는 40살이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무혹(無惑)의 나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유혹이 없어서 걱정이다.”

지난 1993년부터 지역운동을 해온 신윤관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은 일이나 조직, 사람에게서 유혹을 느끼지 못한다며 중견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시민운동을 한 지 어느덧 15년, 강산이 한 번 변할 때 쯤 중책을 맡게 됐고 강산은 한 번 더 변하고 있다. 이들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해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까.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지난 8일 ‘조직의 중책을 두루 거친 중견 활동가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란 주제로 두 번째 활동가 집담회를 열었다.

박인규 희망을만드는사람들 정책위원장, 김기연 미래를여는아이들 사무국장,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신윤관 사무처장 등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활동가들이 참가해 중견 활동가들만의 무게 있는 고민을 나눴다.

이 날 사회를 맡은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은 “현장에서 정신없이 뛰다보니 어느새 40대가 되었는데 거처를 옮기려고 하면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후배들을 위해 내가 움직여줘야 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중견 활동가들의 고민이라 생각하고 마련한 자리이니 경험을 바탕으로 편하게 이야기하자”며 집담회를 시작했다.


김상택 기자 /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지난 8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터놓고 얘기합시다'라는 주제로 두번째 활동가 집담회를 갖고 '중견 활동가들의 고민 엿듣기'를 진행했다.

‘낀 세대’ 중견활동가

“1993 년부터 시민운동을 시작했는데 10년쯤 되니까 일이 재미없어졌다. 무작정 1년을 쉬면서 다른 일을 좀 알아볼까 했더니 운동판이란 틀 밖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시 복귀하고서는 역시 일상에 쫓기고 있다. 주변에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데 나도 동의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고 고민하고 있는데 선택을 할 때 경제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결정하기가 더 힘들다. 또 후배들에게도 대안적 삶의 모습을 보여줘서 꿈과 희망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송재봉 사무처장이 말문을 열었다.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2000년까지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총선 이후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바꾼 경우다. “4년 정도 하고 나니 현재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정리할 필요를 느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3년에 대학에서 ‘짤렸기’ 때문에 다시 복학해서 작년에 마치고 올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엔 거처를 옮기는 것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 역할을 다한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좀 더 내공을 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가란 문제가 더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천안에서 지역아동복지운동을 하고 있는 김기연 사무국장은 “지역마다 다른 것 같다. 천안에는 정말 사람이 없어서 내 일을 물려주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며 말을 꺼냈다. “일 하면서 두 번 출산했는데 두 번째는 쌍둥이였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일을 병행한다는 게 솔직히 어렵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동복지인데 정작 우리 아이들의 복지문제는 심각한 지경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개인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 스스로 돌봄 없다”

10년 이상 시민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겪는 경제적인 문제는 없을까. “떼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입에 풀칠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처음에 뛰어들었다”는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들을 만나게 돼서 아내와 함께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신윤관 사무처장은 ‘일정정도의 빈곤은 또 다른 나의 에너지’라고 말했다. “활동가들 중 절대적 빈곤에 놓인 사람은 없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이 떨어져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일 뿐이다. 내 경우에도 당장 힘든 일이 닥칠 때 도와줄 수 있는 관계망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경제적 문제 보다는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만족 대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신윤관 사무처장은 일상과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나를 충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활동가들은 많은 사업을 벌이면서 정작 자신을 위한 사업을 개발하지 않는다. 일 말고 나의 열정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사업을 계획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다보면 충전이 된다”고 덧붙였다.

중견 활동가로서 짊어져야 하는 후배들과 조직, 지역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도 그들의 어깨를 누른다. 김기연 사무국장은 “봉사활동 오는 대학생들의 경우 예전에는 졸업 후에 찾아오는 사람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게 우리의 활동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고 올 만큼 매력적이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라며 “좋은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활동가로 키우기 위해선 그들의 선택에서 방해가 되는 불안요소들을 조직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신윤관 사무처장은 “내가 끝까지 잘 사는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에게 본이 될 거라 믿고 삶에서, 가정에서, 조직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시민운동이 그렇게 매력 없는 직업이 아니다. 폭발적인 인기가 없을 뿐이지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찾아오곤 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의 경우 워낙 업무가 많기 때문에 지역 활동가들은 단체 걱정하느라 지역 걱정할 시간이 없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선배들이 나서야 한다는 데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후 배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이나 일자리를 갖다 주는 것보다는 그들의 불안요소를 없애주는 게 중요하다. 네가 이 일에 헌신하면 그 외의 문제들은 우리가 지역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돕겠다는 믿음을 줘야한다”고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말했다. 또한 지역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아져서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택 기자 /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개최한 '터놓고 얘기합시다'의 두번째 활동가 집담회 '중견 활동가들의 고민 엿듣기'에서 김기연 미래를여는아이들 사무국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후배 운동가들에 대한 조언

송 재봉 사무처장도 같은 지적을 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지적해내고 거기서 적절한 역할을 할 때 조직과 사람이 모두 성장할 수 있다”며 “각 단체의 중견 활동가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계를 넘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논의가 이어지면서 신윤관 사무처장은 “단체, 지역, 한국을 넘어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란 논의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생기고 있는 ‘두뇌집단’에 대한 강한 비판도 뒤따랐다. “그나마 있던 지역의 인적자원을 데리고 가면 지역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예 두뇌집단을 지역에 먼저 세우고 거기서 긍정적인 선례를 만들어 수도권으로 나갔어야 한다.”

후배의 입장으로 집담회에 참석한 진경아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선배들이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며 “스스로 일을 많이 만들고 책임감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힘들어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규 정책위원장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사명감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경계해야 한다. 나이를 먹으니까 좋은 점은 여유가 생긴다는 것인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비전과 5년, 10년 나가서 100년의 미래까지 내다보고 계획하는 일을 우리 중견 활동가들이 해야 하는데 업무에 치여 그러기가 힘들다. 나뿐 아니라 지역의 활동가들은 초읽기 식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 다들 지쳐있다”는 김기연 사무국장의 고민을 듣고 신윤관 사무처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다들 쉬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 휴식과 놀이를 기획하지 않는다. 다른 일은 그렇게 잘하면서. 몇몇 사람들과 놀고 여행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활동가들의 경우 쉬고 싶어하는 소망을 기획할 여유가 없다. 이런 것을 기획해주는 것도 중견 활동가의 몫이다.”

집담회가 마무리 되어 가면서 역시 오랜 세월동안 이들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긍정적인 생각들이 모여졌다. 박인규 정책위원장은 “우리가 죽을 때쯤이면 평균 수명이 90세 정도일 텐데 우리는 아직 40대다.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욱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세 번 ‘3E’를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3E란 Exercise(운동), English(영어공부), Equality(나와 단체와 지역의 형평성을 위한 고민)이다”며 스스로 하고 있는 실천을 나눴다.

운동의 경험은 축적된다

송 재봉 사무처장도 “얘기를 듣고 보니 너무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듯하다. 난 아직 일이 재밌고 현장에 있고 싶다. 단지 우리가 해온 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시간과 업무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이 지역 사회 내에서 단순히 비판적 견제 세력으로만 머무르는 것을 뛰어넘어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나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내가 커야 후배도 큰다”고 말했다.

“우리 가 작심하면 못할 일이 없다”며 신윤관 사무처장도 “우리운동의 희망은 향후 중견 활동가들이 어떤 몫을 해내느냐에 달렸다. 오늘 답을 찾진 못했지만 다른 분들의 얘기를 힘입어 지역에서 더 역동적으로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호 소장은 “중견 활동가들의 경험과 인맥 등은 어떤 정보보다 소중하다. 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조직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시민운동과 지역운동에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집담회를 마무리했다.

전상희 기자 sang2@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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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중책, 쉽지 않더군요"
'이음' 활동가 집담회 [1] _ 조직 중책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

전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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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의 활동가들은 다들 ‘트랜스포머’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어떤 역할로든 변신이 가능하다. 기획, 홍보는 물론 진행과 허드렛일까지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단체 활동가라면 더욱 자주 트랜스포머가 돼야 한다. 지역 단체들의 사무국 상근자는 대부분 2~5명 안팎이다 보니 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책임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그렇게 트랜스포머가 돼 지역에서 정신없이 활동하다보면 조직이 큰 단체에 비해 더 빠르게 직책이 높아진다. 더 전문적이고 더 바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트랜스포머가 돼 버리는 것이다.

"트랜스포머가 돼야 한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이들을 주목했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새로운 트랜스포머가 돼야 했던 지역 활동가들의 고민을 듣는 자리가 지난 1일 마련됐다. ‘새로 조직의 중책을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집담회에는 김승호 서울 광진주민연대 사무처장, 오승현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사무국장, 장혜진 천안시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김경민 안산경실련 사무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집담회를 기획한 김현 이음 연구원은 “작은 규모의 지역 단체들이다 보니 직책이 높아지면서 하게 된 고민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들의 얘기가 현재 지역단체들이 갖고 있는 이 시대의 고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형식을 취하되 술자리에서 음성적으로가 아닌 공론장을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김상택 기자 /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지난 1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새로 조직의 중책을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무엇인가?'란 주제로 활동가 집담회를 열었다.

제일 먼저 공유된 고민은 역시 ‘소통의 문제’였다. 장혜진 원장은 “원장이 되면서 얻게 되는 정보는 많아지는데 그것을 잘 소화해 전달하는 게 너무 어렵다.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을 안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보니 소통의 문제가 자꾸 제기된다”고 말했다.

김승호 사무처장도 말을 거든다. “중간에서 몇 개의 부설기관에 서로의 얘기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 같이 모이면 서로 전혀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다. 내 잘못인 것 같아 힘들고 괴로워하다가 구성원들에게 솔직히 말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면서 도와주셨다. 내가 못하는 역할은 잘 하는 사람에게 업무를 넘기면서 사무처장의 역할을 수정해갔다.”

고민은 이어졌다. “우리 단체는 위원회가 굉장히 많아 회의도 많고 논의되는 내용도 많다. 다들 사무국장이 정리해서 조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계획했던 사무국장의 모습은 그런 게 아니었다. 원래 본부에서 일하다가 지역운동이 하고 싶어서 갔는데 연차가 있어서 바로 사무국장이 됐다. 하지만 사무국장도 간사랑 똑같이 일해야 한다. 중간리더 역할에 대해 고민했는데 사실 중간리더가 뭔지 모르겠다. 리더십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오승현 사무국장이 털어놨다.

자신의 어려움 솔직히 토로를

안산경실련의 경우엔 다른 단체와 약간 다른 성격의 고민이 있었다. “안산경실련은 네트워크가 없는 게 고민이다. 사무국에서 하는 활동이 안산경실련의 전부다. 다른 단체들의 경우 다자간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는데 우린 다자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라는 게 고민이다”라고 김경민 사무국장은 말했다.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고민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특히 사무국장의 경우 재정을 책임지는 상황이라 활동가들의 임금은 물론 자신의 임금까지 스스로 단체 살림에 맞게 조정을 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다.

오승현 사무국장은 “회비중심의 재정운영이 해답이지만 쉽지 않다. 회원확대를 위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단체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텐데 일상에 쫓겨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재정형편을 알고 있는데다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말은 자신의 월급을 올려달라는 말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운영위 회의 때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오승현 사무국장은 스스로 연차를 깎기도 했다. 운영위원들이 선례가 되면 후임에게 영향을 줘 좋지 않다고 말렸지만 마이너스 되는 살림을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오승현 사무국장의 말이다.

여러 학교나 단체에서 진행하는 리더십 교육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오승현 사무국장은 “여성리더십 교육을 들었는데 배우고 돌아와서 우리 단체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단체 활동가들이 같이 교육을 받고 자기 단체에 맞게 조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은 개인적으로 두 번의 중견활동가 리더십 교육을 받았지만 함께 가는 소통과 연대로서의 리더십 보다는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리더십 교육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내부적인 소통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는 장혜진 원장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했다. “작업장 선생님들과 일대일로 만나 대화를 했다.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꺼내 놓다보면 우리 업무에 대해서도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사적으로 친해지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많이 편해졌다.”

그러자 김승호 사무처장의 고백이 이어졌다. “아직도 카리스마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개인적인 만남을 시도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전체 구성원들이 자주 모여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소통을 지향한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도와줘 어려움을 많이 넘었다.” 두 사람의 발언은 다른 유형의 리더십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참가자들이 입을 모았다.


김상택 기자 / 지난 1일 열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활동가 집담회에서 김승호 광진주민연대 사무처장(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소통 확대를 위한 상상력

김경민 사무국장이 안산경실련의 흥미로운 사례를 전했다. “운영위원들 및 몇몇 회원들과 안산경실련을 후원하는 계모임을 조직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데 월례회의보다 더 잘 된다. 업무 얘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는 얘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목돈도 마련하고 친목도 다지고 신뢰도도 높여서 좋은 것 같다.” 계모임 운영에 대한 자세한 질문이 뒤이었고 참가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급박한 재정적인 문제와 친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음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음 번 집담회의 주제와도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다. 현재 사무국장, 사무처장의 자리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이호 소장이 묻자 의외의 대답들이 나왔다.

김승호 사무처장은 “사무처장을 할 사람이 생기면 자신은 그냥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싶다”며 “굳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 보다는 내가 있는 지역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도 “사회단체가 원래 기존 회사와 다르니까 순환 구조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김승호 사무처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승현 사무국장 역시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들 수 있다면 간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아무래도 회원들이 기혼여성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비혼이다 보니까 소통의 벽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일반 간사라면 몰라도 계속 비혼인 채로 사무국장을 하게 되면 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호 소장은 아직은 한국의 조직문화상 사무국장이 다시 간사로 돌아가는 부분에 대해선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혜진 원장은 “밤샘 회의를 할 때는 내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될 때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며 “또 장애아를 둔 부모와 얘기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소통의 벽을 느낄 때가 많다”고 우려를 표했다.

재생산 고민 만만치 않다

여전히 중요한 숙제로 남은 부분은 활동가 재생산과 관련해서였다. 광진주민연대의 경우 근처에 있는 대학의 동아리들을 섭외해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연스레 학생들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고 김승호 사무처장은 말했다.

김경민 사무국장은 “학교에 직접 단체의 이름으로 들어가 시민사회를 알리고 NGO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며 “지금 활동가들은 재생산에 대해 고민할 여력이 없으니 우선은 지역사회 인재 발굴을 위해 재단이나 큰 단체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2시간 반 동안 뜨겁게 진행된 이번 집담회에 대한 감상을 밝혔다. 고민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생긴 것 같다며 이런 성격의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된 주제의 집담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제안도 있었다.

다음 집담회는 ‘조직의 중책을 두루 거친 중견 활동가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란 주제로 8일 열린다.

전상희 기자 sang2@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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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풍물, 지역민과 함께 만끽해요"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피부색과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용인 다문화 축제장에 들어서는 시민들이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선언문을 낭독하고 손도장을 찍는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한국으로 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 위한 준비는 이제 끝났다. 참가자들이 인도네시아 출신의 마리아 린니 씨와 정답게 인사를 나눈 후 축제장으로 들어선다.
 
2007 용인다문화축제에 참가한 어린이와 부모가 축제장에 들어서서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아시아는 우리, 우리는 아시아’라는 주제로 지난달 9일 경기도 용인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용인다문화축제에는 아시아 각국의 전통놀이와 음식을 체험하고, 각국의 전통공연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됐다.

우리는 아시아다

종합운동장 주변으로 네팔, 몽골,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9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상설부스가 마련됐다. 각 나라의 전통놀이와 전통 의복, 그리고 인형 등은 9개 나라 이주민 공동체 사람들이 직접 준비한 것들이다.

 참가자들은 안내 팜플렛을 들고 각 나라 문화체험부스로 가서 ‘미션’을 수행한 뒤 도장을 받아오면 예쁜 기념품이 주어진다. 미션은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네팔 인사말인 ‘나마스떼’를 그 나라 글자로 써보기, ‘앗쌀람 알라이꿈’이라 하면 ‘와알라이 꿈 쌀람’이라 대답하는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식으로 인사해보기, 스리랑카 ‘코끼리눈 찾기’ 게임, 인도네시아 ‘까멘’, 베트남의 ‘제기차기’ 등의 전통놀이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다.

알까기’ 놀이와 비슷한 까멘을 익힌 아이들이 인도네시아 도우미 아저씨들과 시합에 나섰다. 재밌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재선(도원초등 5학년)군이 만족스럽다는 듯 대답한다. “네! 재밌어요.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아시아 여러 나라의 놀이나 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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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각 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2007 용인다문화축제가 지난달 9일 용인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인도네시아 전통놀이인 '까멘'을 즐기는 아이들(사진=위)과 스리랑카 전통음식인 '로띠(밀가루빵)'를 주문하는 용인지역 여성들(사진=아래)

종합운동장 밖에는 각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먹거리 체험장이 마련됐다. 각 나라 이주민 공동체 사람들이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음식의 이름이나 만드는 법, 그리고 어떤 때 이 음식을 즐겨 먹는 지 등 음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문도 정성스레 꾸며놓아 아시아 음식박람회를 연상케 했다.

3년 전부터 용인에서 인쇄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스리랑카 출신의 너렌드러 더갈(31)씨가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또박또박 적어주며 이번 행사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한국 사람들도 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어요.”  

각국 문화가 모인 한판 축제

종합운동장 중앙에 마련된 무대가 대중가요 노랫가락으로 떠들썩하다. 이주민들의 한국어 노래자랑에 이어 아시아 전통문화 한마당에서는 네팔의 전통춤 ‘학삐레’, 방글라데시 전통악기 연주와 노래, 필리핀 전통춤 ‘강사’, 몽골의 전통노래 ‘고향의 노래’, 인도네시아 마까사르 지역 전통춤 ‘보사라’, 스리랑카 전통춤 ‘캔디앤&기미씨씨라’, 한국 전통 사물놀이 ‘울림굿’ 등이 차례로 펼쳐졌다.
 
공연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 낯선 이방인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자부심이 충만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용인다문화축제를 다녀간 사람들 모두가 더 이상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아니라 그들을 우팔리 씨, 더갈 씨, 덜진 씨라 이름을 불러 주며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하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인터뷰- 김소령 이주노동자인권센터 국장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기”

다문화축제장 한켠에서 행사 진행에 여념이 없는 김소령 국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주노동자 노래자랑이 진행되는 동안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다문화운동’의 성과와 전망을 물었다./편집자

-다문화축제를 열게 된 계기는.

▲지난 2003년 센터 자체적으로 이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축제를 용인에서 처음으로 열었고, 이듬해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축제를 진행했다. 점차 센터 활동가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이주민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지역 내 다문화를 전하고 지역주민과 이주민이 만나는 ‘아시아의 날’ 행사나 ‘다문화이해교육’으로 변화해 나갔다. 올해 초 용인에 있는 용인이주민쉼터와 논의를 통해 14개 시민사회단체와 기관이 참여하는 ‘용인다문화축제기획위원회’를 꾸리고 축제를 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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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활동으로 출발했다. 다문화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애초에는 상담을 통한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등 이주노동자들의 당면한 문제 해결이 중심이었지만 지난 10여 년간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상담을 통해 사업주를 포함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다소 향상됐다. 국내 거주 이주민이 100만 명에 달하는 지금 노동권에 제한하여 개선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주민에 대한 이해, 인식을 전환해가는 운동을 하고자 했다. 다문화 이해 확산을 위한 활동은 한국인 활동가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공동체와 함께 진행해야 가능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다문화운동 중 ‘이름을 불러요’는 상징성이 큰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소식지의 한 코너로 ‘이름을 불러요’에 문제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그러다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수렌드라 씨, 우팔리 씨 등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만나가는 것이 센터 전망을 실현하는 기본 철학이라 생각하고 소식지 이름 자체를 ‘이름을 불러요’로 바꾸었고, 이제 센터 이름도 ‘이름을 불러요’로 바꾸기로 했다. 센터 이름을 바꾸는 시점을 계기로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서로의 고유한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며 만나가자는 캠페인을 열어가고 싶다.

-요즘 매스컴에서도 ‘다문화’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변화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여러 정책들이 발표되고 기금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다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정책의 대부분이 한국사회에 이주민을 적응시키기 위한 사업들이다. 사실 한국사회 내에 다문화와 관련되어 깊이 있는 연구가 많지 않고,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오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 또한 다문화 관련 정책은 대체로 국제결혼가정을 대상으로 한다. 이주노동자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 있다. 그 기간이 몇 년이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것은 이주민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문화 연구가 활성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한국사회가 어떤 방식의 다문화사회로 열려져야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정책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정부 정책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미등록노동자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이 시급하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단속으로 일관해왔으나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일시적으로 합법화했던 시기 외에는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줄어들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단속을 통해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단속과정에서 발생되는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도 더 이상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이미 그동안 단속과정에서 다치고 사망한 이주노동자, 여수출입국 화재로 인한 사망사건 등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충분히 벌어졌다. 미등록노동자를 우선 합법화하여 고용허가제 제도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지속되는 불법적인 송출수수료 문제 해결과 함께 장기적으로 3년 단기 로테이션 정책의 변화, 노동허가제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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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과 공무원에게 주어진 예산편성권을 일반주민이 참여해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주민직접참여제도로서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남부 항구도시 포르투알레그레에서 1989년 처음시행되었고 브라질 전역으로 확산되어 100여 곳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현재 우루과이,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지역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캐나다, 프랑스, 벨기에, 호주, 영국의 일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04년 6월 광주광역시 북구를 시작으로 현재 50여개 지역에서 조례를 제정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을 위해 아름다운재단에서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출처 : 함께하는 시민행동 http://www.action.or.kr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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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브라질의 캄파나스시에서 진행된 참여예산제의 홍보동영상을 편집하여 올립니다.

참여예산제란 시 예산 가운데 공공투자부문에 대한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실험으로 평가받는 주민참여예산제는 브라질의 남부 항구도시 포르투알레그레에서 1989년 처음시행되었고 브라질 전역으로 확산되어 6000 여 곳 중 100여 곳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현재 우루과이,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지역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캐나다, 프랑스, 벨기에, 호주, 영국의 일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04년 6월 광주광역시 북구를 시작으로 10여개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홍보비디오 제작을 위해 테잎을 제공해주신 나효우(아시아센터 운영위원장)님 더빙을 위해 여러사람의 목소리로 깜짝놀라게 해주신 김래환, 전소운님 그리고 번역을 위해 공부를 멀리하고 애써준 정혜진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역에서 주민참여예산제 도입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께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 출처 : 함께하는 시민행동 http://www.action.or.kr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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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자치발전연구원 2004년 4월호에 실린 글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로부터 옮겨온 것입니다.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의 개혁

하승수(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

1.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제도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제도이다. 문제는 모든 국민이 직접 국가의 정치결정과정에 참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초기 그리이스에서는 모든 시민이 직접 정치적 결정과정에 참여했다지만, 오늘날의 인구규모로 볼 때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들로 하여금 정치적 결정을 대리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를 대의민주주의라고 한다.

  문제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국민의 뜻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국민의 뜻과는 상반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 이를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대표자를 어떤 방법에 의해 선출하고,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문제는 결국 선거제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단 선출된 대표자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권력기관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상호통제하는 방식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의미에서의 부분적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시민으로 하여금 직접 대표자들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의 영역에서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등의 주민직접 참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럼으로써 지방자치 영역에서부터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까지도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를 늘리느냐, 지역구 의석을 늘리느냐, 지역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대의민주주의를 취하고 있는 국가에서 선거제도만큼 민감한 문제도 없는 것같다.

  가장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처럼 1등만이 당선되는 선거제도에서, 1등을 찍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들의 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비례대표제도조차 취하고 있지 않은 미국에서 소수파에 속하는 유권자들은 전혀 자신들의 대표를 국회에 진출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지역구를 임의로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하는가에 따라 당락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경우에 부분적으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비례대표의 비중이 전체 국회의원 수의 20%남짓한 수준이다(현재 국회의원 의석 273석 중에서 비례대표는 46석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 의석수의 80%에 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등만이 당선되므로, 소수파 유권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 또한 이런 선거제도 하에서는 정당별 득표율과 실제 의석비율간에는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전국적으로 10%나 20%의 평균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지역구에서는 단 1석도 당선되지 못할 수도 있다. 1등 만이 당선되는 지역구 선거에서 골고루 얻은 10%나 20%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당은 10% 내지 20%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10%나 20%의 의석은 획득하여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대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정치가 정당정치이고, 한국의 현실에서도 정당의 공천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처럼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과 의석비율 간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리고 이처럼 1등당선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들이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여 투표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세력이나 소수파 정치세력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된다. 반면 독일의 경우처럼 기본적으로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취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신생정치세력의 원내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독일의 경우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의원의 절반은 소선거구의 지역구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당명부에 의해 선출한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명부에 각각 투표(1인2표제)한다. 소선거구(지역구)에서의 당선자결정은 단순다수제에 의해 최고득표자가 당선된다. 그러나 정당명부에 의한 당선자결정은 전국적으로 집계되어 각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각 정당의 소선거구 당선자를 포함한 전체 의석수가 비례배분된다. 이때 유효투표 5%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정당은 정당명부 의석배분에서 제외된다(5% 봉쇄조항).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5%의 진입장벽만 넘으면 의회진입이 가능하다. 물론 5% 진입장벽 자체도 낮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5%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의석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생정당의 활동력을 높이고 유권자들의 ‘사표방지심리’도 줄일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신생정당이던 독일 녹색당은 1983년 연방의회선거에서 5.6%의 득표율로 27명의 연방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다.

  또한 1등 당선의 소선거구제는 여성의 정치진출에 불리한 조건이다. 1등 당선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어렵고, 대부분 여성후보자들은 자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 룰(rule)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민주주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례대표 확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장 비례대표가 확대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가야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보다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 정책대결이 가능하고 여성들이나 신생정치세력의 진출이 보다 쉬운 선거제도로 나아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지방자치 선거제도의 문제점

  그러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제도에는 문제점이 없는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에 정당공천제를 유지할 것인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생활자치를 실현해야 하므로, 중앙정치로부터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정당공천을 법률로써 배제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오히려 그것이 생활정치를 위한 정책선거보다는 자금력이나 이미지에 의한 선거로 흐르지는 않을 지에 대한 염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방의원 선거제도도 논의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를 취하면서 1등당선자를 의원으로 뽑는 지방의원 선거제도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에 읍ㆍ면ㆍ동을 기본단위로 하여 선출하다보니,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내에서도 유권자들이 던지는 1표의 가치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도ㆍ농복합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도.농복합지역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신규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지역에 전체 인구의 1/3 내지 1/4 정도가 모여사는데, 그 지역에서 배출되는 의원의 의석비율은 1/10도 안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도시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1표는 농촌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1표보다 1/2 내지 1/3의 가치도 안되는 것이다. 또한 유권자수가 1만명이 넘는 읍지역에서도 의원은 1명만 선출되고, 유권자수가 2천명도 안되는 면지역에서도 의원은 1명이 선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되면 읍지역 유권자의 1표가 가지는 가치는 면지역 유권자의 1표가 가지는 가치의 1/5 내지 1/10에 불과하게 된다. 이처럼 현행 지방의원 선거구 제도는 국회의원 선거보다도 더 투표가치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기초의원의 경우에 지역(읍ㆍ면ㆍ동) 대표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의원이 하는 일은 읍ㆍ면ㆍ동 단위의 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이다. 읍ㆍ면ㆍ동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옴부즈맨 같은 제도를 둘 것이지 지방의회와 같은 기구를 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를 하면서 지방의회라는 심의ㆍ의결기구를 둔 것은 그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법(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고, 집행부를 견제ㆍ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기초의원들로 하여금, 시ㆍ군ㆍ구의원이 아니라 마치 읍ㆍ면ㆍ동의원인 것처럼 행동하게 하고 있다. 기초의원들로서는 다음번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투표권이 있는 자기 지역구(읍ㆍ면ㆍ동)유권자들의 입맛에만 맞게 활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초의원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투표권이 없는 다른 읍ㆍ면ㆍ동 유권자들의 눈은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현상 때문에 지방의회가 정책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방의원들이 민원해결에나 매달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현재 광역의원 선거제도에만 도입되어 있는 비례대표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비례대표로 진출한 광역의원들은 지역구에 매달리지 않고 정책심의에 충실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제 덕분에 원내로 진출한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의정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지방의원들로 하여금 자기 선거구에 매달리지 않게 하는 것이 지방의회 기능 정상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3.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 개혁의 가능성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총선이 끝나고 나면 2006년 지방선거때까지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지가 본격적인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이전에도 지방선거제도를 손보기 위한 논의가 있었지만, 아무런 결론이 내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부활한지 10년이 다되어 가는 지방자치제도를 살리고, 지방분권에 대응한 지방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지방자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방선거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가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풀뿌리 지방자치의 근간을 형성하는 지방의원 선거제도는 현행의 제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극도로 불균형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유권자들의 투표가치를 평등하게 만들어야 하고, 지나치게 소지역대표성을 띠고 있는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소지역대표성을 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회 선거에 있어서도 명부제의 전면도입이나 중ㆍ대선거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광역의원 선거에 있어서만 비례대표제가 부분도입되어 있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독일과 같은 전면적인 명부제의 도입이나 일본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중ㆍ대선거구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방의회가 정책심의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 인사권도 독립시키고 지방의원 유급화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그동안 누누이 지적되어 온 과제들이지만, 여러 가지 장애요소로 인해 실현되지 못해 왔다. 이제 2006년 선거 이전에는 이런 제도적인 보완조치들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또한 풀뿌리 생활자치인 지방자치의 특성상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치조직도 자기 이름으로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local party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정치조직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전국정당이 가진 권력화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지금 한국의 정당제도에서는 정당이 아닌 정치조직은 선거에서 후보를 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생활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는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선거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고 주민자치의 실현이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방분권이 지향하고 있는 ‘분권화되고 민주화된 사회구조’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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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자치 불모지 부산에 희망을
'주민 속으로' 운동이 성과 일궜다


부산의 ‘정상적’인 PK지역정서에서 이 동네에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신빈곤층 지역의 하나로 반송동을 지목해 도시빈민가로 표현하며 동네를 ‘매도’했을 땐 ‘사상’, ‘세대’ 구별 없이 ‘떼거지로’ 항의 전화를 했다.

“늘 부대끼고 사니가 편견을 버리고 생각을 달리한다”

2005년 부산APEC에서 지역이 모두 APEC을 성공기원했을 때 APEC 'NO' 현수막을 내걸고, 남북정상회담까지 하는 상황에서 북녘 수해를 도와야 하지 않겠냐며 ‘자유총연맹’등 보수단체의 지부장에게  모금함을 내밀 수 있는 곳이 바로 반송이다. 희망세상은 ‘우리 동네’라는 울타리 안에서 갈등보다는 이해를, 시기보다는 사랑으로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갖고 동네에 대한 애착도 크다. 이미 베드타운으로 변한 다른 지역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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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세상 주부활동가 3인방'인 김혜정 사무국장(사진 왼쪽)은 희망세상의 창단 멤버로 98년부터 함께했다. 기획 등을 맡고 있다. 3명 가운데는 가장 나이가 어리지만 희망세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비중을 차지한다.  석연실 총무(사진 가운데)는 희망세상의 전신인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린 벽화그림을 보면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구나 생각을 했다. 이후 성교육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신뢰를 하게 됐고, 친구가 희망세상활동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희망세상의 ‘안방마님’이다.   정화언 팀장(사진 오른쪽)은 어린이날 행사를 보고 반해서 함께하게 됐다. 이전 동네에서 살 땐 사직운동장 개최하는 부산시 주최 어린이날 행사나 교육대학의 이벤트 만을 생각했는 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도 엄마가 ‘희망세상’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 더 보람을 느낀다. 

희망세상은 민주시민 교육, 리더십교육 등 교육 프로그램부터 결손가정 아이들 몸 씻겨주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회원들은 200여명이지만 참여도가 높다. 중고물품을 기증받아 지역의 결손가정청소년, 노인 등을 돕는 ‘행복한나눔가게’를 직접 회원들이 돌아가며 운영하고 주부 회원들의 남편들은 2000년부터 ‘좋은 아버지회’를 만들었다.

희망세상은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며 1998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창립해 1999년 어린이날 놀이 한마당을 개최하면서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동센터 등 아동관련 사업에 집중했다. 매년 개최하는 어린이날 행사는 참가자가 늘어 이젠 1만 명 정도가 꾸준히 참여해 동네잔치 수준을 넘었다. 부녀회, 청년회, 자유총연맹부터 구청장, 지역의원까지 나서는 잔치다.

“워낙 규모가 커지다보니 준비는 힘들지만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행사인 만큼   매년 기쁜 마음으로 치러낸다.”

1998년 창간호를 발행한 마을 신문 ‘반송사람’들은 지난 7월로 127호를 발행했다. 6천부를 발행한다. 배포는 모두 주부 3인방의 몫. 이뿐 아니라 2002년부터는 주민자치역량강화 교육 등을 하면서 본격적인 풀뿌리 자치 운동을 시작했고, 민주시민교육, 야외탐사, 환경교육 등의 사업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나면서 지역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고 폐기물처리장 반대, 보육조례 재정 등 지역현안에 대한 대응도 지속적으로 하면서 무관심했던 동네사람들이 직접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좋은 일하는 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젠 1세대들이 물러나고 2세대들이 ‘희망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 데 그것이 걱정이다. 몇 년을 지나면 지금 상근자들이 50대 줄을 들어선다. 후속세대 이월은 여느 시민단체나 겪는 고민이지만 반송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은 크다. 

하지만 ‘지역자치’ 불모지 부산에서 지금까지 이들이 이룬 성과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걱정이 그리 우울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심재훈 기자 cyclo201@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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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힘으로 외부시선 턴 ‘반송의 기적'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풀뿌리 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



10년 풀뿌리운동 성과로 쌓은 ‘희망도서관’
지역사회 적극적 참여가 가장 큰 성과
시민운동 후속세대 양성의 밑거름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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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참여가 높은 점수를 주게 했다.”

5회 풀뿌리시민운동사례공모의 대상격인 풀뿌리상을 받은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희망의 도서관’은 거창한 구호로써의 참여가 아니라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작은 관심과 애정을 추렴해 일군 성과다.      

반송동은 영구임대주택의 입지 등 상대적으로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기 때문에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인식이 있었다. “전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반송 출신이라고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들 스스로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길 원했고, 주변 지역이라는 침체된 분위기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희망세상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어린이날 행사’나 ‘우리 마을 바로 알기’ 캠폐인을 펼치며 ‘내 마을' 인식을 확산시키려 했지만 언제나 남는 아쉬운 부분은 문화적인 인프라였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문화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가운데 지난해 우연히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도서관지원사업 광고를 접했다. 동네에 따로 도서관이 없기 때문에 10평이라도 책을 읽을 공간을 확보하자고 시작한 일이 이젠 지하 1층, 지상 4층의 도서관 겸 문화공간을 만드는 사업으로 판이 커졌다.

처음엔 무조건 지역의 실업가들을 찾아가 “1억만 주시면 지역사회공헌사업에 쓰겠다”고 했다. 반응은 대략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안되겠다.” 회원들은 거리로 나갔다. 그때가 지난해 12월. 부산에서는 맞기 힘든 눈오는 날. 어린이집 아이들을 과자, ‘슈퍼주니어 카드’로 ‘꼬셔서’ 모금단을 꾸렸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도서관 건립 염원을 담은 발대식을 개최했다. 일부 주민들은 대놓고 반대는 못하지만 조그만 동네에서 ‘생난리’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런 시선에 주눅 들면 벽돌 하나 쌓기 어렵다고 판단한 회원들은 발대식에 대거 동원(?)됐다. 주부 뿐 아니라 ‘좋은 아버지 모임’에 참가하는 아버지들은 월차를 냈다.

성대한 발대식을 치루고 ‘희망 도서관’ 프로젝트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학교 학부모회, 청소년 관련 기관 뿐 아니라 구청장, 지역 국회의원도 도서관을 거수를 수 없는 대세로 인정했다.

이후 각지의 도움이 답지했다. 도서관의 설계는 부산 건축계에서는 꽤나 알려진 서금홍 박사가 무료 봉사했다. 또 구청에서 도움을 줘 동네에서 버려진 땅을 6천만원에 매입해 도서관부지로 쓸 수 있었다.

모금도 마찬가지. ‘좋은아버지모임’ 월례회 술값을 아껴 도서기금으로 내고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돼지저금통을 털어 기금을 마련했다. 또 벽돌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기는 ‘벽돌 한 장 기금’으로도 솔찮은 자금이 모였다. 반송이 속한 해운대구 차원으로도 모금운동이 확대됐다. 해운대의 달맞이로터리클럽, 아름다운가게, 21C 미래포럼이 알뜰장터를 개최해 공사비 마련에 정성을 모았다.

이렇게 소액후원자 1만3천명이 모금한 돈이 1억1천만원. 여기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삼성이 1억 1천만원의 인테리어와 도서비 등을 지원하고 문화관광부가 8천만원의 내부공사비를 지원한다.

이웃인 아랫 반송에는 도서관이 있지만 희망세상의 터전인 윗 반송에는 도서관이 없다. 그마저도 6시에 문을 닫는다. 희망세상에서 꿈꾸는 도서관은 ‘다용도’다. 편하게 책읽는 공간 뿐아니라 작은 연극이나 발표회를 할 수 있는 어린이, 청소년 공연장도 한쪽에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여건만 된다면 결손 가정의 청소년들이 잠시 쉬어갈수 있는 쉼터로도 활용할 예정이다.

그리고 백화점식 프로그램 운영도 자제한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많이 생각했는데 그렇게 한다면 홍보효과는 있지만 남는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며 느리더라도 천천히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는 제1목표다. 학부모 도서 도임, 발표회 등을 하는 등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1~2층에는 영유아실로 하고 4층은 청소년실, 지하층에는 북카페로 운영한다.  앞으로 운영에 있어서도 가급적으로 관청이나 지자체에서 직접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물주기회를 조직해 후원으로 도서관을 꾸려갈 예정이다. 도서만권 기증받기 릴레이 운동도 진행한다.

물론 도서관의 전문성을 높여줄 사서 채용 등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도서관의 도서도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도 조금만 정성이 도서관의 ‘희망’을 키우고 있다.  

10년 동안의 지역활동 성과로 만들어지는 희망도서관은 향후 10년의 지역운동의 기반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희망세상은 이제 도서관을 바탕으로 지역에 보다 깊게 들어가는 지역운동을 꿈꾼다. 그러면서 동네를 살찌우는 지역운동가 2세대, 3세대가 나오는 것이 ‘희망세상’의 소망이다.
풀뿌리 자치의 시험대이자 작은 ‘기적’인 희망도서관은  10월 3일 개관한다.
 
심재훈 기자 cyclo201@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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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풀뿌리희망재단 http://www.pulppurifund.org/

제목 : 필리핀 사회복지와 주민운동 현황
강사 : 코라손 J. 솔리만(前필리핀복지부 장관)
일시 : 2005년 5월 9일 오후 4시
장소 : 천안시청 3층 중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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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꿈 - 포르뚜알레그리 참여예산 ①

“풀뿌리, 정치권력, 제도가 빚은 환상의 작품”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참여예산. 어찌 보면 식상한 주제를 다시 꺼내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정부까지 나서서 참여예산을 권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광주북구, 울산동구, 대전대덕 등을 비롯해 전국 30여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참여예산을 조례로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참여예산제도는 이미 우리에게 낯익은 제도로 다가와 있고, 지금도 참여예산에 대한 관심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뿐이랴? 전 세계 어느 대륙을 가도 포르뚜알레그리의 흔적이 투사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뚜알레그리를 다시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포르뚜알레그리 참여예산제가 가진 활기 넘치는 에너지와 역동성으로 인해, 여전히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임으로써 우리에게 전달해주고픈 이야기보따리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3년부터 시작된 광주 북구청의 참여예산을 우리나라 원년으로 삼을 수 있다면, 5년째를 맞이하는 한국식 참여예산을 제대로 바라보고 평가해보면서 비어 있는 공백을 발견하고 채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참여예산제도로 유명한 브라질 포르뚜알레그리. 1988년, PT(노동자당)의 올리브 두트라가 포르뚜알레그리 시장으로 당선된다. 당시는 브라질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25년간의 독재정권이 1985년에 끝났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은 시기에 좌파인 PT가 집권하게 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사건도 아니지만, 세계가 격찬한 주민참여예산이 바로 그 시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민들은 좌파정권 두트라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정부는 전체 시예산의 98%를 경상적 경비로 소비할 만큼 시민들의 요구사항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새로운 좌파정권에게 새로운 통치를 원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예산의 분배와 직결된 문제였다.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고, 사회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예산 2%만으로는 그것을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권력을 손에 쥔 두트라의 입장에서도 많은 고민이 뒤따랐을 것이다. 결국 두트라는 시민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강구한다. 현재 주지사 비서로 있는 우비라탄 드 소우짜는 당시를 이렇게 증언한다.


“두트라가 시장(1988년 당선)이 되기 전 정부는 공무원들의 월급을 인상시키는 등 전체 예산의 98%를 경상적 경비로 써버렸다. 그 당시 시외 지역에는 기본 인프라가 깔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올리브 두트라 시장에게 그런 인프라를 요구했지만,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호소를 들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군중과 토론하는 과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아이디어가 참여예산제도이다."


주민참여예산은 이렇게 태어났다. 시민들에게 귀를 기울였고 시민들로부터 답이 나왔다. 이미 시민들은 87년부터 시정부와 예산편성에 대한 논의를 해왔고, 민주적인 예산편성을 요구해왔다. PT는 이러한 시민적 요구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PT는 “권력을 시민에게” 주어야 한다는 본질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요구는 PT의 집권 방향과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해서 1989년부터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주민참여예산이 시민들로부터 나오고, 19년이 지난 현재까지 탄탄하게 제도가 유지된 주된 이유는 브라질의 바닥 공동체, 즉 풀뿌리운동이 저변에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60년대 개발독재가 브라질 경제를 급속도로 발전시키는가 싶더니 70년대 들어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게 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변화의 요구가 거세게 불어온다. 특히 페다고지나 가톨릭 바닥공동체 운동의 확산은 좌파의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게 되는데, 예컨대 전통적인 공산당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시스템이라면, 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운동적 흐름이 저변으로 퍼지게 된다. 사상이나 이념보다 생활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분권, 민주주의, 자치 등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게 된다. 반독재타도라는 단일한 깃발도 인권, 생태, 여성 등의 다양한 전선으로 나뉘고 각 계층의 다양한 요구가 확산되면서 독재정권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형성된 풀뿌리의 힘은 주민참여예산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포르뚜알레그리 참여예산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종합하여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활성화된 풀뿌리, 권력을 해체하려는 정치권력, 그리고 민주적 기재로 작동되는 제도,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잘 맞물린 톱니바퀴”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솔직히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풀뿌리는 정치권력을 움직였던 힘을 가졌다는 것이고 정치권력은 모든 결정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자치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풀뿌리와 정치권력이 제도를 디자인했고, 그런 제도가 참여를 더욱 촉진시켰다는 점에서 이 세 가지 요소는 상호 촉진작용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포르뚜알레그리의 참여예산은 입법화되지 않은 제도다. 제도 자체도 주민들에 의해 결정된다. 예산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각 지역의 평의원과 대의원들은 현재적 조건에 맞게 제도를 다시 디자인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지난 19년 동안 제도를 운영하면서 미세한 변화들이 있어 왔고, 제도의 융통성이 어떤 것이라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포르뚜알레그리의 주민참여예산은 ‘제도화되지 않은 제도’라고 명명할 수 있고, 제도화의 문제는 다소 부차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치권력, 즉 PT가 풀뿌리 활성화에 기여한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당 활동가들이 바닥으로 내려가 주민들을 조직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은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20여 일간 현지를 방문하면서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PT 소속이었을 만큼, 참여예산 성공을 위한 PT의 노력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당원이면서 활동가인 주민들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집권전략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88년부터 2004년까지 16년 간 포르뚜알레그리를 집권한 경험은 브라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설이 되었다.


거버넌스 모델로 거론되는 포르뚜알레그리 참여예산은 우연찮게 성공한 제도가 아니다. 참여예산을 통해 내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서로간의 신뢰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런 믿음과 신뢰는 세 가지 요소, 즉 풀뿌리와 정치권력, 그리고 제도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작품이기도 했다. 2004년 선거에서 정당 간 연합에 의해 PT는 집권에 실패했다. 참여예산의 철학과 정신이 다소 왜곡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주민들은 ‘꿈은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주민들은 또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낼지,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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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6일, 만해NGO교육센터에서 개최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창립 토론회의 발제문입니다. "왜 풀뿌리가 희망인가 - 풀뿌리 운동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글은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운영위원들이 공동으로 준비한 집단발제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세부적인 내용은 발제자 개인의 의견이나 자료들을 덧붙인 것입니다. 발제를 위해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들끼리 토론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각의 흐름은 같거나 비슷한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은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이후의 숙제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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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1987년 이후 한국 시민사회의 구조와 변동을 분석하는 데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 시민사회는 급속히 성장해 왔으며, 이런 성장 가운데 주목할 것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분화와 전자적 공공영역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가족주의와 권위주의의 시민문화는 시민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서구적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와 갈등해 왔다. 그 결과 시민사회의 구도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이런 특징들을 주목해 볼 때 한국의 시민사회는 전통과 현대, 경쟁과 연대, 가족주의와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이중적 시민사회'라 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이중성은 현재 시민단체의 전략은 물론 시민운동의 정치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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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정치"-이호
2006년 7월 5일(수) 오후 3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있었던 "지방선거 이후의 풀뿌리지역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 발표글입니다.
"일상의 정치"라는 주제의 한국도시연구소 이호 연구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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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정상호
2006년 7월 5일(수) 오후 3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있었던 "지방선거 이후의 풀뿌리지역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 발표글입니다.
"‘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제의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의 정상호 박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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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조직화(Community Organizing)의 실천사례에 관한 연구
 
이 자료는 관악사회복지 한재랑 국장의 석사학위 논문입니다. 관악사회복지의 네트웤과 소집단 활동을 중심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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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에 관한 세상의 모든 지식!!
-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가 뜬다!!

- 인터뷰 : 조양호(함께하는 시민행동 기획팀장)
- 정리 : 김현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정보는 흘러넘친다. 모 지식검색 사이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토로 검색 사이트의 지존임을 과시하고 있는데, 실제로도 정보에 굶주린 많은 이들이 이 지식검색 사이트를 이용해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정보접근의 양극화의 문제도 심각하긴 하지만) 현란한 자판 솜씨가 아니더라도 맘만 먹으면 찾고자 하는 정보는 넷 상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또 자기가 소유한 정보와 지식도 얼마든지 유통시킬 수 있다. 제한된 정보를 제외하고 정보 소통 구조는 다변화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정보의 질’이다. 내가 찾고자 하는 정보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나의 삶, 내가 하는 일 또는 활동의 과정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일 때 의미성은 배가 된다. 예컨대, 참여예산제는 무엇이고 역사와 사례는 무엇인지와 같은 1차적인 정보를 넘어, 과정상의 난맥상은 무엇이고 해결 과정은 어떠했으며, 개별 그룹의 관점은 어떤 경로를 통해 확고해졌는지, 또는 변화 되었는지, 살아 꿈틀거리는 생생한 정보가 ‘질’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공간의 문제로도 해결될 수 있겠지만, 활발한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해소될 가능성은 더 높다. 정보가 돌고 돌아 수정되고 보태짐으로써 새로운 정보로 탈바꿈 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정보의 공간은 결국 사람과의 소통에 달려 있다.

지역운동단체들도 정보는 항상 갈증의 대상이다. ‘시민자치정책센터’를 포함해, ‘함께하는 시민행동’, ‘강원연대회의’, 그리고 성공회대 ‘희망원정대’ 등이 모여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운동단체가 요구하는 정보를 한 데 모아 종합적으로 제공하자는 것이 이번 사업의 취지이다. 나아가, 운동하는 과정의 노하우, 비하인드 스토리, 기획력 등이 첨가된 생명이 있는 정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전국 각 지역별로 전체 5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블로그나 카페와 같은 요구는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 사람들이 가장 크게 요구하는 것은 정보였어요. 그와 더불어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각각 이 사이트의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정보에 대한 관심이 제일 많았고요, 정보의 양보다는 정보의 질을 많은 활동가들이 선택했어요. 널린 정보는 많은데, 그게 자기가 운동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 사업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의 조양호 기획팀장의 말이다.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지역운동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간략히 설명한 것이다. ‘정보’ 그 자체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통 공간’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다. 이미 각 단체 홈페이지에는 많은 정보가 쌓여 있음에도 왜 활동가들은 정보에 굶주리고 있을까? 그런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를 준비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조양호 팀장을 만났다. 그가 구상하는 ‘지역운동을 위한 포탈사이트’는 무엇인지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조양호 팀장에게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를 준비하게 된 계기나 취지를 물었다.

“(고민한 지는) 한 2년 된 것 같아요. 물론, 저희 단체가 지역운동을 실제로 하고 있지 않지만, 지역단체를 돌아다닐 때마다 단체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항상 그런 게 있었어요. 인터넷과 관련해서 단체들 간에 정보공유 안 되는 문제, 정보 소스 자체가 없어서 정보로부터 소외된 문제, 아주 단순하게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는데 따른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이런 것들. 처음에는 시민운동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포탈사이트’를 생각했다가, 갈수록 지역운동의 중요성이 많아지니까, 지역운동이라는 아이템만 가지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고민을 시작했죠. 실제 몇 군데 다니면서 제안을 했었지만,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어요. 취지는 좋은데, 과연 그게 가능하겠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한 동안 추진을 못 했죠. 그러다 작년 하반기였죠. 혼자 힘으로 안 되겠다, 몇 군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곳이랑 하자, 그래서 ‘강원연대회의’와 ‘시민자치정책센터’와 같이 하게 된 거죠. 물론 그 전에 ‘강원연대회의’에서 요청을 해온 적이 있었어요. 강원이라는 지역이 단체가 떨어져 있는데, 회의 한 번 하려고 하면 거리 상 지장이 많잖아요. 서로 지역 내에서 정보공유가 안 되고. 이런 문제를 시민행동과 같이 강원도를 모델로 해서 풀어보자, 이런 얘기를 했었죠. 그게 작년 초였어요. 그래서 그걸 듣고 제가 역제안을 했던 거죠. 강원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스타트를 해보자, 그래서 했던 거죠.”

중앙단체로서 지역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시민행동’은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꽤 깊었다. 그러나 ‘시민행동’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만으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장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재원 마련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작년, 어렵사리 재원에 숨통이 트였고 함께 작업할 파트너가 진용을 갖추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현재,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사이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설계는 다 해놨고, 운영을 하면 되요. 몇 차례 회의를 통해서 앞으로 사이트 운영을 어떻게 하고, 정보를 어떻게 이용자들에게 배치를 잘 해주고, 어떻게 정보를 공유할지, 이런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장기적인 전망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지역운동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나눠주는 차원이 아니라, 그런 정보를 공유하는 자체가 지역운동을 활성화시키고 지역 간의 정보를 넘어서 인적 커뮤니티, 인적 교류나 운동 차원의 시너지가 나게 하려면, 사이트에 대한 비전만 가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이 사이트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역운동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어떤 운동성을 띨 것이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것을 논의해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사이트 운영하는 것, 기술적인 것은 운영상의 노하우 문제니까 그것을 해결해나가더라도 장기적인 전망이 없으면 단순히 정보만 올리게 되고 재미가 없잖아요.”

조양호 팀장은 ‘운동성을 띤 사이트’가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좋은 정보를 담아내는 것이 성공의 요소이지만, 사이트 자체가 하나의 ‘운동체’가 되길 꿈꾸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들어보자.

“제 개인적인 생각만 말씀드리면, 실질적인 네트워크가 됐으면 좋겠다는 거거든요.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운동에 대해서, 일상적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사례나 경험을 나눠주고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운동을 할 때, 또는 특정한 어느 한 사안에 대해서 대응을 할 때, 이 사이트를 매개로 해서 오프라인 상의 공동의 이슈에 대한 연대나 인적 교류나, 이런 게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풀뿌리 단체의 네트워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되도록이면.......시민운동이 권력과 싸우고, 권력을 비판하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에는 여러 단체가 있고 이런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마을부터 해서 그 지역공동체와 지역사회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중앙단체에서 풀뿌리단체로의)중심 이동을 장기적으로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운동이 권력화된 느낌을 갖게 되고, 정치적인 이슈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작은 운동도 활성화되고 내가 살고 있는 가정에서부터 지역사회, 그리고 내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 그렇게 인식이 되게끔 하는 역할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양호 팀장은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그의 구상은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이 사이트를 통해 풀뿌리운동이 지역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꿈이 있는 것이다. 풀뿌리운동이 내 삶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보다 밑으로 확산시키고 싶은 그런 욕심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사이트에 ‘지역운동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사이트엔 어떤 매력이 준비되고 있을까?

“가장 1차적인 욕구는 정보잖아요. 이 지역에서 어떤 운동을, 또는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운동을 하고자 하는데,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참고하고 싶은데, 그런 사례들을 찾을 수 없는 상황, 1차적으론 그런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고요, 또 하나는 이미 나와 있는 정보나 이미 누군가가 실천했고 자료집 형태로 나와 있는 정보 말고, 실제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운동이나 아이템이 많을 텐데, 그런 것들을 서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고, 정보도 얻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도도 해볼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 안에서 발생하고 그 안에서 얻은 소스와 아이디어를 가지고 운동을 했더니 성공적으로 했다, 그리고 그런 성공의 사례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가 됐다, 그런 것이 2차 정보가 아닌가 싶어요. 물론 1차적인 매력 요소가 잘 정비되고 관심을 끌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이트는 우선은 활동가들이 대상이니까, 그들에게 매력이 있다는 건, 운동하는 매력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지역에 있는 주민이나 자기 개인이나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 그게 운동의 매력이잖아요. 그런 경험들을 하는데, 여기가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될 것 같거든요.”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의 초기 구상의 목표는 많은 정보와 사례를 필요한 대상에게 적재적소에 배치시키는 것이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지역(풀뿌리)운동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는 인식이 서면, 커뮤니티와 운동성은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수 있다는 게 조양호 팀장의 생각이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를 조양호 팀장은 이렇게 분석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서비스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 실패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특정한 단체나 연대 차원에서 했으니까요. 이런 것을 만들어 지역단체들에게 정보를 주겠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죠. 정보를 모으는 것도 자기 입장에서 정보를 모았던 것 같아요.......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특정 그룹이 글을 올리고 나머지는 받기만 하는 입장,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저희가 큰 돈을 갖고 있거나 사이트 운영을 위해 사람을 많이 쓸 수 있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자체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죠. 물론 저희가 스타트를 안 해봤기 때문에 그 부분은 풀어야 할 숙제이긴 한데, 어쨌든 기존 여러 가지 이전의 시도들이 실패했던 원인이 그런 거라고 보고, 그리고.......사이트를 만들다보면 욕심이 생기게 되거든요. 초기에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정말 필요한 정보를 중심으로 배치를 하고,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것을 캐치해서 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예쁘고 남들이 봐서 세련되게 보이고 싶거든요. 이런 것을 하다보니까, 메뉴가 복잡해지고 한 눈에 여러 가지 정보를 보여주고 싶고, 하거든요. (저도 그런 욕심이 있었는데)그것을 다시 재조정을 하려고 해요.”

베푸는 식의 정보제공은 재미가 없다. input이 있으면 output이 있어야 하고 관리자가 없더라도 알아서 놀아야 한다. 이 부분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기획력의 문제다.

“기술적인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인터넷상에서 별로 안 되는 건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기획이죠. 기획이라는 것도 요구를 잘 수렴을 해서 무작정 던져주는 기획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기에 맞게, 단체 수준에 맞게, 단체가 하는 운동 수준에 맞게 얼마나 잘 정보를 배치를 하고 그런 정보를 연결시켜주고, 유통시키고 보여줄 것인지, 그 부분이 제일 관건이죠. 그건 어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단지 기술을 가지고 있는 IT전문가나 편집을 잘하는 편집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활동가들의 요구를 잘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봐요.”

넷 상에서 구현시키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다. 문제는 어떤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세련된 디자인보다 촌스럽더라도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할 때 성공 가능성은 더 높다. 어차피 운영자의 욕심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의 초기 대상은 지역(풀뿌리)운동단체 활동가이다.

“정보를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는 건 아닐 테니까, 1차적으로 현장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잡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했을 때, 현장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 사이트 내에 현장 활동가들이 꾸준히 모여들고 그 안에서 서로 간의 고민과 대화를 하게 되면 현장 활동가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잖아요. 지역주민일 수도 있고, 교수나 전문가일 수도 있고, 자원봉사자일 수도 있고. 이게 잘 되면 자연스럽게 올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확대하는 건, 활동가들이 활발하게 들어올 때 가능할 것 같아요. 1년 정도 활동가들 대상으로 잘 해보고, 그게 성공적인 평가가 되면 대중적으로 더 알려내야죠. 그리고 활동가들만 대상으로 해선 안 되는 게, 운동의 소스나 운동의 필요라는 게, 활동가 머리에서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지역의 주민들의 현실이나 삶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것은 넓혀야 되는 거죠, 그런 단계가 필요하겠죠.”

이용하는 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 홈페이지 환경과 설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양호 팀장도 초기부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정할 생각은 없다. 1차적인 대상은 활동가들이고, 그들로부터 확대되는 시점은 그 이후의 문제다. 결국 활동가들에게 확실하게 어필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는 어떤 정보를 제공할 계획인가?

“예를 들면, 내가 만약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라면, 이 사이트에서 뭘 원할까를 생각해보거든요. 제가 지역운동단체에서 상근하지는 않지만, 그 단체의 회원으로서 나한테 운동을 해보라면, 제사 사는 동네(지리산 실상사 근처)가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도서관이 없더라고요. 저희 동네는 귀농자들이 많아 집에 책들이 많거든요. 그 책을 집에서 해방시켰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도서관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유아들을 위한 도서관, 어른들을 위한 도서관까지. 그러면 도서관 만들기까지의 여러 가지 과정이 있잖아요. 건물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책을 일단 초기 단계에 모으고, 보고 싶은 신간들을 어떻게 수급을 할 건지, 이런 과정들은 대충 그려지는데, 실제 다른 지역에서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듣고 싶은데, 누구를 찾아야 되나?(웃음)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면 있긴 하겠지만, 그건 결과로 드러난 정보일 뿐이고 과정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못 듣잖아요. 그런 욕구가 해소된다면 좋겠다는 거죠.”

누군가가 동네에서 만들어 놓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의 결과물은 어렵지 않게 구해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노하우는 결과물로 읽혀내기는 쉽지 않다.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가 추구하는 정보의 개념은 이런 것이다. 주민발의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홍보를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아파트부녀회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하다못해 경기도 남쪽에서 무료로 세미나 할만한 공간은 어디가 있는가? 등등. 이런 식의 궁금증에 대한 답은 하나가 아니다. 경험 있는 지역에서 다양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고, 지역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될 것이다. 관건은 그런 정보가 저절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홈페이지 같은 경우는 티핑 포인트라고 하나요? 서서히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업그레이드되는 단계가 있는데, 그 단계만 넘으면 운영자의 개입이 없어도 잘 돌아가거든요. 그 단계까지 도달하기까지는 운영진의 끊임없는 관리와 운영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그런 질문이 올라왔는데, 초기에 그걸 마냥 기다릴게 아니라 운영자가 찾아서 전화해서 이런 답을 달아주거나 답을 달 수 있도록 알려나가야 할 것 같아요. 또 그렇게 성의 있게 해야 이 사이트에 대한 신뢰도 쌓이게 될 것 같아요. 한 1-2년간은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대목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면 발길이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 어쩔 수 없이 초기단계에는 운영자의 몫이 크다. 그래서 조양호 팀장은 지역운동단체들의 홈페이지와 연동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이긴 한데, 각 지역에 있는 단체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개별 단체 홈페이지에 정보가 많으면 자기 단체 홈페이지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텐데, 컨텐츠가 별로 없다보니까 단체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얼마 안 되고, 단체를 지역사회에 알려내는 것도 떨어지고, 기술적으로 그런 것도 해결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에 들어와서 운동을 하는 과정에 정보도 얻어 가겠지만, 이런 정보들을 각 지역 단체에 있는 홈페이지에 하나의 컨텐츠로, 자기의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고, 여기 와서도 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지역단체 홈페이지도 풍부한 컨텐츠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기술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인데, 전문가들은 몇 가지 프로그램화시켜서 하면 가능하다고 말하거든요.”

설명은 들었지만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예를 들면, 시민자치정책센터 같은 경우에 지역운동 자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잖아요. 많은 정보가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민참여에 관한 거, 보육에 관한 거, 주민발의에 관한 거, 이런 것인데, 시민자치정책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것과 연동된 자료실에 들어가면 이 사이트와 연동이 되거나 이 사이트 전체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단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료만 짝 뽑아지는, 그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각 단체들한테도 홈페이지를 활성화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 그건 당장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 사이트가 활성화된다는 조건 하에, 어떻게 하면 이런 정보를 각 단체 홈페이지를 활성화시키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거죠.”

개별 단체 홈페이지와 연동시킨다는 의미는 단지 홈페이지를 링크시킨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료실을 중심으로 개별 단체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의 자료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얼마간의 시간을 요하는 기술이다. 자,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가 잘 운영된다는 가정 하에, 어떤 사이트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글쎄요.(웃음) 단순하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네이버’로 검색을 주로 하는데, 거기에 있는 정보가 ‘네이버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얻어 가는 건데, 개인적인 희망은 전국의 풀뿌리 활동가들이 이 사이트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고 우리 단체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인식이 잡혔으면 해요. 추상적인 상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만 가질 수만 있다면 최고의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사실, 전국의 활동가들이 공동 소유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특정 운영자가 잘 운영하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문제부터 해서 높은 수준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바로 바로 답변이 올라오고 더 나가서는 단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얻는 수준이 아니라, 풀뿌리운동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런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활동가들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시민운동의 비전이나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는 게 정말 올바로 바꾸는 것이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잖아요. 혹자는 비전의 문제기도 하고 정체성의 문제라고도 하는데, 그런 것들은 누군가 풀어주길 기대하는 측면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비전은 이론적으로 누군가가 던져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수준에 맞는 고민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룹이 생기는 것, 그 안에서 잘 논의가 돼서 활동가들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그 안에서 단서를 얻어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자기의 삶이나 운동으로서 정체성 문제나 단체의 비전 문제까지 같이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이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이버 풀뿌리 활동가 공동체’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까? 정보교류를 넘어 운동의 고민과 비전을 나누는 공간.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가 꿈꾸는 상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희망사항이다. 오픈도 안 된 상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간과 자료를 정리할 수 있는 인력이 가장 어렵긴 한데, 실제 어려운 것은 다른 곳에서 올 것 같아요. 오픈 하고 나서죠. 이제까지 여러 가지 활동가들의 얘기를 듣고 이런 요구가 있다, 이런 요구를 이런 방식으로 인터넷을 풀어주면 성공을 하겠다, 여기까지 왔는데, 실제 오픈 후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들어왔을 때, 또 다른 모습일 것 같거든요. 말로 하는 것과 실제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것은 큰 차이를 보이니까. 오픈 하고 나서 3개월 정도가 관건인 것 같아요. 만약 방향이 틀리다면 그런 것을 빨리 빨리 요구를 수렴해서 반영할 수 있는 의사결정 하는 단위도 필요하겠죠.”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의 오픈 시점은 3월 초다. 1월 안으로 오픈 할 예정이었으나 새로운 의견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 늦춰졌다. 관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양호 팀장은 오픈 전부터 설문에 참여했던 400여 개의 단체에게 ‘공동 운영’을 제안할 생각이다. 그 자체가 홍보의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메일이나 배너를 이용한 소극적인 홍보에 그치지 않고 일대일 홍보과 같이 공격적인 홍보도 고려하고 있다. 최소한 일주일에 3개 단체 이상은 꼭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머리 속에 담겨 있는 계획을 어떻게 사이버 상에 구현시킬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현재적 과제다.

‘시민자치정책센터’도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해왔다. 그래서 이 사이트는 남다른 관심의 대 상이다. 이 사이트를 두고 저마다 다른 꿈을 꿀 수 있지만, 정보에 목마른 지역(풀뿌리)운동단체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1차적인 목표임엔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은 ‘살아 움직이는 정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오픈 후, 많은 활동가들로부터 합격점을 받으면, 더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 사이트는 특정 단체의 소유물이 아니다. 관심 갖는 활동가와 단체가 있다면 그들이 소유자다. 소유자가 많이 늘어날 때, ‘정보교류’ 이상의 의미가 발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역(풀뿌리)운동단체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2005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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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6일, 만해NGO교육센터에서 개최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창립 토론회의 발제문입니다. 하승수 변호사님의 글이며, "왜 풀뿌리가 희망인가 - 풀뿌리 운동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글은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운영위원들이 공동으로 준비한 집단발제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세부적인 내용은 발제자 개인의 의견이나 자료들을 덧붙인 것입니다. 발제를 위해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들끼리 토론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각의 흐름은 같거나 비슷한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은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는 것같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이후의 숙제로 남깁니다.

제목 : 왜 풀뿌리운동이 희망인가?
글쓴이 : 하승수
출처 :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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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대안, 지역운동으로서의 생협운동


하승우(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1. 들어가며


어제 세계화의 의미나 식량주권에 관해 좋은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들을 심화시키는 자리에 이렇게 서게 되서 굉장한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세 개의 키워드인 세계화, 지역운동, 생협운동, 하나하나가 굉장히 크고 중요한 주제라서 그 부담은 더 커지는 듯합니다. 이 부담감을 놓치 않으면서 부족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일단은 어제 많은 얘기를 나누셨을 세계화에 관해 얘기를 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는 세계화, 지역화라는 사안에 관해 일정정도 공감이 있어야 지역에 관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생협운동을 잘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생협운동의 가능성을 얘기하려 합니다.



2. 세계화와 지역화, 동전의 양면


세계화, 언제부턴가 이 단어를 쓰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엔 잘 신경도 쓰지 않던 다른 나라와의 무역협상이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건, 이제 그런 협상이 우리의 일상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세계화의 가능성과 이득을 강조합니다. 즉 세계화가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과 이동을 활성화시켜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가 1세계와 3세계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건전한 경제를 파괴하는 대재앙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세계화에 대한 ‘당위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계화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금융자본과 초국적 산업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약소국에 개입하고 이득을 꾀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동노동과 착취노동이 제3세계의 대중에게 죽음과 가난, 폭력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분명 세계화의 부정적인 면이고 ‘허울뿐인 세계화’라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세계화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초국적 자본이나 그들을 대변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아닌, 자본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운동도 1999년 시애틀 이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움직임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진정한 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요즘 많이 얘기되는 공정무역fair trade도 이런 흐름의 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리고 실상 인류문명은 세계화되면서, 즉 서로 다른 문명들이 충돌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세계화는 인류 역사의 발전방향이기도 합니다.(각주2)

더구나 이미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는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를 중지시키고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그 부분은 많은 고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지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세계화의 대안이 진정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지역에 독립적인 규모의 경제를 수립하는 것인가? 그런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의 대안은 지역화인가? 라는 물음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진지하고 깊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의 대화를 요구합니다.

제가 조금 자극적인 단어일 수도 있는 ‘당위적인’ 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현재의 상황이 간단한 노력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의 삶 속에는 세계화의 영향이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간단한 먹거리만 살펴봐도 이제 국내(지역이 아닙니다!)에서 생산된 재료만을 가지고 국내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각주3) 먹거리만이 아닙니다. 노동환경이나 생활환경 등에 관한 권한들이 점점 국가기관이나 초국적기업, 초국적기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각주4) 따라서 지역을 강화하자는 주장만으로는 사회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없고 여러 영역의 다양한 활동이 필요합니다.

또한 세계화(globalization)는 세방화(glocalization, globalization+localization)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황사가 중국에서 한반도로 국경을 넘어 불어 닥치듯이, 과거의 국민국가(nation-state)체제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국가의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제 각 지방이 중심이 되어 세계화 시대에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지역혁신이니, 지역 차원의 공공서비스 강화니,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니, 거버넌스니, 이런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건 전통적인 복지국가 체계나 국민국가 체계가 지방정부 중심의 공공서비스 체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건 전혀 아니지만요, 지방화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만이 아니라 이런 지방화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때로는 지역의 억압적인 노동관행이나 생활방식이 지방의 고유함이나 특수성으로 포장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각주5) 그리고 자칫 지역공동체의 폐쇄성이 강화될 경우 ‘그들만의 공동체’로 닫혀서 ‘운동’으로서의 방향성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계화의 문제점은 지방화의 문제점의 동전의 양면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계화의 대안으로 지역화를 주장하는 건 때론 위험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를 주장하니 아마도 제 입장이 뭔지 궁금하실텐데요, 실은 딱히 입장이 없습니다.^^;; 그건 잘 몰라서 그런 면도 있고, ‘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무엇이 무엇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운동의 방향성은 그 운동에 참여해서 이끌어가는 주체들의 몫이라고 전제하면서, 제가 한쪽 발을 담구고 있는 지역운동에 기초해서 앞으로의 운동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으면 좋을지를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지역이란 무엇이고 지역운동이란 무엇일까?


제가 생각하기에 세계화든, 지역화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흐름에서 가장 문제점은 바로 ‘자기결정권의 상실’입니다(여기서의 ‘자기’에 인간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명체도 포함시킨다면 이 상실감은 훨씬 더 깊어질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먹거리, 놀거리, 일할거리 등 모두가 자신의 결정권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점점 재래시장을 대체하면서 한 가지 상품에 수천 km의 이동거리가 포함되고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쉴새없이 TV가 제공하는 오락거리들은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며 노는 걸 즐기는지를 잊어버리고 자극적인 욕망에 몸을 맡기게 합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일터는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타율적인 노동공간이고, 무한경쟁의 논리가 도입되면서 노동규율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결정권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지역은 이런 흐름을 강화시키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런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역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전에 본 <GO>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팔을 쭉 뻗어서 그릴 수 있는 그 공간이 진정 자신의 공간이라고. 그 말을 바꾸면, 내가 직접 걷고 보고 만지며 다니는 공간만이 지역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지역이라는 말은 가능하지 않지요. 더 좁혀서 제가 사는 과천이라는 곳도 제가 지역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심심하면 산책을 많이 하는데도, 아직 과천의 행정구역을 다 돌아본 건 아니니까요. 따라서 행정구역은 지역이 될 수 없고, 내 마음에 그려지는 일종의 심상(心想)이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역은 유동적입니다. 내가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며 파악할수록 지역은 넓어지고 움직이지 않고 같은 길만 오가면 지역은 그대로이고, 때론 좁아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봤다고 해서 지역을 다 아는 건 아닙니다. 그런 부분적인 단면들을 모아서 전체를 구성할 때 지역사회가 온전히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직접 마을지도를 그려보거나 제작된 지도에 자기 마을을 그려보는 게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이런 기초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그리고 돌아보면 지역사회에 무엇이 있는지가 보입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만 따져보면 지방정부와 여러 가지 공공기관이 있을 터이고, 공장이나 기업체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시민단체들도 존재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을 것이구요. 이런 다양한 주체들이 한데 어울려 지역사회를 움직이고 있습니다.(각주6) 따라서 지역사회를 바꾸려면 이런 다양한 지역의 주체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이런 주체들이 다 우리 편이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죠. 따라서 두 가지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주체들과 협상/거래(bargain)하거나 토론/설득(deliberation)해야 할 겁니다. 운동은 어떤 가치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로 그런 가치지향과 방법을 가지고 다양한 주체들과 접촉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치는 개발인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 강한 듯 합니다. 다양한 주체들을 묶고 있는 강력한 가치가 ‘개발’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방정부나 기업, 지역토호 등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생태’나 ‘여성’, ‘평화’ 등의 가치는 지역사회에서 쉽게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토론/설득으로 공감을 얻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소속된 단체 이름만 듣고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리라 미리 넘겨짚고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이런 경향은 소위 진보적인 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더구나 지역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곤 합니다. 소위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학연, 혈연 등이 동문회, 향우회, 종친회 등을 통해 은근히 힘을 발휘합니다(농촌지역의 경우 어떤 사안에 관해 사람들을 모으려고 하면 고모에서 큰아버지까지, 동문선배에서 후배까지 전화가 쭉 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사람들을 거의 모을 수 없다고). 거기에다 정부지원을 받는 관변단체에서 자영업자들의 다양한 협회들이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합리적인 협상이나 토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죠.

그렇다면 지역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지역에서 가장 보수적(이념이 아니라 그 관습적인 면에서)이면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주민들입니다. 따라서 주민의 마음을 얻고 주민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제 아무리 지방정부나 기업이라 하더라도 주민들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면 지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역운동은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지리산생명연대>라는 곳에서 도로확장반대운동을 해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환경단체임을 분명하게 연상시키는 ‘생명연대’라는 단체이름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지리산생명연대>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한 당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히 설득하고 토론해서 그들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다수의 환경운동이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지역주민들과의 교감이나 공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역운동은 직접 몸으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지역사회의 대안적인 발전모델을 구성할 때 자신의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감을 얻으며 주체의 범위를 확대하고, 운동의 방향성을 현실 속에서 잡아나갈 때 지역운동의 성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대들이 강력하게 연대하듯이, 지역운동도 지역 내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묶고, 때로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설득이 가능한 사람들로 생각되면 계속 만나고 접촉해서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양성 속의 연대’가 추상적인 구호로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죠.

생협운동을 논하는 자리에서 왜 이렇게 지역운동을 길게 얘기하고 그것의 어려움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운동을 펼친다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역은 분명히 세계화의 시대에,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를 거스르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협운동이야말로 지역운동에 적합한 조직일 수밖에 없고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운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생협운동이 지역운동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생협운동은 지역운동의 토대가 될 만큼 지역사회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나, 생협운동은 소수 활동가 중심의 운동방식이나 사업운영방식을 벗어났나, 생협조직에는 조합원들의 자발적고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있나, 지역사회에서 생협은 폐쇄적인 조직이 아닌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나, 생협은 지역사회의 다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나,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할 겁니다.(각주7)



4. 지역사회에서 생협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아무래도 제가 생협운동을 직접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제가 잠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성민우회 생협도 일본과의 교류가 잦은 듯합니다. 일본의 클럽룸이나 데포에 관한 호기심도 많으신 듯하구요. 사실 제가 직접 일본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일본쪽 시스템의 문제가 뭐일 것 같고 우리와 뭐가 안 맞고 이런 얘기들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대충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는 한국사회를 중심으로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심심하니까 잠깐만 얘기해 볼까요? 만일 한국에서도 그런 공간을 마련하면 여러 가지 클럽들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외국의 좋은 모델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현재 소속된 조합원들이 어떤 욕구를 품고 있는가를 먼저 조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생협이 지역복지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해 가고 있고, 워커즈 콜렉티브를 통한 대안적인 사회경제도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생협의 움직임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의미를 가지지만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흐름이 한국사회의 남성 중심의 정규직 노동구조와 맞물리면서 여성노동의 제한이나 저임금화 현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워커즈 콜렉티브에 속하거나 생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노동권에 관한 논란은 일본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장점을 수용하려면 단점에 대한 고민도 함께 받아 안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조금 전 얘기한 욕구조사와 관련해 조금 더 얘기를 해보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조합원이 아니라 오히려 활동하지 않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나 면접조사를 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조합원(활동가)와 적극적이지 않은 조합원들을 구분해서 역량강화(empowerment)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적극적인 조합원들은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구조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할수록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각주8) 적극적인 조합원들에게는 조합원 개인보다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리더십 교육을 병행해서 풀뿌리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민주적이고 비폭력적인 의사소통방법이나 의사결정방식을 함께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이지 않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는 일종의 수다모임을 조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욕구조사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이 실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에서 조금 더 큰 사안으로 서서히 의식을 확대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이런 확대과정이 바로 생활정치라고 생각합니다.(각주9)

또한 일방적으로 어떤 가치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서 있는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조합원들이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총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가족이 직면한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개인 또는 가족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며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족이 공동으로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위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듯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문제인식이나 사유의 틀은 국제적이어야 하지만 문제해결은 개인이나 한 가족에 의존할 수 없고 공동체적인 연대를 필요로 합니다. 가족을 보호하려면 그 속에 머무르길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확장시키고 사회적인 영역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같이 학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모르는 생협에 관한 얘기는 이쯤 해두고 외부의 사람으로서 생협운동이 지역운동과 접목될 수 있는 몇 가지 단초들을 제안하고 얘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사실 지역경제의 재구성에 관한 총체적인 그림은 호지가 이미 제시했다고 봅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면,


“지역 소비를 위한 지역 생산을 장려함으로써 지역공동체들은 세계화 경제의 질곡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는 건강에 더 이롭고, 낭비적인 포장과 수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돈이 지역사회 안에 머물고 생물학적 다양성이 커지고 시골생활의 활기가 되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은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시킨다. 10개 이상의 나라에 생겨난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s)는 상품과 서비스를 돈 없이 거래할 수 있게 한다. 영국만 해도 이미 400개가 넘는 레츠 조직이 형성되어 있다. ‘지역생산품 사기’ 캠페인은 작은 사업체들이 심지어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캠페인은 돈이 지역경제로부터 ‘새나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값은 더 싸지만 멀리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할 때 따르는 감춰진 비용­환경과 지역공동체가 치르는 대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데도 보탬이 된다…또한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학교들은 어린이와 학부모로 하여금 그들의 공동체에 보다 큰 소속감을 갖게 하고, 지역에 절실히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작은 도시와 마을의 힘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호지/ISEC. 2002. 『허울뿐인 세계화』, 15~16쪽).


이제 조금 더 상세하게 논의해 보면, 저는 생협운동이 교육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주부나 가족이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이 점은 일본사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에서는 생협이 교육에 관심을 쏟으며 교육활동센터를 건설하는 등 교육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각주10) 일본의 시민운동을 연구한 한영혜의 글은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생협운동이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학교 또는 교육전문가 집단이 아닌 생협 조직이 주도하는 교육운동의 의의는 바로 이런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학교와 지역사회 및 가정의 연계’는 자칫하면 학교가 가정과 지역사회에 더 많은 협조를 요구하는 결과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거꾸로 이른바 지역유지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나 강화를 위해 학교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문제도 좀더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 시민조직인 생협(쓰루오카 생협 측의 입장에서는 시민조직이라는 용어보다는 대중조직이나 민중조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음)이 전개하는 지역교육운동은 지역에서 자본의 논리에 지배받지 않는 대안적인 사회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이에 기초한 교육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급진적인 성격을 띤다.…이것은 곧 교육이 단지 조합원 육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청소년이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논리에 대항하여 주체로서 ‘살아가는 힘’을 획득할 수 있게 한다는 교육목표의 실현이 결과적으로 조합원의 육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한영혜,, 275~276쪽)


그런 점에서 생협운동과 전교조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지역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전교조만큼 중요한 조직이 없는데도, 그 조직이 아무런 힘도 못 쓰고 영향력을 상실하거나 폐쇄적인 이익집단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 전교조와 상호작용을 하며 방향성을 잡아나갈 단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 ‘학교급식’에 관한 관심이 높은데,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만이 아니라 건강한 교육내용을 습득하게 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저도 구체적인 방안을 찾지는 못했지만 함께 고민하다보면 좋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와 실업을 가져오는 시대에 생협운동이 지역운동의 토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지역화폐’ 또는 ‘지역교환무역체계(레츠)’ 또는 ‘사회경제체제’(각주11)의 구축이라고 봅니다.

1996년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지역화폐운동은 이미 30개를 넘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전의 <한밭레츠>처럼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은 곳도 있습니다. 아마 생협에서도 이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것이 필요하니까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위험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지역화폐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부역량이 이것을 담당할 수 있을 만한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 대다수가 지역화폐체계에 가입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지역화폐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각주12) 그러니 내부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는 게 반드시 필요하고 그 과정은 아주 장기적인 설득을 필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앞에서 얘기한 교육과도 연관된 문제인데, 조합원들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지역화폐를 구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화폐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제관념을 익히게 되고 지역사회도 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거든요.(각주13)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른들도 관심을 가지며 서로 연결되게 될 거구요. 그런 것에 기반해 어른들의 레츠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과 개인이 서로 도울 뿐 아니라 지역의 소규모 가게들과 연합해서 지역화폐망을 구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지역경제망이 형성된다면 지역경제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형마트의 독점 현상을 견제하면서 소매상들도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겁니다.

특히 생협이 주부들의 공동체로서 적극적인 매개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협은 생활의 가장 기본인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지역화폐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단지 소속된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지역의 실업자나 노동이 어려운 분들에게도 지역화폐는 생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푸드뱅크>활동과의 결합도 가능합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차원의 노력들은 지역사회의 복지에 관한 확장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남성/여성, 제도정치/생활정치 등의 구분이 분명한데, 이런 노력들은 그런 구분선을 지우는 역할도 하리라 생각됩니다. 즉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세력들이 힘을 모으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각주14) 그리고 먹거리 정치를 중심으로 이런 네트워크가 실제로 시도되고 있습니다.(각주15) 또한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학 등이 보육시스템을 갖추고 지역주민들에게 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며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5. 나오며...


요즘 드는 생각들을 그냥 주절주절 떠들었습니다. 생협은 지역사회/지역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촉매제라는 말이 암시하듯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특히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라는 시대에서는 어느 한 부문운동의 힘만으로는 그 무엇도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다양한 운동의 흐름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하고, 그 뭉쳐진 힘들이 지역사회만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지 않고, 세계를 고민하면서 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잠재력이 살아나리라 봅니다.


※ 각주


1. “생협의 목표는 기존의 산업질서와 그 가치체계에 복종하지 않으며, 자립적이며 생태적인 자급사회라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생협은 이런 점에서 반지구화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그러나 생협이 공정무역과 만나게 되면서 생협은 대안적인 지구화의 단서를 제시하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즉 제3세계의 민중/여성과 제1세계의 여성 소비자가 지구적인 호혜적 관계망을 구축함으로써 ‘안전 식수에 대한 밀레니엄 발전 목표’와 같이 유엔이 국가의 과제로 제시한 것을 민간의 힘으로 이루어내고 있음은 물론, 초국적 자본에 빼앗긴 식량주권을 초국적 수준에서 회복해 가고 있다.”(김정희, “필리핀 네그로스 지역의 공정무역과 여성”. 『여성학논집』 제 23집 2호, 132쪽)


2.  “내가 이런 역사적인 비유와 숙고를 전개한 이유는, 세계화를 문화적인 궁핍과 빈곤을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다. 기술적 변화의 편재성과 속도의 결과로 인간의 호기심이나 창조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할 이유는 없다. 전 지구적인 사회․경제적 통합에 의해 만들어질 세계 문화는 로마에서 번성했던, 이상한 동양의 신전으로 출현했던 문화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색채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문화는 대부분의 서구와 아시아 국가들에 의해 오늘날 제공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개인적 다양성의 공간을 허용할 것이다.”(리차드 로티, 2006. “철학과 문화의 혼성화”. 『지식의 지평』, 40쪽)


3. “현재 우리는 먹을거리의 7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소비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범지구적인 먹을거리 시스템에 소비자로 편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윤형근, 2006. “먹을거리의 공공화와 새로운 지역자립운동”. 『초점과 대안』. 117쪽)


4. “지역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국가와 국제적 차원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거대기업의 독점시대에 ‘지역적인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는 지역공동체를 매우 취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더욱 무력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풀뿌리 조직이 다국적기업과 초국가기관의 손아귀에 엄청난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럽의 많은 녹색주의자들은 유럽연합과 더불어 권력이 지역분산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에서 국민국가의 해체에 기꺼이 찬성하고 있다.”(헬레나 노르베리-호지/ISEC 지음. 이민아 옮김. 2002.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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