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따르면 오는 2014년부터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7개 특별·광역시의 기초의회인 구의회를 없애기로 8일 국회 행정체제개편특위(위원장 허태열) 소위원회가 잠정 합의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한 내용은 “특별시와 광역시 소속 자치구의 통합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2014년부터 현재의 자치구를 준자치구로 변경해 구청장은 현행과 같이 민선으로 선출하되, 기초의회인 구의회의 기능은 광역의회가 대신 맡도록 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이 방안이 법제화되면 구청장과 구의원을 주민 직선으로 뽑고 있는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지역의 자치구는 구의회가 사라지게 됩니다. 특위 관계자는 “현재 구의회가 지역 유지들의 친목모임으로 전락해 실질적인 자치를 가로막는 등 낭비적 요소가 많다고 판단해 이렇게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구의회가 지역 유지들의 친목모임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해외여행에 온갖 이권 사업에 문제가 터질 때마다 암담한 지방자치 현실에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기초의회를 없앤다? 뭐 시의원이라도 다른가요? 그 놈이 그 놈이지. 더 나아가 국회의원이라고 뭐가 그리 다릅니까? 그 놈이 그 놈이지! 이렇게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회도 없앨 수 있을까요? 치사하게 국회는 다르다고 이야기하지 맙시다.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든 뭐했든 간에 대한민국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오늘이라도 여론조사를 하면 결과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문제가 있다는 것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해 봅시다. 지금의 구의회가 지역 기득권토호세력을 키워주는데 일조하고 그 반대 급부로 자신들의 정치적 지역 기반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아닙니까? 한나라당이 기초의회가 지역유지 친목모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지금 기초단체는 당신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을 공청한 것이 바로 한나라당이고 그 구의원들이 여전히 한나라당 소속인데 말입니다. 한나라당이야 뭐 이제 기대도 할 수 없는 정당이니 그렇다하더라도 민주당은 또 어떻습니까?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이야기하는 정치 집단이 김대중 대통령이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한 헌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역설했던 지방분권과 참여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작 이런 합의를 하다니요?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입니다. 지난 민주당의 과거를 돌아봅시다. 기초의회의 여성 참여비율을 반대하고 20,30대 투표율이 저조한 까닭이 자신들의 '진정성'-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 놈의 진정성-을 몰라준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지역구에 뽑아놓은 시구의원들은... 50대 이상의 지역유지 남성으로 공천하지 않았나요?

민주당이여, 제발 생각 좀 하고 정치를 하세요. 제발 풀뿌리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이야기를 하세요. 개판인 기초의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초의회 없애자는 뻘소리 좀 그만하고 여성을 배려하고 청년을 배려하고 직장인을 배려하는 그래서 새로운 정치가 태어나는 제대로 된 풀뿌리민주주의를 하기 위해 당신들이 가진 기득권부터 제발 벗어버리세요. 지금의 행정통합 논의는 현 국회의원들의 밥 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같은 밥 그릇을 바라볼 때 여야 합의는 참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런 생각이 저만의 오만일까요? 국회의원 세비 합의하는 모습이나 작금의 논의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지방자치제도를 본 뜻대로 살리는 길만이 우리 정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런 희망을 안고 가는 풀뿌리에게 민주당은 더이상 동지가 아닌 넘어야 할 장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민주당이 제 정신을 찾는다면 당장 행정체제개편특위에 들어가 있는 민주당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당 징계를 진행하십시오. 그것만이 당신들이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사칭하는 정치세력이 아님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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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최근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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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임 정치’를 마감하고 ‘풀타임 정치’로!


한국의 대의정치는 소수의 전문 정치인과 색깔이 비슷한 몇 개의 정당인들에 의해 독점되고 비정상적으로 과대표된 측면이 강하다. 더욱이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의정치 깊은 곳까지 착근하여 아무나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왔다. 그 울타리는 너무나 두텁고 견고하다.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이정옥 편역, 리북)라는 책에서 소개된 스위스 취리히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1년에 여섯 번의 선거와 30번의 주민투표에 참가”한다. 역사적 맥락이 달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스위스 시민들은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주요 국가 정책을 머리 맞대어 토론하고 결정한다. ‘스위스 국민들은 비상근 정치인’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다. 먹고 살기도 버거운데 정치참여라니, ‘정치의 과잉’을 생산하자는 것인가?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존재하지만, 그 속에는 일관된 원칙이 있다. “누구나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그러한 원칙은 제도정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정치의 과잉’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달리는 경주마를 지켜보는 관객처럼,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만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관객민주주의’가 한국 대의정치의 질곡이다. 수십만의 촛불이 거리를 가득 메워도, 수만의 지식인이 시국선언을 해도 움쩍달싹하지 않는 정치는 ‘시민’이라는 정치의 주인을 안중에 담지 않는다. ‘참여의 정치’가 아니라 ‘배제의 정치’다. 지역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생활자들의 ‘삶의 질’보다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라는 중앙정치판의 표상에 예속돼버린 지 오래다.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철저히 정당의 이해관계만으로 주판을 두드릴 것이 뻔하고, 자신의 기득을 더욱 온전히 보존하려는 독점적 민주주의가 공고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기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의 관객에 머물렀던 생활인이 정치의 주인으로 나와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지난 7월 2일, 서울 모처에서 50여명이 조금 넘는 지역 활동가들이 ‘시민사회의 지방선거 참여전략’이라는 주제로 가진 워크숍은 이러한 흐름에서 만들어진 자리다. 이들은 두런두런 둘러앉아 점심 이후 늦은 밤까지 진솔한 이야기들을 쏟아냈고,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정치기획을 시도해보자는 데 조심스런 합의를 이뤄냈다.

‘새로운 정치기획’은 구호만으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시민들을 흡입할 수 있는 정치적 내용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내용과 비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되돌아보면 그동안 시민사회의 정치적 실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성적인 Top-down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지역의 에너지를 담아내지 못하고 중앙조직의 논리와 명성의 힘으로 움직이려함으로써, 생활인의 정치참여와 풀뿌리의 자발성을 제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bottom-up 방식은 절차이면서 동시에 원칙이자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새로운 정치기획’은 공중에 떠 있는 정치적 담론을 현장으로 끌어내리고, 여의도의 정치를 부엌으로 옮겨옴으로써 생활세계의 정치적 의제들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노동자, 농민, 서민, 중산층으로서의 우리 모두는 삶의 터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관객의 정치’는 소수 정치인들이 자신의 기득을 지키려는 논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시민을 대신해서 문제를 다 해결해주겠다’는 호혜적 정치구호 이면에는 독점적 정치와 배제의 정치가 숨어 있다. 그래서 대의제에 대한 시민들의 팽배한 불신은 기성 정치인들에겐 호재와도 같다. 정치는 치사하고 더럽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한, 정치는 언제나 그들의 독차지다. 정치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 지난 7월 2일의 모임은 바로 그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정치로부터 배제되었던 다수의 시민과 관객에 불과했던 생활인들이 ‘주인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아주 평범하고 상식적인 외침이다. 4년마다 한 번씩 투표하는 ‘파트타임 정치’를 마감하고 생활과 함께 하는 ‘풀타임 정치’의 도래를 함께 꿈꿔보자!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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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현재 일본에서 박사 논문을 거의 완료한 박희숙씨의 글입니다. 이 분은 이음의 전신인 시민자치정책센터 정챙위원으로 일하셨고, 석사 논문이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동경생활자 네트워크 등을 분석한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가나가와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도 실상은 몇 번의 방문과 관계자와의 대담 등 피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지에서 관련 조직을 장기간 심층조사한 내용을 통해 분석한 자료를 접하는 것은 귀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생활정치의 확대와 장애요인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사례-

 

희숙 (동경대학대학원 사회학 박사과정)

park.heesook@gmail.com

 

출전: 소시오로고스 편집위원회, “소시오로고스 29” 2005

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정치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치를 생활정치라 한다면, 생활클럽생협을 모체로 한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생활정치를 실천하는 운동이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이 대리인운동으로부터 로칼파티(지역정당)으로, 나아가 전국정당을 지향하는 운동의 전개과정은 생활정치의 확대와 장애요인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은 1990년대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전국정당 설립에 주목하여 그 시도와 좌절의 과정을 분석한다. 그 결과, 첫째, 생활정치가 여성의 정치로 축소되었고, 둘째, 정치참여가 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단절되어 전개되었으며, 셋째, 생활정치의 조직적 형태인 네트워크형조직이 경직됨으로써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생활정치의 이념이 전국정당 설립의 과정에서 힘을 발휘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1.들어가며

 

이 논문의 대상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이다. ‘지역네트워크운동[1] 1980년대에 생활클럽생협을 모체로 탄생한 여성중심의 정치네트워크조직이다. 1970년대후반 지방의회에 의원을 보내는 대리인운동에서 출발하여 의원의 로테이션(임기를 2기로 제한), 의원보수의 공동관리등을 특징으로 하는 로칼 파티이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활클럽생협[2]이나 대리인운동[3]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생활클럽 1965년 동경도세타가야구에서 설립되어, 1968생활클럽생협으로 조직개편한다. 생활클럽생협은 소비생활의 장으로부터 현대자본주의사회에 문제제기하여, 자신의 생활방식, 일하는 방식을 동료들과 함께 바꾸어나가는 주부를 중심으로 한 생활협동조합운동’(사토 요시유키 편저 1988:5-6)이다. 대리인운동은 생활클럽생협의 대리인(대표)를 정치적 의사결정의 장에 보내는 운동이다. 1977년 동경도의회선거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으나 당선되지 못하고, 1979년 동경도네리마구의회 선거에서 의원이 처음으로 당선한다. 1983년에는 치바현, 사이타마현등 생활클럽생협이 있는 도도부현으로 확대된다[4]. 현재는 9개의 도도부현에 150명이상의 여성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대리인운동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운동주체가 평범한 주부(일본어로 하면 보통의 주부)’라는 점에서 주목을 모았다(야자와∙쿠니히로∙이토우1992, 쿠니히로1993, 쿠니히로 2001). ‘평범한 주부란 노동자, 조직활동가, 좌익운동가, 직업적 정치가, 남성에 대립하는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서 생활자∙시민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주부의 속성은 쿠니히로 요오코(1993)가 지적한 것처럼 도시중산층의 고학력 전업주부 혹은 겸업주부였다. 대리인운동에서 평범한 주부생활자는 운동의 의의이기도 하지만 운동의 한계로도 지적되었다(와타나베 1991, 1995a;쿠니히로 1993). 아마노 마사코가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생활자의 개념은 남녀의 성차를 희석화하면서 성에 의한 사회적 차별의 제도화를 (정치적) 주제로 할 계기를 배제했다(아마노마사코 1995:61)’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나 지방자치에 있어서 대리인운동이 가진 의의는 적지 않다. 대리인운동은 사회운동∙시민운동과 의회활동을 병행하는 운동정당’(후지이 1996)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한편, 대리인운동의 본래의 의의는 의회제민주주의를 시민참여에 의해 활성화하는 것이었으나 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의회활동과 시민활동과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활동의 중심이 의회에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대리인운동은 대리인개념에서 상징되듯이, ‘강제적 위임’(후지이 1996)을 요구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1997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대리인개념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대리인이 당선된 후 조직으로부터 이탈하는 상황을 보았을 때, 강제적 위임의 원리가 얼마나 기능하고 있는지는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일본의 선행연구는 대리인운동을 전면적으로 여성의 운동으로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대리인운동이나 로칼파티는 생협의 남성 리더의 발상이며 운동의 전개과정에서도 그들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대리인 운동은 정치 참여의 영역을 지방정치에 국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정와 연동하면서 로칼파티를 형성해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2절에서 대리인운동이 로칼파티로 확대해가는 과정을 검토하여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생활정치의 성과와 과제를 명확히 한다. 3절에서는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국정진출 과정속에서의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대립을 분석한다. 4절에서는 2절과 3절의 분석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생활정치의 이념이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국정진출과정에서 발휘되지 못한 원인을 고찰한다.

 

2. 생활정치의 확대: 대리인운동에서 로칼파티로

 

이 절에서는 생협남성에 의해 제기된 대리인운동과 로칼파티구상은 처음부터 국정참여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 그러나 활동주체들인 여성들은 지역을 가장 우선적인 활동영역으로 하는 정치를 지향했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지역네트워크운동에서의 생활정치의 정의를 확인하며, 생활정치가 대리인운동에서 로칼파티로 전개되어가는 가운데 제기되는 과제를 명확히 한다.

대리인운동은 1977년 생활클럽 생협을 모체로 하여 출현했다. 생활클럽생협의 설립자이며 대리인운동의 제안자인 이와네 쿠니오씨에 의하면, ‘생활클럽은 안보투쟁의 산물’(이와네 쿠니오 1979:13)이라고 한다. 이와네는 1960년 사회당에 가입하여 사회당의 지역활동을 거쳐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운동을 지향하여 생활클럽생협을 설립했다. 대리인운동은 1977년 이와네의 사회당으로부터의 탈당과 동시에 제안되었다. 대리인운동은 협동조합의 주장을 지방의회에 반영하기 위하여 생활클럽으로서 발언하는 대리인을 국회에도 보내고 지역에도 보내는(이와네 쿠니오 1979:214-215)’ 구상이었다. 대리인운동은 생활클럽생협의 이념을 지역이나 의회에 확대하여, 지역정치를 바꾸어감과 동시에 국가 체제의 변혁을 지향한 운동이다.

대리인운동과 마찬가지로 로칼파티구상도 지역에서 출발하지만 그 목표는 반드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로칼파티는 1984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설립을 할 때, 생활클럽생협카나가와의 설립자인 요코타 카츠미씨에 의해 제안되었다. 요코타씨는 도큐(철도회사)노동조합 출신으로 1959년부터 1995년까지 사회당의 당원이었다. 로칼파티구상은 카나가와현을 가장 우선적인 정치활동의 단위로 하는 것을 명확히 했으나, 처음에는 지역정치로부터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정치를 바꾸려는 단계적 구상이었다[5].

카나가와현의 대리인운동은 합성세제추방운동을 위한 직접청구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생활클럽생협은 1979사가현비와호의 부영영화의 방지에 관한 조례가 성립한 것을 계기로 1980년부터 합성세제추방을 위한 조례제정을 요구하는 직접청구를 시작했다. 카나가와현의 8에서 22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나 조례는 모든 시에서 부결되었다. 직접청구는 생협의 남성리더가 이후의 대리인운동을 염두에 두고 제안한 것이다[6]. 조례가 부결된 후,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합성세제를 추방하고 비누를 사용하는 운동을 계속할 것과 직접청구에 의해 만들어진 합성세제심의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할 것을 결의했다[7].

그러나 직접청구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1982년 생협남성리더들에 의해 대리인운동이 제안되었을 때 조합원 여성들은 강력하게 저항했다. 예를 들면, ‘생활클럽이 왜 정치에 손을 대는가?’ ‘정치같은 것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협후보가 아닌)다른 사람에게 투표할 거니까’ ‘정치따위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직접청구운동을 계속하면서, 그리고 쓰레기나 자원의 문제등에 대해 토론하면서 지금까지 투표하고 싶은 후보자가 없었다’ ‘선거 때 내가 투표한 사람은 당선하고 난 다음 25년간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깨끗한 소비재가 아니라 의원의 공동구입이구나’ ‘그러고 보니 여성의원은 정말 적구나라는 의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대리인공동구입론은 안전한 생협 물건을 공동구입하는 것처럼 깨끗한 의원을 공동구입한다는 발상으로서 합성세제추방 및 비누를 사용하자는 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비누 대리인운동은 이처럼 생협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이 여성들은 마을의 상황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면서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먹거리를 확보하고 싶다. 깨끗한 물을 먹었으면, 쓰레기가 없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으면, 문화시설이 있었으면, 공원이 너무 적다. 교통이 불편하다, 난개발을 중지하자 등등, 자신들의 생활에 관련된 정책을 직접 만들었다[8]. 이러한 과정은 이제까지의 자기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지역을 돌아보는 과정’(1984년 12월6 기관지 NET 6)이었다고 M씨는 보고했다.

합성세제추방운동으로부터 대리인운동에 참여한 K씨는 자신의 정치참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지, 쓰레기, 환경, , 교육, 먹거리, 원자력발전 등등, 우리들이 직면한 모든 문제는 전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뿌리에 있는 것은 우리들을 둘러싼 산업중심주의적인 사회 그 자체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생활의 질을 문제제기하면서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정치스타일을 지향하는 도전을 계속함과 동시에 그러한 시민을 지금보다 더 늘려가지 않는 한,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1990:61).

 

K씨와 같이 합성세제추방운동으로부터 대리인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것과 정치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과는 뗄레야 뗄수 없는 것이었다.

합성세제추방운동이외에도 대리인운동에는 또 하나의 경로가 있다. 그것은 주민운동에서 시작된 대리인운동이다. 니노미야마찌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아즈마산의 도시공원화계획에 반대하는 아츠마산의 자연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즈시시에서는 미군의 주택을 짓기 위해 파괴직전에 있었던 이케고의 숲을 지키는 주민운동으로부터 대리인운동이 탄생했다. 각 지역이 안고 있는 고유한 과제로부터 시민의 목소리를 의회에 반영하기 위하여 대리인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주민운동으로부터 출발한 대리인운동은 기성정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참여자들 당사자가 정치참여로 인해 정치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즈시시의회의원을 3기 역임한 O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9].

 

이케고의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시장이나 의원들을 관심을 갖고 보니 그들이 얼마나 우리들 시민 감각과 다른가를 절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정치를 일부의 사람들에게 맡겨왔다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시민운동으로부터 탄생한 시장)과 함께 우리들은 마을을 만들어 간다. 리콜 운동이나 선거를 통하여 나는  처음으로 내 자신이 즈시시민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시장은 당선시켰지만 다음 문제는 반대파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민운동으로부터 의원을 배출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1990:23).

 

여기서 대리인운동이 추구하는 생활정치의 이념을 확인하여 보자. 생활정치는 개인의 생활양식과 정치의 스타일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또한 생활정치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대표에게 자신의 생활이나 지역의 운명을 전부 맡기지 않고, 스스로 참여하여 결정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생활정치란 직업적인 정치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민이 스스로가 살고 있는 지역에 책임을 가지고 자치해가는 것을 말한다.

생활정치의 이념을 기반으로 전개된 대리인운동의 성과는 크다. 대리인운동은 참여자인 여성들의 생활을 바꾸었고 의회나 자치단체를 바꾸어냈다. 여성들은 의회가 열릴때면 집단적으로 방청했고, 마을의 중요한 문제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결정되는 것을 목격했다. 거기에서 여성들은 의원을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 여성들은 조사나 시민활동을 통하여 눈에 띠는 과제들을 의회나 자치단체와의 논의를 통해 해결해가고, 자치단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요구에 대해서는 스스로 사업체[10]를 만들어 해결해갔다. 대리인이 있음으로 인해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여성들은 자치체와의 교섭력을 강화했고 자신들의 요구를 의회나 자치단체에 반영하는 것이 보다 쉬워졌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지역문제발견→자율적인 조사→관계자들에 대한 문제제기→토론의 장 만들기→해결책 모색→문제해결이라는 과정을 통해 의회와 시민활동을 횡단하면서, 지역의 문제해결을 모색했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눈길도 주지 않아 구석에 밀려나있던 생활과제인 쓰레기, 먹거리의 안전, 고령자 복지, 어린이, 환경 등의 과제를 의회의 과제로 만들어 갔다. 의원의 의회 질문이나 압력에 의해 자치단체도 이러한 과제를 정책에 반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회활동에서의 벽은 적지 않았다. 1인회파의원에게 질문시간이 주어지지 않거나, 다수파정당에 의해 의회의 결정이 좌우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교섭회파[11]에 속하지 않으면 대표질문도 할 수 없고, ‘무소속시민파의원에게 가능한 것은 의원의 권한을 이용하여 자치단체의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하고, 시민운동의 힘으로 자치단체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의회활동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의원을 늘리는 것은 절실한 염원이었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의원복수화, 의원제안권확보를 적극적으로 모색해갔다.

이처럼 의회활동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의원와 지역네트워크운동 조직과의 의견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회원은 대리인에 대하여 의원이 되면 반듯하게 운동하기 어려워진다. 도로건설에 대하여 지역주민은 반대하는데 대리인은 의회에서 반대하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의회와는 갈등이 생긴다. 표로 연결이 안되는 문제는 점점 안 하게 된다[12]라고 비판한다. 한편, ‘의원은 네트의 과제만이 아니라 자치단체의 모든 문제에 입장 표명을 요구받는다. 의원을 배출한 사람들은 의원을 활용하려고 생각하지만, 처음에 제기한 문제가 해결되고, 자신들의 생활환경이 바뀌면, 의원을 뒷받침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13]라고 대리인은 말한다. 이러한 발언 속에서 운동의 요구가 의회에 들어갈 때의 어려움과 의원에게 요구되는 것과 지역네트의 뒷받침하는 기능과는 서로 어긋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지역네트워크운동은 단일쟁점운동으로부터 지역과제일반에 대처할 수 있는 포괄정당을 지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로칼파티 노선이다. 앞서서 언급했듯이 로칼파티는 카나가와 네트워크운동 설립과 동시에 제안되었지만 그것이 구체화된 것은 1990년대이후였다. 1991년통일지방선거를 전환점으로 하여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의원이나 지역네트워크 조직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중반이 되면 지역네트워크운동은 문제제기운동으로부터 정책제안형정치로의 전환을 추진하며 지역네트별로 정책형성능력을 높임과 동시에 로칼파티로서의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전체의 통합기능도 강화된다[14]. 이처럼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지역정치에서 생활정치를 확대해가는 노력을 계속해간다.

 

3.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대립

 

이 절에서는 1980년대로부터 1990년대까지의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국정참여의 흐름을 검토한다. 우선 대리인운동초기의 정치계약, 90년대전반의 생활파국회의원’, 90년대중반의 네트워크형전국정당설립에 이르는 과정을 검토하여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대립을 분석한다.

 

3-1 테마정치와 강령정치와의 대결:정치계약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국정방침은 정치계약이었다. ‘정치계약이란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정당이 아닌 정치가 개인과 계약을 맺어 아마추어의 손에 의해 국가를 통제하는 방법’(1986년6월30 기관지NET15) 으로서 정의된다. 원래 정치계약이란 정당의 강령주의에 시민운동의 테마주의가 대결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즉 이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단체가 다양한 국면에서 정치계약을 맺을 수 있고, 기성정당의 경직화를 막는 동시에 각 단체의 정당회피현상도 극복하여 정당정치를 포섭한 다면적인 시민자치가 가능해지는 것을 기대한다(스다 하루미 1987)”는 것이다. 정치계약이란 지지 정당이 없는층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이 회원의 정당에 대한 알레르기를 최소화하면서, 정당정치에 자신들의 정치과제를 반영하고자 하는 전략이었다.

그러한 정책과제 가운데서도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원자력발전의 문제였다. 그 배경에는 1986년의 체르노빌사건을 계기로 원자력에 대한 대중적인 위기의식이  있다. 하세가와 코우이치에 의하면 체르노빌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87년이후 많은 새로운 그룹들이 탄생하여 그 때까지 없었던 시민운동이 확대되었다. 특징적인 것은 대도시와 지방거점도시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풀뿌리 운동의  시민그룹이 탄생했다(하세가와 1991:47)’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네트워크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생활클럽생협이 제기해온 먹거리의 안전문제는 탈 원자력운동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카나가와현의 각 지역네트는 핵안전대책이나 수입식품의 방사능오염등에 대해 학습을 하기 시작했고 대리인은 자치단체에 압력을 넣었다. 1989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탈원자력발전법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한편, 국정에서는 1989년 자민당이 리쿠르트 사건 및 소비제의 도입으로 국민적 신뢰를 잃고 지방의회도 소비세를 둘러싸고 이듬해로 예산심의가 지체되어 계속심의가 되는 등 혼란상태였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정국을 자민당독재체제는 내부로부터 붕괴하고 있으나 야당이 약하기 때문에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없다’(1989년5월1 기관지NET47)고 진단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7월 참의원선거에서 카나가와 네트워크운동운영위원회는 사회당의 의뢰를 받아 코바야시 타다시 사회당의원을 추천하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 카와사키시타마구의 네트 타마는 반대를 표명했다. ‘네트 타마는 참의원선거에서 원자력발전에 대하여 73개의 시민운동단체(지역네트 4개 포함),  한편 소비세에 대해서는 3개의 지역네트와 함께 지역구의 7후보에 대하여 앙케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추천을 결정한 코바야시씨가 추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시 네트 타마의 카와사키시의회의원이던 E씨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사회당의 코바야시씨를 전면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결정한 뒤 지역네트에 응원을 요청했다. 지역네트는 지역별로 생활에 뿌리를 내린 정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결정되었다고 특정후보를 응원하고 투표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게다가 체르노빌사건에 의해 반원자력발전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진 시기였는데, 사회당의 입장은 애매했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원자력발전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 사이에 상황에 따라 인정한다는 입장으로 변했다[15]고 비판한다.

사실 시민운동의 테마를 정당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정치계약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정치계약의 주체가 지역네트가 아니라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었기 때문에 지역네트는 정치계약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트타마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과 지역네트와의 정치적 입장이 대립할 때 정치계약은 조직내에서도 집행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또한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정당이 아니라 개인과 정치계약을 맺는다고 하지만, 정치가 개인은 독립된 개인이라기보다는 정당에 구속될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속정당의 입장보다 지역네트워크운동과의 정치계약을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우기 정치계약은 일회적 계약 머무는 한계가 있어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는 어려운 점도 있었다. 따라서 정치계약에 대해 국회에 아는 의원이 한 명 있다는 소박한 효과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3-2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통합:생활파 국회의원

 

1989년은 세계적으로도 격동의 시대로서 동구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일본에서도 참의원선거에서 여당과 야당의 의석비율이 역전되었다. 1990년 중의원선거에서도 야당과 여당의 역전을 기대하여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시민후보를 내어 사회당의 추천을 받을 방침을 세웠다. 소위 생활파국회의원구상이다. 사회당과 사민련의 추천을 받고 노동조합과 협력하여 싸운 선거에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생활파국회의원후보는 낙선했다. 1993년에는 일본신당, 신당사키가케등 신당 결성과 함께, 시리우스, 자민당, 하네타파등 기성정당의 내부에서도 정계개편의 움직임이 격렬한 시기였다. 같은 해 6, 자민당의 분열로 중의원에서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어 미야자와내각이 총사퇴하고 호소카와 연립정권이 탄생했다. 정당재편속에서 세대교체와 지방분권의 확대가 정치적 테마로 부각되었다. 1993년 정국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생활자정치가 국정에서도 역할을 해야한다고 인식했다. 그러한 상황인식에 기반한 운동방침의 전환은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19931월에 발표한 중의원선거방침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지역이 정치한다는 실체를 만드는 것이 대리인운동이며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을 로칼파티로 만든 이유이다. 대리인운동을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자리매김한다면, 국정과 분리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자치단체레벨의 선거와는 다소 형식이 다른 점도 있으나 국정레벨의 의원의 선거도 시야에 넣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리인운동을 단지 생활자의 대표를 지방의회에 보내는 운동으로 인식하여 자치단체레벨에 제한하는 활동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16]

 

이러한 방침전환은 대리인운동을 국정까지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네트워크운동에서 사회변혁이란 자기자신을 변혁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생활 방식, 노동의 방식, 정치의 방식을 바꾸어내는 운동’(1993년3월1 기관지NET92)을 의미했다. 그것이 정권획득과는 구별되는 생활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기대가 높아진 그 시기에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생활자정치와 정권교체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1990년 참의원 선거, 1993년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YS씨는 생활정치와 국정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YS씨는 2기째의 기초자치단체의 의원을 하고 있던 도중에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결정으로 국정선거의 후보자가 되었다.

 

먹거리의 안전문제만을 보아도 후생성의 문제 등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국회의원 개인과 정치계약을 맺어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지역문제를 정책화하는 것이 국정에도 요구되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회의원과 지역의원과는 (정치활동 영역의) 규모는 다르지만 의원으로서의 역할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17].

 

인구2만의 기초자치단체의회의원과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대표를 역임했던 YS씨에게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국정참여에 대한 저항감은 없었다. YS씨는 국정에도 생활정치의 시점이 필요하며,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직면하는 한계를 국정참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YS씨가 속하고 있던 지역네트는 어렵게 기초자치단체의 의원을 만들었는데 임기도 끝나지 않고 국정에 빼앗기는 것에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YS씨는 지역네트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국정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당시 국정후보자를 내지 않겠다는 결정한 지역네트의 회원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국정에 의원을 내는 방침이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으로부터 내려왔을 때, (내가 속한) 지역네트는 반대했다. 우리들이 대리인을 내어 지역네트워크운동에 참여한 것은 수원지 산업폐기물처분장 반대를 위한 주민운동을 통해서였다. 우리들이 대리인을 내보낸 것은 언젠가 국정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들은 시의회의원으로서 응원하고 있는데, 왜 국정에 보내야 하는가 하는 의견이 많았다. 왜 기존정당의 후보로 입후보하는가. 입후보해도 당선은 불가능하다. 내보내자, 못보낸다, 한참동안 갈등했으나 입후보직전에 내보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겨우 쓰레기나 비누, 어린이등을 과제로 하고 있는 주부의 운동이다. 마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라면 응원할 수 있지만 국정까지는 힘들다[18].

 

대다수의 회원에게는 국정에서 자신들의 후보자를 내는 것은 본래의 대리인운동의 취지와는 맞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주민운동의 요구를 자치단체에서 실현하기 위해 대리인을 배출하였지만, 국정참여까지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회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국정참여를 포기하지 않았다. 1993년 중의원선거에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5명의 후보자(그 가운데 사회당 1, 일본신당 1)를 추천하였으나 일본신당후보자만 당선하고 전부 낙선하였다. 결국, ‘생활파국회의원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국정참여에 대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조직적 입장에 대해 당시의 대표였던 UT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우선은 기초자치단체의회에 의원을 내고 다음에 현의회의원을 내고, 결국 국회의원 후보를 내는 과정은 스스로의 조직적 역량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를 생활자의 정치로서 규정하여 가장 가까운 지방의회로부터 시작하여 범위를 확대해가는 과정은 많은 지역네트회원에게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로칼파티라는 이름으로부터 국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선거와 스스로의 조직역량을 재어 보고 논리로서는 타당하지만 지금은 무리라는 입장, 그런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제공할 수는 없다는 반응을 한 회원이 많았다.[19]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국정추진자인 생협의 남성리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운영위원회, 의원 경험자들에게는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는 뗄레야 뗄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정치무대를 지역으로부터 국가차원으로 확대해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전대표인UT씨에게도 지역네트의 회원K씨에게도 겨우 주부의 운동이라든가, ‘국정에는 관여하지 않는 안도감이라는 스스로의 운동을 제한해버리는 회원들의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그외에도 지역네트의 반대의 이유로는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판단과 함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지역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생활정치가 정당정치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저항이 강했다. 이와 같이 국정참여에 대한 회원과 지역네트와의 인식공유가 확보되지 않은 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로칼파티의 전국적 확대를 내걸고 네트워크형국정정당 설립을 시도했다.

 

3-3 생활정치의 정당정치에의 포섭: 로칼파티의 국정정당 설립 시도

 

1995년 통일지방선거를 즈음해서 일본에서는 지역정당붐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시민그룹이 통일지방선거에 후보자를 내는 움직임이 있었다. 19962월 요코하마에서 전국 로칼네트워크 오브 쟈판(이하, J네트) 결성을 위한 집회가 열렸다. J네트는 요코미찌타카히로 중의원 의원등에 의한 리베랄 포럼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었다. 이 집회에서 당시의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대표였던 마타키 쿄오코씨는 내셔널 파티는 로칼파티의 전국적 네트워크형연합조직이며, 의원은 2중당적, 즉 로칼파티의 당적과 내셔널파티의 당적을 동시에 갖는 것은 당연하다’(J네트결성추진회사무국 1996:13)고 발언했다. 한편, 당시 신당사키가케의 대표간사로서 J네트결성에 참여한 하토야마유키오 중의원의원은 네트워크사회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내셔널도 하나의 로칼에 지나지 않는다’(J네트결성준비사무국 1996”40)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하여 J네트는 발족했지만 결국 로칼파티의 전국네트워크는 실현되지 못했다. J네트의 흐름은 같은 해 7, 8월에 하토야마유키오씨를 중심으로 하는 신당결성으로 이어져, 나중에 하토야마유키오씨와 칸나오토씨의 2인대표체제의 민주당 결성의 길을 열게 된다. 1996 10월의 총선거 이후에도 민주당은 네트워크형조직론이나 분권모델을 주창하기는 했다. 그러나 1996년 가을부터 1997 3월에 걸쳐, 각지에서 민주당의 지부조직이 결성되었고 그것은 로칼파티의 원칙이나 네트워크형조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종래의 정당형조직론에 기반해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J네트는 민주당에 이르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스미자와 1988:77-8)는 말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다.

J네트가 민주당의 하부조직으로서 흡수되어가는 가운데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민주당의 설립에 깊숙이 참여했다. 1996 9월 민주당 설립준비회는 11명의 간사회로 구성되어,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고문인 요코타카츠미씨가 들어갔다. 같은 해 10월에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중의원선거를 위해 민주당과 정치계약을 맺었다[20]. 민주당으로서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5000명 정도의 회원과 생활클럽생협이나 복지시민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계의 대상으로서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계약에 의한 선거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민주당 후보 12, 무소속 후보 1명을 추천 혹은 정치계약으로서 지원했으나, 결과는 13인중 2명만 당선되고, 11명은 낙선했다.

이러한 가운데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19971월부터 의원이나 회원의 민주당 입당을 추진하는 방침을 결정한다. 그 목적은 민주당을 통하여 네트의 정책이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한다는 것이었고, ‘민주당은 국정과제, 네트는 지방과제라는 역할 분담을 상정하고 있다. 사실상의 2중당적이지만 그 역할분담은 가능하고 혼란은 없다’(카나가와신문 1997년 1월30)고 당시 대표인 마타키 쿄오코씨는 말했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마타기쿄오코씨와 요코타카츠미고문이 민주당 설립에 깊이 관여하는 가운데 회원에 대한 민주당의 가입이 강력하게 권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민주당가입방침에 대한 일부의 회원이나 지역네트의 반발은 격렬한 것이었다. 지역네트의 반대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민주당은 자민당이나 신진당과의 입장이나 정책상의 차이가 애매하고, 소비세문제등에 대해서는 네트와는 다른 방침을 가지고 있다.(타카츠네트워크통신, 1997년2월8)

 

대리인운동으로서 지역활동을 충실하게 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생각하며 활동해왔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으로서 민주당카나가와(가칭)’의 설립에 참여하는 것은 지역네트가 만들어온 개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내셔널 파티에 깊이 관여하기 이전에 로칼 파티로서 지역네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21]

 

우리들은 지역에서 시민이 자치하고 참여하는 정치는 만들어 로칼이든 내셔널이든 영향을 행사하려고 노력해왔다. 어딘가에 들어가 헤게모니를 잡고, 로칼파티에서 실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셔널파티에 들어가거나, 내셔널파티에 들어가도 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존 정당과) 손을 잡고 권력을 잡자는 발상은 해오지 않았다.[22]

 

지역네트는 민주당과 지역네트워크운동과의 사이에는 정책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23]. 또한 민주당에의 참여는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개성을 말살하기 때문에 지역활동을 우선하는 입장을 고수할 것을 요구했다. 나아가 지역네트워크운동의 문제해결능력은 정당 가입에 의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문제제기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의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을 호소하며 민주당참여를 강행했다.

 

지역의원을 해오면서 국가의 법률에 구속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셔널과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거기서 로칼파티연합을 만들고자 J네트에 참여했다. 민주당은 J네트로부터 탄생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탄생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과 정치계약을 했다. 그것은 선거용이 아니라 일상활동으로서 함께 실현에 노력하여 점검해 간다. 민주당카나가와는 네트가 참여함으로써 참가형정치를 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24]

 

이러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나 지역네트는 민주당참여방침에 납득할수 없었다. 첫째, 참여의 방법이 문제이며 종래와 같이 가입이 아닌 정치계약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의원이 민주당에 가입하면 그 당적은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되는가, 아니면 민주당이 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둘째 참여의 정치적 유효성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민주당에 참여하여 민주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 많았다. 그것은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리더가 민주당의 리더를 겸무하지 않았고 발언권은 있으나 결정권은 없는 업저버로서의 참여였기에 충분한 영향력 행사는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민주당이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이념과는 동떨어진 정당이 되어버릴 것이 우려되었고 국정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도 지방선거에서는 서로 대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1997년3월10, 기관지 NET140).

결국, 지역네트워크형국정정당 설립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997타카츠네트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으로부터 이탈했다. 실제로 국정정당과 지역정당과의 역할분담은 실현되지 못했고 지역네트의 예상대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의석을 다투어야 했다[25]. 민주당 카나가와에 대해 로칼 파티로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에 실패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다음과 같은 총괄을 했다. ‘민주당이 결성됨으로써 로칼파티연합에 의한 내셔널파티를 만드는데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방분권의 시대에 로칼파티는 로칼정부를 수립하여 로칼정권을 만드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2002:2)’ 라고. ‘시민의 정부노선이다.

 

4. 전국정당설립은 왜 실패했는가?: 생활정치의 이념이 발휘되지 못한 이유

 

지역네트워크운동에 의한 전국정당 설립이 실패로 끝난 것은 대리인운동으로부터 로칼파티에로 확대되어간 생활정치의 이념이 국정참여에서는 그 힘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생활정치의 이념이 살려지지 못하고 지역네트워크운동에 의한 전국정당 설립은 좌절하고 말았는가? 이 절에서는 그 원인을 여성의 정치라는 카테고리의 효과,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가 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로부터 이탈해버렸다는 점, 네트워크의 경직성으로부터 찾는다.

 

4-1 ‘여성의 정치라는 카테고리의 효과

 

2절에서 대리인운동이나 로칼 파티가 안보투쟁이나 혁신정당의 활동을 경험한 생활클럽생협의 남성리더들의 구상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네는 말한다. ‘원래 나는 청년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려고 생각했었다. 생활클럽과 같은 여성운동을 만들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여성운동이 되어버린 것은 일본사회구조 탓이다’(이와네 쿠니오 1993:14-17)라고. 이와네가 말하는 일본사회구조란 한 마디로 말하면 전후 일본사회의 성별역할분담구조속에서 형성된 지역의 주부적 상황’(야자와 1993:55)이다. 생활정치는 지역에 남겨진 주부가 중심이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남성리더들이 존재했다.

와타나베에 의하면, 대리인운동에는 2가지의 요인이 있다(1995b:176-177). 하나는 시민에게 정치를 되돌리는 정치의 시민화=시민의 정치화라는 방향성이며, 또 하나의 요인은 정치에 대한 여성참가라는 방향성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여성으로 정치를 바꾸는 운동이며, 동시에 여성 정치를 바꾸는것이기도 하다. 실제 이러한 견해는 대리인운동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첫째, 대리인운동에서 여성은 대상이면서 주체라는 점이다. 둘째, 대리인운동에서 생협남성리더들의 차지하는 위치는 운동의 주체가 아닌 지원자로서이다. 거기서 대리인운동의 두 주체 가운데 남성들이 사라져 버리고 여성만의 운동이 되어버린다.

생협남성리더들에 의해 대상화된 여성들은 자신들이 안고 있는 과제를 정치적 테마로 부각시키며 의회에 진출했다. 지역네트워크운동에 대하여 아마추어 주부의 정치’ ‘부엌에서 정치까지’ ‘주부감각’ ‘여성의 시점’ ‘마돈나 선풍등등, 다양한 의미규정이 있으나 그것들은 한결같이 여성의 정치 참여라는 점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인터뷰한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여성들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주민, 시민으로서정치에 참여했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긋난 의미규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지역네트워크운동의 두 주체의 운동에 대한 의미규정으로부터 생각해보자. 먼저, 생협의 남성들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을 자신들의 운동으로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여성의 운동으로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정당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지역네트워크운동에 참여했다. 그들은 여성들을 아무런 이데올로기에도 물들지 않은 백지상태[26]의 존재로서 규정했다. 남성들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을 과거의 운동의 교훈을 계승하기보다, 전혀 새로운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운동이나 정치로서 의미부여했다. 그것이 기존정치와는 단절된 아마추어 주부의 정치라는 개념규정이다.

한편, 참여했던 여성들은 2절에서 언급한대로, 생협운동, 직접청구운동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다수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소위 정치 알레르기’ ‘정당 알레르기때문이다. 이 여성들은 기성정치와 구별하기 위해 자치혹은 정당정치와 구별되는 생활정치를 내걸었다. 또한 이 여성들은 기성정치나 기성정당과의 대립축을 여성과 남성과의 대립으로 전환시킨다. 그로부터 생활정치는 여성의 정치로서 의미규정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리인운동 초기의 기초자치단체 의회의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의 대리인은 거의 기초자치단체 의회에서 첫번째의 여성의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의회에서 학교급식, 어린이, 합성세제 등에 대해 질문하면, 연배의 남성의원들은 그 따위 문제는 PTA에서나 해라고 비웃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여성들은 주부경험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원으로 내세워 의회나 자치단체에 결여되어있는 정치적 과제를 여성의 시점이라는 틀을 통해 반영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의 두 주체의 운동에 대한 의미규정은 생활정치의 잠재성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모리모토다카는 즈시의 시민운동에서 “<주부>의 운동이라는 자기규정은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 합의하여 모인 실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개인의 생활우선주의의표준형을 제시하고 말았다”(모리 모토다카 1996:327)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제기한 생활문제는 여성에게 한정된 과제가 아닌 지역주민 일반의 정치과제였다. 스스로의 생활을 바꾸는 동시에 정치를 바꾼다는 생활정치의 이념은 반드시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부감각’ ‘여성의 시점등의 의미규정에 의해 생활정치의 의미는  축소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4-2 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동떨어진 정치참여

 

생활정치의 정의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생활정치는 개인의 생활양식의 변화와 정치의 변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치라고 했다. 의사결정의 장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개인이 스스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과 뗄레야 뗄수가 없다. 2절에서 언급한대로 생협운동으로부터 직접청구운동으로, 다시 대리인운동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참여주체가 자신의 생활을 문제제기하면서 동시에 정치를 바꾸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대리인을 만들어낸 다음이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의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원을 복수화하고, 교섭회파를 구성하며 의원제안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많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구성원들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치단체에서의 정책형성기능을 할 수 있는 로칼 파티를 지향하는 것도 지역네트워크운동 안에서는 공유되어 있다. 실제 의원을 늘리는 것은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적 과제가 운동 속에서 명확해지면서, 그러한 과제해결을 위해 의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의원이 늘어나는 것은 자신의 생활을 정치와 연결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역네트워크운동에서 의회활동의 강화가 반드시 시민활동의 확대와 연동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2절에서 의원경험자들과 회원이나 지역네트와의 인식의 차이를 언급했는데, 그것이 전면화된 것이 국정진출 시도에서였다. ,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취지는 시민이 지역정치에 참가하여 지역의 과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데, 운동이 진전되는 가운데 시민은 분절화된다. 의원, 정책담당, 지역네트의 사무국장 등 비교적 많은 시간을 정치활동에 보내는 사람들은 프로화하고 보통의 회원은 개별의원이나 지역네트활동을 응원하는 지지자로 변해가는 것이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은 두터운 시민활동에 의한 문제해결의 향상과 더불어 의원제안권의 획득을 통해 의회에 대한 영향력의 확대를 도모하지만, 그 시민운동과 의회활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며 어느 사이에 시민활동보다는 의회활동에 중점이 이동하는 경향이 보인다.

3절에서 검토한대로 정치계약으로부터 생활파국회의원, 다시 국정정당 설립이라는 흐름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추구한 생활정치의 프로세스와는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다. 생활정치가 확대되어가기보다는 정당정치에 수렴되어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의 국정 참여에 대해 주체인 여성들은 참여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 여성들에게 필요한 의원은 자신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마을의 문제를 생각하고, 함께 해결해가는 사람이었다. 국회의원 배출이나 국정정당설립 시도는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여성들을 다시 한번 응원하는 정치’ ‘맡기는 정치로 후퇴하게 하는 것이었다. 후보자 선정에 대한 선택권이 회원과 지역네트에 주어지지 않고, 누구인지도 확실히 모르는 후보자에게 투표하라는 것은 단지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 늘어나는 것뿐으로 정권획득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인 국정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온 생활정치의 이념을 스스로 부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지역 문제에 집중하면서 생활정치의 주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전국정당을 만드는 것에 의해 비약적으로 생활정치를 확대하고자 하는 발상과는 대립한다. 생활정치는 이념만을 말하여 확대되는 것이 아니며 시대의 변화에 의해 순식간에 확대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을의 문화나 전통의 형성에서처럼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리라. 한편, 정당정치는 생활정치의 확대에 좋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생활정치를 근저에서부터 규정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네트워크운동 여성들이 정권교체의 희망이 각지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던 시기에도 그것에 편승하지 않고 지역에 뿌리를 둔 활동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던 것은 중요하다.

 

4-3 생활정치의 네트워크의 경직성

 

생활정치의 형태로서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의원과 후원회라는 종래의 정당정치의 형식이 아니라 대리인과 지역네트라는 문제해결 시스템을 만들었다. 프로정치가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신탁, 위임하여 그 정치가를 응원하는 정치에 대한 자기반성으로부터였다. 그것은 정치가에게 지역이나 집단의 운명을 맡겨 분배정치나 이권정치로 귀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신에 지역네트워크운동은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성실한 활동을 통하여 발견되는 정치적 과제를 대리인이라는 파이프를 활용하여 해결하는 형식을 취했던 것이다. 대리인은 어디까지나 역할분담이며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문제해결방식에서는 정치가가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생활, 정치적 요구가 선행한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국정정당가입방침을 비판하는 논리로서 지역네트가 주목한 것은 네트워크형조직이었다. 당사자의 개념에 의하면 네트워크란 자발성에 기반하여 느슨하게 연결된 횡적인 관계이며 상호부조와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네트워크형로칼파티에서는 다양한 생활문제에 대하여 다양한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다. 그러나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국정진출 시도에서는 대등하고 수평적인 조직보다는 위로부터의 방침을 지역네트에 강제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강령에 기반한 정당조직의 중앙당과 지부와의 관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역네트가 중앙당과 지부라는 조직형식이 아니라 지역네트간의 수평적인 네트워크조직을 지향하는 점은 중요하다. 단일 방침에 따라 설득과 동의를 요구하는 경직된 조직속에서는 다양한 생활의 요구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지역네트워크운동안에서는 생활정치가 정당정치에 포섭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 존재한다. 그러한 저항은 의회활동보다는 시민활동에 중점을 두거나 정당정치와 생활정치를 명확한 선에 의해 구분하여 정당정치에 포섭되지 않는 생활정치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서 나타난다. 물론 지역정치와 국정과의 구분이나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구분은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선긋기라기보다는 정치적 전략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한 지역의 고유한 과제 해결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지역네트의 구성원에게 생활정치의 다양한 요구를 정당정치안에서 해결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은 지지정당 없는층이 단지 정치적 무관심층이 아니라 정당정치에 대한 강한 비판세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마추어나 발런티어 활동에 의존하는 생활정치가 정당정치와 같은 수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면 정당정치에 휩쓸려버릴 위험성이 높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네트워크형정당을 새롭게 만드는 것, 혹은 국정정당에 가입하여 국정정당을 변혁한다는 것은 로칼 파티의 야심찬 기획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지역에 꼭 필요한 활동을 지원하고 소수이기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정치에 연결해가는 것이야말로 생활정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이 그러한 이념으로부터 이탈하는 즉시 생활정치의 주역들은 정치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정치는 4년에 한번 있는 투표를 통해 정치가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정당정치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활정치는 일상성에 기반한 정치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 확대된다. 지역네트워크운동은 그 이념상 참여와 탈퇴의 자유도가 상당히 높다. 직업적 구속도 규제도 의무도 없다. 조직의 효율성 증가를 위해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일부의 활동가는 강한 연대를 가진 조직을 지향하기도 했으나 모든 회원을 강한연대구조에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3절에서 본 것처럼 생활정치의 형식인 네트워크가 경직되거나 네트워크안에서의 충분한 합의없이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추구했을 때 생활정치의 이념은 압살되고 마는 것이다.

 

5. 마무리           

 

국정참여가 실패로 끝난 후 지역네트워크운동은 로칼파티노선으로 회귀하여 의원입법과 자치단체장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2000년 지방분권추진일괄법의 성립에 의해 의원입법에 필요한 의원수가 정원의 12분의 1에서 8분의 1로 줄어들어, 소수파라도 의원입법의 가능성이 생긴 것도 하나의 조건이 되고 있다. 한편, 의원입법의 추진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의회활동과 시민활동의 병행에 중점을 두어온 것으로부터 의회활동에로의 중심이동을 예고하는 측면도 있다. 또한 자치단체장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국정참여의 실패로부터의 방향전환으로서, 지역네트워크운동의 문제해결능력을 높이는 수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8년 요코하마시장선거, 2001년 카와사키시장선거, 2003년 카나가와현지사 선거, 2003년 아츠키시장 선거등 모든 시장선거가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지역네트워크운동이 자신들의 후보를 내어 자치단체장 선거에 임했을 때 거의 승산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방침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주목된다.

한편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새로운 접점의 모색이 선거와는 다른 국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사업으로서의 워커즈컬렉티브의 제도화를 위한 활동이다. 1998년에 NPO법이 성립하여 많은 워커즈 컬렉티브가 법인격을 획득했으나 NPO법인격과 워커즈 활동과는 다른 점이 많아서, 현재 워커즈는 독자적인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민입법, 의원입법을 통한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생활정치와 정당정치와의 협력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글에서는 지역네트워크운동의 생활정치의 이념이 확대되는데 장애요인이 무엇인가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생활정치와 정당정치는 대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접합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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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지역네트워크운동은 특정조직이라기보다는 기초자치단체별 네트워크조직과 그것들의 네트워크로서의 도도부현조직이 연계하여 전개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카나가와현단위의 연계조직을 나타내며, 기초자치단체별 네트조직은 각각 고유의 명칭이 있으나, 예를 들면 카와사키시 타카츠구의 네트워크조직의 이름은 타카츠네트로 표기한다. , 카와사키시타마구의 지역네트워크조직은 당사자들이 부르는대로 네트타마로 한다. 또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이라는 현단위의 조직에 대해 기초자치단체의 네트조직을 가리킬 때는 지역네트라고 부르기로 한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37개의 지역네트로 구성되어 있으나 2004년 요코하마네트의 이탈로 현재는 19지역네트, 34명의 의원을 가지고 있다. 독립한 요코하마네트워크는 16지역네트와 5인의 의원을 갖고 있다.

[2] 생활클럽생협에 대해서는 사토요시유키 편저(1988), 사토∙아마노∙나스편저(1995)를 참조할 것.

[3] 대리인운동에 관해서는 나스 외(1993)를 참조할 것.

[4] 후쿠오카 네트워크는 그린코프생협을 모체로 하고 있다.

[5] 2003 11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초대사무국장 시라이씨의 인터뷰. 생활클럽생협의 남성리더들의 운동참여동기에 대해서는 이와네(1978), 이와네(1993), 요코타(1989), 요코타(2002)를 참조할 것.

[6] 20049, 생활클럽생협 카나가와의 전무이사(당시)였던 G씨 인터뷰

[7] 20038, 카와사키시대리인운동선거대책본부장(당시)이었던 M씨 인터뷰

[8] 20038, 카와사키시대리인운동선거대책본부장(당시)이었던 M씨 인터뷰

[9] 2기까지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후보로서, 3기째는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을 이탈하여 의원에 당선되었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O씨는 자신의 역할로서 시민운동에 의해 만들어낸 즈시시장을 보좌하는 것이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조직의 임기제한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역과제가 현단위의 조직적 규정보다 우선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0] 이 사업체는 워커즈 컬렉티브 혹은 시민사업체라고 불린다. 육아, 가사, 개호 등 복지관계의 사업체를 공동출자, 공동운영, 공동노동하는 것이다. 영리가 목적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11] 교섭회파(交涉會派)에 필요한 의원의 수는 지방의회별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당시 카와사키시의회에서는 3인 이상이 교섭회파가 될수 있었다. 각 회파의 대표자회의로서 의회운영을 담당하는 의회운영이사회의는 교섭회파로부터 1명씩 보내 구성한다. 본회에서의 각회파대표질문도 교섭회파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교섭회파인가 아닌가에 의해 의회 전체에서의 영향력이 큰 차이가 난다. 비교섭회파는 일반적으로 외회활동을 제대로 하는 회파로는 간주되지 못하고 의회내에서는 영향력이 작다.

[12] 200211, 요코하마네트 회원 K씨 인터뷰

[13] 20031, 카나가와현의회의원 W씨 인터뷰

[14]이러한 견해는 지역네트워크운동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대체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의 지역네트체제가 확립된 것은 1991년 통일지방선거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그 전에는 하나의 기초자치단체에 복수의 지역네트가 있는 경우도 있어, 기초자치단체별 네트라기 보다는 서클형네트에 가까웠다.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1991년통일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 행정구역단위로 지역네트를 재편성했다. 또한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대표도 5인공동대표로부터 2인공동대표 형식의 복수대표체제를 취하다가, 1991년부터 1인대표체제로 재편했다. 나아가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사무국장을 생협직원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자신이 맡게된 것도 1994년부터였다. 한편으로는 중앙집중성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고 적어도 표면적으로 생협과 조직적으로 거리를 둠과 동시에 여성들이 조직적 리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생협의 남성리더는 정치고문으로서 정치활동에 대한 방침과 여성활동가들에 대한 지도를 계속했다.

[15] 20039, 카와사키시의회의원(당시) E씨 인터뷰

[16] 1993년1월28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운영위원회, ‘중의원선거방침

[17] 20034YS씨 인터뷰

[18] 200211, 카나가와네트 회원 K씨 인터뷰

[19] 20041,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전 대표UT씨 인터뷰

[20]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과 민주당과의 정치계약의 내용은 크게 3가지이다. 1.여성의원을 늘리며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정책, 제도의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2.관주도에서 민주도로 정치를 전환하기 위해 NPO, NGO, 협동조합등의 시민섹터형성을 위해 정책,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한다. 3. 생활복지형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를 위해 노력한다(1996년 10월5,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과 민주당이 교환한 정치계약문서).

[21] 1997년2월6, 미야마에네트, ‘민주당카나가와(가칭)설립에 대한 참가 및 민주당카나가와(가칭)참가의 원칙, 회파형성의 원칙()에 대하여

[22] 20038, 카와사키시의회의원 I씨 인터뷰. I씨는1997년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이탈 이후 현재 카와사키시의회의원 4기째이다.

[23] 실제 19971월의 기관지 NET138호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어린이들의 세대에 빚을 남겨주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비세 인상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당시 지역네트와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은 서로 소비세에 관한 입장의 차이를 분명히 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24] 1997년2월14, 미야마에네트와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과의 면담기록. 당시 타카츠네트의 회원들은 면담장에 업저버로서 출석하여 논의 내용을 전부 기록했다. 필자는 그 기록을 20038월 타카츠네트로부터 입수했다.

[25] 20049월 타나가와네트워크운동 대표 마타키 쿄오코씨 인터뷰. 마타키씨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있다, 민주당 설립 시도야말로 시대의 흐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과의 파이프역할은 생협의 남성리더이자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고문인 요코타카츠미씨가 담당했고, 카나가와네트워크운동 출신의 후보자도 그 가운데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26] 20037, 이와네 쿠니오씨 인터뷰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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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2일에 있었던 인천 사회포럼의 주민자치 세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지역민주화와 풀뿌리 정치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역 민주화의 위기1)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으로 항시 지적되어 온 ‘관객민주주의’ 현상은 최근 들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관객민주주의란 시민들은 정치의 관객(spectator)으로 머물러 있고, 시민들의 삶과 관련된 결정은 관료와 직업정치인들이 내리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의 저조한 투표 참여율은 그나마 선거 시기에서조차도 유권자들이 관객의 상태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적극적 의사표현의 방법일 수 있지만, 최근의 저조한 투표율을 이렇게 해석하기에는 뭔가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관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투표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극히 제한된 선택지일 뿐이다. 그리고 선거일 다음날부터 유권자들은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런 현실을 루소(J.J.Rousseau)는 ‘영국 국민들은 선거때에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라고 표현하였으며, 강대인은 “대의 민주정치에서의 시민참여는 정치 엘리트의 주도하에 방향이 설정되면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된다. 일반 시민은 선거일에만 자유로운 뿐이다”2)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들이 구경꾼으로 있는 상태에서, 정책결정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기득권 연합이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은 이들의 논리가 유포되는 매체이다. 이 기득권 연합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가치지향, 정책방향, 이해관계 등을 매개로 형성되어 있다. 국가 차원에도 기득권연합이 형성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는 지역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에는 상대적으로 토건국가의 뿌리가 깊게 잔존하게 있다. 그래서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지역주민들의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보다는 단기적인 땅값상승과 건설이익, 투기이익을 선호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력들은 평등, 인권, 평화, 생태 등의 단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때로는 적대적이다. 그러나 이런 세력들은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선거 때에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있고, 지역 내의 각종 단체들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중앙정당이나 지방자치단체장과 유착되어 있고,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연계되어 있다. 대운하 뿐만 아니라 여러 개발사업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지역의 기득권연합과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이 상호연계되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두고 '개발동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사회의 중요한 정책결정은 이런 국가 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지역차원의 기득권 연합이 주도하고 있다. 시민들은 선거 때에 투표나 해 주면 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시민들이 정치의 관객으로 전락하면 시민들의 입장,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입장은 정치의 영역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다. 시민들의 소박한 상식은 정치의 영역에서 통하지 않는다. 기득권세력의 관심사가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그들의 입장이 관철된다. 이런 정치가 초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의 심화, 부동산값의 상승, 경쟁격화로 인한 청소년들의 소진, 환경파괴와 생태적 위기 등이다. 특히 지역에서는 개발과 관련된 기득권 집단, 이익집단들이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그 개발이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미칠 장기적 영향은 정책결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일부 지역주민들의 저항은 계속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들은 찾기 어렵다.

빈곤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민들은 정부와 사회가 풀어야 할 근본적인 과제중 하나가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구조상 정책의 우선순위는 ‘개발’에 있지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복지 실현’에 있지 않다. 그것은 현재의 의사결정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기존 방향(‘개발’과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빈곤층에게 시혜를 베풀겠다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교육의 시장화, 경쟁지상주의의 지배는 청소년들의 삶의 자양분을 빨아들이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있다. 학교교육도 말로만 평준화이지 이미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선 지 오래이다. 이런 교육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제어장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 연합은 그런 교육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삶의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지 않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민주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문제들도 해결되기가 어렵다. 기득권 집단들이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이상 삶의 문제가 풀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풀뿌리운동과 지역정치운동


‘정치’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그 본래의 의미보다는 선경험적 인식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중앙의 정치는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정치에 대한 이미지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역’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많은 의미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앙의 정치와 같은 ‘가까이 할 가치조차 없는 것’ 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목표로 상정되곤 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치라는 용어로부터 무덤덤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역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다. 지역 대중인 주민들의 생활과 문제제기가 모두 지역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 속에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에 대한 관심은 1991년 지방자치제가 처음 실시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역사회운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역정치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첫째는 지방의회 등을 통해 공식화・제도화 되어 있는 정치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둘째는 지역 시민들의 영향력 강화, 주민자치, 참여 등의 대중적 정치세력화라는 차원에서 인식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지역정치라는 개념에는 이 두 가지 개념이 모두 녹아있기도 하다. 따라서 지역정치라는 용어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보다는 누가 어떤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풀뿌리적 가치를 갖는 지역정치, 즉 풀뿌리 정치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언급하고자 한다.

풀뿌리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정치라는 개념을 대입시켜도 위의 두 가지 개념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후자의 내용이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기본적으로 풀뿌리운동이라는 것이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다수 대중’ 즉 민초들이 주체가 되어서 사회를 변화・발전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뿌리 정치라는 차원에서 지역정치에 접근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그 영향력을 발휘시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관점으로 채택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대의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하여 시민들의 자치적인 활동 영역과 그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운동에 있어 풀뿌리적 가치와 활동방식이 중요한 만큼, 지역정치운동도 이러한 기본적 입장과 문제인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풀뿌리운동과 풀뿌리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그 원칙이나 활동방식, 지역사회 변화의 비전 등에 있어 상호 긴밀한 연관성 갖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운동, 특별히 풀뿌리 정치운동이라 표현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제라는 틀 속에서 보다 나은 우리의 대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기보다는(실제 참여라기보다는 수동적 존재로의 전락이라 볼 수 있다), 시민들 스스로의 적극적 참여와 이를 통한 지역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를 보다 강화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중요시 한다.



3. 대의제 민주주의와 풀뿌리 정치운동


대의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을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진 이들의 전문적 영역으로 구분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풀뿌리 정치운동은 그 주체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즉,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는 전문적 정치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역의 시민운동단체나 잘 훈련된 운동가도 역시 아니다.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는 일반 시민들이다. 이는 굳이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릇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 정치의 진정한 주체는 그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운동의 일반적 개념 역시 그 사회의 주체인 시민들의 조직화와 이를 통한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스스로 주인됨을 선언하는 실천을 통할 때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운동 일반의 개념은 지역정치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대의정치와의 관계는 그러한 전략적 관점을 공고히 한 상태에서 고려해야 한다.

이는 대의제 민주제 하에서 지역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길이 보다 많은 후보자를 출마시켜 ‘의회를 장악하자’ 거나 자치단체장에 출마하여 당선시키고자 하는 표면적인 것으로만은 달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 역시 지역사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단순히 표면적인 변화를 가져올 뿐이다. 일단, 이 방법만을 주장하는 경우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비판하면, 일종의 엘리트 중심의 운동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몇몇 괜찮은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줌으로써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변화만을 추구할 경우에는 시민들이 관객으로의 방치되는 문제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착이라는 점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람들은 자칫 이러한 방법이 문제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경험한 사회적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러한 운동의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평할 수는 없다. 사회운동의 전술은 매우 다면적인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단순한 인적 교체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이나 시민들의 삶의 질이 건장하게 변화되고 발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운동에서 풀뿌리운동이 강조되는 이유는 생활인들을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개인 또는 집단이 정치권력을 획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신뢰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의 논리이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운동의 논리 또는 방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제도 정치권에 대한 인적 투입 또는 인적교체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목적과 이유로 대의민주제 하에서 제도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가 전제된, 즉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운동의 전략이 전제된 상태에서 제도정치권에 대한 접근이야 말로 풀뿌리 정치운동의 중요한 한 가지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당연히 제도 정치와 풀뿌리 사회운동의 밀접한 연계와 역할분담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운동은 ‘정치’ 영역에 대한 관심을 보다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여 스스로 대안적 가치와 질서를 사회 내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풀뿌리운동도 결국은 자신들이 터한 지역사회로부터 우리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과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의 영역에 다름 아니다.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과정과 그 조그만 실천활동 하나하나가 바로 올바른 의미의 정치 활동이며, 그 활동의 영역이 정치의 영역과 다르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정치가 시민들과 유리된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것이라는 점이 보다 명확히 전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관객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제도 정치의 문제를 바라볼 때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소 적게 훼손되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4. 풀뿌리 관점에 충실한 대의 정치 참여의 외국 사례


작금의 우리 지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대의제 정치의 영역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의제 정치의 민주적 질서 회복과 강화가 단지 몇몇 개혁적 인사의 제도정치 진출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정치는 본래의 자기 역할과 전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의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개입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정당의 논리와 관성과는 다른 방식의 대의제 정치 개입에 대한 입장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고려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지역에서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한 편으로는 대의제 정치에 대한 개입과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란 이들을 정당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집단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랫동안 모색되어 온 시도 중의 하나는 지역정당(local party)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이다. 지역정당은 단지 중앙정당과 같은 성격의 정당이 지역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역정당은 기성 정당과는 그 속성이나 가치, 그리고 활동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기성 정당의 ‘지역구’가 아닌 ‘지역정당’이 가지는 의의는 시민들의 대중 조직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즉,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행사하는 정치적 조직체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소수의 ‘결사대’를 통한 정권 장악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 기성정당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즉, 기성 정당과는 달리 시민 대중들의 집단적 정치세력화를 주요한 전략으로 삼으면서, 그러한 전략을 실현하는 한 방편으로 제도 정치권에 대한 진입을 꾀하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정당의 목적은 제도 정치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진입시켜 이들로 하여금 지역의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제도 정치권과 풀뿌리운동의 조흥(助興)을 통해 지역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풀뿌리(정치)운동이 지역정당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지역정당의 사례들로부터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추출할 수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동경생활자네트워크 등의 생활자 네트워크가 그러한 사례로서 적절할 것이다. 이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네 가지 시사점을 추려보았다.

첫째 이들의 중요 관심사는 제도정치권에서 다수를 차지하여 그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있기보다는 자신들이 내보낸 정치인과 회원들과의 유기적 소통을 더욱 중요시 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의회 내에서 소수라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을 통해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회원들이 정치적 참여와 영향력을 강화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에 활동의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슈의 정치적 관철 역시 의회 내 다수로서의 힘에만 의존하려 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관철시키도록 하는 데에 보다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들의 경우 자신들이 내보낸 정치인에게 일정한 시기동안만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2기 8년이 제도정치권에서 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는 제도 정치권에서 일할 기회를 참여자들의 지도적 역량이 강화되는 계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회를 보다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지역정치를 발전시키는 길이고 결국은 지역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것이라 여긴다. 물론, 이는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전문적 정치인의 양성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지역사회의 지도력을 훈련받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보다 중요한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2기 8년제’는 결과적으로 지방정부와 의회의 현실을 몸으로 경험하고 돌아온 탁월한 주민활동가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제도정치권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는 개인적 결단에 앞서 대중적 결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는 스스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내보내고 싶은 사람을 출마시킨다”는 슬로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는 지역정당이 특정한 몇몇에 의해 주도되는 것을 막고, 집단적 정치세력화의 장으로서 자리잡도록 하는 매우 유용한 장치이다.

네 번째로 언급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은 ‘대리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인은 단지 그를 고용한 사람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한다는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대리인은 그를 고용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고, 또한 수시로 그를 고용한 사람의 의사를 묻고 그 의사를 충실히 전달할 때에만이 ‘해고’되지 않고 대리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엘리트에 의한 정치가 아닌 대중의 정치를 강조하는 의미이다.

물론, 일본의 생활자 네트워크들이 반드시 이상적인 지역정당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그 자체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재어 있고, 또 많은 이들에게 비판거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네 가지는 바람직한 지역정당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풀뿌리 정치운동과 2010년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도 선거 시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중요한 시기적 특성이 있다. 그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의 정치를 풀뿌리 정치운동과 밀접히 연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은 풀뿌리(정치)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계기(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 시기에 대한 준비라고 해서 모든 풀뿌리 정치운동의 전술이 누구를 출마시키고 당선시키느냐에만 집중될 필요는 없다. 후보 출마에서부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고양시키고 그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선거 시기에 출마를 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하는 반론이 주위에서 만만찮게 제기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풀뿌리 정치운동과 선거라는 대의제 정치 영역의 핵심적 사건과의 관계를 너무 폭좁게 바라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실상 천안의 복지 네트워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거 시기에 몇 명을 제도정치권에 진출시킨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훨씬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2010년에 대한 준비라는 것도 반드시 2010년이라는 절체절명의 기한을 규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적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 일정한 계기와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시기이며, 그 시기를 보다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 점에서 특히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운동은 지금부터라도 일상적으로 정치운동을 준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스스로의 역량과 조건에 적절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률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공통된 준비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의 모든 활동이 지역정치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전파할 필요가 있다. 사실, 풀뿌리운동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모든 활동들은 그것이 아무리 조그맣고 소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역정치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주민자치센터의 자치기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활동도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활동도, 주민들의 소모임을 결성하고 이를 운영하는 활동도 모두 지역사회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핵심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오해이다. ‘정치’를 자신들과는 무관한 전문 정치인의 영역으로 미뤄놓고, 그것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진정한 정치는 우리 땅에서 존립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이 정치이고, 정치는 우리의 일상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며, 정치의 목적은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공감대를 이루려는 노력은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지역에서의 네트워크 결성을 준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역정치운동은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기성 단체들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슈를 전면에 내걸기가 그리 쉽지도 않다. 그보다는 본격적인 지역정치의 지향을 갖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여 이들로 하여금 지역정당과 같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실 조건에서는 공식적인 지역정당의 건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네트워크가 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또한 장기적으로 지역정당의 모체로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 체계의 구축은 각 단체의 활동을 통해 지도적 역량을 구축한 주민 활동가 또는 주민 지도자들이 단체의 영역을 벗어나 지역사회 전체를 계획하고 실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를 새로운 시민들을 조직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풀뿌리)지역정치운동에 대한 고민과 소통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단위는 선거 시기에 후보 출마가 적절한 전술적 선택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등의 사안을 보다 개방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적절한 조직적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앞의 두 가지와 연계되는 것이지만, 지역정치 교육의 기회를 만드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지역정치 교육이라는 것이 정치교육 강좌를 만들어 무작위 시민들에게 홍보해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시민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문제들, 예를 들면 시민들의 숙원 또는 현안 등을 지역 재정의 문제와 연동시켜 설명하는 등을 통해 지역정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고 또한 그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등으로 접근한다면 보다 좋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원론적 제안이지만 선거든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집단적인 정치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든 풀뿌리 기반을 확대・강화하는 일상활동이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상활동을 통한 주민기반이 강화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전술적 선택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 이 절(1. 지역 민주화의 위기)은 지난 8월 한국사회포럼에서 발표한 하승수의 글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의 제안 - 지역사히 민주화와 2010년 지방선거"를 발췌

2) 강대인 "삶의 문화, 삶의 정치; 새문화를 여는 또 하나의 대안", 정문길 외  『삶의 정치; 통치에서 자치로』 , 대화출판사, 1998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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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비전만들기



이 호(한국도시연구소 주민운동실장)



논의의 제기 배경

1990년대 들어오면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지역사회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정치적 정당성을 추구하던 80년대의 운동이 그 효력을 잃어가면서 점차로 사회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정당성 건설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대안적 사회만들기이다. 그러나 전국적 이슈를 통해서는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가능하지 않았다. 반면, 지역사회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기반한 이슈로 인해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끌어 낼 가장 유력한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역사회운동은 여전히 그 운동의 주체인 주민들로부터 유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그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뿌리내림 없이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화・발전시킨다고 하는 논의는 또 다른 정치엘리트들의 주도성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당시에 전문가 및 전문적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지역사회운동은 지역에서 일정한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역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이끄는 역할은 미흡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만으로는 지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음이 많은 지역사회운동가들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회의 변화는 외적인 조건의 변화보다는 그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그를 통한 주체의식의 성장을 통할 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문제에 착근한 지역사회운동의 성과들을 서서히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뭔가 새로운 세상이 올 것만 같던 2000년도 훌쩍 5년이나 지나, 이제 2000년대라는 것이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 진부함이 관성이 되어가던 시기에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고민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까지의 성과들(물론, 아직도 풀뿌리에 기반한 성과는 매우 미약하다)이 과연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어떤 의의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즉, 개별 단체들 및 모임들의 성과들은 하나 둘 쌓여가지만, 결국 이러한 성과들이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양한 활동의 영역들이 개발・구축되어 왔고, 또한 그러한 활동 속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또한 과거에 비해 활성되어 가고 있지만, 그것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힘을 발휘한다고 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개별적인 모임과 활동들 자체도 그 속성을 들여보면, 분명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결집되는 흐름은 아직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즉,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기존의 활동성과들을 비판하면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활동성과들을 보다 사회운동의 지향성에 따라 질적인 발전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실천계획 전략 차원으로 고민되어지고 제기되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지역사회의 단편적 쟁점들의 해소보다는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지역사회의 발전을 지역사회운동이 주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지역사회의 개별단체의 활성화와는 조금 달리 접근할 문제이다. 물론, 사회발전의 지향을 지니는 개별적 사회운동단체의 활성화가 지역사회의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사실이나, 실상 이는 가능하지도 그리고 바람직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지역사회의 비전과 이를 통한 발전은 지역주민들 다수의 공유와 참여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은 개별 단체 차원보다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도출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고안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반으로 실천적 비전을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상 그러한 기반 없는 비전 만들기는 또 하나의 그림그리기에 불과할 수 있다.


지역사회 비전만들기의 주체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바람직한 정책의 나열과는 다르다. 물론, 정책의 나열 자체도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을 나열하는 것은 실상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지역사회에서는 지방의제21을 만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정책적 차원에서 실천을 매개하기 위한 것은 바로 이 의제에 그 핵심적 내용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이 의제를 작성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그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주체와 의제를 작성한 주체들 사이에는 그리 차별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또 새삼스럽게 지역사회 비전을 만들자고 하는가?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 진 지방의제21은 여러 가지 장점과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이 논의와 관련해서는 그 의제를 만드는 과정이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널리 소통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그 실천계획에 있어 지역사회의 주인이자 지역사회 비전만들기와 발전의 주체인 주민・시민들의 구체적 참여계획이 이들로부터 도출되지 않음으로써 단지 선언적 실천계획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지역사회 비전만들기가 새롭게 주장되는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이라는 점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에 있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우리의 논의가 또 다시 사회운동가들의 논의와 실천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시민의 참여를 표방하지만 결국 시민운동단체, 그 중에서도 시민운동 활동가들만의 참여에 그치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의 참여가 곧바로 건강한 시민들의 참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양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비록 시민단체들이 다수 시민들을 대변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이의를 달 수 없겠지만, 그리고 시민운동단체들이 소수 주민만을 대변하기보다는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만, 다수 시민들이 시민운동단체에 자신들을 대표하도록 위임한 적도 없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운동단체, 특히 전문화된 시민운동 활동가의 참여에 대한 역할이 구분되어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양자 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면, 몇몇 시민운동 명망가 또는 활동가들의 참여가 시민들이 참여로 둔갑될 위험이 높다. 그럴 경우 시민운동은 오히려 시민들을 주체적 참여의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무임승차자로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 어느 시민운동단체도 일부러 시민들의 참여를 가로막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나름대로 갖은 방법들을 동원하곤 한다. 하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은 산적함에도 시민들의 참여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들은 당연히 시민사회 일반의 이해를 ‘대변(advocacy)’하는 운동방식을 채택하곤 해왔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대중적 참여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시민운동의 방법이 잘못된 것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민운동가들이 시민의 참여를 목청높이 외치는 것만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 자체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중심의 사고는 만연했지만(task oriented),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과정 중심의 사고(process oriented)는 미약했다고 판단된다. 세상에 권한 없는 참여를 매력적이라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는 시민운동단체나 시민운동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동원 대상임에도 그 참여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기쁨과 보람을 느낄 사람은 없다. 기쁨과 보람(혹은 돈?) 없이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참여의 행위에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 진영이 정부의 행동에 대해 ‘동원’이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주체는 일반 시민 또는 주민 대중이다. 시민운동단체와 전문적 시민운동가는 그러한 주체를 형성하는(자치적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이들은 시민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주체이기보다, 일반 시민대중의 참여를 조직하고 매개하고 지원하며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중앙시민운동이 아닌 지역의 시민운동이 지닌 장점과 특징을 잘 살리는 것이다. 물론, 모든 시민운동이 이러한 대중운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조차 이러한 풀뿌리적 관점을 간과한다면, 지역사회의 시민운동은 또 다른 엘리트운동으로서의 자기 전망밖에는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의 역할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총체적인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든다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비전을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듯한 전문가를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 과정이었다.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고민을 쌓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비전은 전문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통해 비전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전문가는 그러한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현실 가능한 것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또는 자주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이 일반 시민 대중의 역할 영역까지 침범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또 다른 엘리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치이다.

따라서 지역사회 비전 만들기는 비전을 만드는 주체를 형성화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지금의 논의가 당장 내년 선거에 써먹을 공약을 만들고자 한다면, 거창하게 지역사회발전 비전이라기보다는 출마자들의 공약을 만드는 것으로 그 위상을 축소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굳이 시민의 참여니 하는 것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바람직한 정책을 도출해 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 실천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진정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과정에서부터 풀뿌리적 관점을 견지하기를 제안한다. 그럴 경우,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총체적인 지역비전이 도출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정치인이 만드는 지역사회비전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드는 지역사회비전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종종 가장 중요한 것들을 흘려보내는 일을 반복해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비전만들기의 실천

최근에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일단 지역사회에서 중요하게 쟁점이 될 만한 주제들을 골라 이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렇듯 주제분류를 통해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를 접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주요한 내용을 규정하게 되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의 작업에 일정한 조언과 수정을 가하는 것 정도에 그칠 위험이 매우 높다. 이는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을 만드는 과정으로는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전만들기는 정책만들기와 전혀 다른 개념이어야 한다.

비전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적 수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상정한 목표를 달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실천계획을 수립하고 직접 실천해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몇 가지 주제들을 나열하고 그 주제에 맞는 정책 및 실천적 과제를 도출하는 식의 방향은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비전의 내용들을 나열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비전만들기를 위한 참고서로서의 기능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작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그 의제가 제기되고 또 그 실천의 내용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천적 만들기의 바람직한 경로이며, 또한 이 시기에 우리가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를 논의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실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바램과 욕구를 쏟아 붓는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 그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하여 다시 검증받는 등의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지자. 이것은 지역사회운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지역조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가능한 대로 많은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조직하고 중재하자. 최소한 몇몇 전문가와 활동가들에 의해 비전을 만드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럴 경우, 그 결과물은 우리 지역사회의 비전 만들기가 아닌 지역발전 ‘정책’의 제시에 그칠 것이다. 물론, 이 결과물은 선거시에 공약으로 활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따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보다 현재 있는 지방의제21을 수정하는 작업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밟는 방법으로는 마을만들기에서 많이 활용하는 다양한 디자인 게임의 기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숍의 진행에서부터 시민참여자들이 스스로 지역사회의 문제와 개선방향을 조사하고 제시하며 이를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체계화하여 공유하는 법, 우선순위의 도출과 향후 실천계획의 수립 등등에 있어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조사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그 조사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천계획까지 수립하게 되는 과정이 지역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지역조사이자 실천계획 수립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이를 PAR(Participatory Action Research)라 한다).


비전을 만들기 위한 힘(power)의 형성

지역사회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실천해) 가는 힘은 당연히 지역사회의 정치적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가능하다. 문제는 이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형성해 가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현재 제도적으로 주어진 권력에 제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즉, 지방의원 또는 자치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고 당선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이런 시도는 무모할 뿐이며, 설령 그러한 전제 없이 제도적 권력을 일정 정도 차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사회비전 만들기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주장하지 말자.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들이 낳은 결과는 정작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 뿐이었다.

시민들의 참여 없는 제도적 권력의 배분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행동만을 낳을 뿐이다. 제도적 권력은 시민 대중의 권력을 형성하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채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지역사회 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또 이를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이를 어떻게 정치적 힘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똑똑한(?) 몇몇이 시민들을 위해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또 다시 지역정치(권력)의 주변인으로 남도록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바람직한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방법은 시민대중의 정치적 권력을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가 바람직한 지역사회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계기라고 판단한다면, 누구를 출마시키고 당선시켜 우리가 원하던 바를 이루자고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고 이들에 의해 권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 하나의 역할로 누군가 제도적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지방정치인이라는 지위를 통해 이 일을 하도록 하자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제도정치인을 만들고자 하는 논의는 그 제도정치인을 통해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그 제도정치인의 역할을 지역사회비전을 만드는 주체를 형성하고 비전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역할분담의 차원으로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대중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조직을 지역 내에 건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 정치조직의 가장 큰 목적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기존 정당과 같이 많이 출마시켜 제도화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출마시켜 제도화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은 기성 제도정당의 역할이다. 이들에게는 그런 목적이 있으며, 그것이 잘못이라 볼 수 없다. 이러한 정당과 시민사회운동과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은 긴밀한 연대 또는 네트워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정당과 연대한다는 것은 시민사회운동의 역할이 정당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또 달라야 한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통해 스스로 대안적인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시민대중권력의 창출, 그것이 시민사회운동이 기성정당과 달리 지향해야 할 바라 하겠다. 이 권력은 기존의 제도화된 권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의미의 권력인 것이다. 즉, 시민사회운동은 기존의 권력을 우리가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민대중의 정치조직을 지역 내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다양한 자원들 간의 네트워크 건설이 필요하다. 어차피 개별 시민운동단체가 지역사회 발전의 총체적 비전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시민운동을 평가하면서, 개별 단체의 발전이 곧바로 그 지역사회 전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발전을 위한 비전은 그보다는 이러한 개별 자원과 성과들을 해당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통해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연대(회의체, 협의회, 연합 등)와는 다른 개념이다. 연대는 상시적으로 함께 한다는 개념인데 반하여 네트워크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가 가진 일정 자산(재능)만을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는 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각 부분들이 크든 작든 자신들의 역할을 나누어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들이 하나의 지향 하에 각자의 역할분담을 통해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 위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하나로 모아 또 다시 골고루 분배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 위한 네트워크는 단체 간 네트워크보다는 인적 네트워크가 현 시기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래도 단체가 네트워크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게 되면, 이중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네트워크가 원만히 운영되기 힘들다. 그리고 아무래도 단체들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활동 전면에 정치적 활동을 내거는 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체 간 네트워크는 기존 단체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사회비전 만들기는 어느 일방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지역사회를 시민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지향에 동의하는 지역사회의 광범한 자원들의 네트워크 건설을 통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겠다.


글을 나오며

이 발제문의 한계는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상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들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들은 이어지는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들이 그려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제안하고 주장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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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21일 문화개역시민연대와 사회당청소년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의 정치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공청회 자료집입니다.

청소년의 정치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1. 기획취지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문화연대)와 사회당, 민주노동당은 오는 6월 13일 지자체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재의 만 20세 선거연령제한의 타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만18세로의 하향조정을 주장하고자 한다. 또,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권이 정치권의 이해 논리속에서 방기되고 청소년들의 탈정치화가 조장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청소년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 토론회는 단지 청소년 선거연령의 하향 조정화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 청소년들의 참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자 한다.

2. 공청회 개요

▶ 주제 : 청소년의 정치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 일시 : 2002년 5월 21일(화) 오후 6시
▶ 장소 :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 주최 :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 사회당 청소년위원회
▶ 주관: 문화연대 청소년문화위원회

<내용>

사회: 전효관 (서울시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부소장)

발제 1 청소년과 정치참여의 권리 --- 이동연(문화연대 청소년문화위원회 위원장)
발제 2 청소년 연령과 선거권의 문제:법적·제도적 검토 -- 박혜린(사회당 청소년위원회 사무처장)
발제 3 청소년 유권자 시대를 준비하자: 10대 청소년의 사례 --- 강경필(미래유권자연대 집행위원장)

토론 :
이철호 (전교조 학생청소년위원회 청소년인권 분과 분과장)
박준표 (청소년 웹연대 with 공동대표)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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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정치"-이호
2006년 7월 5일(수) 오후 3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있었던 "지방선거 이후의 풀뿌리지역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 발표글입니다.
"일상의 정치"라는 주제의 한국도시연구소 이호 연구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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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정상호
2006년 7월 5일(수) 오후 3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있었던 "지방선거 이후의 풀뿌리지역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 발표글입니다.
"‘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제의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의 정상호 박사님의 글입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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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찾아야 - 김태선 의원을 찾아
인터뷰 : 김태선 의원(노원구의회)

당신은 왜 지역정치인이 되려고 하십니까? 이 근원적인 물음에 선뜻 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허긴, 너는 왜 운동을 하느냐? 너는 왜 이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청산유수 말문을 여는 사람이 드문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매사에 맺고 끊음이 똑 부러지는 사람이거나 확고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포지션과 정체성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머리가 차가운, 그야말로 ‘냉혈한’으로 취급받기 십상이거나 정을 나누기 부담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진정성이 엿보이는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들에게 정이 더 가고 인간미 풍기는 사람이라고 우리 스스로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왜 지역정치인이 되려고 하십니까? 이 근원적인 물음에 이제는 선뜻 답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질문은 지역정치인이 되려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성을 띄고 있지만, 특히 지역운동을 확장해서 고민하는 사람에겐 더욱 절실한 해답 찾기이다. 지역은 중앙과 대별되는 보편적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끼리의 다름이 존재하는 특수성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에 그 답은 ‘하나’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지역은 상식이 통하지 않은 지방의원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바꿀 수만 있다면........하는 간절함이 눈에 선할 것이다. 어떤 곳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의회 기능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체장을 목표로 나의 꿈을, 또는 개혁세력의 꿈을 집행해보고자 하는 이들도 분명 있다. 정체성이 모호하고 아직은 부족한 사람들로 꾸려졌지만 2006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 그 답을 찾으려는 지역도 있을 것이다. 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고 비꼴 수만은 없는 일이다. 반면 철저하게 자기 정체성을 갖고 나가려고 하는 지역도 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에겐 소중한 경험들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과 상황이 어떻게 지역운동을 풍부화시킬 것인가, 또는 ‘왜’라는 목표를 덮어버릴 수는 없다. 뚜렷한 목표가 설정될 때, 준비 과정, 해결방식, 연대의 범위 등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보다 명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은 노원구의 김태선 의원이다. 98년을 딛고 2002년을 뛰어넘어 2006년을 멋지게 준비하려는 젊은 지역정치인이다. ‘왜’라는 목표를 찾고자 김태선 의원을 만난 것은 아니다. 다만 풀뿌리단체와 끊임없이 호흡하려는 중진(?)의 지방정치인이 드문 상황에서 그가 경험하고 느끼고 구상하는 지역정치의 상을 듣고 싶었다. 그를 알게 된 것도 10년이 넘었고, 허물없이 지내는 관계이긴 하지만, 오늘 인터뷰는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고 진행했다.(뭐, 특별한 격식이 아니라, 허물없는 사이임에도 진정성을 갖고 인터뷰했다는 뜻이다)김태선 의원은 대학졸업 후 1년 동안 ‘월드비전’이라는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 후, 본인의 말로는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서 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게 됐고, 97년, 동네 수락산에 들어설 도로 반대운동에 나섬으로써 지역운동의 첫 발을 디디게 된다. 도로는 결국 깔리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주민운동은 상당한 모델이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먹고 사는 문제로 송파구 복지관에 잠깐 다니다, 주민들의 권유로 98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98년, 2002년 모두 민주당을 끼고 출마했다. 이 정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그와 인터뷰를 시작해보자. 잠깐. 인터뷰 내용이 무지 길다. 3시간 정도 했던 것 같다. 길다고 멈추지 말고 긴 호흡으로 읽어보시길........

먼저 지방의원에 출마하게 된 계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물었다.

"수락산 싸움이 결정적인 계기였죠. 그 싸움이 97년 3월부터 97년 말까지 지속됐었고, 그 때까지는 도로 계획만 있었던 거고, 거의 1년간 주민들이 막은 거죠. 97년 말에 3명의 주민을 구속시킨다고 하는 사태가 생기는 바람에, 구속당하고 피해보는 것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 주민들이 포기를 했죠. 그 지역은 제가 사는 동네에요. 사실, 제가 재선하고 나서는 전체적인 행정이 파악이 되지만, 당시에는 시민운동이나 지역운동의 경험은 있지만, 의회에서 뭘 하는지 제대로 몰랐던 것이 사실이죠. 의회 가기 전에 준비를 조금 더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사실, 이런 내용을 어디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죠. 하여간 지역에 생활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막연하게 생각했었죠. 그렇다고, 좀 더 준비를 했더라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웃음) 최소한 들어가서 몇 가지 시행착오라도 배울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죠."

수락산 도로 반대운동이 지방의회 출마의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은 분명하고, 지방의회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감을 잡았는지 물었다.

“최소한 1년은 확실하게 걸렸던 것 같아요. 1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뭘 하는 건지, 행정사무감사라든지, 예산이라든지 기본적으로 의회에서 하는 기능들에 대해서 한 번쯤 경험하고 나서야 감을 잡은 것 같아요. 다행인 것은 당시 3대 노원구의회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젊은 의원들이 몇 분 계셨는데, 이런 분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죠. 워낙 활동들을 많이 해왔었고, 또 제가 후배였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죠.”

초선과 재선의 의미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경험한 의원의 역할과 처음 활동하는 의원의 역할은 약간 다르다는 것이 김태선 의원의 생각이다. 아무래도 재선은 풍부한 노하우가 장점인 듯 하고, 초선의 경우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참신한 문제제기와 같은 재선과는 다른 시각의 의정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김태선 의원은 이렇게 피드백 할 수 있는 동료 의원들이 있었다. 그에게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 내지 성과를 남긴 활동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성과라기보다는, 한 달도 채 안 된 시기였는데, 제가 처음으로 지역 언론에 이름이 올라가고,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이 기억납니다. 그 당시는 행정부가 구조조정 하면서 과를 통폐합하는 시기였어요. 그 때, 제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일은 ‘환경과’를 폐지하고 다른 과와 통합해서 축소시키겠다는 안이 올라왔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환경과’는 존치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다른 지역은 통합해도 큰 무리가 없는 ‘민방위재난관리과’와 같은 곳을 축소하거나 통합시켰거든요. 그런데 노원구 공무원들의 논리는 지역에 있는 ‘환경과’는 실질적으로 환경부에서 떨어진 업무만 맡을 뿐이지 실제 지역의 환경문제에 대해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통합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고 끝까지 문제제기를 했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통합이 됐어요. 허울뿐이긴 하지만, ‘지역경제과’와 ‘환경과’가 합쳐졌는데, 원래는 ‘지역환경과’라는 안으로 올라왔어요. 그런데 중재하는 과정을 거쳐 ‘환경산업과’로 바꾸게 된 거죠. 그런데 그것도 사실 웃기는 일이죠. ‘환경산업과’라니........”

채 한 달이 안 된 상태에서 맞짱을 떴다. 노련한 재선의원이 중재함으로써 어정쩡하게 결론짓게 되었지만, 그로서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리둥절 하는 동안 2년이 지나갔고 좀 해보려고 할 때 다음 선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왜 재선에 나오게 되었는지.

“음........(좀 당황한 느낌이었다) 초선을 경험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의회 일을 하게 되면서 예전에 시민운동이나 사회복지에서 일했던 경험을 비춰봤을 때, 정말로 중요한 일이구나, 그리고 주민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어찌 보면 지방자치라고 하는 것이 미래에 올 사회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런 공간이 또 다른 기득권세력이라고 하는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더 관심이 많고 장악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실제로 지방자치를 추진하고 의미를 부여했던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인사들은 실제로 지방자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미흡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열려 있는 지방자치의 공간을 또 다른 지역의 토호세력들에게 기득권을 주는 왜곡된 형태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계기 점을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당시 시민자치정책센터 만들 때도 참여한 거고요.......당시에 시민자치정책센터나 다른 단체들과 전국을 거의 돌아다녔죠. 2002년에는 지방자치를 새로운 권력모델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분들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단지 중앙정치의 하수인이 아니고 기존의 정치 개념에서 생각하는 어떤 주민의 대표 개념,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대표개념이 아닌, 주민들의 대리인 개념으로 나가서 의회를 변혁시키는 역할을 하는, 밑바닥을 만드는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출마를 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다녔죠.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저 자신은 안 나오겠다고 얘기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딜레마였죠. 사실 그 때엔 경제적도 어려웠고, 아내도 반대하는 입장이라서 상당히 고민을 했죠. 어쨌든 제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 한 번 더 나오겠다고 얘기를 한 거죠.”

김태선 의원은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4년간의 지방의회 경험은 어쩌면 문화적인 충격일 지도 모른다. 더 이상 희미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특히 시민운동을 경험한 초선의원의 투지는 ‘지역에서의 새로운 권련 모델의 창출’이라는 대의명분에 이르게 했다. 이 대목에서 물었다. 기성정당을 끼고 그런 구상이 먹힐 수 있을까?

“그건.......가장 큰 딜레마이긴 하죠.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하는 한 측면과 현실정치에서 당선가능성을 봐야 하는 딜레마가 있었고, 처음에는 지역주민들이 지지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묻지마’ 투표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지역이 작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여기를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잠자고 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수가 있었죠. 그런 분들 같은 경우는 대부분은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정당을 끼지 않으면 당선가능성은 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개인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역할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쪽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한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정치라는 게 현실에서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선돼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안 됐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건 사실이잖아요. 문제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들어가서 바꾸어내고, 이런 역할을 하려면 당선되어야 하는 거고, 그런 면에서 새로운 권력모델을 만들 수 있는 주민대리인 개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의회에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지역은 편차가 있겠지만, 대도시에서의 진출은 오히려 지역보다 조금 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함부로 얘기하기는 좀 어려운 문제죠.......”

한계를 느끼고 있는 건 분명했지만,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곳에서도 일정한 역할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내부에서도 바꾸고 외부로의 지원도 하겠다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현재 당적을 가지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에 열린우리당도 지역에서는 환골탈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진성당원 제도가 도입이 됐고, 진성당원에게 모든 권한을 줍니다. 예전처럼 종이 당원은 없어요. 물론 종이당원에 대한 미련이 있는 사람이 여전히 있긴 한데, 지금은 진성당원들이 지역에서 귀약을 작성하고 있어요. 그 귀약이나 당원당규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사람만 투표권과 피선거권이 있어요. 그리고 최소한 약정당원이라고 해서 최소한 한 번이라도 돈을 낸 사람에게만 참가권과 발언권을 줘요. 그러기 때문에 예전처럼 종이당원을 다 모아 놓고 정치인이 얘기하면 박수 치고 끝나는 식의 회의는 지금으로서는 아예 꿈도 못 꾸는 상황이죠.......워낙 정치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에 같은 당임에도 불구하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소환제도 도입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면전에서까지 얘기하는 분위기는 형성이 됐죠. 오히려 이게 너무 과잉이 돼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어요.......최근에 열린우리당 쪽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젊어요. 민주당 시절에는 노원구에서 40대 미만이 농담 삼아 저 혼자였거든요.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정당 활동하고 젊은 사람들은 정당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노원구만 보더라도 전체 진성당원의 60%가 40대 미만이에요. 예전의 당원들이 완전히 교체가 된 거죠. 그 사람들은 자기 돈을 냈기 때문에 실제 목소리도 높고,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거나 중앙정치에서 결정된 사안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입장과 다르면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분위기죠.......어쨌든 그런 진보적인 세력들이 단지 투표 때 현실적으로 정당을 지지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세력들이 들어가서 정당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당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제 생각엔 유의미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의 한계는 뭐냐면, 일상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정치 변화를 통해서 재정치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중앙정치에만 관심이 있다는 거죠. 지역을 잘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분들을 지역운동에, 지역사회에 천착시키고 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주 유의미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답보상태의 지역운동의 분위기를 쇄신시킬 수 있는 아주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려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운동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분들이 이런 분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실제로 우리 지역에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 ‘노원시민행동’이라는 지역단체를 만들었어요. 정치활동을 하려고 지역단체를 만든 것이 아니고, 이제는 중앙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고, 지역에서 실제로 우리들이 꿈꾸어 왔던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밑바닥으로 내려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지역단체를 만들었죠. 지금은 의정참여 활동이라든지 지역의 장애인 복지 관련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또 지역의 단체로 활동을 하고 있죠. 실제 지역 모임 할 때 ‘노원시민행동’이 끼치는 영향이 매우 커졌죠. 신생단체이긴 하지만 기존에 활동했던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아닌,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죠.”

모든 지역의 공통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원구 당원들의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김태선 의원은 말한다. 이제 더 이상 박수나 쳐주는 허수아비 당원들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전체 정당운동을 봐서도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노원시민행동’의 활동을 지켜보는 일도 즐거울 것 같다. 현재 여기서 활동하는 적극적인 회원들은 5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적지 않은 수다. 일단, 정당 얘기는 여기서 접었다. 갈 길이 머니까. 초선과 재선,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김태선 의원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이야기를 전개했다.

“농담 삼아 얘기하면, 제가 어떤 때는 행정사무감사를 하든, 각 과에서 업무보고를 받든, 구정질문을 하든, 예산심사를 하든, 저는 6년 동안 행정복지위원회에 있었어요. 그런데 과장들은 보통 길어야 2년, 보통 1년 정도면 바뀌거든요. 어떤 과는 과장이 여섯 번, 일곱 번 바뀐 것까지 봤죠. 보통 바뀐 과장들이 업무파악이 잘 안 돼서 실수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 초선의원들이 질문했을 때, 전혀 다른 말도 안 되는 답변으로 은근 슬쩍 넘어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어요. 저는 그게 눈에 다 보이죠.(웃음) 워낙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질문하면 과장들이 답변을 못해요. 함부로 얘기했다가 자기들이 모르는 부분들이 들통 나게 되죠. 그래서 어쩔 때는 갑갑하기도 하죠. 제대로 업무파악도 안 되고, 그런 전체적인 흐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와서 업무보고를 하거나 예산심사를 하는 것도 갑갑하기도 하고. 사실 그러다보니까 재선이 되면서 업무 파악이 빠르다는 것이 큰 장점이기도 해요. 그래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지적하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그런 단점이 있어요. 저런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면, 더 질의할 게 별로 없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속된 말로 속기록에 남기는 것 빼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얘기해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네네’ 답변만 하고 나가서는 여전히 딴 짓을 할 게 뻔한데.........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의회에는 없거든요. 물론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주 이슈가 되는 역할들 빼고는 실제 변화에 대한 내용들을 다 잡아내기에는 의회 기능이나 권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한계가 분명히 있어요. 저는 지방자치의 현재 상황은 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와 의회의 권한이 거의 8대2로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6대4, 7대3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저는 극단적으로 8대2 정도라고 봅니다. 의회에서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은 한 2 정도밖에 안 되고 실제 단체장이 할 수 있는 권한이 너무 많아요. 그것을 최소한 견제하려면, 전문 보좌진도 있어야 하고 각종 권한이 있어야 하는 거죠. 행정사무감사에서 위증을 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 사례가 있었어요. 실제 어떤 과장이 위증을 했고, 그래서 강력하게 성토를 했죠. 심지어 한나라당 의원마저도 그 과장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까지 했고, 이 사람을 교체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했었죠. 부구청장이 답변을 했어요. 의회 입장을 반영해서 인사 조치를 하겠다........그런데 이 사람이 ‘공보체육과’로 옮기게 됐죠. 어떻게 보면 영전을 했어요. 정말 당황스럽죠. 좌천해야 한다고 공무원 스스로 얘기를 했는데, 더구나 행정의 책임자인 부구청장이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승진을 하게 됐죠. 이면에 알게 모르게 현 구청장과의 관계 문제라든지, 이 사람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격시켰다가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돼서, 결국은 의회가 그것에 대해 반발할 것으로 예측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현재의 의회와 집행부와의 관계입니다. 참 참혹한 상황이죠.”

재선이 되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논리정연하게, 더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선 앞에서 공무원들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인식할 때엔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 위증한 과장의 처리 방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집행부와 의회의 권한이 8대2라고 목소리 높이며 얘기한 김태선 의원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만했다. 제도의 문제일까?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산을 보더라도 실제 여러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시책추진업무추진비, 소위 판공비라고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6년 동안 제가 그 자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제는 그런 얘기도 합니다. 감사원에서 감사가 들어오면 감사 들어온 기관에게 안 보여줄 수가 있느냐, 다 내놓는 것 아니냐. 그런데 요즘은 지방자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면서 작년 같은 경우에는 감사원 감사, 서울시감사가 노원구에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분위기가 바뀌었죠. 그럼 유일하게 있는 것이 자체감사와 의회가 하는 행정사무감사에요. 그럼 최소한 행정사무감사가 그 기능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행정사무감사 때 자료 제출을 요구하더라도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시 환원시켜야죠. 감사원 감사를 다시 하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완전히 통제 기능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이쯤 되면 의회 기능이 찻잔 속의 태풍조차 되지 않는다. 의회감사는 그저 형식적인 요식행위일 뿐이다. 왜 그들은 판공비를 공개하지 않을까?

“끝까지 우기는 논리가 그거에요. 언젠가는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법원 계류 중이고, 지방자치단체장 끼리 모여서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끝까지 버티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방자치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단체장들이 자기의 권한이 세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판공비 문제가 단적인 예죠.......그리고 예산만 하더라도 최근에는 ‘참여예산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잖아요. 이런 판국에 최소한 쟁점이 될 수 있는 신규 예산의 경우는 사전에 공청회나 의회와 협의 과정을 통해서 같이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산 결정 과정에서도 의회가 배제되어 있는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행정사무감사, 예산심의권, 이런 것이 의회의 가장 큰 권한이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이 부분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구조에 있는 거예요. 단체장이 마인드가 있어서 배제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의회의 권한을 가지고는 그것을 제재하거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회가 이 정도로 찬밥신세라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과연 단체장의 마인드나 배려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가?

“단체장이 배려하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럼 제도 개선을 해야 되는 거죠. 실제로 지금 얘기한 대로 주민참여예산제를 행정자치부가 시행하라고 이번에 예산편성지침 162쪽에 적어서 내려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단체에서도 시행을 안 해요. 물론 울산이나 광주 같은 일부 구에서는 자체적으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행자부 지침을 막말로 씹고 있는 거죠. 행정부의 논리는 그건 거예요. 의미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할 수는 없다, 다른 곳이 하고 나서 문제가 없으면 시행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는 거죠. 의회를 바라보는 논리가 그것과 똑같아요.......당신들은 승인권만 있지 않느냐, 왜 의회가 예산을 배정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당신들에게 보고해야 하느냐, 이런 식의 논리죠.”

모르던 바는 아니었으나, 단체장을 비롯한 집행부의 마인드는 지방자치의 민주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재정자립도가 높고 거주자들의 의식이 훌륭하더라도 방향을 잘못 튼 사공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최종 집행자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당위는 여전히 유용한 운동의 지침이다. 참여예산제를 거론해서 한 가지 물었다. 의원의 입장에서 참여예산제를 실시하면 권한이 뺏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는 기본적으로 의회의 기능은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중장기적으로 의회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의회의 역할이 상당히 커지는 거죠. 그런데 그런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의원들은 소아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그마한 것에 침해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의원이 있다면 자기 이익에 매몰된 의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거든요. 주민의 참여가 지방자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예산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점이죠. 이런 부분이 활성화되면 의회의 기능은 자연스럽게 강화될 수밖에 없어요. 의원들이 자기 권리를 찾아달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지금 행정을 맡은 사람들은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원들이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주민감사청구조례’를 얘기하면 숫자 줄이는 것에 대해 의원들이 스스로 나서서 반대를 하고, 주민 한 명에게 감사청구를 허용하면 주민과 의원의 차이가 뭐냐,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거든요.(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높아짐) 주민들에게 그런 권리를 돌려주면 의원들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의원들 중에 의회의 권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도 의회의 기능에 한계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자기의 권리를 버렸을 때, 더 크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새로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데, 여전히 자기 것은 버리려고 하지 않고 남의 것은 뺏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바뀌겠습니까?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되는 거죠. 의회와 집행부의 진흙 벌 싸움으로만 비춰지게 되고 주민들도 동의하지 못하는 거죠.”

이미 나락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의회의 권능이라도 잡아보려는 저 가련한 중생들.......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찾아야 한다는 대목에서 김태선 의원의 처절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권력모델을 희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혼탁한 현실에서 최근의 공무원 노조의 활동은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의 혁신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있겠는가?

“저는 지역사회의 문제에서 정치적 변화의 문제는 어느 한 그룹이 변함으로써 바뀐다고 생가하지 않습니다. 공무원 조직도 제가 처음에 의회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서 각자 스스로가 변하는, 이런 것들이 축적이 되어야 결국 변화가 온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촉발을 하는 기능은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에 맞춰 의회도 변해야 하고 공무원들도 스스로 변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접목이 되었을 때 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여전히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공무원들 노조를 만들고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공무원 노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번 예산 과정을 거치면서 공무원 노조에 실망을 많이 했어요.......공무원 노조 쪽에서 이번에 임단협이나 단체장과 협의를 통해서 올라간 내용을 보면, 다 그냥 직원 복지에 관한 문제만 있었어요. 휴게실의 PDP 천만 원짜리 두 대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 논란의 소지가 분명이 있는 여름철 휴양지 관련해서 콘도를 몇 개 더 구입해 달라는 요구. 이런 것들이 1년에 3억씩 들어가거든요. 이 예산을 잘랐거든요. 그런데 노조 쪽에서 살려달라고 해서 노조의 입장을 반영했어요. 그런데 이런 문제만 하더라도, 최소한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으면서 단지 공무원 노조이기 때문에, 또는 노조 활동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보거든요.......물론 공무원 노조의 정당성은 인정하고 현재는 한계가 명백하지만, 지금처럼 이익 집단의 역할에 국한되는 한에서는 공무원노조가 정말 해야 되는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죠.”

공무원 노조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의 안정과 복지만큼 또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공무원 노조에 거는 우리 사회의 기대는 아직까지 남다르다. 공직사회 변화의 주체로 우뚝 서 주길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방금 전에 의회 스스로도 변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공무원 내부에서의 변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의회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을 대중적인 견지에서 버렸을 때, 더 큰 것이 다가오고 변화가 촉발되는 것처럼, 공무원들도 주민들에게 공무원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권리를 스스로 버리고 주었을 때만, 더 크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밥그릇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못하는 거죠. 의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고 하는데, 공무원도 마찬가지로고 생각해요. 공무원들의 인사제도를 오픈시켜야 하죠. 중앙정부 같은 경우는 추진하고 있잖아요. 외부 인사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들을 열어놓고 새로운 활력과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 내에서 문제제기들이 자유롭게 소통되게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 알게 되면 많은 공무원들이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권리의 침해라기보다는 결국 그것이 대승적인 의미에서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게 되면 지금 자기들끼리 내부 논란만으로는 안 되고, 외부와 끊임없는 소통이 있어야 하는 거고, 확신을 가져야 하고, 그런 것들이 전제될 수 있다면........공직사회 변화는 가능 하겠죠.”

자기 것을 버리며 내부의 혁신을 일으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위사상 추종자들도 아니고. 다만, 자기 밥그릇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밥그릇의 내용을 크게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김태선 의원의 지론이다. 다시 의회 얘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지역운동단체가 의회 감시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사실, 의정감시 활동이 가장 기본이에요. 저희 지역에 있는 ‘마들주민회’라는 단체에서 의정감시단을 조직해서 처음부터 의정감시를 시작했거든요. 그 분들의 종합적인 평가를 들어봐야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의회가 이 정도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의원들의 자격에 대해 많은 한계를 많이 느꼈고, 세 번째는 사안의 중요성을 봤을 때 어떠한 언론도 받아주지 않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더라고요. 의원들의 권한인 의정보고서도 자기 동 밖에 돌릴 수가 없어요. 그건 참 문제거든요. 실제로 의원들이 활동했던 것을 알려나갈 길이 없어요. 그러나 구청장은 할 수 있어요. 구정 소식지를 통해서 전 구에 배포를 해요. 그 곳에 당연히 지방의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죠. 그에 비해 의원들은 ‘의회보’를 통해 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의회보’에 의원들의 입장을 개진하는 것은 선거법에 위반이에요. 이런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요. 결국에 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면,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별도의 신문을 제작해서 배포하는 길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런 방식은 개인의원 식으로 가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의정감시단을 디딤돌로 할 필요가 있는 거죠.......의정감시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이냐, 이런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지역 같은 경우 ‘마들주민회’와 ‘노원시민행동’이 주도적으로 했는데, 의회 방청하기 전에 먼저 철저히 공부를 계속 했어요. 전과를 보기 어려워서 ‘주민자치과’만 집중적으로 했는데, 그 때 저도 그렇고 몇 몇 의식 있는 의원들이 와서 각자의 의원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다 제공했어요. 사전에 최소한의 공부를 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어려워요. 뭘 얘기하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전체적인 관점에 대한 시각이 없는 상황에서 부분적인 것에 대해서는 오류가 생기기 쉬워요. 판단의 오류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끝나고 나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고. 단지 의정감시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이슈화를 했다, 이런 것은 저는 단기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알아야 한다, 싸우기 전에 충분히 이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아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중에서 단체들이 알고 있는 노하우 등을 통해서 실제 한 두 분야라도 자기들의 의견을 가져보는 것, 단체가 거기에 어떻게 반영시켜 볼까, 이것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하는 자기들의 의견을 갖는 것이 두 번째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발현시키는 과정으로서 최대한 지역사회에 많이 홍보해야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담보가 되어야 의정감시단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의정감시에 대한 방향을 나름대로 잘 정리하고 있었다. 1) 사전 공부를 철저히 할 것 2) 의정 감시 후 자기 의견을 정리해볼 것 3) 이를 널리 홍보할 것.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면 시민단체와 지방의원, 그리고 주민과의 원활한 소통 구조를 어떻게 둘 것인가가 핵심처럼 보인다. 의원의 내공을 시민단체에게 전달하고, 시민단체는 이를 정리해서 주민과 밀착하는 방식. 항시적인 소통의 구조가 되면 역방향의 흐름도 가능해진다. 김태선 의원은 시민단체와 어느 정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주민과의 접근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한데........주민과 만나는 사업들을 자기들 사업 속에서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뜬금없이, 갑자기 어떤 좋은 대안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막연히 고민해서 외국 것을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딱 떠오르는 것이 아니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최근의 사례를 말씀을 드리면, 사회적 일자리가 자활후견기관이나 빈민운동 하는 쪽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로 부각이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소수의 몇 개 단체들이 전체적인 합의를 못 끌어낸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사회적 일자리와 관련해서 주민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이, 가능할지 안 할지 잘 모르겠지만, 와해된 지역 공동체를 복원함과 동시에 재활용 조합, 즉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다고 봐요. 주민참여 방식 중에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생활협동조직이잖아요. 대규모 조합원들을 갖게 되고 그 자원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다른 사업에 개입하게 되고, 밑바탕의 조직을 갖고 있는 거잖아요. 단지 먹거리와 관련된 생협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와 관련한 재활용조합, 저는 이런 밑바닥을 조직하는 사업들이 각 단체들이 하는 사업 속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환경단체 같은 경우도 단지 후원하는 회원을 모으는 개념을 넘어, 실제로 생태공원을 조성하면 생태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일자리로 구축을 해서, 이 사람들이 실제로 준활동가 역할을 하게 해야 되고, 그러니까 외연의 폭을 확대시킬 수 있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방식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과천에서 있었던 보유조례 개정운동의 진행 과정인 것 같아요. 우리도 똑 같이 급식조례를 해봤는데, 민주노동당이 선거와 관련해서 주도하다보니까 한계를 가졌어요. 그 한계가 뭐냐면 그냥 서명만 받은 거예요. 열성 활동가들이 나가서 서명만 받고 충분히 설득이 안 된 상태에서 서명만 한 거죠. 그래서 결국 의회에서 깨졌어요. 그런데 사후 반응이 없어요. 당연히 서명한 사람들 1만여 명이 분노해서 뒤집어엎어야 되는데, 뒤집어엎는 힘이 왜 없었느냐, 그것은 저는 중간의 책임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도 생각해요. 과천에서 했던 것처럼 최소한 발기인 개념으로 자기가 서명을 받고 다니면서 설득을 시킬 수 있었던 그런 분들은 중간 조직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게 실제로 성공할 수 있는 큰 힘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지역에서 그것을 놓친 것이 그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주민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자신들의 사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나야 한다는 것과 시민단체와 주민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중간 책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김태선 의원은 ‘환경을 사랑하는 중랑천 사람들’이라는 지역 환경운동단체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그래서 그 단체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나무심기 행사나 이름표 달아주기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중랑천을 중심으로 ‘5년 중장기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현개 노원구청은 마지막 노른자위로 야기되는 중랑천 근처 부지 7만5천 평에 거대한 개발계획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이를 대비해서 시민단체 차원의 종합적인 환경을 중심으로 발전계획을 만들 계획이란다. 어떻게 보면 노원의 비전을 만드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었다.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저는 전례는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관악주민연대에서 만들었던 2002년 선거와 관련해서 공약집인가요, 정확히 기억하지 않지만, 저에게는 그 자료집이 전율이었어요. 우리가 하려는 작업이 국가적인 차원이나 지구적인 차원의 어떤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중랑천, 수락산, 불암산, 이렇게 접근하는 거고, 주민참여 문제나 지방자치 문제들도 현재 현안이 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라든지 판공비 공개문제라든지, 구체적으로 노원에서 부각되고 있는 사안, 그리고 장애인 문제만 하더라도 실제 장애인 분들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해서 중장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일례로, ‘노원시민행동’에서 하려는 사업 중에 하나가, 장애인 주차장에 실제로 일반인들이 다 주차를 시키거든요. 이것을 안 지키면 벌금이 10만원이에요. 노원구가 작년 1년 동안 벌금 부과시킨 것이 10건이에요. 그런데 10건도 하루에 했어요. 몰아치기기 아니라, 예산을 10건으로만 잡아놨거든요. 예산서에 잡아 놓은 10건을 해야만 장애인 우수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노원구가 장애인 우수구가 됐어요.(웃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우수구의 근거가 뭐냐면, 10건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10건을 1시간 만에 해치었어요. 그 얘기는 뭐냐면, 한 지역에서 한 시간 만에 10건을 잡아냈으면 실제로 365일 감시하면 수천 건이나 수만 건이 걸린다는 거예요.(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커짐) 그런데 그런 것을 다 방치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행정한테 하라고 하면 행정에서 하는 얘기는 인원이 없다, 사람을 늘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나갈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것을 그냥 벌금을 매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거죠. 장애인 주차장이 비어 있어도 일반인들이 차를 세우면 안 된다고 각성하는 운동.......그래서 조만간에 이런 운동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김태선 의원은 지역의 비전은 될 수록 작아야 한다고 말한다. 각 단체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사업과 연계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큰 틀에서의 보육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별 시설을 조사함으로써 아이들 영양엔 문제가 없는지, 있다면 영양사 배치를 현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 등의 미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안들, 드러난 사안들만 정리하더라도 훌륭한 정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활동에는 당사자들, 특히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례로 노원구의 장애인 단체가 돈을 받고 중랑천 일대를 먹자판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주민들의 원성이 잦았으나 장애인 단체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들 스스로가 중랑천을 자기의 공간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몸도 불편한 마당에 중랑천의 접근성은 더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가 볼 수가 없는데, 나의 공간으로 여기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몇 몇 지역운동단체들은 장애인들과 함께 중랑천을 거닐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들이 누려야 할 공간이 없다. 김태선 의원이 얘기하고 있듯, 지역의 토호세력이 이미 지역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토호세력은 어떤 것인지 들어보자.

“지역의 토호세력을 원주민이라고 얘기도 하는데, 예전부터 살아오면서 이 쪽 지역에 땅을 갖고 있다가 개발되면서 이익을 많이 본 사람들, 주로는 당시 공무원들, 통장들, 지역 언론을 장악하고 있던 분들, 이런 분들과 얘기할 때는 최소한 10년 이상 살지 않으면 대화의 장에 껴주지도 않아요.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 하는 식이죠.......토호세력이 저는 단지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단적인 예로 저희가 ‘노원마을’이라고, 중랑천에 붙어 있고 다른 지역보다 한 1m 정도 낮아서 항상 홍수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이 있어요. 노원 하면 떠오르는 침수지역이 ‘노원마을’이에요. 원래 이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가 지금은 해제됐어요. 그래서 재개발을 하려고 하는데, 서울시에서는 임대아파트를 짓겠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개발업자들과 결탁된 일부 지역주민들은 그 곳에 25층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야, 한 사람당 최소한 30평 아파트가 떨어진다면서 맨날 구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어요. 환경단체 입장에서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입지 조건만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생태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지역의 토호세력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정당을 떠나서 연대를 하더라고요. 보통 토호세력들은 지역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 이익을 얻기 때문에 건축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아요. 지금 남아 있는 땅을 어떻게 개발할 것이냐, 그 개발 과정에 자기들이 어떻게 이익을 챙길 것이냐, 이런 것에 철저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것은 정당이나 어떤 정파와 상관없이 자기이익을 위해 똘똘 뭉쳐 있는 형국이에요. 그런 분들 같은 경우는 심지어 어떤 것도 시도를 했냐면, 3대 의회 말에, 노원마을 바로 옆에 있는 땅이 있었어요. 이 땅은 ‘노원마을’이 개발돼도 풀리지 않는 땅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개발이 이 쪽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해서 강남에 있는 투기꾼들이 이 땅에 투기를 한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이 땅을 풀어달라고 서울시에 요구하는 것을 의회에 올렸어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되는 게, 못 풀어주는 거거든요. 서울시에도 안 풀어주겠다고 하는 거고.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소위 ‘가라’로 해주는 건데, 의회에서 통과가 되면 그것을 가지고 투기꾼들은 다른 곳에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것과 관련해서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다 연계가 되어 있더라고요. 부동산 등등. 이 사람들이 의원들에게 스스로 나서서 그것을 해달라고 안을 올렸던 거죠. 그것도 그 당시에 민주당, 한나라당 다 연대해서. 그것을 보면서 야, 이것이 토호세력 연대구나.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막 싸우기도 하면서도, 그 건에 대해서는 다 똘똘 뭉쳤더라고요.”

이념이고 나발이고 없다. 자기의 이익이라면, 개발해서 이익이 남는다면 누구와도 연대가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토호세력의 연대다. 어느 정당 출신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우호적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판단기준이다. 현실적인 이익논리에 따라 대척점이 명확하다. 새마을 단체를 보라. 이념이나 당과는 무관하게 ‘자기네’ 출신 의원들이 있다. 목적의식적으로 ‘그들의’ 의원을 진출시킨다. 이것이 토호세력연대다. 김태선 의원 말로는 개발이나 도시계획을 둘러싸고 검은 돈이 오고가는 것은 한 지역에 80-90%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 뿐이 아니다. 지역의 웬만한 자리는 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 각종 위원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사회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서 도시계획 전반에 대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시민운동진영에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발과 관련돼서 계속 올라오는 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검토하고 확인하는 작업들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토호세력들은 이익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까지 걸면서 전문적으로 매달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시민단체들은 사건이 터졌을 때만 반응하잖아요. 그럼 밀릴 수밖에 없죠.......보통 그 쪽에서 시민단체들을 한 줌도 안 되는 시민운동 세력이라고 말하는데,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쪽도 한 줌도 안 되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목숨을 걸잖아요. 그 대신 이권이 생기면 서로 나눠요. 입 다물게 하기 위해 자기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떡고물을 주는 거죠. 그런 거래가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관변단체들은 최소한 암묵적인 동의를 하는 거죠. 실제 돈이 거래 안 되더라도 거기에 다 개입이 되어 있고,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무마시킬 수 있는 힘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김태선 의원은 사회단체보조금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저는 현실적인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단체보조금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거 풀리면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의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4대 개혁법보다 지역사회를 바꾸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것은 사회단체보조금이 개선되는 거라고 생각해요........관변단체에 계신 분들 중에 좋으신 분들이 많이 있어요. 핵심적인 분들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활동한다는 것이 문제죠. 실제로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진보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잖아요. 어쨌든, 자기 돈 내고 봉사하겠다고 나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분들이 갈 데가 없으니까 새마을이나 이런 곳에서 활동을 하는데, 이런 분들 같은 경우처럼 자기 스스로 돈을 내고 활동하게 하면 하실 수 있는 분들이거든요.......단지 어떤 사업을 위해 프로젝트를 받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사람들의 자발성을 침해함으로써 실제 자기들이 했던 것에 대해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하게끔 행정가들이나 정치가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게 문제죠. 자기만의 구미에 맞게 이용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고, 그 관리하는 것이 객관성 있는 것이 돈이고 예산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 예산을 없앰으로써 봉사정신이 없는 분들이 걸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 봉사정신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주체적으로 새마을운동도 제대로 펼쳐 나가고 새로운 사업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분들은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시민단체가 혼자서 지역사회를 바꾼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그 분들과 같이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사회단체보조금 개선이라고 생각해요.”

4대 개혁법, 그거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관심의 일부를 3개 단체 지원법 폐지에도 쏟아야 한다고 김태선 의원은 말한다. 토호세력 연대의 빌미를 제공하는 법이기도 하고, 관변단체의 순수성, 자발성을 옥죄고 있는 악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다음 일정 때문에 인터뷰를 서두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만 던졌다. 민원이 많이 들어올 텐데,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몇 가지 사안으로 갈등이 벌어졌을 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정치제도가 워낙 중앙정치 체제이고 중앙이 왜곡된 것처럼 지역도 왜곡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이 의외로 많아요. 중앙정치에 막 욕하더라도 자기들이 내는 민원은 말도 안 되는 자기 이익과 관련된 얘기들이 대부분이죠. 남들도 다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 이런 식으로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민원이 막 들어와요. 그런데 그런 것을 선명하게 딱 끊는다면 그것 역시 지식인의 오류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현실 사회가 정보를 가진 사람이 독점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판단의 착오가 생길 수 있는데,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을 설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을 해서 그 분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거죠. 주민들이 어떤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일단은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최소한 그런 과정과 절차를 거쳐서 설득을 시키면 지금까지 제 경험으로는 대부분 다 인정을 해요. 일례를 들면, 어떤 사람이 버스 전용차선을 위반해서 딱지를 가져왔어요. 가져와서 그런 얘기를 해요. 이런 것은 구의원님이 처리를 해줘야 하지 않냐, 나는 애들 태우고 짐도 싣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거기 들어갔는데, 이게 말이 되냐, 나는 피해자다, 그럼 그 분 말에 기본적으로 동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법치국가에서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없는 거죠. 법대로 안 되는 것이 얼마나 많아요. 그 분의 감정에 대해서는 동감을 해주는 거죠. 가슴이 아픕니다, 좀 그러내요. 그러나 컴퓨터에 다 입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뺐을 경우 제가 덜미를 잡힐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하면 웬만한 사람이면 알아들어요. 얘기를 들어줬다는 것에 대해 고마워해요.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시면 행정부에 의견제시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한 번 오시면 제가 연결시켜주겠습니다, 그때 오십시오, 하면 대부분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경우에 저는 어떻게 하냐면, 정말로 불공평하시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대신 내드리겠습니다, 제도적인 것을 변화시키기 전에 편법을 사용하면 오히려 더 왜곡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할 수 없고, 제가 대신 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대신 내달라고 주고 가시는 분들은 겅의 없더라고요.(웃음)”

기본적으로 민원이 들어왔을 경우, 선악을 구분 지으려는 시도보다는 그 민원의 내용을 자세히 들어주려고 하는 태도가 현명한 대처법이라고 김태선 의원은 말한다. 이런 것이 정치력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은 어떤가?

“저는 공무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요. 행정사무감사의 예를 들면, 자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랑 입장이 달라도 인정한다, 복지부동으로 가지 않으려면 공무원들이 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한다, 위 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면 나를 설득시켜라, 나를 설득시키는데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나는 끝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당신 주장이 확신이 있고 비전이 있고 계획이 있고 원칙이 있다면 내가 동감하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믿겠다, 만약 그것이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는 그것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지 않지 않겠다, 그것은 최소한 당신들의 역할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앞에서 맞짱구 치다, 뒤에 가서는 자기 맘대로 다 하는 그런 것은 절대로 인정 못한다, 그런 식으로 말합니다. 예전에 한 과장이 있었어요. 저와 입장차가 대별되는 과장이었는데, 그 분이 공무원 입장에서 대게 소신 있고 잘 하는 분이셨어요. 지금은 다른 곳에 가 계신데, 그런 분과 참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그런 말을 했어요. 당신 그렇게 소신에 차 있기 때문에 나는 믿겠다, 원칙과 소신이 있다면 저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기본적으로 믿는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반대로 저는 모든 공무원과 관계가 좋다고 말은 할 수 없지만, 그 과장처럼 나름대로 공무원 사회에서 소신을 갖고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공무원한테 저도 인정받는 의원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서로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은근슬쩍 자기 자랑도 했다. 인터뷰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김태선 의원에게 사람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끝으로 2006년 선거 얘기를 꺼냈다. 이 지역의 운동단체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저희도 지역에서 몇 차례 회의가 있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데, 어제까지 얘기한 것은 선거에 출마하는 것과 운동단체로서 활용하는 것을 분리하기로 했어요.......지역주민과 더 밀착하고 다양한 사업들을 벌여 나가면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만들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임무 중에 한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은 다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후보를 내고 선거에 나가는 문제는 단체들이 직접 개입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가 정치조직이 아닌 한, 지역의 새로운 권력모델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가야 하는 문제고, 자칫 잘못해서 현실정치에 휘둘리다보면 상처도 많이 받기도 하잖아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일본의 사례처럼 시민단체와는 별도로 개인 자격으로 결사체를 만들어 정치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갈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정당의 논리만으로 한계가 있거든요. 외연의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연대가 필요하고, 지역주민 중에 정치의식의 수준과 상관없이 변화에 동감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하고, 거기에 의식 있는 정당까지 포괄하는 그러한 기구로 시민사회단체연대기구가 만들어지고 그 내에서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가지고 합의하는 과정을 갖자, 그래서 2006년까지 그런 정책대안을 만들기 위해 실제 사업을 추진해보자. 아까 얘기했던 장애인 문제라든지,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주민들과 같이 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몇 가지만 해보자. 그런 와중에 실제 그것에 대한 의미를 주민들이 인정하기 시작하면 어떤 후보든지 이것에 대해서 무시하지 못하게 될 거고, 그렇다면 선거 이후에도 행보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선거 국면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들 스스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점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초기 시점이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시민단체 본연의 활동과 정치참여 활동을 구분해서 외연을 점점 확대하자는 것이 노원구 운동단체들의 생각인 듯싶다. 그래서 지금은 민주노동당도 연대기구에 들어왔다고 한다. 대략 10여 명 정도가 몇 가지 원칙에 합의하고 준비 중이다.

“저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문제는 너무 단기적으로 생각하거나 너무 일반화시켜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진출시킨 경험이 아직 적잖아요. 지금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서 끊임없이 진출한다는 것이 전제가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인 바탕이 있어야 그런 논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선언적으로 하는 논의는 아주 이성적인 접근할 수가 있지만, 그런 것들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공허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초록정치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데, 그 쪽 멤버들이 지역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고, 자기 지역에 대한 활동들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거기서 진출을 시키는 전략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은 민주노동당에게도 적용되는 전략이죠. 경험을 해봐야 판단할 수 있잖아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를 남에게 들어서 인지하는 것과 자기가 경험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고 진출한 사람들이 일정정도 숫자가 돼야 결국 이후에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통합 논의를 하든 뭐를 하든 그런 것이 가능한 거지 시작하기도 전에, 뭔가 경험이나 성과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논의만 먼저 하는 것은 논쟁으로만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김태선 의원 개인의 선택을 물었다. 2006년에도 출마하시나요?

“그런 질문을 수없이 들어요. 지금은 나 스스로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재선할 때처럼 또 지방의회로 진출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편에서는 두 번이나 했기 때문에, 또 나가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나 스스로의 발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고요. 글쎄요.......제가 중장기적으로는 하고 싶은 것은, 비판하는 기능보다는 실제로 집행하는 기능의 경험을 하고 싶다는 거죠. 선출직이 되든, 아니든 간에. 행정의 영역이든 정치 쪽의 보좌관 역할이든........또 한편에서는 저도 고민이 아주 풍족하진 않지만 저도 여러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지금도 키워왔고 앞으로도 키우고자 하는 욕구도 있기 때문에 단체장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도 분명히 있죠. 물론 이 부분은 조금 더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지만, 집행을 하면서 성과를 얻어 보고 싶기도 하고, 저와 뜻이 비슷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해보고도 싶고.......그런데 단체장 문제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잖아요. 정당과의 문제도 있고........”

다른 질문에 비해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더 묻지는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시사하는 바를 던졌다. 시민후보로 출마하든, 아예 출마하지 않든, 모든 경우의 수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점, 올 상반기의 행보가 중요하다는 점, 도전의 가치가 충분한 선택이라면 당선 가능성보다 이후에 방점을 찍겠다는 점 등등. 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대충 알만했고, 무엇을 선택하든 2006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을 만났을 때 무엇을 근거로 선택하게 되는가? 편한 길로? 느낌으로? 목적지가 어디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때다.
(2005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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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지역정치인의 고민 - 김금희 관악구의원을 찾아
인터뷰 : 김금희(관악구 의원)

소신껏 의정활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품고 지방정치에 입문한 사람치고 지방정치에 회의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누가 들으면 ‘철부지의 행복한 고민’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으나, 생각에 따라서는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자리가 바로 지방원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민사회운동을 발판으로 원대한 꿈을 품고 지방정치에 입문한 정치인들에게는 지방의회가 ‘인내심 테스트 수련장’이 될 수도 있다. 생각만큼 지방의원은 지방정치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방의회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적물갈이에서부터 주민대표기관으로서의 권한 강화까지 그 폭도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중앙정치의 개혁과제와도 맞물려 있다. 중앙의 정치판을 투영한 것이 지역의 정치판이므로. 특히 시민운동세력에게도 지방정치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난 91년부터 2002년 지방선거까지 시민운동세력은 지방정치 개혁이라는 깃발을 휘날렸고, 오는 2006년에도 이러한 흐름은 유효하다. 그러나 그 깃발이 토대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고, 깃발을 올리는 순간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개인만이 남는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자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주민자치‘의 기여에도 미미한 역할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시민운동세력이 지역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10여 년 이상 그들의 참여로 인해 지방자치가 조금씩 전진했고, 생활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 더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현재의 고민이다.

관악구 김금희 의원은 동네 아줌마 같은 수더분한 초년생 정치인이다. 김 의원은 골프장 문제를 계기로 의원에 출마했고, 지금까지도 골프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 의원에게는 골프장 문제가 존재 이유이다. 골프장 문제 이외에도 김금희 의원은 지역 현안의 빛과 그림자를 두루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주민과 밀착된 생활정치의 구현을 부르짖고 있는 김금희 의원은 주민 속에서 정치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점심까지 푸짐하게 대접받으면서 김금희 의원이 생각하는 주민자치, 지방정치를 들어보았다.

먼저, 김금희 의원의 존재이유, 골프장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지금은 막바지 단계에 와 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그간 골프장 경위에 대해 설명했으나,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자).......사업주와 구청, 주민대표 등이 여러 번 대화를 하다가 사업주가 건축허가를 지연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어요. 지난달에 판결이 떨어졌는데, 구청에서 일부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 위법성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죠. 그래서 2주 안에 항소를 제기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현재 도시공원법에는 어떤 사항이 있냐면, 처분을 했더라도 공공의 목적이라면 이것을 취소하고 재처분을 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있어요. 저희는 이 조항을 제시하며 인가를 하지 말고 재처분 하라고 요구했거든요.......그러나 행정의 입장도 그렇고 사업주의 입장도 사업투자를 계속적으로 해온 것인데, 거기에 위법성이 없는 이상, 여기서 중단할 수 없다는 논리였어요.......아무튼 법적으로 소송에 진 사항이기 때문에 구청장의 정치적인 것에 의해 풀어야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고, 여러 차원으로 사업주를 설득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결론이 어떻게 날찌 기다리고 있는데, 상당히 긴박한 상황이에요. 주민들도 여차하면 데모를 하려고 바리케이트를 준비해 놓고 있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힘들어하죠. 지금도 어떤 분들은 술 드시고 다 죽인다고 칼 들고 다니고 그래요.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화풀이 하고. 정신병자 수준인 사람도 단지 내에 있고요. 그래서 굉장히 어렵죠.”

최근의 긴박한 상황 때문인지 김금희 의원도 많이 지쳐보였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가 골프장이 아니므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처음 생각했던 지방의원과 지금의 지방의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제가 의원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골프장 건으로 의회에 청원을 했어요. 상임위에서 의원들이 심의를 하고, 사업주도 참석시켜서 참고인도 준비를 하고, 조사를 하고 여러 가지를 했어요. 처음에 의원이 당선 되리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슈를 걸고 선거 때 나왔던 이유는 “구의원이 반대하면 절대 안 됩니다.”라는 그 말에 결정적으로 힘을 얻었거든요.......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서 내가 의원이 안 되더라도 이 문제가 꼭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간절한 바람이 있었거든요. 의원에 당선되고 나서 청원을 했고, 그 과정을 쭉 보면서 지방의원이라는 자리에 굉장한 실망을 했어요. 의원이 되면 마음먹으면 많은 것을 수는 없겠지만 뭔가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에서 진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뛰었는데, 실제로 돼보니까,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 일을 집행부에서 하는 것이고, 의원은 옆에서 관심 갖고 얘기해주는 것 밖에 없고, 아니면, 주민들과 같이 띠 두르고 나서 선동하는 것 밖에는, 그렇다고 그것이 힘을 받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저같이 정당이 없는 사람들이 막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누구도 도와준다고 말만 하지 실제도 도와주지 않고, 또 주민들도 갈수록 힘 빠지고 사분오열이 되고, 그리고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나 다 나름대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발 벗고 나서지 않잖아요.......그러다보니까 처음에는 힘들었고, 또 시민단체 후보로 제가 나와서 의원이 됐는데, 되고 나서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시민단체들도. 처음에 의원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도 알려주지도 않았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구정질문도 쓸 줄도 몰랐고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되긴 됐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시민단체들 워크숍에 쫓아다니고, 귀동냥하고 정보 듣고 맨날 그러긴 했지만, 전혀 이 영역을 모르던 문외한인 사람이 한두 번 그런 곳에 참석한다고 해서 다 알아듣는 것은 아니잖아요. 귀에 익지도 않고. 또 어떤 때 보면, 회의랄지, 앉아서 하는 워크숍이랄지, 저 같이 주부로 생활하던 사람들은 솔직히 굉장히 힘들어요. 한 시간 겨우 앉아 있는 것도 힘든데, 몇 시간 씩 사람들과 하다보면, 계속 혼자 딴 생각하고 마는 거예요. 처음엔 조금 귀에 열심히 들어 보려고 애쓰다가도 좀 한계를 느끼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스갯소리고, 시민단체는 머리 깨지게 맨날 얘기만 하는 동네라고 얘기하는데(웃음), 그러다보니까, 의원 되서도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들이 전혀 보좌역할이라든지 안 해주기 때문에 의원의 역할을 사실상 하기가 어려웠었고, 또 지기는 싫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인터넷도 보고, 의원님들 했던 회의록도 쭉 훑어보고 했지만 작년 같은 경우도 많이 미숙했던 것 같고, 전의 내용들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관악에서 오래 살지도 않았거든요. 관악이라는 동네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의원이라는 것을 하고 있으니까, 뭔가를 연초부터 보고랄지 행정사무감사랄지, 이런 것을 해도 깊이가 없는 질문밖에는 될게 없고,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겠고, 또 그 전 상항에 대해 기본 지식이 없기 때문에 거의 맨날 좀 그랬었죠. 그래서 좀 어려웠고, 그러고 나면 회의 끝나고 나면 저 자신에 대해 회의랄지, 막 이런 것이 생기는 거예요. 어떤 때는 너무 약이 오르고. 내 성의껏 그것을 다 하지 못하고 내가 또 질문하다가 내가 막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러다 막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좀 초선이고 여자고, 정당도 없기 때문에 공무원도 일정부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저도 좀 화나고, 그러다보면 인상 팍팍 쓰고 소리 지르고, 이런 것을 느꼈어요. 초보라서 어쩔 수 없다, 내가 가끔 옆에 동료의원하고 우린 언제 선수가 되냐, 맨날 이렇게 얘기도 하고 그런 적도 있어요.”

쉽게 말할 수 없는 진솔한 얘기였다. 의원이 되면 뭔가 멋들어지게 쥐락펴락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의원이 되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자괴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단체에게도 일정한 불만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조직과 의원간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않나보죠?

“처음에 무척 힘들어서, 때가 되면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 계속 얘기했어요. 시민후보를 만들어놨으면 뭔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장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런 얘기를 계속 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관악주민연대에서 자치센터라는 것을 만들어서 재작년부터 시작을 했죠. 작년에 1년 동안 활동을 하고 또 한 해를 맞고 있는데, 자치센터에 활동하는 사람들과 팀을 만들어서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같이 고민할 뿐이지, 나보다 앞서가는 선배 역할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의원들은 기본적으로 먼저 제안 설명 듣고 전문의원 검토 보고 듣고, 미리 보고, 또 보니까 아무래도 감이 빨리 오잖아요. 그러나 시민단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자료를 갖다 줘도 그것을 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올 때가 많고, 또 숙제를 풀어 갖고 오더라도 전혀 방향이 달라요. 분석력이 없으니까 뭘 짚어야 할지 모르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요. 오히려 제가 도와줘야 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더라고요. 그것에 대해서 숙제도 무리하게 시키고 그랬거든요. 기본적으로 따라오는 사람은 따라오는데, 전혀 미동도 없이 그냥 참여만 하는 그런 사람도 있고, 초자들은 너무 어려운 것이구나 하면서 한두 번 왔다가 그냥 가고, 그런 경향이 있더라고요. 지금도 저는 시민후보이긴 하지만, 일부러 시민단체와 관계를 자주 가져요. 무슨 일 있으면 자주 가고, 얘기도 하고 뒤풀이까지 남아서 술도 마시고, 친하게 지내고, 서로 교류가 되어야 서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꺼리도 생기는 것이고, 제가 어려울 때만 손 벌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실무로 나서서 그냥 의회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들과 같이 일해야지, 의회 일 해야지, 내 지역도 행사 있으면 참여해야지, 그리고 주부로서의 역할도 해야지, 그러다보니까, 굉장히 사람이 정신없는 사람이 돼버렸어요.(웃음)”

시민단체와 의원이 역할에 있어 정곡을 찌르는 말인지 모르겠다. 시민단체의 후광을 받아 제대로 일을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었다는 김 의원의 얘기. 고급정보를 쉽게 얻기도 하고, 그 정보에 대해 여러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보다 많은 의원보다는 시민단체의 정보력과 분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방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권력을 시민단체와 어떻게 소통하고 그를 통한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가 과제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왜 그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지 물었다.

“그게, 일정부분, 인과응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우리 관악구에 시민단체들이 일찍부터 있었지만, 중간 중간 시민단체에 있는 활동하던 사람들이 정치에 나가서 활동을 하고, 시민단체들이 몰아서 도와주기도 했는데.......그런 분들이 여기서 뿌리 내리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고, 당위성만으로 시민단체가 진보정당을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서로에게 실망감을 준 사례였던 것 같아요.......그리고 그 후로도 여러 번 이런 문제로 시민단체가 갖는 고뇌들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까, 저희 같은 경우도 어쩔 수 없이 시민단체 후보라고 내 놓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을 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고, 시민단체 후보로서 몇 번 연설 해주고, 행사 몇 번 해주고, 이런 정도인데, 공식적으로 후보한테는 어떻게 보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거죠. 그 지역하고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였죠. 결국은 후보 혼자서 다 뛰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그런 것에 실망해서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는 것 같고, 역시 마찬가지로 그 이후 제대로 요구하지도 못하고, 바라만 봐야 되고,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것이 지속되어온 시행착오이고 인과응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까지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잘해야 한다, 그런 안 좋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시민단체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민단체 활동은 의정감시나 시민감시, 아니면 행정이 잘못 가거나 의원이 잘못가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비판하고 거기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그리고 어떤 시민후보랄지 이런 사람을 끝까지 책임져 주는, 활동에 대한 역할이라든지, 그런 일을 하면서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잘못 했다고 비판만 하지 말고 기본적으로 시민으로서 참여를 해서 의회에 들어가면 집행부가 잘못하면 예산을 짤라 버리면 되고, 행정사무감사에서 철저히 지적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그것에 대해서 다시 어떤 것을 요구를 하고, 다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시민단체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열악하잖아요. 프로젝트를 따서 그 사업만 하고, 어떤 일정 부분은 사조직화 하는 경향도 있고. 그러다보니까 제가 하는 얘기에 대해 이해는 하고 동감을 하는데, 그럴 여력이 아직은 없다는 것을 제가 많이 느끼고 있어요.”

김금희 의원은 관악구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지역정치와 시민단체 활동의 관계설정이 애매모호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 의원은 지역정치를 활동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면, 보다 많은 세력들이 지방정치 참여에 나서야 하는 한편, 시민단체 활동이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더라도 프로젝트 위주의 활동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이 집행되고 나서 손가락질 하는 것이 시민단체 활동의 맹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시민운동세력이 의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지 물었다.

“시민단체들이 현재는 소수이기 때문에 우리 힘만으로는 어려운 점이 있어서, 그 동안 관악 현황에 대해서 제가 정보를 제공하고 자료를 다 제공하고 분석을 같이 해서 서로 역할분담을 했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이것, 시민단체가 요만큼 해라, 이렇게 논의를 해서, 맨날 시민단체 모여야 겨우 열 댓 명이지만,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구독하지도 않지만 지역신문에 결의문 같은 것도 쓰고, NGO 관련 신문에도 알리고, 주민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이런 것들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저도 동감을 하죠. 그러나 어려웠던 것은 결국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 기본적으로 어떤 것을 가지고 서로 역할분담을 하고 제가 정보 제공이라든지 현안에 대해 자료를 빼서 주고 서로 역할해서 문제점을 찾아서 그것을 신문 방송에 몇 번 때려도 아무 소용없어요. 결정을 바꾸지는 못하거든요. 그리고 그 문제를 피해가 있는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도 결국 그 사람들이 사분오열돼서 다 각자의 뜻이 달라요. 그러다보니까, 결국은 자기 이익만 챙기면 별로 문제가 없는 거고, 또 그것에 대해서 소수의 목소리는 끝까지 내지를 못하는 것이 있어서, 아 그것이 결국은 대안이 못 되는구나, 했었어요. 행정부도 그런 거예요. 조금 시끄럽구나, 조용해지겠지,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제도권 정치에 들어와서 다수의 역량 있는 의원들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 과감히 짤르고, 집행부에 로비 당하지 않고 시위도 하고 강하게 할 것도 하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또한 김금희 의원은 지방의원들의 자질론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무소속이나 여성의원들이 다른 소속 정당의 의원보다 능력 있고 열심히 하고 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집행부의 로비를 많이 당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통반조례를 발의 했었지만, 상임위에서 논의된 안건이 그 후 적어도 상임위 위원들은 거론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본회의에서 끝까지 떠드는 사람도 있고, 또 발의 의원 서명할 때, 서명해 놓고도 끝까지 부정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기본적으로 의원들의 자질에 의문이 들어요. 이게 ‘하나’라고 생각이 들면 이게 오로지 ‘하나’가 정답인데, 이게 자주 흔들리더라고요.......시민단체 관련 의원들이 서로간의 다른 목소리가 되면 오히려 더 우습게 돼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어느 사안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주고 같이 힘과 뜻을 모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되면 오히려 더 약한 조직이 되기 쉽고, 전혀 끈끈한 관계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웃기는 조직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오히려 기본적인 룰을 서로가 정해서 그 룰을 지켜주는 그런 사람들이 같이 가야 한다고 행각해요. 시민단체 후보를 아무나 내보내거나, 막 개인 차원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고, 다 다른 목소리를 내버리면 그건 아무 것도 안 되는 거예요. 결국은, 외부 사람들은 비웃겠죠. ‘시민단체 들어와서 그것밖에 안 되는구나’, ‘시민후보다도 별 것 아니구나’, ‘굉장히 무섭게 생각했는데 들어와서 하는 것 보면 별로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방의원의 역할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수의 시민운동세력만으로는 충분한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김 의원의 생각이다. 더군다나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의원들이라면 몰라도, 형편없는 의원들이 지배적인 수준에서 뜻을 올곧게 편다는 것은 허공의 메아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아직은 토대가 약하지만 일상적인 주민들의 참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시민들은 오히려 소외되지 않느냐, 그런 측면에서 시민참여가 다양하게 전개됨으로써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렇죠. 제대로 된 시민단체라면 그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들이 다수의 시민들을 회원으로 두고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활동하고 회원과 같이 모일 수 있는 구속력이 있는 단체라면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데, 지금 시민단체 회원들은 약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시민들과 관계가 없는 프로젝트에 의한 사업만 하는, 지역의 사안이 있더라도 달라붙을 사람이 없는 그런 시민단체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것이 시민단체의 현재 문제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주민참여에 대해서 시민단체들이 많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루트가 없다보니까, 결국은 주민들이 소외되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 시민단체는 너무 결과에 급급하기 때문에, 뭔가 하게 되면 며칠 안에 뭔가를 도출해야 되고, 뭔가를 해야 하고, 요즘 프로젝트 하는 식으로 상반기에 뭐, 하반기에 뭐, 이렇게 딱 끝나야 뭔가 한 거라고 생각하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조급하게 앞걸음 쳐서 하게 되면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저는 어떤 부분을 생각 하냐면, 제대로 된 앞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 앞서 가면 안 된다, 한두 발짝 정도만 앞서가서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들이 뭔가 그래도 알고 따라가게 해줘야 한다, 뒷사람 바보 만들지 말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뜻이 많다고 해도 성급하게 결과만을 도출하기 위해 막 앞에 가고, 막 뒤에서 왜 안 따라 오냐, 그리고 막 다그치잖아요. 왜 너희들은 그것밖에 안 되냐고, 그렇게 되면 저는 그 사람의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앞서가지도 말고 너무 성급하게 할 것도 없이, 저는 그런 식으로 운동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어느 야당 운동하는 사람한테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니네 좋은 이슈 갖고 떠들지만 마라, 여러 군중 앞에서 떠들어야만 하는 것이 운동이냐,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제대로 주민들과 운동하려면 네 명 다섯 명, 모이는 앞에서 성의를 다해서, 소신을 다해서, 그 사람들한테 뜻을 전하면 그 몇 사람 제대로 공감하면 내 편이 된다, 그런 운동을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평가나 나타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느림보 같은 거북이 걸음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가 되면, 이것의 확산 속도는 누구도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것은 안 하고, 기초를 전혀 안 닦고, 중간에서 큰 것만 가지고 막 떠들어가지고 다 내편인 것 같고 같은데 하나도 내 편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누구보다 김 의원은 주민들과 밀착된 운동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민운동의 방향도 고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지방자치 시대에 주민을 주인 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민들은 지방자치, 주민자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들과 접촉할 것인가?

“주민들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먹고 사는 것에 바쁘고 다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어서 자기 판단이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의 고정관념이나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한테 뭔가를 가서 얘기하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들면 하나도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준다기보다는 뭔가 즐거운 꺼리, 그 사람들이 뭔가 조금 나한테도 도움이 되고, 우리 애한테 도움이 되는 아주 작은 꺼리, 큰 뭔가에 끌려 들어가면 금방 뭐에 잡힐 것 같은 무거운 것을 주기보다는 가벼운 것을 시작으로 발을 넓혀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우리 동네 녹색가게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 곳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있는데.......사람들이 보통 시민단체라고 하면 무섭게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굉장히 어려운 사람들이고 굉장히 가까이 하기엔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작은 공간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조금 가벼운 꺼리를 다루게 되잖아요. 아이들과 생태탐방도 가고 어디 장 담그는데 구경도 하고 야유회도 가고, 그러다보면 자기들 단체 행사에도 같이 가게 되요........고구마 캐러 가는데 같이 갑시다, 그러면 가고는 싶었는데 같이 간다니까, 돈 조금 들이고 그럼 함께 가보자, 그러면 고맙거든요. 아, 그러면 저 단체가 뭘까, 그러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보면 총회 때도 가게 되고, 그러다 자원봉사도 나오게 되고, 공부할 꺼리가 있으면 한 번 들어나 보고, 뭔가 이런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가벼운 접근, 흥미를 주고 도움을 주는,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어떤 것들, 이런 것을 조금씩 배려함으로써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민단체가 접근하기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서 큰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단체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김 의원의 솔직한 표현대로 아마 많은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무섭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그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시민단체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금희 의원에게 관심 분야는 여럿 있지만,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미디어 분야와 지역축제이다. 그 얘기를 잠깐 들어보자.

“제가 나름으로 미디어센터를 관악에 만들려고 하고 있거든요.......지역신문들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미디어가 시민단체 활동이나 의정활동을 제대로 알려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다, 물론 잘못 이용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오용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정부분 시민단체가 그것에 관심을 갖고 견제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미디어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고, 지금 현재는 구에서 정보센터에 한 공간 정도는 주겠지만, 그것이 조금 활성화돼서, 서울대 언론정보대학원도 있고, 그리고 관악구에 시민단체들도 많이 있고, 그리고 관악구에 학교도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방송위원회이라든지 하는 쪽에서 독자적인 미디어센터가 생겼으면 미디어센터가 독자적으로 구예산을 벗어난, 그래서 객관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청장도 굽신거리면서 한 번 모여 달라고 할 정도로 그런 미디어센터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죠. 그런 쪽에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요.......옛날에는 관에서도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껄끄러운 상대, 아니면 맨날 시끄러운 대상으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민관협력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철쭉제 같은 경우, 작년부터 시민단체가 참여해서 그 동안 비판받았던 미인대회도 없애고 짧은 기간 축제판을 바꾸었어요. 작년에 축제를 하고 나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평이 좋았어요. 문제점이 많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성상품화 논란 등이 없어지고 각 동들이 장기자랑이라든지 이런 것에 참여하게 되어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축제로 바뀌게 되었어요.......올해도 준비되고 있지만, 내년에는 신림4거리 권역이 경제까지 활성화되는 다양한 행사가 준비하려고 합니다.......참여하는 상가들도 뭔가 도움이 되고, 구 차원에서도 철쭉제도 도움이 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고, 그리고 여러 과별로 나눠지는 행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면 서로간의 업무 협조도 되고 하면 좋겠다, 특히 관악을 알려내는 뭔가의 꺼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낙성대 권역에는 박물관도 있고, 미술관도 있고, 도요지도 있고, 강감찬 장군 사당도 있고, 서울대 박물관도 있고, 전통과 역사와 교육이 엮여 있는데, 이런 축제를 통해 온종일 주민들이 찾아오고 타지에서도 와서 볼 수 있는, 이렇게 계속 얘기하고 있는데,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어요.(웃음)”

김금희 의원 스스로도 공무원들이 가장 꺼리는 의원이 본인이라고 말한다. 그 만큼 원칙적이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은 하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이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요. 내 의견이 다 반영되지 않지만, 사사건건 다 짚을 수 있으니까.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누구와 누구만 얘기 안 하면 상임위 빨리 끝난다고 그럴 정도거든요.(웃음) 그럴 정도로 한 건 한 건 저는 최선을 다 해요. 제가 아는 만큼, 제가 모르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제가 아는 만큼은 미리 자료를 보고, 필요하면 자료를 더 요구하고, 회의가 있으면 들어가지 전에 먼저 보고 들어가고, 그리고 예산 심의나 하면 시민단체가 미리 예산서 떼고 갖다 주고 미리 얘기를 해라, 그러면 저도 또 보고, 이렇게 가능하면 건건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요. 어느 과든 내가 한 마디도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공무원들이 싫어하죠.(웃음)”

어쩌면 집요하고 성실한 한 명의 지방의원이 공직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 시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 김금희 의원에게 짧은 경험이지만 지방의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우선은 인적인 것이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의원들의 자질문제죠. 그리고 의원들의 개인적인 보좌를 할 수 있는 한 사람 정도는 필요한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보좌를 아무리 잘 하더라도 보좌하는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야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끝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럴 정도는 아닌, 기본을 갖춘 사람이 의원이 되고, 또 역시 마찬가지고 자기 뿌리 있게, 협력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일정부분 자기 목소리를 꼭 내어야 할 때, 주관을 지켜야 할 때는 꼭 흔들림 없이 가주는, 제대로 된 인적 구성원들이 발전하고 변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제도가 아무리 바뀌면 뭘 합니까, 사람이 바뀌어야죠. 그리고 일정부분 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분권도 이야기가 많이 되긴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지방분권이 되면 결국 구청장한테 많은 권한만 주고, 견제 세력이 없는 그런 상황이 될 것 같아요.......저는 현재의 상태에서도 견제 역할이 제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매년 행정사무감사를 하거든요. 행정사무감사에서 두 번 세 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감사해서 문제가 있다면, 어떤 법적인 제도장치가 있어서 꼭 안 하면 안 되는, 어떤 그런 것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없고, 예산심의도 마찬가지로, 예산심의를 하고 나서 업무 보고를 하잖아요. 예산심의를 한 내용으로 해서 올해 업무를 어떻게 추진하겠다고 보고하는데, 예산 심의할 때 내용 다르고 보고 할 때 내용 다르고, 또 중간에 예산 심의나 보고 할 때 내용이 있었는데, 이 사업을 없애버려서 행정사무 감사 때 가보면 딴 사업을 가 있어요. 실제로 의회 권한이 거의 없고 신뢰도 낮은 편이에요. 공무원들에게 어떤 문제를 지적하잖아요. 그러면 지적하는 순간만 잘못했다고 하고 뒤 돌아서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돼버리죠.......아무튼 지금은 인적자원은 줏대가 없고 로비당해서 얘기할 때 다르고 나중에 다 달라요. 인적인 구성도 제대로 되어야 하지만, 제도적인 것도 제대로 됐을 때, 행정사무감사에서 두 번 이상 지적이 되면, 그것에 대해서 법적인 조치를, 아니면, 그 공무원에 대한 인사 조치를 할 수 있는, 이런 것들, 물론 인사권은 구청장의 고유권한이겠지만, 뭔가 공무원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게 하는, 뭔가 강력한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하지 않을 때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보니까, 그 때만 좀 굽신거릴 뿐이죠. 그 때가 지나면 소 닭 보듯이 해요.(웃음) 그러다보니까 의원이 주민을 대표로 해서 민원을 가지고 회기가 아닐 때 공무원과 만나서 얘기해보려고 하면 굉장히 힘들어요. 자기들 맘대로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니까, 그런 부분이 굉장히 어렵죠. 그래서 저는 그 두 가지가 개선이 되어야 제대로 지방분권이 된다고 보고, 분권도 중요하지만, 분권에 앞서서 그런 제도적인 보완이 된 상태에서 권한 이양이 되어야지 지금도 막 휘두르고 자기 맘대로 다 하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한만 막강해지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휘두를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한테 칼 주는 식으로 굉장히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이 정도로 의원에 대한 신뢰가 없는지 몰랐다. 아니, 단지 신뢰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의원보다 권력이 막강한 단체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어쩌면 지방의원이 공무원들에게조차 ‘팽’당하는 처지일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분권이 되면 무엇 하겠는가? 이런 문제가 단지 지엽적인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공무원 코앞에서 지적한 사항조차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한 지방의원의 이야기는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원 바로 세워주기’도 지방자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2006년 다음 선거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게 되었다. 김금희 의원은 꼭 나가겠다는 욕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음 선거에 이전 상황보다 시민단체의 지방정치 참여가 큰 폭으로 확대되리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 의원에게, 과연 시민단체가 지금부터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후보자와 단체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녀의 답변에서 다음 선거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왜 시민단체들이 시민들과 같이 하는 것은 안 하고, 중앙의 정치 이슈에 따라 움직이느냐, 그런 운동만 하느냐, 그런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부터라도 한 2년 남았으니까, 기초의회를 생각한다면, 그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중앙의 시민단체운동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동네에 목표를 두고 계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두세 명 모였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자기를 알려내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표를 주는 쪽은 지역에 뿌리 있는 주민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고, 대단한 사람이니까, 나는 나가기만 하면 될 거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에요. 솔직히. 그런데 시민단체 사람들이 앞으로 제대로 정치참여를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늘상 주민들과의 관계들을, 어떻게 보면 느린 작업, 피곤한 작업이죠. 주민과 밀착해서, 몇 사람만 내 편이 있어도 괜찮아요. 그 동에 기초 구의원 같은 경우, 그 동에 10사람만 확실한 내 매니아가 있으면 운동이 되요. 당선을 이차문제라고 치고, 운동이 되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노력들을 해야 한다는 거죠. 한 2년 동안 그렇게 노력하면 지금까지 했던 성과나 역량을 합쳐서 폭발하는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뭔가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의원이라고 손가락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바꿔내려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시민단체가 주민들과 밀착도 하고, 그 후보들이 제대로 역할도 하는, 주민들과 같이 숨쉬는 그런 의정활동과 시민활동이 된다면 그 사람이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하든, 이후의 것들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저는 가나가와네트워크의 사례가 우리나라의 현실과 완전히 적절할 것이라는 판단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저는 그것도 시범적으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그 정도의 시민단체들이 제대로 후보들을 뽑아주고, 제대로 그 이후에 보좌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담보만 된다면 오히려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저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된다면 더 좋겠어요.......시민단체들이 운동할 때, 특정한 때만 같이 해주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이후 것들도 같이 담보되고, 같이 지속적으로 의원 활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해주고, 그렇게 안 되면 그 후보를 짜를 수 있는 그런 시민단체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저는 백번 찬성을 해요. 그런데 지금은 한때만 조금 도와주는 것 같으면서 자기 혼자 다 알아서 하게 하고, 이후에 전혀 책임을 안 져요. 이 사람이 잘못했다 해도 전혀 책임을 물을 수 없어요. 그런 상태라서 지금은 안 되는 거죠. 시민단체도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보통의 의원들도 잘 적응을 못할 겁니다.”
(2004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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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여성 활동가 의원" - 하남 민주연대
4년간의 활동이 기대된다

인터뷰 : 홍미라 하남시 의원/김진성(하남민주연대 운영위원/민주노동당 하남지부(준))
정리 : 김현(상근 운영위원)


'하남시'하면 연상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하남시를 연결하는 팔당대교. 홍천, 양평 등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항상 거치는 곳이다. 나머지 하나는 ‘하남국제환경박람회(1999)’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행사로 인해 하남시가 처음으로 납세자 소송을 제기 받기도 했다. 방만한 운영으로 시의 재정손실을 발생하게 했고, 결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메꿀 수밖에 없었다. 전체 186억 원의 세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 예산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래서 지난 2000년 8월,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제1회 "밑 빠진 독상"의 수상대상으로 "하남국제환경박람회"를 선정했다. 하남시에 거주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하남시’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예산낭비’였다. 자치단체의 수장을 잘 뽑는 것도 그 도시의 이미지를 규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역운동사례를 취재하면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하남민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풀뿌리민주주의의 버팀목으로 우뚝 서 있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정치1번지로 꼽히는 신장2동에서 당당하게 여성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부패에 찌든 지방정치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남민주연대(이하 민주연대)’는 이번 6.13 지방선거에 여성위원장으로 있던 홍미라 씨를 기초의원에 출마시켰다. 네 명의 후보 중, 기호 ‘라’로 출마했던 홍미라 씨는 31% 가량 득표를 하며 당당히 당선되었다. 민주연대는 이번 결과를 두고 하남시민들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9개의 선거구 중 홍미라 씨가 출마한 신장2동은 하남시 전체 유권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정치1번로 꼽히고 있다.(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큰 규모의 선거구임에도 불구하고 1인의 의원만 선출한다) 더구나 그 동안 선거에서 여성 후보가 당선된 전례가 없을뿐더러, 후보로 출마한 여성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민주연대는 충분히 흥분할 자격이 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지방자치단체의 오류만 비판했던 것 같아요. ‘하남국제환경박람회’라든지, 조례제정운동 등을 통해서 지방자치단체는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되었던 거죠. 이런 식의 운동은 한편으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의회에 직접 참여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연대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도 저와 같은 생각에 부정적이지 않았구요. 자연스럽게 후보를 출마시키는데 동의가 되었던 거죠. 더욱이 최근에 하남시도시개발공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코타운(주1)의 경우, 한 기업체에 수 백억 원 대의 이익을 주며 특혜의혹을 불러일으킨 것만 봐도 제대로 된 지방의원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민주연대, 하남청년회, 그리고 민노당 준비위 등에서 공동으로 후보를 출마시키게 된 직접적인 배경도 지방자치단체의 케케묵은 부패의 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미라 의원이 밝히고 있듯, 제도권 밖에서의 비판만으로 행정부가, 또는 의회가 시민들의 충실한 심복이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은 일면 정당성을 갖는다. 이번 선거의 쟁점도 에코타운 특혜의혹이었던 점만 보더라도 현 지방정치에 대한 불신이 하늘에 닿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홍 의원은 주민자치의 토대는 아직 미약하다고 말한다.

“민주연대가 하남시를 대상으로 큰 틀에서의 이슈를 많이 다루었고, 정월대보름 행사, ‘얘들아 놀자’와 같은 5월 어린이날 행사 등의 문화행사를 하면서 주민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주민 속으로 뿌리내리는 운동은 미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민들을 배제시키고는 주민자치가 달성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좀 더 신경 써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 시의원은 지역주민이나 민주연대 회원이나 각종 지역사업과 철저히 같이 하지 않으면 의회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런 부분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연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2년 남짓의 역사치고는 꽤 빠른 성장을 해왔다. 토호세력의 전유물이었던 지방의회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홍 의원이 지적했듯이, 풀뿌리 조직에서 풀뿌리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의회에 진출한 것이 기회이면서 위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의회 내에서의 활동도 그렇지만, 밖에서의 탄탄한 풀뿌리 세력의 구축이 과제인 것이다. 홍 의원이 당장 고민거리는 그녀가 제시한 공약의 실현이다.

“제가 제시한 부패척결, 주민자치 분야에서의 공약은 주민자치를 위한 조례제정, 시의 주요사안 주민투표제로 처리, 혈세 낭비 방지를 위한 참여예산제 도입, 그리고 부패 및 비리 감시를 위한 주민소환제 도입 등이 그것인데, 솔직히 어떤 식으로 실현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민투표의 경우는 사안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공단이나 지하철 건설 등의 문제를 주민투표도 고려해볼 수 있는 문제인 것 같고, 참여예산제 같은 경우는 사전에 예산에 대한 분석/조사를 해서 시청과 협의하면서 가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좀 더 연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홍 의원의 공약은 홍 의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민주연대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 강조한다. 일본의 가나가외네트워크가 그랬듯이, 개인보다 조직을 우위에 둔 활동의 상을 약속하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의회 활동비와 회의수당 전액을 민주연대에 기탁하고 여기서 활동비를 받아쓰겠다고 말한다. 지방의원 유급제가 성사되지 않아 생활비로도 어렵지 않겠냐고 묻자, 얼마를 받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주연대와 약속 같은 것을 했습니다. 저를 지지한 단체들과 협의구조를 만들고, 저는 이런 협의구조와 함께 갈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당선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이 협의구조에서 결정된 것이 있다면, 전적으로 따라야겠죠. 며칠 안됐지만, 지역단체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의회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될테니까 앞으로 활용할 부분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홍미라 의원과 지역단체와의 협의구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는 선거 이후의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것은 민주연대 만의 과제는 아니다. 전국적으로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후보였거나 추천, 또는 지지를 받은 당선자가 100여명을 넘는다. 적지 않은 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95년, 98년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당선자와 운동단체와의 관계정립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 100여명이 뿔뿔이 흩어진 개인이 될 수도 있고, 거대한 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운동조직과 대리인의 역할은 달라야 한다. 이후 4년간의 활동이 미래의 거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홍미라 씨를 인터뷰하면서 ‘참 이쁘다’라는 생각을 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 있다고 할까, 아니면 주부가 가지고 있는 정직함, 진솔함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방의회에 대한 경험이 없고 썩은 지방정치판에서 어떻게 버텨나갈까라는 우려보다는, 억척스럽게 주민의 입장에서 일 처리를 잘 할 거라는 믿음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 개인의 독특함에도 기인하겠지만, 민주연대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신선함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홍 의원은 지방의원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운동가와 지방정치인으로서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한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아이들을 위한 문화/역사/생태교실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가족과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말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주민의식, 시민의식이 고양되고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시민의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지방자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고 싶어요. 외부적인 형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에 수반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교육이 수반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민주연대에서 하는 교육이 아직은 미흡하긴 하지만, 앞으로 시민의식을 변화시키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현재보다 훨씬 더 강화된 내용으로 사람들을 밀착해서 구체화된 내용으로 풀뿌리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싶고요, 현재의 대중운동이나 민민운동이 이런 풀뿌리민주주의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런 공백을 메우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만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 의원과 지역 단체들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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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하남시는 신장2택지개발지역을 개발하면서 ‘하남시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하였고, 민간업체 (주)우연산업개발을 사업의 파트너로 참여시켰다. 그러나 (주)우연을 도시개발공사의 설립에 참여시킬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남시와 (주)우연간의 협약 내용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우연에게 택지개발을 통해 최소한 216억원의 부당 이득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져, 특혜의혹이 일고 있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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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5일(수) 오후 3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개최된 "지방선거 이후의 풀뿌리지역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 발표글입니다. "‘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제의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의 정상호 박사님의 글입니다.



이 글은 5.31 지방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지방정치’(local politics)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중앙(national)정치의 대칭 개념으로 지역이 아닌 지방정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역이 동질성을 공유하는 지리적 단위를 지칭한다면, 지방은 중앙으로부터의 독립성과 특성을 강조한다.  5.31 지방선거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사회과학적 질문거리를 남겨 놓았지만 한나라당의 압승과 집권당의 완패로 규정되는 이론의 여지없는 압도적 결과 때문인지 정치전망 이상의 정치학적 분석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지방정치를 둘러싼 기존의 논쟁 지형이 대단히 협소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권은 여ㆍ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늘의 ‘지역없는 지역정당체제’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필자는 한국정치가 이중의 위기에 당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최장집(2002, 2006)의 지적대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지 않는 정당체제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지역없는 지역정당체제’가 야기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왜곡, 즉 풀뿌리 보수주의의 문제이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유권자들에 대한 지역주의적 호소와 동원에 기초한 지역정당체제(박상훈 2000)이며, 그 기본 성격은 불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체제가 계급과 계층 등 사회경제적 기반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적 소통과 미시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생활정치’의 현장으로서 ‘지역’의 발전을 심각히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오히려 생활정치의 토대로서 지역이 황폐화 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역설적이게도 진보정당의 평가에서 발견된다. 한 관찰자는 민주노동당의 지방정치에 대해 “지방선거의 시기가 도래하면 지역의제 발굴이나 후보발굴에 집중하고 선거 이외의 시기에는 중앙의 투쟁방침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구당의 현실이 문제”라고 실토하고 있다(김태근 2006, 27).

둘째, 시민운동은 이번 선거를 치루면서 지방정치의 적폐와 모순을 고발하고 이에 근거한 바람직한 지방정치 모델에 대한 공론화를 유도하기보다는 지엽적인 논쟁과 수동적 의제설정으로 일관하였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도입된 정당공천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적 인식이 시민운동 진영의 보편적 정서인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정당공천제와 중선거구제가 시민운동 진영의 선거에 미친 영향은 박근혜 대표의 칼날피습사건이 열린우리당의 득표에 미친 파급력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문제는 선거제도(외인론)가 아니라 지방정치, 그리고 지방정치와 지역운동의 관계와 위상에 대한 체계적 비전과 이를 실천할 능력의 부족(내재론)에 있다. 이름도 생소한 메니페스토 운동 역시 중앙에 치우치고 언론과 전문가에 의존한 수동적 운동방식의 한계를 여전히 답습하였다.
셋째, 학계에서 지역과 지방정치는 아직 시민권조차 못 얻고 있다. 정치학은 지역주의 전략과 지역정당체계에 머물러 있고, 행정학은 자치와 분권의 효율적 통치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당ㆍ지자체ㆍ시민운동ㆍ토호 등이 전개하는 권력 작용과 상호 관계에 대한 엄밀한 분석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책선거로서 지방선거의 거듭된 실패는 정당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지역 현안과 지역 정책에 정통한 전문가 집단의 결핍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바람직한 한국형 지방정치 모델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지방정치의 실상을 정리한 후 그간 대안으로 거론되어 온 몇 가지 모델들의 타당성을 검토해보자.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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