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0.06.04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제2차 풀뿌리활동가 교육 홍보
  2. 2010.02.19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②, 부천 Y 김동해 간사와의 만남 4
  3. 2010.02.10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①,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와의 만남
  4. 2010.01.05 풀뿌리운동 활동가 교육사업 평가 및 교육 모델 개발 연구
  5. 2009.09.01 일본 자민당의 패배가 한국의 풀뿌리운동에 주는 시사점은? 2
  6. 2009.08.20 제2차 찾아가는 학습모임 - 지리산 권
  7. 2009.06.22 [풀뿌리운동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③ 2
  8. 2009.06.22 [풀뿌리운동 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②
  9. 2009.06.17 [풀뿌리운동 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①
  10. 2009.05.13 [홍보] 전국 풀뿌리운동 활동가 아카데미
  11. 2008.12.03 지역민주화와 풀뿌리 정치
  12. 2008.07.21 강북구 풀뿌리 지도자 간담회
  13. 2008.04.04 [풀뿌리운동 사례보고] 마을에서 '초록'을 '상상'하는 아줌마들 7
  14. 2007.12.01 "지역을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 '진보개혁세력 위기 극복방안'
  15. 2007.11.26 대통령 선거와 풀뿌리운동
  16. 2007.11.05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17. 2007.11.01 풀뿌리운동이 희망이다 / 오관영
  18. 2007.11.01 기름 유출이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 / 환경운동연합
  19. 2007.10.29 오래된 미래, 풀뿌리시민운동
  20. 2007.10.22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장애인 담장' 허물어 공동체를 만들다
  21. 2007.09.28 지역이 희망이다: 빠름을 거부하고 느린 길을 내기]
  22. 2007.09.28 풀뿌리정치운동와 선거
  23. 2007.09.28 풀잎 운동과 풀뿌리 운동
  24. 2007.08.23 과천지역과 풀뿌리운동
  25. 2007.08.11 기사 : 벽돌 한 장의 참여로 만든 작은 기적 - 풀뿌리운동 사례
  26. 2007.07.23 지행 네트워크 2
  27. 2007.06.25 지역사회 비전만들기
  28. 2007.06.25 한국의 시민운동, 정말 '시민없는 시민운동'인가?
  29. 2007.05.22 세계화와 풀뿌리운동의 대안 - 지리산권공동학습프로그램 제1강좌
  30. 2007.04.05 [2007, 풀뿌리들의 수다] "고수들과의 대화" 녹취록

2010년 민주시민교육 주민아카데미사업

 

『제2차 풀뿌리운동 활동가교육』에 모십니다.

- 풀뿌리운동 활동가를 위한 함께 커가는 학습공동체 -

 

풀뿌리운동에 관심 있는 활동가들을 4박5일 교육과정에 모십니다.

 

마을만들기운동이나 학습공동체운동은 이미 지역운동의 중요한 운동과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번 활동가 아카데미는 지역 활동가들이 실제 주민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주민들과 함께 크고 작은 주민운동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라는 방법을 학습을 통해 찾아가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2010년도에 2회째 접어들고 있는 풀뿌리운동 활동가교육에서는 활동경력 1~5년차의 활동가와 함께 최근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마을만들기운동의 모습과 마을만들기운동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낼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을 함께 학습하고자 합니다.

 

특히 활동가교육은 분임 중심, 과제 중심의 참여자 주도형 방식과 참여자가 함께 준비하고 책임지는 생활자치 만들기, 그리고 진행자와 참여자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모여서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을 지향합니다.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일 시: 2010년 6월 15일(화) 오후 12시 ~ 19일(토) 오후 1시 (4박5일)

· 장 소: 경기도 파주 홍원연수원 (www.hongwontc.or.kr/index.php)

· 대 상: 주민자치운동, 마을만들기운동, 지역사회복지운동 등에 관심 있는 활동가

(경력 1~5년차 활동가)

· 참여자: 20명 내외

· 참가비: 1인 80,000원

· 공동주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회

· 신청 방법: 6월 4일(금)까지 이메일(gongmo@kdemo.or.kr)로 접수 (선착순)

· 문의: 은영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사업팀 / 02-3709-7622, 010-5136-9333 / yjeun@kdemo.or.kr)

이필구 (한국YMCA전국연맹, 2009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

/ 02-754-7894, 010-4272-0410 / ymca289@hanmail.net)

 

● 프로그램 일정표

일시

내용

첫째날

6/15(화)

여는 마당

12:00-13:30

접수 / 점심식사

13:30-14:00

기념사업회와 주민아카데미사업 소개

14:00-17:00

풀뿌리운동의 흐름과 전망 (전성환)

17:00-18:00

함께열기

18:00-19:00

저녁식사

19:00-21:00

조별과제 찾기

21:00-23:00

영화상영

둘째날

6/16(수)

마을과 경제

06:30-07:30

하루를 여는 시간 (1) 마음과 몸 깨우기

07:30-08:30

아침식사

09:30-10:00

하루를 여는 시간 (2) 모두 함께

10:00-12:00

마을과 경제 (1) (임경수)

12:00-14:00

점심식사

14:00-18:00

마을과 경제 (2)

18:00-19:00

저녁식사

19:00-22:00

민주시민교육 방법론 (김성학)

셋째날

6/17(목)

마을과 교육

06:30-07:30

하루를 여는 시간 (1) 마음과 몸 깨우기

07:30-08:30

아침식사

09:30-10:00

하루를 여는 시간 (2) 모두 함께

10:00-12:00

마을과 교육 (1) (고상준)

12:00-14:00

점심식사

14:00-18:00

마을과 교육 (2)

18:00-19:00

저녁식사

19:00-22:00

바캠프(BarCamp)

넷째날

6/18(금)

마을만들기

지역사례

06:30-07:30

하루를 여는 시간 (1) 마음과 몸 깨우기

07:30-08:30

아침식사

08:30-09:00

하루를 여는 시간 (2) 모두 함께

09:00-12:00

성미산 사례 (유창복)

12:00-14:00

점심식사

14:00-16:00

초록나라 도서관 사례 (이순임)

16:00-18:00

조별활동

18:00-19:00

저녁식사

19:00-21:00

활동가의 삶 (유정길)

21:00-23:00

참가자 교류의 밤

다섯째날

6/19(토)

닫는 마당

06:30-07:30

하루를 여는 시간 - 마음과 몸 깨우기

07:30-08:30

아침식사

09:00-10:00

조별활동 발표시간

10:00-12:00

수료식과 닫는 마당

12:00-13:00

점심식사


프로그램별 강사진

강사진

전성환

천안YMCA 사무총장

임경수

주)이장 대표이사

김성학

에듀웨이 대표 / 2010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

고상준

시민교육공동체 애듀플랜 대표

유창복

성미산마을극장 대표

이순임

초록나라 도서관 활동가

유정길

평화재단 기획실장 / 2010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

진행팀

은영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사업국

이필구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팀장 / 2010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2010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

 

 

● 참가자 신청 방법


1) 신청자격: 풀뿌리운동에 관심 있는 단체 활동가 (경력 1~5년차)

2) 참가자 신청 방법: 신청마감은 2010년 6월 4일(금) 오후 6시까지 / 선착순마감

- 이메일 신청: gongmo@kdemo.or.kr (신청서를 작성하셔서 꼭 이메일로 접수해주세요)

- 이메일 제목: 제2차 활동가교육 참가신청으로 표기해주세요.

3) 참가비 입금

- 교육 참가비는 총 80,000원입니다.

- 입금계좌: 140-006-353404(신한은행), 예금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 입교

- 교육당일(6월 15일, 화) 오후 12시까지 오셔야 합니다.

5) 기타사항

- 4박5일 집체교육방식으로 진행됩니다. 4박5일 전체 기간을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6) 문의: 은영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사업팀 (02-3709-7622 / 010-5136-9333)

이필구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팀장, 2010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

(02-754-7894 / 010-4272-0410)

Posted by '녹색당'
,

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②

 

부천 YMCA 김동해 간사와의 만남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위해 주위에 적절한 활동가를 소개시켜 달라는 요청을 하다 소개받은 이 중 한 명이 부천 YMCA 에서 활동하는 김동해 간사다. 두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인터뷰 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추천한 이들의 의견을 듣고나서 꼭 만나보고 싶었다. 만나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기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는 사람은 아니었다.

  김동해 간사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원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려 했으나 학부 과정에서 우연히 사회학 관련 학회를 접하며 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재학 당시만 해도 사회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학을 공부하다보니 사회 현상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집회에도 여러 번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졸업할 때가 다가오면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다 현재 일하고 있는 부천 YMCA를 찾아갔다.

  김동해 간사가 대학 4학년 들어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면서 부천 YMCA를 자신의 사회생활 터로 삼게 된 데에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가지가 크게 작용했다. 첫째는, 비록 열심히 다닌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인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김동해 간사로 하여금 기독교 계통의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했다.

  기독교 계통 시민운동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체도 그 종류가 많다. 김동해 간사는 이 두 가지 조건에 맞는 시민단체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부천 YMCA를 알게 되었다. 일단 자기가 사는 집과 학교와도 가까웠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여성, 환경, 노동 등 단일한 관심보다는 사회운동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에 4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에 직장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 부천 YMCA에서 일종의 인턴 과정을 밟게 된다. 이 때 김동해 간사가 일한 부서가 시민사업부이다. 현재는 회원운동팀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 부서 또는 팀의 주요한 역할은 부천 YMCA의 다양한 활동 중 시민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것이다. 방학 동안의 인턴 과정이 끝난 후 부천 YMCA 총무 등과 상의하여 학기 중에도 자주 만남을 갖다가 졸업 후에 정식으로 상근하게 되었다.


2.

  부천 YMCA에서 일하면 다른 직장에 비해 월급이 적은 문제 등으로 갈등을 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이에 대해, 자기가 스스로 찾아가 얻은 일터이기 때문에 별 갈등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여자친구가 반대를 했다고 한다. 부천 YMCA에서 일하는 것과 관련된 연애의 굴곡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여자친구와 잠시 헤어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다시 만나고 있지만, 여자친구는 지금도 다른 직장을 얻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단다. 김동해 간사 스스로도 결혼한 이후에는 이 곳 월급만으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과 관련해서는 현재도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일하는 곳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자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YMCA 자체를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영향 등으로 인해 YMCA에서 일하는 것이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자기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의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부천 YMCA 내 젊은 간사들의 이직률이 높은 것도 이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천 YMCA가 김동해 간사에게 직장으로서의 의미와 사회운동을 하는 곳으로서의 의미 중 어느 것이 더욱 강한 편인지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전통적인 Y-man 들에게서 흔히 듣는 대답이 나왔다. YMCA를 직장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사회운동을 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 개념보다는 ‘함께 한다’, ‘YMCA 활동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는 등의 개념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YMCA에서의 활동을 자기의 사명으로 생각하니 당연한 대답일 수 있다. 그렇지만, YMCA에서 오래 활동한 전형적인 Y-man들에게서나 듣는 대답을 이제 3년차 활동가에게 듣자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선배들로부터 세뇌를 당한 건 아닐까?” 이러한 투의 질문에 대해서는 약간 빈정이 상한 듯했다. “나는 누가 한 이야기를 할 때는 꼭 ‘누가 그랬다’고 대답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3.

  아무리 사회운동에 대한 대의에 충실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 때문에 중간에 자기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갈등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특히 부천 YMCA는 위탁기관까지 합하면 직원이 50여명에 달하고, 김동해 간사가 일하는 본관에만 30명 정도의 실무자가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특히, 다른 부서의 부장 중에 상담을 전공한 사람이 있고 이 분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 해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술을 좋아해 사람들과 잘 지내는 편이다. 그리고 자신은 말이 별로 없어서 잘 나서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과 갈등관계를 잘 형성하는 편도 아니다. 전반적으로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무난한 편이라고 한다.

  선배들과의 관계에서도 일을 내려 주면, 그것을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좋은 관계라 볼 수 없다. 그리고 3년쯤 되면 이러한 방식에 분명 불만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에’ 시키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란다. 그래도 사람이란게 그렇게 수동적으로만 있으면 스트레스가 분명 쌓일 것이라고 반론을 하자,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단다. 그리고 자기가 워낙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아기 스포츠단’에 가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놀다보면 그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좀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조사자로서 뭔가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과정이 있어야 재미있는 이야기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함께 일하는 사람과 갈등도 없고, 선배와의 관계에서도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등은 이야기는 먼 길을 찾아간 나로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기성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후배의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후배들과의 만남은 관성에 대한 도전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후배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좀 돌려, 부천 YMCA 내부 또는 부천 지역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끌어내오기 위해 이리저리 질문을 돌려가며 이야기를 걸어보았다. 그러니 조금 기대하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YMCA 라는 조직은 그 활동 전통이 깊다보니 나름대로 활동체계가 잘 잡혀있는 편이다. 게다가 부천 YMCA는 YMCA 내에서도 활동의 전통이 꽤 깊은 곳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황주석 선생은 지금도 풀뿌리운동을 열심히 일구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분이다. 부천 YMCA는 바로 이 황주석 선생이 생협을 중심으로 풀뿌리운동의 선구적 기반을 닦은 곳이다. 그리고 지금도 풀뿌리운동의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조례’가 부천 YMCA에서 태동했다. 이 사례는 빈민지역운동 이외에는 한국사회에서 풀뿌리운동의 성과를 확인하기 힘든 시절 지역사회운동의 가시적 모습과 성과를 보여준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부천 YMCA는 지역사회운동, 풀뿌리운동에 있어서 역사가 매우 깊은 곳이다.

  전통적으로 정착된 활동체계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단점은 조직이 항상 새로운 모습을 취하는 데에 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조직의 유연성이 약하고 탄력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김동해 간사가 바라보는 부천 YMCA는 탄력성이 부족한 듯이 느껴진다. 그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고 한다. 즉, 무엇 하나 결정하는 데에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 답답했던 듯하다. 그래서 사회운동 조직으로서 이런 점을 고쳤으면 한다는 문제제기를 선배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격적인 변화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금씩 바꾸어보자는 선배들의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김동해 간사는 YMCA가 전반적으로 빠른 변화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물론, 대중조직으로서 의사결정 과정이 간략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중조직은 그에 참여하는 시민 대중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이 다소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새로이 결합한 후배 활동가의 문제제기는 그래도 기성 멤버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또한 그러한 문제 제기를 ‘잘 모르고 하는 것’ 등으로 치부하지 않은 선배들의 태도도 존경스럽다. 개인적으로는 부천 YMCA의 선배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김동해 간사가 또 한 가지 지적한 문제는 등대모임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등대모임의 방식도 실상 부천 YMCA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황주석 선생이 부천 YMCA 총무시절부터 등대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등대모임의 방식은 지금까지 여러 노력들을 통해 개발되고 다듬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도 12-3년 전에 YMCA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공동체 지침서」라는 자료집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자료집은 등대모임을 위한 지침서이다. 당시에도 나름 잘 개발된 모임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김동해 간사의 문제제기는 이 정형화된 모임 방식이 20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로서야 이 모임 방식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또 그 과정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20년 전 등대모임에 나오던 촛불(생협 조합원을 지칭)들과 지금의 신세대 촛불들의 성향 등이 한결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20여년 동안 바뀌지 않는 모임의 방식은 일단 문제제기 꺼리로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김동해 간사도 전면적 변화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이념성과 지향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큰 틀 안에서도 조금씩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선배들로부터 변화의 의지가 확인되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변화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나로서는 평가 또는 판단할 근거가 전혀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20년 동안 이어진 전통이 조금은 답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4.

  부천 YMCA는 그 역사성 등을 감안해 보더라도 부천 지역 시민운동에서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따라서 기존의 시민사업부서인 회원활동팀에 소속된 김동해 간사도 부천 지역의 제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연대사업의 주축은 아직 총무가 주로 맡고 있다. 하지만 연대사업에도 참여하니, 부천 지역 시민운동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을 터,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동해 간사가 이에 대해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은 시민단체들의 역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또 이로 인해 여러 가지 현상들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김동해 간사가 역량부족의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한 것은 재정적 열악함이다. 그러다보니 상근자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고, 또 그러하다보니 재정 지원이 가능한 프로젝트 사업에 그 나마의 역량도 집중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에서 함께 추진하고자 하는 일들에 실제 많은 역량이 집중되지 못해 생각이나 말만큼 일이 추진력을 갖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부천시 시민사회단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체 상근자 중심의 활동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고,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 어렵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활동양식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김동해 간사의 지적은 이처럼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역 연대사업에 참여하면서 다른 단체의 선배 활동가들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궁금했다. “워낙 다른 분들과 나이 차이가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선배라는 생각보다 ‘어른’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곳이 노동운동의 전통이 강한 부천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나이나 사회운동경력이 오래 된 분들이 많겠다는 생각에 이해가 간다. 그리고 자신은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들에게 자기 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란다. 특히, 어른들에게는 더욱 그렇단다. 이 대답에선 참 외롭고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듣고 나니 젊은 활동가들의 활발함이 부천에서 잘 발현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또래의 활동가들과는 자주 어울리는지 물었다.

  주변에 터놓고 시민운동 관련 고민을 나눌 만한 또래들은 별로 없단다. YMCA 내 다른 부서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이들과 하는 일이 다르다보니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지는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외롭다거나 하지는 않단다. 워낙에 활동력 있는 유치원 교사들과 함께 어울리기 때문에 재미있는 편이고, 자기도 몸으로 함께 어울리는 일을 좋아한단다. 그리고 워낙 바쁘기 때문에 그런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별로 없다고... 현재 회원활동팀은 자기 혼자이기 때문에 소식지 만들랴, 총무님이 외부 연대사업에서 가져온 일 하랴, 아기 스포츠단 선생님들이 모두 여자라 남자가 필요한 일 도와주랴.... 정말 바쁘단다. 사람을 더 뽑지 않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데서 일하려 하나요? 지난 번에 대학 Y 출신을 잘 꼬셔서(?) 데리고 왔는데, 오래 못 버티고 그만뒀어요.”

 

5.

  김동해 간사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함께 일하는 동료가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꼭 물어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전에 한 워크숍에서 만나 저녁에 함께 술 한 잔 한 적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것이 궁금했단다. 처음으로 내게 김동해 간사를 추천한 사람이고 또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어릴 적 꿈이 교사였단다. 그리고 자기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또 활동적인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아기 스포츠단 교사도 해보고 싶단다. 말하자면 유치원 교사를 하고 싶다는 셈이다. 그래서 자주 그 곳 교사 및 아이들과 어울리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는 있다. 하지만, 도와주는 것 이상을 할 수는 없단다.

  그리고 몸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다보니, 자신과 관련한 사업 중에서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와 관련한 운동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부천 YMCA 내에서 “대학 Y 관련 업무를 맡았으면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청소년 관련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면 아쉬워 하는 내색을 보였다. 그럼 그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라고 이야기 하니,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단다. “(맘 약하기는...) 네가 없어도 부천 Y 회원 운동팀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건 처음 만난 그리고 외부 사람인 내가 할 말이 아닌 듯 하여 입맛만 다셨다.

 

6.

  마지막으로 이음에 대한 홍보 겸 해서, 이음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지난 해 제주에서 다음세대재단과 함께 한 IT 교육에 대해서 안다고 했다. 참여 신청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교육의 목적 중 활동가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목적을 보고 정말 인상이 깊었단다. 자기도 그런 식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휴식도 취하는 그런 워크숍에 참여하고 싶단다. 그런 워크숍이 가끔 열렸는데, 참여신청을 하라는 정보를 몰랐느냐 라고 묻자, 아직 풀뿌리운동이나 시민운동 내에서 자신에게 직접 전달되는 정보는 거의 없단다. 주로 이 계통에서 오래 일한 총무님에게로 정보가 들어가고, 자신은 그 분이 필요하다고 자기에게 전달해 주는 정보만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편이란다.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활동 경력이 적은 젊은 활동가들은 그만큼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보니 다양한 정보들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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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①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와의 만남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평상시에 내가 나이가 들었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활동가들과는 개인적 만남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이들과 내가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갖고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대표적인 계기는 지난 해 이음에서 주관한 3년 내외 경력의 젊은 활동가들 교육에 참여한 것이었다. 당시 프로그램 중에 선배 활동가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진행된 ‘3인3색 토크쇼’ 사회를 보았다.

  참여자들은 내가 함께 활동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 활동가들이었고, 이들에게 뭔가 일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섭외한 이들은 참여자들과 나의 중간 정도 쯤에 위치한 나이와 활동경력의 활동가들이었다. 사회를 보면서 내가 교육에 참여한 활동가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던진 몇 가지 질문이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뜬금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 “아! 내가 이들과 일상적인 공감대가 많이 부족하구나” 한 마디로 이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이음은 풀뿌리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설립되었다. 이러한 지원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가장 직접적으로 활동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음에서 상근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한창 의욕을 갖고 일하기 시작하는 젊은 활동가들에 대한 나의 무지는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해 들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나자고 연락한 사람은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는 이주희 간사다. 이주희 간사를 처음 만나겠다고 생각한 것은 작년 연말에 있었던 관악사회복지의 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하면서 깊은 인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주희 간사는 꽤 진행이 어려운 토론의 진행을 맡았었는데,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토론을 진행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진행에 사용한 방식도 신선했다.

  먼저, 관악사회복지 사무실에 전화를 해 이주희 간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다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차저차 한 취지로 인터뷰를 좀 하고 싶으니 만나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아주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자신도 최근에 선배와의 만남을 하면서 그런 부탁을 종종 했었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이 있어서 그리했다고 한다. 사려도 깊다.

 

2.

  요즘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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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주희 간사는 처음부터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관악사회복지에 일종의 취직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주희 간사는 당당히 관악사회복지의 선배들로부터 스카웃 된 경우이다. 이미 그 자질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주희 간사가 관악사회복지에서 청소년 시절부터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악사회복지에는 ‘햇살’이라는 청소년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이 햇살에 참여해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햇살 모임에 참여했을 뿐 정작 관악사회복지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햇살 활동을 하다가 사회복지가 공부하고 싶어 대학 입학할 때도 사회복지 전공을 선택했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던 중 관악사회복지 선배 활동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자는 일종의 스카웃 제의였던 것이다. 당시 관악사회복지는 단체 내의 3개 소모임에 대해 그 모임 출신들이 모임을 주도하도록 하자는 결정을 했었다. 이주희 간사가 햇살 출신이니 관악사회복지에 와서 햇살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학교를 다니고 있던 관계로 상근은 힘들고 대신 반상근을 하기로 결정했다. 관악사회복지에서의 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았던 당시에도 관악사회복지, 지역운동, 풀뿌리운동 등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후배들하고 일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 아르바이트 겸으로 시작했다. 이때가 2006년 말이었다. 그렇게 2년을 반상근 하고, 3년 전부터 정식 상근활동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연배는 20대 중후반이지만, 활동경력은 꽤 되는 편이다. 관악사회복지 (반)상근 경력도 이미 5년차다. 그동안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함께 모임을 하던 햇살 후배, 선배 등과의 관계에 대한 책임성 때문에 실제 그만두지는 못했다. 사람들이란 나이나 사회적 환경과 관계없이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운동을 지속하는 가장 큰 계기와 힘은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공통점.

 

3.

  이주희 간사가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는 것은 졸업 후 자신의 직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다른 친구들이 사회복지 기관에 취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관악사회복지는 직장으로서의 사회복지 기관으로는 월급이 매우 적은 편이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단다. 물론,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임근 조건은 타직종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관악사회복지 같은 시민사회단체의 월급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복지 기관에 취직한 친구들이 예쁜 옷 사 입고 하는 것이 좀 부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같은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함에도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 할 만한 공감대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래서 한 때는 친구들과 잘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이 대목에서 나와의 공감대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다시 잘 만난다고 한다.(허걱, 이 대목에서는 나보다 낫다.)

  관악사회복지를 직장으로 여기고 입사를 했으니, 이와 관련한 집안 갈등의 여지가 그만큼 없는 편이다. 오히려 부모님은 자기 전공 살려서 취직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주희 간사에게는 직장으로서의 관악사회복지와 사회운동으로서의 관악사회복지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관악사회복지는 사회운동의 기반이기는 하지만, 직장의 의미도 강하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입장은 때로 선배들과의 차이 또는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주희 간사도 이런 문제로 함께 일하는 선배와의 차이점을 느낀 적이 적지 않게 있었다.

  관악사회복지가 직장이라는 관점으로 접근을 하면, 일하는 사람들의 복지는 직원들의 중요한 관심 사항 중 하나이다. 이주희 간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상근 활동가들에게는 나름대로 주어진 연차 휴가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선배 중에서 주어진 연차를 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막내로서 이는 상당한 부담이다. 자기도 주어진 휴가일수를 다 채우는 것이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일하는 선배가 자신의 휴식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있고 저녁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으면, 후배 입장에서는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었기에 그 느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느끼면서 이주희 간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관악사회복지에서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선배도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상근자가 몇 명 되지 않는 곳에서 노조라니, 네가 핵심 간부인 사무국장과 그렇게 친한데 그게 되겠느냐 등등으로 가볍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심지어 노동운동경험이 많은, 사회적으로도 꽤 저명한 어떤 선배 활동가 강연회에서, 관악사회복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노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분에게서도 당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결국 다소 부정적인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주희 간사에게는 그리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공익을 위한 활동, 특히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노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렇지 못한 일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거점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곳도 자신의 직장인 이상 최소한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투신을 강요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운동 경험이 많은 선배들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정이 아직은 사회운동 진영 내에서는 잘 체화(體化)되지 못한 면 역시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이주희 간사의 이러한 도발(?)이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이나 역할을 망각했기 때문은 아니다. 이주희 간사는 요즘 자신의 MP3에 민중가요를 다운받아서 듣는다.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다보니 가끔 집회나 모임 등에서 민중가요를 부를 때가 있는데, 정작 자신은 그 노래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은 선배들처럼 치열한 운동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결단을 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도 사회운동을 하고자 지금 이 자리에 있고, 그래서 그 운동을 잘 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사회운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민중가요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일정한 경험과 공부도 필요하지만, 노래도 함께 부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MP3로 그러한 노래들을 듣는다고 한다.

  나름, 선배들의 운동경험에 대한 배움의 자세가 적극적인 편이다. 이는 역으로, 앞서의 문제제기가 결코 사회운동의 대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연결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래도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서 후배들이 해야 할 가장 큰 미덕은 선배들의 관성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리라. 그런 도전을 또 어떤 점에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척 겸손하다. 아직은 선배들을 그냥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그런 건 후배의 미덕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설득을 하자,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 관악사회복지가 적극적으로 결합・참여하고 있는 지역사회복지 네트워크에서는 복지예산을 분석하고 정책적 요구를 예산을 통해 제기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관악사회복지도 이 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주희 간사가 그 실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선배들은 이러한 활동을 지역 내 네트워크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희 간사는 그런 방식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 자신은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적으로 제안하는 사업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

  실제, 그런 모범적인 활동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대충 들어보니 꽤 재미있고 모범적인 사례인 듯싶다. 작년 10월에 지역 내 관련 단체들과 함께 청소년 100여명이 참여하는 ‘청 100 토크’가 그것이다. 이 사업은 청소년들 100여명이 모여 자신들이 구의원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들을 도출한 후, 구의원들에게 해당 문제를 설명하고 이의 해결을 요청한 것이다. 이 과정을 이주희 간사가 주로 진행한 듯한데, 그러한 진행방식도 신선하고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마당’을 마련했다는 점이 더욱 감동적이다. 이주희 간사는 기존 시민운동가들과의 활동보다는 이러한 당사자 조직을 통한 일이 보다 재미있는 듯했다.

  실상 지역에서의 활동은 지역의 다른 시민운동 단체나 시민운동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한 당사자들의 참여와 목소리를 조직하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활동가에 따라 보다 흥미를 끄는 일이 따로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선배들의 네트워크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다. 다만, 개인적 활동 취향에 있어 선배들이 맡기고자 하는 활동방식보다는 자기가 따로 더 집중하고 싶은 활동방식이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호조차도 신선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참여를 직접 조직하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렵고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풀뿌리운동 활동방식이기 때문이다.

 

4.

  풀뿌리운동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활동가 중에 매우 어린 편에 속하는 이주희 간사지만, 그래도 관악사회복지에서 활동한 지는 벌써 5년 차에 들어섰다. 그러다보니 그 동안 어려움과 고민, 갈등들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먼저 최근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점에 대한 아주 원론적인 고민을 들려주었다. 사회복지 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자꾸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 때마다 “이건 아닌데, 내가 뭘 잘 못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단다.

  굳이 사회복지 영역의 ‘서비스’와 관련하여 이야기하자면, 지역사회복지, 풀뿌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스스로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마, 그러한 교육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역 현장에서 복지 관련 주제로 활동할 때에는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이주희 간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자세가 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자신도 모르게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천천히 느리게 가고 싶다고도 한다. 솔직히 이 말을 들을 때의 느낌을 말하면, 너무 교과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관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항시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구체적으로 한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위기라 함은 적어도 자신이 해오던 일을 포기하려는 구체적 행동까지 나아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위기는 자신이 일하는 단체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관악사회복지에는 잘 훈련된 활동가들이 있고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 역시 매우 민주적인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영틀이 잘 조직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그 단체의 막내인 이주희 간사에게는 그게 더 재미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틀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기 성과나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게다가 당시 외부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 사업을 하면서 그에 따른 자잘한 실무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자신이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실무에 매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배는 따로 만나 이야기 좀 하자고 하자 약속 시간에 술을 ‘잔뜩’ 마시고 비틀대며 오더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주희 간사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기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그리했단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해 이주희 간사는 선배들로부터 3개월 간의 휴가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배의 소개로 인도에 3개월 간 있었다. 3개월 간 그렇게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서서히 하고 싶은 일들도 생기고 그래서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선배들에게 자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투정을 부린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선배도 후배들 때문에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진짜 힘들 때 선배에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후배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특권을 행사하도록 해 준 선배들 역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5.

  현재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 정도란다. 하나는 주민 출신의 활동가로서 운동성이 떨어지지 않고 싶고,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주희 간사가 스스로를 주민 출신 활동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렇다. 이주희 간사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관악구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관악구에서 자신의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그 인연으로 관악사회복지 소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지금은 관악사회복지의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주민 출신이라는 것이 어디 나이가 든 사람만을 의미하겠는가? 나 스스로도 인터뷰를 하면서 이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해당 지역의 청소년 출신 활동가, 주민 출신 활동가가 맞다. 나이 든 주민들과 생활상의 공감대를 넓게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 지역 청소년, 청년들과의 일상적 공감대는 자연스럽게 넓게 가지고 있을 터이다.

  두 번째 고민은 예산운동을 좀 더 제대로 하고 싶고, 그래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역시 추진력 있는 젊은이답게 그냥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관련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전공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인도에서 만난 이신행 교수를 찾아갔다. 이신행 교수는 ‘풀뿌리사회지기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적절한 공부 커리귤럼을 전달 받고 사회지기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단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학교 강의를 통해 학문적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바램과 함께...

  세 번째 고민은 요즘 자신이 좀 건방져진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담당한 활동만 하다가 요즘은 지역을 보게 되고, 전국적 활동도 접하면서 어디 가면 자기가 아는 것도 이야기하는 등의 변화를 스스로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건방져 졌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당연한 성장과정일 뿐인데.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러한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또 어떻게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현상을 괜히 걱정하는 것이라 한 마디 해 주었다. 하지만, 자신감 속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항상 자기 성찰의 과제가 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속적인 성찰은 활동 경험이 짧은 활동가들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오히려 활동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꾸 고민과 갈등도 공적인 활동과 관련해 나오기에 매우 사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함께 대학에 다닌 친구들에 비해 월급이 적고, 특히 직장으로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속상할 수도 있을 텐데...(물론, 앞에서 그러한 점을 지금은 극복했다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그에 대해 이주희 간사는 똑부러지게 대답한다.

  “비록 월급은 적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내가 막내라고, 활동경력이 적다고 무시하지 않고 항상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윗사람의 지시를 받아 일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고, 또 내가 힘들 때에는 3개월 간의 휴가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선배들이 나를 지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망해도 내 뒤에는 관악사회복지라는 든든한 지지망이 있기 때문에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다시 논의를 해서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가시적 성과에도 그리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원래 성격이 무언가를 주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반 사무실에 취직했으면 그게 더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가끔 관심 있는 주제의 토론회나 워크숍 등을 하는 곳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음이 아직은 조직적 관계망보다는 인적 관계망에 의존해 활동해오고 있으며, 따라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이음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조직이 아니라는 이음 운영위원들의 평가가 정확하다는 것이 입증되는 발언이다. 어떻게 하면 이음이 보다 많은 활동가들과도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조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주희 간사에게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내가 요청한 자료를 보내주는 이메일이었는데, 나와 인터뷰 한 것이 자기에게도 좋았다고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답신을 보냈다. “아무 부담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다면 나 또한 영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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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8월부터 12월까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청으로 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인 저(이호)와 이필구, 그리고 국토연구원의 이영아 박사가 작업한 보고서 입니다.
기존 풀뿌리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교육사례 6개를 선정하여 이를 분석했고, 교육사업 기획에 있어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교육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사례분석 대상 교육사업은 3개가 2박3일 이상의 합숙 교육형태였고, 3개는 특정한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8회 이상의 강좌식 교육형태였습니다. 이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교육 기획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내용들을 추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4박5일 교육사업을 사례로 이를 진행하는 과정을 비교적 생생하게 소개함으로써, 교육기획 및 진행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보고서로 읽어보도록 하는 것이 더욱 편하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2009년 풀뿌리운동 교육사업 보고서와 함께 발간하였고, 이를 200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한 교육사업 참가자들에게만 발송한다고 합니다. 이에 파일 형태로나마 풀내음에 올립니다.
보고서로 직접 받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은영준 과장(010-5136-9333)에게 직접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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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의 선거로 자민당은 소위 '55년 체제'(1955년부터 시작된 자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의 끝을 보게 되었다(1993년 오자와가 자기 계파 의원들을 이끌고 자민당을 탈당하면서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그러니 약 49년의 장기집권체제가 무너진 셈이다.
다소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일본 특유의 연합으로 권력을 유지할 줄 알았건만 일본 사회 내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불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의 당선 이후 이어지는 변화의 물결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오바마나 민주당을 혁신세력이라 부를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들이 표방하고 있는 미래가 우리 세계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권력독점의 역사가 끝났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

특히 내가 재미있어 하는 점은 풀뿌리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늘상 미국과 일본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정치와 일본정치의 보수성을 얘기하며 풀뿌리운동이 전국정치를 바꾸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고 얘기했던 사람들, 지역사회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며 그 한계를 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떤 새로운 논리를 개발할지 사뭇 궁금하다.
물론 오바마나 민주당의 승리를 풀뿌리의 힘으로만 해석하는 건 분명 억지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나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분명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변화와 소통을 꿈꾸는가,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껴 투표하지 않지만 자신의 정책에 공감해 투표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그것은 아래로부터 조직된 풀뿌리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아래가 보수화되어 있다면 아무리 변화를 외치고 소통을 해도 그것이 선거에서의 지지로 드러나지는 않을 터이니...
그러니 밑바닥을 흐르는 변화의 기운은 분명 풀뿌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한국의 풀뿌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일단 정치를 무거운 과제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래로부터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어느 시점에서 그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정치적인 중립성'이라는 신화가 풀뿌리단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그 중립성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물론 중립성의 틀을 벗어던지는 것이 특정 정당에 대한 선거지지로 곧바로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당들이 풀뿌리단체들이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 세계 어느 정당에나 계파는 있지만 계파끼리의 소통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서로를 증오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의 누적된 업보이니 그런 문화를 변화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식의 논의, 나는 참이요 진리며 다른 의견은 위선이고 악이다라는 식의 논의도 사라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변화된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풀뿌리운동의 활동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니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고, 어느 쪽이 풀뿌리운동의 활동에 도움을 줄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선거연합은 후보자 나누기가 아니라 그런 정책의 공유를 통해서, 그리고 그런 정책을 실현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당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다. 풀뿌리운동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데,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권력의 형태도 함께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과 정책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 좀 지겹고 신물이 나고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고 투표나 선거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단 선거나 투표만이 희망인 듯 얘기하지 말고 그런 정치행위를 통해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담긴 진정한 희망을 끌어내야 하고 그 희망을 정책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를 논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풀뿌리운동이 지원해야 한다.

시흥시장보궐선거, 제주도 주민소환투표에서 드러나듯이 풀뿌리 사람들의 자신감은 아직까지 10% 근처를 헤매고 있다. 권력의 분명한 잘못이 드러나고 충분히 그것을 심판할 수 있을 때도 사람들은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은 변화와 대안을 추진할만큼 자신감을 품지 않고 있다.
현실의 정치는 진공상태가 아니어서 무수한 관계와 많은 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여를 수없이 강조해도 그것이 곧바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직접적인 정치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중간에 많은 징검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돌다리 하나만 두드려보고 돌아서지 않도록, 자신감을 가지도록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들겨주고 어깨도 걸어보며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자신감을 불어넣는 방법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는 인문학도 그런 방법의 하나이고, 마쓰모토 하지메처럼 지역사회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계획(action-plan)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감의 원천도 필요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자신감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나 시장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풀뿌리가 자립할 수 있다면 자신감은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풀뿌리운동이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공유의 공간'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개별적인 이해관계로 부서지지 않도록, 공동체의 이해관계(이를 공공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서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참여하라고 목 아프게 외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참여할 것이다( 나는 참여예산제의 활성화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에 있다고 믿는다).
풀뿌리운동의 애매함은 공동체에 기반한 운동이 이미 공동체가 와해된 곳에서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점에 있을 수 있는데, 다시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은 사람간의 관계를 잇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를 물질화시키고 규범과 제도로 만들 터전이 필요하다.
한때 위에서 내리꽂는 방식으로 'NGO센터'나 '도서관' 등이 논의되기도 했는데,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방식의 공유영역 확장 운동이 중요하다.
이런 영역이 확장되는 만큼 나는 사람들의 자신감도 더욱더 강해지리라 믿는다. 실제로 운영해보고 만들어보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강해지고 희망을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내리라 믿는다.

다 쓰고 보니 일본의 선거와 그리 관계가 없는 듯하기도 하지만...^^;;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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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찾아가는 학습모임 -

풀뿌리운동 현장 탐방 “활동가, 지리산 품에 안기다"


찾아가는 학습모임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찾아가는 학습모임은 풀뿌리운동, 마을만들기운동 현장에 직접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사례도 탐방하는 학습프로그램입니다. 올해 총 3회에 걸쳐 찾아가는 학습모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찾아가는 학습모임은 지난 4월말에 진행된 전라남도 순천 마을만들기 사례였습니다.  순천의 마을만들기 사례(도심속 상상 프로젝트)와 민관협력 관련한 상황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획된 찾아가는 학습모임은 ‘지역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삶과 자세’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갑자기 머리 아프세요?  지리산권역의 활동가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마을이라는 틀 안에서 지속적인 운동과제를 수행하면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현재 나의 모습을 성찰하고 반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는 것이기에 상쾌한 성찰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날은 현장 모습을 보고 듣고 또 현지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도법스님이 주시는 맛있는 절밥을 먹고, 다음 날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1. 일시: 2009년 9월 10일(목) 오전 8시 출발-11일(금) 오후 5시 서울도착

 ※ 출발 일시와 장소 :
       9월 10일(목) 오전 8시, 서울시 사당역 1번 출구, 공영주차장


2. 장소: 전라남도 남원시 지리산권


3. 참석대상: 풀뿌리운동, 마을만들기운동에 관심 있는 활동가 30명
                                                     (선착순 마감)

4. 참가비 : 1인 30,000원

 - 차비와 숙박, 식사 3끼 포함, 내려가는 날 점심은 휴게소에서 각자 해결

 - 남원으로 직접 오시는 참가자의 참가비는 20,000원

 ※ 입금계좌 : 140-006-353404(신한은행), 예금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입금시 현장탐방 참가자 이름 뒤에 ‘탐방’이라는 문구를 넣어 주세요.

       (예 : 홍길동탐방)


5. 참가신청 기한: 8월 31일(월)까지 참가비 입금 순서로 선착순 모집


6. 신청 방법 : 신청서를 작성하여 9월 4일까지 이메일(gongmo@kdemo.or.kr)로 접수


7. 탐방내용

  가. 지리산 생명연대 사례 - 희망의 씨앗 찾기, 지리산댐 반대운동 등

  나. (사)한생명 - 마을공동체 만들기 운동

  다. 지리산길 안내센터 방문과 지리산 숲길 (둘레길) 걷기

  라. 실상사 방문 - 저녁공양 및 도법스님 말씀듣기


8. 문의: 은영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02-3709-7622 / 010-5136-9333)

         이필구 한국YMCA전국연맹 (02-754-7894 / 010-4272-0410)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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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갈등의 발생과 극복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운동단체와는 좀 다르다.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활동을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참여한 주민들이 그 활동의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가는 과정에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반 시민단체와 같은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유급 상근자나 사무실을 갖추고 있지도 않고, 그나마 운영위원회나 대표와 같은 최소한의 조직체계 조차 최근에 갖추었다. 이는 이 모임의 갈등이 주로 어디에서 오는가, 또는 이 모임의 활동 지향, 그리고 이 모임이 지역사회에서 마주치는 대상과 종류 등에 대한 것들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이 모임의 이러한 성격은 갈등에 있어서도 사회적 갈등보다는 회원 개인의 갈등이 주요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 갈등은 회원들 간의 갈등일 수도 있고, 회원들과 이 모임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단비와의 갈등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지난 몇 년 동안 심심찮게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이 모임의 주요한 주제인 자녀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기존의 경쟁적 교육과는 다른 대안적 교육을 고민하다보니, 이에 대한 내부의 고민과 회의가 충분히 예견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개인 간 갈등 사례를 소개하면, 그것은 역시나 매우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실제, 크고 중요한 문제에 따른 갈등은 나름대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있고, 또 해소 방법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들은 오히려 해결이 더욱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오해가 오해를 낳는 등의 문제 때문이다.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녹색마당이 개최되는 날 몇 명의 회원이 보이지 않았다. 이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은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화장실도 잘 가지 못하면서 매우 바쁘게 고생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저녁에 콘서트를 가기로 한 것과 연동되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사실, 콘서트 시간과 녹색마당 시간이 겹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 두 가지가 밀접한 연관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친한 회원들 몇 명이 녹색마당 행사에 빠졌고, 이들이 저녁에 콘서트에 가기로 한 것이 바쁘게 일한 회원들에게는 약간 오해를 살 만한 일일 수 있었다. 정작 단비도 행사 와중에 얘기를 전해 듣고 서운한 감정이 있었고 뒷풀이 때 얘기를 하다가 ‘울컥’ 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왔다.

사실 단비가 ‘울컥’한 것은 녹색마당에 빠지고 콘서트에 갔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콘서트에 가기로 한 회원들은 오랫동안 단비와 함께 일한 멤버들이었다. 이들이 단비에게 귀뜸만 해주었더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네 친구로 생각한 오래된 회원들이 자신을 시어머니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서운한 것이었다.

녹색마당에 불참한 회원들이 저녁에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는 것은 당연히 다른 회원들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한 회원이 불만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녹색마당에는 빠지고 콘서트를 보러 간단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행사에 불참한 세 명의 회원에게 전달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작 문제의식을 갖게 된 사람은 오히려 녹색마당 행사에 불참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물론, 불참자 세 명 중 한 명과는 전화로 “어떻게 알았냐며” 통화를 했고, 단비도 “세상에 비밀이 있냐고” 가볍게 넘어갔다. 또 다른 회원은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고 “내가 이 일을 두고두고 써먹을 거야”라고 문자를 보내며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모임에 오랫동안 참여했고 또 녹색마당에 자기 대신 남편과 아이들을 보냈던 회원은 단비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왜 우리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표가 나왔고, 모두 다 갈 수 없었다. 행사 날과 겹쳐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게 큰 잘못을 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 이렇게 부담을 주느냐”고 했다. 그리고 다른 회원은 책 읽고 토론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일을 많이 벌이는 것은 부담스럽다면서 모임의 지향과 맞지 않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진정으로 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단비도 자신이 즐겁게 해야 하는 거지 의무감이나 오래된 의리 때문에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나 때문에 이 모임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고 하자, “그러면 나 이제 안 할께”라고 하며 결국 탈퇴하고 말았다. 그래도 5월 있었던 녹색마당 행사에 그 회원이 찾아와서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고 한다.

이러한 갈등은 지금도 회원들 사이에 조금은 남아있다. 그 갈등의 당사자는 정작 단비와 다른 회원들 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회원들 중 일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모임에 참여했는데, 단비는 이 모임에서 ‘이것도 해보자, 저것도 해보자’고 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듯하여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작은 모임이다보니 회원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모임의 운영에 영향을 많이 주기도 한다. 회원들 간에 서운한 일이 있거나 관계가 불편해지면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기가 싶기 때문이다. 회원들 간의 이러한 소소한 갈등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단비의 대처는 역시 전통적인 것이다. 오해가 쌓인 이해당사자들을 각각 방문하여 장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주요한 대처방법인 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오해가 풀리면 다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럼에도 그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해 당사자 중 한 쪽이 모임에 소원해지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모임 전체의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회원들 간에 심각하게 발생했던 집단적 갈등은 새로운 회원과 오래된 회원 간의 소통을 둘러싼 갈등이다.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모임이 처음 시작된 곳은 조그만 아파트 단지였다. 이 곳에서 처음 모임을 가진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간에 매우 긴밀한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모임이 재편되면서, 그리고 단비도 이후 인근의 다른 아파트로 이주하였고, 새로운 회원들이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존 회원들의 ‘끈끈한’ 관계는 오히려 새로운 회원들에게는 폐쇄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기존 회원들과 새내기 회원들 간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입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모임이 낯선데, 모임에 가면 자기들끼리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었다. 게다가 기존 회원들은 모임 이외에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일상적으로 자주 만남을 갖고 있었으므로, 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는 신입 회원들에게 다양한 정보에서 소외되는 것과 같은 불만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신입 회원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에 단비는 이런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성과도 있었지만, 실패도 있었다. 실제, 이 문제로 신입 회원 중에도 불만을 갖고 모임에 나오지 않은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성과도 있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소외의 문제에 대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모임을 이끄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노력들과 모임 내부의 인적 구성의 변화 등으로 자연스럽게 갈등이 해소되었다.

사회적 갈등은 개인 간 갈등에 비해 그리 큰 편은 아니나,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회원이 공동 학습을 위해 대안교육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남편이, “아이 교육은 그냥 한 방향으로 쭉~ 이루어져야 효과가 있는 것이야”라며, 자신의 아내가 이 모임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근의 복지시설과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인근 모 사회복지관과는 모임 초기부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모임이 지역사회로 관심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굴포천 살리기 시민모임>에서 하천생태학교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 하천생태학교에서 새로이 만난 동네사람들은 바로 인근의 모 사회복지관에서 조직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창립 후 책읽는 모임은 주로 이 복지관 공간을 빌려 진행하였다. 이에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문화강좌 등에 참여하는 다른 주민들도 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복지관 내에 홍보물이 붙었는데, 연락처가 담당 사회복지사로 되어 있었다. 복지사에게 처음 홍보 부탁을 할 때에는 아주머니들의 자발적 모임이라는 점을 잘 설명하였으나, 이러한 결과가 나오자 이에 대해 항의를 하였다. 이로 인해 담당 복지사와는 미묘한 갈등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갈등은 하천생태학교 이후 하천 모니터링을 할 때에도 표출되었다. 복지관에서 참여한 이들은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도움도 주고 하였으니, 모니터링을 복지관 이름으로 수행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하천모니터링은 복지관과 무관한 일이니 자체 이름으로 하자는 측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가진 회원 역시 있었다. 하지만, 단비는 어떤 활동들을 자기 조직의 성과로 만들려는 시도들에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따라서 단비는 독자적으로 수행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해당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결국, 모니터링은 별개로 진행되었고, 회원들은 각자의 판단대로 참여하기로 했다. 물론, 이중 멤버십은 허용되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이 복지관의 공간에서 진행되던 모임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단비는 복지관 공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하였고, 모임은 다시 주로 단비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기존에 집에서 모임을 유지하던 회원들에게는 이러한 회귀가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그러나 복지관이라는 공공 공간에서 모임을 하던 회원들은 개인 집에서 모임을 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었다. 이 문제로 복지관에서 모임을 하면서 결합했던 회원 한 명이 공식적으로 모임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문제로 인해 공식적 공간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회원들의 변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참여하는 주부들은 그냥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업주부들이다. 그리고 이 모임은 기본적으로 책을 함께 읽고 그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그리고 가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정기적 비정기적 행사나 사업을 전개한다. 사업의 내용은 주로 아이들 교육 및 환경 관련된 녹색마당, 하천 모니터링, 안전한 먹거리 관련 교육 등이다. 따지고 보면, 매우 간단한 모임과 활동내용들이다. 하지만, 사회운동을 경험한 적이 없는 평범한 주부들은 이 모임을 통해 사회와 자신들의 생활을 연결시키고 있다. 즉, 이 모임은 회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기본적으로는 회원들이 자기 자녀들 교육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경과 관련한 의식변화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부분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어떤 회원은 “라면을 끓이는 데 물을 많이 넣어서 국물이 많이 남았는데, 안 버리고 내가 다 먹었어”라는 글을 까페에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회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생리대를 사서 쓰지 않고, 면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환경과 자기 몸을 위해 면 생리대가 얼마나 좋은지 절감하면서 주위에 적극 권유하고 있다. 이는 환경이라고 하는 문제가 자기의 일상생활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들은 때로는 극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 회원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녹색연합>에 회원으로 가입하는가 하면, 그와 관련한 전문가 교육을 받기도 하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그런 식으로 또 다른 회원의 경우에는 먹거리 쪽에 관심이 생겨나고 있는데, 생협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정치의식도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크게 권리의식과 참여의식이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성장에 있어서는 학교 급식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큰 기여를 했다. 이 서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자체도 정치의식이 성장한 증거이지만, 이 활동이 성과를 거두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또한 정치의식은 참여의식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데, 최근에는 인천지역 시민운동 단체들이 전개하는 ‘계양산 골프장 반대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농성장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단비가 하루 그 곳에서 단식을 할 때도 이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표하는 회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회원들의 이러한 변화가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했던 이들에게는 매우 소소한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은 사회운동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왔던 이들이다. 이들이 이제 지역사회의 교육 및 환경 등의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임을 오래 한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 공감대가 깊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정치의식의 변화는 정당에 대한 지지와는 상관없다. 단비는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 당원활동에 매우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를 다른 회원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회원들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비도 다름 참여자들이 선거에서 어느 당을 찍느냐 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사람들에게 선거 때 지지하는 정당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직접적으로는 참여주체인 회원들에게 일어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양육하는 아이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충분히 예견된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주머니들의 참여를 통해 아직은 소수지만 남자들의 참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아내들의 활동을 도와주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녹색마당 때 짐들을 옮기기 위해 남편들이 하나 둘 나서기 시작한 것이나 텃밭 가꾸기에 아빠들이 참여한 것 등은 희망적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어떤 남편들은 모임을 통해 아내들이 밤마실도 다니는 등의 변화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이 모임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나 텃밭 일구기 등과 같이 함께 참여하는 모임을 통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체감은 현재 단비가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품앗이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있다. 단비는 이제 뭔가 중요하고 큰 일에 자신을 목적의식적으로 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품앗이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이다. 단비는 품앗이를 통해 동네 사람들에게 아이들과 함께, 생활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포함해서, 더불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동네의 ‘맛’을 전파하고 싶어 한다. 물론, 아직 품앗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당장 사교육비 절감에 대한 욕구가 더욱 크다. 그리고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은 그냥 아줌마들의 친목모임, 독서모임으로, 그리고 어린이 생태교실을 운영하는 곳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도 점차로 ‘사람 사는 세상’의 ‘맛’을 감전시킬 수 있는 기반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활동을 통해 단비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단비는 지금까지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오면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도 많이 샀다. 고민하고 고생하면서 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가 하는 데에 대한 주민들의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이 단비와 친한 듯하면서도, “저 사람은 우리와 달라”라고 하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 어느 날 한 회원이 “이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단비 자신은 동네에서 좀 떠 있는 느낌을 받곤 해왔다. 이는 회원들이 단비가 함께 하는 자리에서의 대화와 자기들 끼리만의 대화에 차별을 두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단비 앞에서는 항상 옳은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비에게는 때로는 소외감으로 때로는 외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어느 날 단비가 회원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술을 한 잔 하는 자리에서, “서운하다며”고 말을 하며 ‘욱’해서 눈물을 보이자 다른 회원들이 단비를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단비를 자기들과 다른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강철’ 같은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친밀하게 섞이는 데에 뭔가 한계가 보였었다. 그러나 단비의 이러한 반응에 한 회원은 단비를 껴안아 주면서, “전부터 한 번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한 것은 단비에게도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단비는 이제 목적의식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벌이려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회원들의 생활 속으로 녹아들어,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지역 풀뿌리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전망


단비는 이제 이 모임을 지역사회에 더욱 개방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의도적인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천 모니터링이나 어린이 생태교실, 식품안전교실, 녹색마당 등의 자체 행사와 학교급식조례 서명운동, 계양산 골프장 반대 지지 등을 하면서 회원들도 점차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와 같이 개인의 집에서 모임을 하는 것도 일정 정도 개선할 필요성이 느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근에 새롭게 세워진 ‘정다운 도서관’은 매우 탐나는 자원이다.

현재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모임은 이 도서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인천시 서구청에 평생학습 동아리로 신청까지 하였다.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또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서 도서관에서 아이들 동화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는데, 이는 담당 공무원과 사서가 이러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의 문제는 도서관 공간이 너무 작다보니까 소음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할 정도의 매우 정숙한 분위기에서 책 읽는 곳으로만 기능을 한정하려는 담당자들의 고정관념이 변화지 않는 데 있다. 그러나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독서실이 아닌 지역주민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한 때는 그 도서관을 주민들이 ‘접수’해서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생각보다는 마을학교나 청소년 도서관을 만드는 등의 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더욱 크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히 공간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다. 이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동네에서 녹색삶을 가꿀 수 있는 교육문화공동체를 지향할 수 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보고 어른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을학교라는 공동체에 담아내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일 조차도 의도적으로 무리하게 추진할 계획은 아니다. 그보다는 회원들과 함께 천천히 긴 호흡으로 준비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풀뿌리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요구에, 단비는 그동안의 어려움과 외로움의 원인이 된 자기 자신의 시행착오를 떠올린 듯하다.


“지역에서는 지나치게 목적의식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벌이려고 해서는 잘 안 된다. 이는 오히려 지역활동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웃들의 삶과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그러한 시행착오조차도 주민들과 왕성하게 만나려는 의도적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 또한 그러한 시행착오 속에서 내면화된 것이리라.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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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재할 글로, 세 번째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②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모임의 위기와 극복


모임을 재미있게 진행하다가, 단비가 2005년부터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보니 아이들 심리 및 상담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니면서 모임을 기존과 같이 활성화시키기가 힘들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물론 총무가 있기는 했지만, 단비가 모임을 거의 주도적으로 이끌어오고 있었고, 모임 장소 또한 대부분 단비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모임을 1개월에 1회로 줄였다. 사실, 단비를 대신해서 모임을 예전대로 진행하도록 역할을 나눌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단비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 정도로는 긴밀한 멤버십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올 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단비 역시 마음으로 의지하던 열성회원 몇 명이 멀리 이사를 가는 일까지 생겼다. 그렇게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회원 서너 명이 이사를 갔고, 그 외에도 여러 명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회원 수도 줄고 모임도 자연스럽게 주춤하게 되었다.

모임이 이렇듯 쇠퇴하게 된 배경은 단지 회원들의 이사로 인한 것뿐이라고 할 수 없다. 회원들의 이 모임에 대한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초창기에는 모임 자체가 좋아 열성적으로 참여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성이 조금씩 시들해 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보다 발전된 실천활동으로 연계하는 데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단비에게는 이 모임을 잘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나, 지역사업의 발전이 열망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회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논의만 무성할 뿐 실제사업으로 추진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회원들이 활동에 느슨해지기도 한 것처럼 보였다. 또한 함께 공부하는 책- 주로 환경과 교육 관련- 일부 책에 대해서는 어려워하기도 하고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한 회원의 경우에는 남편이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읽는 책을 보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그 모임에 가지 마라. 단비 그 아주머니가 당신을 의식화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아이 교육은 그냥 하던 대로 쭈욱 한 길로 지도하고 키우는 것이 낫다”며 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래도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몇몇 회원들이 이사를 가고 남은 회원들도 다른 단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중, 삼중의 멤버십을 가지며 바빠지고, 모임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다. 2007년에는 한 권의 책을 세 달 동안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모임 때마다 참석자들이 너무 적어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달에도 참석자는 매우 적었으나 그냥 강행하였다.

이에 단비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모임은 주부들의 고급스러운(?) 독서 계모임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가? 그만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모임 창립 회원들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고 까페 등에 자신의 심경을 비추었다. 회원들은 지금껏 해온게 아깝다는 의견이었고, 멀리 거제도로 서울로 이사간 회원들도 까페 글을 보고 답글을 달거나 전화를 걸어왔다. 그곳에 있을 때는 그 모임이 얼마나 소중한 모임인지 몰랐다고. 그 모임을 통해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노라고. 밖에서 보니 참 훌륭한 모임이라고. 또, 출산을 얼마 남기지 않은 회원 한 명이 이야기를 걸어왔다. 자신이 지금 산달을 얼마 앞두지 않아 도와줄 수는 없지만, 이 모임을 통해 자신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이 모임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언니, 내가 애 낳은 다음에 도와줄 테니 두세 달만 더 버텨...”

이 회원의 눈물 섞인 자기고백은 단비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굳이 모임의 의미를 큰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두 사람이라도 이 모임이 의미가 있고, 그냥 같이 성장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목적의식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기보다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함께 긴밀한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고 또한 자신 및 사회의 문제를 인식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그것이 내면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단비는 모임 자체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 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과정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만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단비가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나 혼자만 이 일을 꾸려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 더불어 “이 모임이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인가?”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일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만 이 모임을 잘 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활동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활동가로 위치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여러 가지 일들을 회원들에게 의지하기도 하는 등 모임 운영이 체계화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도 더 잘 진행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회원들의 주체적 참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동네에서 전통놀이도 하고 좋은 책 전시 등의 사업도 했었다. 이 일들은 모두 회원들이 역할을 나누어 진행한 것들이다. 한 회원은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투호놀이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들을 주어서 그것을 깎고 다듬어서 투호를 만들기도 하였다. 책전시를 맡은 회원은 책 선정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등의 일을 매우 주체적으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단비 본인은 이러한 회원들을 전적으로 믿기보다는 자기가 항상 도와주어야 한다는 자기 암시에 걸려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다른 회원들도 단비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단비에게 너무 많은 하중이 걸리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힘들어 했던 것 이다.

이렇듯 단비의 일방적 헌신에 의해 모임이 발전하다보니, 정작 다른 회원들은 술 한 잔 먹을 때 가끔 물어보기도 했다. “너는 왜 이런 일을 해? 나는 네가 우리를 민노당 지역 사업 차원에서 민노당에 가입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비는 한 번도 다른 회원들에게 민노당에 가입하라는 등의 권유를 해 본적이 없었다. 다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단비는 “내가 좋은 바이러스라면, 주위에 이런 삶을 감염시켜 이웃들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싶다. 동네에서 같은 지향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이는 당위론적 대답일 뿐이었다. 앞서와 같은 스스로의 위기가 찾아오기 전에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즐기는 것이 지금보다 덜했다. 결국 이러한 위기는 단비 자신을 변화・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한 차례의 심각한 고비를 겪은 후 모임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변화는 운영위원회가 꾸려진 것이다. 활동체계에 대한 고민과 분화는 2008년에 시작되었지만 운영위원회는 2009년도에 처음으로 꾸려졌고, 이를 통해 단비가 회의에 빠져도 회원들 스스로 모임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각자 팀장 등의 역할을 맡는 등 적극적 역할을 하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물론, 모든 회원들과 팀장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 있었다. 실제, 행사를 앞두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에 단비가 빠진 적이 있었는데, 까페에 올라온 회의결과는 놀라웠다. 단비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밀도 있는 회의가 진행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비가 없으니까 자기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 회의에 오지 않은 이들이 많자 위기의식을 갖고 일을 하나씩 더 맡기로 한 것이다. 그전에 단비는 자기가 모임을 빠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다. 하지만, 회원들 중 이 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실제 이런 과정을 통해 회원들의 적극적 참여정도는 매우 높이 고양되었다. 2008년에는 처음으로 대표를 선출하기도 했는데, 단비가 그 과정을 통해 대표로 선임되었다. 사실 대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는데, 외부에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항상 대표자가 누구냐 하는 등의 요구가 있어 그냥 대표를 뽑자고 한 것이었다.

두 번째 변화는, 비록 초기의 전성기 때만은 못하지만, 회원들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창기 때의 회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몇몇 열성 회원들이 먼 곳으로 이사한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최근 어려워진 경제사정 등으로 일을 하는 주부들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다보니 오전에 열리는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2009년부터는 직장에 다니는 회원들을 위해 매달 한 번씩 밤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 밤 모임에는 대여섯 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처음 만들게 된 계기는 한 회원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밤 모임 역시 중요한 내용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다.

현재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회비(월 5,000원)를 내며 참여하는 회원 수는 16명 정도이다. 2009년 3월에 시작한 품앗이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데, 약 22여 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문의를 하는 주민들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들 중에서 새로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도 회원으로 가입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회원으로 가입할까 망설이고 있는 이들도 6~7명 정도 되고 있다. 또한 동네 어린이집 바자회 때나 녹색마당 등을 통해 홍보 리플렛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몇 명이 회원으로 새로 가입하였다. 사실, 기존 회원만으로는 관계가 권태로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이렇듯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서 모임에도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아름다 가게>를 통해 지원 받은 ‘식품안전교실’ ‘어린이생태교실’ 사업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즉, <아름다운 가게>에 대한 공모신청이 선정되면서, 회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연속 4강으로 이루어진 주민교육인 ‘식품안전교실’은 광우병 파동이전이었음에도 성황리에(26~30명 정도의 주부 참여) 이루어져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사업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액수의 지원신청에 대해 모임 회원들의 교육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신청액에 추가 금액까지 지원함으로써, 회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회원 참여 과정과 구성


초기에는 단비가 동네 정자에서 주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책읽는 모임에 가입하기를 권유하거나 회원들의 입소문을 통해 회원들이 주로 가입을 하였다. 그러던 중 <굴포천 살리기 시민모임>의 하천생태학교 참여를 통해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 역시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다 모임이 한 차례 위기를 겪은 후인 2007년부터 새로 가입한 회원들은 주로, 앞서 언급한 바자회나 녹색마당 등의 행사 때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새롭게 결합한 이들이다.

초창기 회원들은 주로 전업주부들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직장에 다니는 회원들도 상당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원들의 밤 모임을 새로이 만들어 진행하기도 하고, 2007-2008년에는 책모임을 새내기 회원모임과 기종 회원모임으로 나누어 따로 운영하고 월1회 전체모임에서 모임운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회의를 진행하였다. 전체회의에서 새내기 회원들이 적을 때에는 기존 회원들의 ‘끈끈한’ 인간관계 때문에 새내기 회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기존 회원들이 대부분 직장을 다니면서 그만두거나 밤모임으로 옮기게 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없어졌다.

회원들의 구성은 매우 다양한 편이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몇몇을 빼고 대부분은 ‘사회운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 모임을 통해 책도 읽고 생태교육, 식품안전 교육도 받으면서 새롭게 자아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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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A4 13장이란 분량이 나왔다. 한꺼번에 싣기에는 읽기가 너무 지겨울 듯하여, 세 번에 걸쳐 시리즈로 싣고자 한다.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 단비 이야기
-. 조직형성과정
-. 모임의 내용
-. 모임의 위기와 극복
-. 회원 참여과정과 구성
-. 갈등의 발생과 극복
-. 회원들의 변화
-. 앞으로의 전망



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우연한 기회에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에 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단체이지만, 이름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모임이 내 관심을 끈 것은 사무국과 상근자 등을 가진 ‘공식적’(?) 단체라기보다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자발적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임이 그리 흔한 편은 아니지만, 내심으로는 이런 모임들이 정말 많이 만들어져야 풀뿌리운동이 활성화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많이 반가웠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 모임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니, 대부분이 안다고 대답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네.”라고 생각하며, 어떤 모임이냐고 물어보니 <환경정의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조직・운영하는 모임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상하다. 내가 잘 못 알았나? 그런 것 같지 않고, 순수 자발적 모임이라고 봤는데”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갔다.

이 모임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음에서 주최한 「2008 풀뿌리들의 수다」라는 워크숍에서였다. 당시로는 낯선 ‘bar camp’ 진행 중 나와 같은 조에 오현정씨가 있었고, 자신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전에 이 모임을 알고 있다고 내게 설명한 사람들이 모두 잘 못 알고 있었던 거다. <환경정의시민연대> 내의 소모임은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오현정씨와 내가 속한 소모임은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역에서 하는 활동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었다. 그런데, 에게서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서 나옴직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나름 풀뿌리운동의 ‘포스~’가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명함을 받고 한 번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실제 찾아가 인터뷰를 한 것은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시점이 되었다. 물론, 그 중간에도 다른 모임에서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인터뷰는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사무실이 따로 없었고, 또 오현정씨가 집에서 품앗이를 세 시까지 해야 했고 그 이후에는 어린 둘째 딸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외간 남자’(?)에게는 좀 어색했지만, 오현정씨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집이 바로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요 모임장소였기 때문에 비교적 공식적 장소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글이다. 그러나 이 모임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사한 글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글의 내용은 주로 이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오현정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오현정씨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설명하는 글이고, 또한 이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오현정이라는 조직가의 조직화 과정과 참여자와 스스로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밝히지는 못하지만,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늘날 모습은 분명 오현정씨 개인의 공과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현정씨와 다른 참여자들 간의 우여곡절 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작용과 역작용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하의 글들에서는 오현정씨를 ‘단비’로 칭하고자 한다. 물론, 오현정씨가 현재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표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에 ‘오 대표’라고 표기할 수도 있겠으나, 동네 모임에서는 ‘단비’라는 별칭으로 통하고 있기에 이 글에서도 그 별칭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개인의 사적 이름이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적절치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지금까지의 글에서만 그 이름이 아홉 차례나 언급되었다)



단비 이야기


단비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이력이 궁금해서 물었다. 단비는 87학번으로 소위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당시 운동권 출신들이 주로 그러하듯, 단비 역시 학생운동을 하다 보니 학점 미달 등의 이유로 학교를 오래 다니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정치조직과 교육재단의 설립을 지향하는 <포럼 2001>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무급 반상근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에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는데, 인천에서 멀리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퇴근의 어려움보다 단비가 더욱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활동이 뭔가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즉, 일반 사람들의 삶・생활 속에 녹아들지 못하는 운동은 뭔가 허전했던 것이다. 이 활동을 하면서 단비는 일반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운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시작했고, 특별히 자녀들을 키우면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단비가 사대를 나왔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교육에 대한 관심도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런데, 단비는 교사로서의 운동 즉 전교조 운동과 같은 것보다는 보다 대안적인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관심과 더불어 단비가 주목했던 것은 우리 역사 중 1945년 8.15 전후 전국에 건설된 ‘인민위원회’였다. 즉, 공동체 중심, 자치 중심의 조직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래서 처음에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은 작은 도서관이었는데, 그러한 관심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주부들과 함께 모임을 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품앗이 역시 그러한 차원에서 오랫동안 꿈꿔오던 것이었다.

현재 단비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인천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표방하면서 조직통합을 이룬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조직형성 과정


최초의 모임은 2003년에 시작한 아이들 독서교실이었다. 단비는 둘째가 태어난 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처음 시작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큰 애를 키울 때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식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동네에 친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도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좀 외로웠고,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공동육아도 하고 싶었지만, 인근에서는 발견하지 못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공동육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품앗이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도 없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고민을 좀 하다가 여름방학에 초등1-2년 아이들 독서교실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여 아파트 단지 내에 안내문을 붙였다. 개인적으로 10여명이나 올까 의아했지만, 다행히 15명 정도가 찾아왔다.

원래 아파트 단지에는 공고문을 붙이는 데에도 제한이 있다. 부녀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 간 아파트 단지는 조그만 규모였는데, 다행히 부녀회장이 영리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하여 공고문을 붙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들 독서교실은 하루 90분 간 3일만 하기로 하고 진행되었다. 아이들 어머니들은 단비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서교실이 끝난 후 참여한 아이들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품앗이를 제안했는데, 다들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 공고문을 붙일 때에도 “함께 품앗이의 꿈을 키워가고 싶다”는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정작 이런 제안을 하자, “당신은 우리에게 줄 것이 있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우리는 그런 것이 부담스럽다. 못 하겠다”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초등학생 자녀를 가진 어머니가 아니라 유아기의 자녀를 가진 어머니 세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단비가 독서지도사인 줄 알고 찾아온 것이다. 이 분들은 자기 자녀들이 처음 모집 대상 연령과 맞지 않아 찾아오지 않았으나, 단비가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찾아온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을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기는 독서지도사가 아니니 함께 어린이 책 읽는 모임을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단비는 원래 그 지역의 <동화읽는 어른모임> 회원이었으나, 이 모임이 회원을 수시로 모집하는 것이 아니었고, 이 때가 신입회원 모집 시기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단비 집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1회 정도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모이다보니,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 즉, 아주머니들의 ‘건강한 수다’가 시작된 것이었으며, 참여자들은 그 과정 자체를 재미있어 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구조가 재미있는데, 자로 동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다. 이 정자에서는 항상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동화를 읽는 모임이 시작되었고, 그 소문이 이 정자를 중심으로 아주머니들 사이에 퍼지자, 이에 관심이 있는 아주머니들이 계속해서 모임에 결합하게 되었다. 그래서 13명 정도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모임을 지속하였다. 이렇게 모임이 시작된 시기가 2003년 10월쯤이었다.

함께 책을 읽는 주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2004년 5월쯤 인천의 <굴포천 살리기 시민모임>에서 하천생태학교를 열었다. 이에 단비가 다른 회원들에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런 곳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설득하였다. 물론, 설득이 자연스럽게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단비는 다른 회원들에게 협박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는데, “생태학교에 가지 않는 회원은 우리 모임에서 뺄겨”라는 농담반 진담 반으로 강하게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에 회원들이 어린 자녀들을 ‘안고 고’ 하면서 하천생태학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12주 동안의 교육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교육에 참여한 이들끼리도 친해졌고, 아주머니들도 수원천, 원흥이 방죽, 청주 무심천 등을 돌아보며 함께 나들이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학교를 통해 회원들은 아이들 교육과 환경・생태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즉, 단순히 자기 아이들에 대한 교육문제로 모인 주부들이 환경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임에 참여한 것은 또 다른 성과도 있었는데, 그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아주머니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분들은 인근에 있는 <기독교사회복지관>을 통해 하천생태학교에 참여하고 있었다. 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는 사회복지사 한 분이 하천모니터링 팀을 꾸리기 위해 몇 분을 조직하였고, 이 분들이 이 학교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회원들은 하천생태학교가 끝난 후 헤어지지 말고 책도 같이 읽고 주변에서부터 환경실천을 해보자는 결의를 하며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결성하였다. 이 때가 2004년 7월이다. 아이들 독서모임부터 시작해서 약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회원들은 온라인상에 까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또한 회원들은 한 달 회비를 3,000원씩 내기로 하였는데, 이는 모임 때 간식 등을 사거나, 송년모임, 가족 나들이를 가는 데에 주로 사용하였다. 이를 위해 총무를 두어 회비를 관리하였다.

모임은 2주에 한 번씩 열렸다. 주로 하는 일은 책 읽고 수다 떠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천학교를 통해 배운 것을 뭔가 실천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근에 있는 공촌천이라는 하천 모니터링이다. 1-2주에 1회 정도 모니터링을 진행했는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한 동네에 사는 생태활동가와도 연결이 되고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니터링 사업은 거의 1년 정도를 유지하였다. 이 활동을 통해 <굴포천 살리기 시민 모임>에서 공촌천 생태지도를 만드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모임의 내용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초기 활동은 크게 정기모임, 어린이사업과 회원사업 등으로 이루어졌다. 정기모임에서는 환경, 교육, 역사 등 관련 책을 읽고, 식품안전, 어린이와 책, 학교운영위원회의 역할과 관련한 강의도 함께 듣는 등으로 진행하였다. 어린이 사업으로, 아이들에게 놀이를 찾아주자는 취지로 동네 놀이터에서 전래놀이마당을 열기도 하고, 황토염색이나 좋은 책 전시를 부정기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매년 겨울방학이면 유치부, 초등부(저학년, 고학년)로 나누어서 독서교실 또는 생태 환경교실을 3일 동안 진행하였는데, 각 교실에는 22~28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여하였다. 전체적으로는 70여명의 지역 아이들이 참여한 셈이다.

2005년에서 2006년에는 회원이 먼저 주도적으로 제안해서 한 달에 한 번 동네 하천인 공촌천 생태기행을 했고, 강화도 오리입식, 덕포진 교육박물관 나들이, 문화공연관람, 강화도 엠티 등에 아빠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회원들의 친목도 돈독해졌다. 그러나 2006년에는 모임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그나마 월1회로 연장된 정기모임 외에는 별다른 활동들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2007년 정기모임을 다시 월 2회로 늘리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월 2회의 모임 중 1회는 독서토론, 1회는 친환경 수세미, 대안 생리대, 천연비누 등을 만들며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부터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는 녹색마당과 같이 지역사회에 자신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다른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사업도 비교적 정기적인 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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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작년부터 풀뿌리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시민교육을 중요한 사업으로 정하고 관련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 해는 외부의 활동가들로 교육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한 가지는 전국의 모범적 풀뿌리운동 사례를 탐방하는 '찾아가는 학습모임'이고(이미 1차로 순천을 다녀왔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교육 워크숍을 개최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교육 워크숍으로 4박5일간의 집체교육을 기획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이 확정되어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프로그램의 내용 등을 간단히 소개한 것이고, 신청 방법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kdemocracy.or.kr/Notice/notice_view.asp?bid=event_notice&num=439&page=1&od=&ky=&sh=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간의 상근 활동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확정되어 곧 참여자 홍보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과 함께 기획/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취지 및 목적


 - 마을만들기 운동이나 학습공동체운동은 이미 지역운동의 중요한 운동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역 활동가들이 실제 주민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주민들과 함께 크고 작은 주민운동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의 방법을 학습을 통해 찾아가고자 한다.

 - 최근 진행되는 다양한 마을만들기운동의 방법을 학습하고, 마을만들기운동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을 함께 학습하고자 한다.

 - 풀뿌리운동가로서 대안 있는 운동을 구상하고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2. 개요


 - 일  정 : 2009년 6월 16일(화) 오후 1시 - 20일(토) 오후 1시 (총 4박5일)

 - 장  소 : 파주 홍원연수원

 - 대  상 : 주민자치운동, 마을만들기운동, 지역사회복지운동 등에 관심 있는 실무자  (실무경력 5년차 미만)

 - 참여자 : 20명 내외

 - 참가비 : 1인 50,000원

 - 공동주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9년 주민아카데미사업기획위원회

3. 프로그램 일정표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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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화)

17일 (수)

18일(목)

19일(금)

6월 20일 (토)


일어나기

마음과 몸 깨우기(백배명상 / 아침 산책 등)

아침밥

교육 ②

교육 ④

교육 ⑦

조별연구

전략세우기

닫는 마당 ⑧


점심밥

접수

함께 열기 / OT

교육 ③

교육 ⑤

교육 ⑧

조별연구

전략세우기

교육 ①

저녁밥

민주시민교육방법론, 공동체 교육방법, 평화교육(갈등회복)

교육 ⑥

교육 ⑨

친교 나눔

분임모임

영화 상영

분임모임

영화상영

전체 뒷풀이



4. 세부내용

 ▣ 첫째날 (6월 16일, 화)

  1) 접수 : 오후 1시 - 1시 30분 (30분)

    - 이력서 만들기 프로그램 진행 - 참여자들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이력서를 만듦


  2) 함께열기 : 오후 1시 30분 - 3시 (1시간 30분)

    - 강사 : 진행팀

    - 참여자들간 어색함을 줄이고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 전체 프로그램 진행일정 소개

    - 공동체 프로그램 방식으로 진행


  3) 교육① : 오후 3시 - 6시(3시간)

   - 강사 :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내용 : 풀뿌리운동의 중요성, 운동철학, 이념 등을 큰 흐름에서 강의

   - 진행방식 : 강의


  4) 민주시민교육 방법론 : 저녁 7시 - 10시(3시간)

   - 강사 : 윤경아 (한국YMCA전국연맹 팀장)

   - 내용 : 민주시민교육기법 교육 - 조직운동에 활용

   - 진행방식 : 참여형 방식


 ▣ 둘째날 (6월 17일, 수)

  1) 교육 ② : 오전 9시 30분 - 12시 (2시간 30분)

   - 강사 : 임경수(이장 대표)

   - 내용 : 마을만들기운동의 필요성 - 왜 마을인가? 마을에서 무엇을 꿈꿀 수 있는가?

           마을에서의 교육의 중요성, 어떤 교육인가 등

   - 진행방식 : 강의


  2) 교육 ③ : 오후 2시 - 6시 (4시간)

   - 강사 : 임경수 (이장 대표)

   - 내용 : 마을만들기운동의 국내외 사례, 마을만들기운동을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냄

           워커즈 콜렉티브,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왜 중요한가? 농촌과 도시형 마을만들기운동 소개

   - 진행방식 : 강의 및 참여형 방식(민주시민교육기법 활용)


  3) 교육 : 오후 7시 - 10시 (3시간)

   - 강사 : 정혁 (청년 푸름 대표)

   - 내용 : 공동체 놀이 및 평화교육방법론

           마을만들기운동에서 주민간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주민조직 활성화를 위해 실무자가 필요한 교육기법 등 소개

   - 진행방식 : 참여형 방식(민주시민교육기법 활용)


 ▣ 셋째날 (6월 18일, 목)

  1) 교육 ④ : 오전 9시 30분 - 12시 (2시간 30분)

   - 강사 : 유창복(성미산마을극장 대표)

   - 내용 : 풀뿌리운동의 물적 토대로써 도시속 마을경제 모델인 성미산 사례 소개, 도시속 마을만들기 운동이 어떻게 확산될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받는 시간 (성공, 실패, 좌절! 등)

   - 진행방식 : 강의


  2) 교육 ⑤ : 오후 2시 - 6시 (4시간)

   - 강사 : 진경아(천안복지세상 사무국장)

   - 내용 : 천안복지세상 소개, 주민을 회원으로 만드는 과정, 마을만들기운동에서 지역운동으로 확산되는 과정소개(성공, 실패, 좌절!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등 현장의 생생한 경험 전달

   - 진행방식 : 강의 및 참여형 방식(민주시민교육기법 활용)

              : 시나리오워크샵 방식으로 제안


  3) 교육 ⑥ : 오후 7시 - 10시 (3시간)

   - 강사 :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 내용 : 지역조사방법론

           주민의 욕구가 무엇인지, 우리동네는 누가 움직이는지, 우리동네의 보물이 무엇인지 등, 이런 것을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

   - 진행방식 : 강의 및 참여형 방식(민주시민교육기법 활용)


 ▣ 네째날 (6월 19일, 금)

  1) 교육 ⑦ & ⑧ : 오전 9시 30분 - 12시 (2시간 30분), 오후 2시 - 6시 (4시간)

   - 강사 : 고상준(애듀플랜 대표)

   - 내용 : 지역으로 돌아가서 마을만들기운동 어떻게 할까? (전략세우기 1 & 2)

          이후 마을만들기운동을 지역에 돌아가서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기

   - 진행방식 : 참여형 방식(민주시민교육기법 활용)


  3) 교육 ⑨ : 오후 8시 - 10시 (2시간)

   - 강사 : 유정길(정토회 법사)

   - 내용 : 활동가의 삶을 내용으로 하는 선배와의 대화 형식

   - 진행방식 : 강의 및 참여형 방식


 ▣ 다섯째날 (6월 20일, 토)

  1) 닫는마당 : 오전 9시 - 11시(2시간)

    - 강사 : 이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내용 : 4박5일 동안 마을만들기 운동에 대한 다양한 강의를 듣고 정리하는 시간


  2) 닫는마당 : 오전 11시 - 12시(시간)

    - 강사 : 진행팀

    - 내용 : 참여자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짐하는 시간 / 사명문 쓰기 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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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2일에 있었던 인천 사회포럼의 주민자치 세션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지역민주화와 풀뿌리 정치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역 민주화의 위기1)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으로 항시 지적되어 온 ‘관객민주주의’ 현상은 최근 들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관객민주주의란 시민들은 정치의 관객(spectator)으로 머물러 있고, 시민들의 삶과 관련된 결정은 관료와 직업정치인들이 내리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최근의 저조한 투표 참여율은 그나마 선거 시기에서조차도 유권자들이 관객의 상태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적극적 의사표현의 방법일 수 있지만, 최근의 저조한 투표율을 이렇게 해석하기에는 뭔가 근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관객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투표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극히 제한된 선택지일 뿐이다. 그리고 선거일 다음날부터 유권자들은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런 현실을 루소(J.J.Rousseau)는 ‘영국 국민들은 선거때에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는 순간 노예로 전락한다’라고 표현하였으며, 강대인은 “대의 민주정치에서의 시민참여는 정치 엘리트의 주도하에 방향이 설정되면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된다. 일반 시민은 선거일에만 자유로운 뿐이다”2)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들이 구경꾼으로 있는 상태에서, 정책결정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기득권 연합이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은 이들의 논리가 유포되는 매체이다. 이 기득권 연합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가치지향, 정책방향, 이해관계 등을 매개로 형성되어 있다. 국가 차원에도 기득권연합이 형성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는 지역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에는 상대적으로 토건국가의 뿌리가 깊게 잔존하게 있다. 그래서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지역주민들의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보다는 단기적인 땅값상승과 건설이익, 투기이익을 선호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력들은 평등, 인권, 평화, 생태 등의 단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때로는 적대적이다. 그러나 이런 세력들은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선거 때에 표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들이 있고, 지역 내의 각종 단체들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다.

지역 차원의 기득권연합은 중앙정당이나 지방자치단체장과 유착되어 있고,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연계되어 있다. 대운하 뿐만 아니라 여러 개발사업들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 지역의 기득권연합과 국가차원의 기득권연합이 상호연계되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두고 '개발동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사회의 중요한 정책결정은 이런 국가 차원의 기득권연합과 지역차원의 기득권 연합이 주도하고 있다. 시민들은 선거 때에 투표나 해 주면 되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다.

시민들이 정치의 관객으로 전락하면 시민들의 입장,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입장은 정치의 영역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다. 시민들의 소박한 상식은 정치의 영역에서 통하지 않는다. 기득권세력의 관심사가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그들의 입장이 관철된다. 이런 정치가 초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의 심화, 부동산값의 상승, 경쟁격화로 인한 청소년들의 소진, 환경파괴와 생태적 위기 등이다. 특히 지역에서는 개발과 관련된 기득권 집단, 이익집단들이 정책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그 개발이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미칠 장기적 영향은 정책결정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일부 지역주민들의 저항은 계속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경우들은 찾기 어렵다.

빈곤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민들은 정부와 사회가 풀어야 할 근본적인 과제중 하나가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구조상 정책의 우선순위는 ‘개발’에 있지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복지 실현’에 있지 않다. 그것은 현재의 의사결정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기존 방향(‘개발’과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빈곤층에게 시혜를 베풀겠다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교육의 시장화, 경쟁지상주의의 지배는 청소년들의 삶의 자양분을 빨아들이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있다. 학교교육도 말로만 평준화이지 이미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선 지 오래이다. 이런 교육은 사회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청소년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제어장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기득권 연합은 그런 교육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삶의 문제들은 민주주의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지 않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관객민주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문제들도 해결되기가 어렵다. 기득권 집단들이 정책결정을 주도하는 이상 삶의 문제가 풀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구현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풀뿌리운동과 지역정치운동


‘정치’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그 본래의 의미보다는 선경험적 인식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 중앙의 정치는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정치에 대한 이미지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역’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많은 의미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앙의 정치와 같은 ‘가까이 할 가치조차 없는 것’ 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목표로 상정되곤 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치라는 용어로부터 무덤덤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역사회운동에 있어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하다. 지역 대중인 주민들의 생활과 문제제기가 모두 지역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 속에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에 대한 관심은 1991년 지방자치제가 처음 실시될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역사회운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역정치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첫째는 지방의회 등을 통해 공식화・제도화 되어 있는 정치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둘째는 지역 시민들의 영향력 강화, 주민자치, 참여 등의 대중적 정치세력화라는 차원에서 인식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지역정치라는 개념에는 이 두 가지 개념이 모두 녹아있기도 하다. 따라서 지역정치라는 용어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보다는 누가 어떤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풀뿌리적 가치를 갖는 지역정치, 즉 풀뿌리 정치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언급하고자 한다.

풀뿌리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지역정치라는 개념을 대입시켜도 위의 두 가지 개념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후자의 내용이 더욱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기본적으로 풀뿌리운동이라는 것이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다수 대중’ 즉 민초들이 주체가 되어서 사회를 변화・발전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뿌리 정치라는 차원에서 지역정치에 접근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그 영향력을 발휘시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전략적 관점으로 채택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대의민주제의 단점을 보완하여 시민들의 자치적인 활동 영역과 그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운동에 있어 풀뿌리적 가치와 활동방식이 중요한 만큼, 지역정치운동도 이러한 기본적 입장과 문제인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풀뿌리운동과 풀뿌리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그 원칙이나 활동방식, 지역사회 변화의 비전 등에 있어 상호 긴밀한 연관성 갖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정치운동, 특별히 풀뿌리 정치운동이라 표현하는 것은 대의제 민주제라는 틀 속에서 보다 나은 우리의 대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기보다는(실제 참여라기보다는 수동적 존재로의 전락이라 볼 수 있다), 시민들 스스로의 적극적 참여와 이를 통한 지역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를 보다 강화하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중요시 한다.



3. 대의제 민주주의와 풀뿌리 정치운동


대의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을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진 이들의 전문적 영역으로 구분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풀뿌리 정치운동은 그 주체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즉,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는 전문적 정치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역의 시민운동단체나 잘 훈련된 운동가도 역시 아니다. 풀뿌리 정치운동의 주체는 일반 시민들이다. 이는 굳이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릇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 정치의 진정한 주체는 그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운동의 일반적 개념 역시 그 사회의 주체인 시민들의 조직화와 이를 통한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스스로 주인됨을 선언하는 실천을 통할 때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운동 일반의 개념은 지역정치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대의정치와의 관계는 그러한 전략적 관점을 공고히 한 상태에서 고려해야 한다.

이는 대의제 민주제 하에서 지역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실현하는 길이 보다 많은 후보자를 출마시켜 ‘의회를 장악하자’ 거나 자치단체장에 출마하여 당선시키고자 하는 표면적인 것으로만은 달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 역시 지역사회를 보다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단순히 표면적인 변화를 가져올 뿐이다. 일단, 이 방법만을 주장하는 경우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비판하면, 일종의 엘리트 중심의 운동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몇몇 괜찮은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줌으로써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변화만을 추구할 경우에는 시민들이 관객으로의 방치되는 문제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착이라는 점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사람들은 자칫 이러한 방법이 문제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경험한 사회적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러한 운동의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평할 수는 없다. 사회운동의 전술은 매우 다면적인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단순한 인적 교체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이나 시민들의 삶의 질이 건장하게 변화되고 발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운동에서 풀뿌리운동이 강조되는 이유는 생활인들을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개인 또는 집단이 정치권력을 획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신뢰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의 논리이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운동의 논리 또는 방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제도 정치권에 대한 인적 투입 또는 인적교체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목적과 이유로 대의민주제 하에서 제도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가 전제된, 즉 사회운동 특히 풀뿌리운동의 전략이 전제된 상태에서 제도정치권에 대한 접근이야 말로 풀뿌리 정치운동의 중요한 한 가지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당연히 제도 정치와 풀뿌리 사회운동의 밀접한 연계와 역할분담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운동은 ‘정치’ 영역에 대한 관심을 보다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여 스스로 대안적 가치와 질서를 사회 내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풀뿌리운동도 결국은 자신들이 터한 지역사회로부터 우리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과 과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의 영역에 다름 아니다.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과정과 그 조그만 실천활동 하나하나가 바로 올바른 의미의 정치 활동이며, 그 활동의 영역이 정치의 영역과 다르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정치가 시민들과 유리된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것이라는 점이 보다 명확히 전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관객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제도 정치의 문제를 바라볼 때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다소 적게 훼손되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4. 풀뿌리 관점에 충실한 대의 정치 참여의 외국 사례


작금의 우리 지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대의제 정치의 영역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의제 정치의 민주적 질서 회복과 강화가 단지 몇몇 개혁적 인사의 제도정치 진출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정치는 본래의 자기 역할과 전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의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실천적 개입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정당의 논리와 관성과는 다른 방식의 대의제 정치 개입에 대한 입장들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한 고려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지역에서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한 편으로는 대의제 정치에 대한 개입과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란 이들을 정당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집단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오랫동안 모색되어 온 시도 중의 하나는 지역정당(local party)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이다. 지역정당은 단지 중앙정당과 같은 성격의 정당이 지역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역정당은 기성 정당과는 그 속성이나 가치, 그리고 활동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기성 정당의 ‘지역구’가 아닌 ‘지역정당’이 가지는 의의는 시민들의 대중 조직체로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즉,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행사하는 정치적 조직체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소수의 ‘결사대’를 통한 정권 장악을 최대의 목적으로 하는 기성정당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즉, 기성 정당과는 달리 시민 대중들의 집단적 정치세력화를 주요한 전략으로 삼으면서, 그러한 전략을 실현하는 한 방편으로 제도 정치권에 대한 진입을 꾀하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정당의 목적은 제도 정치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진입시켜 이들로 하여금 지역의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제도 정치권과 풀뿌리운동의 조흥(助興)을 통해 지역 대중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풀뿌리(정치)운동이 지역정당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지역정당의 사례들로부터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추출할 수 있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동경생활자네트워크 등의 생활자 네트워크가 그러한 사례로서 적절할 것이다. 이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네 가지 시사점을 추려보았다.

첫째 이들의 중요 관심사는 제도정치권에서 다수를 차지하여 그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있기보다는 자신들이 내보낸 정치인과 회원들과의 유기적 소통을 더욱 중요시 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의회 내에서 소수라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위상과 역할을 통해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회원들이 정치적 참여와 영향력을 강화하도록 하느냐 하는 것에 활동의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슈의 정치적 관철 역시 의회 내 다수로서의 힘에만 의존하려 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관철시키도록 하는 데에 보다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들의 경우 자신들이 내보낸 정치인에게 일정한 시기동안만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2기 8년이 제도정치권에서 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는 제도 정치권에서 일할 기회를 참여자들의 지도적 역량이 강화되는 계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회를 보다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지역정치를 발전시키는 길이고 결국은 지역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것이라 여긴다. 물론, 이는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전문적 정치인의 양성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지역사회의 지도력을 훈련받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보다 중요한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2기 8년제’는 결과적으로 지방정부와 의회의 현실을 몸으로 경험하고 돌아온 탁월한 주민활동가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제도정치권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는 개인적 결단에 앞서 대중적 결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는 스스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내보내고 싶은 사람을 출마시킨다”는 슬로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는 지역정당이 특정한 몇몇에 의해 주도되는 것을 막고, 집단적 정치세력화의 장으로서 자리잡도록 하는 매우 유용한 장치이다.

네 번째로 언급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은 ‘대리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리인은 단지 그를 고용한 사람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한다는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대리인은 그를 고용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고, 또한 수시로 그를 고용한 사람의 의사를 묻고 그 의사를 충실히 전달할 때에만이 ‘해고’되지 않고 대리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즉, 엘리트에 의한 정치가 아닌 대중의 정치를 강조하는 의미이다.

물론, 일본의 생활자 네트워크들이 반드시 이상적인 지역정당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없다. 그 자체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내재어 있고, 또 많은 이들에게 비판거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네 가지는 바람직한 지역정당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풀뿌리 정치운동과 2010년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도 선거 시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중요한 시기적 특성이 있다. 그것은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고조되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의 정치를 풀뿌리 정치운동과 밀접히 연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0년은 풀뿌리(정치)운동에 있어서 하나의 계기(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 시기에 대한 준비라고 해서 모든 풀뿌리 정치운동의 전술이 누구를 출마시키고 당선시키느냐에만 집중될 필요는 없다. 후보 출마에서부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고양시키고 그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선거 시기에 출마를 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하는 반론이 주위에서 만만찮게 제기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풀뿌리 정치운동과 선거라는 대의제 정치 영역의 핵심적 사건과의 관계를 너무 폭좁게 바라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실상 천안의 복지 네트워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거 시기에 몇 명을 제도정치권에 진출시킨 것보다 다른 방법으로 훨씬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2010년에 대한 준비라는 것도 반드시 2010년이라는 절체절명의 기한을 규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적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 일정한 계기와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시기이며, 그 시기를 보다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 점에서 특히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운동은 지금부터라도 일상적으로 정치운동을 준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스스로의 역량과 조건에 적절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률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공통된 준비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의 모든 활동이 지역정치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전파할 필요가 있다. 사실, 풀뿌리운동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모든 활동들은 그것이 아무리 조그맣고 소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역정치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주민자치센터의 자치기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활동도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활동도, 주민들의 소모임을 결성하고 이를 운영하는 활동도 모두 지역사회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핵심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오해이다. ‘정치’를 자신들과는 무관한 전문 정치인의 영역으로 미뤄놓고, 그것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진정한 정치는 우리 땅에서 존립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일상이 정치이고, 정치는 우리의 일상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며, 정치의 목적은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공감대를 이루려는 노력은 풀뿌리 정치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지역에서의 네트워크 결성을 준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역정치운동은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기성 단체들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슈를 전면에 내걸기가 그리 쉽지도 않다. 그보다는 본격적인 지역정치의 지향을 갖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여 이들로 하여금 지역정당과 같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실 조건에서는 공식적인 지역정당의 건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네트워크가 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또한 장기적으로 지역정당의 모체로서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 체계의 구축은 각 단체의 활동을 통해 지도적 역량을 구축한 주민 활동가 또는 주민 지도자들이 단체의 영역을 벗어나 지역사회 전체를 계획하고 실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를 새로운 시민들을 조직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풀뿌리)지역정치운동에 대한 고민과 소통을 지역사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단위는 선거 시기에 후보 출마가 적절한 전술적 선택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등의 사안을 보다 개방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적절한 조직적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앞의 두 가지와 연계되는 것이지만, 지역정치 교육의 기회를 만드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지역정치 교육이라는 것이 정치교육 강좌를 만들어 무작위 시민들에게 홍보해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시민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문제들, 예를 들면 시민들의 숙원 또는 현안 등을 지역 재정의 문제와 연동시켜 설명하는 등을 통해 지역정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고 또한 그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등으로 접근한다면 보다 좋은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원론적 제안이지만 선거든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집단적인 정치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든 풀뿌리 기반을 확대・강화하는 일상활동이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상활동을 통한 주민기반이 강화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전술적 선택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 이 절(1. 지역 민주화의 위기)은 지난 8월 한국사회포럼에서 발표한 하승수의 글 "'좋은 정치'를 위한 풀뿌리 정치운동의 제안 - 지역사히 민주화와 2010년 지방선거"를 발췌

2) 강대인 "삶의 문화, 삶의 정치; 새문화를 여는 또 하나의 대안", 정문길 외  『삶의 정치; 통치에서 자치로』 , 대화출판사, 1998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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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8일 강북구에서 활동하는 <어린이 책 시민연대 강북지회와>(전, 동화읽는 어른모임 강북지회), <풀빛 살림터>, <한살림 북부광역지부>, <녹색마을사람들>(전,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지도자 몇 명이 모여 강북구에서 풀뿌리 네트워크를 결성한 첫 사업으로 자신들의 사업내용을 상호 교류하고 몇 명의 초청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원래 이 네트워크에는 <녹색가게>에서도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급한 사정이 생겨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이 네트워크가 무엇을 할 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이렇게 만나 정보도 공유하고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과 고민들을 나누고 공동으로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 모임에서 컨설팅(?)이랍시고 간단하게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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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지도자 간담회>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모임을 진행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할 때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상호 충돌하기도 함. 그 두 가지 관점이란 모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자기 만족과 자기 성장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과 해당 모임이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


○ 황주석 선생은 이를 두고, 전자를 목적으로서의 조직 또는 모임, 후자를 수단으로서의 조직 또는 모임이라 설명하고 있음


○ 목적으로서의 조직은 구성원들의 자기 욕구를 실현하고 상호 이러한 욕구를 나눔으로써그 자체로서 대안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함. 그러나 이는 일반 계모임이나 동호회 등의 폐쇄적인 모임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음. 실상, 집단이기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는 모임, 예를 들면 조폭들도 이러한 목적으로서의 조직을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많은 관심이 있음

- 모임 참여자 스스로와 그 자녀 등의 일차적 가족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개별적인 욕구의 실현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통할 때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할 수 있음

- 또한 모임 그 자체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넓은 (지역)사회로 활동 영역이 확장될 때 내부의 지도력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도 함


○ 수단으로서의 조직은 외적인 환경에 조응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함. 그러나 내적으로 참여자들의 성장과 발전이 없는 (지역)사회의 변화가 가능한가 라는 의문에 대하여서는 답을 제공해 주지 못함. 오늘날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많은데, 이는 주로 지나치게 수단으로서의 조직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라 볼 수 있음


○ 문제는 이 둘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에 달려 있음. 내적인 구성원들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내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함. 이는 당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각 관점의 성과가 잘 나타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


○ 풀뿌리운동은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고, 참여자들의 지도력을 강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과 방식을 의미하는 것. 따라서 현재 간담회에 참여하는 이들이 고민하는 내용은 바로 풀뿌리운동이 항시 고민하는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음


○ 현재의 이러한 고민은 풀뿌리운동의 기반이 일정 정도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므로, 지금까지 지역사회에서 일정한 성과와 발전을 이루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음. 즉,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라 하겠음


○ 그러나 이 간담회에 참여한 이들의 고민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둘을 조화시킨다고 하는 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님. 애초 참여자들은 자기 욕구를 바탕으로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섣부른 활동 영역의 확장은 오히려 참여자들의 동력을 급격히 떨어뜨릴 수도 있음


○ 고민에 대한 답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스스로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지만, 지역사회에서 특정한 모임이 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발전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내적 역량에 걸맞지 않는 외적 활동들은 자칫 내적인 발전이나 외적인 역할 증대 모두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임


○ 또한 개인적 욕구로 모임에 참여한 사람이 옆 사람의 논리적 설득으로 자신의 욕구를 사회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사례는 매우 드뭄. 스스로 그 욕구를 사회적인 것으로 수렴 또는 통합시키는 과정을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마다 다양한 성품과 특성이 있기에 일률적인 것으로 접근할 수 없음.


○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활동 내용의 확장이 참여자들에게 기쁨과 보람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또한 그러한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주위의 노력이 필요함.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자극적인 것보다는 참여자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들로부터 외부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

- 즉, 사업 그 자체의 필요성에 의해 사업을 진행시키기보다는 참여자들이 관심있어 하고 재미있어 하는 할 수 있는 일들로부터 외부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됨


○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를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러한 변화가 보다 많이, 즉 집단적으로 일어날 때 변화의 큰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임.


○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당장의 어려움은 성장과 발전의 진통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각 모임들이 처해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봄


○ 마지막으로 이러한 간담회가 일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때에 대하여 한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당위적으로 서로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만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는 항상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것임. 각자가 이 네트워크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다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성공의 기본적 요건이라 볼 수 있음


○ 이를 위해 향후 이 네트워크를 단체 대표 간 또는 대표자 간 네트워크로 설정하기보다는 지역사회 활동을 주로 하는 개인 참여 네트워크로 설정할 수도 있다고 봄. 즉, 각 단체는 자신의 일상활동에 집중하고, 지역사회에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외부 활동을 추진하는 주체로 설정할 수 있다고 봄.

- 이는 각 단체와 네트워크의 역할분담인데, 각 단체는 참여자들의 욕구에 충실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참여자의 지도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이들이 일정 정도의 지도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면(서서히 지역사회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되면), 이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활동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의미함

-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를 각 단체와 별도로 구성하는 것은 앞서와 같은 장점과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예기되는 문제점도 많을 수 있으므로, 많은 고려와 고민이 필요할 것임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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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초록’을 ‘상상’하는 아줌마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과 같이 한 사람을 인터뷰하여 한 조직을 소개/분석하는 글들은 자칫 한 조직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과 원인을 한 두사람의 활동가에게 귀착시키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 역시 그와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실상, <초록상상>의 오늘이 장이정수 국장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래의 본문이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갖도록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글이 지니는 한계일 수 있겠다. 즉, 이 글은 <초록상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조사/분석했다기보다는, 장이정수라는 사람을 통해, <초록상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길...

 

만남


얼마 전 <초록상상>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장이정수씨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새로운 운영위원으로 추천되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이러한 추천이 있었으니 승낙해 달라는 청을 하였다. 솔직히 <초록상상> 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본 것 같았지만 ‘장이정수’라는 이름은 낯설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청을 하였다. 그와 더불어 “우리 운영위원회는 단순히 의결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기능까지 합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이름만 빌려달라는 의미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반응은 간단했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으니 참여해야 겠지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안다고 했다. 이럴 때 제일 난감하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전화를 하기 전에 초록상상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봤다. 그런데, 홈페이지는 찾을 수 없었고 달랑 네이버에 까페 하나를 개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올라와 있는 초록상상 회원들의 글들을 읽고 있자니, 그 정감어린 마음들이 느껴졌고 덩달아 내 마음에도 훈훈한 바람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지역의 풀뿌리조직 중에서 특별히 편애하는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초록상상>과 같은 형태의 자발적 아줌마 모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이정수 국장과 전화통화를 한 이후 우연찮게 풀뿌리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풀뿌리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고, 또 사람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의 주제 역시 풀뿌리운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전에도 이 이름을 자주 들었겠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가, 우리 운영위원으로 영입되면서 그 이름이 각인되어 새삼스럽게 그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고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꼭 한번 <초록상상>을 방문하고 싶었고, 거기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소상히 듣고 싶었다. 그래서 약속을 잡고 머나먼(?) 중랑구 상봉동까지 장이정수 국장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사무실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장이정수 국장이 이메일로 알려준 대로 길을 걸으니 눈 앞에 커다랗게 <초록상상>이라는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사무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조그만 원룸에 들어선 듯했다. 하지만, 사무실 군데군데에 <초록상상>에 참여하시는 동네 아줌마들과 그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흔적들이 진하게 남아있었고, 그 흔적들이 무척 정겨웠다. 특히, 환히 웃으며 편하게 맞이해주는 장이정수 국장(이하부터는 ‘장이 국장’으로 표기)의 매력이 처음 방문했음에도 매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장이 국장의 개인 이력 - 중랑구에 흘러들기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장이 국장의 에너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금방 지치게 되고, 그러면 금방 나가자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누누이 확인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이 국장에게서는 아직 그러한 피로감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성격이 매우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장이 국장에 대해 “네가 이야기 하면 심각한 것도 희화화 된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내가 봐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무척 낙천적인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민하게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는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물론, 그럼에도 이러한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겠는가...) 그리고 자신은 자녀들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는 대신 그 돈으로 1년에 두 번 자녀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실행을 못해서 그렇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식 방법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어떻게 지금 이 곳까지 흘러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듣다보니 나름대로는 열혈 사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학생운동의 과정도 거치고 공장에 위장취업(?) 준비도 했고, 실제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다가 함께 공장취업을 준비했던 선배와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운동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고 했던가... 결혼을 하면서 한 10년 정도 전업주부로 살았고, 선배의 권유로 <여성환경연대>에 취직(?)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가 2001년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생태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관점을 통합하기 위해 여성환경운동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로 출범하였다. 그러던 중 사무국이 확대되면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활동이 저조하게 되는 아주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에 <여성환경연대> 내부에서는 조직전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스스로를 대중조직으로 전환해 보자는 것이었다. 즉, 기존에는 주로 활동가들이 결합한 형태였으나, 이제는 일반 여성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었다.

장이 국장의 경우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주로 생태안내자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주 대상자들은 기존의 지역조직 회원들이었다. 그 후 풀뿌리 담당을 맡았고, 마침 대중조직으로의 전환을 결정한 <여성환경연대>의 방향과 맞물려 직접 지역에서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한 일환으로 2회 생태안내자 교육부터는 일반 여성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지역의 다른 조직들과 연대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강동구에서는 <서울 한 살림 강동지부>, 도봉구에서는 도봉지역의 시민단체들과, 그리고 영등포에서는 의료생협과 연대하여 사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강동구와 도봉구에서의 사업은 현지에 있는 시민단체들이 사업의 주체로 참여했으므로, <여성환경연대> 차원의 지역모임이 될 수는 없었다. 대신 영등포구에서의 사업은 나름대로 소모임(유쾌한 여자들의 모임)이 구성되어 <여성환경연대>와 관계를 맺고 모임이 운영되었다.

이 사업을 하면서 장이 국장은 하나라도 제대로 된 지역주민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소모임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앙의 사무실에 앉아서 지역주민들의 모임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장이 국장의 집은 중랑구에 있다. 당연히 중랑구가 장이 국장이 선택한 지역이 되었다.




아줌마들의 모임, 시작되다


장이 국장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강좌사업이었다. 지역조사결과 당시 도서관이 하나 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 한살림 중랑 지부장과 동화읽는 어른모임의 대표에게 지역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여 함께 일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주로 유명한 강사들을 초청하여 도서관에서 강좌를 실시하였다. ‘생태적으로 건강한 아이, 마을에서 행복한 아이’라는 주제로 진행하였고,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약 100여명의 주민들이 이 강좌에 참석하였다. 이에 한살림과 장이 국장은 후속모임으로 이들을 조직하기로 하고 각자 역할분담을 하였다. 한살림에서는 교과모임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여 그 모임을 지속하기로 하였고, 장이 국장은 생태(生態) 모임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였다. 그 결과 교과모임에는 50여명이 참여하였고, 생태모임에는 20여명이 참여하였다.

2005년의 이 강좌를 통해 조직된 생태모임 구성원들이 현재 <초록상상>의 모태가 되었다. 이 소모임은 2006년도부터 시작되어 근 1년 간 주1회 모임을 갖았다. 한 달 중 한 번은 책읽기, 한 번은 봉화산 산책하기, 한 번은 대안생활용품 만들어 보기 등으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임이 잘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세 명이 올 때도 있고, 두 명 또는 한 명이 올 때도 있었다. 당연히 힘이 빠질 만도 하지만, 이 씩씩한 아줌마(장이 국장)는 그렇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부들의 소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운동 경험 속에서 이 정도는 어려움이라 볼 수도 없다고 받아들였다.

이는 장이 국장의 낙천적인 성격에 힘입은 바도 크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부들의 특성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개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잘 안 모이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는 등으로 참여대상자들의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주부들과 일을 하다보면, 아이를 봐주거나 그 때문에 쉬어야 할 때가 있고, 부부간의 갈등으로 한 동안 활동을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임이 잘 되는 것이 좋겠지만,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그 개인의 사정 등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장이 국장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것이 자신에게도 즐겁다고 한다.

실제, <초록상상>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심정은 “가뜩이나 참여하는 사람도 적은데, 그나마 암까지 걸려...”하는 원망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암과 관련된 책을 선물하고, 회원들과 병문안도 가고, 퇴원했을 때에는 축하 파티도 해주었다고 한다. 또 한 사례를 들자면, 회원 중의 한 분이 돈을 벌기 위해 ○○카드 외판을 하게 되었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이 모임에 나와 카드 가입을 권유하면 모임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장이 국장은 매우 자연스럽게 용인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먼저 카드 신청서에 서명을 하면서, 다른 참석자들에게도 “카드 하나 더 만들어!”를 외치면서 카드 영업을 하는 참여자에게도 “돈 잘 벌면 회비 많이 내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참여자들이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리고 그런 사회생활도 이 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핵심적으로 활동하던 회원 한 명이 전화홍보하는 곳에 취직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장이 국장에게는 직접 이야기하기가 미안해서 그런 듯했다. 회사에 나가기 시작하니 이 분 역시 당연히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핵심적 회원이었으니, 장이 국장의 속이 편할 리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장이 국장은 거금(?)을 들여 2만원짜리 케익을 사서 보냈다고 한다. 보내면서 “이건 뇌물이라고 전해줘”라고 하니까, 전화가 와서 고맙다고 하며 회원들 식사에 초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 못하지만 필요할 때 함께 하겠다고 했단다.

사실, 지역에서는 한 번 발을 빼면 길거리에서도 다시 마주치기가 편치 않다. 하지만, 장이 국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지금은 같이 활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주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도록, 여성의 관점에서, 그 사람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그 사람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그만 동네의 조그만 조직의 잣대로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동네 안에서 여성들을 더욱 몰아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이래서는 여성들과 함께 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한 편, 한살림에서 책임졌던 교과모임도 마찬가지로 악천고투하고 있었다. 한 1년 간의 교과모임이 끝난 후 한살림에서는 더 이상 이 모임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참여자들 중 몇 명이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하였다. 이에 장이 국장은 자신들이 마련한 사무실 공간을 이들에게 제공하며, 모임장소로 활용하도록 제안하였다.

<초록상상>이 사무실을 마련한 것은 2007년도 3월 경이었다. 사무실을 마련하고자 결심하게 된 배경은 소모임의 한계인 임의성을 보다 공식적으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소모임만으로 유지하다 보면, 서로 의가 상하거나 참여자가 취직을 하는 등의 변화가 생기는 사적인 문제가 소모임 자체의 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하곤 한다. 또한 소모임 그 자체만으로는 마치 폐쇄적인 계모임과 같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기도 하다. 이에 장이 국장은 2006년 연말부터 참여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사무실을 마련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다른 참여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회의적이었다. 사람들의 첫 번째 걱정은 그 운영비를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이 국장의 설명은 명쾌했다. 우리가 만드는 천연생활용품을 팔아서 돈을 벌 수도 있고,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의 사비라도 털어서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집요한 설득에 핵심적인 참여자들이 동의를 하게 되었다. 현재의 사무실은 보증금 1,000만원에 매달 50만원의 월세를 내는 곳이다. 이 중 500만원의 보증금은 <여성환경연대>에서 빌려오고, 나머지 500만원은 10사람의 핵심 회원들이 50만원씩 출자하여 충당하였다. 물론, 그냥 출자를 받은게 아니라, 우리가 이익을 내기 시작하면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물론, 믿거나 말거나~)  그 이후 <여성환경연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초록상상>으로 가져오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회원이 늘어나, 월세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초록상상>이 현재 하고 있는 일


초록상상은 모임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전체 회원은 80여명 정도 되는데, 이 수가 모두 후원회원이 아닌 활동회원이라고 한다면 지역사회에서는 매우 큰 조직이라 볼 수 있다. <초록상상> 활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6개의 팀 또는 모임이다. 6개의 팀은 각각 독특한 일상활동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생태팀과 건강팀, 문화팀, 청소년팀, 역사공부모임, 직장인 모임이 그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팀과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주부들의 처지와 욕구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 주제에 따른 모임을 할 경우에는 선택의 제한으로 인해 참여도 제한된다는 것이 장이 국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장이 국장은 “힘닿는 대로” 다양한 모임을 꾸리고 운영하고자 한다.

먼저, 생태팀은 생태안내자 교육과 공부를 해서 한 달에 2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 건강팀은 천연화장품과 천연세제 등을 만드는 연습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활동을 한다. 문화팀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철학공부를 한다. 청소년팀은 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공부를 하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주재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역사공부모임은 여성강좌 후 한살림을 중심으로 조직된 후속모임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모임을 유지・발전시켜 온 것으로, 방학 때 이외에는 주 1회 이웃의 역사전공자를 모시고 역사공부를 한다. 그 동안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공부했고, 올해는 일본사를 공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직장인 모임이 있는데, 참여자들은 대부분 지역내 복지기관의 복지사들이다. 이 모임에서는 지역사회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중 역사공부모임은 처음에 장소만 사용하도록 권했을 뿐 <초록상상> 내부의 모임은 아니었다. 장이 국장의 활동 스타일상 이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싶은 욕구가 컸을 것이나, 먼저 그러한 제안을 하거나 권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록상상>의 사무실에서 자체적으로 모임을 진행하면서 현재는 모든 참여자가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로 인해 이제는 <초록상상> 회원들의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직장인 모임의 경우, 그 참여자가 주로 중랑구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들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통해서이다. 중랑구의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CI(Community impact)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 지역에서 유일한 시민단체로 인정받는 <초록상상>도 이에 참여하면서 참여한 복지사들에게 적극적으로 회원가입을 권유하였다. 이들의 경우 지역사회의 유일한 시민사회운동단체에 대한 호감을 보였고, 이에 20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 외에도 지역의 환경교육 전문단체로서 다양한 환경교육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중랑지역이 교육복지우선투자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초록상상>의 활발한 환경교육 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지역 내에서 환경교육을 담당할 단체가 <초록상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외적 조건만이 활발한 환경교육 활동의 요인이라 볼 수 없다. <초록상상>에서도 주어진 기회에 대해 매우 헌신적인 응답을 하였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이 국장의 표현에 의하면, “작년 1년간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했다” 예를 들면, 학교나 청소년 수련관에서의 요청에 대해 강사료 이상의 재료와 준비를 해서 성실히 교육을 함으로써, 주최 측으로부터 감사의 마음과 신뢰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각 팀들은 자체모임과 외부활동을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초록상상>의 주체라 할 수 있다. 모임에서는 각자 공부와 실습 등을 하고, 그 내용을 외부활동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올 해에는 또 하나의 모임이 새로 생길 것 같다. 그것은 의정 모니터링 모임이다. 중랑구에 있는 <중랑신문사>가 작년에 주부기자단을 모아서 중랑구 의회 모니터링을 실시하였다. 신문사 역량으로는 운영이 힘들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회기 중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모니터링을 해왔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계속 의정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편집장이 <초록상상>에서 함께 운영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래서 장이 국장이 이 모니터링 모임에 참여하며 또 하나의 모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내년에 <의정지기단> 등의 이름으로 독립시키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운영과 사무국장의 역할


각 모임에는 팀장이 있다. 자체 모임은 1주에 1회 하고 있으며, 그 팀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예를 들면, 생태팀의 경우 한 달에 1회 어린이 교육을 했고 올 해에는 2회 하기로 하였다.

팀은 팀장이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전체적인 연락체계는, 상근자인 사무국장이 팀장에게 연락하면, 팀장이 팀원에게 연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정기적 모임은 <초록상상>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므로, 사무국장은 전체 팀과 모임의 진행을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다.

월1회 각 팀 및 모임의 팀장들이 모여서 운영위원회를 개최한다.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관이다. 하지만 운영위원회는 특별히 어떤 안건을 결정하는 것보다, 팀 간의 긴밀한 소통을 더욱 중요시 한다. 만약, 참여자들이 자신들이 참여하는 모임에 대해서만 잘 알고 관심을 기울이면, 참여자들이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지역사회운동의 전반적 흐름에 동참한다는 인식을 갖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그러다보면, 상근자 중심의 운영과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장이 국장은 그러한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운영위원회에서 가능한 <초록상상>의 정보들이 상호 활발히 교류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목적으로 운영위원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운영위원회에 팀장이 아닌 일반 회원들의 참여도 자유로운 편이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팀장이나 사무국장이 운영위원회에 나오다가 회원을 만나면 손을 잡고 운영위원회에 같이 오는 식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 팀의 팀원들이 모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운영위원회가 딱딱한 형식을 갖고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부들의 유쾌한 수다와 함께 서로의 생각과 활동을 나누는 즐거운 만남의 장이 바로 운영위원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회원들에게는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의 소모임 참여를 넘어 <초록상상>과 지역사회를 인지하는 매우 중요한 만남의 자리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초록상상>은 사무국장 1인 상근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장이 국장은 아주 바쁘다. 혼자서 단체 운영에 필요한 사무국 업무를 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소모임에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모임이 사무실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정식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사무국장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모든 팀의 팀원으로서의 역할도 그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무국장의 업무 중에는 각 팀의 사업에 필요한 강사 및 장소 섭외 등의 실무적인 일도 수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올 해 장이 국장은 역사모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생태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담당자를 두었다. 일반 주부들의 경우 시간적 제한으로 인해 수많은 생태교육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이 국장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하중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상근자와 일반 참여자 사이의 갈등


풀뿌리운동도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활동이다보니, 참여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초록상상>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잡고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한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상근자인 장이 국장의 소탈・화끈한 성격이 이러한 갈등관계가 심각하게 발전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작용을 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상근자와 일반 회원들과의 관계는 이와는 다르다. 특히, 상근자가 갈등의 한 주체가 되면, 장이 국장의 소탈・화끈한 성격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상근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일반 회원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 참여를 배려한다고 해도 자신이 활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다른 참여자들이 자원봉사인데 반해 상근자는 많든 적든 간에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으니, 이 또한 갈등의 소지가 되기 쉽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근자와 일반 회원 간의 갈등이 불거진 적은 없다고 한다. 이는 정식 상근체계 등이 마련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보다는 상호간 적절한 처신이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한 예로, 장이 국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풀뿌리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월급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이 곳에서 일을 하면서 결심한 것 중의 하나는 상근자로서 월급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내가 상근자로 월급을 받으며 활동하고 다른 회원들은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거 아니겠어요? 만약 상근자와 비상근자를 구분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사실, 비상근자 중에도 핵심적 회원들은 일주일에 3-4일 정도 일을 해요. 나는 그러한 구분, 즉 상근자와 비상근자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록상상>에서도 유급 상근자 쓰자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그러면 그 때부터 사무실 일은 상근자가 도맡아 해야 해요. 그러다가 참여자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일을 함께 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마주치는 것도 괴로울 거예요.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젊은 사람을 공채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아줌마들하고 잘 어울리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상근자 중심의 운동은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오히려 팀장들이 일을 많이 하니 10만원씩 나누어 줄까? 하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장이 국장이 아무런 활동비도 없이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장이 국장은 매달 60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하지만 이 돈은 <초록상상>이 아니라 <여성환경연대>를 통해 받는다. 그리고 회원들은 장이 국장이 그 활동에 비해 받는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과 관계들로 인해 아직은 상근자와 비상근자와의 갈등이 크게 불거진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장이 국장이 <여성환경연대>의 지역총괄 책임자로서 활동비를 받는다고 하나, <초록상상>의 입장에서는 외부 또는 상급 조직으로부터 활동비를 받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참여자들의 변화와 역량강화(임파워먼트)


아무리 활동을 잘하고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활동이 구체적인 참여자 개인의 변화와 역량강화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조직적 기반의 허약함을 극복할 수 없다. 즉,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이는 여러 사회의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런 점에서 참여자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변화는 풀뿌리운동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역량이 개개인별로 파편화된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모이고 발휘되는 과정이 진정한 역량강화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초록상상>에서도 그 동안의 여러 사업을 통해 현재 회장으로 활동하시는 분을 비롯하여 몇몇 핵심적인 회원들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 장이 국장은 공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함께 하는 일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교육에도 열심히 신경을 썼으며, 사람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일 등을 하였다. 이러한 개인적인 접촉 이외에도 참여자들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작년의 경우에는 매달 1회씩 여성리더십 특강을 진행했다. 이 특강에서는 단순히 강의를 듣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여성조직들을 방문하는 기회도 많이 만들었다. 이러한 탐방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깨달은 점은,  “중산층 전업주부들을 밖에 나오도록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참여를 통해 자녀들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체득하게 해주고 그와 비슷한 조건의 주부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을 탐방을 다님으로써 이를 입증해 주니, 참여자들의 참여와 지도력이 성장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상호 신뢰관계도 형성할 수 있었다”  개인의 리더십이 집단화 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이 국장도 일상적으로 운영위원회의 등을 통해 <여성환경연대>나 ‘공정무역’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많이 했다.

장이 국장은 기본적으로 전업주부들이 이기적이라는 데에 대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세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시민사회가 어떤지 알면 알수록 주부들은 참여의 의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그러한 변화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실상, 전업주부들의 경우에는,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 장이 국장의 경우에는 10여년 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통해 이들의 처지와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한 일체감이 다른 참여자들의 공감을 만들어 내고, 이들의 참여와 변화를 조직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장이 국장은 이러한 변화의 사례로 작년 연말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했던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그것은 많은 참여자들이 ‘내가 <초록상상>에 참여하면서 이 지역에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해 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 배우는게 많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행정과의 관계


장이 국장을 방문하기 전 <초록상상> 까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는 행정과의 관계가 상당히 원만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이 국장이 처음 지역에서 주민모임을 조직하는 데에 있어 주로 주민자치센터를 활용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소개한 3개 지역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있어 시민단체의 기반이 취약한 영등포 지역에서도 처음에는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주민들을 만났었다. 즉, 해당 주민자치센터에 찾아가서 우리가 프로그램과 강사, 그에 필요한 재정을 모두 부담하겠으니, 장소만 빌려달라는 식으로 접근을 했다.

현재의 활동근거지인 중랑지역에 와서도 장이 국장은 주민자치센터를 주목하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활동근거로 활용하였다. 장이 국장 생각에는 시민단체가 사무실 유지비 등을 고려하면 공간을 넓히기보다 필요한 공간을 찾아서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센터는 주민들과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활용가능하며, 가능하면 모든 주민자치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주민자치센터의 욕구와도 일치한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빈곤으로 항상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이 국장은 먼저 지역 여성들에게 여성・환경강좌의 내용으로 어떤 것이 좋은 지 설문조사를 하였다. 이 근거를 갖고 주민자치센터 담당자에게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물론, 그래도 이러한 개입을 귀찮아하는 담당자도 있지만, 반가워하는 담당자도 물론 만날 수 있다. 장이 국장은 이 중 2개 동 주민자치센터를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자치센터 담당자와 겪게 되는 예민한(?) 문제는 그 프로그램의 주체를 어떻게 표기하느냐이다. 담당자들은 조심스럽게 자기네 주민자치위원회를 앞에 두면 안 되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해 왔고, 장이 국장은 우리 이름을 빼도 된다고 응수하였다.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장소를 빌려주고, 모임 때 담당자가 커피를 타다 주는 등으로 매우 협조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그리고 주민자치센터에서 강좌를 진행하면서, <초록상상> 홍보를 하여 회원들도 하나 둘 생기고 또한 후속모임을 제안하고 조직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 외에도 면목1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상봉1동에서는 외부의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옥상녹화와 교육강좌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즉, 처음 주민자치센터에 접근할 때는 담당 실무자 일을 도와준다는 자세로 접근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했다. 일단 조사를 통해 지역여성들이 참여하고 싶은 교육내용을 추출할 수 있었고, 거기에 교육에 대한 적극적 홍보도 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담당 공무원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실례로, 최초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중랑구청 여성정책과에도 가져다주었다. 그 이후 중랑구의 여성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초록상상>은 항상 초대되었다.

“저는 공무원들도 잠재적 회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희를 최초의 지역 시민단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여성정책과에서 파악한 여성단체가 스무개 가량 있고, 공무원들도 나름대로는 주민들을 위해 일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고 봐요. 따라서 그에 필요한 일을 제시하고, 또 그에 필요한 일을 해주겠다고 하면 그 쪽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죠.” 그렇지만, 이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도 나름대로 성의를 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모든 주민자치센터에 팩스를 보냈어요.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구요. 담당자들도 나름대로 팩스 공해, 격무 등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직접 전화를 걸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니 고맙다면서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반응을 보이는 곳이 생겼어요.”

결국, 행정과는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일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가장 큰 요인은, <초록상상>이 행정에 무엇을 요구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아니라, 행정이 아쉬워하는 부분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행정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결국, 주체적 역량에 의해 행정을 견인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겠다.



앞으로의 전망


“중랑구는 서울시에서 재정자립도가 꼴찌에서 2등이고, 사람들도 집값이 싸서 이사 오지만 돈을 좀 벌면 노원구 등으로 이사 가려고 하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이 조금만 노력을 하면 건강한 교육도 시킬 수 있고, 그래서 이 지역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이 지역의 2-3세대를 키워내고 싶다. 그래서 청소년팀도 꾸리고 그랬다.”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역을 만드는 데에 <초록상상>이 일정 정도 기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장이 국장이 밝힌 앞으로의 전망이다. 장 국장과 함께 하는 아줌마 회원들에게 있어, 행복한 삶이란 아이들을 잘 키우는 재미있는 동네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장이 국장은 이를 위해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대안적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의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 활동가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이 세력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원들 중에 구의원도 배출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둘째는 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주부들의 경우, 우리 가정을 파괴하지 않고 아이들 잘 돌보며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즉, 지역사회의 교사가 되거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참여자들을 강사로 참여시키려고 하고 있고 성미산에서와 같은 유기농 반찬가게를 만들어 주부들에게 부업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셋째는 다양한 여성모임과 조직을 인큐베이팅 하는 것이다. 올 해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의정 모니터링단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부들이 유기농 반찬가게와 같은 대안적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점


① 자원의 발굴과 활용

<초록상상>이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지역에 이같은 대중조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역사회의 자원들을 잘 활용한 것이 큰 기여를 하였다. 초기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중랑지역에서 장이 국장이 <한살림>과 <동화읽는 어른모임>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것이나, 주민자치센터라는 공간을 활용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겠다.


② 욕구와 명분의 결합

장이 국장은 <여성환경연대> 활동을 통해 여성과 환경을 결합시킨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의 세례를 받은 활동가이다. 따라서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를 통해 지역주민을 만나려는 의도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만으로는 주민들을 만나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초록상상>은 이 둘을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오늘 날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활동의 시작은 주민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설문조사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그 조사방법의 객관성과 적합성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것은 불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여성과 환경이라는 주제를 주민들에게 쉽게, 그리고 주민들의 욕구를 통해 녹여내려는 노력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③ 수혜형 참여가 아닌 제공형 참여

<초록상상>의 일상활동은 각 팀과 모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모임이 단순한 소모임의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 팀과 모임은 모임 구성원들만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를 향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태팀은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생태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건강팀은 자신들이 배운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전달해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직장인 모임 외에는 모든 팀의 공통적 활동내용으로 잡혀있다. 직장인 모임의 경우에도,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복지사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소모임과 차별성이 있다. 즉, 각 팀의 활동내용은 참여자들이 그 모임을 통해 특정한 내용을 공급받는 대상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른 누군가에게 뭔가를 공급해 주는 활동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지역사회 활동의 재미를 ‘맛’ 보게 할 뿐 아니라, 참여의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참여자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다.


④ 대안과 성실함을 통한 행정과의 관계설정

시민사회단체는 일반적으로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어지곤 한다. 특히, 공무원 사회에서 이러한 인식은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행정의 입장에서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민사회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에 망설이곤 한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주로 그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나 주민자치위원회 참여, 각종 위원회 참여 등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방식은 썩 좋은 성과들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초록상상>의 접근법은 달랐다. 대안적 프로그램, 매우 구체화된 대안적 프로그램과 그 실행력을 갖고 행정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조그만 역할이라 하더라도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으로 다가섬으로써 행정과의 관계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성공적인 지역사회 여성조직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이 지역사회 활동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행정과의 긴밀한 관계를 설정하였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활동 자체가 지역주민조직화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⑤ 상급단체와 지부조직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

개인적으로, 상급단체의 지부 형태로 존재하는 지역 풀뿌리조직이 지역사회 내에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몇 개의 풀뿌리운동 조직들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관계가 결국 해당 조직이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뿌리는 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모습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그 차이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상급조직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지부 격의 조직에 어떠한 식으로 개입하는 지에 따라 갈라진다. 상급조직이 지부조직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거나 아니면 최소한 상급조직에서 설정한 의제를 지부조직에 강요하지 않는 경우는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상급조직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의제를 지역사회에 내려 보내는 경우에는 지역사회의 지부조직이 건강한 풀뿌리운동 조직으로 정착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한다.

<초록상상>은 <여성환경연대>의 지부조직이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 활동의 핵심인 장이 국장은 <여성환경연대>에서 중랑구에 파견한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러한 정체성 자체가 그리 문제될 것은 없지만, 장이 국장이 <여성환경연대> 내에서도 여러 활동의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은 지속가능한 <초록상상>의 풀뿌리적 발전에 있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장이 국장은 작년에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한 운영위원으로부터 운영위원으로 추천하고자 한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 때는 거절을 했단다. 그 이유가 인상 깊어, 그 이유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내가 작년에 이음에 결합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한 것은, 일단 남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하하) 두 번째는 모든 네트워크들이, 사무국 사람들이 사무실 있는 시간을 줄여서 생활인을 만나야 하는데, 연차가 높아질수록 회의가 많아지고 자기들끼리의 만남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의식 못하겠지만,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죠. 그러면 위로가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만남들 속에서 삶의 희망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저는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음에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끼리 만나는 것보다는 생활인을 더 많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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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에서 열린 지역운동의 소통과 연대 방안 (심규상)

곳곳에서 '지역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장(충남대 교수)은 지역운동이 뜨는 이유로 '지역운동에 뿌리를 두지 않은 전국운동'의 쇠퇴를 꼽았다.

그는 30일 배재대학교 국제교류관에서 열린 '2007대전지역사회포럼' 주제 강연을 통해 "그동안 운동역량이 중앙에 집중되면서 지역과의 운동 역량의 격차가 확대됐고 결국 사회 구조의 변화나 사람들의 삶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왜? 그가 예시한 사례는 두 가지. 하나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쌀 개방 반대투쟁이다.

낙천낙선운동으로 부패 정치인 상당수가 낙선되고 국회의원 정수도 일정하게 줄어들었다. 박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민운동이 마치 혁명군처럼 국회를 장악하는' 전과를 올렸다.

낙천낙선운동, 쌀 개방 반대운동이 일회성으로 끝난 이유

박 교수는 "하지만 그 후 슬그머니 의원 정수가 원래대로 돌아가고 국회 또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이는 전국적 운동을 통해 획득한 '제도변화'를 열매 맺게 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90년 초 시작된 쌀 개방반대투쟁은 정부로부터 42조원의 농업투융자계획을 세우도록 했고 2003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은 이른 바 119조원 투융자 계획을 수립하게 했다. 하지만 전국적 운동은 말했지만 누구도 풀린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그럴 역량도 없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현실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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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뜰 나눔장터 (대전여민회)


그는 "결국 막대한 돈이 지방토호와 일부 약삭빠른 농민 배를 불러주었을 뿐 다수 농민들은 빚만 늘어나 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지역이 바꾸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즉 "지역운동을 토대로 한 전국운동의 발전을 추구하자"는 역설로 모아진다.

박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앞세운 신개발주의, 신성장주의의 포로가 되고 있다"며 "지역운동을 통해 신개발주의 광풍에 맞서 지역을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생활현장인 지역을 새로운 삶의 공동체로 만들어 중앙권력을 변화시키는 진지로 구축하자는 호소다.

"운동이 즐겁지 않으면 아예 손을 놓아라"

어떻게?

권선필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도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활동, 기초적 인간관계, 지식의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지속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우 대전충남통일연대 조직위원장은 "각 노동, 여성, 빈민 등 부문 운동진영 또는 단체 간 소통과 신뢰에 의한 연대와 화합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지역 의제에 대한 정기적 의사소통구조를 만들어 토론 및 교육을 통한 대안 찾기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민경우 한국진보연대 정책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은 "서울 경기지역에서도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 등 서민대중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경희 대전여민회 공동대표는 "그동안 단체 대표를 맡아 온 경우에도 일상적인 별도의 사업을 맡아 주민들과 함께 기획에서 마무리까지 직접 챙겨왔다"며 "단체 상근자 등 운동 주체들이 권력화돼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단체 상근자나 운동가들은 지역 주민들의 주체 역량을 강화하는 일 속 자체에서 즐거움(보람)을 찾아야 한다"며 "일이 즐겁지 않으면 아예 손을 놓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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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배재대에서 열린 '지역운동의 희망을 찾아서' (심규상)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대안의 하나로 대전참여자치연대의 3지체, 3운동론을 소개했다.

"소통과 연대 계기 만들기"

지역사회 권력 감시운동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권력영역)에서, 정책의제 대항 담론의 형성은 대전시민사회연구소(연구영역), 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 등 주민사업은 주민운동지원사업단(주민영역)이 맡아 진행하고 있다는 것.

이날 지역사회포럼에서는 교육, 노동, 문화예술, 지역 언론, 인권, 통일, 환경 등 각 부문에 대한 분야별 토론도 진행됐다.

이날 포럼 진행을 맡은 대전시민사회연구소 관계자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진보개혁세력의 성과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지역운동의 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지역사회운동의 소통과 연대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지역사회포럼은 대전지역 진보개혁세력간 단절을 넘어 소통과 연대를 위한 한시적 네트워크로 대전지역 35개 단체가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행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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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대통령 선거와 풀뿌리운동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각종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어떤 후보가 어떤 비리에 연루되었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으며, 여타 후보들 역시 이 논쟁 속에 스스로를 빠뜨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거국면이라는 공간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후보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실상 비리의혹이 짙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권력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탈당과 통합 등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각 정당의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대한민국이 발전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비단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을 비롯한 우리 사회 그 어떤 세력도 이렇듯 암울한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번 대통령 선거의 관심은 오직 누가 누가보다 낫고, 그러니 좀 더 나은 누구를 뽑아주어야 한다는 논리만이 무성해 있다. 이에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희망의 한 표를 행사하거나 우리 사회에 희망의 싹을 보듬기 위한 어떠한 행동을 계획하기보다 누구를 뽑아줄까 하는 단순한 선택의 논리 속에 자신을 점점 깊숙이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한 번 가만히 되짚어 보자. 과연 우리가 좋은 대통령, 아니면 보다 덜 나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물론, 좋은 대통령 또는 좀 덜 나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 또는 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 시민들은 오랜 동안 이러한 논리에 세뇌당해 왔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에 정치적 정당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의 정통성과 민주성을 획득하는 것만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정치적 정당성을 보위해야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암울하다. 실상, 우리 시민사회운동 진영에 있어 지난 10년, 아닌 지난 20여년의 시기는 우리 사회에 사회적 정당성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아직도 불완전한 채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선거 시기, 특히 대통령 선거 시기만 되면 이러한 그간의 모든 노력은 무시되고, 다시금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논란에 휩싸이고 만다. 물론,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라는 사안은 일상적인 것과는 조금 구별되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수한 상황 역시 뚜렷하게 확립된 우리 사회의 발전 전략의 과정과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보여지는 많은 모습들은 여전히 권력을 누가 잡느냐 하는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실상, 우리 사회의 권력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시민들에게 있다. 그리고 작금의 사회운동에서 필요한 사회적 정당성은 바로 우리 사회의 권력을 주인들에게 되돌려주고 그 권력을 시민들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는 이러한 전략적 관점을 종종 묻어버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역대 그 어느 선거 때보다도 국민과 시민이 실종된 권력다툼의 양상으로만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자주 거론되는 풀뿌리운동은 우리 사회의 풀뿌리, 즉 민초(民草)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주인이자 주역임을 선언하고, 이를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즉,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막강한 권력을 잡고 이를 자신의 논리대로 국민(시민)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특정 인물 또는 정치인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풀뿌리운동은 그 권력을 우리 사회의 풀뿌리들과 공유하고 그 풀뿌리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주역이 되도록 보듬으려는 노력을 통해 진행된다는 믿음과 전망을 이야기 한다.

어느 술자리에서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풀뿌리운동을 이야기 하는 후보는 무조건 찍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내가 권력을 잡기만 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정치인은 풀뿌리운동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내가 권력을 잡으려는 이유는 너희들과 권력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함께 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이야기해보자’는 후보가 진정으로 풀뿌리운동을 이야기 하는 후보라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되어야 이러한 후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후보를 기대하고 고대하는 염원이 깊어야 그 염원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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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어리석은 사람도 머무르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산이 있다. 가수 안치환은 그 산에 가려면 온몸을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의 마음으로 올라야 한다고 노래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그 산에서 투쟁했고 죽었으며 다시 존재했다.
 
지리산, 그곳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특별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지리산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겹기만 하다. 사람들은 떠나고 주머니 사정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은 결국 돈 있고 권력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리산권 지역의 문제들이 좌지우지되면서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생명과 평화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고심했다. 지난 1997년 전국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키면서 결국 백지화까지 이끌어낸 지리산댐 건설 반대운동의 경험이 이들에겐 있었다. 당시 중심활동을 펼쳤던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이 지난 2002년 이름을 바꾼 지리산생명연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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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지리산문화제에서 협동화를 그리는 어린이들

또한 지난 2005년 문화관광부의 지리산권 관광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조직된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의 소속 단체들도 지역운동, 주민자치운동을 하기 위해서 지역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의 역량을 키우자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개발반대가 시작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제5회 풀뿌리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씨상을 받은 지리산권 공동학습 프로그램 ‘지리산희망씨앗찾기 I’이다.

주민들도 떠난 지역에서 주민자치를 하려면 어떤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서로 던지던 중 그전까지 지리산권 지역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고 해봐야 농민강연이나 노동자강연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최화연 지리산생명연대 총무부장은 “일회성이거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심도 깊은 공동체적 학습이 필요하다는 데에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커리큘럼과 학습 방식이 문제였다. 주최 측에서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보다는 지역에 정말 필요한 구체적 사안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다.

이번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한 전국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10여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커리큘럼이 짜여졌다.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의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광범위한 지리산권을 아우르면서 지역 활동가와 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에만 함몰되는 게 아니라 생각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직접 참여하기”

총 6회의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70~80명 정도였고, 매번 강의를 빠지지 않고 열정을 보인 사람들은 20명 정도였다. 풀뿌리운동, 지방자치단체의 발전계획 분석, 지리산권관광개발계획, 지방자치단체 예산분석, 주민조직화 방법, 주민자치 사례연구 등 실무적인 내용의 강의들이었다.

올해 진행한 ‘지리산희망씨앗찾기 II’는 이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직접 대안을 모색해 실천가능한 사업을 도모하고 현재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는 사업이었다. 구례의 사포마을, 남원 생협의 직장인모임, 구례북중학교 등에서 작게 나마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주민자치와 풀뿌리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사업을 진행할 때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구체적인 지역에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내용들을 참고해 지난 9월부터는 하동지역에서만 2차 교육이 진행됐다. 

협의회는 느슨한 사안별 연대를 지향한다. 향후 ‘지리산대안포럼’의 형태로 나아갈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의회가 딱딱한 사업만 진행해온 것은 아니다. 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부터 지리산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1회는 지난해 11월 구례의 산동 들녘에서 진행됐다. 주민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현수막을 꾸민 순수한 주민잔치였다.

올해는 지난 8월 벚꽃길로 유명한 섬진강변 19호선 국도에서 열렸다. 하동군에서 19호선 국도를 확장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 뜻을 담은 행사였다. 매회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순수하게 주민들이 만드는 축제를 즐겼다.  

주민축제의 장 마련

계속해서 지리산 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세력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고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상 지리산은 계속해서 어머니 산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소통의 장으로, 민족의 성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구례=전상희 기자 sang2@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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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성공회대NGO자료관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하세요..

 자료는 2007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1차 정책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입니다. 세부 내용은 첨부자료를 이용하시기 바라며, 전체 프로그램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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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2007년 12월 30일 환경운동연합의 보고서이며
성공회대NGO자료관에서 퍼왔습니다.

기름 유출이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

엑손 발데즈호 사고로 유출된 기름이 초래한 재앙



2007-12-30



엑손 발데즈호 기름 유출 사고 이전에는 석유 탄화수소의 생태학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는 과거에 있었던 기름 유출 이후에 이뤄진 일부 단기적 모니터링과 실험실에서의 독성 시험 정도뿐이었다. 엑손 발데즈호가 1989년 3월 24일, 미국 알래스카의 프린스 윌리엄 만(Prince William Sound) 북방에 있는 블라이암초(Bligh Reef)에 좌초된 후, 거대한 기름 유출과 해안선 오염의 범위, 높은 야생동물 사망률은 전례가 없었으며, 이후 14년 이상 동안의 생태학적인 영향에 관한 평가가 실시되었다. 이 사고로 유출된 42,000㎘의 원유는 1,99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오염시켰으며, 기름은 켄나이(Kenai)반도와 코디악(Kodiak)군도, 알래스카 반도를 따라 남서쪽으로 750km이상까지 퍼졌다. 이 사고로 유출된 기름 오염에 대한 연구가 몇 년 동안 지속되면서 기름 오염이 초래하는 장기적인 생태계 영향과 해안 생태계의 회복 과정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태독성학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생태계 회복 속도 지연과 장기적 영향이 나타나는 원인도 밝혀지게 되었다. 생태독성학은 무생물적인 것과 생물적인 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한다. 특히 엑손사와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이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10년 넘게 유해물질로 잔존하는 많은 양의 기름은 만성적인 생물 노출을 유발하기에 충분하고, 생물 개체군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다. 장기적 영향의 출현을 유도하는 세 가지 주요 경로는 1)기름의 장기적인 존재와 생물학적 노출, 얕은 퇴적물에 의존해 사는 종에 대한 개체군 영향, 2)치사량 이하의 노출이 생물체의 건강과 성장, 번식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악영향, 3)영양 흡수와 상호관계를 통한 연쇄반응의 간접적인 영향이다. 이들 모두 급성 사망률 이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급성 사망 (Acute-Phase Mortality)


프린스 윌리엄 만(PWS)의 엑손 발데즈호의 기름 유출 이후, 급성 사망률은 다른 기름 유출의 양상과 비슷했다. 해양포유류와 바다새는 바다 표면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이러한 종들은 바닷물 표면에 있는 기름에 가장 취약하다. 이 동물들의 털과 깃털에 기름이 묻게 되면 보온 능력을 잃게 되어, 저체온증과 질식, 익사, 탄화수소의 섭취로 인한 사망을 초래한다. 그래서 1,000~2,800마리의 해달과 250,000마리로 추정되는 바다새가 죽었으며, 302마리의 잔점박이물범이 유독 가스의 흡입으로 인한 뇌 손상과 스트레스, 방향감각 상실 때문에 죽었다. 오염된 해안의 대형 해조류(海藻類)와 저서 무척추동물도 유해 화학물질과 질식, 고압 세척으로 인한 서식지의 물리적인 환경 변화 때문에 죽게 되었다.


기름의 잔류: 생태계 흡수 (Persistence of Oil: Ecosystem Sequestration)


석유 탄화수소의 이동과 변형 양상은 사고 초기에만 예상대로 나타났다. 1989년에 유출된 원유의 약 40~45%가 프린스 윌리엄 만 인근 787km에 달하는 해변에, 7~11%가 알래스카만 해안선의 1203km를 오염시키면서 이동했다. 3년 반 후에는 프린스 윌리엄 만 일대의 해안에 약 2%의 기름이 남아있었다. 이것을 지수감쇠율로 표현하면 – 0.87 year–1인데, 1년에 58%가 감소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1992년 10월 이후에는 남아있는 기름이 교반과 산소 공급, 광분해가 물리적으로 억제된 환경에서 남아있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확산과 분해 속도가 감소했다. 2001년에 프린스 윌리엄 만 일대의 해안선에서 있었던 조사에서 55,600kg의 기름이 풍화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것은 1992년부터 2001년 사이의 지수감쇠율이 겨우 – 0.22에서 – 0.30 year–1이고, 1년 동안 20~26%씩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퇴적물이 쌓여 기름의 분해를 억제했으며, 분해하기 어려운 기름은 조간대의 성긴 자갈 해안에 모였는데, 그런 곳에서는 바위와 자갈 때문에 파도에 의한 교반이 저해되었다. 이런 기름 가운데 일부는 홍합류가 서식하는 층 아래에 존재하여 여러 가지 먹이사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강변 자갈에 있는 기름에 곱사연어의 새끼들이 노출되고, 죽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기름을 머금은 퇴적물들이 형성되어 지표면 아래의 기름들을 보호하며 풍화를 방해했다.


생물 개체군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 (Long-Term Population Impacts)


퇴적물과 관련된 종들의 장기적인 노출


기름 유출 이후, 장기적인 노출은 산란이나 먹이 채식을 퇴적물에 의존하는 어류와 해달, 바다오리류에게서 명백하게 나타났고, 수년 동안 사망률을 증가시켰다. 1989년에는 기름이 어류에게 미칠 악영향은 주로 실험실 안에서 실시한 4일 이하의 단기 실험을 통해 예측했었다. 당시에는 1-2개의 고리를 가진 수용성 방향족탄화수소에 노출될 경우가 주 실험 대상이었다. 엑손 발데즈호 기름 유출 이후, 어류의 배아와 유생은 기존의 실험실 분석에서 주로 놓치게 되는 3-5개의 고리를 가진 다환방향족탄화수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었다. 실험실 실험 결과 여러 개의 고리를 가진 다환방향족탄화수소에 1ppb의 적은 농도라도 몇 달씩 노출되는 곱사연어 알과 16일 동안 노출된 청어 알의 발달에 유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난 지 최소한 4년 동안은 부화중인 곱사연어 알에서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해달 가죽의 거래가 금지된 이후 해달 개체수는 한 해에 10%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1989년 엑손 발데즈호 사고 이후 해달 개체수 증가는 약 4%에 머물렀다. 기름 유출이 심한 나이트 섬(Knight Island) 북부지역에서 해달은 유출 이전 개체수의 절반에 머물렀으며, 2000년까지는 개체수가 회복되지 않았다. 반면에 기름 피해가 없는 몬태규 섬(Montague Island)에서는 1995년부터 1998년 사이에 해달 개체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1976-1985과 1989-1998년의 봄철 사체 수거 조사를 통해 죽은 당시의 나이를 추정하고 개체군을 모델링할 수 있었는데, 프린스 윌리엄 만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해달의 생존율이 감소했다. 특히, 사고 이후 태어난 해달에서 높은 사망률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유해 물질에 대한 장기 노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6-1998년에 기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는 사실은 몬태규 섬 북부지역보다 나이트 섬에서 서식하던 해달의 체내에 해독효소 CYP1A가 높은 수치로 나타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두 섬 사이의 해달 먹이(대합조개류, 홍합조개류, 게) 양은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먹이 획득가능성이 개체수 회복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없다. 바다속 부유물질을 먹는 대합조개류와 홍합조개류는 석유 탄화수소를 체내에 농축시키는 반면, 이를 분해하는 속도는 느리기 때문에 이들의 조직 내에 오염물질이 장기적으로 오염되어 있는데, 이것은 먹이사슬을 통해 다른 된다. 기름에 오염된 홍합조개류가 원상으로 회복되는지에 대해서는 최대 30년까지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을 먹고 사는 해달은 퇴적물에 있는 석유 탄화수소에 직접 접촉을 통해 노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먹이를 통해서도 석유 탄화수소에 장기적으로 노출된다. 퇴적물은 바다를 계속 오염시켰고 수렵생활을 하는 해달은 만성적인 노출에 고통을 겪었다. 반면에, 물고기를 주로 먹는 수달은 기름으로 오염된 해안 일대에서 서식해도 장기적 기름 노출에 대한 증거를 거의 발견할 수 없는데, 이것은 퇴적물에서 먹이를 찾는 것이 더 큰 위해요인이 된다는 증거이다.


바다 새들 중에, 흰줄박이오리는 가장 의외의 만성적 영향을 보였다. 흰줄박이오리 암컷 성체들에 대한 전파발신기 추적 연구 결과, 1995-1996년부터 1997-1998년의 월동기간 중에 기름 오염이 심한 나이트 섬과 그린 섬(Green Island)에서 사망률이 22%로 오염되지 않은 몬태규 섬의 16%보다 높았다. 조간대 저서 무척추동물을 주로 먹고 사는 흰줄박이오리에게 해독효소 CYP1A가 유도되는 현상이 1998년에 나타났는데, CYP1A 효소를 유도할 수 있는 폴리염화비페닐(PCB) 등의 다른 화학물질이 없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나도 해독효소가 유도된 것이다. 1998년 조사에서 늦겨울에 몸무게를 측정해보았더니 CYP1A 효소와 몸무게가 반비례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1995-1997년의 프린스 윌리엄 만의 기름 오염지역에서 확인된 흰줄박이오리 밀도는 오염되지 않은 지역에 비해 약 5% 적었다.


얕은 퇴적물에서 먹이를 찾는 다른 해양 조류들도 기름 유출 후, 잔류 기름에 대한 장기적인 노출의 증거를 보여줬다. 알래스카 해안에서 겨울을 나며 조간대에 서식하는 홍합류를 주로 먹는 북방흰뺨오리는 기름에 오염된 지역에서 많이 감소했으며, 1991년까지는 개체수 회복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기름에 오염된 나이트 섬의 해안선을 따라 1996-1997 겨울 동안, 북방흰뺨오리의 CYP1A 효소 유도를 살펴봤을 때 만성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저서 무척추동물을 먹이로 하는 것과 잔류 기름에 대한 만성적인 노출과의 관계는 흰줄날개바다오리 연령 집단의 차이점에 의해 설명된다. 이 바다 새는 해변 가까운 곳에서 먹이를 찾는 새이며,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급성 사망률이 높았다. 기름 유출 이후 10년 후인 1999년, 오직 생선만 먹는 흰줄날개바다오리 새끼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반면, 해저 무척추동물도 먹는 흰줄날개바다오리 성체는 간에서 CYP1A 효소 수치가 높았다.


생물의 건강과 성장, 번식에 악영향을 끼치는 치사량 이하의 노출

1989년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해 치사량 이하의 기름에 노출된 곱사연어의 알과 새끼들의 성장률이 감소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실험실에서 총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농도가 20ppb이하 상태에서 곱사연어의 배아를 장기 노출시켰더니 성장 저해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들을 표시하여 방류한 결과 곱사연어 치어의 생존률은 대조군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으며, 바다에서 평균 1.5년만 생존할 수 있었다.


검정물떼새의 연구결과, 치사량 이하의 노출량에 대한 영향으로 인해 도요물떼새들의 개체수가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다. 1989년, 기름에 많이 오염된 해안에서 먹이를 구한 검정물떼세들이 다른 곳에서 먹이를 구한 새들보다 더 적은 수의 알을 낳았으며, 낳은 알의 크기도 더 작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1989년과 1990년에 조사한 새끼의 사망률도 기름 오염 정도와 비례하였다. 1991년과 1992년에 수행된 연구에서는 이 새들이 오염된 홍합을 먹었으며, 기름에 오염된 해안에서 먹이를 잡은 어미 새가 잘 자라지 못하는 새끼를 위해 가져다주는 먹이의 양이 더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으로 인해 기름 오염이 있은 지 3년이 지나도 번식기능에 장애를 초래했으며, 에너지 소비와 발달 측면에서 피해를 입었다. 새끼의 몸 크기가 작거나 털갈이 시기가 늦어지면 새끼가 생존하는데에는 악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


간접 영향의 연쇄반응


간접적인 영향은 군집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에 관한 상호작용만큼이나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가장 영향을 주는 간접적 상호작용은 1)육식동물이 먹이가 되는 동물의 숫자를 감소시키면 그 동물의 먹이인 생물종의 번식이 제한을 덜 받게 되는 경우와 2)생명체의 작용에 의해 특정한 환경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어 새로운 서식지를 만드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생물학적 악영향을 평가하는 현재의 위해성 평가 모델은 이러한 간접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각 종의 개체군이 서로 독립적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간접적인 상호작용은 바위 해안의 복원 과정을 10년 이상 걸리게 했다. 생물 기원의 서식지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모자반속(屬)의 해초 Fucus gardneri가 기름 유출 초기에 바위 표면에서 급격히 감소하게 되면서 간접 영향의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이 해초를 먹고사는 삿갓조개류와 수주고둥류가 사라지게 되었고, 이를 먹이로 하는 쇠고둥류 등의 포식성 복족류도 사라졌다. 이로 인해 1989년과 1990년에 녹조류가 순간적으로 번성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1991년에는 따개비류인 Chthamalus dalli가 번성했다. 바위를 덮어주던 해초류가 사라지자 무척추동물 숫자도 감소했으며, 성체의 그늘에서 건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Fucus 어린 개체도 자라기 어려웠다. Fucus가 회복된 것처럼 보인 1994년에 기름에 오염되었던 해안에서 이들의 대량 폐사가 발생했는데, 이처럼 생태계가 안정화되지 못한 것은 한꺼번에 자라기 시작했던 Fucus가 일시에 노화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간대 해안에 사는 동식물들은 세대 주기가 짧기 때문에 회복이 빠를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어리석은 것이고,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생태계 회복이 10년 이상 지체될 수 있다.


간접적인 상호작용은 영양 단계의 연쇄반응이나 조간대의 저서생물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의 상호작용의 연쇄반응은 사회적인 동물 개체군 안에서 어떤 중요한 개체가 손실되는 것도 포함되는데, 이럴 경우 살아남은 다른 개체들도 사망률 증가나 번식 장애 등의 악영향을 받는다. 프린스 윌리엄만 일대에서 서식하며 기름이 유출된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도 목격되었던 범고래 AB 소개체군(주로 물고기를 먹음)은 1988년 9월과 1989년 봄 사이에 20%의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으며, 1990년에 다시 20%의 사망률을 기록했는데, 모계 중심 사회생활을 하다가 무리 가운데 주요 암컷 성체들을 잃게 되자 번식능력이 저하되었다. 다른 그룹인 AT1 소개체군(주로 포유동물을 먹음)은 기름 유출로 구성원의 40%를 잃게 되자 무리가 거의 해체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영양 단계의 연쇄반응에 관하여 좋은 사례가 있는데, 그것은 알래스카만의 대형 해초류 생태계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범고래에 의해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해달은 성게 개체수를 조절하여 성게가 대형 해초류를 과도하게 먹어치우지 못하게 하므로 물고기와 무척추동물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프린스 윌리엄 만에서 기름 유출로 해달의 50% 가량이 사라지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연쇄반응이 작용하여 전반적인 생태계 복원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해달 숫자가 줄어든 것은 해달이 먹는 먹이의 양이 감소했으며, 성게의 크기가 커진 것까지 확인되었다. 만약 기름 유출에 의해 해달이 특정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해달-성게-대형 해초류에 이르는 연쇄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위해성 평가 모델은 이러한 것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석유의 생태독성에 대해 변화하고 있는 패러다임의 의미 (Implications of Changing paradigms of Oil Ecotoxicity)


실험실에서 수행되는 급성 독성실험이 생태계독성에 관한 위해성 평가를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해양 환경에 대한 석유와 다른 독성물질의 영향을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장기 노출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독성에 대한 평가를 위해 생리학적, 생화학적, 조직병리학적 평가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분자생물학적 도구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점점 촉진되고 있다. 이 논문은 14년 동안의 엑손 발데즈호 기름 유출에 대한 여러 연구를 종합하여 수중 환경에서 장기적이며 만성적, 간접적인 석유 오염의 영향을 문서화하였다. 엑손 발데즈호와 2001년 갈라파고스 섬에서의 산크리스토블라호(San Cristobla) 기름 유출을 통해, 환경 관련 사전 의사결정과 천연자원 손실에 관한 사후 평가에 있어서, 위해성 평가 모델에 의해 수행되는 역할의 재고가 필요하다. 생태계 영향에 대한 예견 능력이 생태계에 기초한 틀을 통하여 스트레스 요인의 장기적, 간접적, 만성적인 영향을 좀 더 확실히 모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많은 노력이 존재한다.


미세한 침전물이 퇴적되어있는 해안선을 오염시킨 기름들은 급속도로 퍼지며 미생물에 의한 분해와 광분해로 없어져 간다.

기름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속도로 사라진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침전물에 섞여있는 기름은 산화 및 광분해가 어렵기 때문에 오랜 기간 잔류한다.


어류에 미치는 기름의 독성


ppm 농도의 수용성 오염물질(1-2 개의 벤젠 고리를 가진 방향족 화합물)에 의한 급성 중독 때문에 죽게 되는데, 이것은 초기 단계 (4일 이내)에만 발생한다.

물고기 배아들이 ppb 단위의 기름 잔유물(3-5 개의 벤젠 고리를 가진 PAHs)에 장기적인 노출될 경우, 성장 저해와 기형, 행동 장애 등의 악영향을 미치고, 치사율과 생식 기능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준다.


바다새와 해양 포유류에 미치는 기름의 독성


기름의 영향은 오직 가죽이나 날개에 단기간의 급성노출에 따라 나타나며, 체온 저하, 질식, 익사, 또는 부리로 깃텃을 고르는 동안의 독성물 섭취로 죽게 된다.



기름 영향은 장기적인 자연환경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염된 먹이 섭취를 통한 만성적인 독성물질 노출과 기름에 오염된 주변 해역에서의 먹이 섭취 등을 통해 노출되며, 사회생활을 하는 종의 경우 행동 장애(동료 보살피기와 생식)를 유발할 수 있다.


해안 생물체에 미치는 기름의 영향


바닷가 또는 얕은 해저에서 서식하는 식물과 무척추동물에게 단기간의 독성물질 중독에 의한 사망이 있을 수 있다.

방제 활동이 기름 자체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방제가 계속되는 동안 그 영향은 계속 나타난다(화학적 물리적 방법 모두 포함). 조간대와 해조류 군락에서는 다양한 생물학적 상호작용이 있지만, 적절하지 못한 방제활동이 지속될 경우 기름 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더 확대시키며, 생태계의 복원도 지연시킨다.


※ 엑손 발데즈호(Exxon Valdez) 기름 유출이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

(Long-Term Ecosystem Response to the Exxon Valdez Oil Spill)


■ 출처 : 사이언스(SCIENCE) VOL. 302, 2003년 12월 19일


■ 저자 : Charles H. Peterson1*, Stanley D. Rice2, Jeffrey W. Short2, Daniel Esler3, James L. Bodkin4, Brenda E. Ballachey4, David B. Irons5


1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Institute of Marine Sciences, Morehead City, NC 28557, USA.

2National Marine Fisheries Service, National Oceanograph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Alaska Fisheries Science Center, Auke Bay Laboratory, Juneau, AK 99801.8626, USA.

3Centre for Wildlife Ecology, Department of Biological Sciences, Simon Fraser University, 8888 University Drive, Burnaby, BC, Canada, V5A 1S6.

4U.S. Geological Survey, Alaska Science Center, 1011 East Tudor Road, Anchorage, AK 99503, USA.

5U.S. Department of Interior, Fish and Wildlife Service, 1011 East Tudor Road, Anchorage, AK 99503, USA.



※ 번역 : 환경연합 자원활동가 최현희, 우혜진

정리 : 마용운


글 : 정리/마용운 국장(환경연합 정책실)

담당 : 환경연합 서해안 기름유출 시민대책단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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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풀뿌리시민운동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1. 풀뿌리시민운동에 대한 정의

1) 풀뿌리시민운동은 바닥(Base Community)운동

시민운동의 위기를 돌파하는 것으로 ‘풀뿌리시민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2007년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을 모색하면서도 아래로부터의 풀뿌리유권자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시민운동의 흐름이 새로운 시민운동의 시대를 열지 아니면 하나의 유행으로 끝날지는 알 수 가 없다. 올 봄에 <2007년 풀뿌리활동가 대회>를 할 때 서울 녹색 삶의 정외영은 “풀뿌리시민운동은 자신은 발가벗겨 주민들에게 온전히 들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버리고 바닥(Base Community)으로 내려가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풀뿌리시민운동이다. 이런 측면에서 운동은 원래 풀뿌리시민운동이다.

실제로 풀뿌리시민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풀뿌리시민운동은 000이다.”라고 물으면 느림, 생활, 주민, 과정, 여성(주부), 소통 등 다양한 답이 나온다. 풀뿌리시민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뽑아볼 수는 있다.

우선 풀뿌리시민운동은 공간적으로 ‘지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하승수는 풀뿌리시민운동을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집단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활동”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풀뿌리시민운동은 ‘지역’보다 ‘삶의 공간’으로 정의되어 “폭넓은 의미의 지역운동과는 구분”되고 있다. 즉 운동공간을 지역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전문가나 활동가 중심의 운동노선을 따르면서 사람들을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다면 풀뿌리시민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하승수는 풀뿌리시민운동의 과제를 대안 창출, 상호소통과 협력, 아래로부터(풀뿌리로부터)의 전사회적 의제설정,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본다.

<초록정치연대>의 주요섭은 운동의 ‘현장성’을 강조한다. “운동의 현장은 주민들이 사는 삶의 현장일 수도 있고 시위의 현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구 YMCA>의 김경민은 오히려 “농촌으로 대표되는 정주형 공동체가 파괴되고 아파트가 대부분의 주거형태인 한국의 도시에서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풀뿌리시민운동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아파트 중심의 도시가 20년이나 15년마다 재건축 혹은 재개발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근본적으로 풀뿌리시민운동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풀뿌리자치연구소>의 하승우는 “단순히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풀뿌리시민운동을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겠다. 모든 지역운동이 풀뿌리시민운동일 수는 없다. 그리고 풀뿌리시민운동은 단순히 지방에서 진행되는 운동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지방만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풀뿌리시민운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뿌리시민운동이 각각의 지방에 고립된 운동을 뜻하지도 않는다. 특히 수도권으로의 초집중화와 세계화의 현실에서 지방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때문에 <시민행동>의 하승창은 “많은 시민운동가들과 전문가들이 풀뿌리 지역자치 조직 활성화로의 방향 전환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극복 대안으로 제시하고 ‘중앙 집중형 연대운동보다 지역․분야별로 분화된 풀뿌리시민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나 ‘전체 사회 운동적 관점에서 보자면 시민 자치적 기능은 지역 수준에서 담당하고 중앙조직은 대변적 기능을 중심으로 지역 조직을 지원하는 센터 구실을 맡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은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용인하자는 것이 되어서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권력과 시장에 대한 감시운동과 풀뿌리시민운동 등 다양한 시민운동의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 풀뿌리시민운동은 주민주체의 운동 

두 번째의 공통점은 풀뿌리시민운동의 주체가 ‘주민’ 이라는 것이다. ‘주민’운동의 관점에서 풀뿌리시민운동을 바라보는 <풀뿌리자치연구소>의 이호는 주민을 “권력을 지닌 자나 전문가들로부터 대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 가야 할 주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호는 “주민자치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를 통해 평가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는가,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를 과정으로서 개념지웠듯이, 주민자치운동 역시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하승수는 풀뿌리시민운동의 주체를 “자신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규정하고 중요한 것은 “단지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치능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힘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고 “주체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풀뿌리시민운동의 실천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풀뿌리시민운동의 목적”이라고 한다.

하승우는 이러한 이호와 하승수의 관점을 “풀뿌리시민운동의 주체를 주민이라 호명하지만 그 주민의 범주를 분명하고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풀뿌리시민운동을 주체의 문제로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는 주체를 ‘존재’의 관점이 아니라 ‘생성(becoming)’의 관점에서 고민하게 한다.”고 한다.

필자 역시 풀뿌리 운동은 공간적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운동을 조직화하고 드러내는 방식이 90년대 대변형 시민운동과 다르다. 속도를 중심으로 한 운동에 대한 반성, 공간을 재조직화하기 위한 운동, 주민들과 지속적인 소통창구를 만드는 운동, 다른 언어만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운동, 여성(생활자)을 중심으로 한 운동, 제도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나누는 운동이 풀뿌리시민운동의 특성이다.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를 보면 풀뿌리시민운동은 기존의 권력과 시장을 감시하는 대변형 운동과는 다르게 주민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가치와 방식으로 우리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운동이다. 주민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하고 참여의 기회를 더욱 확장하고 세력화(Empowerment)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조례를 만들 때 의원이나 담당 공무원과의 대화를 통해 발의하도록 하지 않고 어렵게 주민발의를 하는 이유는 주민교육과 캠페인, 감사 청구와 시위 등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이슈화하고 정치쟁점화 시키고 주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 과정이 참여와 자치의 풀뿌리 민주주의 원리를 생활에서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 풀뿌리시민운동의 과거

1) 95년 지방자치이전의 주민운동

한국사회는 성장과 개발을 위주로 추진된 국가주도 산업화로 농촌 공동체의 해제와 도시로의 급격한 인구 집중을 가져왔다. 노동자와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있는 젊은 층과 일부 여성을 제외하고는 무자본, 저학력, 무기술의 대중들이 도시 변두리 산비탈 등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달동네 ‘꼬방’이 생겨나게 되었다. 급격한 도시화는 인권(주로 생존권), 주거, 교육, 환경, 문화, 자치 전반에 이르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서울 청계천일대 판자촌의 철거로 시작된 도시빈민의 “강제철거”와 집단이주는 71년 “광주 대단지 사건”과 같은 한국 산업화의 사회문제로 나타난다.

이 시기 1970년대 청계천 등 도시빈민밀집지역에서도 주민운동이 존재했으나 ‘철거’라는 국가폭력에 맞선 생존권 투쟁이었고 주된 활동가들이 유신헌법의 등장과 함께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화 운동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풀뿌리시민운동이라기 보다는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한 부문인 ‘도시빈민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도시빈민운동이 풀뿌리시민운동으로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후 민중운동과 분화된 시민운동이 시작되면서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빈민밀집지역 현장에서 주민들의 자치조직을 건설하는 움직임이 소위 ‘동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가시화되었다. 관악구 신림7동의 <난곡주민회>, <상계 3・4동 주민모임>, <봉천5・9동 지역발전추진회> <봉천3・6동 주민회 준비모임>, <금호・행당・하왕지역 ‘이모임’>, <삼양・정릉지역 지역발전추진위원회>, <도봉2동 모임>, 하월곡 4동의 <우리마을 발전추진위원회>, <신림10동 지역사랑모임>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울빈민지역운동연대회의>를 결성하여 상호 정보를 교환하고 필요한 정책을 논의하며, 선거 등의 시기에는 공동의 활동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들 모임은 1991년 및 그 이후의 지방자치선거 참여, 마을신문 발간, 어머니학교 등을 통한 부녀조직 건설 노력, 지역의 이슈 해결을 위한 투쟁, 주민들의 공동체 잔치인 ‘주민노래자랑대회’ 등을 공통적으로 수행하였다. 특히, 상계지역의 어머니학교는 그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어머니학교 동문회를 결성하여, 지역의 부녀조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현 <마들 주민회>의 모태가 되었다.

이 모임들은 도시빈민밀집지역의 특성상 재개발사업에 대응하여 공통적으로 철거민조직을 결성하여 주거권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빈민들의 경제적 문제를 주민들의 자구적인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한 생산공동체 결성을 주도한다. 1991년 서울 하월곡4동에서 ‘꼬방동네 사람들’로 알려진 허병섭목사에 의해 <일꾼 두레>가 설립되었다. 일꾼 두레는 일용건설노동자들이 만든 건설업자들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후  봉천동의 <나눔건설>(1993년 설립), 미아1동의 <솔샘일터>(1993년 설립), 금호동의 <옷과 사람들>(1995년 설립) 등의 생산 공동체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이 경제적 주민공동체를 이루겠다는 목표에는 실패했지만, 정책적으로는 자활후견기관 설립을 보건복지부 정책으로 견인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2) 95년 지방자치 이후의 풀뿌리시민운동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풀뿌리시민운동은 서울에서도 소위 ‘산동네’라 불리는 도시빈민밀집지역인 관악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관악구에서 동모임을 진행해오던 주민들은 철거투쟁이 끝나면 빈민지역이 해체되고 지역운동 기반이 사라진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철거를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는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가난한 주민들의 정치력을 드높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결국 95년 <관악주민연대>가 결성되고 관악구 주민 10,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구의회에 ‘재개발지역 세입자 보호에 관한 청원’을 구의회에 접수시켰다. 관악구 의회는 회기를 3일간 연장해 가면서 이 사안을 심의하여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관악주민연대’는 관악구에서 매우 유력한 주민정치세력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관악주민연대>는 구청장 초청 토론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구립공부방 4곳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등의 성과를 낳았다. 특히 <관악주민연대>는 가난한 주민들의 복지문제를 보다 전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 <관악사회복지>를 별도 조직으로 설립한다. <관악사회복지>는 주민조직화를 통해 주민들을 복지전달의 주체로 삼는 지역복지활동의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관악주민연대>와 <관악사회복지>는 주민조직화를 통한 풀뿌리시민운동을 표방한 최초의 기초 자치단체 차원의 시민단체라는 점에서 향후 많은 풀뿌리 주민운동단체의 설립과 운영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관악주민연대>나 <성동주민연대>와 같은 도시빈민운동에서 태동한 풀뿌리시민운동과 다르게 지역주민들의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인 모임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관철시킨 <과천시민모임>의 모임(1994년), 소외받는 아이들을 위한 지역 교육공동체<열린숙제방>을 만든 강북구와 도봉구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1995년) 등이다. 특히 마포구 성미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주민자치운동은 풀뿌리시민운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인 <우리어린이집>개설(1994년)부터 <마포두레생협>(2001년), 성미산지키기 투쟁(2003년) 이후 결성된 행정과 의정감시를 위한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 반찬가게협동조합 <동네부엌>, 자동차정비협동조합 <차병원>,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 등은 주민주체의 풀뿌리시민운동이 지역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확대되는지를 보여준다.

풀뿌리시민운동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성장한다고 한다. 보육문제에서부터 교육, 복지 등 생활상의 문제를 주민이 주체가 되어 해결하는 풀뿌리시민운동은 1970년대 일본에서 전개된 ‘마을만들기’ 운동이 소개되면서 더욱 확대된다. 은평구 갈현동 주민들이 ‘갈곡리 놀이터 만들기’(2000년), 오이도 주민들의 국가유적 지정운동(2002년), 부산의 금샘마을에서 진행된 아파트 공동체 운동, ‘골목공동체’라 불리는 대구의 YMCA의 <담장허물기> 등 문화와 공원 만들기 등 도시계획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풀뿌리시민운동은 행정정보공개법(1998년), 조례 제․개폐 청구권(주민발의)(2000년), 주민감사청구권(2000년), 주민투표권(2004년), 주민소송(2006년), 주민소환(2007년) 등 주민직접 참여제도가 제도화 되면서 더욱 활성화된다. 과천시의 <보육조례개정운동>(2002년), 안산시의 <판공비공개조례제정운동>(2002년) 등 도시계획조례, 보육조례, 학교급식, 투표조례, 판공비조례, 참여예산제 등의 자치입법들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러브호텔 반대운동과 백석동 주민들이 전개한 주민투표(2000년)과 부안의 핵폐기물 처리장 주민투표(2003), 성남에서 진행된 시장 소환운동(2001), 송파구의 외유성 해외연수에 대한 감사청구(2001년), 광주 북구의 주민참여예산(2003년) 등 지역 권력에 대한 감시운동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권력 감시 운동에는 자생적인 지역의 풀뿌리주민단체 외에도 지방자치실시 이후 설립된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여성민우회> 등의 지부 조직이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3. 풀뿌리시민운동의 현재

1) 풀뿌리시민운동의 사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주민주체의 풀뿌리시민운동은 멀리 70, 80년대의 도시빈민운동에서 싹이 발아하고 90년대를 전후하여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여 1995년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풀뿌리시민운동은 2000년대 <총선연대>의 낙천 낙선운동이후 시장과 권력을 감시하는 ‘대변형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풀뿌리시민운동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하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올해까지 풀뿌리시민운동의 모범사레를 발굴하여 격려하고 시민운동에 확대하기위해 만들어진 <풀뿌리시민운동 사례공모> 수상사업을 중심으로 풀뿌리시민운동의 현황을 살펴본다.   

풀뿌리 시민운동사레공모 사업의 심사기준은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창의성 및 실험성, △활용성 및 운동가치, △지역사회영향력, 기여도, △주민참여도, △활동사례 발전가능성 등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선정된 풀뿌리시민운동 사례는 아래<표>와 같다.

<표>풀뿌리 시민운동사례 공모사업 수상사업

<표>풀뿌리 시민운동사례 공모사업 수상사업

제1회(2003년)

풀뿌리상

주민참여형 삶터가꾸기 ‘가고싶은 놀이터 만들기’

서울 열린사회시민연합 북부시민회

풀잎상

주민과 함께한 문회유적 보전운동

경기 시흥 YMCA

풀꽃상

시민과 함께한 맹산반딧불이 자연학교의 녹지조성 및 관리

경기 분당환경시민의 모임

풀대상

협동과 자치에 기초한 생명의 도시만들기

원주 생활협동조합협의회

풀씨상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지역정치운동 등 여성운동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특별상

지역노조와 함께하는 노동안전보건활동

노동건강연대

지역시민단체들의 행정∙의정 감시활동

전남 순천 YMCA 등

제2회(2004년)

풀뿌리상

주민소환제조례제정

광주시민단체협의회

풀잎상

상생의 실험대, 청주 원흥이마을 두꺼비서식지 보전운동

충북환경운동연합

풀꽃상

목포시건축물의허가등에있어장애인편의시설설치사항사전점검에관한조례 제정운동

전남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목포경실련

제주도 친환경우리농산물급식 추진운동

친환경우리농산물학교급식제주연대

풀씨상

원주한지문화제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나눔과 참여가 아름다운 지역사회 가꾸기

대전여민회

제3회(2005년)

풀뿌리상

무등산공유화운동

광주 (사)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풀잎상

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를 통한 지역공동체형성운동

대전 알짬어린이 도서관

풀꽃상

고양시 노래하는 분수대 건립 저지 활동

고양 여성민우회

‘즐거운 멤버’ 사업을 중심으로 한 도봉시민회 지역운동의 깊이와 향기

서울 도봉시민회

풀씨상

주민과 함께 해온 신모라지역 마을만들기 운동

부산 신모라창조어마니회

동네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 경제살리기

대전경실련

제4회(2006년)

풀뿌리상

품앗이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을 만들기

서울 동대문구 품앗이 공동체

풀잎상

주민발의 조례제정을 통한 공공병원 설립운동

경기 성남시립병원추진위원회

풀꽃상

지역자치실현을 위한 의정참여활동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목포지부

살 맛 나는 임대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사업

서울 관악주민연대

풀씨상

자연 속에서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서울 환경을 사랑하는 중랑천 사람들

부산시 북구 덕천교차로 하나은행 앞 횡단보도 복원운동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북부지역회원모임

제5회(2007년)

풀뿌리상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의 도서관을 만들어 주세요

부산 희망세상

풀잎상

마을마다 어린이도서관만들기를 통한 생활공동체기반구축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

풀꽃상

성서공동체 FM <담장 허무는 엄마들>

(사) 성서공동체 FM

용인지역 이주민공동체와 함께 열어가는 다문화 지역공동체

한국CLC 부설 이주노동자인권센터 

풀씨상

지역주민이 만들어가는 건강마을 만들기

인천평화의료생활협동조합

2006년 지리산권 공동학습 프로그램

지리산생명연대

2) 풀뿌리시민운동의 현황

위 사례를 살펴보면 풀뿌리시민운동의 유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풀뿌리시민운동의 가장 기초적인 유형은 <지역현안(이슈)에 대한 대응>이다. 지난 풀뿌리시민운동의 역사에서도 보듯이 철거 등 개발과 같은 이슈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과 조직화가 운동의 시작이다.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의 욕구에 기초하여 삶의 공간을 보존하고 만들고 재구성한다. 이슈에 대한 대응과 마을 만들기로 조직화된 주민들은 이슈가 해결되어도 일상적인 <지역 권력에 대한 감시와 참여>을 통해 주민들의 요구를 관철시킨다. 정책결정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는 <지방정치에 대한 참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공부분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욕구에 대해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 간다.

① 지역이슈에 대한 대응

지역의 이슈를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해결하고 세력화하는 한 사례로는 <무등산공유화운동>, <고양시 노래하는 분수대 건립 저지 활동>, <부산시 북구 덕천교차로 하나은행 앞 횡단보도 복원운동>, <주민발의 조례제정을 통한 공공병원 설립운동> 등이다.

<무등산 공유화운동>은 지역의 난개발에 대한 시민 자생적 운동으로 무등산권의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을 시민 공유화하여 환경을 보전하게 된 경우이다. <고양시 노래하는 분수대 건립 저지 활동>사례는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제기로 53억의 예산을 절감하여 복지예산으로 배분함으로써 지자체의 전시성 예산낭비에 경종을 울리고 복지예산 확대 계기를 마련한 사례이다.

사안의 경중이 다르지만 <부산시 북구 덕천교차로 하나은행 앞 횡단보도 복원운동>과 <주민발의 조례제정을 통한 공공병원 설립운동>은 주민들의 요구에 기초해 주민들의 힘으로 작은 횡단보도를 복원하고 시립병원을 만든 사례이다.

<2006년 지리산권 공동학습 프로그램> 또한 국립공원인 지리산 주변의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등 5개 시군의 도로, 댐, 골프장 등의 개발계획에 맞서 지역 주민스스로 대안적 비전을 만들어 보겠다는 활동이다.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주민운동은 이슈가 해결되면 해소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무둥산보호단체협의회, 고양시 예산감시 네트워크, 지리산권 시민단체 협의회, 지역회원모임 등으로 조직화되어 활동을 지속되는 것도 주민주체의 풀뿌리시민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② 마을 만들기

주민들의 요구에 기초한 마을 만들기 운동은 풀뿌리시민운동에서 가장 많은 유형이다. 내가 생활하는 마을에서 필요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의 욕구에 기초하여 공원, 문화유적, 아파트, 도서관 등 공간을 보존하고 만들고 재구성한다.

방치된 지역시설을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만든 <주민 참여형 삶터 가꾸기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 지역의 녹지를 지키기 위한 <반딧불이 자연학교 운동>, 패총이라는 문화유산을 거대한 기업, 대학과 맞서 지켜낸 <문화유적 보존운동>, 임대아파트를 분열과 고립, 차별과 소외의 공간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살만한 주거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살맛나는 임대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운동>, 공단지역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안전보건활동>,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역에서 어린이들을 위한<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를 통한 지역공동체형성운동>과 <우리아이들에게 희망의 도서관을 만들어 주세요>, <마을마다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를 통한 생활공동체 기반구축>,  일반적인 생태교육과 다르게 중산층이 아닌 장애인 · 저소득 청소년 · 노인 등 소외계층으로 대상으로 한 <자연 속에서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소 출력 방송을 통해 장애인 부보들의 아픔을 나누고 더블어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성서공동체 FM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 이민국가인 한국사회에서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민공동체와 함께 열어가는 다문화 지역공동체>, 초안산 딱따구리 학교, 교육품앗이주부독서모임, 정보교육 품앗이 등을 통해 창조적 민주시민교육, 활동가 키우기, 지역네트워크와 인큐베이션 강화를 시도한 <즐거운 멤버>, 녹색 마을가꾸기 및 지역사회 현안 참여활동을 해 온 <주민과 함께 해온 신모라지역 마을 만들기 운동>, 건강을 주제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지역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건강마을 만들기> 등이 마을 만들기 사례이다.

마을 만들기 사례의 공통점은 주민의 욕구에 기초한 사업이라는 점, 사업의 대상이 어린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노동자, 이주자 등 우리사회에 소외된 사회적 약자라는 점, 운동의 주체가 주부 등 지역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주민의 욕구에 기초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생활인이 주체가가 되는 운동이 풀뿌리시민운동인 것이다.

③ 권력에 대한 감시와 참여

지역 이슈에 대한 대응이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의 주요 성과의 하나는 주민조직화이다. 조직화된 주민들은 지역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지역의 권력과 기득권세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하는 한편 감시를 넘어 정책결정에 참여한다. 주민들의 참여는 참여예산제도나 지방의제와 같이 거버넌스(협치)로 제도화되기도 한다. 

<주민소환제조례제정운동>, <장애인 편의시설사전점검조례 제정>, <도시계획조례개정운동> 등의 조례제정운동, <행정과 의정 감시운동>, <지역자치실현을 위한 의정참여활동> 등은 주민참여를 통해 지역의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워나가는 풀뿌리시민운동의 사례들이다. <한지문화제>도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여 지역 문화제로서 제도화한 소중한 풀뿌리시민운동의 사례이다.

④ 정치참여

지역정치는 생활정치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참여의 요구는 정치세력화나 정치참여의 요구로 나타나기도 한다. 생활정치 영역인 지역에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온 지역의 풀뿌리시민운동 단체는 지역을 바꾸기 위해 무소속 후보로 지방선거(주로 기초의회)에 출마했다. 2002년 지방선거의 <녹색평화당> 창당, 환경연합의 <녹색 자치 위원회>의 녹색후보, 그리고 2006년 지방선거의 <초록정치연대>의 출마 등이 풀뿌리 정치참여의 사례들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초록정치연대, 구로시민센터, 군포풀뿌리정치연대, 도봉시민정치네트워크 무지개 등 시민단체가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을 결성하여 21명의 후보가 출마를 했으나 2006년 지방선거부터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가 도입되면서 1명밖에 당선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동북여성민우회>는 음식물쓰레기의 재활용을 비롯하여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자를 내는 등 풀뿌리 지역정치운동에 있어서 좋은 사례들을 다수 만들어 내었다.

⑤ 대안운동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다원화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분출하는 주거, 환경, 보육, 교육, 먹거리, 일자리 등의 각종 수요는 그 양과 종류 면에서 전에 없이 다양화되는 반면 공공부문의 공급역량은 부족하거나 부적절하다.  공공부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은 결국 해당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나서서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메워야 한다. 주민들 스스로가 탁아방을 열어 맞벌이 부부의 직업 활동을 도와주고, 지역에서 대안적 먹거리와 경제 등을 만들어가는 등의 사례는 모두 공공부문이나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지역사회의 수요를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충족해 가는 풀뿌리시민운동의 예들이다.

먹거리를 해결하는 생협에서 생활개혁과 대안사회의 모델로 발전시켜나가는 <협동과 자치에 기초한 생명의 도시만들기>,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도 어떻게 하면 함께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실천하는 <품앗이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을 만들기>, 지역의 경제(농업)과 아이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같이 해결하고자하는 <친환경우리농산물 추진운동>, 대형할인 마트 등이 소규모 상업을 몰락시키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동네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경제살리기> 등은 주민들 스스로가 대안을 만들어가는 풀뿌리시민운동의 사례들이다.

4. 풀뿌리시민운동의 미래

지금까지 풀뿌리시민운동의 정의에서 시작해서 풀뿌리시민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풀뿌리시민운동의 미래는 어떠할까? 과연 풀뿌리시민운동이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지난 87년 이후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적과 싸우다보면 닮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 동안의 시민운동은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초 집중 된 한국의 중앙권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중앙화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중앙에서 결정되고 의제의 설정이나 의사결정 역시 중앙에서 진행되었다. 운동의 방식도 시민을 주체로 만들기보다는 시민의 이름을 내걸고 대신 치르는 대리전의 형태이며, 시민들의 진정한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과거 의회가 대의 했듯이 이제는 시민단체가 대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때문에 “시민있는 시민운동”을 주장하면서 풀뿌리시민운동이 시민운동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위의 풀뿌리시민운동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의 풀뿌리시민운동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가 주된 활동이다. 풀뿌리시민운동의 지향은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약하다. 생협 등 대안적 풀뿌리시민운동은 그 질이나 규모로 볼 때 아직 미비한 수준이고 정치참여 사례와 같이 지역 기득권세력의 권력은 막강하다. 그들은 풀뿌리시민운동이 자신의 권력을 넘보지 않는 선에서 용인할 뿐이지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순간 풀뿌리시민운동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렇다고 풀뿌리시민운동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풀뿌리시민운동의 공통점은 첫째, 주민의 욕구에 기초한 운동이라는 점, 둘째, 운동의 대상이 어린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노동자, 이주자 등 우리사회에 소외된 사회적 약자라는 점, 셋째, 운동의 주체가 주부 등 지역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주민의 욕구에 기초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생활인이 주체가가 되는 풀뿌리시민운동은 본래의 시민운동이다. 때문에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풀뿌리시민운동의 도전과 실험은 시민운동의 미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사회운동이다. 때문에 풀뿌리시민운동이 사회운동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생활의 변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지향을 가져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양극화 등의 사회문제을 풀뿌리시민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풀뿌리시민운동의 단초라 할 수 있는 70-80년대의 도시빈민운동은 알렌스키의 조직론과 프레이리의 교육론이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도시빈민운동이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위상을 가진 이유의 하나이다. 지금의 풀뿌리시민운동의 활동가들은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운동가들에 비해 사회변혁에 대한 지향이 약하다. 주민을 만나는 기술이나 방법론, 프로그램에 경도되어 주민들에게 깊이 천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풀뿌리시민운동이 70-80년대의 운동을 반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풀뿌리시민운동이 한국 시민운동의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에 대한 전망을 놓치지 않아야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회변화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권력과 시장에 대한 감시활동을 주로 하는 소위 대변형 시민단체나 지구적 문제를 다루는 국제NGO와 소통과 연대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안일 것이다.

<참고한 글>

오관영. 2006. “풀뿌리운동 현장보고: 희망투어 17일간의 현장 기록”.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공동주최 풀뿌리정책포럼 발표문.

이 호. 2002. “주민자치·주민자치운동의 현황과 과제”. 시민자치정책센터 편.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서울: 갈무리.

이호․김현. 2004. "주민자치운동 1987-2002", 『'시민운동15년사』. 시민의신문사.

정외영. 2006. “지역 풀뿌리 운동에서 보는 희망”. 제2회 대화문화아카데미 시민운동 기획포럼 발표문.

주요섭. 2006. "이제 ‘녹색대안정당’이다-녹색정치의 깃발로 생명평화의 무지개를!!!". 초록정치창당준비위 발표자료.

하승수. 2006. “왜 풀뿌리운동이 희망인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창립토론회 주제발표문.

하승우. 2006. "한국의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적 접근: 풀뿌리운동에 대한 낙관이나 불신을 넘어서기 위한 이론화의 준비작업"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공동주최 풀뿌리정책포럼 발표문.

하승창. 2006. “90년대 중앙집중형 시민운동의 한계와 변화에 관한 연구-경실련, 참여연대의 활동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시민사회연대회의. 풀뿌리시민운동사례 공모 http://www.civilnet.net/grassr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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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담장' 허물어 공동체를 만들다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시민운동을 조금이라도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풀뿌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흔히 풀뿌리 운동은 ‘지역’운동이라는 범주로 이해된다. 때문에 특정한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부분’운동을 풀뿌리 운동에서 간과하기 십상이다. 

올해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꽃상을 받은 대구 성서공동체 FM의 ‘담장 허무는 엄마들’들은 지역보다는 부분에 방점을 둔 사례다. 소출력 방송국의 한 코너로 시작되었던 프로그램을 매개로 장애인 어머니들이 사회에 발언할 수 있게 된 활동이 그것이다.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는 장애아동 부모 전정순 씨의 “담장만 허무는 게 아니고 진짜 울타리도 넓혔다”는 말처럼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장애인 엄마들에게 마이크를”

이경희 성서공동체FM PD는 “‘엄마들에게 마이크를 주자’고 방송을 기획했다”며 “처음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도 알아서, 대본도 다 알아서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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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공동체FM 진행자 양금자 씨가 '담장허무는 엄마들'을 진행하고 있다.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은 지난 2005년 7월 처음 계획됐다. 9월부터 본격적인 기획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장애 아이와 함께해야 하는 엄마들의 환경에서 방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시작했다. 배경음악을 담당하는 엄마, 대본을 구성하는 엄마, 방송 CD를 배포하는 엄마 등으로 역할을 세분화해 방송을 준비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십시일반으로 방송이 본 모습을 갖췄다. 이렇게 15분 방송분으로 시작한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은 이후 37분, 60분으로 방송분량을 늘렸다.

현재 방송은 매월 넷째주 금요일 전파를 탄다. 프로그램에선 장애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육아일기’, 장애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교원일기’, 장애인 보육 관련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초대석’ 등으로 구성된다. 

드러냄’을 시작하다 

방송을 시작하며 엄마들의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경희 PD는 “방송을 계속하면서 어둡기만 하고 자신이 없었던 엄마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며 “피해의식과 편견의 굴레라는 담장을 허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엄마들이 자녀가 장애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행동이다.

“장애가 엄마의 죄인 양 미안하고, 미안해서 한 시도 아이를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엄마들이었
지만 아파서 감추고, 드러내면 행여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엄마의 품속에 꼬옥 숨겨왔던 아이들을 이제 담장 밖 세상으로 내어놓기 시작했다.” 방송 기획을 담당하는 전정순 씨의 말이다.

장애자녀의 엄마들은 아이를 드러냈을 때 자신의 아이와 다른 아이가 피해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 혹은 남편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염려 등 때문에 아이를 자신의 품에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방송을 만들어가는 엄마들은 장애아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 아이’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꽁꽁 감추기만 할 때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은 컸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그들의 활동을 정리한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이란 단행본에 아이와 엄마의 사진을 게재할 정도로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제도 환경변화 목소리를”

방송을 하면서도 엄마들이 늘 하는 얘기는 ‘힘든데 그만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한두 달 하다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송 진행을 맡고 있는 양금자 씨는 “처음에는 힘들면 쉬자고 했는데 후원해 주신 분들에 대해서 책임이 느껴졌다”며 “병원의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장애인 어머니들의 모임을 방송을 통해 알려나가면서 각 학교에 보조교사를 두도록 하는 등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쪽으로 활동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중앙 일간지나 지역방송 등 언론에서 미담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미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의미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엄마들은 장애인 부모운동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운동은 외부에서 보기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무엇보다 의미있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용훈이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패혈증 감염으로 뇌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인지기능 부분은 다치지 않아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담장초대석’에 지체 장애학생이 편입된 일반학교에 승강기를 설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용훈이가 다니는 시지초등학교에 승강기 설치가 확정됐나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애운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이 아니지만 엄마들은 스스로 교육청을 찾아가고, 언론사를 방문하고, 법조문을 뒤져 문제 해결의 방법을 만든 것이다. 이들의 힘으로 대구지역 특수학교의 교과과정을 학교와 협의 하에 바꾸기도 했다.

지난 4월 그동안 방송내용을 정리한 ‘담장 허무는 엄마들’ 단행본을 출간하고 엄마들은 또다른 변화를 경험한다. ‘사적으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속적인 방송제작물 CD제작 등을 통해 장애부모운동을 지역사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벽과 대화는 계속된다

처음부터 굳이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이들의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도 아이의 예쁜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2년 전엔 상상 못했던 일이다.

드러냄과 나눔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극복해 가는 엄마들은 오늘도 방송을 만들고 있다. 
 
대구=심재훈 기자 cyclo201@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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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6년 5월10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 이 글은 '2006지방선거시민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열 가지 희망 만들기' 기획사업 중 첫번째 글입니다. 주로 필진은 시민자치정책센터(현, 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들입니다. 선거 전까지 '열 가지 희망'을 소소하게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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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희망이다:
빠름을 거부하고 느린 길을 내기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


언제나 선거철이 돌아오면 ꡐ어디를 개발하겠다ꡑ거나 ꡐ어떤 시설을 유치하겠다ꡑ는 공약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때론 전혀 실현되지 못할 듯한 공약들이 제시되기도 하는데, 그런 공약을 내거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민들이 개발을 원한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 개발일까?

2005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는 마을주민들이 국도건설을 반대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2004년 남원시는 남원시 인월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이어지는 8km 국도구간을 4차선으로 넓히고 터널을 뚫고 다리를 세워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 했다. 도로건설에 사용될 공사비는 무려 1,140억 원. 그렇지만 남원시와 익산국토관리청은 도로를 확장하면 지역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지리산 인근의 지역단체들이 모인 지리산생명연대를 중심으로 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8km의 구간을 개발하는데 1,140억 원이 들 뿐 아니라, 직선으로 터널을 뚫고 다리를 세우면 자연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반대만 한 게 아니라 지리산생명연대는 기존의 도로 폭을 조금만 넓혀 보행자와 자전거, 농기계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답변은 언제나 충분한 설명 없이 ꡐ그건 힘들겠다ꡑ였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정부의 개발의지와 환경단체의 보존의지 사이의 대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시선이 놓치는 것은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ꡐ주민들ꡑ이다. 지리산생명연대는 지리산 인근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주민들을 대표하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도왔다.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는 중앙정부나 외부의 단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고속화 도로가 건설된 다른 지역을 직접 돌아보며 도로가 건설된 뒤에 지역경제가 발전하기는커녕 몰락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빠른 도로가 건설되면, 더 이상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려 하지 않을 터이고, 아름다운 자연은 자동차로 휙휙 지나칠 통과공간으로 변해 버린다. 자연히 차를 세우고 마을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자연에 기반을 둔 지역의 경제도 서서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

꼬불꼬불한 길을 직선으로 펴고 터널을 뚫으면 빨리 달릴 수 있을지 모르나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자연이, 그리고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했던 교감(交感)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빨리 달릴수록 주변의 공간과 자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렇듯 속도는 인간의 감성과 생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주민들은 ꡒ아름다운 길이란 목적지에 도달하는 ꡐ과정ꡑ 그 자체여야 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어야ꡓ 한다고 여기며 빠른 도로건설을 반대했다.

더구나 주민들의 빠른 도로건설 반대는 단지 반대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직접 지역의 작은 길들을 돌아보고 확인하며 마을을 풍요롭게 했던 길들을 마을지도로 제작했다. 이 마을지도는 ꡒ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빠른 길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사람의 냄새가 살아 있는 길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제작ꡓ되었다. 마을지도에는 기존의 지도에 나오지 않던 좁고 꼬불꼬불한 길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었고, 주민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애착을 더욱더 품게 되었다.

지리산에서 벌어진 변화의 흐름은 한국의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지역정부는 정책을 계획한 이유와 그 집행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개발이라는 명목만을 내세웠고 1,140억이라는 예산을 낭비하려 했다. 그리고 충분한 고민 없이 다른 지역에서 실행된 정책을 그대로 본 따려 했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강조하고 지역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더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변화를 이루려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반면에 지리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지역사회가 가진 희망을 보여준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지역사회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지 인간만을 위한 개발이나 경제적인 이익만을 고려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놓여진 깊은 골을 메우기 위한 미래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주민이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느린 길에 대한 애착이 사람들의 생각을 서서히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런 느린 길에 대한 애착은 지리산에만 머물지 않았다. 강화도에서는 48국도 고속화 우회도로 건설을 막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고, 하동-화개 국도 4차선 건설을 반대하며 물길 꽃길을 지키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런 변화의 흐름은 도로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았다. 2002년 서울 마포구 성미산의 개발을 저지한 움직임은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핵폐기장을 거부했던 부안 주민들은 2005년 지역 내 3곳에 태양광선을 이용하는 햇빛발전소를 건설해 지역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전국 곳곳에 대안의 길이 놓이고 있고, 그 대안의 길은 이리저리 이어져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

듣자하니 새만금 간척지의 넓이가 여의도 땅의 140 배에 달한다고 한다. 허나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미래의 주민들은 더 이상 새만금 갯벌에 살던 다양한 생명체들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황사를 피해 마스크를 쓴 우리 아이들은 봄날의 눈을 맞으며 사계절이 분명했다는 금수강산의 이야기를 책으로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제는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에 관한 지역의 고민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앙정치로만 맞춰진 우리의 시선이 놓치고 있었을 뿐이다. 중앙정치에만 눈을 맞춘 사람들이 절망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지역에서는 조금씩 미래의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제 변하지 않는 것에서 희망을 찾기보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희망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참정권과 시민권은 정부에게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 권리를 행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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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5년 4월20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풀뿌리정치운동와 선거

하승우(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

현실세계에서는 두 가지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하나는 대의제라는 제도정치를 통해 작동하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생활의 다양한 이슈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정치, 즉 기존에는 정치라고 느껴지지 않던 소소한 문제들을 통해 일반 대중이 의사결정과정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정치이다. 평범한 대중, 시민, 주민을 정치적 주체(grass)로 삼아 사회를 근본적으로(root)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풀뿌리정치운동은 권력정치보다는 정치적인 것의 정치를 통해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치적인 것의 정치보다 권력정치의 힘이 훨씬 더 세다. 특히나 선거라는 상황이 닥쳐오면 일상의 장마저도 선거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풀뿌리정치운동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정치가 썩어있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기에,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그 썩은 뿌리를 빨리 잘라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는 그런 정치가 싹트지 않도록 아예 그 토대를 바꿔버리는 게(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절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제도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정치의 차이점은 목적을 실현하는데 있어 전술상의 차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두 가지의 정치를 단순히 전술상의 차이로 바라보는 것은 큰 오류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사회의 ‘현실적인 맥락’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사회에서 대중, 혹은 시민, 또는 주민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지가 얼마나 되었나? 폭압적인 식민지와 미군정, 군부의 정치를 겪어오면서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망각하고 조용히 사는데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말 많으면 빨갱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자기 목소리를 내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여기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 시민, 주민은 권력정치에서 배제된 ‘수동적인 사람’이었고 선거 때마다 기계적으로 한 표를 찍는 ‘투표기계’였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거나 직접 문제해결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수동적으로 권력정치에 기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풀뿌리정치운동은 모든 정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잉되고 주체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정치를 대체하는 정치운동이다.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과정이 바로 풀뿌리정치운동이다(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의 흑인정치에서 협의[deliberation] 이전에 자기고백[testimony]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아침이 되어 목소리를 잃어버린 대중, 시민, 주민이 인어공주처럼 거품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살며시 다가가 “당신은 정치의 소중하고 능동적인 주체”라고 속삭이는 운동이, 그 사람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운동이 풀뿌리정치운동이다. 정치의 주체였으나 주체임을 망각한 사람들에게 다시 그 주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풀뿌리정치운동이다.
그렇기에 풀뿌리정치운동의 가장 큰 힘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가져오는 ‘방식’에 있다. 한국처럼 정치가 왜곡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운동은 몇몇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전에, 사람들 각자가 바람직하고 올바르다고 여기는 삶의 목표를 얘기하도록 하고 그 얘기를 들어주는 운동이다. 풀뿌리정치운동의 가장 큰 몫은 바로 그런 운동을 실천하는데 있다.
제도정치나 권력정치를 무조건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권력정치를 논하기 전에 황폐화된 일상의 장을, 진정 정치의 토대가 되는 장을, 정치의 주체들이 살며 숨쉬는 장을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권력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정치를 동시에 추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허나 그런 주장은 현실을 무시하는 ‘당위적인 주장’이다.
쌍방향 전술 혹은 전략은 양자가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져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아직 그런 균형을 맞춘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서 얘기했듯이 언제나 권력정치가 삶의 주도권을 잡고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학습과 임파워먼트(empowerment) 과정이 반드시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지역이라는 장 역시 결코 단일하지 않다. 그 속엔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풀뿌리정치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사회는 우리 머리 속에 잠재된 환상, 당위적이고 추상적인 원리일 뿐이다.
이제는 두 정치의 장을 구분할 시기가 되었다. 자신의 운동이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에 따라 활동영역을 구분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시민후보’라는 딱지를 떼야 할 시기가 되었다. 정말 제도정치, 권력정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다른 후보들처럼 공약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그것이 기성정치를 변화시키는 길이다). 왜냐하면 시민후보라는 표현을 쓸 경우, 지역의 풀뿌리운동단체들을 선거과정 속에 포함시키고 한 번의 투표로 전체 운동을 평가받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후보가 낙선할 경우 지역의 풀뿌리조직이 동반해서 무너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풀뿌리운동단체는 결코 선거를 통해 평가될 수 없고 그렇게 평가되면 안 된다. 근본적으로 따질 때, 대의제라는 선거방식은 정치주체를 수동적으로 만들기에 풀뿌리운동과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거는 단기적인 전망(4년)으로 평가받는 장이고 근본적인 가치보다 이해관계, 그런 이해관계의 조직화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단체의 활동과 선거를 연계시키는 것은 그래서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얼마나 열심히 활동했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기존의 활동을 선거운동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지말고, 선거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조직을 따로 구성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풀뿌리정치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후보자는 선거과정에서 실현가능한 풀뿌리 전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선거의 풀뿌리 전술 역시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성정당들도 조건이 허락하는 한, 아니면 선거 때만 정략적으로 풀뿌리정치의 내용을 빌려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독일에서 기성정당들이 녹색당의 정책을 베꼈듯이, 기성정당도 참여예산제나 여러 내용을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용보다 선거의 새로운 형식이, 선거에 임하는 과정이 기성정치와의 차별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민할 때, 권력정치의 장도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일본의 ‘대리인 운동’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약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선거와 활동의 연계 외에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현실은 권력정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에, 솔직히 대리인이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보다 ‘누가’ 대리인이 될 것인가를 합의보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의 대리인 운동은 대리인이 되고자 하는 개인에게 구체적인 정강과 정책에 대한 ‘동의’를 요구해야 할 뿐 아니라 동의를 어길 경우 소환하고 징계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누가’의 문제를 넘어 ‘어떤’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
현실의 가능성은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다. 조금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봄은 우리를 찾아온다. 허나 그 봄의 결실을 자신의 것이라 하진 말라. 그건 아무의 것도 아닌, 모두의 것이다.


사상에 대하여

김남주

새로운 사상은
썩고 병들어 만신창이가 되어
이제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는 그런 세상에 태어난다
이를테면 동학이 그러했다 반봉건싸움에서
새로운 사상은 그 초년에는
거리와 시장의 우스갯소리가 되기도 하고
사문난적이라 박해의 과녁이 되기도 한다
반역의 씨앗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그것을 멀리하고
굶주린 이들이 그것을 가까이 한다
사상은 노동의 대지를 그 밭으로 삼는다
처녀들은 깊숙한 곳에 호미로 그것을 파묻고
사내들은 억센 주먹으로 그것을 지킨다
밤이 그들의 옷이고 별이 그들의 미래다
고난의 긴 세월 낡은 껍질과의 싸움에서
새싹의 기운은 이기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지천으로 그 가지를 뻗는다
사상의 꽃이 아름다운 것은
민중의 피로 그것이 개화하기 때문이다
그 열매가 아름다운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두 사람이 아니라
만인의 입으로 그것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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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5년 1월6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연재 글 중 9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풀잎 운동과 풀뿌리 운동


나일경


국가통치형 정치문화를 탈피하지 못한 사회운동 그룹들은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고 그 권력을 정치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에 관해 관심이 높지 않거나 아예 없기 쉽다. 그런 그룹들은 생활현장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지식들을 동원하여 곧장 정치가나 정부에게 그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운동을 일으킨다. 정치가나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게 되면, 운동은 더욱 더 과격해지고, 한편 운동이 과격해질수록 시민들로부터 운동방법에 대한 동의를 둘러싼 지지를 잃게 됨으로써, 어느 새 썰물과 같이 사라지는 운명을 밟곤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운동그룹들이 지속적이지 못한 까닭을 생활현장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ㆍ운동과정’과 ‘정책형성 (운동)과정’을 생략한 채, 곧장 ‘정치ㆍ행정과정’에서의 운동단계로 나아가는 운동의 전개방식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운동방식을 저자는 ‘풀잎 운동’(草の葉)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まァー, 良いか」しながらオルタナティブ(다 그런 거지 하면서 실천하는 올터너티브)』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1998년, pp. 78-79를 참조.)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풀잎 운동이란 무엇인가. 풀잎 운동이란,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 그 문제가 생활현장에서 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그 문제의 당사자들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필요하며, 당사자들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운동방법이 필요한가의 문제를 현장에서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는 운동방식을 가리킨다. 그럼, 왜 그와 같은 운동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생활세계를 기반으로 한 운동과정을 통해서만이 생활자ㆍ시민의(of), 생활자ㆍ시민에 의한(by) ‘사회적 권력’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풀잎 운동의 리더들이 “자신은 생활자를 위한(for) 운동의 대리인이며 사회적 정의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문제해결수법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의 대리인(해결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기성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풀잎운동에 대치되는 ‘풀뿌리 운동’이란 무엇인가. 풀뿌리 운동은 “생활ㆍ운동과정->정책형성과정->정치ㆍ행정과정”의 절차를 거치는 가운데, 각각의 단계에서 ‘참가’와 그에 따른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운동이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역자 후기를 참조). 따라서 풀뿌리 운동의 리더는 생활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리인으로서 위임받는 것을 거부한다. 풀뿌리 운동의 리더 역할은, 당사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를 정리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즉 풀뿌리 운동의 리더에게 중요한 활동지침이 되는 것은 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을 통해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하는 주민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들의 네트워크를 촉진시키고 그 규모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풀뿌리 운동의 리더는 현장에서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민자치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을 활동의 기본으로 삼는다. 풀뿌리 운동의 리더는 생활운동과정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책형성과정을 통해 과제를 정리하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형성 능력을 향상시키며, 정치행정과정을 통해 정책을 실현시키는 전략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를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활동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풀뿌리 운동은 주민들의 마음의 근육을 운동시키는 정책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풀잎 운동의 리더는, 생활운동과정과 정책형성과정에서의 운동을 생략하기에, 정책을 만들어 내도 그것은 작문으로서의 정책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풀잎 운동에서는 동원되는 주민들은 있어도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주민은 적기 마련이다. 또한 풀잎 운동에서는 요구를 하고 저항을 하는 주민의 모습은 발견돼도, 대안을 제시하며 참가에 따른 책임을 짊어지는 주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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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과천지역 풀뿌리운동가들이 제작하고 배포하는 <마을회관>이라는 마을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맑은 내 칼럼>

과천지역과 풀뿌리운동


이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어느 날 과천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모임에 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직전에 과천에서 실시한 빈곤층 실태조사의 내용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모임에 참석한 이후 얼마 후에 다시 과천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려고 하니, 그에 관해 전에 조사했던 내용을 발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하는 반가운 생각에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답하였다. 그런데 당일 무척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최 측에서도 예기치 않았던 듯 문원동의 한 집에서 열린 모임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참석해, 발표를 하는 필자마저도 방 한구석에 쭈그려 않아 있어야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저소득층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겠다는 몇 사람의 의도는 이렇듯 과천에 뜻하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 모임을 추죄한 이들은 이에 관한 적극적 홍보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이해와 크게 상관되지 않는, 이웃들을 위한 이러한 계획에 많은 과천시민들이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공부방 공간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에 과천시민의 1% 이상이 참석했다는 것 역시 첫 번째 모임 못지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풀뿌리운동이란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일반 대중들이 주체가 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지역사회에서의 풀뿌리운동이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대중들이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벌이는 운동이다. 그러다보니 풀뿌리운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변화・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힘이 커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변화와 발전의 내용이 개별적 이해를 충족시키기보다는 그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시민들 다수의 공동체적 이해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개별적 이해의 충족을 위한 노력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지만, 특히 도시지역 거주민들의 다양하고 때로는 상충된 이해들이 모두 같은 공간에서 제기될 때에는 지역사회의 발전이 아니라 극심한 이해충돌로 인한 혼란이 가중될 뿐이다.

풀뿌리운동은 또한 지역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것은 주인으로서의 자기 권리와 책임을 충실히 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풀뿌리운동에 있어 그 주체인 시민들의 역할은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 살기좋은 지역사회의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앞서의 맑은 내 공부방 설립 과정은 매우 풀뿌리운동적 방식에 충실했던 사례라 볼 수 있다.

얼마 전 신문을 통해 과천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서울 강남지역의 그것을 추월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천의 특징이 과연 자랑스러운 과천시민의 훈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보다는 앞서와 같은 과천시민들의 공동체적 이해 달성을 위한 노력의 과정이 더욱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닐까?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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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한 장의 참여로 만든 작은 기적”

출처 : http://www.ingopress.com/ArticleRead.aspx?idx=629


지역공동체의 힘, 동네를 바꾸다
[풀뿌리상]부산 해운대구 ‘희망세상’-‘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의 도서관을’

부산 ‘해운대’ 하면 사람들은 푸른 바다를 떠올린다. 하지만 ‘반송’하면 외지인은 모르고 부산사람들은 ‘아, 그 촌동네’ 한다. 해운대 지역 기초생활수급권자의 65%가 사는 곳. 문화시설은커녕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로 한여름에도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생활하는 집들이 많다.

그 곳에 이달 중 놀이터도 없어 방과 후면 갈 곳이 없는 이곳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마을 발전을 논의할 수 있는 희망의 도서관이 생긴다. 누구의 지원에 의한 것도 아니다. 유치원 아이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지역민들이 벽돌 한장 기금(1만원)을 모아 만든 작은 기적이다.

‘2007 전국 시민·환경운동가대회’의 하이라이트 풀뿌리 시민운동 시상식의 최고상 격인 풀뿌리상은 부산 해운대구의 풀뿌리단체인 ‘희망세상’의 ‘우리아이들에게 희망도서관을 만들어주세요’ 사업에게 돌아갔다.

희망세상은 “열악한 환경 탓인지 오히려 주민들의 문화시설 확충 열의가 대단히 높았다”며 “우리 아이들이 지역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삶과 마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문화를 남기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마을 도서관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송에서 돈이 모아지겠냐’, ‘가만히 있으면 정부가 알아서 해 줄 걸’이라며 의문을 가졌던 주민들도 매주 토요일 거리에서 모금활동을 벌이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며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렇게 모금활동을 통해 적립한 기금이 7천만원. 무료 설계를 자청하한 설계사, 철근을 후원한 사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몽땅 기부한 청소년 등이 큰 힘이 됐다. 이제 건평 35평에 각 층별로 20평씩 5층 규모인 ‘동네의 자랑’이 곧 선을 보인다. 단순히 교육시설이 아니다. 설립 과정에서 만들어진 튼실한 지역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주민들에게는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남는 작지만 큰 희망이다.

 
김상택 기자
시민환경운동가대회에 참가한 활동가들이 풀뿌리시민운동사례 발표회를 지켜보고 있다.

“도서관 만들기로 쌓인 신뢰 확산을”
[풀잎상]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어린이도서관만들기를 통한 생활공동체기반구축’

동네 아줌마들의 도전이 시작됐다. 우리 사는 마을에도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꿈이 커졌기 때문이다. 풀잎상을 받은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의 ‘마을마다 어린이도서관만들기를 통한 생활공동체기반구축’ 사업의 출발이었다.

‘대전시민사회연구소’ ‘동화읽는 어른’ ‘모퉁이마을어린이도서관’과 함께 대전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모임을 구성하고 어린이도서관학교를 열자 도서관에 애정이 있는 대전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8개 마을의 주민모임이 결성됐고 그 중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4개 마을에 도서관이 생겼다. 

이전부터 대전지역에서 설립 운영되던 사립문고인 ‘전민동모퉁이마을어린이도서관’ 포함해 민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총 6개의 도서관만들기모임은 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로 확대 개편돼 더 넓은 꿈을 꾸게 된다. 도서관만들기에서 주민운동으로의 진화 발전이었다. 

한 사람은 종이공예를 잘하고, 한 사람은 족발을 잘 만들며, 다른 사람은 옷 수선을 잘하는 재능이 있을 때 이를 연결하여 서로 교환하는 마을 돈(지역화폐) 시스템 축을 통해 도서관이 아닌 다른 생활영역에서도 생활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갖고 6개 마을어린이도서관, 지역통화운동을 벌여온 ‘한밭레츠’, 의료공동체를 꿈꾸는 ‘한밭의료생협’, ‘대전시민사회연구소’가 ‘반딧불터사업단’을 구성했다.  여기 모인 주민들이 대전의 생활공동체운동기반을 구축하는 주민활동가로 성장해 가고 있다.

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사회적 소기업만들기, 공동육아대안 형성, 마을 돈(지역통화)운동, 의료생협 만들기 등과 같은 다양한 주민운동에 대한 실험을 새로이 준비되고 있다.

“중증장애아 엄마들의 세상과 대화하기”
[풀꽃상](사)성서공동체 FM-‘담장 허무는 엄마들’

‘담장허무는 엄마들’ 사업의 목적은 자녀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중증장애아 엄마들이 아이들을 세상에 내려놓기 위해서, 담장너머 세상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방송이라는 매개로 ‘방송 밖 활동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에 소출력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설립된 이후  방송소외계층이 직접 방송을 제작해야 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눈을 돌린 것이 이 사업이었다. 중증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도 장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었다. 방송국은 중증장애아 부모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8월부터 매월 넷째주 금요일 1시간씩 방송을 하고 있다. 엄마들의 사연과 육아일기, 장애아동 시설 선생님의 교단일기, 장애문제에 대해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토크 등으로 구성된다. 방송제작과정은 ‘십시일반’ 방식이다. 음악 좋아하는 엄마는 음악을 선곡, 기획에 재주가 있는 엄마들은 기획하는 식이다. 방송 이후 대구지역 장애 특수학교의 방과 후 활동 시간 확대, 학교에 엘레베이터 설치 등의 현안을 엄마들 스스로가 해결해나가고 있다.

문제의식의 공유를 위해서 방송제작물 CD제작, 단행본 출간 등을 통해 장애 부모운동을 지역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주민 풍성한 문화 지역민과 함께”
[풀꽃상]한국CLC 부설 이주노동자인권센터-용인 이주민공동체와 여는 다문화 지역공동체

용인지역은 이제 각 국 이주노동자공동체 및 다문화가정공동체가 형성되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역의 한국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다문화지역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2002년부터 이주민공동체, 띠앗지기(자원활동가모임), 센터 활동가가 함께 지속적인 다문화 이해활동을 열어왔다.

이주민공동체 형성 및 활성화를 위해 ‘미니아시안게임’, ‘여름캠프’, ‘계절나들이’, ‘이주노동자 권리교육’을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서로 잘 모르던 이주노동자들이 만나고 각 국가별로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지원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방문, ‘아시아의날’ 준비지원, 이주노동 정책개선 집회참여, 국가별 명절행사 지원, 국가별 홍보물제작 지원 등도 이어졌다.

이렇게 활성화된 스리랑카,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몽골 등 이주민공동체 그리고 역시 한국어교실 등을 통해 형성된 자원활동가 모임 ‘띠앗지기’와 함께 지역주민의 일상적 공간으로 찾아가는 ‘리틀아시아문화축제’와 ‘다문화이해교육’, 지역주민을 초대해서 나누는 ‘아시아의날’, 거리에서 지역주민에게 말을 건네는 ‘캠페인’, 지역의 여러NGO, 지자체와 함께 진행하는 ‘용인아시아문화축제’, 일상적으로 문화를 접하고 소모임을 통해 교류하는 ‘북까페’를 진행했다.

지역주민에게 용인에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이 가진 풍성한 문화를 나누며 직접 만나 교류케 한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내 몸 뿐 아니라 지역사회 건강 챙긴다”
[풀씨상]인천평화의료생협-지역주민이 만들어 가는 건강마을 만들기

인천 평화의료생협은 조합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건강 마을만들기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건강증진활동으로 체조교실, 요가모임, 등산, 걷기, 탁구, 자전거모임 등이 생겼다. 무지개모임과 희망엄마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자신과 지역의 건강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의사 및 전문가의 결합을 통해 건강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오고 있다. 하지만 건강증진 활동에 있어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한 적절한 프로그램과 조직이 부족했다. 주민 스스로 건강 증진이 가능한 프로그램과 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건강증진활동에 있어서 참여자의 자발성과 건강주체 인식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자발적 참여가 가능한 건강증진 프로그램과 마을에 건강문화 확산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필요성을 근거로 인천평화의료생협은 생활습관개선운동 프로그램으로 건강의 주체를 주민자신에게 두고 건강마을만들기 사업을 착수하게 되었으며 특히 걷기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역주민이 만들어 가는 건강마을은 단발적인 프로젝트형 사업은 아니다. 지역주민 스스로 ‘건강을 어떻게 유지 증진할 것인가’, ‘건강한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역의 건강을 함께 돌보는 생활밀착형, 주민참여형 생활변화 운동인 셈이다.

“주민 자치 역량 증진 위한 공동 모색”
[풀씨상]2006 지리산권 공동학습 프로그램

지리산 권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소속 회원들이 지리산권역의 주민자치 사례를 중심으로 주제별로 학습하고 공유하는 공동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업이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지리산권역의 주민자치를 이끌 실무 역량을 키우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기획됐다.

단체 실무활동가들과 소속 회원들이 지역의 현실을 알고 비전을 모색하는 공부프로그램을 통해 안목과 자신감을 얻고자 했다. 지역 경쟁구도와 갈등을 극복하고 지리산권의 문화적 심리적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한다는데 목적이 있다.

아름다운재단의 2006년도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 사업’으로 진행된 지리산권역 시민사회단체 실무자들을 위한 공동학습프로그램인 ‘지리산희망씨앗찾기’를 통해 기본적인 역량을 강화한 실무자와 주민들이 중심이 돼 올해부터는 개별 지역, 마을을 대상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주민참가형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사전에 세운 계획을 주민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과 마을의 다양한 문제를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 발굴하고 그 해결 방안까지 스스로 찾아 실천하고 평가하는 주민자치의 토대를 마련할 생각이다.
 
이재환 기자 ljh@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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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완연한 여름을 맞이해서 제가 일을 하나 질렀습니다.
오처장님이나 몇몇 분들은 이미 들으셨겠지만,
제가 마음이 맞는 인문학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공간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연구공간의 이름은 지행합일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지행'입니다.
몇몇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세미나 공간이 필요한 사람, 새로운 연구공간이 필요한 연구자, 함께 공부하며 새로운 인문학의 방향을 정립할 사람들이 만나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붙였구요.
현재 저와
문학평론가이자 너무 이른 나이에 해직교수가 된 서울디지털대 교수였던 이명원씨와,
실천문학,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 오창은씨가 모였습니다.
내년 1월이면 출판과 관련된 분이 한분 결합하실 예정이구요.
이렇게 일단 모여서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로 했습니다.

이명원씨는 의정부교도소와 동대문정보과학도서관에서 인문학 강의를 이미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런 프로그램들을 새로이 기획해서 풀뿌리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볼까 생각합니다.

30일날이 개소식인데, 혹 시간 나시는 분 계시면 오셔요.
오후 6시에 6호선 광층창 역 4번 출구로 나오셔서 전화 주시면 5분 안에 도착합니다.

참, 그리고 과천의 명물인 돼지머리를 빌릴 수 있을까요?
저희도 워낙 가난한지라 뭔가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 매개가 필요해서요.ㅎㅎ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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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비전만들기



이 호(한국도시연구소 주민운동실장)



논의의 제기 배경

1990년대 들어오면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지역사회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정치적 정당성을 추구하던 80년대의 운동이 그 효력을 잃어가면서 점차로 사회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정당성 건설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대안적 사회만들기이다. 그러나 전국적 이슈를 통해서는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가능하지 않았다. 반면, 지역사회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기반한 이슈로 인해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끌어 낼 가장 유력한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역사회운동은 여전히 그 운동의 주체인 주민들로부터 유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그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뿌리내림 없이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화・발전시킨다고 하는 논의는 또 다른 정치엘리트들의 주도성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당시에 전문가 및 전문적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지역사회운동은 지역에서 일정한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역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이끄는 역할은 미흡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만으로는 지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음이 많은 지역사회운동가들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회의 변화는 외적인 조건의 변화보다는 그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그를 통한 주체의식의 성장을 통할 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문제에 착근한 지역사회운동의 성과들을 서서히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뭔가 새로운 세상이 올 것만 같던 2000년도 훌쩍 5년이나 지나, 이제 2000년대라는 것이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 진부함이 관성이 되어가던 시기에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고민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까지의 성과들(물론, 아직도 풀뿌리에 기반한 성과는 매우 미약하다)이 과연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어떤 의의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즉, 개별 단체들 및 모임들의 성과들은 하나 둘 쌓여가지만, 결국 이러한 성과들이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양한 활동의 영역들이 개발・구축되어 왔고, 또한 그러한 활동 속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또한 과거에 비해 활성되어 가고 있지만, 그것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힘을 발휘한다고 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개별적인 모임과 활동들 자체도 그 속성을 들여보면, 분명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결집되는 흐름은 아직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즉,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기존의 활동성과들을 비판하면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활동성과들을 보다 사회운동의 지향성에 따라 질적인 발전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실천계획 전략 차원으로 고민되어지고 제기되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지역사회의 단편적 쟁점들의 해소보다는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지역사회의 발전을 지역사회운동이 주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지역사회의 개별단체의 활성화와는 조금 달리 접근할 문제이다. 물론, 사회발전의 지향을 지니는 개별적 사회운동단체의 활성화가 지역사회의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사실이나, 실상 이는 가능하지도 그리고 바람직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지역사회의 비전과 이를 통한 발전은 지역주민들 다수의 공유와 참여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은 개별 단체 차원보다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도출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고안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반으로 실천적 비전을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상 그러한 기반 없는 비전 만들기는 또 하나의 그림그리기에 불과할 수 있다.


지역사회 비전만들기의 주체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바람직한 정책의 나열과는 다르다. 물론, 정책의 나열 자체도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을 나열하는 것은 실상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지역사회에서는 지방의제21을 만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정책적 차원에서 실천을 매개하기 위한 것은 바로 이 의제에 그 핵심적 내용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이 의제를 작성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그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주체와 의제를 작성한 주체들 사이에는 그리 차별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또 새삼스럽게 지역사회 비전을 만들자고 하는가?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 진 지방의제21은 여러 가지 장점과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이 논의와 관련해서는 그 의제를 만드는 과정이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널리 소통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그 실천계획에 있어 지역사회의 주인이자 지역사회 비전만들기와 발전의 주체인 주민・시민들의 구체적 참여계획이 이들로부터 도출되지 않음으로써 단지 선언적 실천계획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지역사회 비전만들기가 새롭게 주장되는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이라는 점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에 있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우리의 논의가 또 다시 사회운동가들의 논의와 실천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시민의 참여를 표방하지만 결국 시민운동단체, 그 중에서도 시민운동 활동가들만의 참여에 그치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의 참여가 곧바로 건강한 시민들의 참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양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비록 시민단체들이 다수 시민들을 대변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이의를 달 수 없겠지만, 그리고 시민운동단체들이 소수 주민만을 대변하기보다는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만, 다수 시민들이 시민운동단체에 자신들을 대표하도록 위임한 적도 없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운동단체, 특히 전문화된 시민운동 활동가의 참여에 대한 역할이 구분되어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양자 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면, 몇몇 시민운동 명망가 또는 활동가들의 참여가 시민들이 참여로 둔갑될 위험이 높다. 그럴 경우 시민운동은 오히려 시민들을 주체적 참여의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무임승차자로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 어느 시민운동단체도 일부러 시민들의 참여를 가로막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나름대로 갖은 방법들을 동원하곤 한다. 하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은 산적함에도 시민들의 참여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들은 당연히 시민사회 일반의 이해를 ‘대변(advocacy)’하는 운동방식을 채택하곤 해왔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대중적 참여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시민운동의 방법이 잘못된 것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민운동가들이 시민의 참여를 목청높이 외치는 것만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 자체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중심의 사고는 만연했지만(task oriented),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과정 중심의 사고(process oriented)는 미약했다고 판단된다. 세상에 권한 없는 참여를 매력적이라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는 시민운동단체나 시민운동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동원 대상임에도 그 참여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기쁨과 보람을 느낄 사람은 없다. 기쁨과 보람(혹은 돈?) 없이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참여의 행위에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 진영이 정부의 행동에 대해 ‘동원’이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주체는 일반 시민 또는 주민 대중이다. 시민운동단체와 전문적 시민운동가는 그러한 주체를 형성하는(자치적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이들은 시민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주체이기보다, 일반 시민대중의 참여를 조직하고 매개하고 지원하며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중앙시민운동이 아닌 지역의 시민운동이 지닌 장점과 특징을 잘 살리는 것이다. 물론, 모든 시민운동이 이러한 대중운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조차 이러한 풀뿌리적 관점을 간과한다면, 지역사회의 시민운동은 또 다른 엘리트운동으로서의 자기 전망밖에는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의 역할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총체적인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든다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비전을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듯한 전문가를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 과정이었다.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고민을 쌓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비전은 전문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통해 비전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전문가는 그러한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현실 가능한 것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또는 자주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이 일반 시민 대중의 역할 영역까지 침범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또 다른 엘리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치이다.

따라서 지역사회 비전 만들기는 비전을 만드는 주체를 형성화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지금의 논의가 당장 내년 선거에 써먹을 공약을 만들고자 한다면, 거창하게 지역사회발전 비전이라기보다는 출마자들의 공약을 만드는 것으로 그 위상을 축소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굳이 시민의 참여니 하는 것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바람직한 정책을 도출해 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 실천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진정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과정에서부터 풀뿌리적 관점을 견지하기를 제안한다. 그럴 경우,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총체적인 지역비전이 도출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정치인이 만드는 지역사회비전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드는 지역사회비전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종종 가장 중요한 것들을 흘려보내는 일을 반복해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비전만들기의 실천

최근에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일단 지역사회에서 중요하게 쟁점이 될 만한 주제들을 골라 이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렇듯 주제분류를 통해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를 접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주요한 내용을 규정하게 되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의 작업에 일정한 조언과 수정을 가하는 것 정도에 그칠 위험이 매우 높다. 이는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을 만드는 과정으로는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전만들기는 정책만들기와 전혀 다른 개념이어야 한다.

비전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적 수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상정한 목표를 달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실천계획을 수립하고 직접 실천해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몇 가지 주제들을 나열하고 그 주제에 맞는 정책 및 실천적 과제를 도출하는 식의 방향은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비전의 내용들을 나열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비전만들기를 위한 참고서로서의 기능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작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그 의제가 제기되고 또 그 실천의 내용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천적 만들기의 바람직한 경로이며, 또한 이 시기에 우리가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를 논의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실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바램과 욕구를 쏟아 붓는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 그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하여 다시 검증받는 등의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지자. 이것은 지역사회운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지역조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가능한 대로 많은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조직하고 중재하자. 최소한 몇몇 전문가와 활동가들에 의해 비전을 만드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럴 경우, 그 결과물은 우리 지역사회의 비전 만들기가 아닌 지역발전 ‘정책’의 제시에 그칠 것이다. 물론, 이 결과물은 선거시에 공약으로 활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따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보다 현재 있는 지방의제21을 수정하는 작업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밟는 방법으로는 마을만들기에서 많이 활용하는 다양한 디자인 게임의 기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숍의 진행에서부터 시민참여자들이 스스로 지역사회의 문제와 개선방향을 조사하고 제시하며 이를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체계화하여 공유하는 법, 우선순위의 도출과 향후 실천계획의 수립 등등에 있어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조사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그 조사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천계획까지 수립하게 되는 과정이 지역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지역조사이자 실천계획 수립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이를 PAR(Participatory Action Research)라 한다).


비전을 만들기 위한 힘(power)의 형성

지역사회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실천해) 가는 힘은 당연히 지역사회의 정치적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가능하다. 문제는 이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형성해 가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현재 제도적으로 주어진 권력에 제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즉, 지방의원 또는 자치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고 당선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이런 시도는 무모할 뿐이며, 설령 그러한 전제 없이 제도적 권력을 일정 정도 차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사회비전 만들기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주장하지 말자.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들이 낳은 결과는 정작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 뿐이었다.

시민들의 참여 없는 제도적 권력의 배분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행동만을 낳을 뿐이다. 제도적 권력은 시민 대중의 권력을 형성하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채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지역사회 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또 이를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이를 어떻게 정치적 힘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똑똑한(?) 몇몇이 시민들을 위해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또 다시 지역정치(권력)의 주변인으로 남도록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바람직한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방법은 시민대중의 정치적 권력을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가 바람직한 지역사회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계기라고 판단한다면, 누구를 출마시키고 당선시켜 우리가 원하던 바를 이루자고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고 이들에 의해 권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 하나의 역할로 누군가 제도적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지방정치인이라는 지위를 통해 이 일을 하도록 하자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제도정치인을 만들고자 하는 논의는 그 제도정치인을 통해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그 제도정치인의 역할을 지역사회비전을 만드는 주체를 형성하고 비전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역할분담의 차원으로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대중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조직을 지역 내에 건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 정치조직의 가장 큰 목적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기존 정당과 같이 많이 출마시켜 제도화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출마시켜 제도화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은 기성 제도정당의 역할이다. 이들에게는 그런 목적이 있으며, 그것이 잘못이라 볼 수 없다. 이러한 정당과 시민사회운동과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은 긴밀한 연대 또는 네트워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정당과 연대한다는 것은 시민사회운동의 역할이 정당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또 달라야 한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통해 스스로 대안적인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시민대중권력의 창출, 그것이 시민사회운동이 기성정당과 달리 지향해야 할 바라 하겠다. 이 권력은 기존의 제도화된 권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의미의 권력인 것이다. 즉, 시민사회운동은 기존의 권력을 우리가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민대중의 정치조직을 지역 내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다양한 자원들 간의 네트워크 건설이 필요하다. 어차피 개별 시민운동단체가 지역사회 발전의 총체적 비전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시민운동을 평가하면서, 개별 단체의 발전이 곧바로 그 지역사회 전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발전을 위한 비전은 그보다는 이러한 개별 자원과 성과들을 해당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통해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연대(회의체, 협의회, 연합 등)와는 다른 개념이다. 연대는 상시적으로 함께 한다는 개념인데 반하여 네트워크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가 가진 일정 자산(재능)만을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는 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각 부분들이 크든 작든 자신들의 역할을 나누어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들이 하나의 지향 하에 각자의 역할분담을 통해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 위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하나로 모아 또 다시 골고루 분배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 위한 네트워크는 단체 간 네트워크보다는 인적 네트워크가 현 시기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래도 단체가 네트워크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게 되면, 이중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네트워크가 원만히 운영되기 힘들다. 그리고 아무래도 단체들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활동 전면에 정치적 활동을 내거는 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체 간 네트워크는 기존 단체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사회비전 만들기는 어느 일방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지역사회를 시민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지향에 동의하는 지역사회의 광범한 자원들의 네트워크 건설을 통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겠다.


글을 나오며

이 발제문의 한계는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상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들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들은 이어지는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들이 그려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제안하고 주장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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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상반기 시민과세계 제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한국의 시민운동, 정말 '시민없는 시민운동'인가?
- '시민없는 시민운동'론의 문제점과 시민단체의 재정문제에 대한 검토 -

하승수

1. 기정사실화된 '시민없는 시민운동'

'시민없는 시민운동'. 이 말은 언론이나 보수적 지식인들이 한국 시민운동을 비판할 때에 항상 사용하는 말이다. 어쩌면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말은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가장 '오래된 비판'일 지도 모른다. 본래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말은 시민운동가들이 시민참여가 부족한 시민운동의 현실을 자기비판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회원들과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좀더 활성화시키자는 선의(善意)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이 말이 이제 시민운동을 겨누는 창끝이 되어 있다. 이미 이 말의 기원과는 무관하게 '시민없는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에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이 말은 너무 많이 사용되다보니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없는 시민운동'인 것처럼 일반 시민들에게도 인식되고 있다. 국내 최대의 환경운동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 최근 사무총장을 회원직선제로 뽑겠다고 발표했을 때에도,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소개되었을 만큼, 이제 한국의 시민운동에게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어버린 것같다. 그러나 정말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없는 시민운동'인가?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이 오래된 만큼, 그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많은 단체들이 회원수를 확대하고 회비납부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내부의사결정구조를 민주화하고, 회원들의 참여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는 단체도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시민운동이 이제 중앙에 있는 몇몇 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에서, 그리고 복지, 인권,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작은 시민단체들이 있다. 이들에게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을 하는 것이 온당한가?
필자는 이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적극적인 반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시민없는 관변단체', '시민없는 정당', '시민들을 무시하는 언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의 근거를 제공해 온 시민운동의 몇가지 문제들에 대해 시민운동이 스스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역에서 언론플레이와는 무관하게 일하고 있고, 스타도 없으며, 재정도 주로 회원들의 부담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활동하고 있는 작은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은 참으로 생뚱맞은 비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소위 '중앙시민단체'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부 의사결정시스템이 민주화되어 있지 않고, 언론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자기 단체가 '시민운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앙시민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스스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고 자인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회원이 몇천명, 몇만명인 단체가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단체에 회비를 내고 있는 회원은 도대체 무슨 존재란 말인가?

이 글에서는 부족하나마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점을 살펴보고, 시민단체의 재정문제를 중심으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비판이 가진 문제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란 부당한 비판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겠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하 생략 - 첨부파일 참조)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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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생명연대가 주관하고 지리산권시민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지리산권공동학습프로그램> 제1강좌에서 세계화와 풀뿌리 지역 운동의 대안으로 강의를 해주신 강수돌 교수의 발제 원고입니다.

1. 제목 : 세계화와 풀뿌리운동의 대안
2. 저자 : 강수돌
3. 시기 : 2006년 9월 29일



이제 ‘세계화’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결여된 채 ‘국제화’니 ‘세계화’를 국정의 지표로 외치기 시작했고, 97년엔 마침내 ‘IMF 사태’라는 ‘위기’ 국면까지 맞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공식적으로는 ‘IMF 졸업’이 선언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참여 정부’ 역시 한칠레투자협정이나 쌀 개방 문제에서도 보여주듯 ‘세계화’를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수용하면서도 동북아중심국가 구상에서 보이듯 ‘세계질서의 사다리’에서 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나라가 발전하고 백성이 행복해진다는 기본 입장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지닌, 일제와 미군정기의 경험 등 ‘약소국’으로서의 경험은 한국 사회로 하여금 깊은 ‘피해의식’(恨)을 갖게 했는데, 이 ‘사다리 올라가기’는 ‘집단적 한풀이’의 한 표현이다, 때로는 이것이 ‘세계 제일’ 등 구호의 형식으로, 또는 해외 한국 기업의 반인권적, 반환경적, 공격적 ‘세계 경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세계화’ 개념을 둘러싸고도,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화 과정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최근에 등장한 것처럼 야단이냐는 주장과 최근에 이뤄지는 세계화는 자본주의 발달 단계에서 새로운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나는 자본주의가 ‘노예무역’ 내지 ‘삼각무역’, 그리고 나중에는 ‘식민지 개척’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보이듯 처음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류학자 스탠리  다이어먼드에 따르면, 문명은 ‘안에서의 억압과 바깥으로의 정복’을 의미한다. 예컨대 500년 전 콜럼버스 일행이 카리브해 섬 타이노에 도착했을 때 토착민들은 춤과 노래, 높은 수준의 공예문화를 이루며 거의 낙원에 살다시피 했는데, 이들을 노예화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 무자비하게 살육했다. 이것을 ‘세계화’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녹색평론>. 2003. 9-10. 김종철.) 최근의 세계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서 예전의 발달 단계와는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기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나 현실적 힘으로 부상하여 우리에게 ‘실재(實在)’로 다가온 것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의 현상이다. 필리핀대학의 월든 벨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 ‘신자유주의’ 이념이나 이론 자체는 이미 1920-30년대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에 의해서 공식화되었으나 그것이 현실화되는 데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와 사회적 내면화 과정이 필요했다. 월든 벨로 저, 이윤경 역, 어두운 승리, 삼인, 1998, 24-5쪽.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 소련 사회주의의 등장 등을 거치면서 (선진) 자본주의는 케인즈식 복지국가 자본주의로 변모하는데, 이는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 행위자로서 개입하는 한편, 노동과 자본, 그리고 국가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제3세계와 생태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존’을 도모한 것이었다. 생산방식에서 컨베이어 라인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의 고생산성과 그를 통한 고이윤, 그것의 결과인 고임금과 대량소비 체제가 선순환을 그리는 축적 체제를 ‘포디즘’이라 한다. 한마디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새 문화를 포디즘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체로 1930년대 이후의 미국과 이차대전 후의 유럽에서 현실화되는데, 그 위기가 도래한 1970년대 중반까지 약 30-40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합의 체제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때가 1970년대 초반이고, 마침내 1980년대 초반에 이르면 케인즈주의 대신 신자유주의가 현실적 힘으로 떠오른다. 1980년에 권좌에 오른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이 그 예다. 특히 대처 수상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를 기치로 내걸며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는데, 지금까지 이것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안’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하이에크 등의 신자유주의 이론이야 이미 존재했고,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그런 입장을 바탕으로 수십년간 세계체제의 재편을 도모하려고 케인즈주의의 물밑에서 조심스레 탐색 중이었는데 이미 1973년에 칠레의 군부 피노체트 정권(진보적 아예데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나 아직은 세계적 붐을 이루진 못했다. 그러다가 1982년 중반 남미에서의 외채위기 발생은 지불기한 연장을 조건으로 세계자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할 찬스를 제공했다. 마침내 케인즈주의 자체의 한계와 모순 컨베이어 노동으로 상징되는 노동의 소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을 강제로 낮게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에 대한 3세계의 저항, 고비용의 복지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증가하는 재정적자 등의 문제들이 그 대표적 증거들이다.으로 파열이 생기고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정치세력이 보수 중산층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본격 현실화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대학, 기업, 교회, 정당, 언론 등 사회제도를 통해, ‘(노조 및 국가를 배제한) 자유 시장은 국민 전체에게 행복을 준다.’고 하는 ‘시장 이데올로기’가 전파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먼저 기득권층이 내면화하고 다음으로 선전과 선동, 교육과 언론을 통해 국민 대중에 내면화된다. 그리하여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여성,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운동 세력 중에서 실질적 포섭이 가능한 분파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포섭과 타협이 어려운 분파들을 강력 배제하고 주변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음모이론’(일부 집단이 세계 지배를 목적으로 밀실에 앉아 원격 조종)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세이론’(세계화는 발전을 위한 세계사적 필연이라고 보는 입장)과 꼭 마찬가지로 편협하다. 세계 변화의 과정은 보다 복합적인 변수들이 얽히고설킨 사회정치적 과정을 동반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우리 삶의 문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한 영향은 결코 일방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세계 도처에서 무수한 저항과 대안의 시도들이 솟아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 물결은 결코 종결되거나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한창 각축이 이뤄지는 사회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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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녹취록은 지난 2007년 3월 16-17일,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개최된 “2007, 풀뿌리들의 수다!” 워크숍 중, “고수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양이 워낙 길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내용이 다소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녹취록 전문을 실어야만 앞뒤 맥락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회

이호(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


참여자

정외영(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현 한 살림)

윤혜란(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현 풀뿌리 희망재단)

고창권(희망세상)


1부


이호(이하 이): 왜 고수인가, 고수라는 말이 우선 무협지에서 나오는 강호의 고수라고 표현하는데 제가 좀 말버릇이 그런게 좀 있어요. 내공이 어떻고, 이 풀뿌리운동 판의 강호들을 대표해서 고수들이 어떻고, 사실은 그렇게 따지면 풀뿌리운동 판에 있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고수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이 뭐 그분들에 비해 절대무공을 지닌 그런 분들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지역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시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어려움도 겪으셨지만 성공적인 활동들을 해 오셨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분을 저희 준비위원회에서 여러 토론 끝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게 토크쇼방식이다 뭐다 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건데 저도 여러 모임에서 사회도 보고 발표도 해본 적이 있지만 토크쇼 사회는 오늘이 데뷔무대입니다.(웃음) 많이 부족하겠지만 많이 이해해 주시구요. 토크쇼다 보니까 준비위원들이 시그널뮤직도 이렇게 올리고 해야 하는데 제가 준비를 못했고 대신 이해정선생님이 테이블보를 예쁘게 꾸며주셔서 그나마 분위기가 좀 사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소장으로 있는 이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박수) 그리고 오른편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에 녹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 전대표셨고 현 한살림 강북지부 대표이신 정외영선생님입니다.(박수) 저는 건방지게 앉아서 인사드렸네요. 죄송합니다.(웃음) 제 옆에 앉아계신 분은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 부산의, 지금은 희망세상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거기 전대표이셨고, 지금은 구의원을 하고 계시는 고창권선생님입니다.(박수) 그리고 제 왼편에 계시는 분은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들의모임 천안에 있는 지역복지운동단체인데 사무국장을 하셨고, 인큐베이팅하는 지역운동의 사례로 많이 알려졌고 그때 사무국장을 하고 계셨고, 지금은 풀뿌리희망재단에서 일하고 계시는 윤혜란선생님입니다.

저희가 3시간이 진행되는데 중간에 한번 쉬고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수들의 수다라고 해서 고수들끼리 수다를 떨겠다는 건 아니고 여기 같이 계신 고수분들과도 같이 여러분과 같이 수다를 떨기로 한 것이기에 요번에는 이 세분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고요, 물론 제가 손석희아나운서같이 사회를 잘 보고 그런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여러분에게 질문할 시간을 드릴 테니까 질문하시고 싶으신 내용은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3분의 이름을 들어보신 분도 계시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 대충 아시는 분도 계시고, 아마 처음 접해보신 분들도 계실텐데 이분들이 어떤 계기로 지역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셨는지 개괄적으로 들으면서 얘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외영선생님부터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예, 시간은 제가 이메일로 그렇게 부탁을 드렸고요, 간략하게 대답해주시되 생각만 대답하지 마시고, 사례를 풍부히 들어서 간략하게 대답해달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부탁인건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시간에 너무 구애받지 마시구요, 생생한 이야기를 하는게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말씀해주시죠.


정외영(이하 정): 반갑습니다. 저도 이런 형식이 처음이라, 지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처음, 녹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 근거지가 서울에서도 강북구에 수유리, 미아리, 번동 이쪽을 강북구라고 합니다. 여기가 터전인데요, 저가 그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가서 문밖을 나가면 시장에서도 만나고 학교에서도 만나고, 제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만나지는 이웃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이 만나도 나중에 하는 얘기가 애들 이야기고, 우리 관심사의 얘기고, 학교 가서 어머니회 마치고 잠깐 이야기해도 또 똑같은 이야기고... 그래서 이걸 따로따로 할게 아니라 모여서 하면 참 좋겠다해서 6명이 처음 모여서 그동안의 따로따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같이 한번 풀어보자 그래서 실컷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게 시작이 13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만나서 점점 우리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각자 자기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어요, 자기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를 쭉 하다보면 어느새 저 사람이야기나 내 이야기나 또 옆에 있는 이웃 여성이야기나 다 비슷한거예요. 관심사가 굉장히 같았어요. 그래서 그렇다면 이걸 따로따로가 아니라 같이 자기 자신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함께 해결해 보는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함께 해보기를 시작한 것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이제 각자가, 저희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듯 똑같이 만난게 아니잖아요. 나이가 만나면 30,40,50 심지어는 60대까지 있었어요. 그러니까 각자 살아왔던 환경이 다른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형님말씀이 맞아, 깨달음이 되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아는 것도 많아, 하면서 배우게도 되고. 이런 과정으로, 우리가 관심있어 하는 것을 하나씩 주제를 뽑아 올렸어요. 그랬더니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이들이 잘 자라야 되겠다 라는 거였어요. 잘 자라는게 어떤건데? 그냥 잘자라야지 하는 거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그럼 잘자라는게 어떤거죠? 어떤 걸까요. 하고 이야기를 모아나가기 시작하니까 한마디로 끝났던 이야기가 풍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세밀한 이야기도 해보고, 그러다보니까 조금 먼저 키운 분들은 나름대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정보를 주셨고, 이제 막 그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시는 분들은 그 새삼스러운 자기 경험을 놓고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이문제가 저 친구의 문제, 저 여성의 문제 이런 공통점을 발견해 나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이들 문제도 함께 해결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우리 마을에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갖게 되는 문제가 자녀들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문제도 참 많았습니다. 조금더 배우고 싶다라는 욕구도 많았었고요, 뭔가 내 시험을 해보고 싶다는 꿈에 관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그대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저희들은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혼자 있었으면 못했을 것을 그냥 쪽수가 많아지니까 서로 힘에 나고 신명이 나서 하다보니 되네,되네, 그러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길어졌거든요. 그래서 현재는 어떤 일들을 주로 하냐면 제 관심영역과 딱 맞는 부분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우리마을의 아이들이 다같이 잘 자라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 문제는 우리들의 가슴을 태우고 지금도 힘에 겨워서 해매고 있는 그런 문제가 아이들, 우리마을 아이들을 키울 공부방 활동입니다. 그 부분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수유리에 살다 보니까 이 지역은 다른건 없어도 큰 산은 참 좋은게 있거든요, 북한산국립공원이 있어요. 이런 부분에서 우리 지역의 특성을 발견해나가면서, 수유리라는게 물이 막 넘치는 마을이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물이 넘치는게 아니라 말랐어요. 그런 문제의식은 폐식용유를 모아서 비누를 만들어 써보는 작은 출발부터 지금은 이제 그 과정에서 장바구니들기, 강북아나바다시민운동, 이런걸 거쳐서 녹색가게운동도 해보고, 지금 풀빛살림터라고 마을공동재활용작업장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주요한 한부분이 아까 공부방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작한 우리마을 아이들 함께 돌보기는 이제 우리마을 사람들을 함께 돌보는 사랑의책배달 운동 등등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런 운동으로 쭉 지속되고 있고, 이런 모양으로 13년 정도 함께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박수)


이: 한사람 한사람 박수를 치면 박수만 치게 되니까 박수는 끝나고 한꺼번에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사실 궁금한게 많아서 제가 추가적으로 질문을 좀 드릴게요. 처음에 6명의 아주머니들과 같이 모임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6명의 아주머니들을 어떻게 만나게 된건지 과정이 궁금할 것 같아요.


정: 처음 이사를 가서, 그 지역에는 아파트가 잘 없어요. 근데 조그만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만나는 이웃들부터 인사를 잘 했습니다. 제가 다른건 몰라도 인사는 좀 잘하거든요.(웃음) “안녕하세요, 저 이사왔어요.” 하고 신고식을 하는거죠. 또 아이 전학을 했기 때문에 다른데는 못가도 1년에 한두번은 가잖아요. 어머니회를 하러, 총회를 하러가서도 제가 이사와서 아이가 전학왔다는 사실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니 어디사냐고 물으면 어디산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람 난 그 옆에 사는데... 이런 이야기들, 정보가 주고받아 졌습니다. 이러다보니까 자주보는 얼굴이 생기는 거예요. 시장가다가도 또 만나게 되잖아요. 바로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이사 간 주변에, 제 생활권 내에서 만나는 여성들이었어요. 만날 때마다 너무 비슷한 이야기를 늘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만나도 잘할 수 있을거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집에서 차 한잔 하자고. 그게 이 모임의 6명이 처음이었는데요. 그 6명이 지금까지 왔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6명이 차 마시면서 시작한, 함께 이야기하는 수다를 떠는 활동이 첫출발이었고요, 수다를 떨다보니 6명은 8명으로 24명으로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희 안방에서 만났지만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 집에서 만났지만 그다음에는 우리들이 만나는 공간이 필요했고, 이런 것들을 해결해 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자세하게 만족스러운 대답이 안나오네요.(웃음) 그 말씀이 불만족스럽다는게 아니라 어쨌든 6명이 만나서 사람이 늘어나는 과정에, 뭔가 무슨 일을 하니까 사람이 늘어났을텐데 어떤 일을 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늘어났는지와 더불어 처음에는 단체가 아니라 그냥 아주머니의 모임이었을 텐데 그게 단체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정: 좀 극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 정보를 줬어요, 제가 여기 이사오기 전에 구로시흥지역에 살 때 저는 선경험이 있었습니다. 구로지역에 살구여성회라고 지금도 있습니다. 지역여성회를 거기서 처음 시작했거든요. 한 4년 이미 이웃여성들을 만났던 경험은 아줌마로서의 자신감이 굉장히 올라와있었습니다. 우리는 나가다가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를 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어요.(웃음) 누구를 만나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6명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게 지금 저희 구역에 이제는 학교가 좀 섰습니다. 그때는 중학교가 한 2-3개 있었고요, 고등학교를 보낼 때는 어디까지 나가야 했냐면요, 여학생들은 차를 타고 종로를 나가야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즉, 우리 살고 있는 지역이 아이들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이전 구로지역의 살구여성회 경험을 나누었더니, 우리도 하자고 제안.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여섯이 적다. 그런게 또 이야기가 막 나왔어요. 근데 제가 정보를 드렸습니다. 내가 이전에 살던 지역에서는 우리 그런거 막 고민하다가 모여서 이런 방법을 해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더니 참석한 한 여성이 이렇게 발언하셨어요. 구로시흥보다는 그래도 우리 지역이 좀더 낫지란 그런 자부심이 있었어요.(웃음) 전 그게 이해가 됐거든요. 우리라고 못할 거 없지. 이렇게 해주신 분이 첫 회장을 맡으셨던 분인데요. 그 분이 이렇게 탁치고 나가니까 나머지 여성들이 공감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제 그런 욕구들을 만난거죠. 그래서 그러면 6명 너무 작잖아하는 얘기가 매우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게 뭐냐면, 옆에서는 그럼 어떻게 했는데? 조금 과정을 설명해드렸어요. 여성들이 모여서 숫자가 이렇게 돼서 살구여성회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요렇게 해보니까 그때도 공부방을 했었습니다. 방과후프로그램 형식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니까 아이들을 같이 키울 수도 있더라, 지역아이들도 그 시기에 같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랬을 때 여성들이 다른건 몰라도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것을 모여서 하면 뭔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해보자라는 이야기에 그 자리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6명은 적극적으로 주변의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여성이 심지어 올케도 같이 오시고, 왜냐면 우리 동네는 지금도 그래요,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게 꽤 많습니다. 강북구는 그런 특성이 좀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도 오시고, 이웃여성도 초대해서 오고해서 만들어진 숫자가 24명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름 하나를 지어서 아까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으니까 A4용지로 몇장이 나왔습니다. 엄청 많은 거예요. 그중에 할 수 있는 거를 찾아서 맨먼저 시작한게, 저희들로서는 절박했어요. 지금은 구민회관도 있고, 주민자치센터도 있고 여성관련프로그램도 너무 많지만요, 그때는 저희 강북구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도봉구하고 막 분화가 되는데 도서관도 전부 도봉구에서 갖고 가고, 강북구에 남아있는게 없었어요. 즉, 우리의 가장 1차적인 욕구도 함께 모아서 해결할 수 있는 터전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이제 이걸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했던게 뭐였나면, 1차, 아이들은 좋은책읽기를 같이 해보자는 거였고, 우리 여성들은 욕구 중에 영어를 배우고 싶다, 일어를 배우고 싶다, 한자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꽤 많았습니다. 그걸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임을 만들게 된 구체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 고맙습니다. 계속 이어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 돌아가면서 다 듣기로 하고, 똑같은 물음으로 고창권선생님께, 아까 제가 추가질문한거 들으셨죠. 추가질문이 안 나오게(웃음) 고창권선생님이 말씀해주시죠.


고창권(이하 고): 반갑습니다. 저는 반송이란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송은 부산의 해운대구 반송동인데요,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부산지역에 한국전쟁 이후로 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도시계획에 따라서 그분들이 집단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 집단이주를 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 반송이라는 마을이고, 그 주위에도 반여동, 금사동 이런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의 한 곳인데 저는 철거를 할 때의 이주민은 아니었는데 거기로 이사를 가서 지금까지 30여 년째 살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의대를 졸업했는데, 다시 집사람하고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밖에서 공부를 하다가 고향에 들어가서 개업을 했는데 너무 사람들이 변화가 없는 거예요. 로봇과 같이, 단지 변한게 있다면 우리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는 거 외에는 마을이 너무 멈춰있다, 너무 정체되어 있다는 이런 느낌들에 상당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인도주의실천의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뭔가 지역에서 활동을 해야겠다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고, 한 1년 정도의 못이김 속에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가, 소년소녀가장들도 많이 있습니다. 소년소녀가장들, 독거노인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후원회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지가 너무 볼품이 없는 거예요. 내용은 매우 가치있고 의미있는 거에 반해서, 그래서 그분하고 상의를 해서 소식지를, 주민들이 알아야 하니까 조금 번듯하게, 예쁘게 만들어 봅시다하고 이렇게 제안하게 되었고, 그걸 같이 만들려고 하니까 단지 후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마을소식, 우리 주민들께서 정말 알면 얼마든지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들이 너무 차단되어 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소식지지만 우리 주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내용, 이런 내용들을 좀 담아내자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같이 마을 소식들을 가지고 같이 찾아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었던게 주부들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열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전봇대같은 데에 몇 개 붙여서,(웃음) 주부들께서 몇 분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하고 글을 좀 쓰시는 분들하고 4강좌정도를 준비해서 편집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월 1번 펴내는 소식지인데 편집팀을 꾸리면서 한 1년 반정도 활동을 쭉 해왔습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같이 함께하는 이웃에 계시는 분들하고 점차적으로 모이게 되고 그래서 사무실도 구하게 되고, 다양한 소모임활동으로 단체로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이해가 잘 안되시죠?(웃음) 제가 3분을 사전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고창권선생님하고 인터뷰가 어려웠던게 질문을 하면 너무 짧게 대답을 하셔서(웃음) 부산사나이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알기로는 주부들 글쓰기 모임을 그분들을 만나게 된 과정도 있었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글쓰기를 하고 싶은 주민들을 어떻게 만나셨는지, 그 과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고: 이런 질문이 나와야지 또 다음 답변을 하지요.(웃음) 개인적으로는 그런 고민들을 했습니다. 인천지역의 평화의료생협문제가 아까 화면으로 나왔는데, 당시 10년 전에는 의사들이 그런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인여협 회원들이나 의사들 중에서도 고민을 하는, 사회참여나 이런 것을 고민했던 의사들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10년 전에 생협이 상당히 화두로 떠 올라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생협인가 다른 형태인가, 근데 개인적으로는 반송지역말고 수정동에 의원을 개원한 적이 있었는데, 지역의원이란 개념이죠. 그러니까 병원과 지역주민과의 결합정도가 매우 높은, 그게 생협의 형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지역의 주민들과 같이 만들려고 하는 의원이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많이 고민하게 되었죠. 생협의 형태는 당시 일본의 사례를 많이 반영이 되었다고 알고 있고요, 그렇게하다 실패를 했습니다. 2년정도 하다가, 의원을 했는데, 너무 안되서, 병원에 있는 현미경을 팔아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이러면서 병원에 있는 모든 기구를 팔면서 직원들 월급주다가 결국 망했습니다.(웃음) 그런 아픔들 속에서 다음에 다른 장소를 찾아보자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망할 때는 저는 결합하지 않았죠.(웃음) 집사람이 하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자라왔던 곳이니까 반송으로 들어가서 같이 한번 해보자, 이렇게 결심을 하고 반송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역의원의 형태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병원과 지역주민과의 결합도를 어떻게 높여야 될건가 이런데 초점이 맞춰졌다 생각되고요. 처음 초창기에 이걸 만드신 분들은 병원이 되다 보니까, 아까 어떻게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는가, 병원이 1시간 기다렸다가 3분 진료하고 가는게 아니라 4분 기다리고 1시간 이야기하고 가고, 이런 사랑방구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기 치료하러 왔지만 살아가는 이야기 다 하고 아이들 교육문제 얘기하고 지역의 여러가지 문제 이야기하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서로 통하는 주민들이 생기게 되고 그런 분들과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을 중심으로 강좌를 열고 또 그분들을 중심으로 마을소식지 형태의 편집팀도 꾸려지게 되었다라고 설명됩니다.


이: 처음에는 그렇게 편집모임이 시작을 했지만 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 과거의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에는 그 편집부의 말씀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또 여러 소모임을 만들어 나갔다고 하는데 그 과정도, 사무실을 얻게 되는 과정도 재밌던데 말씀을 좀 해주시죠.


고: 초창기 편집실은 진료를 마치고 병원 사무실이나 대기실에서 간단하게 회의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있는 거죠, 아무래도 병원에서 하는 것은. 장소도 고민이 되었고 하다보니까 마을소식지라는 것이 당연히 후원도 하지만 지역의 문제들이 자꾸 나오니까 주민들이 모이려고 하는지 자꾸 제기가 되는거예요. 이걸 어떻게 할건가, 근데 요구도 다양해서 다양한 요구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책도 좀 읽고 토론하고도 싶고, 영화도 보고 토론하고 싶고, 손재주가 좋은데 만들기 이런것도 뜻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해보고 싶다, 나는 풍물을 좋아하는데 반송에는 이런 것도 제대로 없는 것 같다 등등의 여러 가지 요구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일단은 병원이 사실은 사랑방 역할을 하기 힘드니까 일단은 우리 주부들이 낮에 시간이 많이 날 수 있는, 모일 수 있는 사랑방 형태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했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정말 어렵게 사무실을 구했습니다. 허름한 곳에 하나 구했고. 특히 재래시장 가까운 쪽에. 그러다보니 주부들께서 시장보러 가시다 들러서, 가기 전에 일찍 나오셔서 1시간 계시다가, 또 장보고 오셔서 1시간 있다 가시고, 그래서 시장보는 시간이 2-3시간 늘어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사무실이 사랑방 공간으로 활용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랑방 안에서 여러 가지 요구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취미에 따라서 소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당시 만들어졌던 모임들이, 혼자계신 노인분들 한달에 한번씩 반찬 만들어서 배달해드리자, 주부들이 제일 쉽게 제일 잘 할 수 있는 반찬만드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독거노인 밑반찬 만들어 드리는 함께나눔반 이란게 만들어졌고, 그리고 책읽는 독서반도 만들어지고, 영화보고 토론하는 날개반, 이러게도 만들기반, 퀼트반, 풍물반, 인형극반, 할 수 있는건 거의 다했습니다. 그리고 편집팀, 그렇게 하다보니까 사무실이 우리 주민들로 북적북적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각 소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소모임들이 문제는 그 다음에는 질문하실 것 같은데 미리 말씀드리면,(웃음) 소모임들은, 취미로 모이는 소모임은 결국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뭐냐면 수명이 있더라는 거죠.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1년,1년반 지나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단체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다 그런것 같아요. 수명이 있다. 이걸 분명이 인식하는게 아주 중요하다라고 생각이 되고, 일반 취미로 시작하는 소모임은 1년반을 절대 넘길 수 없다. 넘기려면 질적으로 내용을 충분히 보강을 하던지 아니면 이끌어가는 동력을 마련하던지, 아니면 소모임은 1년반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한창 그 소모임이 잘될때 6,7개월 때 그 다음부터는 다른 모임을 고민하는 거예요. 이 모임도 1년이 지나면 수명이 떨어질텐데 어떻게 살려야될지 고민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조직을 바꾼다던지 소모임별로 돼 있던 조직을 이제는 좀더 단체 중심으로 한다던지. 그렇게 하다보니까 사람이 자꾸 모이다보니 이름을 정하자해서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 당시에는 유치하게 이름이 길었는데 요즘은 그게 유행이 되었는지 사랑하는이란 말이 단체이름에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까.(웃음) 10년 전에는 드물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만드니 동네분들이 너네만 반송 사랑하냐 우리도 사랑한다 지금까지 몇십년 사랑해왔다,(웃음)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근데 그런 측면이 아니라 반송에 계신 주민들이 반송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당시의 지역정서는 반송을 떠나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소외되었지요, 변두리지요, 떠나야 한다, 제 또래의 친구들은 없었어요. 저 개업하러 들어가서 전화하니까 찾기가 힘들어요. 다 직장 때문에 결혼을 이유로 다 지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정말 친구 찾는게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친구찾는게. 이런 분위기에서는 마을의 내일을 절대로 이야기 할 수 없고, 발전도 얘기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그게 화두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이라고 지었고요, 그렇게 이름을 짓고 나니까 단체로서 형태를 갖추게 되고 시간이 지나니까 소모임은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힘이 빠지게 되면서 단체중심으로 지역에서 활동해왔던 지역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체계가 바뀌고, 단체의 틀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 제 인터뷰하실 때는 짧게 하시더니 오늘은 상당히 자제를 하시네요. 저로써는 진행하기 편합니다. 두분의 공통점을 끄집어 내보면 두분이 어떤 주민들과 모임을 하려고 목적을 갖고 주민을 만났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주민들을 만나다보니 그 사람들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나갔다는 그런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윤혜란선생님은 좀 다른 경로를 거쳐서 단체를 만들고, 특히 인큐베이터사업으로는 상당히 유명하신데, 그런 사업이 진행됐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과정, 처음에 왜 YMCA에서 활동하시다가 복지세상을 만들게 되셨고, 이 복지세상이 주요사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사업이 왜 중요하게 자리잡게 되었는지 그런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여기 인큐베이팅 사업의 방식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사례를 통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혜란(이하 윤): 이호선생님께서 처음에 메일로 프로그램 말씀하셨을 때 고수들과의 수다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정말 고수는 부담되고, 수다는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에 제가 제자신을 분석해볼 때 3가지 증상이 나오는데, 어쨌든 긴장감, 집중력,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웃음) 어떤 주제를 갖고 길게 얘기하는 정리해서 얘기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강연이라던가 특강 형태였다면 절대로 이 자리에 못 나타났을, 그런데 수다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으로 너무 평안하게, 정외영선생님하고 똑같이 그런 마음으로 왔고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제가 2004년도 12월에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의 사무국장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를 하고 상근활동가로 일을 하는 것이 1년 정도의 공백, 다른 자원활동 형태로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입장이고, 개인적으로 많이 지쳤고 힘들고 소진되어 있는 형태였고, 그러면서 일정하게 현장하고도 거리가 좀, 하지만 일부 보고 싶었고 그랬던 형태였는데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 풀뿌리운동의 매력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정말 현장하고 단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감이 확 떨어지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이런 시간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게 한편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제가 주저리주저리 저도 제나름대로 지난 활동들을 얘기를 하지만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과 만나서 실제로 지역에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제가 참많이 듣고 싶었습니다. 보통 고수라고 한다면 수가 높은 사람들이 고수인가요? 근데 저는 요즘에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의 풀뿌리 운동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풀뿌리운동의 한수, 한수를 다시 배워야 겠구나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쨌든 저 개인한테 의미있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정리못하면 파일로 정리를 좀 해주시구요.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저는 고창권선생님하고 비슷한 경우인 것 같아요. 지금 여러분이 와계신 천안이 고향이고요, 천안토박이고, 대학만 잠깐 4년동안 서울로 올라왔다가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지역에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고창권선생님하고 비슷했던 거 같아요. 가깝기 때문에 대학을 다닐때도 자주 내려왔는데 지금이야 천안이 인구유입률이 전국에서 2번째로 될 정도로 지금은 상당히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도시인데 제가 80년대, 90년대 초에 학교다닐 때만해도 천안이 오늘도 내일도 항상 똑같은 정말 변화가 없는, 제가 기차타고 천안역을 내려오면 어쩜 여기는 이렇게 잠자고 있는 도시같은가 이렇게 느낄 정도로, 교통의 요지로 하긴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을지 몰라도 도시 자체는 상당히 정체돼 있는, 그래서 제 친구들같은 경우는 고창권선생님하고 똑같았던거 같아요. 정말 천안지역을 떠나는 것이 개인적인 삶의 성공일 만큼, 남아있을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같은 경우는 어쨌든 대학교 생활을 마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었고요, 특별히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건 개인적으로 제가 딸만 여섯인 집안에 둘째딸인데 저희집 넷째딸이, 아니 넷째동생이 학교다니면서 너무너무 말썽을 일으키고요,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소위 문제학생이 되었는데 제가 그때 대학교 다니면서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주다 보니까 학교에서 한번 낙인찍힌 아이들이 정말 사회에서 통합되기 이렇게 힘들구나 몸소 깨달았고, 그리고 동생같은 청소년들을 돌봐줄 수 있는 지역의 지원체계가 너무 없더라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고, 학교다닐때부터 정말 서울하고 지방간의 격차가 정말 정치경제 사회문화적으로 너무나 심각하구나라고 느끼긴 했어도 실제로 그런 개인적인 사건을 통해서 그게 너무나 구체화되었고요. 그래서 지역에서 나름대로 일을 하면 좋겠고, 그 역할을 청소년운동으로 바꿔주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고요, 그때 마침 제가 86학번인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뭘 만드는, 모임만드는 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 중에 저랑 의기투합되는, 보통은 고등학교 동창들, 친한 친구들, 오다가다 만난, 지금 현재 저랑 같이 살고 있는 남편도 그때 오다가다 만난, 어쨌든 그런 식으로 그당시에 같이 대학생활하고 지역생활에 일정하게 문제의식이 같이 있었던 그런 친구들과 지역에 정말 의미있고 좋은 청소년단체를 하나 만들자라고 고민을 했고요, 그렇게 만나면서 한 1년정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에 YMCA라는 그런 시민단체를 만드는 거로 정리가 됐고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YMCA라는 조직을 만드는 역할들을 저는 했지만 제가 그 활동을 하면서 놀란게 지역에 저처럼 정체되어 있는 지역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는 많은 청년그룹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저희가 주민모임 상태에서 청년YMCA의 그 어떤 소모임프로그램을 했는데 이게 한참 활성화되었을 때는 천안이 그렇게 넓은 도시는 아니었는데 많이 모일때는 150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모여서 각각 다양한 소모임활동들을 하고, 근데 이게 자체적인 조직이 있었지만 실제로 전국YMCA 내의 YMCA운동을 개혁하기 위해서 YMCA내의 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청년들의 모임들이 있었어요. 그런 흐름에 저희가 영향을 받기도 했고, 전국모임이나 이런걸 다니면서 어쨌든 활성화된 소모임, 청년모임들을 진행을 했고요. 그러면 저도 처음에는 지역청소년들을 위한 활동공간, 센터를 만들자해서 YMCA운동을 시작했는데 YMCA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거는 충남지역이 수도권과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모든 것들이 느려요. 그리고 특별히 사회활동단체 활동이나 경험들이 상당히 떨어져 있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그때 지역에 YMCA란 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때가 90년대 정도 되었는데, 그때부터 제 기억으로는 외지에서 외지분들이 많이 유입돼 들어왔어요. 지역에 기업들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특별히 대학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그런 분들 안에 지역사회에 대한 어떤 불만이나 문제제기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것들을 털어내 줄 수 있는 조직단체가 없었다가 천안YMCA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저희도 시작은 청소년문제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지역의 다양한 문제들이 다 들어오게 되고, 그런 것들을 만드는 노력들이 조직하는, 예를 들면 교통문제, 환경문제, 청소년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하여튼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들어오고 그런 것들이 어쨌든 구체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을 풀어나가려고 하는 조직체가 건설되는 것 자체가 사람들한테 좀 희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90년부터 93년까지 천안YMCA를 공식적으로 창립시키려는 활동들을 했고 YMCA가 창립된 이후에 90년부터 97년도까지 제가 YMCA 내에서 실무자로 간사로 활동을 했고, 근데 개인적으로는 저는 아까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을 왜 만들어서 나갔냐고 말씀을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YMCA의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한계와 또하나는 YMCA운동을 하면서 훈련받았던 지도력, 제 자신의 어떤, 그때는 지역사회에서 뭔가 새로운 이해들을 풀어나가는 뭐랄까, 어떤 제가 이렇게 말이 섞이면 지금은 집중을 못하는...(웃음) 농담입니다...(박수) YMCA에서 5,6년 정도를 상근활동가 일을 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게 95년도인가, 한겨레신문에서 시민단체들에 대한 평가들이 아주 신랄하게 나오기 시작했어요.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한국사회의 시민운동단체에는 왜 시민들이 없냐 이거에 대한 지적이었어요. 제가 기억하기에는 95년도 부터였는데 정말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가 95년에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말 우리가 하고 있는 시민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들이 많이 있었던 시점이었고, 저는 YMCA에서 일을 하면서 계속 갖게 되는 고민들이 그거였어요. 왜 시민단체에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전문가 중심의 운동으로 가버리고 말까. 예를 들면 아까 YMCA가 처음에 생길때 정말 너무나 다양한 그룹들이 YMCA에 들어와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3년,4년 지나가면서, 처음에는 주부들도 들어오고, 평범한 시민들도 들어오고 대학교도 많으니까 교수님들도 들어오고, 그런데 한3년,4년 지나가니까 전문가, 위원회처럼 활동이 바뀌기 시작하니까 가만히 보니까 실제로 일반 시민들이 당위적으로 지역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이걸 풀어나가는 방식자체가 실제로 시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일상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과제나 실천영역들을 저희가 주지 못했던 거죠. 그러니까 이분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결국 전문가중심 운동체로 점점 가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대안이 뭘까 그 안에서 고민하게 됐고, 그러면서 제가 개인적으로는 사회복지영역이 일반시민들과의 삶에 접촉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매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제 생각에는 한국사회가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발전하면서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삶의 문제가 상당히 중첩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기본적인 빈곤의 문제들이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 예를 들면 후기, 산업사회 이후의 사회적 문제나 과제들이 중첩되어서 나타나고, 그런데 실제로 시민의식은 그렇게 성장하고 따라가지 못하고 그렇게, 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평범한 일반시민들이 자기의 삶 안에서 찾아갈 수 있는 어떤 지역사회과제들을 찾아내고 그걸 통해서 풀어나가는 훈련과 과정들을 시켜나가는 것들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게 맞는게 아닐까란 고민을 했고, 그럼 그게 뭘까,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고 있는 사회문제들이 뭘까, 그리고 제가 볼때는 가장 정말 지역사회에, 그때 생각에는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에 문제에 대해서 소박하게 자기가 갖고 있는 자원과 실현을 나누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조직화시키는 방식에, 시민운동을, 그때 고민을 했던 거구요. 특별히 그런 모델들이 없기 때문에 그냥 저희가 지역에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구요. 근데 그렇게 하면서 인큐베이터 운동이라고 하는 운동방식이 나왔는데, 복지세상에서 추진했던 운동방식 중에 하나인 인큐베이터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조직들을 해나가는 것, 충남여성장애인연대, 충남장애인부모회, 노인복지건강센터느티나무, 지역의 빈곤가정 아동들을 돕기 위한 아동복지단체인 미래를여는아이들, 이런 다양한 사회복지조직들을 만들어 나가고 또 한편으로는 네트워크 활동이거든요. 독립해 나가는 단체들과 지역의 사회복지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체들끼리 연대해서 좀더 지역사회의 삶의 질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만드는 이런게 축이 었는데,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게 인큐베이터 활동에 대해서 신선하고 참신하게 생각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외영선생님, 고창권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저희가 지역사회를 다양하게 하는 운동들이 기본적으로 조직활동들이라고 생각해요. 크고 작던 간에, 근데 그걸 그당시 저희 단체에서 조금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진행했고, 우리 단체의 주요한 활동방향과 활동방식으로 편성하고 진행했고, 그리고 일정정도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좋은 성과도 있었던 그런 활동들이고... 그냥 질문을 받을까봐요.(웃음) 그리고 지금은 2004년 12월까지는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에서 상근활동가로 일을 했고,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풀뿌리 단체들을 중간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는 풀뿌리 희망재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맙습니다. 아까 설명을 하실 때 인큐베이터에 대해서 잠깐 말씀해주셨는데,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면 복지세상이 충남장애인들을 만나서 다양한 모임들을 조직을 하죠. 그래서 그 사람들을 모임을 만들어서 복지세상의 어떤 산하로 넣는게 아니라 그분들이 자체적으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그것이 독립할 능력을 키워주는 거죠. 그리고 나서는 개별적인 단체로 독립을 시키는, 인큐베이터방식이라고 얘기를 하고, 그것을 지역사회의 자원으로 네트워크 하는 것, 이 2가지가 복지세상이 가장 중요한 활동방식이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각 3분들의 활동이나 단체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활동내용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보기 때문에 자세하게 시간을 많이 드린거구요.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하다보면 몇가지 한두분 얘기하시다 보면 시간이 다 지나가기 때문에, 한분을 초대해서 한시간씩 가지고도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닌데, 3분을 한꺼번에 모셔놓고 3시간만에 뭘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만 필요하신 건 각자 가셔서, 단체가 그룹시간이 있으실텐데 오늘은 핵심적인 내용만 몇가지 집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짧게, 하지만 사례는 좀 많이 에피소드같은 걸 많이 해주시고, 짧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얘기하다가 잠깐 돌아갔어요. 소모임이란 걸 만들었고, 소모임 중심으로 시작을 했고, 고창권선생님이 소모임이란 건 한계가 있다. 이건 1년 넘어가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 녹색삶같은 경우에는 그런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소모임들로 일어교육이니 음악감상하기 이런 소모임들이 모였다가 지금은 환경운동도 하시고, 공부방도 만드시고, 열린숙제방 만드시고, 그 소모임들이 변화되었단 말이예요. 활동의 내용도 변화되고 관심분야의 영역도 자기의 관심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관심으로 넓어지는 과정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 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추가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정: 욕구는 지위가 굉장히 다양하죠. 우선 쉽게 나오는 욕구는 현재 매우 드러나 있는 욕구입니다. 뭘 배우고 싶다, 당장 이걸 좀 해결하고 싶다, 드러나 있는 욕구들을 중심으로 모인게 제일 1차적인게 배움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걸 중심으로 모이면서 드러나 있는, 현화되어 있는 욕구들이 먼저 이야기가 되고 기회가 만들어짐으로써 그 다음에는 이제 본인도 자각하지 못했고, 그러나 내재되어 있었던 이런 욕구들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 다음날이 수업하는 날인데 그 전에 뉴스에서 굉장히 놀라운 일이 터졌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때가 엘리베이터 살인사건이 있었거든요. 여러분들 중에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중학생아이가 집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남자아이가 뒤따라 타서 여자이이를 찔러서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그날 저녁에 뉴스에 터지고 난 뒤에 난리가 났었죠. 이건 특히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끔찍한 사건이었던 거예요. 이제 그다음날 모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들이 먼저 튀어나오죠. 너무 끔직하다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이야기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이냐하면 너무 끔찍한 일인데 내 아이가 아닌거죠, 그래서 우선 안심을 했어요. 근데 얘기를 하다보니까 두번째가 변하는 거예요. 지금은 당장은 아니었는데 다음에 또 이런 사건이 터지면 그게 내 아이나 내 조카나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이런 것들이 확인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이 열기들이 진전되면서 느끼는 건 뭐냐하면 다같이 결론을 하나 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성장하고 있는 우리의 마을이, 지역사회가 굉장히 불안한 거구나, 안전하지 않는 거구나, 그런 위협을 어디서 받고 있는 거지, 일상의 경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갔다오다 얻어맞고 뭐 뺏긴 경험, 누구한테 고통을 당한 경험, 이게 고스란히 숨겨져 있던 경험들이 이런 사건과 함께 드러나는 거예요. 이걸 이제 저희는 모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하지 못하다, 이걸 24시간 품안에 끌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안전한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까지로 그런 욕구가 정리가 되어서 나타난 프로그램이 바로 공부방프로그램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까처럼 일상의 드러나 있는 욕구를 중심으로 모인 각종의 소모임은 그것으로 지속된다기 보다는 그런 차원의 동력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 우리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되죠. 이 관계 속에서 우리가 다음에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발굴되어 지고, 그것들을 조직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경험을 작지만 쌓게 된 것들이, 축적된다는 것이었죠. 저의 경험은. 그럼 이런 축적된 경험 속에서 나타난게 어떤게 나타났냐하면 아까처럼 처음에 내 아이의 안전의 문제에 대해 걱정할 때는 굉장히 개인적 관심으로 또 개인적 문제의식으로 출발했는데 결국은 이거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로 인지가 되면서, 따라서 개별적 해결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죠. 그럼 문제의 성격이 그렇게 집체적이고 공동체적인 문제라면 해결방식도 그래야 된다는 됩니다. 그거를 해보면서 작은 실천의 경험으로 성공을 경험을 조금씩 축적해 나가면서 생기는 건 뭐냐, 우리가 지혜를 모으고 약간의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작은걸 진행했을 때 문제의 어떤 부분들이,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는 희망도 생기고 기대를 갖게 되고 그 속에서 같이 해보면서 서로가 신뢰하는 경험도 조금 쌓이면서 성공의 경험들 속에서 성취감도 보고, 그 다음에 그런 일들이 갖는 공공적인 성격 때문에 자부심도 느껴보고, 이런 것들이 다음 우리의 과제들을 발굴해 가는데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질문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앞선 소모임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약간 침체되어 있는 소모임이나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고, 아까 정외영선생님이 말씀하신 역동적인 프로그램인 경우도 있기도 한데 말씀을 들어보면 역동성의 욕구는 그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참여자들이 수다가 자유스럽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풀뿌리들의수다라고 이름을 정할 때, 우리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도 있지만 지역에서의 주민들과의 풀뿌리운동이 수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미도 부여했을 겁니다.

그 다음에 얘기를 넘어가서요, 아까도 여러분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설명을 드렸는데 주민들의 욕구로부터, 활동가의 욕구가 아니라 주민들의 욕구로부터 일이 시작됐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얘기가 나왔으니까만은 사실 저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여러 사람들한테. 주민들의 욕구를 어떻게 파악해야 됩니까, 어떻게 알아야 됩니까, 사람들은 쉽게 욕구조사를 하려고 설문지같은거 만들고, 근데 저는 욕구조사를 설문지로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제대로 나오나 한번 보자 이런 식으로 비판적인데, 그런 욕구를 다르게 대답하실 수 있는 것 같은데 참여자들의 욕구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간단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제 고창권선생님부터.


고: 일단 기본적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모두다 지역주민들이었고, 처음 시작했던 활동이 마을 소식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다른 활동에 비해서 의식적으로 지역의 내용, 지역주민들의 요구가 주취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소한 내용에서부터 지역의 큰 문제들까지 우리가 일상에서는 잘 놓칠 수 있는 많은 내용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반상회라던지 계속 지역에서 화두가 되고 논란이 되어왔던 문제들이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지역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아마 우리 지역주민들의 요구다, 주민들이 희망하고 바라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다, 이렇게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윤: 제가 6개월 전에 이사를 했거든요, 전에 살던 동네로 다시 이사를 한거지만, 어쨌든 천안지역으로 보면 역전 동네가 옛날동네예요, 구시가지인데. 제가 결혼해서 한 몇 년 살다가, 천안지역으로 치면 신시가지에서 7,8년 살다가 다시 옛날동네로 넘어왔는데, 요즘 저희동네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게 뭐냐면, 넓지도 않은 동네인데 단지 제가 구역을 조금 벗어나 살았다는 것 때문에 지역에 대해서 이렇게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쌍용동이라는 신시가지에 단체활동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물론 저희 시부모님들은 구시가지에 사셨고 가끔씩 동네소식을 듣긴 했지만 잘 몰랐다는 거죠. 근데 요즘 다시 옛날동네로 넘어와서 서남지역같은 경우는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옛날에 형성되었던 동네는 공동화문제가 심각하거든요. 근데 그걸 신시가지동네서 막연히 듣던 거랑 제가 동네를 옮겨와서 그냥 시장통도 지나가 보고 왔다갔다하면서 느끼는 거랑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구나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한 3년 전쯤인가 어느 교회의 목사님인가 저희 단체에 전화를 하셔서 어떤 말씀을 하셨냐하면 교회에 돈을 모아 사람들을 돕고 싶은데 요즘은 못사는 사람이 없나봐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 교회가 천안에서는 굉장히 잘 나가는 교회고 큰 교회고, 그 교회구성원들이 실제로 잘사는 젊은 엘리트들이 많이 다니는 그런 동네거든요.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 차이인 것 같아요. 아까 이호선생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지역사회 문제라고 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노력이 필요하지만 억지로 만나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호흡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 전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끔 질문을 받는데, 욕구에 대한 몇가지 오해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욕구가 굉장히 개인적인 거라고 오해하고 있지 않나, 맞습니다. 사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전 몇가지 경험을 갖고 정리해보자면, 욕구도 변화한다, 움직인다는 겁니다,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진화하고 발전한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구라는 것이 한 개인에게 하나로 있느냐, 그리고 집합적으로 드러나 있느냐,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삶의 터전에서, 만나고 있는 주체의 구체적인 욕구에 대해서 관심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함께 협력해서 공동의 관심사를 풀어가고 있는 이 사람의 현재 욕구는 어떤데 이전에는 어땠고 현재는 어떤데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하는 것들이란 말입니다. 욕구자체를 스크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현장에서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의 욕구는, 첫째 내가 이사람의 욕구에 정말 관심이 있냐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내 앞에 있는 누구의 진짜 내심에 담겨있는, 자기 삶에서 가져오는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있느냐 하는게 첫 번째라고 봅니다. 관심이 있으면 우리는 다음의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모든걸 통해서 알려고 합니다. 그사람의 눈짓, 몸짓, 말하지 않는 것, 말하는 것, 이런 것들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일단 아주 구체적이고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럼 바로 거기서부터 욕구를 발견하는 것은 출발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이사람은 진심으로 내 욕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 때 나의 얘기를 진지하게 하게 되는 거죠. 여기에서 우리는 1차, 그 사람이 집체적인 주민이 아니라 지금 내가 구체적으로 만나고 있는 그 개인의 욕구에 대해 듣게 됩니다, 발견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 욕구가 개인적 욕구인가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욕구는 많은 주민들로부터, 내가 그런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통되게 확인되는 욕구가 바로 저희들이 우리 활동에 잡아낼 수 있는 욕구인 것이요. 그럼 처음에 그걸로 출발할 때, 욕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가, 드러나 있는 욕구가 워낙 집중되어 있는 욕구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만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고 해결되기 시작하면 다음은 무엇에 훈련되어지는가하면. 그 다음은 뭐지, 내가 또 무엇을 생각하는 거지, 무엇을 원하는 거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 거지, 여기서부터 나의 욕구는 변화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욕구는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면 진지한 관심에서 출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박수)


이: 이 부분에 대한 질문에 3분 다 어려운 과정이라고 대답하지는 않으시는데 오히려 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았어요. 일단 사람들을 만나니까 사람들 얘기를 들으니까 당연히 욕구들을 들을 수 있고, 그걸 못듣는 것은 오히려 자기 머릿속에 계획이 꽉 들어있기 때문에 못듣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욕구를 들으면서 많이 수용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젊을 때 지역에서 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지역에 물어본 욕구가 다르면 내 생각을 설득하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의식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잘 수용하시는 것 같고, 그 욕구들을 놔두지 않고, 그 욕구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하셨던 그런 경험들이 다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욕구에 대해 물어보면 별로 할말이 없다고 대답을 하셨어요. 정외영선생님이 정리를 아주 잘 하셔서 말씀을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정외영선생님이 말씀하신 김에 한가지만 더 여쭤보고 싶은데 지역사회자원들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듣고 싶은데, 복지세상에서도 공부방 인큐베이터 사업과정이 단순히 처음부터 시작한게 아니라 다른 공부방이 잘안되서 복지세상에 지원을 하면 지원나가서 인큐베이터하시더라구요. 그것이 하나의 복지세상의 자원이자 성과가 만들어지게 되는, 물론 복지세상의 성과이기 전에 지역사회의 성과로 남게 되지만, 이제 녹색삶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서 굉장히 재밌는 경험들이 많이 있었더라고요, 경험을 좀 들려주세요. 저는 가끔 답답하고 안타까운게 사람들이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할 때 먼저 단체를 만들고 돈이 필요하고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게 운동하는 사람의 전형이죠. 근데 저는 잘됐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녹색삶에 계신 아주머니들이 공간을 지역사회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했는가하는 것을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정: 재밌는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참 많이 배웠습니다. 여섯이나 여덟명이 모여서 얘기를 하면 경험으로는 반드시 해결방법이 나왔다는 거였습니다. 한번은 음식물찌꺼기줄이기 공청회를, 우리는 이름을 거창하게 공청회라고 하고, 형식도 잘 몰랐지만 공청회라는 것을 하자했는데 장소가 문제인 거예요. 물리적 환경 중요하잖아요. 구질구질한 곳보다는 약간 격식이 나면 우리도 마음도 편해지고 만족스러워 하죠. 한 분이 그러시는데 우리 동네에 웨딩홀이 멋지게 지었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늘 지나가면서 보잖아요, 웨딩홀은 우리가 부지런히 활동하는 오전에 늘 비어있는 거예요. 그걸 늘 보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멋진 공간인데 아까운 거예요. 지금은 안그렇지만 그때는 주말에 결혼하는게 상식이었어요. 그러니까 늘 비어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가 참 좋겠다라는 얘기를 꺼내신 거예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중에 한분이 총을 쏘신 거예요. 거기가 영업하는 장소인데 빌려주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긴장해서 저 총을 어떻게 거둬들이나 그러고 쳐다보면서 다음 작업에 들어갔는데 밑져야 본전이지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가 얘기를 할건지 사전에 전략회의까지 하면서 역할을 나눴습니다. 그럼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했는데 한분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가서 좋으면 우리 아들 거기서 결혼하면 되지 그러시는 거예요.(웃음) 이런 한말씀 한말씀이 힘이 굉장히 되는 거예요. 이래서 저희가 갔습니다. 가서 영업부장님을 만났어요. 그랬더니 깔끔하게 생기신 분이 나오셔서 저희보다 판단을 훨씬 잘하세요. 저희를 보는 순간 깍듯하게 모시면서 의자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를 돌리시더라고요. 저희가 사실 눈치보면서 순서대로 얘기를 꺼내야지 했는데, 얘기 오래 할 것 없었어요. 영업부장님이 저희도 이 지역에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지역에 환원을 해야죠, 기여를 해야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승승장구하고 와서 저희가 내린 결론이 경험들로 배웠습니다. 우리가 지역주민이라는게 무기라는 거였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협력을 요청하러 갈 때 구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건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따라서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협력할 의사가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우리 이웃들은 얼마나 좋은 이웃들인가, 점점 신뢰를 획득하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처럼 이게 지역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원개발이고 하는 것이구나. 이런 것도 경험적으로 축적해나갔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이제 저희는 협력의 관계, 자원이 어떻게 발굴되는가, 경험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축적해 가면서 한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가끔씩은 빌릴 수 있다는 거죠. 한달에 한번이나 일주일에 한번씩은 쓸 수 있었는데 또한번 위기가 왔습니다. 공부방을 결정을 해놓고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동안의 자신감으로 주민자치센터나 동사무소, 웨딩홀도 얻어 봤고, 교회도 써보고 안 써본데가 없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공부방을 얻으러 돌아다닌 거예요. 새마을금고도 가보고 다 가봤는데 그때 딱 걸린 장애가 지속적으로 일상적으로 쓰는 것은 참 안타깝게도 도와드릴 수가 없다, 근데 도와줄 수 없으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상대가 뭐라고 얘기하셨냐하면 너무나 좋은 일인데, 지역에 너무나 필요한 일인데, 이런 말씀에 저희가 자긍심을 고취한 거예요. 그래서 좌절이 갖고 온 다음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 인정했습니다. 그 분들이 처음에는 귀기울여 주지도 않고 분노가 생기고 밉기 시작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냉정해 졌어요. 우리도 생각을 해보자, 다들 용도가 있어 빌리는 건데 만날 어떻게 빌려주나, 라고 생각하니까 이웃이 밉지가 않은 거예요. 이해가 되는 거예요. 거기도 어쩔 수 없네, 인정하고서 두 번째가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며 어떻게 할거냐, 이건 무리한 요구기 때문에 우리가 해결해야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지 하고서 공간만들기로 들어갔습니다. 이건 나중에 얘기해야 되겠죠?(웃음)


이: 아니, 나중에 할 시간이 없긴 없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단체 사무실 만드는 과정은 나중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간에 아주머니들이 용감하다는 거예요. 필요하면 찾아가서 얘기를 하니까 의외로 잘 풀리더라는 거죠. 그 찾아가기까지가 참 두려운 과정인데 의외로 아주머니들은 쉽게쉽게 하더라는 경험을 말씀해 주신거고요, 저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질문을 드린 겁니다.

지금까지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 쭉 얘기를 들어본 건데요. 3분들 인터뷰하면서 느낀 거는 회원들 문제예요, 여러분들 조직화하는 건 회원들 늘리는 것과 관련돼서 생각하고 이분들도 다 회원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겪어왔었죠. 우리 풀뿌리운동의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사무국 중심의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오히려 회원들이 정체되는 문제, 여러분이 느끼는 걸거예요. 사무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회원들을 활성화시켜야 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지만 사무국이 빵빵하면 빵빵할수록 회원들은 정체될 수 밖에 없다고 전 생각을 하는데 이 3군데의 특징은 회원 그 자체로 가입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활동을 하면서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는 건데, 어떤 일을 같이 해보자 그일을 같이 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회원이 되기도 하고 때론 안되기도 하고 이런 과정을 겪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원을 모집하는 과정도 수다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만 말씀드리고 넘어가는데 제가 좀 특이한 걸 발견했는데 지역사회는 아주머니들의 천국이죠. 저희 동료들하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지역사회의 온전한 시민은 누구냐, 우리들 남자들은 시민도 아니다, 반일제시민, 쿼터제시민 이렇게 얘기하는데 아주머니들이야 말로 온전한 지역사회의 시민으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희망세상, 반송사람들에서는 남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참여를 해서 회원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궁금했어요. 어떻게 남자분들이 지역사회에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이 될 수 있었는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고: 반송의 경우도 정외영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초창기에는 모두가 대부분 주부들이었습니다. 근데 주부들과 소모임이 많아지게 되다 보니까 점심시간때 밥을 5분 정도만에 먹고 잠시 회의를 하는데 그게 1시간 안에 도저히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녁때 해야할 것 같은데 저녁때 회의를 잡으니까 다들 아이들 학교갔다가 오죠, 남편들도 직장에 갔다오죠, 그렇게 되면 지녁시간때가 다들 안된다는 거죠. 근데 낮에는 회의가 안되고, 저녁때 해야할 것 같고, 이런 과정에서 결국 시간을 좀 내봅시다해서 저녁때 시간을 잡았습니다. 잡았는데 이게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집집마다. 어떤 집은 보수적인 경상도 남편들께서 이렇게 표현을 했답니다. “여편네가 해가 지면 밖에 나가서 뭐하러 다니는지 잘 모르겠다.”(웃음) 그래서 말다툼도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아빠들이, 남편들이 이해해 주지 못하면 지역활동이 정말 어려운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빠들을 좀 만나서 우리 부인들이 활동을 하는데 좀 설득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원들의 남편들을 만나러 갔죠. 이런 회의를 합니다, 그래서 저녁때 밖에 시간이 안납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근데 꼭 가면 차를 한잔 얻어먹으면 되는데 꼭 술을 주셔서... 저는 주로 분위기있게 커피를 마시고 이러는데,(웃음) 아빠들을 만나면 꼭 소주를 마시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어요.(웃음) 한사람 두사람 만나게 되니까, 그래서 어느덧 해가 슬 질 때가 되면 손이 떨리고 술이 그리워지고,(웃음) 하여간 진료가 끝나면 술병을 들고 이집 찾아가서 얘기하고 저집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이런게 1년 딱 걸렸습니다. 1년되니까 저는 알콜중독자가 되어 버리고,(웃음) 그렇게 되니까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그런 과정들 속에서 친구도 되고, 형님도 되고, 동생도 되고, 이렇게 뭐 일요일되면 애들이랑 공한번 찹시다해서 공한번 차고, 등산한번 갑시다 하면 등산가게 되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1년이 딱 지나니까 모임을 하나 만듭시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다들 수긍을 하셨습니다. 단지 이름을 좋은아버지모임으로 합시다, 이렇게 하니까 다들 반대했습니다.(웃음) 너무 부담스럽다고. 그럼 좋은아버지가되기위한모임 어떻습니까하니까 다들 그거는 좋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좋은아버지가되기위한모임이 만들어져 5년동안 활동을 하니까 되기 위한을 빼자,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좋아모, 좋은아버지모임 이렇게 정식으로 이름을 딱 하고, 조끼, 모자도 만들고 하셔서 아주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고, 지금은 거의 희망세상 중심적인 활동을 다 하고 계세요. 지역의 일이라는 것이 손이 가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거의 아빠들이 중심이 되어서 모든 일들을 해내고 계시고, 그러다보니까 지역활동의 기본단위가 과연 뭘까, 그건 가족이다, 이렇게 정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역활동은 가족으로 접근해가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왜냐면 숫자채우기가 너무 좋아요.(웃음) 가족기행을 가거나 뭘 하면 10집만 가면 버스 하나가 되는거 아녜요. 그런 고민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도 주말에 활동들을 많이 하니까 대부분 주부만 나오기도 뭣하고 어정쩡한 거예요. 지역활동은 지역에 있는 주민들의 요구들이 생겨나는, 기행도 하고 싶고 소풍도 가고 싶고 정말 박물관같은데도 가고 싶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한번 해보고 싶고,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고, 같이 가면 좋겠는데, 그런 요구도 많이 담아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가족기행이 활성화되어 있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얼떨결에 가족기행에 따라갔다가 회원이 되고 매년 하는 행사들에 얼떨결에 따라갔다 회원이 되고. 또 좋으니까 보람이 있으니까 또 아이들하고 같이 할 수 있으니까 거기서 의미를 같이 찾을 수 있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다, 이렇게해서 회원들 가입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 그것도 있었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일상활동이 있더라구요. 마을신문이 정기적으로 나오니까 그 신문배달하는 일도 하고 배달만 하면 더우니까 끝나고 나서 술한잔 먹고.(웃음) 복지세상도 회원이 쭉 늘어나는, 인큐베이터식이니까 늘어나는지는 몰라도, 초창기말고 회원들이 들어오는 과정이 있을텐데 어떻게 회원들이 가입을 합니까?


윤: 초기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은 어쨌든 단체를 표방하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무국구성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거구요, 초기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했고, 그분들이 나중에 단체가 창립하고 1년동안 활동을 했고, 초기에는 활동을 중심으로 단체를 구성한게 아니라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단체를 표방했고, 초기에 그 단체에 필요한 그런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후원회원 모집을 했어요. 초기에 그렇게 시작을 했거든요. 근데 복지세상이 초기에 아무런 활동이 없는데 제 생각에는 월1만원씩 회비를 내주셨어요. 초기에 그 작업을 먼저 했던거죠.  근데 초기에 1만원씩 내주신 분들이 그동안 지역에서 YMCA 활동하면서 만났던 분들, 시장통에 소비자운동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으니까 저희가 책상 2개만 빌려서 거기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제 생각에는 한두달은 명단작업만 했죠. 누가 돈을 내주실까. 그렇게 명단을 작성하고 그분들을 맨투맨으로 다 만났죠.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이런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회비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분들이 초기에 회원으로 가입을 했는데 그것은 초기에 YMCA라는 조직을 만들때도 그랬거든요. YMCA조직도 사실 지역에서 젊은 사람들을, 어쨌든 연맹에서 인준을 받아야 하고 창립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워요. 인적, 물적자원을 다 갖춰야하기 때문에 그때 했던게 맨투맨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을, 수백명을, 매일. 어떤 사람은 명단갖고 현장에서 사니까. 제가 볼때는 아주 무식한 방법이지만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쨌든 만나면 사람들이 얘기를 하거든요. 내 얘기도 하고 지역사회 얘기도 하고, 이런걸 어떻게 구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을 했구요.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 때도 출발은 이제까지 해왔던 지역시민운동에 대한 고민과 반성으로 단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쨌든 저희가 갖고 있는건 그림뿐인데 이걸 사람들한테 저희가 갖고 있는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득하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결국 이런 것들이 YMCA라는 기존 조직에 회원들을 빼오는 구조예요. 저는 그부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초창기에 지역에서 천안YMCA라는 단체에서 복지세상을 인큐베이팅하는 과정이었어요. 반성을 시민운동의 1세대들이 한거였죠. 천안YMCA가 지역에서는 시민운동으로 맏형격인데 실제로는 이런 방식으로 해나갈 때 YMCA라는 단체는 규모가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흐름들이 YMCA라는 개별단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한거죠.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풀 것인가, 결국 그때 나온 것들이 운동영역을 다양화시키고 전문화시키고 좀더 바닥으로 간다, 그래서 이제 그때 운동영역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러면서 사회복지영역도 나온거고, 근데 초창기에는 어떤 고민을 했냐하면 그럼 이걸 YMCA내에서 위원회의 형태로 사회복지위원회나 이런 형태로 이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운동단체를 만들어서 이 운동과제들을 갖고 갈것이냐, 이런 고민들을 했을 때 그때 저희가 생각했던 것은 어쨌든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면 새로운 조직운영력들이 모이게 되는 거거든요. 어렵지만 그렇게 하자고 판단을 했던 거구요, 그렇게 갔기 때문에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란 단체가 만들어 질 때 YMCA 초창기 창립준비위원부터 같이 했던 지역의 이사분들이나 회원분들이 제가 말씀드렸을때 150분 정도, 저희가 그림만 가지고 계획만 갖고 그분들이 회원가입을 해주신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들이 있긴 했었죠. 실제로 지역의 활동역량을 모아야 하는 시점에서 그렇게 단체를 만들어서 나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거냐, 이런식의 운동에 대한 고민들, 그런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어쨌든 한번 돌파구가 만들어지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초창기 후원회원들에게 후원전화하고 취지설명하고, 우리가 초창기 2년동안은 사업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저는 150만원 정도의 운영경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걸 계속 전화면담으로 만나서 부탁을 드렸고 그분들께 2년만 후원해달라고 부탁을 했죠. 2년후에는 단체의 사업성과를 보고 판단을 해달라고, 어쨌든 2년 정도만 부담을 해달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150분 정도의 후원회를 확보를 하고 시작을 했고요, 이런 활동에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분들로 창립준비위원회를 준비했고 단체로 정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이분들이 주변에 또 적극적으로 후원회원들을 모집해서 100분 정도, 250분 정도로 초기회원으로 모집을 하고 활동을 시작했고요, 그 이후에 복지세상 현재 600~700여명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 회원으로 들어오신 분들은 단체활동을 보고 회비를 내주시는 건데요, 실제로 복지세상 인큐베이팅 할 때, 단체를 만들어 독립시킬 때는 모든 것들을 독립시켜요. 사람도 독립시키고, 돈도 독립시키고. 예를 들어 충남장애인부모회를 만들때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신 거죠. 활동도 해주시고, 회비도 내주시고, 그런걸 해주시는데, 그 단체가 완전히 인큐베이팅되고 독립할 시점에는 회계정리를 다 해요. 그 활동을 보고 회원가입해주신 분들은 정리해서 충남장애인부모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질때 미리 말을 해요, 예를 들어 미래를여는아이들을 독립시킬때는 복지세상의 예산의 반이 그쪽에 후원을 받은 거고 엄마단체보다 인큐베이팅단체가 더 클 정도로,  그럴때도 후원회와 사람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질문: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의 사업이 인큐베이팅사업만 있는건지 전체적으로 활동회원이 있다 했는데 주위의 활동은 어떤 회원들이 하는지, 그리고 인큐베이팅을 할때 한단체를 인큐베이팅하는데 굉장히 오랜시간이 걸리고 쉽지가 않은 일인데 복지세상은 어떻게 다양하고 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윤: 복지세상을 만들 때 인큐베이팅사업을 하겠다고 설정하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지역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시민모임이라는 구성을 갖고 시작을 했는데, 일을 하면서 느낀거는 사회복지영역에 일을 하면서 동역자 그룹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처음에 시작을 할때 사회복지영역과 처음에는 동역자그룹인지 알았어요. 공동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느꼈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일을 하면서 우리 단체의 힘만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운동들을 지역안에서 오랫동안 함께 안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희는 역시 그분들을 돕는 것이 돕는 것이 더 맞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충남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할 때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를 만났고, 그 엄마를 통해서 지역사회에서 그 도움을 받지 못해서 서울까지 간다는, 그런 분들이 한두분이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을 들었죠. 예를 들면 그런 문제가 있다는 시민사회단체로서 이문제를 어떻게 접근해나갈 것인지, 초기부터 인큐베이팅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지역에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누굴까, 처음에는 복지세상이 지역사회의 자원을 모아서 직접 서비스하는, 지역의 장애아들과 부모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그런 고민도 했죠. 어쨌든 그럴 수 있는 여지가 많았고, 결국 장기적 비전으로 봤을 때 끝까지 이 문제를 내문제로 갖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 그건 사실 우리 단체가 아니라 그분들이다, 근데 그분들은 그 역량이 안되잖아요. 그럼 그분들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단체가 돕는다는 거죠. 그 목표를 갖고 조직화작업을 했죠. 초기에는 조직을 만들어서 내보내는 거니까 이사회에서도 갈등문제가 나오기도 했었어요. 복지세상을 개별단체 입장으로 봤을때 덩어리는 작아지는 일이죠. 근데 처음부터 인큐베이팅을 설정한게 아니라 지역문제가 터지고 해결하는 과정에 지역사회전체에서 볼때는 바람직하다 그렇게 판단이 되었고, 4,5년 정도 인큐베이팅 사업을 한 이후에는 설득이 됐는데 초창기에는 이런 부분을 설득하는게 어려웠단 말씀을 드리고요. 사실 한 개의 모임을 꾸리는 것도 어려운데 모임을 만들고 조직화를 하고 변화발전하는 과정에 공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독립해서 나가는 과정은 같은데 단체마다 역량과 활동과제와 지도력의 활동역량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독립해나갈 때 내부지도력이 만들어지지 않은 단체는 절대 창립이 안되죠. 실제로 저희가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는 그런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그 조직의 내부지도력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개입을 해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내부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되지 않으면, 저희가 그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그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단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해서 실패한 경험도 있죠.


이: 공짜가 없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네요. 여기 계신 분들이 성공적인 경험을 했다고 해서 아주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과정에 있는 거고, 고민들이 많으실 거예요. 먼저 미리미리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고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네요. 질문이 없으시면 10분 쉬고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2부


이: 여러분들이 질문하실게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질문하시고 싶으신 분은 질문은 종이로 제출해 주시면 분류해서 제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사회활동을 하면서 참여자들이 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까지의 사회운동은 정치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권력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의 대상이 정치권력이었죠. 87년 6월 항쟁이후로 90년대 시민운동이 시작되면서 운동의 대상이 바꾸고자 하는게 정치권력보다는 제도-시민들이 투명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제도- 바꾸고자 하는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입만 떼면 풀뿌리를 얘기하고 있는데 진짜로 제대로 된 풀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풀뿌리운동의 과제는 어떻게 사람을 지역사회 에서 변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지워진 것 같습니다. 지역사람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임파워먼트 시킬 것인가,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들이 주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듣고 싶은데 그런 내용을 하기 전에. 사무국과 일반 주민들, 회원들, 참여하는 분들과의 관계가 밀접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갈등의 소지를 담고 있기도 해요, 그런게 사실입니다. 3분도 사무국활동을 해보셨는데 사무국과 일반 참여자들과의 관계, 사무국의 역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2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정외영선생님부터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웃음)


정: 저희같은 경우에는 초기에는 실무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을 처음 구성할 때 운영위원이라는 걸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이 되면 문도 열고 이런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온전히 생활 속에 있다가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이제 막 욕구를 해결하는 과정에 들어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까 그 동안의 생활의 습성이나 문화나 태도가 모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됐어요. 1차적으로 그 시간대만, 하고 싶은 때만, 프로그램 있는 때만 왔다가니까 책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상근의 개념이었죠.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해서 이 환경에 관심이 있는 한분이 실무자란 이름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자를 두자라는 문제로 오랫동안 토론을 했어요. 왜 그게 필요하냐, 그렇게되면 교통비라도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가 3천원씩 내서 겨우 이렇게 하는데 부담이 너무 크다, 해결방법에는 뭐가 있냐, 이런 오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마침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그러한 것들을 역할을 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거다, 이런 믿음을 갖자, 이러면서 실무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만원의 교통비 준비를 하면서 실무자의 개념이 생겼는데요. 처음에 주민지도 참여하신 분들은 실무자의 개념도 없고 실무자에 대한 아무런 판이 없었죠. 그냥 사무실을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조금 늦어도 부담이 적겠네, 이렇게 가볍게 생각을 했는데 실무자가 성실하게 자신들과 만나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너무 감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실무자가 그전에는 해보지 못한 기획들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겨울방학교실, 우리는 하고 싶어도 띄엄띄엄 했는게 자원을 개발하는 것도 더 활발해지고 하니까 믿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획득했어요. 서로 격려하고 운영위원회가 역할을 해주는 것에 대해 실무자가 깍듯하니까 이 관계를 이분들은 처음 경험하신 거예요. 지금까지 녹색의 회원들은 실무자에 대한 감동의 경험이 꾸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 실무자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큽니다. 어떤 거냐하면, 우리는 생활자로서 우리의 생활의 문제의식을 갖고 오지만 실무자는 젊은 친구들이 뭔가 목표를 가지고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놀랍다는 거예요. 이 관계는 우리 운영위원들이 성장해가는 것에도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미처 이 신뢰의 경험을 충분히 해보지 못한 분들, 시간이 가고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이게 가능한데 그렇지 못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의 충돌도 없지는 않았는데 이럴 때마다 우리가 서로 어떤 역할로 만나느냐, 즉 실무자의 역할은 무엇이고, 참여자들은, 특히 주민지도자로서 운영위원들의 역할은 어떤거냐 하는 문제가 굉장히 진지하게 토론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중요한 협력자인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무신뢰나 믿음이 지속된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이: 상호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창권선생님한테 여쭙고 싶은거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실무자와 일반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한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 참여한 회원도 있지만 사무국이 중심적인 일을 하다보면 소외되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사례가 있다면 설명해주시고, 그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 사무국의 문제, 상근자 다 똑같은 과정을 겪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사랑방같은 사무실, 그걸 지키는 사람 이렇게 상근자가 시작되었고, 회원도 없는 상태에서 상근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떨 때는 상근자가 점심을 굶을 때도 있었고,(웃음)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신문배달을 할 때도 있었고 아주 어렵게 지낼 때가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회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역할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으는 역할에서 벗어나서 지속적으로 사업이 확대되고 진행되는 사업이 길게 되면, 모으는 역할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역할이 상근자에게 많이 넘어가게 되지요. 그럴때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오해가 발생하게 되는데 소외감(상근자가 다 정해놓고 우리는 들러리 서는 것 같다)에서부터 시작해서. 저희는 이름을 희망세상으로 바꾸면서 상근자를 2명 더 늘렸는데, 상근비가 작지만 지급되고 있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는 일반회원하고 있는데 상근자는 상근비 받고 있지 않나, 그럼 상근자가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런 갈등. 누구는 상근자고 누구는 자원봉사하는 일반회원이고 회비만 내고, 이런데서 오는 갈등들이 많이 있었고, 이런 문제를 푸는데 왕도가 있을까 저는 먼저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업을 놓고 회원과 상근자간의 긴밀한 소통이 약해질 때 갈등이 반드시 생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통의 구조, 그리고 원만하게 서로가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계속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약해지면 그게 갈등으로 발생되고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복지세상은 희망세상과 녹색삶과는 다른, 처음부터 상근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일으킨 단체인데 양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윤: YMCA는 비영리운동단체로서 한국사회에서는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고 기본적으로 조직운영에 대한 틀에 대해 모범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초창기 YMCA가 결성된 과정과체는 똑같은 것 같아요. 청년들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상근자 없이 활동하다 활동역영의 폭이 넓어지면서 상근활동가가 생기고, 그런 체계가 천안YMCA를 만들때는 구조가 정형화되었던 것 같아요. 별로 고민안하고 당연한 걸로, 전문적인 상근활동가가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어요. 실제로 시민운동단체의 의사결정구조가 책임있게 참여하는 그룹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운영위원회와 이사회 구조거든요. 결국 갈등표출은 이사회와 사무국간의 갈등표출이 일반적인데, 실제로 천안YMCA를 할 때는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복지세상을 할 때는 그런 갈등들이 많았어요. 생각해보니까 YMCA는 만들어지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간동안에 사무국과 이사회가 조직화되기 전에 오랜 기간동안에 서로 소통하고 서로 역할에 대해서 교류하고 인정하고 긴 상호간의 신뢰, 조직체가 결정되기 이전에 4년이라는 시간동안에 그런 밑작업들이 있었죠. 그래서 자연스러운 전통으로, 사무국은 사무국대로 일하고, 이사회는 그런 사무국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돕고, 이런 구조로 일을 해왔던 거죠. 근데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 때는 1년정도, 뜻맞는 사람들이 이사회구성하고 정관만들어서 간판붙이면 되거든요. 저희는 간판없이 시작해서 더 시기가 짧았죠.(웃음) 그렇게 하고 나서 제가 이게 문제구나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거죠. 상대적으로 복지세상에 이사회로 참여하신 분들이 젊은 분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운동경험이 없었던 분들이 훨씬 많았고, 그게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운동의 방향이나 내용들을 결정하는데 상당히 역동적이고 이런 부분은 있었지만, 실제로 초기에는 현장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사회복지운동과 문제에 관심이 있을만한 분들을 창립준비위원으로 모시고 그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했거든요. 그러니까 전문가그룹들도 일부있었고 시민들 중에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 저희처럼 상근활동가로 경험있는 사람들로 구성을 했는데.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이론적으로, 예를 들면 전문가 구성비율이 많았는데 일반시민들도 전문가분들도 현장을 모르긴 마찬가지인데 어떤 문제가 발생했냐하면, 전문가분들은 말이 되시잖아요. 그래서 모든 이사회 분위기를 자기들 중심으로 끌고 가고. 저희는 사회복지운동을 바닥운동으로 설정하고 나름대로 사회복지운동을 내실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이 운동을 시작을 한건데 이사회에서 계속해서 이념속의 공방을 하게 되고 이사들조차 자기사명을 내면화시키는데 걸림돌을 만드는, 그런 이사회로 되고. 사무국과 이사회의 갈등들이 계속 생기기 시작했어요. YMCA의 조직에 갖고 있던 핑크빛 환상이 계속되는 것 때문에 실제로 조직에 대한 경험이 짧고 낙관적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조직으로 형성되면 조직의 운영되는 논리와 구조가 있잖아요. 사무국은 현장에서 주민조직이나 당사자들을 만나는 기회나 경험들이 많은데 비해 이사회는 그런 경험들이 없잖아요. 그런 이사회를 계속해서 설득하는 과정으로 가게 되었어요. 나중에는 이사회가 점점 교체가 되죠. 보완이 되지는 하지만 실제로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시작했던 저희가 조직구성하는 것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현재 인큐베이팅되서 나간 단체들 중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장애인단체 같은 경우가 아주 독특한 것 같아요. 장애인단체는 당사자 조직이잖아요. 조직을 만들어서 필요한 사업을 해나가면서 활동가를 채용하는데, 장애인단체에 비장애인이 상근활동가로 채용이 돼서 일을 하는거죠. 생각보다 너무 많은 갈등들이 표출이 되고, 조직의 위기가 올 정도로 갈등들이 표출이 되고. 현재 진행형이예요.

얼마전에 미국에 6개월 정도 연수기회가 있었어요. 아까 장난삼아서 일을 하면서 소진되고 지치고 힘들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현장에 나가서 당사자들을 만나고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자체는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그 과정은 여기 계신 분들 다 아시겠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그 일을 하는게 떨리고. 근데 결국 문제는 그 일을 하기 위한 조직운영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가 여기에 갈등이 있고 갈등의 핵심이 항상 저는 이사회였어요.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자체가 현재 이사회이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잘해나갈 수 있을까, 참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미국의 서점에 가서 참 놀란게 비영리민간섹터 쪽 책들을 봤는데 비영리단체 이사회와 관련된 책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제가 이걸 보면서 이게 비단 한국의 비영리단체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일반적인 문제였구나 라는걸 새삼스럽게 느꼈어요. 거기는 그런 문제들, 갈등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지 또하나는 끊임없이 비영리단체에 참여하는 회원지도력들을 어떻게 지도력으로 성장시키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들이 너무도 많다는 거죠. 실제로 이사들이 자기가 속해있는 단체들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실제적인 기술과 교육내용이 너무 많은 것들을 봤어요. 제가 느낀 것들은, 중요한 것은 한 조직단체에 적어도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바닥에서 현장체험을 하고 자연스럽게 지도력으로 성장하시는 분들이 이사회를 구성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거 분명하거든요. 근데 현재 여건상 너무나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거든요. 근데 이건 어쨌든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제 문제는 이런 비영리단체들의 성격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냐, 문제의 초점은 경험이 없는 분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때로는 지역사회 여건상 활동역량이 있는 분들은 이단체 저단체 이사회로 중복수령, 예를 들어 고창권선생님이 반송지역에서 활동하시지만 지역의 다른 단체들의 요구가 있을 것이고 본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이단체 저단체 이사회에 참여하실 곳이 점점 늘어나고, 그건 무슨 얘기냐 하면, 이사들의 질이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 비영리단체 활동들은 현장에서 실무자들이 하지만 실제로 조직운영과 관련되서 이 일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도록 하는 조직시스템이 중요한데 그 시스템을 결정하는 것 자체는 이사회의 책임이거든요. 근데 그런 것을 결정하는 구조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거죠. 저는 그게 한국 시민운동의 현실이라고 봐요. 그거를 놓고 보더라도 왜 풀뿌리운동이 중요한가 그런 것들도 바닥에서 훈련받아야 되거든요. 근데 한국 시민운동이 일정정도 허수일 수밖에 없는게 조직운영체는 많은데 실제로 그 안에 내실(사람)이 없는거죠. 실제로 한사람의 지도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자체는 10,20년 역사가 짧죠. 그런데 그런 과정없이, 현재 풀뿌리단체, 시민운동단체의 조직구성이 너무나 바닥에서부터 현장에서 일을 배우지 못한 분들이 조직체계를 구성하고 그분들에 의해 모든 것들이 결정되는 과정자체 때문에, 조직을 운영하면서 너무나 소모적인 부분이 많다 그거를 말씀드리고 싶고. 너무 소모적이고 활동가가 소진되는. 저는 그래서 녹색삶과 반송의 모델들이 빨리빨리 나오고, 그래서 이사회와 사무국이 현실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 사회조건으로는. 그럴 경우에 바람직한 이사회와 사무국의 역할, 내용들이 정리되서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교육․훈련되면 좋겠다, 사실 조직자체를 만드는 것들은 지역사회에 헌신하기를 바라는 조직을 만드는 건데, 그 조직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소모적인 경우가 많고 사람을 쓸데없이 소진시킨다, 엉뚱한 부분에 소모되는 부분이 많아요. 한국의 비영리운동에 적합한 이사회와 사무국, 주민조직간의 내용들이 이제는 좀 체계적으로 정리되서 나오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앞의 2단체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분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그런 문제는 별로 없는데, 처음에 단체로부터 시작해서 지역사회의 전문가분들로 이사회를 꾸리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발굴된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활동의 내용을 보자면 녹색삶이 다른 단체보다 특별히 모범적이거나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아주머니들의 주체적인, 임파워먼트, 변화되는 과정들이 그런게 눈에 보여서 좋은 것 같습니다. 참여자들이나 지도자들의 임파워먼트되는 과정이 특별히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행하면서 그렇게 이루어 졌는지, 있다면 프로그램이 어떤건지, 아니면 특별히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변화들을 만들어지게 되는지,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고창권선생님부터.


고: 참여하는 회원들의 역량을 높이는 문제는 지금 10년째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중심축을 이루는 회원들, 특히 활동을 열심히 하는 회원들의 생각,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거기서부터 힘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인식을 가질 때도 같은 방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항상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같이 공부하자, NGO단체의 역할이랄까, 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떤 관점을 가져야 되는지. 교육, 이런 형태의 새로운 교양,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많이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부학교도 많이 했었고요, 여러가지 환경문제라던지, 구체적인 사업에서 다양하게 문제가 제기되면 반드시 전문가를 초빙해서 전체 회원들과 하는 강좌 등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했고. 10년동안 활동을 해보니까 회원들이 생각이 일치하는 선까지만 활동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어느 한사람이 더 생각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활동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회원들이 같은 생각을 가질 때 거기까지는 반드시 실천이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좋은아버지모임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직장과 집만 오가던 아빠들이 지역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좋은아빠 절대로 그냥 안된다, 좋은아버지가 공부해야 된다 이렇게 해서 좋은아버지학교, 또 여러가지 자녀대화, 부부대화,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들, 그것을 밑받침하는 실천활동들-아이들과 함께하는 좋은아버지 캠프- 이런 다양한 실천활동을 결부해서 다양한 교양과 공부를 체계적으로, 제일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는 선까지는 반드시 실천이 가능했고, 지역에서 활동이 가능했다 이렇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이: 고창권선생님께서 2006년 5.31지방선거에 한나라당의 쓰나미에서 열린우리당 출신으로 1등으로 당선되셨답니다. 호남지역을 제외하고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말씀을 해주시죠.


고: 선거에 참여하는 문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비슷하게 고민할 것 같은데요, 4년마다 지자체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저희도 4년 정도 되었을때 선거가 있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거는 여러 가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판단이나 결정이었다, 상당히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전체 회원들의 힘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 그 당시가 되니까 어디든지 다 그렇지만 지역에서 보면 기득권세력이 어디든지 있습니다. 근데 어떤 단체가 지역활동을 활발히 하다 보면 반드시 힘이 부딪혀요. 부딪치면서 계속 마찰이 일어나게 되고 압력이 들어오게 되고, 심지어는 우리가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으로 풍물패를 운영하는데 강제로 임의로 폐강시켜 버리고, 이런게 공공연하게 벌어지면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있구나, 드디어 때가 왔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웃음) 그런 과정들 속에서 전체 회원들과 선거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상당히 논란이 많았습니다. 한 2,3개월 정도의 시기가 필요했고, 참여할거냐 안할거냐, 우리가 NGO단체를 해왔는데 선거에 참여하게 되면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셨고, 근데 결국 생활정치라는 것은 전체적으로 지역에서 모범이 필요하다, 생활속에서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반응들 속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설득과, 집집마다 찾아다녔습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돌파구다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당시에는 지역의 유지급되시는 분들이 다 나오셨는데 새마을금고이사장님이나(웃음) 4선에 도전하시는 구의원도 계셨고, 암튼 운좋게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전체 회원들이 거의 후보가 되었습니다. 전체 회원들이 다 뛰어들었고, 돈이 문제가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직접 검증받았다, 3년동안의 활동이 우리는 검증했다라고. 선거를 통해서 그 정당성을 획득하고 당당하게 진입을 한거죠. 그 과정들 속에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은 정당공청이 있었는데 우리 회원들 중에도 다 달랐습니다. 이 회원들이 당을 떠나서 같이 하겠다 그런 결의 속에서 또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회원들이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활동했던 것이 옳은 일이었다 하는 것, 계속 어떤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믿어주신다는 부분에서 확신이 섰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10년째 활동을 계속 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선거에 참여한 것이 회원들이 모두 같이 집중할 수 있는, 단결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고, 실제로 선거를 통해서 일치감을 갖게 했고, 그 과정에서 성공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의 활동에 대한 인정받고 자부심을 높혀준 계기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외영선생님께서 아까 여쭤본 프로그램에 대한 것을 말씀해 주시죠.


정: 내부에 조직력, 지도력이 성장하기 위해 크게 3가지 정도의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정말로 스스로가 내가 이 조직에 꼭 필요하구나, 내가 없어서는 안되겠구나란 역할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 속에서 스스로가 이 역할을 정말 내가 내것으로, 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인정되어야 한다라는 점입니다. 그건 일반 회원들도 마찬가지로 역할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책임있는 관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지도자가 이 운동을 자기 삶에서 진정으로, 이 조직이 표방하고 있는 목적이나 목표나 원칙에 하는 것들에 있어서 본인이 진정으로, 본인이 갖게 되는 변화의 과정 혹은 그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 동력자, 그 부분을 성실하게 같이 갖고 가야하는 관계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가 프로그램의 문제인데요, 이 프로그램은 굉장히 다양하다고 봅니다. 우선 일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의도 프로그램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외부에 있는 교육이나 내부적인 학습스터디, 이 모든 것들이 프로그램에 들어가는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해서 이 부분으로 누군가에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3가지가 종합적으로 한사람이 처음 작은 뜻을 가지고 아주 소박한 동기를 가지고 한조직과의 관계를 시작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 자기 삶에서 가치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 그 부분으로 내 삶이 조금씩 의미성을 더 부여할 수 있는 방향성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삶이 자긍심과 성취감으로 조금더 성장하고 있다는 걸 수시로 확인해가는 과정, 이것들이 한 조직에서 내부에서 참여자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신뢰와 지지를 받으면서 그 조직운영에 책임을 지고 가는 그런 지도력으로 성장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전 두번째 것을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경험하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적습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조직에서 주민이 만났을 때 이부분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조직은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달라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로 내가 당신의 삶과 우리의 삶의 변화에 대해서, 제 삶이 이 과정 속에서 함께 변화하는 경험을 꼭 하고 싶다고 하는 진정성이 둘과의 관계에서 책임있게 확인되어 지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확인되는 것을 인간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만나는 주민이 자기 삶속에서 이 문제를 진정으로 혹은 책임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주민조직방법에 관련해 보고서를 쓰다가, 외국에는 조직화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와있어요. 조직화의 역할 중에 외부세계와 주민을 연결시킨다 그런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녹색삶이나 주변을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데 그 활동이 인정이 될 필요가 있어요. 그 인정이 외부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게 하는거예요. 제가 본 어떤 곳은 외부에 회의가 있을때 한 회원분을 데리고 가서 자기가 중요한 사람, 역할을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게. 인터뷰가 들어오면 활동가가 하는게 아니라 그 분이 직접 얘기를 하도록 하는 거죠. 그사람은 사람들이 나의 활동을 인정해주는 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거죠. 그게 아주 조그만 것 같지만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더라고요. 복지세상도 같은 경험이 있을 것 같고, 실무자들이 같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윤: 정외영선생님 말에 동의하구요, 저는 사례만 말씀드릴게요. 복지세상에서 인큐베이팅한 두 단체사례가 하나가 충남장애인부모회라는 장애인당사자의 조직이고, 하나는 미래를여는아이들은 일반 시민들이 만든 저소득가정아이들을 돕기 위한 아동복지단체예요. 두 단체가 내부의 지도력들을 형성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단계가 매우 달랐어요. 복지세상이 98년에 창립하고 지역의 저소득가정 아동들 문제가 심각했고, 이 문제를 접근하기 위해 방과후교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단계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데 미래여같은 사례가 가장 모범적이었다라는 생각을 해요. 일반 시민으로서 지역사회 복지문제에 대해 관심갖고 있는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참여단계가 점점 높아지게 된 사례예요. 방과후교실은 사무국이 중심이 돼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거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셨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 점점 알게 되고 방과후교실 프로그램이 상설화시키면서 일상적인 지원으로 됐고, 방과후교실 운영위원회가 구성되게 됐어요. 처음에 자원봉사자로 소박하게 참여하시던 분들이 점점더 관심이 생기고, 이런 일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 하셨어요. 그렇게 관심폭이 깊어지신 분들을 중심으로 모인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분들께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우리 아이들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리는 거죠. 이분들이 참여폭이 넓어지면서 외부후원을 끌어오시는 됐어요. 가장 발전적인 분들은 지역의 아동복지 문제에 대한 포럼이 있으면 참여하시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그런 건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단계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만들어지게 되고, 미래를여는아이들이 만들어질 때 이사회를 구성하시고 자원봉사자나 초기에 후원활동가로 참여하셨던 분이 점점 참여단계를 넓혀서 한조직의 운영을 결정짓는, 그런 위치로 발전하게 된 사례를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하나 충남장애인부모회는 전형적인 당사자 조직이예요. 제 경험상 개인적 관심사로부터 출발을 해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적인 모임으로 거듭나는 것은 엄청난 일이예요. 그래서 저는 녹색삶의 사례가 소중하다고 생각돼요. 근데 제가 충남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이분들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의 경험 +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고 계신 분들인거예요. 일상적인 소모임활동도 진행이 안되요. 예를 들면, 관심있는 분들이 나오지만 얘기를 하다보면 삼천포로 빠지게 되요, 서로의 상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근데 상처를 받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면, 상처가 훌륭하게 극복된 이후에는 서로의 상처를 껴안지만 실제로 그 이전에는 동일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상처주게 돼 있거든요. 오히려 조직안에 와서 상처받게 되고. 그리고 모임의 시간을 정하면 그 다음의 약속을 정할 수가 없고 이야기를 한시간, 두시간 들어주다 보면 모임의 끝이 없어요. 근데 그분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상처 때문에 저희같은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을 많이 하시냐면, 저사람, 저단체도 우리를 돕는 걸 이용해서 자기의 위상을 높힌다거나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조금 도움을 받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대놓고 그렇게 말씀하기도 하세요. 그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자체가 많이 들죠, 3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 것 같아요. 미래여같은 경우는 일반 시민들이 잘 발전한 케이스였지만 충남장애인부모회는 당사자를 조직화할 때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조직이 갖고 있는 성격과 당사자들의 성향과 외부환경의 여건과 실무자들의 역량, 모든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건 없는 것 같아요.


이: 눈에 보이는 것을 하는거야 어려운게 아닌데 사람관계에 있어서는 어렵죠. 풀뿌리운동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지역사회의 주체로 만드는 것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노력해야 할 과제인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어떤 강연을 가서 질문을 받은게 있는데, 어떤 모임의 한사람이 있는데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을 방해만 한다는 거예요.(웃음)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 있는지?


정: 의견을 내면 총쏘는 사람으로, 잘해보려는 의욕에 찬물을 끼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엔 당혹스럽죠. 왜 습관적으로 저런 부분을 저렇게 얘기할까,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왜 그사람이 그런 행위를 할때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는게 1차적으로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반응을 보이게 하는 개인사적인, 사회사적인 배경이 있는거죠. 그분은 자기의 의견을 제출했을때 존중받은 경험, 성공적으로 끌어내주는 관계의 경험이 없었던 거고,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시는 거예요. 사람이 특별히 나빠서, 여기의 뭔가를 안되게 하려고, 고춧가루 뿌리려고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거의 습관적인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부정적인 경험이 훨씬 많으면서 그렇게 대응을 하는 방식으로 묻어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변화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계속 쓰시게 두면 그룹이 집단적으로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럴때는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그건 따로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하고 정말 잘하고 싶은데, 우리가 정말 잘해야 되는데 이럴 때마다 힘이 빠진다, 근데 나쁜 마음이 아니란 것을 안다, 하지만 나쁜 마음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도 힘을 잃게 하면 의도가 아니지 않냐라는 것을 진지하게 얘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 그런 반응에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그런 부분은 자기성찰도 하고 과정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변하거든요. 그리고 그분들도 어떤 분위기에서는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아세요. 근데 통제가 안되니까 나올 수도 있고, 아직 관계가 충분히 신뢰나 동의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데서 그냥 습관적으로 지나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럴때 쉽게 얘기하는게 아니라 결단을 하면서 애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협력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 그룹이 현재는 서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해야 됩니다.

요즘 에너지버스라는 재밌는 책을 읽었어요. 에너지버스라는, 우리조직으로 생각하면 되죠. 우리 힘받아서 뭔가 희망과 기대를 위해서 서로 작은 힘이라도 모아내야 하는 시점에 부정적인 어떤 요인이 계속 우리의 의지를 꺽는다면 이 사람은 가다가 버스에서 내리시오 할 필요가 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각자의 조직에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신뢰관계는 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신뢰가 없으면 이런 이야기가 먹히지 않으니. 지역사회네트워크로 이야기를 넘어가려고 하는데, 복지세상은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유명하지만 사업방식의 중요한 2가지가 인큐베이팅과 네트워크사업입니다. 네트워크 방식의 사업을 중요하게 배치한 이유와 네트워킹에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어떤게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 한 개인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조직을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로 한 조직은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죠. 그래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네트워크가 쉽지 않아요. 현재 한국의 풀뿌리단체들의 네트워크는 거품이 많다는 문제가 있어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름만 걸어놓는 단체가 너무 많은 것,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많은 단체들이 하나의 활동과제나 역할을 놓고 어떻게 실제적으로 네트워크해서 활동하느냐, 그런 경험의 폭을 넓혀나가는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활동을 하는 이유는 결국 지역사회의 성격과 성토들을 바꿔나가는거,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조금더 긍정적으로 변화발전시켜나가는게 목표거든요. 그렇게 놓고 볼때 한 개의 개별단체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고 개별단체들이 갖고 있는 역량과 에너지는 상당히 많아요. 근데 그런 단체들이 다 모여서 활동을 같이 했을 때의 시너지효과는 엄청나다고 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네트워크는 중요하다고 봐요. 왜냐면 한국사회에서 사회복지문제는 상당히 소수의제였어요. 시민운동하는 내부에서도 사회복지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삶의 질 문제, 장애인문제, 아동문제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고 대안이 있는지 시민운동단체들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그런 속에서 일을 하면서 결국 이 활동의 이슈들을 지역사회의 중심의제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고, 그렇게 봤을때 복지세상 개별단체의 활동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복지세상에서 인큐베이팅시킨 단체들이 독립해서 활동하고 그 외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저희가 사무국 역할을 했습니다. 소수의제인 사회복지를 중심의제로 내놓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정치력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고, 관심있는 단체들을 구성해서 천안시장 후보초청 토론회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개별단체만으로 추진할 수 없었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한국의 네트워크활동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단체이름 붙여놓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결국 성과를 가져가는 건 한 단체다 라는, 참여하는 단체들의 피해의식인 것 같아요.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거기서 나온 성과나 자긍심조차도 공동의 경험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기관은 개별 기관에 대한 경쟁이 있어 협력할 당위성은 있지만 실제 연계는 힘들었고 왜 협력해야하는지 설득하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공동의 파이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어요. 저는 가장 큰 성과가 참여한 단체가 지역사회변화를 위해서 개별단체들의 이해관계를 극복한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부터 영역별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그전에 실패경험도 있었지만 그 경험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또하나 궁금한게 지역에 있는 직능단체들과의 관계를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주민자치센터가 많이 생겨서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뜻 손이 안잡히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창권선생님같은 경우에 반송사람들의 대표로 활동하실 때 주민자치센터와 직능단체와의 관계맺게 되는 과정을 얘기해주시죠.


고: 지역활동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주체는 주민이기 때문에 반대쪽에 있든 어디서 있든 적대적일 수 없어요. 그런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올바른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표방해야하는 가치가 있다면 화합과 단결을 중요시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적이다,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주장해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마을은 주택밀집지구인데 500미터 떨어진 곳에 대규모쓰레기매립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용인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제가 직업병, 산업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조사를 해보니까 이것만은 절대 안되겠다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단체가 앞장서서 반대운동을 벌이게 되는데요, 3개월 동안 아주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당시 지역의 분위기는 90%가 용인하는 분위기, 산업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오게 되면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가지고 지역에 환원하겠다, 1년에 3억원을 투자하겠다, 이런 이야기 속에 묵인하는 분위기로 진행된 상태에서 저희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이 그래서는 안된다하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3개월 동안이 매우 힘든 상황이였는데 그 과정에서 부산시와 사업주, 반송주민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힘을 합치는 것만이 이기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대표를 지역유지와 기존세력들에게 다 주고 우리는 밑바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걸 만들어서 출범식을 하는날 사업이 다 끝나버렸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기존에 있는 여러 자치단체들, 지역의 단체들과는 절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해야 됩니다. 근데 그 사이에 풍물패가 주민자치센터에서 갑자기 폐강을 시키더라고요, 그래도 노래방을 전전하면서 고생하면서 풍물활동해서 1년반만에 주민자치센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구의원이 당선되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에서 하는 일들을 주민자치위원회로 다 넘겼습니다. 소식지(홍보), 워크샵(활동평가,사업계획)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잡는 거예요. 그리고 주민자치학교 등으로 주민자치를 실현해갔습니다. 이제 희망세상에서는 대상범위를 넓혀 정기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사회에서 무슨무슨 시민단체협의회가 만들어지지 않은 곳이 없는데 유명무실해서 힘을 빼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근데 녹색삶은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입장을 취하시는지 말씀해주시죠.


정: 네트워크를 유념해야 하는 것은 그 조직적 원칙이 있다고 봅니다. 그 조직이 현재 그 활동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조직이 수행해야 하려하는 주요한 과제와 목표가 위협을 받는다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역에 네트워크가 있을 때 실무자진 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실무자가 여력이 있어 든든한 조직이어야 하는데 저희같은 경우는 활동의 중심은 철저하게 주민중심으로 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원칙에서 주민들이 성장해서 그 부분에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기에 공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시간이 걸려서 지금같은 경우는 각각의 부문에 활동의 노하우를 갖고 계시는 분들이 나타나셨고 그런 분들이 네트워크에 결합을 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일단은 저로서는 주요하게 생각한 것은 저희 활동에 원칙과 목표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자발적으로 우리들의 문제를 스스로 발굴하고 해결과정을 모색하고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그 과정에 개인 스스로가 그러한 결과들을 서로 나누어서 성장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중심에 놓고 판단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네트워크를 명분에 의해서만 결정하기 보다는 그것을 할 주체가 있는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그런 사안에 대해서만 책임있게 네트워크로 결합해야 한다, 명분만으로 결합하기는 힘들다 그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90년대 이후로 많은 시민단체들이 지역에 생겨났지만 그 10년, 15년 동안 시민단체들은 엄청나게 임파워먼트됐다,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행정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힘으로 존재하게 됐다, 이렇게 됐지만 과연 그만큼 시민도 성장을 했느냐, 임파워먼트됐냐, 여기서 볼때 그건 아니지 않는가 시민사회단체만이 임파워먼트 된 거다, 즉 시민단체들의 활동의 역량이 강화됐지만 지역사회 자체가 변화된건 별로 없는 거다, 과연 우선은 사회운동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식의 호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적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고 보는데 어쨌든간에 원론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체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한다면 3분도 그러한 것과 관련되서 특별히 인큐베이터라고 하는 사업으로 풀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복지세상만 인큐베이팅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녹색삶에서도 수많은 인큐베이팅을 했죠. 그리고 희망세상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단체의 성과가 될수 있었지만 지역사회의 성과로 남기려고 하는 그런 노력들이 쭉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쭤볼게요.

고창권선생님이 반송지역에서 주민자치센터에서 ‘반송을 세우자’추진반을 만들어서 반송발전100가지의제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이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게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서 100가지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부분을 얘기해 주세요.


고: 다른 사람들이 계속 구의원을 할것도 아니고 사안별로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우리마을 발전의 이정표를 아예 만들 수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반송을 세우자’란 이름으로 우리 지역에 필요한 10,20년 뒤의 모습을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이게 반송의 요구입니다라고 정한 것을 의논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이것을 추진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주민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10년 뒤의 한번 생각하게 해본다는 것 반송이 20년 뒤에는 이런 마을이 됐으면 좋겠어, 이런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전체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공청회를 하고 그 과정에서 100가지 정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민자치, 지역경제, 환경, 생태 등등 여러가지 부분에 있어서 어떤 마을로 가야되는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 여러 단체가 대부분의 주민들이 같이 공유, 공감하는 이런 내용을 만들려고 추진을 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하고 나니까 주민들께서 지향해야 되는 생각들이 거의 비슷해지는 거죠. 아주 효율적이 되고 주민들의 힘을 모으는데 있어서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풀뿌리운동하는 사람들의 고민중에 뼈빠지게 일은 하는데 지역사회가 바뀌는가, 변화되는가에 대한 회의에 대해 좋은 대답을 전에 해주셨는데 이 자리에서 좀 해주세요.


윤: 세월이 지나면 보이는 것 같아요. 그게 풀뿌리운동의 매력이고 진실인 것 같아요. 근데 변화가 보이기 이전까지 과정이 지난한 것 같아요. 풀뿌리운동은 정말 바닥운동이기 때문에 변화가 드러나지 않고 그일을 하고 있는 우리외에 어느누구도 운동에 대한 의미부여를 잘 안해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끊임없이 자기의미부여를 하고 나가는 것, 근데 세월이 지나면 변화가 생기는 것 그게 참 중요하다고 봐요. 지역사회가 제도나 지원의 변화가 많이 있죠. 근데 제가 생각할 때 변화는 지역사회에 이런 문제를 갖고 고민하고 같이 머리 맞댈 수 있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나는게 변화라고 생각해요. 같은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실제로 늘어나는 것이 변화라고 봐요.


이: 저한테 해주셨던 답과 다른 답이세요.(웃음) 저한테 해주셨던 답은 장애인부모들의 예를 들어보자, 그분들은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지역에 자기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하나 없었는데 자기들이 모여서 일을 하다보니까 후원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자원봉사자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고 자기를 위한 정책도 생겼다는 거죠. 그 사람들이 볼때 지역사회가 변화된거냐 아닌거냐 라는 거죠. 확실히 변했다는 거죠.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으로 3분께 풀뿌리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한말씀씩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외영선생님은 풀뿌리운동을 해야 할때 지역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에 대해서 명언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해주시죠.


정: 다른 얘기 하나만 먼저 말할게요. 며칠 전에 3년 동안 소식이 없던 회원이 연락이 와서는 다른 지역에서 마을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계시대요. 흥분된 목소리로 ‘정말 배운 도둑질이라고요..’(웃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의욕이 나서 그룹을 모았대요. 그런데 지속적이지 않대요. 얼마 못가서 모임이 자꾸 쓰러진다는 거예요. 어떡해야 녹색처럼 신명나게 이모임을 갖고 갈 수 있을지 전화가 와서 배운 도둑질이라고 시민단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 전화를 받고서 반갑고 뿌듯했고 희망과 기대를 느꼈습니다. 짧게 혹은 길게 만났던 우리 이웃들이 각자가 씨앗 하나씩을 갖고 자기 삶터에서 그렇게 한다면 민주주의가 딴데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미 그 꿈의 일부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행복했어요.

이호선생님께서 질문에 대답하면, 처음부터 그림이 있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조금더 존중하고 서로의 경험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만나다보니까 한분한분이 함께 모여서 해나가면서 서로 힘을 주고 받고 이야기 끝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찾아지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하고 그런 경험을 마찬가지로 해오고 있거든요. 의욕이 있다면, 내가 이걸 꼭 해야 한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들어가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면 된다는 믿음이 저는 있습니다. 나머지 어떻게 할까? 그건 함께 만들어가고, 이웃들은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반응하고 외부세계와 관계를 가지려는 의욕을 갖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소중한 첫출발에 의의를 가지고 들어가서 만나라 그러면 함께 해결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박수)


고: 아직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정도 지역활동을 한 뒤에 같이 활동하는 많은 회원들은 앞으로의 10년은 뭘까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던 때의 이 이야기를 30년 뒤에는 다시 웃으면서 하게 될거다라고 회원들하고 얘기를 했는데, 저는 무심히 던진 말이었는데 많은 회원들이 가슴에 많이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분명 어렵고 힘들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제도같은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거구나, 실천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박수)


이: 덧붙이면은 오래 있어야 된다, 주민들이 녹녹한 줄 아느냐 그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윤: 저는 요즘에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개인활동가 입장에서도 그렇고 조직모임에서도 그렇고. 한때 한사람이, 한조직이 열심히 할 수는 있지만 활동에너지와 성과내용이 활동하는 몇사람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보다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경험으로 어떻게 전해져 내려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해요. 너무나 소진하고 지치고 활동을 접고 싶은 만큼 힘들던 때가 있었는데 이것은 풀뿌리운동을 하는 모두의 공동의 경험일 거다, 그러면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수 있을까, 그걸 계속해서 개인이 헌신과 결단으로 놓을 것인가, 특별하게 좋은 지도력이 나올 때까지 활동들을 보류했다 또하고 이런 방식으로 갈것인가 등.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활동가가 자기 안에서 계속해서 활동의 역량, 역동성을 지켜가는 것 그건 본인의 몫이겠지요. 근데 그런 것도 조금은 지원해줄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 조직의 목적이나 목표가 세월이 지나면서 포커스가 분명하지 않을 때 갈등이 표출되거든요. 그런 위기상황이 됐을 때 그걸 조직에게만 맡겨둘 것인가, 저는 그런 것도 서로 돕고 원하는 체계가 지금은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 개인적으로 결단하고 소진하는 형태로 언제까지 남겨둘 것이냐, 결국 이런것들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들이 있어야 된다, 실제로 외국은 그렇게 하거든요. 조직에 위기상황이 오는게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 공동이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그런 지지작업들을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고요.

또하나는 개인적으로 저는 풀뿌리운동이 좋아요. 정말 풀뿌리는 마음뿌리라고 생각해요. 풀뿌리운동은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주는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일을 하는 활동가들은 정말 진솔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뿌린 씨앗들이 어느 순간엔가 드러나는데, 뿌릴 당시에는 잘 모르는데 세월이 흐르면 정말 건강한 씨앗은 건강하게 자라고 그렇지 않은 씨앗은 차라리 쳐내는게 낫다고.(웃음) 결국 그런 것들을 앞에서 하기로 결심한 저희들이 자기 마음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일한다 이런거는 이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일이 자기 삶에서 중요하고 이 일을 하면서 내가 행복하고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만이 결단하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자기고백과 자기성찰이 전제되어있지 않은 풀뿌리운동은 많은 소음과 잡음과 그리고 풀뿌리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부실화되는데 기여한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더디 가더라도 바닥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요즘에 하고 있어요.(박수)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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