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에 일본의 한 심포지움에 발표자로 초대를 받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30분 정도 발표를 위한 2박3일간의 일본 일정은 시간적으로 아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동안 재미있는 사례 방문/조사도 하고,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할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본말과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는 후배, 강내영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방문 당시 한국에도 마을만들기 관련 강의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하야시 선생을 만나 단촐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하야시 선생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솔직히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시사 받을 만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사례들을 소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개인적/비공식적으로 만나 서로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이야기 하다보니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래서 이번 일본 방문기간 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대화 내용 중 마을만들기에 관한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실상, 이야기를 나눈 후 하야시 선생으로부터 한국 마을만들기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 역시 일본 마을만들기에 대한 오해가 다소 해소되고 또한 그 이해도 넓어졌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게 된 계기는 제가 우리나라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툭 던진 말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는 일본에서 수입된 것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민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역사가 있으며, 이러한 마을만들기는 일본에서와는 달리 물리적인 환경개선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커뮤니티 재건 또는 형성이라는 목표 하에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말에, "일본의 마을만들기가 그렇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과거에 일본 책 좀 봤다고 하자, "네가 최근 한국의 마을만들기가 물리적 환경개선 중심으로 이해되는 경향과 또 그런 방향으로 전파되는 것을 우려하듯, 너도 그런 생각을 주로 하는 일본 학자들이 쓴 책만 봐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둘은 친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하야시 선생이 저희 이음과 우리나라의 풀뿌리운동 현황에 대해 주로 묻고 제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거든요.
아래의 내용은 하야시 선생이 일본의 마을만들기와 관련하여 이야기 한 내용들을 간략히 핵심 위주로 정리한 것입니다. 나름으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여긴 것들만 간추려 메모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마을만들기는 정부가 주도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고, 민간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마을만들기는 이것 또는 저것이다 라고 규정할 수 없다. 주민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마을만들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을만들기의 속성 때문에 마을만들기가 일본에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제도를 먼저 만들고 지원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 마을만들기의 고유한 가치이자 장점이다. 물론, 제도는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세타가야구에 많이 견학을 온다.”
(이 부분에서 함께 참관을 하던 관련자들이, 많은 한국의 방문자들이 주로 세타가야구의 마을만들기 지원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높은 반면, 현장에서 주민들이 마을만들기를 수행하는 과정 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현장의 주민들과 만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타가야구의 마을만들기 펀드는 분명 참여의 가능성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펀드 역시도 처음에는 행정에서 물리적 공간 만들기(도로, 공원 등)만을 마을만들기로 인식하여 지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지역 현장에서 마을만들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해오던 이들과 그룹들은 문화, 복지 등의 활동들도 마을만들기임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행정과 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런 갈등의 과정에서 마을만들기 공모 심사위원들도 물리적 공간환경 개선만이 아니라 사회자본 등도 중요한 마을만들기 사업이라고 찬성을 해주어서 지금과 같이 정착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국토교통청에서도 마을만들기에 대한 예산 지원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물리적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해서만 지원을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 신청을 그 외의 다른 부서에만 해왔다. 그러면서 국토교통청에 대해서도 마을만들기에 있어 물리적 환경개선이 아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주장하였고, 결국 지금은 물리적 환경개선 이외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해서도 예산지원을 시작하였다”
“최근 도시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관심보다는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 즉, 기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지속가능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관심이 높고 이런 차원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에 대한 관심이 높다”
“최근 일본의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주요한 슬로건은 ‘안전’, ‘안심’, ‘활기’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곧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화 중에 이음의 주민참여예산제 관련 보고서 발간 내용을 본 후, 주민참여예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 만남에는 일본 자치체 노동조합과 관련된 활동을 하시는 분도 참여하여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주민참여예산제’라는 말이 다소 생경했지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었더니, 하야시 선생이 그와 비슷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해 주었다. 참고로 그 내용도 간략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사이타마 현 시키시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와 비슷한 것이 실행된 적이 있었다. 새로 시장이 된 사람이 예산 편성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고 판단하여, 기획 관련 부서의 공무원에게 시민들이 예산안을 작성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공무원들은 이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길거리에서 홍보활동을 하는 등으로 100여명의 시민을 모집하였다. 이들에게 예산에 관한 교육을 시키고 이들이 예산안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 결정은 시장이 했다. 시장은 공무원들이 작성한 예산안과 시민들이 만든 예산안을 비교하여 그 중 하나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예산편성을 했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면서 이 방식은 폐지되었다”
이 사례는 시장의 주도에 의해 시작되고 시장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위로부터의 변화는 역시 지속가능성을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일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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