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에 일본의 한 심포지움에 발표자로 초대를 받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30분 정도 발표를 위한 2박3일간의 일본 일정은 시간적으로 아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동안 재미있는 사례 방문/조사도 하고,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할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본말과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는 후배, 강내영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방문 당시 한국에도 마을만들기 관련 강의 등을 위해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하야시 선생을 만나 단촐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하야시 선생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솔직히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시사 받을 만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사례들을 소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개인적/비공식적으로 만나 서로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이야기 하다보니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래서 이번 일본 방문기간 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대화 내용 중 마을만들기에 관한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실상, 이야기를 나눈 후 하야시 선생으로부터 한국 마을만들기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 역시 일본 마을만들기에 대한 오해가 다소 해소되고 또한 그 이해도 넓어졌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잘 통하게 된 계기는 제가 우리나라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툭 던진 말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는 일본에서 수입된 것도 아니고 그 이전부터 민간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역사가 있으며, 이러한 마을만들기는 일본에서와는 달리 물리적인 환경개선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커뮤니티 재건 또는 형성이라는 목표 하에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말에, "일본의 마을만들기가 그렇다는 것을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과거에 일본 책 좀 봤다고 하자, "네가 최근 한국의 마을만들기가 물리적 환경개선 중심으로 이해되는 경향과 또 그런 방향으로 전파되는 것을 우려하듯, 너도 그런 생각을 주로 하는 일본 학자들이 쓴 책만 봐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둘은 친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하야시 선생이 저희 이음과 우리나라의 풀뿌리운동 현황에 대해 주로 묻고 제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거든요.

아래의 내용은 하야시 선생이 일본의 마을만들기와 관련하여 이야기 한 내용들을 간략히 핵심 위주로 정리한 것입니다. 나름으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여긴 것들만 간추려 메모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마을만들기는 정부가 주도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고, 민간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마을만들기는 이것 또는 저것이다 라고 규정할 수 없다. 주민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마을만들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을만들기의 속성 때문에 마을만들기가 일본에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제도를 먼저 만들고 지원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 마을만들기의 고유한 가치이자 장점이다. 물론, 제도는 필요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세타가야구에 많이 견학을 온다.”

(이 부분에서 함께 참관을 하던 관련자들이, 많은 한국의 방문자들이 주로 세타가야구의 마을만들기 지원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높은 반면, 현장에서 주민들이 마을만들기를 수행하는 과정 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현장의 주민들과 만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타가야구의 마을만들기 펀드는 분명 참여의 가능성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펀드 역시도 처음에는 행정에서 물리적 공간 만들기(도로, 공원 등)만을 마을만들기로 인식하여 지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지역 현장에서 마을만들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해오던 이들과 그룹들은 문화, 복지 등의 활동들도 마을만들기임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행정과 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런 갈등의 과정에서 마을만들기 공모 심사위원들도 물리적 공간환경 개선만이 아니라 사회자본 등도 중요한 마을만들기 사업이라고 찬성을 해주어서 지금과 같이 정착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국토교통청에서도 마을만들기에 대한 예산 지원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물리적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해서만 지원을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 신청을 그 외의 다른 부서에만 해왔다. 그러면서 국토교통청에 대해서도 마을만들기에 있어 물리적 환경개선이 아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주장하였고, 결국 지금은 물리적 환경개선 이외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대해서도 예산지원을 시작하였다”

“최근 도시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관심보다는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높다. 즉, 기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지속가능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주요한 관심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 지역에 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관심이 높고 이런 차원에서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에 대한 관심이 높다”

“최근 일본의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주요한 슬로건은 ‘안전’, ‘안심’, ‘활기’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곧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화 중에 이음의 주민참여예산제 관련 보고서 발간 내용을 본 후, 주민참여예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 만남에는 일본 자치체 노동조합과 관련된 활동을 하시는 분도 참여하여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주민참여예산제’라는 말이 다소 생경했지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주었더니, 하야시 선생이 그와 비슷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해 주었다. 참고로 그 내용도 간략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사이타마 현 시키시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와 비슷한 것이 실행된 적이 있었다. 새로 시장이 된 사람이 예산 편성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고 판단하여, 기획 관련 부서의 공무원에게 시민들이 예산안을 작성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공무원들은 이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길거리에서 홍보활동을 하는 등으로 100여명의 시민을 모집하였다. 이들에게 예산에 관한 교육을 시키고 이들이 예산안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 결정은 시장이 했다. 시장은 공무원들이 작성한 예산안과 시민들이 만든 예산안을 비교하여 그 중 하나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예산편성을 했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면서 이 방식은 폐지되었다”

이 사례는 시장의 주도에 의해 시작되고 시장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위로부터의 변화는 역시 지속가능성을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일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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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정치연대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가 5월 31일에 공동주최한 '풀뿌리운동과 지역정치' 포럼에서 발표된 이현주 님의 원고입니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의 일원으로 일본 통일지방선거 체험을 위해 여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2주간(3.30~4.12) 일정으로 도쿄도 세타가야구와 가나가와현을 방문했다. 특히 가나가와현에서는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 전 대표이자 현 정치스쿨 이사장인 마타키 교코 씨의 안내로 현 내의 여러 선거사무소를 방문하여 후보 및 자원봉사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이들의 다양한 선거운동방법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현재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의 대모 격인 마타키 씨와 수시로 대화하며 네트워크운동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또 그들이 각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다양한 풀뿌리활동의 거점인 지역복지센터나 보육원, 노인그룹홈 등을 방문하여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지역복지활동이 또 네트워크운동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오늘은 이런 배움을 기본 토양도, 문화도, 민족성도 많이 다르다는 한계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그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서 현실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가나가와네트워크운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오늘 나는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음을 말씀드린다. 단지 나의 한정된 경험을 통한 주관적 생각과 느낌만을 전할 생각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일본 지방선거는 우리와 같은 점도 다른 점도 많이 있었지만, 크게 다른 점 한 가지가 선거를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 치른다는 것이었다. 4월 8일이 전반전으로 도지사, 시장, 도의원 보궐선거와 현의원선거, 지정도시(큰 도시, 요코하마시와 가와사키시)의 시의원선거, 4월 22일에는 후반전으로 작은 선거(기초자치체)가 치러졌다. 우리는 전반전 선거까지 경험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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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5년 1월6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연재 글 중 9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풀잎 운동과 풀뿌리 운동


나일경


국가통치형 정치문화를 탈피하지 못한 사회운동 그룹들은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고 그 권력을 정치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에 관해 관심이 높지 않거나 아예 없기 쉽다. 그런 그룹들은 생활현장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와 관련된 지식들을 동원하여 곧장 정치가나 정부에게 그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운동을 일으킨다. 정치가나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게 되면, 운동은 더욱 더 과격해지고, 한편 운동이 과격해질수록 시민들로부터 운동방법에 대한 동의를 둘러싼 지지를 잃게 됨으로써, 어느 새 썰물과 같이 사라지는 운명을 밟곤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운동그룹들이 지속적이지 못한 까닭을 생활현장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ㆍ운동과정’과 ‘정책형성 (운동)과정’을 생략한 채, 곧장 ‘정치ㆍ행정과정’에서의 운동단계로 나아가는 운동의 전개방식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운동방식을 저자는 ‘풀잎 운동’(草の葉)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まァー, 良いか」しながらオルタナティブ(다 그런 거지 하면서 실천하는 올터너티브)』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1998년, pp. 78-79를 참조.)

 그러면 저자가 말하는 풀잎 운동이란 무엇인가. 풀잎 운동이란,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 그 문제가 생활현장에서 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그 문제의 당사자들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필요하며, 당사자들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운동방법이 필요한가의 문제를 현장에서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는 운동방식을 가리킨다. 그럼, 왜 그와 같은 운동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생활세계를 기반으로 한 운동과정을 통해서만이 생활자ㆍ시민의(of), 생활자ㆍ시민에 의한(by) ‘사회적 권력’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풀잎 운동의 리더들이 “자신은 생활자를 위한(for) 운동의 대리인이며 사회적 정의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문제해결수법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의 대리인(해결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기성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풀잎운동에 대치되는 ‘풀뿌리 운동’이란 무엇인가. 풀뿌리 운동은 “생활ㆍ운동과정->정책형성과정->정치ㆍ행정과정”의 절차를 거치는 가운데, 각각의 단계에서 ‘참가’와 그에 따른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운동이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역자 후기를 참조). 따라서 풀뿌리 운동의 리더는 생활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리인으로서 위임받는 것을 거부한다. 풀뿌리 운동의 리더 역할은, 당사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를 정리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즉 풀뿌리 운동의 리더에게 중요한 활동지침이 되는 것은 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을 통해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하는 주민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들의 네트워크를 촉진시키고 그 규모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풀뿌리 운동의 리더는 현장에서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민자치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을 활동의 기본으로 삼는다. 풀뿌리 운동의 리더는 생활운동과정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책형성과정을 통해 과제를 정리하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형성 능력을 향상시키며, 정치행정과정을 통해 정책을 실현시키는 전략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를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활동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풀뿌리 운동은 주민들의 마음의 근육을 운동시키는 정책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풀잎 운동의 리더는, 생활운동과정과 정책형성과정에서의 운동을 생략하기에, 정책을 만들어 내도 그것은 작문으로서의 정책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풀잎 운동에서는 동원되는 주민들은 있어도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주민은 적기 마련이다. 또한 풀잎 운동에서는 요구를 하고 저항을 하는 주민의 모습은 발견돼도, 대안을 제시하며 참가에 따른 책임을 짊어지는 주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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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12월13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 게재된 나일경 박사의 연재 글 중 7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사회적 권력=문제를 정리해서 과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제시해서 해결하는 힘


나일경

“생활클럽 운동그룹은 사회적 권력의 구현체이다”라는 말은 기이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 까닭은 권력이라고 하는 것이 오직 ‘공권력’ 혹은 ‘정치적 권력'이라는 의미로 한정돼서 협소하게 생각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클럽 운동 그룹은 사회시스템과 그 운동역학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더욱 더 넓은 의미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넓은 의미에서의 권력이란 공통의 과제나 공적인 과제의 해결방식을 결정하는 힘을 말한다. 즉 각 개인들의 결정을 기반으로 한 합의에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개인 혹은 조직에게 따르도록 만들며 공동으로 결정한 것을 집행하는 힘이 권력인 것이다.   
 생활클럽 운동 그룹이 사용하는 사회적 권력이란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즉,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어 문제해결을 목표로 행동한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 권력’을 만들어 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클럽 운동 그룹에서는 사회적 권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조직의 의사에 개개인의 멤버의 의사를 복종시키는 강제력임과 동시에,
 2) 공통의 합의를 기초로 멤버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을 통해 다른 조직이나 조직 바깥의 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강요하는 강제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생활클럽 운동 그룹에서는 생활클럽 생협이 실천하고 있는 반별예약공동구입을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는 운동의 전형으로서 위치 짓고 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들로서는 조금도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매력이지만, 반별예약공동구입을 통하여 단품마다 각 개인들의 주문에 대한 요구사항과 의견을 정리하는 결정을 행하고 그 결정에 각 개인이 따르는 것을 통해 커다란 구매력을 형성함으로써 생산자가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인 강제력(문제해결능력=사회적 권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이 생산자들로부터 안전한 소비재를 제공받고 싶다는 조합원들의 의지를 생산자들에게 강제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공통의지를 실현하게 된다는 점에서, 반별예약공동구입은 사회적 권력 만들기 활동이라는 것이다.(요코다 카쓰미(橫田克巳)『市民資本섹터를 만들기 Ⅲ―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시스템의 섹터 밸런스―』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2001년, 18-19쪽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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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2월6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연재 글 중 6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정치생활 용구로서의 대리인 운동=의원의 ‘공동구입 운동’

나일경

생활클럽ㆍ생협이 의원을 정치적 ‘대표’가 아니라 정치적 ‘대리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첫 째 정치인의 역할이 생활클럽 및 생활자ㆍ시민이 제안한 정책을 ‘대리’하는 것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대리인이라는 말에는 자신들 대신에 의회에 누군가를 보내게 되지만, “자기 자신의 삶과 마을을 자치하는 것은 생활자ㆍ시민이다”라는 시민주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대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 이 말이 정치인에게 유권자의 주권을 ‘백지위임’한다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리인이 직업화되어서 청부형 문제해결사로 변질된다든지 세습의원의 심화현상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정치가 가업(家業)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2기 8년제(도쿄의 생활자 네트워크는 3기 12년제)의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리인 운동은, 생활클럽운동이 원재료가 확실하고 안전한 ‘소비재(消費材)의 반별예약공동구입 운동’에서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통해서 발견된 문제점을 과제로서 정리하고 그 해결책을 공공정책으로서 정리하여 제안하는 활동, 즉 정치활동의 결과물(정책)을 의회에서 처리하는 의원을 생활자ㆍ시민이 ‘공동으로 구입하는 운동’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또한 생활자ㆍ시민이 생활클럽ㆍ생협을 ‘(일상)생활용구’로서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리인 운동이란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지역정당) 및 대리인을 생활자ㆍ시민의 ‘정치생활의 용구’라고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운동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리인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들의 자치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는 것이다.(渡辺登「생활자 정치의 현상과 그 의미―대리인 운동의 분석―」『都市問題』1995年 7月号;天野正子「生活者運動의 형성을 위해」『都市問題』1996年 10月号를 참조.)
 
 그러나 ‘가나가와 네트’가 성장하는 가운데 일반적으로 대리인이라는 말이 변호사나 각종 전문가를 가리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유권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오해를 사기 쉽다는 점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즉 “가나가와 네트의 의원이 ‘생활자ㆍ시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생협이라고 하는 이익집단?의 대변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활클럽 운동은 의회에 생협의 이해를 반영시키려는 압력집단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고 하는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의 문제를 고려한 결과, 97년의 제14회 총회에서 대리인이라는 명칭을 ‘네트 의원’으로 개명하게 됐다.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미래에 대한 책임: 2002년 정책자료집』2002년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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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4월11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시리즈 글 중 5회째로 연재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참가,분권,자치,공개의 민주주의적 수법

나일경

‘참가,분권,자치,공개의 민주주의적 수법’은 시민자치형 문제해결수법의 내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즉 ‘참가․분권․자치․공개’는 생활자ㆍ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권에 근거해 사회적 권력(문제해결의 힘)을 만들어 내는 운동의 지침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작동’시킨다고 하는 ‘자율적인 개인’을 기초로 하는 개념이다. 또한 그러한 개인들에 의한 시민자치형 체제’(국가통치형 민주주의에 대치되는 개념)의 구체적인 운영 메커니즘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생활클럽 생협운동에서는 생활자,시민의 문제해결 활동이 다음과 같은 행동원칙과 조직운영 원리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하나, 그 해결을 영리기업이나 행정활동에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조직과 권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그 운영에 스스로 ‘참가’한다.

 둘, 여기서 말하는 ‘참가’는, 권력을 집중하여 지도부의 결정에 일반멤버가 단지 복종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과정에 참가하는 것을 말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진다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참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결정권의 분산, 즉 ‘분권’이다. 그리고 이 분권화된 조직구조 하에서 결정권을 실질화하는 것, 즉 결정능력의 향상시키고 결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정보공개’이다. 

 셋, 분권을 적절하게 행함으로써 생활자․시민의 조직활동은 타인이 결정한 것을 단지 수행한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 것을 자신이 실행한다고 하는 ‘자치’의 실현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요코다 카쓰미(橫田克巳), 『시민섹터를 만들다 Ⅲ-포스트 자본제 시스템의 섹터 밸런스』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2001년, 19-20쪽을 참조.)
 
 따라서 생활자 정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기성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1) 청부형 문제해결 수법에 대항해서 ‘참가형 문제해결 수법’, 2) 집권적 구조에 대항해서 ‘분권’적 구조를, 3) ‘백지위임의 정치’에 대항해서 ‘자치’와 ‘공개’의 정치를 대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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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11월2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시리즈 글 중 4번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또 하나의 노동방식과 사용가치의 사회경제학적 의미 


나일경

 현대사회에서는 고령화와 핵가족화,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 등의 진행으로, 가족생활의 내부에 있었던 식사, 육아, 교육, 노인간호 등의 부분이 외부화 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와 같이 외부화 되는 생활공간을 누가 짊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워커즈 콜렉티브는 이 문제에 대한 생활클럽 운동그룹의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발전된 것이다. 워커즈 콜렉티브를 통해 가정생활 안에 묻혀 있었던 ‘생활기술’을 조직화하고, 지역사회 안에 묻혀 있었던 ‘개인자원’들을 조직화하는 대안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안운동으로서의 워커즈 콜렉티브의 사회경제학적 의미를 세 가지 점에서 정리해보자.

 첫 째, 워커즈 콜렉티브는 ‘또 하나의 노동방식’을 추구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사적 기업의 집합체인 산업자본섹터에서의 노동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집합체인 세금자본섹터의 노동은 관료제 조직에 의해 위로부터 지령을 받는 노동이며, 노동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생산성과 효율이다. 따라서 산업자본섹터와 세금자본섹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격은 비인격화되기 쉬우며, 노동은 화폐와 권력에 의해서 소외되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시민자본섹터를 구성하는 워커즈 콜렉티브의 조직구조는 관료제적ㆍ피라미드형의 종적 구조가 아니라, 권력과 화폐로부터 자유로운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네트워크형의 횡적 구조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이와 같은 구조가 가능한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자신들이 직접 노동과 분배의 규칙을 정하며, 사업목표를 정하여 일하는, 즉 자신들이 관리하고 운영하는 시민사업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자본과 직접 민주주의에 기초한 노동자 자주관리의 시민사업체이다. 따라서 워커즈 콜렉티브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립도, 경영과 노동의 대립도, 고용하고 고용되는 고용관계도, 관리하고 관리되는 지배관계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워커즈 콜렉티브의 활동은 ‘또 하나의 노동방식’(alternative work)을 추구하는 노동운동으로 자리 매김 되는 것이다.

 둘 째, 워커즈 콜렉티브의 노동(커뮤니티 노동)은 ‘교환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생산’으로의 회귀를 지향하는 경제운동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워커즈 콜렉티브는, 상품, 서비스 등을 ‘화폐’로 환산하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만큼 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사용가치’(생활가치)에 입각해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경제적 섹터(시민자본섹터)의 확장을 지향한다. 워커즈 콜렉티브의 노동은 시장에서 ‘교환가치’를 창출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생활 속에 실제로 필요로 하고 있는 서비스나 생산물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사용가치’를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복권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워커즈 콜렉티브의 활성화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경쟁시킴으로써 교환가치 그 자체를 ‘상대화’시키는 기능을 지닌다. 워커즈 콜렉티브 운동은, 고용하고 고용되는 관계를 지양하는 것을 통해, 시장의 임금노동이라고 하는 노동형태를 상대화시켜, 비시장적인 경제권(시민자본섹터 혹은 시민적 경제권)을 생활협동조합과 더불어 확대시켜나가는 사회적 경제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셋 째, 워커즈 콜렉티브는 위와 같은 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공동체적 사회관계의 회복을 지향하는 커뮤니티 운동의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워커즈 콜렉티브가 만들어 내는 사회관계는 시장의 화폐와 상품관계와는 기본적으로 상이하다. 워커즈 콜렉티브의 노동과 그 대가(즉 커뮤니티 노동과 커뮤니티 가격)는,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만들고 지속해 나가기 위한 것이지, 기업과 같이 이윤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워커즈 콜렉티브 운동은 여성운동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워커즈 콜렉티브의 활동에는, 지금까지 교환가치를 낳지 않기 때문에 언페이드워크, 쉐도우 워크(shadow work), 혹은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간주되어왔던 가사노동(육아노동, 간호노동, 가사노동)이 실은 ‘생명의 재생산 노동’이라는 사회적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토 요시유키(佐藤慶幸),『여성과 협동조합의 사회학-생활클럽의 메시지』文真堂, 1996년, 85-93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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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10월26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시리즈 글 중 3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생활클럽 생협운동의 주체(2)=생활자ㆍ시민


나일경

생활자ㆍ시민이란 생활클럽 생협운동의 주체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생활자ㆍ시민은 시민이란 개념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혹은 주민이나 소비자 혹은 노동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또한 생활자ㆍ시민의 생활자란 명칭은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생활자란 인간 그 자체를 표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활자가 아닌 사람이란 없을 텐데, 굳이 생활자란 말을 사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가.

생활자ㆍ시민이란 말은 사람들의 존재방식(즉, 주민이나 소비자, 노동자)라는 척도를 통해 규정된 유형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원리에 초점을 맞춘다. 생활자ㆍ시민이란 특정의 행동원리에 선 사람들, 혹은 그러한 행동원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실천개념이며 이념형인 것이다.(天野正子「생활자운동의 형성을 위해서-생활클럽생협의 사례를 중심으로」『都市問題』제87호 제10권, 1996년 6월호, 29쪽을 참조.)
그렇다면 생활클럽 생협운동은 생활자ㆍ시민이라는 말을 통해 어떠한 행동원리를 지향하는 주체성을 만들려는 것일까.   

 첫 째, 생활자ㆍ시민은 자신의 생활을 생산과 소비 및 정치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활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먼저 실천해 나가는, 혹은 그러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생활자ㆍ시민이라는 말에는 문제해결의 장을 자신의 생활과 분리된 외부의 장(정치나 행정과정)에서만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생활하는 일상생활의 장을 포함해서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활동을 해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자ㆍ시민의 행동규범으로 강조되는 것은 ‘참가’와 ‘책임’이라는 시민적 가치이다. 즉 생활자ㆍ시민은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가에 따른 ‘책임’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지향하는 삶을 표현하는 주체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활클럽운동은 생활자체를 운동화하고 사회운동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생활과 사회운동의 상호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Making Democracy Work in Life)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의 운동화와 운동의 생활화라고 하는 실태가 존재할 때 시민주권을 발휘하는 개인의 능동성이 생겨나고(,) 능동적인 개인들에 의한 사회적 관계들이 생겨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힘이 대의제 민주제를 견제할 수 있을 때(,) 시민자치형의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생활클럽운동의 풀뿌리 민주주의론이다.
       
 둘 째, 생활자ㆍ시민에 대한 위와 같은 행동원리에는 현대 일본사회의 권력(사회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의 존재방식에 대한 비판이라는 자기 주장의 내용이 포함되어져 있다. 생활과 언페이드워크가 이루어지는 일상 생활의 공간은, 타자의 지배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 그리고 그러한 권력의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건전한 권력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따라서 생활자란 상품에 ‘의존’하는 생활을 강제 받는 삶을 거부하며, 소비자로서의 수동적인 삶을 강요하는 산업사회의 ‘사회적 권력’에 대항하는 ‘주권자’라는 자기주장을 내포하는 실천개념으로서 쓰여진다. 예를 들자면, 생활클럽 생협이 자신들이 구매하는 소비재(消費財)에 관해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상품’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사용가치가 높은 재료)이 라고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소비‘재’(消費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주권자로서의 생활자의 자기주장을 상품에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수동적인 소비자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사회경제적인 권력의 존재방식(기업에 의해 조작되는 소비생활)에 대항하는 ‘주체성’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생활자이라면, 정치권력에 문제해결을 백지위임하는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에 대치되는 개념이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자가 일상생활을 둘러싼 사회적ㆍ경제적 환경 속에서 목적 의식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시민이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주권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활자가 사회적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시민은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참가와 더불어 책임을 질 줄 아는 능동적인 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생활자ㆍ시민이란 사회경제적인 권력과 정치권력에 의해 조종되고 조작되어지는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의 존재방식에 불복종하는 ‘정치적’인 주체성을 표현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オルタナティブ市民社会宣言-もうひとつの「社会」主義(대안적 시민사회선언-또 하나의 「사회」주의』現代の理論社, 1989년, pp. 93-94, 118-120쪽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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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10월14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시리즈 글 중 2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생활클럽 생협운동의 주체성(1)=많은 사람들 속의 나(I Among Others)

나일경

‘많은 사람들 속의 나’라고 하는 말은 생활클럽운동의 체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참가형 시스템의 주체(시민주권을 발휘하는 사회적 개인)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생활클럽생협이 반별예약공동구입을 통해 개인의 구매력을 결집함으로써 개인의 힘만으로는 움직이기 힘든 생산자와 생산의 방법에 영향력을 미쳐서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공통의 체험을 표현하기 위한 만들어진 개념이다. 또한 이 개념은 생활클럽 생협을 모체로 한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지역정당)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 한 사람으로는 커다란 힘이 되지 않는 선거권이지만 사람들의 투표행동을 조직화시키면 자신들이 바라는 사람을 당선시켜 시민들의 정치권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쓰여지고 있다. 즉 이 개념은 개개인의 힘을 집합적으로 조직하는 각 개인의 자율적인 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 속의 우리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속의 나’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에서는 많은 사람들 속의 우리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속의 ‘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 사람들은 개인의지를 조직화해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조직을 만들게 된다. 예를 들자면, 생협, 노동조합, 자치회 등이 그렇다. 그리고 각 조직은 과제에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나 권리를 정리해 조직의 의지를 표현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이는 조직 멤버들의 합의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 합의에 대해서 개인이 단지 조직의 결정이기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권력으로서 활용하    기 위해 합의사항에 대해 동의하고 복종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과 ‘나’의 차이이다. 즉 ‘많은 사람들 속의 나’는 조직으로서 개인의 힘을 결집할 때의 개인의 합의방식 및 동의방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의를 높여서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 속의 나’에 의한 조직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점이 바로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지역정당)이 ‘미래를 예시하는 정치모델’로서 불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 속의 나를 자인하는 여성과 시민이 그 동의를 기초로 선출한 ‘대리인’을 사회적 권력 형성을 위한 ‘생활용구’로 삼아, 자신들이 살고 생활하는 지역에서 정치를 개혁해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이 지향하는 생활자 정치인 것이다.

(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네트 ‘98』1998년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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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10월8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 일본의 생활클럽 운동그룹을 주도하고 있는 '참가형시스템 연구소' 소장 요코다 가쓰미 선생이 얼마 전, 논형출판사에서 '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이라는 책을 한국어로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 속에는 나일경 박사가 생활클럽 생협운동의 주요 키워드에 대한 칼럼 11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해주신 나일경 박사님, 그리고 논형출판사 소재두 사장님이 시민자치정책센터 홈페이지에 11개의 칼럼을 소개하는 것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번역자의 입장이나 출판사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 관심 있는 분들과 나일경 박사의 칼럼을 교류하도록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출판사 논형의 소재두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나일경 박사의 11개 칼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칼럼은 '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이라는 책에 중간중간 소개되어 있는데, 칼럼에 대한 내용을 더 면밀하게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꼭 사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비상식->상식->양식(良識)이라는 사회운동의 순환과정

나일경


 생활클럽 운동그룹이 일본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관계를 규정짓는 주요한 척도로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의 해결방식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 ‘청부형 문제해결 수법’에 기초한 정치문화는 시민사회에 비해 정치사회를 과다하게 성장시키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으며, 그 결과 ‘시민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은 이제 일본사회에서는 비상식적인 것으로 간주돼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생활클럽 운동그룹의 일본사회에 대한 진단이다. 즉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에 비춰본다면, 상식이 되어야 할 시민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이 비상식이 되고, 비상식적인 것이 되어야 할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이 상식으로 전도돼버린 사회가 일본사회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활클럽 운동그룹은 시민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이라는 비상식을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양식)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제도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순식간에 바뀔 수 있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본서의 저자는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이 비상식적인 것에서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으로 전화되는 운동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청부형 문제해결 수법에 의존하는 상식적인 세계와 시민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을 실천하는  비상식적인 세계와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놓여 있다. 하지만 상식적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장벽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는 청부형 문제해결 수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생활클럽 운동그룹의 멤버들은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을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상식적인 세계와의 사이에 놓여진 벽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생활클럽 운동그룹의 멤버들은 상식적인 세계를 앞에 두고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이라는 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운동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장벽을 뛰어 넘든 밀고 나가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클럽 생협운동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이 상대방의 영역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순식간에 적을 쳐부수는 것과 같은 운동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활자ㆍ시민의 생리에 어울리지도 않지만, 생활클럽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들의 자치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통해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사이의 힘의 관계를 개혁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생활클럽운동은 생활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가운데 시민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이라는 벽을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이 지배하는 상식적인 세계 쪽으로 ‘밀고 나가는’ 운동방식을 취하게 된다. 밀고 나가는 운동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은,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이 지배하는 상식적인 세계에서는 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이 비상식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한 쪽(비상식적인 세계)은 전기가 통하지만 다른 한 쪽(상식적인 세계)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정류장치의 기호(→┣)와 같은 구조가 비상식적인 세계와 상식적인 세계의 사이에 가로놓여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클럽 생협운동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는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이라는 벽이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이 지배하는 상식적인 세계 쪽으로 밀려진 정도를 통해 가늠된다.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이라는 벽이 상식의 세계 쪽으로 밀려지는 만큼 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이라는 비상식적 실천은 이제 더 이상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의 건전한 상식, 즉 양식(良識)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생활클럽 생협운동이란 참가형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벽을 청부형의 문제해결수법이 지배하는 상식적인 세계 쪽으로 밀고 가는 운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벽을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은 간단치 않다. 벽 앞의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의 결과물이 벽 건너편의 상식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매력을 주면 줄수록 벽 건너편의 사람들이 벽 앞의 세계, 즉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을 실천하는 비상식적인 세계 쪽으로 갖고 오는 ‘상식’이 비상식적인 것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에는 시민참가형 문제해결수법이라는 벽을 상식적인 세계 쪽으로 밀고 있는 사이에 뒤쪽으로부터 상식이 들어온다고 하는 순환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클럽 생협운동은 시민참가형 문제해결 수법이라는 벽을 밀고 나가는 힘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운동 프로그램의 개발을 강조한다. 생활클럽 운동그룹이 비상식의 세계에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 지도력을 발휘하여 동의를 획득하는 다양한 교육수법을 마련하고 활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다 그런 거지 하는 가운데 실천하는 올터너티브』21世紀의 学校、1998年、76-78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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