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도시연구소, [도시와 빈곤] 81호, pp.73-86
나로부터 비상하는 여성이 살고 싶은 마을만들기
박신연숙(서울여성의전화 나飛센터 지역조직국장)
여름 한낮의 나른함을 톡하고 건드리듯 매미 울음소리가 도시의 골목 골목에 울려퍼지는 어느 오후, 주민모임방에 모여 앉아 더위도 잊은 채 무지개빛 열띤 토론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마을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한 달여 남겨놓은 ‘여성폭력 없는 평화마을축제’기획이 한창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시 동작구에서‘여성이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사업을 하면서 만나 온 마을 여성들로 꾸려진 사업팀이다. 마을모임 리더들이 모인 자리가 이렇듯 흥겨우니, 초가을 우리 마을에 평화와 평등을 노래하고 마을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한판 마을축제가 신명나게 펼쳐지겠구나!!
들썩 들썩 ~ 지역여성운동.. in 서울여성의전화
서울여성의전화는 ‘상담’을 통해 여성들의 요구를 접수하고, 여성인권보호 및 이슈 화이팅, 법ㆍ제도 개선운동, 가부장적 의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교육, 문화사업 등을 벌여왔다. 90년대 성폭력, 가정폭력 법제정 이후 성평등하고 모두가 주인되어 살고자 하는 여성운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여성들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지역여성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2002년에는 지역운동센터로 조직을 확대ㆍ개편하면서 지역여성운동의 새로운 도약기를 맞게 된다. 센터장을 두고 전담 상근활동가를 두었으며, 지역의 마당발 회원들을 물색하고 만나 풀뿌리 여성운동의 중요성을 함께 공감해 나가면서 ‘지사모’(지역을 사랑하는 자매들의 모임)를 발족하였다. 그해에 “떳다 지사모!”가 유행할 정도로 지사모의 활약은 돋보였다. 지사모는 서울 곳곳에 지역모임을 결성하면서 지역에 사는 회원들과 만나고 사귀는 일에 앞장섰다. 회원들의 지역조사 및 마을에서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나 활동들을 파악해보고, 마을로 찾아가는 강좌를 열기도 하고, 매년 하는 행사를 지역모임을 통해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실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이때 만들어진 지역모임 리더들이 우리단체 지역여성운동의 초동주체가 되었다.
서울여성의전화는 1983년 창립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여성주의 상담교육을 실시하여왔다. 이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상담활동회원들이 우리의 기반이자 밑천이다. 사무실에 와서 전화상담 자원활동을 통해 여성운동에 동참했던 회원들은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모임을 만들고, 지역실천 활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지역을 바꾸는 주체가 되고 있다. 지역모임은 점차 안정되어갔고, 회원 리더십 역시 성장하였다. 이로 인해, 사무국 위주의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회원들의 주도하에 모임 및 사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지역운동을 위한 주민조직화 성과로까지 나아가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지역운동센터는 지난 해를 풀뿌리여성조직화의 해로 정하고, 모든 마을사업에서 후속모임을 결성하여 지역여성 리더들을 발굴ㆍ성장시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설정하였다. 풀뿌리여성조직화를 통해 마을 여성들 속에서 주체를 형성ㆍ조직하고 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어떤 사업을 얼마나 멋지게, 잘 수행할 것인가보다 이 사업을 통해 지역여성들을 어떻게 지역사회의 주체로 조직할 것인가, 이 사업에 참여한 지역여성들의 지도력을 어떻게 강화시켜 낼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민하였다.
나飛센터(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터)라는 이름에 나타나듯이, 풀뿌리여성운동은 개인의 임파워먼트가 조직의 임파워먼트, 지역사회의 임파워먼트로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였다하면 “어떻게 마을 여성들을 만나고, 친해지고, 모임을 만들까”를 고민하고 토론하였다. 이렇게 하여 서울지역 3개의 지역모임은 13개 모임으로 늘어났고, 지역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만도 10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풀뿌리에 기초한 지역여성운동 일구기
서울여성의전화 지역여성운동은 풀뿌리여성운동을 기본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풀뿌리라 할 것인가? 풀뿌리는 여성들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가정이 있고,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직장도 있고, 장도 볼 수 있는... 읍면동 이하의 공간, 골목과 아파트, 마을이 최소단위가 될 것이다. 동시에 풀뿌리 여성들의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이 최초로 정치화 되는 공간, 즉 기초자치구가 풀뿌리 여성운동의 최대 범위가 되지 않을까? 이 범위가 지역여성운동이라 할 때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 생각된다. 풀뿌리 여성운동을 기초로 하지 않고서는 광범위한 여성들이 참여하는 여성운동을 이룰 수 없고 여성운동의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 동시에 풀뿌리에 국한하여 자족적으로 여성운동을 펼치는 식으로도 온전하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나라와 사회의 주인으로 여성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풀뿌리에 기초한 지역여성운동을 펼치고, 지역여성운동에 기초해서 전체 여성운동을 펼쳐나가며, 전체 여성운동의 요구에 기초해 풀뿌리 활동을 펼쳐나가는 상호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지역 내 광역 전역에 지역여성운동을 만들어갈 목적으로 회원들내에서 각 기초자치구 지역여성운동의 초기 주체를 조직하여 양성하는 한편, 25개 자치구 중에서 한 구에 집중하여 모범 구를 만들고 그 경험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계획을 갖고, 그 지역으로“동작구”를 선정하였다. 동작구가 모범 구로 선정된 것은 대방동에 여성플라자가 위치해 있어서 모임방을 무료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인접한 구인 영등포ㆍ구로구 모임 회원들의 참여가 용이하고, 이렇다 할 풀뿌리단체가 없는 점 등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였다.
기획강좌로 지역회원모임을 만들다
무엇보다 지역여성들을 처음 모으는 것이 가장 힘들고, 또 행사나 강좌 후에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 또한 어렵다. 동작구에서 ‘여성이 살고 싶은 마을만들기’사업을 전개해 나가기로 하고, 우선 동작구에 살고 있는 회원을 조사해보았다. 우리단체 1000여명의 회원들 중 동작구는 20명 남짓 되는 회원이 살고 있었는데, 이중 활동 중인 회원은 거의 없었다. 한 분 한 분 전화통화를 한 결과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아이가 어려서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가까운 지역인 영등포ㆍ구로구 모임 회원들로 기획팀을 구성하여 대중강좌를 열었고, 강좌 후속으로 동작구 지역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대중강좌를 지역 회원 조직화를 목표로 두고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조직화에서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대중강좌를 열면서 조직화를 확실한 목표로 설정했다. 우선 우리 회원들이 활동하는 풀뿌리 모임이나 주변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같이 돌자~~ 동네한바퀴~~’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택가와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전단을 나눠주고 다니며 지역 여성들을 만나고 사귀었다. 전단을 돌리며 자리가 부족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는데, 강좌마다 스무 명을 넘기기가 어찌나 어렵던지-_-;; 모든 강좌에서 기획팀 회원들이 돌아가며 사회를 보고 토론을 이끌었다. 매회 강좌 후에 김밥과 빵을 준비하여 1시간 정도의 공식적인 뒷풀이를 통해 새로 만난 분들과 어떻게든 서로 친해지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였다. 수강신청서에 후속모임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모임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 가능한 시간대는 언제인지 등을 적게 하여 이후에 참고로 하였다.
교육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여자들이 몰려올까요?” “그거, 다 입소문이예요” 아하, 홍보 플러스 동네 입소문이다!“우리 동네에서 무얼 하면 좋을까요?”“딸들을 위한 캠프 열어주세요. 자녀 성교육, 경제교육 모임해요. 남자들이 변해야 하니 남자들 교육합시다.”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지역 여성들의 요구를 듣는다.
대부분이 3ㆍ40대 전업주부인 동작구 ‘유후모임’ 회원들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며, 아하 무릎을 쳤고, 이런 변화가 바로 남성에게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남자들도 같이 변해야 한다며 남편들 교육을 시키자고 하여, 우리단체의 10년 된 모임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과 함께 지역에서 포럼을 개최하게 된다. 동네에서 여자들을 모으기도 이렇게 힘든데, 남자들이 과연 올까? 남편들이 오게 하려면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럼 아이들은? 자녀성교육도 동시에 하자. 이렇게 하여 마을에서 ‘성(性)에 관한 포럼’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직장인들의 참여가 가능한 일요일 오후 2~5시에 진행하였고, 자녀성교육을 준비하여 편안한 참여를 유도했다. 부부와 자녀, 한부모와 자녀, 부부, 연인, 독신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고, 여성플라자에 교육실을 네 군데 빌려서 남성포럼, 여성포럼, 연령별 자녀성교육 두 팀을 운영하였다. 90분 강의를 듣고, 90분간 참가자들의 토론을 하였다.
성에 대한 주제가 낯선 분위기에서 마음을 열고 터놓고 얘기하기 힘든 주제이다 보니, 이제 막 얘기가 나오려고 하는데 끝날 시간이 됐다며 아쉬워하는가 하면, 남성포럼 참가자들은 “뭐하는 줄도 모르고 아내에 이끌려 왔다.”“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는 이런 자리는 태어나서 처음이다”라며 얼떨떨해 하면서도 “나만의 고민이라고 여긴 ‘성’문제도 열린 마음과 좋은 방법으로 더 바람직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동작구에서 대중강좌를 열 때와는 달리, 별다른 홍보 없이도 모임 회원들이 주축이 되고 가족과 동네 친구에게 소문을 내어 조직하니 금새 참가자가 모집되었다. 뒷풀이를 통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면서, 이런 행사를 가끔 한 번씩 주제를 정해 계속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모임 회원들은 2005년 여성의전화를 만나 여성주의를 접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게 된 것이 한 해 동안의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역여성들이 직접 수행하는 지역여성정책 모니터링
서울여성의전화 여성정책 모니터링 사업은 2003년 서울시 중구 여성정책과 예산분석을 시작으로 2004년 중구, 영등포구, 강서구(강서양천지회), 2005년 동작구, 영등포구, 강서구(강서양천지회)에서 실시하였다. 2005년 모니터링 사업은 무엇보다도 지난 2년간 상근활동가가 전담하고 구청과의 간담회 정도에 그쳤던 사업을, 지역회원들을 조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진행하고 분석 내용을 지역에 널리 알리는 사업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정책과 예산을 분석하는 전문적이고 딱딱하게만 여겨지는 활동이어서 회원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보니, 지역조직사업으로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되는 사업이었다.
모니터링단 모집시 동작구에서는 5명이 참여하였는데, 자발적 의지로 모였다는 점과 자기가 사는 지역을 잘 알고 재미있게 참여하는 데 중점을 모아 진행한 것이 좋은 성과를 가져온 듯하다. 모니터링단 이름을 참나비(참여하여 마을을 바꾸어가는 나비)모임이라고 정하고, 기초교육을 마친 후, 처음에 동작구 의회에 놀러가 회의를 방청하였다. 청소년들이나 의원이 모시고 온 주민들이 아닌, 시민단체 회원들이 의회를 방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며 동작구의회에서는 긴장하면서도 아주 반기는 모습이었다. 의회 방청을 하면서 20명 의원들이 모두 남성인 가운데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의원들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었다. 여성위원회 의원과 인사를 나누었고, 구청을 방문하여 가정복지과장, 여성복지팀장을 만나 우리 단체를 소개하고 또 참나비 활동계획을 알렸다. 가정복지과장은 동작구청 공무원 중 5급 이상 여성공무원 6명(9.6%)중 한분으로, 진보적인 여성단체에서 동작구의 지역사업들을 전개해 나가는 것에 매우 고무적인 입장을 보였다. 참나비모임은 여성복지팀장과 작은 좌담회의 자리를 갖고, 2시간 가량 동작구 여성정책 현황을 살펴보고 의견을 나누었다. 여성위원회 구의원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열고 지역여성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방의회의 역할과 지역여성의 참여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5월 가정의 달 행사, 7월 여성주간 행사 등 일일이 참나비 모임에서 직접 참여하여 모니터링 하였다. 8~9월에는 본격적으로 여성정책과 예산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보름정도는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동작구청 홈페이지, 세입세출 예산서, 여성복지팀 등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여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간담회를 앞두고는 자료집을 만들고, 지역에 홍보하고,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고, 사회와 발표자의 리허설을 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다.
참나비모임은 이렇게 6개월에 걸친 모니터링 활동의 결과를 모아 여성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토론회는 지역주민, 단체, 구청, 구의원, 국회의원, 여성위원회, 정당, 지역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발제와 종합토론에 각각 1시간씩 배정하여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구청에서 간담회의 정책제안 내용에 대해 적극적 반영의지를 표명했다. 참나비모임 5명은 적은 인원이었고, 모두가 처음으로 해보는 작업이어서 많이 헤매었지만,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 지역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자신감과 리더십이 높아졌으며, 여성들의 지역정책역량을 높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참나비 회원들은 간담회를 마치고 난 뒤의 그 뿌듯함과 보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참고로, 서울여성의전화는 지역의 뿌리 깊은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 의식을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마다 지역회원들로 모니터링단을 구성하여 여성주간행사를 성평등 취지에 맞게 진행하는 지 모니터링하고 있다.
새로운 지역여성리더 발굴의 장(場)인 지역여성 리더십 워크숍
어느 운동이든 핵심역량을 계속 발굴ㆍ육성해 가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풀뿌리 여성운동의 확산을 통해 전체 여성운동을 성장ㆍ발전시키려면 풀뿌리 여성운동 리더들을 회원뿐 아니라 지역여성들 속에서도 발굴ㆍ육성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참 쉽지 않다. 지역주민을 모아서 육성시키는 것보다 일정하게 활동하는 여성리더들을 모아서 교육도 하고 활동하는 것을 쉽다고 여기지만 실제 해보니 만만하지 않았다. 모집도 힘들었고 교육을 끝낸 후 어떻게 지속적으로 함께 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
지역여성 리더십 워크숍은 동작구의 지역 여성지도자들에게 여성주의 의식을 확산시키고, 여성주의 리더십을 향상하고자 기획되었다. 또한 지역에 여성의전화를 알리고, 지역여성 리더들과 네트워크 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지역모임 회원 약 10명이 모여서 세 차례의 기획회의를 통해, 이 사업의 목표와 일정, 강의 내용 및 강사선정, 워크숍 진행 방식, 홍보와 조직, 분반토론의 주제와 방식, 행사 제목과 초대의 글 등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함께 논의를 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각 분야의 몇 몇 여성지도자들을 미리 만나 욕구조사도 하고, 워크숍 내용도 함께 기획해 보고 싶었으나 생략하고, 아파트부녀회 한 군데만 미리 찾아가 만났다. 그나마 다행히도 기획팀 중에 통장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있었고, 아파트부녀회 부회장을 해 본 분도 계셨다.
학부모회 임원, 통반장, 아파트부녀회, 교사 등이 지역의 내노라하는 마당발에 활동력이 대단한 분들이기에 우리 사업팀은 많이 긴장하고 그 어느 때보다 사업을 잘 준비해야 했다. 초청장과 전단을 만들고, 우리 구에 사는 웹디자이너 회원이 디자인해 준 멋진 포스터를 들고, 홍보에 들어갔다. 학부모회와 교사는 동작교육청의 협조공문을 받고, 16개 중학교, 19개 초등학교, 70여개 유치원에 초청장을 발송했으나 신청자가 거의 없어, 참나비 회원들이 각 학교 교감들과 일일이 통화하여 학부모회 임원들의 참여를 요청하였다. 학부모회는 우리 회원들이 주로 대부분 활동하고 있어서 모집이 수월했으나, 참가자들 중 학교운영위원회의 참여가 없어서 아쉬웠다. 교사는 초ㆍ중등 35개 학교 보건교사, 상담교사와 역시 일일이 통화하였고, 우리 단체가 개발한 가정폭력 예방교육 매뉴얼과 “폭력 쫑, 대화 짱”CD를 제공한 것이 호응이 좋았다. 통반장은 마침 동작구청에서 실시하는 통장교육이 있어 참나비회원들이 참여하여 500명 통장 중 약 절반가량의 여성통장들에게 초청장을 직접 전달했고, 구청에서 협조공문을 20개 동사무소마다 보냈으나 역시 신청자가 없었다. 그래서 250명을 사업팀이 나누어 동사무소로부터 명단을 받고, 일일이 통화를 했다. 아파트부녀회는 동작구에 약100개 아파트에 초청장과 포스터를 보냈고, 부녀회장과 통화했다.
초청장을 받고 자발적으로 참가를 신청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전화로 워크숍의 취지를 설명하고 꼭 오시라고 권유하여 참가자를 조직했고, 여성의전화의 그간 활동과 인지도를 믿고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분야씩 우리 지역의 여성리더들을 새롭게 만나가는 데, 매번 이번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하실까 설레여 하고, 한편으로 이번에는 몇 분이나 오실까 노심초사하며 한 달 동안 이 사업을 진행했다. 워크숍마다 20~30명이 참가하였다. 우리는 이렇듯 어렵게 만난 분들과 일회성 강좌로 끝내지 않고 서로 가까워지고자 3시간 워크숍에서 90분 강의, 90분 조별작업으로 구성했고, 사업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사회도 보고, 각 조마다 그룹을 이끌어 나가면서 참가자들과 사귀었다. 둘째 날 워크숍에서는 좀더 여성의전화를 알리고, 첫날 참가자 중에 모범이 될 만한 분을 발굴하여 2~3명 사례발표도 준비하시게 하고, 좀 더 심화된 내용의 조별작업을 하였다. 첫날 리더십 전문강사의 강의에 이어 둘째 날 워크숍은 사업팀에서 첫날의 분위기와 흐름을 타가며 계속 기획을 보완하고, 꼼꼼히‘준비된’진행으로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사업팀 회원들 모두가 감동하는 자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으로 해나갈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단체 회원가입도 권유하였다.
참가자들은 내 가슴속에 도전으로 다가온다. “학부모로서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동기를 주었다”, “나로부터 시작되고 참여해야겠다”, “어느 거대 회합과는 달리 가슴으로 마음으로 활짝 열어젖힌 기분이다”, “여성리더의 힘을 느낀다”, “소그룹 토론을 통해 실질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많은 경험담을 접하면서 자신감과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가 되어 좋았다”, “역시 모이면 힘이 생긴다”, “내년 수업시간에 활용해 보겠다”, “여성단체에서 하는 일들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힘이 되고 여성단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더욱 더 풀뿌리로 찾아들어가고 뿌리내리기
작년 활동을 기반으로 2006년 올해는 더욱더 풀뿌리로 찾아들어가고 뿌리내리는 사업을 전개하고자 ‘학교로, 아파트로 찾아가는 마을강좌’를 기획하였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연초 사전 욕구조사와 대상별 워크숍을 열어 동작구 지역에 살면서 느끼는 여성인권, 성평등, 평화의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의 문제의식과 고민을 들어보았고, 사업을 추진해나갈 주체가 되는 강사팀을 구성하였다. 강사팀은 상담회원이자 지역모임 회원들로, 그간의 활동경험으로 다져진 훌륭한 강사이자 풀뿌리 조직가로서 역할을 하였다. 2005년의 대중강좌, 후속모임 운영, 각 분야 리더십 워크숍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학교로 찾아가는 사업은 학부모회와 교사 워크숍을 통해 꾸려진 후속모임 회원들이 속해 있는 학교를 우선으로 했다. 학부모, 교사, 학생 대상으로 강좌를 열어 성평등의식을 확산했고, 한 번의 강좌가 있기까지 주축이 되는 분들을 몇 차례 만나며 관계를 형성하고, 강좌가 일회성 사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좌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을 갖고자 모색하였다. 아파트로 찾아가는 사업 역시 워크숍에 참여했던 부녀회장을 통해 조직하였고, 평등가족, 평화마을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지역여성 리더십으로 성장하는데 함께 하고자 했다.
오는 9월 16일로 예정되어있는 ‘여성폭력없는 평화마을축제’ 역시 무엇보다도 마을주민들의 참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함께 준비하고 있다. 우리 단체는 매년 문화제와 캠페인을 개최해 왔다. 행사내용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물론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사동, 대학로, 공원 등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놀러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곤 했다. 그러나 마을축제는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만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축제의 질을 담보할 것이다. 따라서 기획팀도 1년 6개월 동안 동작구에서 사업하면서 만나 온 지역모임 회원들, 학부모회 임원들, 교사모임의 교사들, 아파트부녀회 임원들로 꾸려졌다. 축제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마을축제를 알리고 참여를 조직하는 과정 자체에서 마을 주민들과의 만남과 사귐, 참여와 소통이 일어나는 축제로 만들어 갈 것이다.
도시 속 소외된 공간을 서로 소통하는 풀뿌리 공동체로
‘여성이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사업을 하며 느끼는 것이 참 많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간 운영해 온 지역모임과 ‘지사모’가 어느새 이렇게 힘을 발휘하는구나 새삼 실감한다. 지역에 사는 여성들에게 어떤 강좌로 다가갈지, 어떻게 조직하고 진행할지, 강좌 이후의 사귐과 모임에 이르기까지 두 팔, 두 다리 걷어 부친 우리 회원들! 지역모임이 있기에 지역에 찾아들어가는 든든한 디딤돌이 된다. 이렇게 지사모와 지역모임은 지역여성들의 만남의 장, 학습의 장, 실천의 장, 리더십 훈련의 장이 되고 있다.
또한 한 지역을 정하여 집중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본 것이 다른 지역에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 활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서울여성의 전화에는 강서양천지회가 있어 각 지역모임들에게 하나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듯이, 동작구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다른 지역모임에서 우리 마을에서도 해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지역 활동의 거점을 구 단위에서 동 단위, 아파트 단위로 더욱 구체화하여 지역에 찾아들어가고자 한다. 우리가 무수히 많이 하는 각종 행사와 교육, 캠페인, 서명 등을 바로 거기서 벌이고 또 벌여나가야 한다. ‘여성이 살고 싶은 동네 만들기’는 앞으로도 가랑비에 옷 젖듯 아주 서서히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 그 모든 다양한 시도와 경험이 우리에게 소중한 밑천과 교훈이 될 것이다.
지역조직사업을 하면서 사무실이 아닌 마을에서 활동을 하였다. 처음엔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마을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오히려 사무실에 오면 외로움을 느낄 정도다.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나의 욕구에 기초하여 활동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니 십 여년 상근활동을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풀뿌리 조직가로 살면서 나의 일상과 운동과 일이 통합되는 경험을 하였다. 사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어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사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그 회원들과 함께 주민들을 만나고 사귀니 금방 친해지고 이야기가 술술 이어져 나간다. 지역회원들을 풀뿌리 조직가로 발굴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 나의 역할인 것이다. 또한 사무국 활동가들과 다른 영역의 회원활동가들에게 풀뿌리 운동의 경험을 더 많이 나누고 확산시켜가야 할 과제를 깨닫기도 한다.
지역모임 회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건져 올리는 키워드는 단연 “활동가의 시선에서 지역여성의 시선으로!”이다. 그것은 비단 상근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사무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회원들도 절감하는 것이리라. 어느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잠자는 곳 일뿐은 아닌지? 회원활동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동안 살면서 형성된 인간관계가 소홀해지고 주변과 단절되다시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지역여성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그들을 삶의 현장에서 불러 내오는 방식에서 우리가 찾아 들어가는 방식으로 활동이 변해야 한다. 내가 속해 있는 각종 풀뿌리 모임에서부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기존에 맺고 있는 사람들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리더가 되고 촉진자가 되고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풀뿌리 여성들의 경험에 토대해서 풀뿌리 여성들의 언어로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우리의 성평등 감수성만큼이나 ‘풀뿌리 감수성’을 높여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