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6지방선거시민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열 가지 희망 만들기' 기획사업 중 첫번째 글입니다. 주로 필진은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들입니다. 선거 전까지 '열 가지 희망'을 소소하게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지역이 희망이다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보육’은 선거 시기에 단골메뉴다. ‘단골메뉴’라고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정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너나없이 보육예산을 늘려 시설을 짓고 보육비를 지원하고 먹거리와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소리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활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골메뉴’는 표 모으기에 급급한 나머지 남발될 여지도 충분하다. 특히 보육정책을 꼼꼼히 보면 보육에 대한 철학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저 물량공세만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못 말리는 후보들도 있다. 그래서 보육정책은 당선되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얼마 전의 일이다. 서울의 한 구 주민들이 각 동마다 1개 이상의 국공립보육시설을 설치하고 보육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내용을 담은 보육조례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작년(2005년) 10월부터 주민발의 19세 이상 일정한 수의 주민들이 서명을 통해 조례를 제정․개정․폐지할 것을 청원할 수 있는 직접참여제도.
를 통해 서명을 받았다. 두 달 만에 8천 명의 주민들로부터 서명을 받고 구청에 청구인명부를 제출한 바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주민들이 제출한 조례 개정안을 구의회에 올려야함에도 구청은 너무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결국 4개월 만에 의회에 상정했다. 이제 구의회에서 방망이만 두드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구의회는 또 다른 다크호스였다. ‘연구와 검토 부족’이라는 이유로 상정안을 보유시킨 것이다.(2006년 4월) 보육만큼 중요한 정책이 없음에도 ‘연구와 검토 부족’ 운운하는 것은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구청은 ‘아이사랑 1등구’를 외치고 있다.
아래는 몇 해 전, 경기도의 한 군청이 국공립시설에 보낸 공문 중 일부다.
“.......우리 군에서는 늘어나는 보육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나아가 보육시설의 질적(양적)향상을 위해 정부지원시설을 점차로 줄이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자율경쟁체제에서 시설이 운영될 수 있도록 보육시설운영 방법을 개선해 나아가고 있으니 조속한 시일 내에 민간(개인)어린이집으로 전환 운영을 바란다.......”
공문의 요지는 이런 거다. ‘보육수요’는 점차 늘어나는데, ‘정부지원시설을 줄임’으로써 ‘보육시설의 질적(양적) 향상’을 꾀하고자 국공립시설의 문을 닫겠다는 취지다. 앞뒤 논리가 맞지도 않을뿐더러 정부, 민간 할 것 없이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며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외치는 정말로 용기(?)있는 행정기관이다. 이로 인해 그나마 2개의 국공립보육시설을 유지하다 1개로 줄어들었다.
아이를 위한 정책만큼 중요한 정책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생활의 문제 중 상당 부분은 아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믿고 맡길 수 없는 보육시설, 놀이터 시설의 불안전, 불안한 급식과 먹거리, 자동차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보행로, 미세먼지 등에 의한 건강 등등 생활 속에서 부모의 걱정꺼리는 아이들이 처한 불안한 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특히 보육행정은 이 모든 문제가 종합적으로 얽혀 있는 난제다.
이러한 보육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행정이 하지 못하면 시민들이 할 수밖에 없다. 직접 참여해서 보육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운동, 보육위원회를 개혁하려는 운동, 보육시설운영위원회를 설치하려는 운동, 간식과 먹거리를 바꾸려는 운동, 저소득층 방과후 공부방 운동 등등 보육의 당사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바꿔보려는 운동, 즉 많은 이들이 ‘참여보육’을 이야기한다. 여성가족부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하면서 ‘참여보육’을 위해 두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았다. 하나는 학교운영위원회처럼 보육시설종사자, 보호자대표, 지역인사 등으로 구성된 보육시설운영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유아 자녀는 둔 보호자 15인 이상이 출자하고 11인 이상의 아이들이 상주할 경우 보육시설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후자를 ‘부모협동보육시설’이라고 칭한다.
보육의 당사자인 부모가 보육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제도가 늦게 뒷받침한 측면이 있다. 보육시설 운영에 있어 부모가 참여한다는 것은 운영상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보육은 공공성이 짙은 우리 사회 주요한 과제이므로 지역사회가 협력해서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이미 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과천, 부산, 서대문구 등 지역에서부터 조례화했으며 오랜 경험을 지닌 개별시설도 점차 늘고 있다. ‘부모협동보육시설’도 마찬가지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부모협동보육시설이 만들어지고 운영돼 왔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법은 보육시설 중의 하나로 인정함으로써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관심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시설 규모도 크지 않으면서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적합한 시설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공립보육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더 확대되어야 하는 것은 중요한 의제다. 또한 차별적으로 저소득층에겐 다양한 혜택이 제공되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에 대한 예산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소프트웨어로서 ‘참여보육’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보육예산 몇 퍼센트를 더 늘린다고 보육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자녀를 맡기는 사람이든 돌보는 사람이든, 그리고 공무원이든 서로를 믿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신뢰는 경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보육시설운영위원회와 부모협동보육시설이 지금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그런 경험을 쌓아 가는데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이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선거를 통해 뽑힌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보육행정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이다.
'후보들의 정책을 꼼꼼히 보자'는 말은 백번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비슷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한 번 더 유심히 본다면 선택의 여지를 좁힐 수 있다. 이번 선거가 그러한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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