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예감이 들긴 합니다만, 내 죽기 전까지 딸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생까지....어쩌면 결혼하고 미시가 될 때까지, 여자로 살아가야 하는 동안엔 험악한 그놈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그런 불길한 예감 말입니다.

아마 이런 기분은 아들 키우는 부모들은 잘 못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도, 어린이집에 있어야 할 딸아이가 아직도 어린이집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모골이 송연해지더군요. 머릿속엔 온톤 험한 상상뿐이었습니다.

며칠 지난 일이 오늘에야 터진 일산 엘리베이터 초등학생 유괴 미수 사건.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끔찍해서 눈물까지 나더군요.
그 아이는 얼마나 두려웠을까.....그 짧은 순간이 지옥과도 같았을 겁니다.
상상하기도 싫군요.


해서, 오늘 난데없이 딸아이에게 납치 탈출 실전 교육을 시켰습니다.

딸아이에게 충분히 정황을 설명하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빠가 너 꽉 잡고 있을 테니까, 10초 안에 빠져나가봐!” 했더니,

“왜 10초야?” 하더군요.

“10초 안에 못 빠져나가면, 유괴범들이 널 차에 가둬버리고 어디론가 가 버리거든.”


그렇게 해서 딸아이는 발버둥을 치고 내 손아귀로부터 빠져나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10초 안에 빠져나간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딸아이의 힘으론 제 손아귀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다빈아 머리를 잘 써봐. 어떡해서든 10초 안에 빠져나가봐!”

무리한 요구인줄 압니다만,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딸아이의 몸을 두 팔로 다시 감쌌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저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 팔을 이빨로 물어뜯은 겁니다. 허걱~~ 연습인데..~~

내 팔을 물어뜯은 걸 두고 혼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 잘 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좀 아팠지만,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이렇게 묻더군요.

“아빠, 칼 같은 걸로 찌르면 어떻게 해?”


아........저는 뭐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음........어쨌든 정신만 똑바로 차려, 알았지?”

하나마나한 답변이었지요.


세상이 점점 험악해집니다.

모든 사람이 ‘악’이라고 전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 좀 서글프군요.


동네 주민들과 방범순찰대라도 조직해서 제안해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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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어디서든 편하게 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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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어려서부터 유심히 관찰해보면 이성보다 동성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엄마와 성이 같다는 강한 동질감 때문에 아빠를 소수자로 여긴다거나,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남성보다 여성을 더 응원한다거나, 복도에 있는 친구들과 놀 때도 같은 동성끼리 한 패를 이룬다거나 하는 등등, ‘우리 여자’라는 인식이 딸아이의 뇌리에 박혀 있는 듯하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성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성에 대한 동질감’에서 기인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는 딸아이에게 ‘엘렉트라 콤플렉스’ 현상이 발견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우리 부부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를 테면 심하게 다퉜다거나 불가피하게 각방을 써야 할 일이 없는 한, 결혼한 후부터 줄곧 내 팔은 아내의 베개가 되어 주었다. 이불 속에선 팔베개가 자연스러운 모드가 된지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딸아이 앞에서 팔베개를 자제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본 순간, 딸아이는 서럽게 울면서 “왜.......엄마 아빠만.......엉엉” 한다. 자기만 빼놓고 둘만 좋아하냐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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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원에서.....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굳이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 웃기는 일은, 딸아이가 엄마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 옆에 붙어서 오른 다리를 내 배위에 얹고, 오른쪽 팔은 내 가슴에 얹으면서, 엄마가 하듯이 얼굴을 내 목에 파묻는다. 나무랄 때 없는 엄마의 자세다!!! 이럴 때 딸아이가 좀 징그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허걱!!


아내와 살짝 포옹을 하고 있으면 딸아이는 눈을 부라리며 큰 소리로 외친다. “엄마!!” 웃기는 것은 대게 ‘엄마’만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겐 각별한 의미다. 왜냐하면 딸아이가 누군가를 나무란다고 하는 것은 늘 그 대상이 아빠였다. 담배 피우려 하면, “아빠!!”, 맥주 한 캔 하려고 하면 “아빠!!”, 방귀 뀌면 “아빠!!”........담비 피우지 말고 맥주 마시지 말고 방귀 뀌지 말라는 단호한 딸아이의 호령이다. 내 기억에 ‘엄마’를 호령하듯이 부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보고 외치는 단어는 ‘엄마!!’가 단연 많다. 아빠에 대한 애정을 품기 위해 엄마를 경쟁상대로 여긴다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딸아이가 여기에 해당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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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계곡에서....

아홉 살 초등학교 2년생이 여태껏 엄마 아빠의 사랑을 질투한다는 것이 꽤나 우스웠던지, 아내는 부러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취하곤 한다. 그러면 딸아이는 여지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프로이트의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시기가 보통 유아기(4-6세)라고 한다면, 딸아이는 조금 오버한 셈이다. 여하튼, 딸아이 앞에서 아내와의 애정 표현은 금물이다. 그것이 아빠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딸아이가 깨어 보고 있는 한, 아내와 딸아이는 ‘등거리 사랑’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꼭 이것만은 딸아이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다빈아! 한 쪽 다리를 아빠 배에 올리면서 ‘거시기’ 좀 차지 좀 마라! 많이 아프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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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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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요 며칠 무리해서인지 입안이 심하게 헐었다. 음식 씹기가 꽤 성가시다. 언제부터인지 입안 염증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기 시작했다. 2-3일이면 족했던 것이 일주일 이상을 버텨야 한다. 때마침 목감기가 왔고, 그래서 병원에 들렀다. 진찰을 받고 의사선생께 넌지시 물었다. “구강염증 처방도 해주세요.” 했더니, “비타민 B가 부족합니다. 삐콤 사드세요” 하더라. 그래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영양제라는 걸 샀다.


예전 같았으면 영양제가 코앞에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텐데, 요 며칠 아침저녁으로 꼬박 영양제를 잘 삼켜 먹고 있다. 어르신들이 종종 온갖 약을 복용해 드시는 걸 보면서, 저렇게 한다고 좋아질까? 싶기도 했는데, 막상 내가 영양제에 의지하는 꼴이 되고 보니, 묘하게도 영양제를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하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분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건 분명 나에겐 엄청난 의식의 변화이다. 영양제를 포함한 온갖 약에 내 건강을 의지해도 무방하다는 믿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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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사에서 한 컷. 뒷모습 누군지 아시겠죠? 건강을 생각할 나이의 우리 소장님...

생각해보면, 목감기로 병원을 찾은 이유도 미리 예방차원에서였다. 보통은 온몸으로 감기와 맞서 싸우다 지쳐 나가떨어지기 전까지 병원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상식이었는데, 이번엔 감기가 오기도 전에 병원에 찾아가 알아서 자수한 꼴이 돼버렸다. 이것은 감기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 번 감기에 걸리면 아주 오래 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이가 들어서일까?


계단을 오를 때 무릎이 시큼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벌써 관절염이? 설마........하면서 넘기곤 했지만, 요즘엔 너무 자주 그런 현상을 겪게 된다. 계단뿐만이 아니다. 장시간 앉아 있다가 일어날라치면 무릎이 시큼하다. 몸이 조금씩 망가지는 걸까? 예전에 다친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시큼하면 비가 온다는 것을 뜻한다. 다쳤던 뼈마디가 기압에 예민하게 된 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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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쓰다듬는 지현스님, 그 뒤의 소장님, 그 모습을 뷰파인더로 관찰하는 서의원..

나이가 들면서 신체에 이상 징후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프면 뭐든지 오래간다. 그만큼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몇 개월 전에 딸아이와 인라인을 타다 넘어져 다친 왼쪽 팔꿈치는 여전히 쑤시고 아프다. 의사선생의 진단은 ‘테니스 엘보우’가 틀림없다고 한다. 엉거주춤 타는 실력 밖에 안 되는 인라인을 나이 들어 탔으니 인과응보일지 모른다. 운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격에 맞는 운동을 하라는 암시이다. 아무튼 요즘은 부쩍 몸 상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차하면 평생 고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술 담배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아내의 직감을 수용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내 몸에 맞는 적당한 운동이 무엇일까 요즘 부쩍 곱씹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4호선리그’가 그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나와 같은 근심이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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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대한 불가사의!


불가사의 하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등교해야 하는 평일, 몇 번을 깨워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눈을 뜨지 못하는 딸아이를 보면 마음이 좀 시리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깨워야 하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학교에 보낸다. 그러던 딸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엔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난다. 그것도 남들이 곤히 잠든 아침 일찍.


방학에도 예외는 없다.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신세가 조금 처량하긴 하지만 평상시와 똑같이 아침에 전쟁을 치른다. 그러다가도 주말이 되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단다. 부러, 전날 늦게 재워도 소용이 없다. 귀신 같이 일찍 일어난다. 허긴, 곰곰 생각해보면 내 어렸을 적도 그랬던 것 같긴 하다. 내 짧은 추리로는,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허락된 주말을 ‘잠’으로써 아깝게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인 듯싶다. 이것은 두 번째 불가사의와 맞물린다.


불가사의 둘.

도대체가 낮잠을 잘 생각을 안 한다. 주말에는 낮잠도 잘 필요가 있다고 타일렀지만 잠자는 게 아깝단다. 할 일이 많아서 잠을 못 잔 댄다. 간혹 놀다 지쳐 낮잠을 자다 일어나면 첫 물음은 이런 거다. “아빠, 지금 낮이야 밤이야? 도대체 몇 시야?” 밤이라고 대답하면 울상과 함께 짜증을 낸다. 아깝게 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낮이라고 답하면 얼굴에 회색빛을 띤다. 낮이냐 밤이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이런 단순한 딸아이의 머릿속이 정말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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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은 죽어도 싫어! 라고 외치는 듯 한 딸아이.......

잠은 딸아이의 최대 적이 확실하다. 그래서 밤에도 잠재우기 힘든 건 당연하다. 이렇게 꼬신 적도 있었다. “다빈아! 잠자면 돼지꿈 꿀 수 있거든. 돼지꿈 꾸고 아빠한테 얘기해줘! 그러면 용돈 줄게!” 참,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더니 한 동안 먹히긴 했다. 그러나 잠시뿐. 잠잔다고 언제나 돼지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을 뿐이다. 지금은 전혀 통하지 않는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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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낮 한때. 피아노 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졸리면 잠 좀 자라!

불가사의 셋.

잠자기 전에 양치질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 그러나 여우같은 딸아이가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잠을 재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차! 양치질을 안 했다. “다빈아! 얼른 양치질 해!” 그러면 돌아오는 답은 이렇다. “아빠, 난 양치질만 하면 잠이 깨. 양치질 안 하면 안 될까?” 잠을 재우려는 아빠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술수인지, 아니면 진짜 잠이 깨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딸아이의 불가사의 중 한 가지는 양치질을 하면 잠이 깬다는 것이다.


잠자기 전에 치러야 할 통과의례는 양치질을 놓고 벌이는 실랑이다. 양치질을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 요것은 할 술 더 떠 잠과 연관시킨다. 지금은 졸린데, 양치질만 하면 잠이 달아나니, 양치질을 안 하고 그냥 자면 안 되겠냐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렇게 타협할 수가 없다. 잠이 깨더라도 양치질은 하고 자는 것이 원칙이라고 조용히 타이르기도 하고 윽박질러 강제로 시키기도 한다. 사실, 나도 잠이 코앞까지 와 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양치질을 감행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신념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이대로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딸아이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고도 남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일이다. 양치질은 잠을 깬다는 신념을 커서도 간직하게 될까 그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 밖의 잠에 대한 불가사의

그렇게 분기탱천하던 딸아이는 버스만 타면, 혹은 지하철만 타면 곤히 잔다.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힘겹게 들쳐 메고 집에 눕히는 순간 잠이 깬다는 것도 불가사의 중에 하나다. 부모의 바람과 아이의 행동은 정반대에 있다. 부모가 등골이 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축복과 함께 등골이 휜다는 가능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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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드라마에 빠지다!


박신양이 마음을 앗아가더니 주진모가 그 뒤를 잇는다. 이번엔 공유다. 특정한 시간대가 되면 드라마는 끊이지 않고 전파를 탄다. 아내의 손놀림도 부산하다.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그 많은 드라마를 꿰차고 있다. 대충 아내가 퇴근하는 시간은 밤 9시에서 10시 사이. 집에 들어와 대충 앉으면서 리모컨을 찾는다. 급하게 봐야 할 드라마가 있다는 뜻이다. 옷을 갈아입거나 손발을 씻는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딸아이도 으레 엄마는 드라마를 봐야 하는 것으로 안다. 덩달아 엄마 옆에 앉아 드라마에 빠진다.


어쩌다 저녁밥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다면 드라마 보는 시간이 앞당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7시30분에서 8시 사이에 어디선가 드라마가 시작되고 밤 11시까지는 끊기지 않는다. 당연히 이 시간대 리모컨 주도권은 아내에게 있다. 아내가 화장실에 잠깐 간 사이 다른 채널을 돌릴라치면 아내의 우렁찬 소리가 화장실로부터 들린다. “다 듣고 있다! 빨랑 돌려라!” 한다. 귀도 참 밝다.


대개 집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전업주부들이 드라마에 더 쉽게 빠진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워커홀릭’이라는 별명이 붙은 내 아내가 드라마에 심취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 일과에 지쳐 들어온 아내가 드라마를 보며 피곤을 푼다는데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아내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딸아이다.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명확치 않은 딸아이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하지 못하는 아빠를 질타하곤 한다. “아빠도 주몽이처럼 친절하면 안 돼?” 도대체 주몽이 내 딸아이에게 얼마나 친절하길래? 박신양은 왜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하는 거야? 권상우는 폼만 잡으면 왜 그렇게 멋있는 거야? 아빠는 이 세상 모든 남자의 기준이었다. 사실, 아빠 이외의 남자를 접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아빠가 기준이란 건,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아빠보다 뭐든지 잘 하는 남자가 드라마에 나오기 때문이다. 딸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남자의 기준은 ‘드라마 주인공’이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꺼억~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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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안면도에서........

언젠가 아내에게 넌지시 ‘바보상자’를 없애자고 제안했다. 딸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아내는 선택해서 보면 된다고 답한다. 합리적 선택이 되겠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단다. 티격태격 여러 차례 말다툼도 했다.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누구는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면서 즐기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된다. 드라마에 심취하지 못하는 내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늦은 밤 TV 앞에 앉아 바보가 되는 기분이 싫어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왔다 갔다 하는 딸아이의 핀잔도 싫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난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는다. DVD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만날 DVD 보냐?”

TV 모니터에 빠진 아내, 컴퓨터 모니터에 빠진 남편,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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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내가 제일 관대하고 너그러울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사소한 것에 속 좁은 내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던 어떤 선배. “그런 속 좁은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더 화가 난다.”고 했던 또 어떤 선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주변 남편들이 모두 느끼는 ‘결혼하고 달라진 내 모습’이다. 아니, 달라진 것이 아니리라. 어려서부터 솔직한 자기 감정표현에 익숙치 않은 일반적인 남자들이 결혼하고 드러난 본색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난 삐쳤다. 애써 삐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내가 대뜸, 삐쳤냐? 한다. 그러나 삐쳤다고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는 아내를 보며, 안 삐쳤는데 왜 삐쳤다고 하냐며 외려 화를 낸다. 아내는 못이기는 척 넘어간다. 그러나 난 여전히 삐쳐 있고, 그런 내 모습에 화가 난다. 이때, 만약 딸아이가 내 신경을 건드린다면, 모든 화살은 딸아이에게 간다. 왜 양치 하랬더니 안 해!! 왜 아빠 말 안 들어? 아내는 거 보란 듯이 쯧쯧쯧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난 더 화난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원래 내 모습이 이런 걸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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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안경 속에 비친 내 모습........아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

어느 날 장모님이 그러신다. “자네는 왜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는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난 이렇게 말한다. “애 엄마가 그랬나 봐요.” 했더니, “다음부터 밑에서부터 짜라고!” 장모님은 내가 가운데서부터 짠다고 철석같이 믿으신다. 나는 또 삐친다. 장모님께는 삐칠 수 없다. 애꿎은 아내에게 삐친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아내는 묻는다. “왜 또 그래?” 왜 또 그래!~~~ 이 말에 난 더 화가 난다. 내가 언제 또 그랬어? 삐침은 삐침을 낳고 더 깊은 삐침 속으로 들어간다..........


슬픈 내용의 TV나 영화를 보면 딸아이는 운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마치 자기 자신에게 벌어진 일 인양 엉~~엉 운다. 그 옆에 있던 나는 이성적으로 말한다. 다빈아! 저건 단지 영화일 뿐이야! 바보 같이 왜 울어? 한다. 기쁠 때, 나는 기쁜 마음을 애써 숨기려 하지만, 딸아이는 앗싸~~ 하고 외치거나 큰 소리로 웃는다. 확실히 남자는, 아니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뇌의 기능을 억제시키도록 교육받아 왔다. 과하게 말하면, 본질을 숨기고 허구적인 삶을 살라고 교육받아 왔던 것 같다.


남자가 더 관대하고 너그러울 거라는 속설은 파기되어야 한다. 최소한 나에겐 그렇다. 속에 담아 둔 서운함을 한꺼번에 내뱉는 아내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나도 삐칠 수 있고 삐친 것을 내뱉어야 한다. 슬플 때 울어야 하고 기쁠 때 더 크게 즐거워해야 한다.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그러나.........그게 잘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남편들은 어떠신가?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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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일기] 딸아이의 로망


가끔씩 딸아이를 보면서, 내 어렸을 적은 어땠는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딸아이만큼 에너제틱하고 파워풀 했을까? 도저히 지금의 나로서는 딸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가 없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생각을 했었을까? 아마도 나완 다른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으리라.


한 없이 놀다 지쳐 잠드는 것이 우리 딸아이의 로망이다. 한 없이 쉬고 싶은 나의 로망으로서는 딸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할리 만무하다.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 언제 딸아이가 제일 예쁘세요? 당근! 잠잘 때다. 나는 빨리 재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딸아이는 쌍꺼풀이 감기기 전까지 놀 궁리만 한다. 빨리 자라고 다그칠수록 딸아이의 저항은 완강하다. 얼마 전까지 책 읽거나 옛날 얘기해달라는 것이 단골 메뉴였는데, 요즘엔 씨름 한 판 하잔다. 내가 지면 씨름은 끝난다. 그러나 나도 그럴 순 없다. 그래서 매번 이긴다. 그러면 딸아이의 투정과 함께 씨름은 끝없이 계속된다. 어느덧 딸아이의 눈이 감기면 나는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나 아뿔싸! 나도 두 눈이 감긴다.........


지난 토요일엔 복도 친구들과 놀이터에 갔다.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에 아이들은 뜨거운 모래 위에서 맨발로 잘도 뛰논다. 저 아이들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면 과연 몇 볼트나 될까?를 생각하던 중, 딸아이가 내 앞으로 걸어온다. 역시 맨발이다. 시커멓게 그을린 딸아이의 맨발을 보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나에게 백 발의 화살을 날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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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와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는데, 땀방울이 콩알만 하다. 끈적끈적한 온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다. ‘다빈아, 저녁 먹기 전에 뭐 하고 놀까?’ 물었더니, 인라인스케이트 타잖다. 허걱! 내가 왜 ‘놀자’고 했을까? 내 입으로 뱉은 말 주워 담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체육공원으로 갔다. 딸아이는 여전히 쌩쌩하다. 다음부터 이렇게 말해야겠다. ‘다빈아, 저녁 먹기 전까지 피아노 연습하고 책 다섯 권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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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모래를 골랐다며 정성스럽게 보여주는 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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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놀고 또 놀고.......거침없이 노는 딸아이......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적당히 놀았으면 좋겠다. 내가 힘들다. 놀다 지쳐 잠드는 것이 로망인 내 딸아이. 언제 그녀의 로망은 바뀔까?


※ 물론, 조금만 지나면 아빠와 노는 것보다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올 겁니다. 아빠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아빠는 슬퍼질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더 열심히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도 사람인지라 놀기만 하는 딸아이에게 큰 소리 치거나 야단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하면서 말이죠. 좋은 아빠 되기란 참 어렵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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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가장 살 떨리는 시간이 있다면, 저녁밥을 먹고 딸아이의 책가방을 열어보는 순간이다. 가방 속 ‘알림장’에는 오늘 밤에 해야 할 숙제가 적혀 있다. 숙제가 없는 날이 더러 있긴 하지만, 보통은 담임선생님이 친절하게 해야 할 일을 보내주신다. 딸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숙제는 일기 쓰는 것 정도고, 대부분은 부모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이다.


받아쓰기 예습이나 수학 문제 풀이 정도는 그럭저럭 해 볼만한 일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크게 머리 쓸 일 없이 옆에서 간단한 코치면 된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 오라는 숙제나 무언가를 만들어오라는 숙제는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숙제 해가기가 좀 더 복잡해졌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숙제를 찾아보고 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방과후 어린이집에서 놀던 딸아이를 데리고 오는 시간이 저녁 7시 전후. 밥 먹고 치우면 8시. 인터넷 뒤지고 숙제 도와주고 나면 9시. 어영부영 10시가 되면 몸은 지쳐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일과면 소화할만하다. 일 때문에 딸아이를 조금 늦게 찾거나, 시장을 보거나, 딸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며 내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날이면 9시, 혹은 10시가 넘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땐, 딸아이의 책가방이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되며, 더러는 일부터 ‘알림장’을 확인하지 않을 때도 있다. 다음 날, 딸아이가 투덜대는 걸 감수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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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딸아이의 포스터를 그려주는 아내........

숙제는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학교의 일은 학교에서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맞벌이 부부는 그래도 양호하다고 치자. 부모가 없는 아이들, 한 부모 아이들, 부모가 있더라도 숙제를 도와줄 처지가 안 되는 부모들........조금만 눈을 돌리면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이런 아이들을 모두 학원으로 내보낼 수 없지 않는가?


숙제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숙제를 내줄 때, 두 가지 정도의 기준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첫째가 누구나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터’란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포스터’를 제대로 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둘째는 자율성이다. 숙제를 해오는 아이나 해오지 못하는 아이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숙제를 해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것이 다 학교장을 비롯하여 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달려 있으니! 선생님들! 부모들은 정말 쉬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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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초딩에 입문한 작년 말쯤이었을까? 집에 오더니 투덜대기 시작한다.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식사당번 안 해? 하더니 얼굴이 뾰루퉁 한다. 옆에 있던 내가, 엄마는 바쁘니까 아빠가 하면 안 될까? 했더니, 싫어! 한다.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학교 일을 시중들듯이 하는 모습은 나나 아내는 영 아니다 싶었다. 식사당번에, 도서관 자원봉사에, 녹색어머니에, 체험학습 동행에 등등........우리나라 엄마들은 참 바쁘다. 맞벌이 부모들 입장에선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 미안한 마음을 유발시키는 이러한 구조가 싫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딸아이의 그런 한 마디에 마음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얼마 후, 딸아이와 엄마가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몰라도, 딸아이가 대뜸 이런다. 아빠! 하고 싶으면 해! 한다. 뭘? 식사당번 같은 거! 그래서 알겠다고 했고, 2학년에 올라가면 꼭 뭐라도 한 가지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결정한 게 ‘녹색어머니’였다.


아니나 다를까 2학년이 되고 곧이어 한 장의 안내문이 왔다. 그래서 ‘녹색어머니’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학교로 돌려보냈다. 엄마들의 추진력은 대단했다. 얼마 후에 모임이 있으니 오라고 한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얼떨떨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했다. 역시나 20여 명의 엄마들만이 모였다. 이런 자리에 아빠가 참석한 건 처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 엄마는 녹색어머니회의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냐며 호호호 웃는다. 나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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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제 그리고 오늘 3일 동안 ‘녹색어머니’ 활동을 했다. 학교 앞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40여 분 동안 ‘녹색어머니’를 표시하는 조끼와 모자 깃봉을 들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나름대로 참 재밌었고 배울 점도 많았다. 아이를 데려다주는 엄마들은 어김없이 힐끗 쳐다본다. 아빠네! 그런 표정들이다. 더 재밌는 건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큰 소리로 말한다. 어! 아저씨가 하네! 어떤 아이는 차도에 들어서서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저씨가 한다는 게 참 신기했나 보다. 그런 표정들을 구경하는 게 정말로 재밌었다. 금기를 깬다고나 할까? 자동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횡단보도에서 뛰는 아이들, 그것을 무시하고 달리는 자동차........가장 위험한 건, 도로변에 주차한 차들 때문에 운전자들 눈엔 아이들이 안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근, 아이들의 눈에도 자동차는 안 보일 게다. 그렇게 우왕좌왕 40분이 훌쩍 지나간다. 나름대로 힘들었고 열심히 했고 뿌듯했다. 헤헤헤.......


정말로 ‘녹색어머니회’ 이름은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 아빠들의 참여를 가로막는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회 통념상 시간이 되는 아빠라 하더라도 이런 일에 나서는 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름도 바꾸고 한 명, 두 명 나서게 되면 아빠들도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라도 다음에 학부모 모임이 있다면 그것을 제안해보려고 한다.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또 한 가지 섭섭했던 것은 모자 때문이다. 아래 사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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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끼는 남녀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모자는 구분이 확실했다. 저녁에 모자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푸하하하 웃는다. 그 거 쓰고 40분 동안 서 있었냐며, 사람들이 웃지 않았냐고 놀려댄다. 딸아이도 덩달아 웃는다. 조끼 대신 앞치마를 두르는 다른 학교보다는 조금 나을 수도 있겠으나, 다소 언발런스하다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체면 같은 거 생각지 않아서 나야 별 상관없지만, 보는 사람들이 좀 거북했다면 명칭과 함께 모자도 좀 바꾸면 좋을 것 같다. 남자 모자를 따로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2월에 ‘녹색어머니’ 활동이 또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낯설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가길 희망해본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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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주변 어르신들은, 늦지 않았으니 자식을 더 낳으라고 조언하십니다. 한 명이면 외롭다는 것이 주된 이유지요. 비단 어르신들만의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결혼한 사촌동생은 3명이 목표였고, 며칠 전에 기어코 셋째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한편으로 대단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전 별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원칙이 있었다면 ‘아내가 선택한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 고작이었고 지금까지 아내는 ‘한 명만 낳아 잘 기르자’ 원칙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정권이 없는 제겐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지요.


가끔은 외로이 혼자 노는 딸아이를 보면 동생이 필요하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유령친구’와 인형놀이도 하고 이불 속에서 속삭이는 모습을 볼 때 말입니다. 그래서 현재 조건에서 외롭지 않게 자라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게 하는 것이라고 판단해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엔, 한 층당 6가구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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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고, 2가구만 빼만 딸아이 또래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여자아이 2명, 남자아이 2명. 제 딸아이가 최고참이지요. 그래서 대개는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우르르 몰려옵니다.


처음엔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상당히 번잡한 일이 돼버리더군요. 아이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집 안 구석구석까지 아이들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밥 챙겨주고 간식 챙겨주고.......우르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체육공원으로........나만의 시간을 갖기란 참 어려운 일이 돼버렸지요. 오늘만은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은 헛된 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습니다. ‘놀고 나면 꼭 다 같이 치우기’라는 약속을 합니다. 처음부터 실천을 요구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지켜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스스로가 치우는 걸 피해가지요. 가급적 장난감을 꺼내지 않고 놉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간은? 그렇습니다. 복도입니다. 복도가 아이들의 주 놀이터가 돼버린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안쓰러운 일입니다만,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합니다. 자전거도 타고 줄넘기도 하고 킥보드도 타고 인형놀이도 하고 우산으로 아지트도 만들고 귀신놀이도 하고........복도에서 안 되는 놀이가 없더군요. 그럼으로써 저도 상당히 편해졌습니다. 물론, 좀 시끄럽긴 합니다만 다행히 불평하는 가구는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밖에서 놀이를 합니다. 다소 불안한 것은.......여기가 15층이라는 것이지요.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요. 얼른 나가봅니다.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심합니다만........딸아이와 함께 라면 어느 한 순간에도 방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것이 부모의 업보가 아닌가 싶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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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첫째, 셋째, 재수가 좋으면 다섯째 토요일 오전이라고 답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그 날은 우리 딸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랍니다. 쉽게 얘기하면 ‘놀토’가 아닌 토요일을 말하지요.


그 날은 정말로 나만의 시간입니다. 아내의 터치도 없고, 딸아이와의 부대낌도 없는 아주 고요한 반나절이지요.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아라비카 커피 한잔과 음악 감상, 혹은 한 동안 보지 못한 재미난 DVD 감상, 지겹지만 즐거운 인터넷 서핑, 아니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하다못해 잠이라도 잘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1분 1초가 아깝거든요. 경험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런 시간일수록 겁나게 빨리 지나간다는 것, 저에겐 이미 오래 전에 상식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침부처 서둘러 하고 싶은 목록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봤자 딸아이 학교 보내고부터 대략 3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일 뿐입니다. 그래도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지요.


그러나 머지않아 갈등이 밀어닥칩니다. 아내를 사무실에 보내고 문을 닫고 방에 들어오는 순간,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들과 방 구석구석 숨어 있는 잡동사니들, 뿌옇게 쌓인 먼지와 날파리들의 놀이터가 된 화장실........내 즐거움을 포기하고 가사 일에 전념할 것인가, 행복한 시간을 누릴 것인가? 햄릿의 고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도저도 못하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 십중팔구 집안 청소를 하게 됩니다.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 개키고 널고 방 청소 하고 화장실 청소를 마치면, 멀리서 요란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일 없이 3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지요. 그 짧은 시간, 물을 끓여 커피를 타 마십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잘 한 일일까, 못 한 일일까를 되뇌는 순간, 복도에서 딸아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결전을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잠자는 걸 제일 싫어하는 딸아이와 놀아주기 위해서는 모질게 마음 다잡아야 합니다. 어쩔 땐, 복도로부터 들려오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공포스럽기까지 하답니다.


그렇게 나의 가장 행복한 토요일 반나절을 강탈당하고(?) 2주 후의 그 날을 기약하면 눈앞이 캄캄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기에 즐거워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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