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가장 살 떨리는 시간이 있다면, 저녁밥을 먹고 딸아이의 책가방을 열어보는 순간이다. 가방 속 ‘알림장’에는 오늘 밤에 해야 할 숙제가 적혀 있다. 숙제가 없는 날이 더러 있긴 하지만, 보통은 담임선생님이 친절하게 해야 할 일을 보내주신다. 딸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숙제는 일기 쓰는 것 정도고, 대부분은 부모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이다.
받아쓰기 예습이나 수학 문제 풀이 정도는 그럭저럭 해 볼만한 일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크게 머리 쓸 일 없이 옆에서 간단한 코치면 된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 오라는 숙제나 무언가를 만들어오라는 숙제는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숙제 해가기가 좀 더 복잡해졌다.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숙제를 찾아보고 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방과후 어린이집에서 놀던 딸아이를 데리고 오는 시간이 저녁 7시 전후. 밥 먹고 치우면 8시. 인터넷 뒤지고 숙제 도와주고 나면 9시. 어영부영 10시가 되면 몸은 지쳐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일과면 소화할만하다. 일 때문에 딸아이를 조금 늦게 찾거나, 시장을 보거나, 딸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며 내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날이면 9시, 혹은 10시가 넘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땐, 딸아이의 책가방이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되며, 더러는 일부터 ‘알림장’을 확인하지 않을 때도 있다. 다음 날, 딸아이가 투덜대는 걸 감수하면서 말이다.
열심히 딸아이의 포스터를 그려주는 아내........
숙제는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학교의 일은 학교에서 마무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맞벌이 부부는 그래도 양호하다고 치자. 부모가 없는 아이들, 한 부모 아이들, 부모가 있더라도 숙제를 도와줄 처지가 안 되는 부모들........조금만 눈을 돌리면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이런 아이들을 모두 학원으로 내보낼 수 없지 않는가?
숙제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숙제를 내줄 때, 두 가지 정도의 기준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첫째가 누구나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터’란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포스터’를 제대로 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둘째는 자율성이다. 숙제를 해오는 아이나 해오지 못하는 아이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숙제를 해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것이 다 학교장을 비롯하여 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달려 있으니! 선생님들! 부모들은 정말 쉬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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