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2004년 대구여성환경포럼에서 푸른평화생협의 김형희님께
사례발표하신 자료입니다. 여성환경연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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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대구 여성환경포럼]
여성의 눈으로 본 생협운동
김형희(푸른평화생협)
만물이 풍요로운 가을에 “여성환경운동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 서 달라는 심현정님의 부탁을 받고, 단지 생협에서 지난 10년간 실무경험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주제넘기도 하다싶어 적잖은 부담과 고민도 하다가 “아휴 모르겠다! 지금 현재 그대로의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식을 용기로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푸른평화는 1990년 4월22일 “지구의 날”을 시작으로 천주교 월배교회에서 정홍규신부님의 지도아래 합성세제 안 쓰기, 폐식용유를 이용한 저공해 비누 만들기, 유기농산물직거래, 벼룩시장개최, 우리 밀 살리기 운동, 우유 곽으로 재생휴지 만들기등 생활 속에서 주부들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하면서 환경운동의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1월5일 상인공동체가 문을 열면서 생협의 모체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현재는 다섯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협이 무엇인지 의식도 없이 신부님이 항상 “주부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는 말씀에 주체가 아닌 객체로써 따라가는 처지였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 자리에서 이일을 해야만 하는지, 작게 눈이 뜨이기 시작하고 귀가 열리면서 집안에서 내가족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좋은 것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고 또한 더불어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여간 많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생협은 정말 여성들의 따사로운 손길이 하나하나 담겨야만 이 그 정성이 제대로 조합원들에게 전달되어, 개개인의 닫혀있던 가슴까지 활짝 열어 먼지를 털 듯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되고 , 시대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분열되어 흩어짐을 하나로 묶어 사람냄새가 나는 곳으로까지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생협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전에 생협에서는 여성이 깨어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요한 일에서는 남성이 위주가 되었고 정작 여성들은 매장업무만 하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 물류의 물품관리에서도 많은 손실이 있고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몇몇의 의식 있는 여성들이 “우리 살림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는 의식 있는 생각으로 모여서 손발을 걷어 부치고 앞장서게 되었는데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좋은 뜻으로 모였을 때는 엄청난 결속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행복했던 추억이 있었는데 어느 해 추운겨울 김장철에 수녀원에서 농사를 지은 김장배추가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북대구I.C에 도착 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때는 우리가 큰 차도 없고 해서 각 실무자들이 자가용, 다마스등의 모든 차를 총동원해서 집결하여 북대구 I.C 에 줄을 세워 두고 손을 호호 불며 각자의 차에 배추를 가득 싣고 오면서도 힘들다는 생각 보다는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하다며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서야 아! 하면 된다는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요즘 유기농매장이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하지만 생협이 타 유기농매장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조합원이란 구성원이 있고 그들이 재산이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 나가는 여성들의 건강한 삶의 지킴이가 되는 장터라고 봅니다.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여성들이 건강해야 가정이 행복하므로 우리 여성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야만 이 이 시대에 당당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저희 생협에서는 교육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생생학교와 수요생태교실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조합원을 모운다는게 참 힘이 듭니다.
앞으로 제가 생협에서 꼭 숙원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여성물류센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의 자리는 수평적 네트워크가 아닌 수직적 권위가 우선시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물류하면 당연히 남성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 생협에서는 주부들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세하게 읽을 수 있는 우리 여성들이 해 내고 있습니다.
제 바람은 정직하고 안전한 것만을 찾아내고 내가족을 위해서 정성껏 밥상을 차리듯이 조합원들을 위해서 가공. 포장. 배달. 홍보. 교육도 하며 늘 조합원들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것이 생협이 앞으로 꼭 해 내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조합원들이 정성이 담긴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생협을 통해서 구입 할 수 있고 물류에서는 여성들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일자리가 되어 서로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관계가 된다고 생각해 봅니다. 두서없이 말씀드린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시간이 되셨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례발표하신 자료입니다. 여성환경연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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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대구 여성환경포럼]
여성의 눈으로 본 생협운동
김형희(푸른평화생협)
만물이 풍요로운 가을에 “여성환경운동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 서 달라는 심현정님의 부탁을 받고, 단지 생협에서 지난 10년간 실무경험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주제넘기도 하다싶어 적잖은 부담과 고민도 하다가 “아휴 모르겠다! 지금 현재 그대로의 나의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식을 용기로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푸른평화는 1990년 4월22일 “지구의 날”을 시작으로 천주교 월배교회에서 정홍규신부님의 지도아래 합성세제 안 쓰기, 폐식용유를 이용한 저공해 비누 만들기, 유기농산물직거래, 벼룩시장개최, 우리 밀 살리기 운동, 우유 곽으로 재생휴지 만들기등 생활 속에서 주부들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하면서 환경운동의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1월5일 상인공동체가 문을 열면서 생협의 모체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현재는 다섯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협이 무엇인지 의식도 없이 신부님이 항상 “주부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는 말씀에 주체가 아닌 객체로써 따라가는 처지였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 자리에서 이일을 해야만 하는지, 작게 눈이 뜨이기 시작하고 귀가 열리면서 집안에서 내가족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좋은 것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고 또한 더불어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여간 많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생협은 정말 여성들의 따사로운 손길이 하나하나 담겨야만 이 그 정성이 제대로 조합원들에게 전달되어, 개개인의 닫혀있던 가슴까지 활짝 열어 먼지를 털 듯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되고 , 시대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분열되어 흩어짐을 하나로 묶어 사람냄새가 나는 곳으로까지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생협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예전에 생협에서는 여성이 깨어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요한 일에서는 남성이 위주가 되었고 정작 여성들은 매장업무만 하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 물류의 물품관리에서도 많은 손실이 있고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몇몇의 의식 있는 여성들이 “우리 살림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는 의식 있는 생각으로 모여서 손발을 걷어 부치고 앞장서게 되었는데 한사람 한사람의 힘이 좋은 뜻으로 모였을 때는 엄청난 결속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행복했던 추억이 있었는데 어느 해 추운겨울 김장철에 수녀원에서 농사를 지은 김장배추가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북대구I.C에 도착 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때는 우리가 큰 차도 없고 해서 각 실무자들이 자가용, 다마스등의 모든 차를 총동원해서 집결하여 북대구 I.C 에 줄을 세워 두고 손을 호호 불며 각자의 차에 배추를 가득 싣고 오면서도 힘들다는 생각 보다는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하다며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서야 아! 하면 된다는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요즘 유기농매장이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하지만 생협이 타 유기농매장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조합원이란 구성원이 있고 그들이 재산이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 나가는 여성들의 건강한 삶의 지킴이가 되는 장터라고 봅니다.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여성들이 건강해야 가정이 행복하므로 우리 여성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야만 이 이 시대에 당당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저희 생협에서는 교육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생생학교와 수요생태교실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조합원을 모운다는게 참 힘이 듭니다.
앞으로 제가 생협에서 꼭 숙원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여성물류센터”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됨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의 자리는 수평적 네트워크가 아닌 수직적 권위가 우선시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물류하면 당연히 남성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 생협에서는 주부들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세하게 읽을 수 있는 우리 여성들이 해 내고 있습니다.
제 바람은 정직하고 안전한 것만을 찾아내고 내가족을 위해서 정성껏 밥상을 차리듯이 조합원들을 위해서 가공. 포장. 배달. 홍보. 교육도 하며 늘 조합원들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것이 생협이 앞으로 꼭 해 내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조합원들이 정성이 담긴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생협을 통해서 구입 할 수 있고 물류에서는 여성들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일자리가 되어 서로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관계가 된다고 생각해 봅니다. 두서없이 말씀드린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시간이 되셨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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