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진옥(성남YMCA 간사) 작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최근 ‘학습공동체’라는 말이 YMCA를 중심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학습공동체’가 하나의 뚜렷한 운동적 범주를 형성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학습을 통한 공동체 형성, 또는 공동체적 학습이라는 전반적인 흐름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학습공동체’가 구현되는 각 지역의 운영 형태는 일률적이지 않다. 지역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소개하려다 보니, ‘학습공동체’라는 용어를 채택했을 뿐이다. 더 쉽게 말한다면 ‘공부모임’의 성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학습공동체’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는 이러한 흐름을 ‘스터디 서클(Study Circles)'이라 부른다. 그러나 ’공부모임‘이라는 말에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학습‘에 초점이 맞추진 뉘앙스를 가져다준다. ’학습공동체‘가 가지는 문제의식과 지향성은 집단적 상호작용을 중시 여긴다. 학습이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언제나 쌍방향적이고 공동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문홍빈,2003). 즉, 학습을 통한 개인의 변화, 그리고 가족의 변화, 나아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습공동체‘는 기존 성인교육이 가지고 있던 ’일방적인 가르침‘을 비판하면서, 학습하는 사람이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학습공동체’를 구현하는 지역에서는 ‘학습공동체’라는 말이 통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그러니까 필자가 방문했던 성남YMCA의 경우 ‘등대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어두운 해안가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등대의 이미지에 맞춰 ‘등대모임’은 ‘나’에서 ‘우리’로 관심을 옮겨 시야를 넓히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각 지역마다 이런 ‘등대’들은 여럿 있다. 성남의 경우만 하더라도 ‘행복마을’과 ‘해뜨는 마을’에 각 5개, ‘참마을’에 4개, 그리고 ‘살림이스트’에 7개의 등대가 있다. 각 등대의 구성인원은 5-10여 명 정도이고, 전원 주부들이다. 이런 한분 한분의 주부들을 ‘촛불’이라고 부른다. ‘촛불’들이 모여 ‘등대’를 이루는 것이다. 개별 촛불은 위태롭고 꺼지기 쉽지만, 그들이 모여 거대한 등대를 이룬다면 강한 비바람에도 끄떡없다. 물론, ‘촛불 아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아빠들의 모임’이라는 등대모임이 있긴 하지만 직장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아무래도 참여가 폭이 주부에 비해 넓지 않은 편이다.
“성남YMCA 등대모임은 99년 ‘어머니 독서모임’에서 출발했습니다. 소소하게 책을 매개로 활동을 하다, 등대모임으로 전환하였는데, 서로 배움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기존 교육프로그램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주 1회 2시간씩 촛불들의 집이나 YMCA에서 모임을 갖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과 독서, 인간관계,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활동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박진옥 간사의 설명에 따르면, 등대모임은 대체적으로 1, 2부의 활동으로 나뉘는데, 1부는 촛불간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 2부는 다양한 활동을 나누는 시간이다. 1부가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라면, 2부는 구체적인 활동의 영역이다. 또한 1부 ‘마음나눔’ 시간에는 생활의 규칙을 약속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나.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 매월 1회 이상의 책을 읽으며 단순, 소박한 생태적 삶의 양식을 가꾼다. 하나. 가정의 작은 것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며 용서와 화해를 내가 먼저 실천한다. 하나. 생명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전인적 공동체 회복을 위해 힘쓴다.
어찌 보면 생활규칙이 추상적인 구호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구성원들의 정체성은 그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인이다. 개별 구성원들의 가치 있는 삶의 변화 없이는 그 사회도 정체(停滯)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촛불간의 마음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히 자신을 성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변화의 주체로 설 수 있다. 이런 개인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성남YMCA에 있는 20여 개의 ‘등대모임’ 중에는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도 한다. 최근 백궁역 난개발에 대한 시민운동, 지방선거와 같은 정치활동에서 개별적인 등대모임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개별 등대모임은 자체적인 활동으로 촛불들을 모으기도 하지만, ‘주부아카데미’를 통해 촛불들을 양성하기도 합니다. ‘주부아카데미’는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8번을 실시했고, 보통 4-50명이 참여합니다. 이 중 약 10여 명이 등대모임에 참여합니다.”
‘주부아카데미’는 등대모임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 등대모임과 별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주부아카데미’를 수료한 상당수 주부들이 등대모임에 결합하기도 한다. 적게는 10강좌에서 많게는 15강좌를 소화하는데, 최근 개최한 ‘주부아카데미’ 8기의 프로그램을 보자.
내 안의 나를 찾아서 1강 : 개강식/자기실현을 위한 체험학습 2강 : 그림으로 읽는 내 아이의 과제 3강 : 나는 들꽃과 이야기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4강 : 도시 속에서의 생태적인 삶 5강 : 새만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6강 : 우리 아이 자연건강법으로 키우기 삶과 문화의 전환 7강 : 밥상머리 혁명 8강 : 친환경 먹거리를 찾아서 9강 : 더불어 꾸리는 공동체 10강 ; 수료식/YMCA와 생명 공동체
프로그램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부아카데미’ 강좌의 특성은 일상적인 삶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있다. 나와 가족의 생태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새로운 문화, 변화하는 삶, 그리고 만남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박진옥 간사를 덧붙인다. ‘주부아카데미’ 외에 ‘등대지기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YMCA에서 운영하는 ‘아기 스포츠단’ 학부모들을 주 대상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등대활동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등대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서부터 등대일지를 작성하는 일, 각 촛불의 역할 등의 기본 원칙을 익히고 나아가 다양한 활동과 토론을 통해 서로 배우고, 나누고, 성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수행한다.
‘등대모임’에 참여하는 촛불들을 못 만난 것이 아쉽지만, 등대 활동 안내서에 적힌 몇 몇 촛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대 반 부담 반으로 시작된 활동은 주부들의 모임이다 보니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빡빡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런 여유가 오히려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것 같기도 하다. 읽을 책을 함께 정하고 읽으며 느낌 나누기를 통해 서로가 하나 되는 일체감도 느끼고 아이들 키우는 어려움과 기쁨을 서로 나누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 때문에 제쳐놓았던 영화 관람도 하고 작은 봉사활동이지만 아제 자리가 바뀌어 결혼 전 사회복지사로 복지관에 근무했었다. 주부로서 자원봉사자로서 복지관에서 하는 활동이 또 다른 기쁨을 주기도 했다.......”(성남 ‘푸름이등대’에서 활동하는 이건숙씨의 글 중)
“......우리 등대의 이름은 ‘장미’입니다. 장미의 이름으로 작년부터 불 밝힌 우리 등대에는 이미 많은 촛불님들이 지키고 계셨고 그분들은 장미 같은 향기로 새 식구들을 감싸주었습니다. 바라기보다는 줄 것이 없어 안달난 사람들 모양, 그녀들의 적극적인 모습이 과잉행동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등대모임 때 둘러앉아 손에 손잡고 묵상하기, 여는 노래 닫는 노래 함께 부르기 등 닭살 돋을 것 같은 의식의 절차가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여 질 때 나는 그들의 진실함에 빠져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성남 ‘장미등대’에서 활동하는 오연희 씨의 글 중)
‘등대모임’ 활동이 촛불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진솔한 글이다. 목마른 자에게 아무리 퍼주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생수와 같은 사랑의 ‘하나됨’운동이 바로 Y등대운동, 겨자씨 운동(안내서의 글 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듯, 등대운동은 삶의 변화를 이끄는 ‘싹 틔우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운동이 아니라 잔잔한 파장을 일으켜 큰 물결을 만드는 긴 호흡의 운동이다. 물론 이런 흐름을 지역사회에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가 운동적 과제로 남아 있긴 하지만, 조급한 접근을 스스로 배제하고 있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실천하면서 구체적인 개인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느리게 질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 성남YMCA 홈페이지는 http://www.snymca.or.kr/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