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모임 토박이'가 아름다운 이유"
- 열린사회북부시민회를 찾아

인터뷰 : 박운정(간사)
작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이하 북부시민회)는 열린사회시민연합의 9개 지부 중 하나이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은 98년 창립된 신생단체라고 볼 수 있지만, 창립 이후의 세월보다 이전 세월이 훨씬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소위 민통련이라고 불리는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85년 창립)과 서울국본이라 불리던 ‘민주쟁취국민운동서울시본부’(87년 창립)가 새로운 운동의 방향성을 꾀해오다, 98년 서로 합침으로써 ‘열린사회시민연합’을 탄생시켰다. 북부시민회의 역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벌써 10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기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었던 시기에 “독재타도, 민주주의 쟁취”가 그들의 모토였다면, 지금은 “주민참여, 주민자치”가 그들의 화두다. 당연히 구체적인 현장은 운동의 터전이다. 자원봉사사업, 시민교육사업, 주민자치사업으로 불리는 북부시민회의 3대 중점 사업을 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민자치사업’은 주민자치센터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주민자치센터가 지닌 한계에 대한 많은 지적들이 있긴 하지만, 동네를 가꾸고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조직의 존재가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의미로서 ‘주민자치센터의 활용론’은 의미가 있다. ‘자원봉사사업’에는 대표적으로 무료 집수리를 해주는 ‘해뜨는 집’이 있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가정 등 어려운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 방송의 러브하우스처럼 멋들어지게 만들지는 않지만, 토목, 건설 쪽 기술을 지닌 자원봉사자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집을 보수해준다. 물론 이 사업에는 기술직 자원봉사자들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몸으로,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시민교육사업’은 어린이 여성, 그리고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열린 학교’라는 이름의 방과후 교실이 대표적인데, 방임아동을 대상으로 학습지도, 생활지도를 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두 명의 교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모든 사업은 ‘사람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강제된 ‘사람의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주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변해야 하는 주체의 자발성이 가장 절실히 요구된다. 북부시민회의 주민 밀착형 사업의 저변에도 이런 주체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마도 이 모든 사업이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지만, 대표적인 주민 주체형 사업을 꼽으라면,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삭막한 도시에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도시라는 지역에 공동체라는 것을 일궈내서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미아3동 놀이터에서 마을 잔치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저희가 생각한 이상을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상시적으로 이런 것들을 일궈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놀이터라는 곳이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지만 동네 안에 있고, 항상 개방되어 있고, 공공영역기도 했고요. 이런 특성을 잘 살리면 개인의 영역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놀이터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사업은 시작된다. 어둡고 음침한 놀이터를 주민들이 깨끗한 놀이터로 만들기 시작한 때가 2000년부터였지만, 그 계기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7년, 북부시민회는 마을축제를 통해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자 ‘우리 절기 살리기 운동’을 놀이터에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접근성이 용이해서 주민들의 호응은 높았다. 처음에 많은 주민들은 이 행사를 구청이 주관해서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최가 시민단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주변 엄마들이 손쉬운 일, 즉 부침개를 부치거나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북부시민회는 이 축제를 계기로 도심 속의 놀이터가 새로운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았다. 그러나 일회성 마을축제는 한계가 명확했다. 축제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일상적인 문화활동이나 주민간 소통의 공간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주부들에게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를 제안하게 되고, 지금까지 봄, 여름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렇게 관계가 익숙해지면서, 엄마들도 이 행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난 2001년 3월에 엄마들이 중심이 된 ‘주민모임 토박이’가 만들어지게 되었죠. 물론 저희가 이 모임을 만드는데 기여한 바도 있지만, 엄마들 스스로 모여서 무엇인가 한다는 생각에 의욕이 대단했어요.......아무래도 놀이터의 특성상 아이들의 안전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엄마들이잖아요. 그래서 엄마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행사의 내용도 엄마들과 아이들 관련된 사업이 많아요. 이런 특성이 오히려 놀이터 문화 사업이 지속성과 내용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다섯 분 정도가 시작을 하셨는데, 이사하고 몇 분이 들쑥날쑥 하시면서 현재는 여섯 분 정도 활동을 하세요. 매월 2회 정도의 모임을 갖고, 1년에 마을잔치를 네 번 정도 하는데, 준비작업부터 평가까지 이 분들이 주도하셔서 합니다. 올해는 발행하지 않았지만, 작년까지 마을신문을 발행했었어요. 동네 행사나 놀이터 사업도 알리고, 놀이터 유래나 좋은 곳, 동네 유래, 칭찬하고 싶은 분 등 신문을 통해 알려나갔죠.”

정보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만, 지역에는 모델로 삼을만한 여러 주민자치 사례들이 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이런 사례들을 평가하는 지점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그런 사례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누가 주체가 되서 하느냐”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몇 몇 활동가나 전문가가 주도하는 사례는 많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서툴거나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사례라면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준비하고,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고, 또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 학교’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북부시민회의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 사례가 우리에게 생각할만한 시사점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북부시민회의 꾸준한 노력이 있긴 했지만, 주민 스스로 놀이터 문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만든 ‘토박이’는 이 사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공모한 ‘풀뿌리 상’에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주민들이 모이니까 산뜻한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 놀이터 안에 버려져 있던 방범초소를 철거 하고, 여기에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한 것도 주민들의 아이디어였다. ‘놀이터 사랑방’으로 불리는 이 곳은 그림책이나 놀이기구, 비상약을 구비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문화공간이다. ‘토박이’회원들은 돌아가면서 ‘놀이터 사랑방’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놀이터 사랑방’은 공간이 꽤 커요. 영화제나 먹거리 행사를 하면서 기금을 조금씩 마련했고, 저희 단체에서도 일부 부담해서 약 100만원 정도를 들여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했어요. '놀이터 사랑방‘에는 그림책이 한 400여 권 정도 있어요.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쓴 것을 직접 제 자리 갖다 놓기도 하고, 다른 친구를 위해 아껴 써야 하고, 아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었죠. 좋은 책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부분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희 없이 그냥 문을 열어 놓는 건 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토박이’회원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 돌아가면서 ‘놀이터 사랑방’을 지키고 있다. 참여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천금같은 나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고 누가 잘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참여는 지역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커다란 힘이다. 참여가 확대될 때, 버려진 놀이터가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변해간다.

“지금은 약간 정체인 것 같아요. 4년여 해오면서 ‘토박이’ 회원들도 직장을 구하거나 이사하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 일이 아주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 활동에 대해 갖는 피드백이 없는 것 같아요.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외부의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동료의식 같은 것도 생기면서 보기 좋다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러나 본인이 활동하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없다면, 단순히 교육 차원만으로는 그런 보람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박운정 간사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놀이터를 가꾸는 활동이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일상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엄마들에게 돌아올 피드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돌아서면 또 산적하게 일거리들이 보이는 것이 가사일이라면, 놀이터를 가꾸는 일도 가사일과 똑 같은 특성이 있다. ‘토박이’ 회원들의 소속감은 대단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생활과 결합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박 간사는 말한다. 이슈 파이팅과 같은 사업은 한번에 뜻을 모으기만 하면, 성과나 금방 나타자지만, 이런 일은 성과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물론 마을잔치가 진행되는 시간에 모든 주민들이 흥겹게 놀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지만, 이것을 어떻게 개인에게나 지역사회에게나 의미를 부여하며 지속화시킬지 고민이다.

“저희도 ‘토박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올해 들어서 고민되고 있는 부분은 사업 전반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엄마들의 눈높이와 저희의 눈높이가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 활동가 입장에서 사업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다보니까 욕심이 많은 생기잖아요. 마을잔치가 97년부터 한 7년 정도 되었고,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도 한 4년 됐는데, 회원이 많이 늘지 않은 부분이나 저희 힘으로 잘 안되는 부분 등에 대해 욕심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주민을 만나는 일들이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을 요구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를 냉정히 해볼 생각입니다.”

‘토박이’로 대표되는 주민자치 모임들은 단순히 일을 중심으로 지속되지는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일은 통한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맺기’, 나아가 사람과 지역의 ‘변화’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고, 그런 것에서 오는 강박관념도 있었을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으면 좋으련만, 주민자치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북부시민회의 고민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해결의 실타래가 쉽게 보이지 않겠지만, 그 과정이 많은 지역에 공유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의 홈페이지는 http://www.openb.or.kr/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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