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녹취록은 지난 2007년 3월 16-17일,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개최된 “2007, 풀뿌리들의 수다!” 워크숍 중, “고수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양이 워낙 길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내용이 다소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녹취록 전문을 실어야만 앞뒤 맥락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회
이호(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
참여자
정외영(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현 한 살림)
윤혜란(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현 풀뿌리 희망재단)
고창권(희망세상)
1부
이호(이하 이): 왜 고수인가, 고수라는 말이 우선 무협지에서 나오는 강호의 고수라고 표현하는데 제가 좀 말버릇이 그런게 좀 있어요. 내공이 어떻고, 이 풀뿌리운동 판의 강호들을 대표해서 고수들이 어떻고, 사실은 그렇게 따지면 풀뿌리운동 판에 있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고수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이 뭐 그분들에 비해 절대무공을 지닌 그런 분들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지역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시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어려움도 겪으셨지만 성공적인 활동들을 해 오셨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분을 저희 준비위원회에서 여러 토론 끝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게 토크쇼방식이다 뭐다 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건데 저도 여러 모임에서 사회도 보고 발표도 해본 적이 있지만 토크쇼 사회는 오늘이 데뷔무대입니다.(웃음) 많이 부족하겠지만 많이 이해해 주시구요. 토크쇼다 보니까 준비위원들이 시그널뮤직도 이렇게 올리고 해야 하는데 제가 준비를 못했고 대신 이해정선생님이 테이블보를 예쁘게 꾸며주셔서 그나마 분위기가 좀 사는 것 같습니다.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소장으로 있는 이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박수) 그리고 오른편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에 녹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 전대표셨고 현 한살림 강북지부 대표이신 정외영선생님입니다.(박수) 저는 건방지게 앉아서 인사드렸네요. 죄송합니다.(웃음) 제 옆에 앉아계신 분은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 부산의, 지금은 희망세상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거기 전대표이셨고, 지금은 구의원을 하고 계시는 고창권선생님입니다.(박수) 그리고 제 왼편에 계시는 분은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들의모임 천안에 있는 지역복지운동단체인데 사무국장을 하셨고, 인큐베이팅하는 지역운동의 사례로 많이 알려졌고 그때 사무국장을 하고 계셨고, 지금은 풀뿌리희망재단에서 일하고 계시는 윤혜란선생님입니다.
저희가 3시간이 진행되는데 중간에 한번 쉬고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수들의 수다라고 해서 고수들끼리 수다를 떨겠다는 건 아니고 여기 같이 계신 고수분들과도 같이 여러분과 같이 수다를 떨기로 한 것이기에 요번에는 이 세분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행할 예정이고요, 물론 제가 손석희아나운서같이 사회를 잘 보고 그런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여러분에게 질문할 시간을 드릴 테니까 질문하시고 싶으신 내용은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3분의 이름을 들어보신 분도 계시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 대충 아시는 분도 계시고, 아마 처음 접해보신 분들도 계실텐데 이분들이 어떤 계기로 지역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셨는지 개괄적으로 들으면서 얘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외영선생님부터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예, 시간은 제가 이메일로 그렇게 부탁을 드렸고요, 간략하게 대답해주시되 생각만 대답하지 마시고, 사례를 풍부히 들어서 간략하게 대답해달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부탁인건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대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시간에 너무 구애받지 마시구요, 생생한 이야기를 하는게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말씀해주시죠.
정외영(이하 정): 반갑습니다. 저도 이런 형식이 처음이라, 지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처음, 녹색삶을위한여성들의모임 근거지가 서울에서도 강북구에 수유리, 미아리, 번동 이쪽을 강북구라고 합니다. 여기가 터전인데요, 저가 그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가서 문밖을 나가면 시장에서도 만나고 학교에서도 만나고, 제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만나지는 이웃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이 만나도 나중에 하는 얘기가 애들 이야기고, 우리 관심사의 얘기고, 학교 가서 어머니회 마치고 잠깐 이야기해도 또 똑같은 이야기고... 그래서 이걸 따로따로 할게 아니라 모여서 하면 참 좋겠다해서 6명이 처음 모여서 그동안의 따로따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같이 한번 풀어보자 그래서 실컷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게 시작이 13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만나서 점점 우리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각자 자기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어요, 자기 이야기를 했죠.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를 쭉 하다보면 어느새 저 사람이야기나 내 이야기나 또 옆에 있는 이웃 여성이야기나 다 비슷한거예요. 관심사가 굉장히 같았어요. 그래서 그렇다면 이걸 따로따로가 아니라 같이 자기 자신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함께 해결해 보는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함께 해보기를 시작한 것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이제 각자가, 저희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듯 똑같이 만난게 아니잖아요. 나이가 만나면 30,40,50 심지어는 60대까지 있었어요. 그러니까 각자 살아왔던 환경이 다른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형님말씀이 맞아, 깨달음이 되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아는 것도 많아, 하면서 배우게도 되고. 이런 과정으로, 우리가 관심있어 하는 것을 하나씩 주제를 뽑아 올렸어요. 그랬더니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이들이 잘 자라야 되겠다 라는 거였어요. 잘 자라는게 어떤건데? 그냥 잘자라야지 하는 거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그럼 잘자라는게 어떤거죠? 어떤 걸까요. 하고 이야기를 모아나가기 시작하니까 한마디로 끝났던 이야기가 풍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세밀한 이야기도 해보고, 그러다보니까 조금 먼저 키운 분들은 나름대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정보를 주셨고, 이제 막 그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시는 분들은 그 새삼스러운 자기 경험을 놓고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이문제가 저 친구의 문제, 저 여성의 문제 이런 공통점을 발견해 나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이들 문제도 함께 해결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우리 마을에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갖게 되는 문제가 자녀들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문제도 참 많았습니다. 조금더 배우고 싶다라는 욕구도 많았었고요, 뭔가 내 시험을 해보고 싶다는 꿈에 관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그대로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저희들은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혼자 있었으면 못했을 것을 그냥 쪽수가 많아지니까 서로 힘에 나고 신명이 나서 하다보니 되네,되네, 그러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길어졌거든요. 그래서 현재는 어떤 일들을 주로 하냐면 제 관심영역과 딱 맞는 부분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우리마을의 아이들이 다같이 잘 자라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 문제는 우리들의 가슴을 태우고 지금도 힘에 겨워서 해매고 있는 그런 문제가 아이들, 우리마을 아이들을 키울 공부방 활동입니다. 그 부분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수유리에 살다 보니까 이 지역은 다른건 없어도 큰 산은 참 좋은게 있거든요, 북한산국립공원이 있어요. 이런 부분에서 우리 지역의 특성을 발견해나가면서, 수유리라는게 물이 막 넘치는 마을이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물이 넘치는게 아니라 말랐어요. 그런 문제의식은 폐식용유를 모아서 비누를 만들어 써보는 작은 출발부터 지금은 이제 그 과정에서 장바구니들기, 강북아나바다시민운동, 이런걸 거쳐서 녹색가게운동도 해보고, 지금 풀빛살림터라고 마을공동재활용작업장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주요한 한부분이 아까 공부방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작한 우리마을 아이들 함께 돌보기는 이제 우리마을 사람들을 함께 돌보는 사랑의책배달 운동 등등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런 운동으로 쭉 지속되고 있고, 이런 모양으로 13년 정도 함께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박수)
이: 한사람 한사람 박수를 치면 박수만 치게 되니까 박수는 끝나고 한꺼번에 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사실 궁금한게 많아서 제가 추가적으로 질문을 좀 드릴게요. 처음에 6명의 아주머니들과 같이 모임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6명의 아주머니들을 어떻게 만나게 된건지 과정이 궁금할 것 같아요.
정: 처음 이사를 가서, 그 지역에는 아파트가 잘 없어요. 근데 조그만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만나는 이웃들부터 인사를 잘 했습니다. 제가 다른건 몰라도 인사는 좀 잘하거든요.(웃음) “안녕하세요, 저 이사왔어요.” 하고 신고식을 하는거죠. 또 아이 전학을 했기 때문에 다른데는 못가도 1년에 한두번은 가잖아요. 어머니회를 하러, 총회를 하러가서도 제가 이사와서 아이가 전학왔다는 사실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니 어디사냐고 물으면 어디산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람 난 그 옆에 사는데... 이런 이야기들, 정보가 주고받아 졌습니다. 이러다보니까 자주보는 얼굴이 생기는 거예요. 시장가다가도 또 만나게 되잖아요. 바로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제가 이사 간 주변에, 제 생활권 내에서 만나는 여성들이었어요. 만날 때마다 너무 비슷한 이야기를 늘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만나도 잘할 수 있을거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집에서 차 한잔 하자고. 그게 이 모임의 6명이 처음이었는데요. 그 6명이 지금까지 왔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6명이 차 마시면서 시작한, 함께 이야기하는 수다를 떠는 활동이 첫출발이었고요, 수다를 떨다보니 6명은 8명으로 24명으로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희 안방에서 만났지만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 집에서 만났지만 그다음에는 우리들이 만나는 공간이 필요했고, 이런 것들을 해결해 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자세하게 만족스러운 대답이 안나오네요.(웃음) 그 말씀이 불만족스럽다는게 아니라 어쨌든 6명이 만나서 사람이 늘어나는 과정에, 뭔가 무슨 일을 하니까 사람이 늘어났을텐데 어떤 일을 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늘어났는지와 더불어 처음에는 단체가 아니라 그냥 아주머니의 모임이었을 텐데 그게 단체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정: 좀 극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 정보를 줬어요, 제가 여기 이사오기 전에 구로시흥지역에 살 때 저는 선경험이 있었습니다. 구로지역에 살구여성회라고 지금도 있습니다. 지역여성회를 거기서 처음 시작했거든요. 한 4년 이미 이웃여성들을 만났던 경험은 아줌마로서의 자신감이 굉장히 올라와있었습니다. 우리는 나가다가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를 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어요.(웃음) 누구를 만나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6명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어려웠던게 지금 저희 구역에 이제는 학교가 좀 섰습니다. 그때는 중학교가 한 2-3개 있었고요, 고등학교를 보낼 때는 어디까지 나가야 했냐면요, 여학생들은 차를 타고 종로를 나가야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즉, 우리 살고 있는 지역이 아이들 교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이전 구로지역의 살구여성회 경험을 나누었더니, 우리도 하자고 제안.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여섯이 적다. 그런게 또 이야기가 막 나왔어요. 근데 제가 정보를 드렸습니다. 내가 이전에 살던 지역에서는 우리 그런거 막 고민하다가 모여서 이런 방법을 해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더니 참석한 한 여성이 이렇게 발언하셨어요. 구로시흥보다는 그래도 우리 지역이 좀더 낫지란 그런 자부심이 있었어요.(웃음) 전 그게 이해가 됐거든요. 우리라고 못할 거 없지. 이렇게 해주신 분이 첫 회장을 맡으셨던 분인데요. 그 분이 이렇게 탁치고 나가니까 나머지 여성들이 공감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제 그런 욕구들을 만난거죠. 그래서 그러면 6명 너무 작잖아하는 얘기가 매우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게 뭐냐면, 옆에서는 그럼 어떻게 했는데? 조금 과정을 설명해드렸어요. 여성들이 모여서 숫자가 이렇게 돼서 살구여성회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요렇게 해보니까 그때도 공부방을 했었습니다. 방과후프로그램 형식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니까 아이들을 같이 키울 수도 있더라, 지역아이들도 그 시기에 같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랬을 때 여성들이 다른건 몰라도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것을 모여서 하면 뭔가 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해보자라는 이야기에 그 자리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6명은 적극적으로 주변의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여성이 심지어 올케도 같이 오시고, 왜냐면 우리 동네는 지금도 그래요,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게 꽤 많습니다. 강북구는 그런 특성이 좀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도 오시고, 이웃여성도 초대해서 오고해서 만들어진 숫자가 24명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름 하나를 지어서 아까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으니까 A4용지로 몇장이 나왔습니다. 엄청 많은 거예요. 그중에 할 수 있는 거를 찾아서 맨먼저 시작한게, 저희들로서는 절박했어요. 지금은 구민회관도 있고, 주민자치센터도 있고 여성관련프로그램도 너무 많지만요, 그때는 저희 강북구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도봉구하고 막 분화가 되는데 도서관도 전부 도봉구에서 갖고 가고, 강북구에 남아있는게 없었어요. 즉, 우리의 가장 1차적인 욕구도 함께 모아서 해결할 수 있는 터전자체가 없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이제 이걸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했던게 뭐였나면, 1차, 아이들은 좋은책읽기를 같이 해보자는 거였고, 우리 여성들은 욕구 중에 영어를 배우고 싶다, 일어를 배우고 싶다, 한자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꽤 많았습니다. 그걸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임을 만들게 된 구체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이: 고맙습니다. 계속 이어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 돌아가면서 다 듣기로 하고, 똑같은 물음으로 고창권선생님께, 아까 제가 추가질문한거 들으셨죠. 추가질문이 안 나오게(웃음) 고창권선생님이 말씀해주시죠.
고창권(이하 고): 반갑습니다. 저는 반송이란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송은 부산의 해운대구 반송동인데요,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부산지역에 한국전쟁 이후로 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도시계획에 따라서 그분들이 집단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 집단이주를 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 반송이라는 마을이고, 그 주위에도 반여동, 금사동 이런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의 한 곳인데 저는 철거를 할 때의 이주민은 아니었는데 거기로 이사를 가서 지금까지 30여 년째 살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의대를 졸업했는데, 다시 집사람하고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밖에서 공부를 하다가 고향에 들어가서 개업을 했는데 너무 사람들이 변화가 없는 거예요. 로봇과 같이, 단지 변한게 있다면 우리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는 거 외에는 마을이 너무 멈춰있다, 너무 정체되어 있다는 이런 느낌들에 상당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인도주의실천의사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뭔가 지역에서 활동을 해야겠다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고, 한 1년 정도의 못이김 속에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가, 소년소녀가장들도 많이 있습니다. 소년소녀가장들, 독거노인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후원회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지가 너무 볼품이 없는 거예요. 내용은 매우 가치있고 의미있는 거에 반해서, 그래서 그분하고 상의를 해서 소식지를, 주민들이 알아야 하니까 조금 번듯하게, 예쁘게 만들어 봅시다하고 이렇게 제안하게 되었고, 그걸 같이 만들려고 하니까 단지 후원의 내용뿐만 아니라 마을소식, 우리 주민들께서 정말 알면 얼마든지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들이 너무 차단되어 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소식지지만 우리 주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내용, 이런 내용들을 좀 담아내자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같이 마을 소식들을 가지고 같이 찾아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었던게 주부들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열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전봇대같은 데에 몇 개 붙여서,(웃음) 주부들께서 몇 분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하고 글을 좀 쓰시는 분들하고 4강좌정도를 준비해서 편집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월 1번 펴내는 소식지인데 편집팀을 꾸리면서 한 1년 반정도 활동을 쭉 해왔습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같이 함께하는 이웃에 계시는 분들하고 점차적으로 모이게 되고 그래서 사무실도 구하게 되고, 다양한 소모임활동으로 단체로 만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간단하게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이해가 잘 안되시죠?(웃음) 제가 3분을 사전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고창권선생님하고 인터뷰가 어려웠던게 질문을 하면 너무 짧게 대답을 하셔서(웃음) 부산사나이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알기로는 주부들 글쓰기 모임을 그분들을 만나게 된 과정도 있었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글쓰기를 하고 싶은 주민들을 어떻게 만나셨는지, 그 과정이 있다고 들었는데.
고: 이런 질문이 나와야지 또 다음 답변을 하지요.(웃음) 개인적으로는 그런 고민들을 했습니다. 인천지역의 평화의료생협문제가 아까 화면으로 나왔는데, 당시 10년 전에는 의사들이 그런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인여협 회원들이나 의사들 중에서도 고민을 하는, 사회참여나 이런 것을 고민했던 의사들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10년 전에 생협이 상당히 화두로 떠 올라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생협인가 다른 형태인가, 근데 개인적으로는 반송지역말고 수정동에 의원을 개원한 적이 있었는데, 지역의원이란 개념이죠. 그러니까 병원과 지역주민과의 결합정도가 매우 높은, 그게 생협의 형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지역의 주민들과 같이 만들려고 하는 의원이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많이 고민하게 되었죠. 생협의 형태는 당시 일본의 사례를 많이 반영이 되었다고 알고 있고요, 그렇게하다 실패를 했습니다. 2년정도 하다가, 의원을 했는데, 너무 안되서, 병원에 있는 현미경을 팔아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이러면서 병원에 있는 모든 기구를 팔면서 직원들 월급주다가 결국 망했습니다.(웃음) 그런 아픔들 속에서 다음에 다른 장소를 찾아보자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망할 때는 저는 결합하지 않았죠.(웃음) 집사람이 하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자라왔던 곳이니까 반송으로 들어가서 같이 한번 해보자, 이렇게 결심을 하고 반송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역의원의 형태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병원과 지역주민과의 결합도를 어떻게 높여야 될건가 이런데 초점이 맞춰졌다 생각되고요. 처음 초창기에 이걸 만드신 분들은 병원이 되다 보니까, 아까 어떻게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는가, 병원이 1시간 기다렸다가 3분 진료하고 가는게 아니라 4분 기다리고 1시간 이야기하고 가고, 이런 사랑방구실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기 치료하러 왔지만 살아가는 이야기 다 하고 아이들 교육문제 얘기하고 지역의 여러가지 문제 이야기하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서로 통하는 주민들이 생기게 되고 그런 분들과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을 중심으로 강좌를 열고 또 그분들을 중심으로 마을소식지 형태의 편집팀도 꾸려지게 되었다라고 설명됩니다.
이: 처음에는 그렇게 편집모임이 시작을 했지만 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 과거의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에는 그 편집부의 말씀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또 여러 소모임을 만들어 나갔다고 하는데 그 과정도, 사무실을 얻게 되는 과정도 재밌던데 말씀을 좀 해주시죠.
고: 초창기 편집실은 진료를 마치고 병원 사무실이나 대기실에서 간단하게 회의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있는 거죠, 아무래도 병원에서 하는 것은. 장소도 고민이 되었고 하다보니까 마을소식지라는 것이 당연히 후원도 하지만 지역의 문제들이 자꾸 나오니까 주민들이 모이려고 하는지 자꾸 제기가 되는거예요. 이걸 어떻게 할건가, 근데 요구도 다양해서 다양한 요구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책도 좀 읽고 토론하고도 싶고, 영화도 보고 토론하고 싶고, 손재주가 좋은데 만들기 이런것도 뜻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해보고 싶다, 나는 풍물을 좋아하는데 반송에는 이런 것도 제대로 없는 것 같다 등등의 여러 가지 요구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일단은 병원이 사실은 사랑방 역할을 하기 힘드니까 일단은 우리 주부들이 낮에 시간이 많이 날 수 있는, 모일 수 있는 사랑방 형태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했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정말 어렵게 사무실을 구했습니다. 허름한 곳에 하나 구했고. 특히 재래시장 가까운 쪽에. 그러다보니 주부들께서 시장보러 가시다 들러서, 가기 전에 일찍 나오셔서 1시간 계시다가, 또 장보고 오셔서 1시간 있다 가시고, 그래서 시장보는 시간이 2-3시간 늘어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사무실이 사랑방 공간으로 활용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랑방 안에서 여러 가지 요구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취미에 따라서 소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당시 만들어졌던 모임들이, 혼자계신 노인분들 한달에 한번씩 반찬 만들어서 배달해드리자, 주부들이 제일 쉽게 제일 잘 할 수 있는 반찬만드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독거노인 밑반찬 만들어 드리는 함께나눔반 이란게 만들어졌고, 그리고 책읽는 독서반도 만들어지고, 영화보고 토론하는 날개반, 이러게도 만들기반, 퀼트반, 풍물반, 인형극반, 할 수 있는건 거의 다했습니다. 그리고 편집팀, 그렇게 하다보니까 사무실이 우리 주민들로 북적북적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각 소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소모임들이 문제는 그 다음에는 질문하실 것 같은데 미리 말씀드리면,(웃음) 소모임들은, 취미로 모이는 소모임은 결국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뭐냐면 수명이 있더라는 거죠.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1년,1년반 지나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든 단체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다 그런것 같아요. 수명이 있다. 이걸 분명이 인식하는게 아주 중요하다라고 생각이 되고, 일반 취미로 시작하는 소모임은 1년반을 절대 넘길 수 없다. 넘기려면 질적으로 내용을 충분히 보강을 하던지 아니면 이끌어가는 동력을 마련하던지, 아니면 소모임은 1년반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한창 그 소모임이 잘될때 6,7개월 때 그 다음부터는 다른 모임을 고민하는 거예요. 이 모임도 1년이 지나면 수명이 떨어질텐데 어떻게 살려야될지 고민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니까 조직을 바꾼다던지 소모임별로 돼 있던 조직을 이제는 좀더 단체 중심으로 한다던지. 그렇게 하다보니까 사람이 자꾸 모이다보니 이름을 정하자해서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 당시에는 유치하게 이름이 길었는데 요즘은 그게 유행이 되었는지 사랑하는이란 말이 단체이름에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까.(웃음) 10년 전에는 드물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만드니 동네분들이 너네만 반송 사랑하냐 우리도 사랑한다 지금까지 몇십년 사랑해왔다,(웃음)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근데 그런 측면이 아니라 반송에 계신 주민들이 반송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당시의 지역정서는 반송을 떠나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소외되었지요, 변두리지요, 떠나야 한다, 제 또래의 친구들은 없었어요. 저 개업하러 들어가서 전화하니까 찾기가 힘들어요. 다 직장 때문에 결혼을 이유로 다 지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정말 친구 찾는게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친구찾는게. 이런 분위기에서는 마을의 내일을 절대로 이야기 할 수 없고, 발전도 얘기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그게 화두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이라고 지었고요, 그렇게 이름을 짓고 나니까 단체로서 형태를 갖추게 되고 시간이 지나니까 소모임은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힘이 빠지게 되면서 단체중심으로 지역에서 활동해왔던 지역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체계가 바뀌고, 단체의 틀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 제 인터뷰하실 때는 짧게 하시더니 오늘은 상당히 자제를 하시네요. 저로써는 진행하기 편합니다. 두분의 공통점을 끄집어 내보면 두분이 어떤 주민들과 모임을 하려고 목적을 갖고 주민을 만났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주민들을 만나다보니 그 사람들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나갔다는 그런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윤혜란선생님은 좀 다른 경로를 거쳐서 단체를 만들고, 특히 인큐베이터사업으로는 상당히 유명하신데, 그런 사업이 진행됐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과정, 처음에 왜 YMCA에서 활동하시다가 복지세상을 만들게 되셨고, 이 복지세상이 주요사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사업이 왜 중요하게 자리잡게 되었는지 그런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여기 인큐베이팅 사업의 방식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사례를 통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혜란(이하 윤): 이호선생님께서 처음에 메일로 프로그램 말씀하셨을 때 고수들과의 수다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정말 고수는 부담되고, 수다는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에 제가 제자신을 분석해볼 때 3가지 증상이 나오는데, 어쨌든 긴장감, 집중력,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웃음) 어떤 주제를 갖고 길게 얘기하는 정리해서 얘기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강연이라던가 특강 형태였다면 절대로 이 자리에 못 나타났을, 그런데 수다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으로 너무 평안하게, 정외영선생님하고 똑같이 그런 마음으로 왔고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제가 2004년도 12월에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의 사무국장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를 하고 상근활동가로 일을 하는 것이 1년 정도의 공백, 다른 자원활동 형태로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입장이고, 개인적으로 많이 지쳤고 힘들고 소진되어 있는 형태였고, 그러면서 일정하게 현장하고도 거리가 좀, 하지만 일부 보고 싶었고 그랬던 형태였는데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 풀뿌리운동의 매력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정말 현장하고 단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감이 확 떨어지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이런 시간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게 한편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히려 제가 주저리주저리 저도 제나름대로 지난 활동들을 얘기를 하지만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과 만나서 실제로 지역에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제가 참많이 듣고 싶었습니다. 보통 고수라고 한다면 수가 높은 사람들이 고수인가요? 근데 저는 요즘에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의 풀뿌리 운동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풀뿌리운동의 한수, 한수를 다시 배워야 겠구나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쨌든 저 개인한테 의미있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정리못하면 파일로 정리를 좀 해주시구요.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저는 고창권선생님하고 비슷한 경우인 것 같아요. 지금 여러분이 와계신 천안이 고향이고요, 천안토박이고, 대학만 잠깐 4년동안 서울로 올라왔다가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지역에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고창권선생님하고 비슷했던 거 같아요. 가깝기 때문에 대학을 다닐때도 자주 내려왔는데 지금이야 천안이 인구유입률이 전국에서 2번째로 될 정도로 지금은 상당히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도시인데 제가 80년대, 90년대 초에 학교다닐 때만해도 천안이 오늘도 내일도 항상 똑같은 정말 변화가 없는, 제가 기차타고 천안역을 내려오면 어쩜 여기는 이렇게 잠자고 있는 도시같은가 이렇게 느낄 정도로, 교통의 요지로 하긴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을지 몰라도 도시 자체는 상당히 정체돼 있는, 그래서 제 친구들같은 경우는 고창권선생님하고 똑같았던거 같아요. 정말 천안지역을 떠나는 것이 개인적인 삶의 성공일 만큼, 남아있을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같은 경우는 어쨌든 대학교 생활을 마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었고요, 특별히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건 개인적으로 제가 딸만 여섯인 집안에 둘째딸인데 저희집 넷째딸이, 아니 넷째동생이 학교다니면서 너무너무 말썽을 일으키고요,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소위 문제학생이 되었는데 제가 그때 대학교 다니면서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주다 보니까 학교에서 한번 낙인찍힌 아이들이 정말 사회에서 통합되기 이렇게 힘들구나 몸소 깨달았고, 그리고 동생같은 청소년들을 돌봐줄 수 있는 지역의 지원체계가 너무 없더라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고, 학교다닐때부터 정말 서울하고 지방간의 격차가 정말 정치경제 사회문화적으로 너무나 심각하구나라고 느끼긴 했어도 실제로 그런 개인적인 사건을 통해서 그게 너무나 구체화되었고요. 그래서 지역에서 나름대로 일을 하면 좋겠고, 그 역할을 청소년운동으로 바꿔주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고요, 그때 마침 제가 86학번인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뭘 만드는, 모임만드는 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 중에 저랑 의기투합되는, 보통은 고등학교 동창들, 친한 친구들, 오다가다 만난, 지금 현재 저랑 같이 살고 있는 남편도 그때 오다가다 만난, 어쨌든 그런 식으로 그당시에 같이 대학생활하고 지역생활에 일정하게 문제의식이 같이 있었던 그런 친구들과 지역에 정말 의미있고 좋은 청소년단체를 하나 만들자라고 고민을 했고요, 그렇게 만나면서 한 1년정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에 YMCA라는 그런 시민단체를 만드는 거로 정리가 됐고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YMCA라는 조직을 만드는 역할들을 저는 했지만 제가 그 활동을 하면서 놀란게 지역에 저처럼 정체되어 있는 지역사회에 대해 고민을 하는 많은 청년그룹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저희가 주민모임 상태에서 청년YMCA의 그 어떤 소모임프로그램을 했는데 이게 한참 활성화되었을 때는 천안이 그렇게 넓은 도시는 아니었는데 많이 모일때는 150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모여서 각각 다양한 소모임활동들을 하고, 근데 이게 자체적인 조직이 있었지만 실제로 전국YMCA 내의 YMCA운동을 개혁하기 위해서 YMCA내의 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청년들의 모임들이 있었어요. 그런 흐름에 저희가 영향을 받기도 했고, 전국모임이나 이런걸 다니면서 어쨌든 활성화된 소모임, 청년모임들을 진행을 했고요. 그러면 저도 처음에는 지역청소년들을 위한 활동공간, 센터를 만들자해서 YMCA운동을 시작했는데 YMCA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거는 충남지역이 수도권과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모든 것들이 느려요. 그리고 특별히 사회활동단체 활동이나 경험들이 상당히 떨어져 있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그때 지역에 YMCA란 단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때가 90년대 정도 되었는데, 그때부터 제 기억으로는 외지에서 외지분들이 많이 유입돼 들어왔어요. 지역에 기업들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특별히 대학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그런 분들 안에 지역사회에 대한 어떤 불만이나 문제제기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것들을 털어내 줄 수 있는 조직단체가 없었다가 천안YMCA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저희도 시작은 청소년문제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지역의 다양한 문제들이 다 들어오게 되고, 그런 것들을 만드는 노력들이 조직하는, 예를 들면 교통문제, 환경문제, 청소년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하여튼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들어오고 그런 것들이 어쨌든 구체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을 풀어나가려고 하는 조직체가 건설되는 것 자체가 사람들한테 좀 희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90년부터 93년까지 천안YMCA를 공식적으로 창립시키려는 활동들을 했고 YMCA가 창립된 이후에 90년부터 97년도까지 제가 YMCA 내에서 실무자로 간사로 활동을 했고, 근데 개인적으로는 저는 아까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을 왜 만들어서 나갔냐고 말씀을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YMCA의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한계와 또하나는 YMCA운동을 하면서 훈련받았던 지도력, 제 자신의 어떤, 그때는 지역사회에서 뭔가 새로운 이해들을 풀어나가는 뭐랄까, 어떤 제가 이렇게 말이 섞이면 지금은 집중을 못하는...(웃음) 농담입니다...(박수) YMCA에서 5,6년 정도를 상근활동가 일을 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게 95년도인가, 한겨레신문에서 시민단체들에 대한 평가들이 아주 신랄하게 나오기 시작했어요.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한국사회의 시민운동단체에는 왜 시민들이 없냐 이거에 대한 지적이었어요. 제가 기억하기에는 95년도 부터였는데 정말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가 95년에 상당히 긍정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말 우리가 하고 있는 시민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들이 많이 있었던 시점이었고, 저는 YMCA에서 일을 하면서 계속 갖게 되는 고민들이 그거였어요. 왜 시민단체에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전문가 중심의 운동으로 가버리고 말까. 예를 들면 아까 YMCA가 처음에 생길때 정말 너무나 다양한 그룹들이 YMCA에 들어와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3년,4년 지나가면서, 처음에는 주부들도 들어오고, 평범한 시민들도 들어오고 대학교도 많으니까 교수님들도 들어오고, 그런데 한3년,4년 지나가니까 전문가, 위원회처럼 활동이 바뀌기 시작하니까 가만히 보니까 실제로 일반 시민들이 당위적으로 지역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이걸 풀어나가는 방식자체가 실제로 시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일상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과제나 실천영역들을 저희가 주지 못했던 거죠. 그러니까 이분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결국 전문가중심 운동체로 점점 가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대안이 뭘까 그 안에서 고민하게 됐고, 그러면서 제가 개인적으로는 사회복지영역이 일반시민들과의 삶에 접촉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매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제 생각에는 한국사회가 너무나 급격하게 변화발전하면서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삶의 문제가 상당히 중첩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기본적인 빈곤의 문제들이 해결이 안된 상태에서, 예를 들면 후기, 산업사회 이후의 사회적 문제나 과제들이 중첩되어서 나타나고, 그런데 실제로 시민의식은 그렇게 성장하고 따라가지 못하고 그렇게, 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평범한 일반시민들이 자기의 삶 안에서 찾아갈 수 있는 어떤 지역사회과제들을 찾아내고 그걸 통해서 풀어나가는 훈련과 과정들을 시켜나가는 것들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게 맞는게 아닐까란 고민을 했고, 그럼 그게 뭘까,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고 있는 사회문제들이 뭘까, 그리고 제가 볼때는 가장 정말 지역사회에, 그때 생각에는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에 문제에 대해서 소박하게 자기가 갖고 있는 자원과 실현을 나누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조직화시키는 방식에, 시민운동을, 그때 고민을 했던 거구요. 특별히 그런 모델들이 없기 때문에 그냥 저희가 지역에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구요. 근데 그렇게 하면서 인큐베이터 운동이라고 하는 운동방식이 나왔는데, 복지세상에서 추진했던 운동방식 중에 하나인 인큐베이터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조직들을 해나가는 것, 충남여성장애인연대, 충남장애인부모회, 노인복지건강센터느티나무, 지역의 빈곤가정 아동들을 돕기 위한 아동복지단체인 미래를여는아이들, 이런 다양한 사회복지조직들을 만들어 나가고 또 한편으로는 네트워크 활동이거든요. 독립해 나가는 단체들과 지역의 사회복지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체들끼리 연대해서 좀더 지역사회의 삶의 질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만드는 이런게 축이 었는데,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게 인큐베이터 활동에 대해서 신선하고 참신하게 생각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외영선생님, 고창권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저희가 지역사회를 다양하게 하는 운동들이 기본적으로 조직활동들이라고 생각해요. 크고 작던 간에, 근데 그걸 그당시 저희 단체에서 조금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진행했고, 우리 단체의 주요한 활동방향과 활동방식으로 편성하고 진행했고, 그리고 일정정도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좋은 성과도 있었던 그런 활동들이고... 그냥 질문을 받을까봐요.(웃음) 그리고 지금은 2004년 12월까지는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에서 상근활동가로 일을 했고,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풀뿌리 단체들을 중간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는 풀뿌리 희망재단을 만들어서 거기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고맙습니다. 아까 설명을 하실 때 인큐베이터에 대해서 잠깐 말씀해주셨는데, 혹시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잠깐 설명을 드리면 복지세상이 충남장애인들을 만나서 다양한 모임들을 조직을 하죠. 그래서 그 사람들을 모임을 만들어서 복지세상의 어떤 산하로 넣는게 아니라 그분들이 자체적으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그것이 독립할 능력을 키워주는 거죠. 그리고 나서는 개별적인 단체로 독립을 시키는, 인큐베이터방식이라고 얘기를 하고, 그것을 지역사회의 자원으로 네트워크 하는 것, 이 2가지가 복지세상이 가장 중요한 활동방식이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각 3분들의 활동이나 단체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활동내용을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보기 때문에 자세하게 시간을 많이 드린거구요.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하다보면 몇가지 한두분 얘기하시다 보면 시간이 다 지나가기 때문에, 한분을 초대해서 한시간씩 가지고도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닌데, 3분을 한꺼번에 모셔놓고 3시간만에 뭘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만 필요하신 건 각자 가셔서, 단체가 그룹시간이 있으실텐데 오늘은 핵심적인 내용만 몇가지 집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짧게, 하지만 사례는 좀 많이 에피소드같은 걸 많이 해주시고, 짧게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얘기하다가 잠깐 돌아갔어요. 소모임이란 걸 만들었고, 소모임 중심으로 시작을 했고, 고창권선생님이 소모임이란 건 한계가 있다. 이건 1년 넘어가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 녹색삶같은 경우에는 그런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소모임들로 일어교육이니 음악감상하기 이런 소모임들이 모였다가 지금은 환경운동도 하시고, 공부방도 만드시고, 열린숙제방 만드시고, 그 소모임들이 변화되었단 말이예요. 활동의 내용도 변화되고 관심분야의 영역도 자기의 관심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관심으로 넓어지는 과정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 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추가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정: 욕구는 지위가 굉장히 다양하죠. 우선 쉽게 나오는 욕구는 현재 매우 드러나 있는 욕구입니다. 뭘 배우고 싶다, 당장 이걸 좀 해결하고 싶다, 드러나 있는 욕구들을 중심으로 모인게 제일 1차적인게 배움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걸 중심으로 모이면서 드러나 있는, 현화되어 있는 욕구들이 먼저 이야기가 되고 기회가 만들어짐으로써 그 다음에는 이제 본인도 자각하지 못했고, 그러나 내재되어 있었던 이런 욕구들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 다음날이 수업하는 날인데 그 전에 뉴스에서 굉장히 놀라운 일이 터졌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때가 엘리베이터 살인사건이 있었거든요. 여러분들 중에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중학생아이가 집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남자아이가 뒤따라 타서 여자이이를 찔러서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그날 저녁에 뉴스에 터지고 난 뒤에 난리가 났었죠. 이건 특히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끔찍한 사건이었던 거예요. 이제 그다음날 모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들이 먼저 튀어나오죠. 너무 끔직하다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이야기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이냐하면 너무 끔찍한 일인데 내 아이가 아닌거죠, 그래서 우선 안심을 했어요. 근데 얘기를 하다보니까 두번째가 변하는 거예요. 지금은 당장은 아니었는데 다음에 또 이런 사건이 터지면 그게 내 아이나 내 조카나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이런 것들이 확인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이 열기들이 진전되면서 느끼는 건 뭐냐하면 다같이 결론을 하나 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성장하고 있는 우리의 마을이, 지역사회가 굉장히 불안한 거구나, 안전하지 않는 거구나, 그런 위협을 어디서 받고 있는 거지, 일상의 경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갔다오다 얻어맞고 뭐 뺏긴 경험, 누구한테 고통을 당한 경험, 이게 고스란히 숨겨져 있던 경험들이 이런 사건과 함께 드러나는 거예요. 이걸 이제 저희는 모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하지 못하다, 이걸 24시간 품안에 끌고 다닐 수도 없는 거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안전한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까지로 그런 욕구가 정리가 되어서 나타난 프로그램이 바로 공부방프로그램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까처럼 일상의 드러나 있는 욕구를 중심으로 모인 각종의 소모임은 그것으로 지속된다기 보다는 그런 차원의 동력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 우리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되죠. 이 관계 속에서 우리가 다음에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발굴되어 지고, 그것들을 조직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경험을 작지만 쌓게 된 것들이, 축적된다는 것이었죠. 저의 경험은. 그럼 이런 축적된 경험 속에서 나타난게 어떤게 나타났냐하면 아까처럼 처음에 내 아이의 안전의 문제에 대해 걱정할 때는 굉장히 개인적 관심으로 또 개인적 문제의식으로 출발했는데 결국은 이거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로 인지가 되면서, 따라서 개별적 해결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죠. 그럼 문제의 성격이 그렇게 집체적이고 공동체적인 문제라면 해결방식도 그래야 된다는 됩니다. 그거를 해보면서 작은 실천의 경험으로 성공을 경험을 조금씩 축적해 나가면서 생기는 건 뭐냐, 우리가 지혜를 모으고 약간의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작은걸 진행했을 때 문제의 어떤 부분들이,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는 희망도 생기고 기대를 갖게 되고 그 속에서 같이 해보면서 서로가 신뢰하는 경험도 조금 쌓이면서 성공의 경험들 속에서 성취감도 보고, 그 다음에 그런 일들이 갖는 공공적인 성격 때문에 자부심도 느껴보고, 이런 것들이 다음 우리의 과제들을 발굴해 가는데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질문에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앞선 소모임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약간 침체되어 있는 소모임이나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고, 아까 정외영선생님이 말씀하신 역동적인 프로그램인 경우도 있기도 한데 말씀을 들어보면 역동성의 욕구는 그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참여자들이 수다가 자유스럽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풀뿌리들의수다라고 이름을 정할 때, 우리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것도 있지만 지역에서의 주민들과의 풀뿌리운동이 수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미도 부여했을 겁니다.
그 다음에 얘기를 넘어가서요, 아까도 여러분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설명을 드렸는데 주민들의 욕구로부터, 활동가의 욕구가 아니라 주민들의 욕구로부터 일이 시작됐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얘기가 나왔으니까만은 사실 저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여러 사람들한테. 주민들의 욕구를 어떻게 파악해야 됩니까, 어떻게 알아야 됩니까, 사람들은 쉽게 욕구조사를 하려고 설문지같은거 만들고, 근데 저는 욕구조사를 설문지로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제대로 나오나 한번 보자 이런 식으로 비판적인데, 그런 욕구를 다르게 대답하실 수 있는 것 같은데 참여자들의 욕구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간단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제 고창권선생님부터.
고: 일단 기본적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모두다 지역주민들이었고, 처음 시작했던 활동이 마을 소식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다른 활동에 비해서 의식적으로 지역의 내용, 지역주민들의 요구가 주취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소한 내용에서부터 지역의 큰 문제들까지 우리가 일상에서는 잘 놓칠 수 있는 많은 내용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반상회라던지 계속 지역에서 화두가 되고 논란이 되어왔던 문제들이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지역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아마 우리 지역주민들의 요구다, 주민들이 희망하고 바라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다, 이렇게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윤: 제가 6개월 전에 이사를 했거든요, 전에 살던 동네로 다시 이사를 한거지만, 어쨌든 천안지역으로 보면 역전 동네가 옛날동네예요, 구시가지인데. 제가 결혼해서 한 몇 년 살다가, 천안지역으로 치면 신시가지에서 7,8년 살다가 다시 옛날동네로 넘어왔는데, 요즘 저희동네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게 뭐냐면, 넓지도 않은 동네인데 단지 제가 구역을 조금 벗어나 살았다는 것 때문에 지역에 대해서 이렇게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쌍용동이라는 신시가지에 단체활동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물론 저희 시부모님들은 구시가지에 사셨고 가끔씩 동네소식을 듣긴 했지만 잘 몰랐다는 거죠. 근데 요즘 다시 옛날동네로 넘어와서 서남지역같은 경우는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옛날에 형성되었던 동네는 공동화문제가 심각하거든요. 근데 그걸 신시가지동네서 막연히 듣던 거랑 제가 동네를 옮겨와서 그냥 시장통도 지나가 보고 왔다갔다하면서 느끼는 거랑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구나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한 3년 전쯤인가 어느 교회의 목사님인가 저희 단체에 전화를 하셔서 어떤 말씀을 하셨냐하면 교회에 돈을 모아 사람들을 돕고 싶은데 요즘은 못사는 사람이 없나봐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 교회가 천안에서는 굉장히 잘 나가는 교회고 큰 교회고, 그 교회구성원들이 실제로 잘사는 젊은 엘리트들이 많이 다니는 그런 동네거든요.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 차이인 것 같아요. 아까 이호선생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지역사회 문제라고 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노력이 필요하지만 억지로 만나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호흡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 전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끔 질문을 받는데, 욕구에 대한 몇가지 오해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욕구가 굉장히 개인적인 거라고 오해하고 있지 않나, 맞습니다. 사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전 몇가지 경험을 갖고 정리해보자면, 욕구도 변화한다, 움직인다는 겁니다,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진화하고 발전한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구라는 것이 한 개인에게 하나로 있느냐, 그리고 집합적으로 드러나 있느냐,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삶의 터전에서, 만나고 있는 주체의 구체적인 욕구에 대해서 관심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함께 협력해서 공동의 관심사를 풀어가고 있는 이 사람의 현재 욕구는 어떤데 이전에는 어땠고 현재는 어떤데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하는 것들이란 말입니다. 욕구자체를 스크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현장에서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의 욕구는, 첫째 내가 이사람의 욕구에 정말 관심이 있냐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만나는 내 앞에 있는 누구의 진짜 내심에 담겨있는, 자기 삶에서 가져오는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있느냐 하는게 첫 번째라고 봅니다. 관심이 있으면 우리는 다음의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모든걸 통해서 알려고 합니다. 그사람의 눈짓, 몸짓, 말하지 않는 것, 말하는 것, 이런 것들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일단 아주 구체적이고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럼 바로 거기서부터 욕구를 발견하는 것은 출발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이사람은 진심으로 내 욕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 때 나의 얘기를 진지하게 하게 되는 거죠. 여기에서 우리는 1차, 그 사람이 집체적인 주민이 아니라 지금 내가 구체적으로 만나고 있는 그 개인의 욕구에 대해 듣게 됩니다, 발견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 욕구가 개인적 욕구인가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욕구는 많은 주민들로부터, 내가 그런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통되게 확인되는 욕구가 바로 저희들이 우리 활동에 잡아낼 수 있는 욕구인 것이요. 그럼 처음에 그걸로 출발할 때, 욕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가, 드러나 있는 욕구가 워낙 집중되어 있는 욕구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만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고 해결되기 시작하면 다음은 무엇에 훈련되어지는가하면. 그 다음은 뭐지, 내가 또 무엇을 생각하는 거지, 무엇을 원하는 거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 거지, 여기서부터 나의 욕구는 변화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욕구는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면 진지한 관심에서 출발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박수)
이: 이 부분에 대한 질문에 3분 다 어려운 과정이라고 대답하지는 않으시는데 오히려 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았어요. 일단 사람들을 만나니까 사람들 얘기를 들으니까 당연히 욕구들을 들을 수 있고, 그걸 못듣는 것은 오히려 자기 머릿속에 계획이 꽉 들어있기 때문에 못듣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욕구를 들으면서 많이 수용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젊을 때 지역에서 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지역에 물어본 욕구가 다르면 내 생각을 설득하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의식하진 않았지만. 굉장히 잘 수용하시는 것 같고, 그 욕구들을 놔두지 않고, 그 욕구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하셨던 그런 경험들이 다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욕구에 대해 물어보면 별로 할말이 없다고 대답을 하셨어요. 정외영선생님이 정리를 아주 잘 하셔서 말씀을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정외영선생님이 말씀하신 김에 한가지만 더 여쭤보고 싶은데 지역사회자원들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듣고 싶은데, 복지세상에서도 공부방 인큐베이터 사업과정이 단순히 처음부터 시작한게 아니라 다른 공부방이 잘안되서 복지세상에 지원을 하면 지원나가서 인큐베이터하시더라구요. 그것이 하나의 복지세상의 자원이자 성과가 만들어지게 되는, 물론 복지세상의 성과이기 전에 지역사회의 성과로 남게 되지만, 이제 녹색삶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서 굉장히 재밌는 경험들이 많이 있었더라고요, 경험을 좀 들려주세요. 저는 가끔 답답하고 안타까운게 사람들이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다할 때 먼저 단체를 만들고 돈이 필요하고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게 운동하는 사람의 전형이죠. 근데 저는 잘됐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녹색삶에 계신 아주머니들이 공간을 지역사회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했는가하는 것을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정: 재밌는 경험을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참 많이 배웠습니다. 여섯이나 여덟명이 모여서 얘기를 하면 경험으로는 반드시 해결방법이 나왔다는 거였습니다. 한번은 음식물찌꺼기줄이기 공청회를, 우리는 이름을 거창하게 공청회라고 하고, 형식도 잘 몰랐지만 공청회라는 것을 하자했는데 장소가 문제인 거예요. 물리적 환경 중요하잖아요. 구질구질한 곳보다는 약간 격식이 나면 우리도 마음도 편해지고 만족스러워 하죠. 한 분이 그러시는데 우리 동네에 웨딩홀이 멋지게 지었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늘 지나가면서 보잖아요, 웨딩홀은 우리가 부지런히 활동하는 오전에 늘 비어있는 거예요. 그걸 늘 보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멋진 공간인데 아까운 거예요. 지금은 안그렇지만 그때는 주말에 결혼하는게 상식이었어요. 그러니까 늘 비어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가 참 좋겠다라는 얘기를 꺼내신 거예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중에 한분이 총을 쏘신 거예요. 거기가 영업하는 장소인데 빌려주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긴장해서 저 총을 어떻게 거둬들이나 그러고 쳐다보면서 다음 작업에 들어갔는데 밑져야 본전이지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누가 얘기를 할건지 사전에 전략회의까지 하면서 역할을 나눴습니다. 그럼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했는데 한분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가서 좋으면 우리 아들 거기서 결혼하면 되지 그러시는 거예요.(웃음) 이런 한말씀 한말씀이 힘이 굉장히 되는 거예요. 이래서 저희가 갔습니다. 가서 영업부장님을 만났어요. 그랬더니 깔끔하게 생기신 분이 나오셔서 저희보다 판단을 훨씬 잘하세요. 저희를 보는 순간 깍듯하게 모시면서 의자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를 돌리시더라고요. 저희가 사실 눈치보면서 순서대로 얘기를 꺼내야지 했는데, 얘기 오래 할 것 없었어요. 영업부장님이 저희도 이 지역에서 영업을 하기 때문에 지역에 환원을 해야죠, 기여를 해야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승승장구하고 와서 저희가 내린 결론이 경험들로 배웠습니다. 우리가 지역주민이라는게 무기라는 거였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협력을 요청하러 갈 때 구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건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따라서 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협력할 의사가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우리 이웃들은 얼마나 좋은 이웃들인가, 점점 신뢰를 획득하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처럼 이게 지역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원개발이고 하는 것이구나. 이런 것도 경험적으로 축적해나갔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이제 저희는 협력의 관계, 자원이 어떻게 발굴되는가, 경험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축적해 가면서 한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가끔씩은 빌릴 수 있다는 거죠. 한달에 한번이나 일주일에 한번씩은 쓸 수 있었는데 또한번 위기가 왔습니다. 공부방을 결정을 해놓고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동안의 자신감으로 주민자치센터나 동사무소, 웨딩홀도 얻어 봤고, 교회도 써보고 안 써본데가 없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공부방을 얻으러 돌아다닌 거예요. 새마을금고도 가보고 다 가봤는데 그때 딱 걸린 장애가 지속적으로 일상적으로 쓰는 것은 참 안타깝게도 도와드릴 수가 없다, 근데 도와줄 수 없으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상대가 뭐라고 얘기하셨냐하면 너무나 좋은 일인데, 지역에 너무나 필요한 일인데, 이런 말씀에 저희가 자긍심을 고취한 거예요. 그래서 좌절이 갖고 온 다음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 인정했습니다. 그 분들이 처음에는 귀기울여 주지도 않고 분노가 생기고 밉기 시작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냉정해 졌어요. 우리도 생각을 해보자, 다들 용도가 있어 빌리는 건데 만날 어떻게 빌려주나, 라고 생각하니까 이웃이 밉지가 않은 거예요. 이해가 되는 거예요. 거기도 어쩔 수 없네, 인정하고서 두 번째가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며 어떻게 할거냐, 이건 무리한 요구기 때문에 우리가 해결해야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지 하고서 공간만들기로 들어갔습니다. 이건 나중에 얘기해야 되겠죠?(웃음)
이: 아니, 나중에 할 시간이 없긴 없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단체 사무실 만드는 과정은 나중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간에 아주머니들이 용감하다는 거예요. 필요하면 찾아가서 얘기를 하니까 의외로 잘 풀리더라는 거죠. 그 찾아가기까지가 참 두려운 과정인데 의외로 아주머니들은 쉽게쉽게 하더라는 경험을 말씀해 주신거고요, 저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질문을 드린 겁니다.
지금까지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 쭉 얘기를 들어본 건데요. 3분들 인터뷰하면서 느낀 거는 회원들 문제예요, 여러분들 조직화하는 건 회원들 늘리는 것과 관련돼서 생각하고 이분들도 다 회원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겪어왔었죠. 우리 풀뿌리운동의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사무국 중심의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오히려 회원들이 정체되는 문제, 여러분이 느끼는 걸거예요. 사무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회원들을 활성화시켜야 될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지만 사무국이 빵빵하면 빵빵할수록 회원들은 정체될 수 밖에 없다고 전 생각을 하는데 이 3군데의 특징은 회원 그 자체로 가입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활동을 하면서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는 건데, 어떤 일을 같이 해보자 그일을 같이 하도록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회원이 되기도 하고 때론 안되기도 하고 이런 과정을 겪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원을 모집하는 과정도 수다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만 말씀드리고 넘어가는데 제가 좀 특이한 걸 발견했는데 지역사회는 아주머니들의 천국이죠. 저희 동료들하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지역사회의 온전한 시민은 누구냐, 우리들 남자들은 시민도 아니다, 반일제시민, 쿼터제시민 이렇게 얘기하는데 아주머니들이야 말로 온전한 지역사회의 시민으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희망세상, 반송사람들에서는 남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참여를 해서 회원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궁금했어요. 어떻게 남자분들이 지역사회에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이 될 수 있었는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고: 반송의 경우도 정외영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초창기에는 모두가 대부분 주부들이었습니다. 근데 주부들과 소모임이 많아지게 되다 보니까 점심시간때 밥을 5분 정도만에 먹고 잠시 회의를 하는데 그게 1시간 안에 도저히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녁때 해야할 것 같은데 저녁때 회의를 잡으니까 다들 아이들 학교갔다가 오죠, 남편들도 직장에 갔다오죠, 그렇게 되면 지녁시간때가 다들 안된다는 거죠. 근데 낮에는 회의가 안되고, 저녁때 해야할 것 같고, 이런 과정에서 결국 시간을 좀 내봅시다해서 저녁때 시간을 잡았습니다. 잡았는데 이게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집집마다. 어떤 집은 보수적인 경상도 남편들께서 이렇게 표현을 했답니다. “여편네가 해가 지면 밖에 나가서 뭐하러 다니는지 잘 모르겠다.”(웃음) 그래서 말다툼도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아빠들이, 남편들이 이해해 주지 못하면 지역활동이 정말 어려운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빠들을 좀 만나서 우리 부인들이 활동을 하는데 좀 설득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원들의 남편들을 만나러 갔죠. 이런 회의를 합니다, 그래서 저녁때 밖에 시간이 안납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고, 근데 꼭 가면 차를 한잔 얻어먹으면 되는데 꼭 술을 주셔서... 저는 주로 분위기있게 커피를 마시고 이러는데,(웃음) 아빠들을 만나면 꼭 소주를 마시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어요.(웃음) 한사람 두사람 만나게 되니까, 그래서 어느덧 해가 슬 질 때가 되면 손이 떨리고 술이 그리워지고,(웃음) 하여간 진료가 끝나면 술병을 들고 이집 찾아가서 얘기하고 저집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이런게 1년 딱 걸렸습니다. 1년되니까 저는 알콜중독자가 되어 버리고,(웃음) 그렇게 되니까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그런 과정들 속에서 친구도 되고, 형님도 되고, 동생도 되고, 이렇게 뭐 일요일되면 애들이랑 공한번 찹시다해서 공한번 차고, 등산한번 갑시다 하면 등산가게 되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1년이 딱 지나니까 모임을 하나 만듭시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다들 수긍을 하셨습니다. 단지 이름을 좋은아버지모임으로 합시다, 이렇게 하니까 다들 반대했습니다.(웃음) 너무 부담스럽다고. 그럼 좋은아버지가되기위한모임 어떻습니까하니까 다들 그거는 좋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좋은아버지가되기위한모임이 만들어져 5년동안 활동을 하니까 되기 위한을 빼자,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좋아모, 좋은아버지모임 이렇게 정식으로 이름을 딱 하고, 조끼, 모자도 만들고 하셔서 아주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고, 지금은 거의 희망세상 중심적인 활동을 다 하고 계세요. 지역의 일이라는 것이 손이 가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거의 아빠들이 중심이 되어서 모든 일들을 해내고 계시고, 그러다보니까 지역활동의 기본단위가 과연 뭘까, 그건 가족이다, 이렇게 정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역활동은 가족으로 접근해가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왜냐면 숫자채우기가 너무 좋아요.(웃음) 가족기행을 가거나 뭘 하면 10집만 가면 버스 하나가 되는거 아녜요. 그런 고민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도 주말에 활동들을 많이 하니까 대부분 주부만 나오기도 뭣하고 어정쩡한 거예요. 지역활동은 지역에 있는 주민들의 요구들이 생겨나는, 기행도 하고 싶고 소풍도 가고 싶고 정말 박물관같은데도 가고 싶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한번 해보고 싶고,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고, 같이 가면 좋겠는데, 그런 요구도 많이 담아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가족기행이 활성화되어 있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얼떨결에 가족기행에 따라갔다가 회원이 되고 매년 하는 행사들에 얼떨결에 따라갔다 회원이 되고. 또 좋으니까 보람이 있으니까 또 아이들하고 같이 할 수 있으니까 거기서 의미를 같이 찾을 수 있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다, 이렇게해서 회원들 가입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이: 그것도 있었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일상활동이 있더라구요. 마을신문이 정기적으로 나오니까 그 신문배달하는 일도 하고 배달만 하면 더우니까 끝나고 나서 술한잔 먹고.(웃음) 복지세상도 회원이 쭉 늘어나는, 인큐베이터식이니까 늘어나는지는 몰라도, 초창기말고 회원들이 들어오는 과정이 있을텐데 어떻게 회원들이 가입을 합니까?
윤: 초기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은 어쨌든 단체를 표방하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무국구성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거구요, 초기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했고, 그분들이 나중에 단체가 창립하고 1년동안 활동을 했고, 초기에는 활동을 중심으로 단체를 구성한게 아니라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단체를 표방했고, 초기에 그 단체에 필요한 그런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후원회원 모집을 했어요. 초기에 그렇게 시작을 했거든요. 근데 복지세상이 초기에 아무런 활동이 없는데 제 생각에는 월1만원씩 회비를 내주셨어요. 초기에 그 작업을 먼저 했던거죠. 근데 초기에 1만원씩 내주신 분들이 그동안 지역에서 YMCA 활동하면서 만났던 분들, 시장통에 소비자운동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으니까 저희가 책상 2개만 빌려서 거기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제 생각에는 한두달은 명단작업만 했죠. 누가 돈을 내주실까. 그렇게 명단을 작성하고 그분들을 맨투맨으로 다 만났죠.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이런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회비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분들이 초기에 회원으로 가입을 했는데 그것은 초기에 YMCA라는 조직을 만들때도 그랬거든요. YMCA조직도 사실 지역에서 젊은 사람들을, 어쨌든 연맹에서 인준을 받아야 하고 창립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워요. 인적, 물적자원을 다 갖춰야하기 때문에 그때 했던게 맨투맨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을, 수백명을, 매일. 어떤 사람은 명단갖고 현장에서 사니까. 제가 볼때는 아주 무식한 방법이지만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쨌든 만나면 사람들이 얘기를 하거든요. 내 얘기도 하고 지역사회 얘기도 하고, 이런걸 어떻게 구체화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을 했구요.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 때도 출발은 이제까지 해왔던 지역시민운동에 대한 고민과 반성으로 단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쨌든 저희가 갖고 있는건 그림뿐인데 이걸 사람들한테 저희가 갖고 있는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득하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결국 이런 것들이 YMCA라는 기존 조직에 회원들을 빼오는 구조예요. 저는 그부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초창기에 지역에서 천안YMCA라는 단체에서 복지세상을 인큐베이팅하는 과정이었어요. 반성을 시민운동의 1세대들이 한거였죠. 천안YMCA가 지역에서는 시민운동으로 맏형격인데 실제로는 이런 방식으로 해나갈 때 YMCA라는 단체는 규모가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전체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흐름들이 YMCA라는 개별단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한거죠.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풀 것인가, 결국 그때 나온 것들이 운동영역을 다양화시키고 전문화시키고 좀더 바닥으로 간다, 그래서 이제 그때 운동영역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러면서 사회복지영역도 나온거고, 근데 초창기에는 어떤 고민을 했냐하면 그럼 이걸 YMCA내에서 위원회의 형태로 사회복지위원회나 이런 형태로 이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운동단체를 만들어서 이 운동과제들을 갖고 갈것이냐, 이런 고민들을 했을 때 그때 저희가 생각했던 것은 어쨌든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면 새로운 조직운영력들이 모이게 되는 거거든요. 어렵지만 그렇게 하자고 판단을 했던 거구요, 그렇게 갔기 때문에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란 단체가 만들어 질 때 YMCA 초창기 창립준비위원부터 같이 했던 지역의 이사분들이나 회원분들이 제가 말씀드렸을때 150분 정도, 저희가 그림만 가지고 계획만 갖고 그분들이 회원가입을 해주신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들이 있긴 했었죠. 실제로 지역의 활동역량을 모아야 하는 시점에서 그렇게 단체를 만들어서 나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거냐, 이런식의 운동에 대한 고민들, 그런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어쨌든 한번 돌파구가 만들어지는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초창기 후원회원들에게 후원전화하고 취지설명하고, 우리가 초창기 2년동안은 사업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저는 150만원 정도의 운영경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걸 계속 전화면담으로 만나서 부탁을 드렸고 그분들께 2년만 후원해달라고 부탁을 했죠. 2년후에는 단체의 사업성과를 보고 판단을 해달라고, 어쨌든 2년 정도만 부담을 해달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150분 정도의 후원회를 확보를 하고 시작을 했고요, 이런 활동에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분들로 창립준비위원회를 준비했고 단체로 정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이분들이 주변에 또 적극적으로 후원회원들을 모집해서 100분 정도, 250분 정도로 초기회원으로 모집을 하고 활동을 시작했고요, 그 이후에 복지세상 현재 600~700여명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 회원으로 들어오신 분들은 단체활동을 보고 회비를 내주시는 건데요, 실제로 복지세상 인큐베이팅 할 때, 단체를 만들어 독립시킬 때는 모든 것들을 독립시켜요. 사람도 독립시키고, 돈도 독립시키고. 예를 들어 충남장애인부모회를 만들때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신 거죠. 활동도 해주시고, 회비도 내주시고, 그런걸 해주시는데, 그 단체가 완전히 인큐베이팅되고 독립할 시점에는 회계정리를 다 해요. 그 활동을 보고 회원가입해주신 분들은 정리해서 충남장애인부모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질때 미리 말을 해요, 예를 들어 미래를여는아이들을 독립시킬때는 복지세상의 예산의 반이 그쪽에 후원을 받은 거고 엄마단체보다 인큐베이팅단체가 더 클 정도로, 그럴때도 후원회와 사람 완전히 정리했습니다.
질문: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의 사업이 인큐베이팅사업만 있는건지 전체적으로 활동회원이 있다 했는데 주위의 활동은 어떤 회원들이 하는지, 그리고 인큐베이팅을 할때 한단체를 인큐베이팅하는데 굉장히 오랜시간이 걸리고 쉽지가 않은 일인데 복지세상은 어떻게 다양하고 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윤: 복지세상을 만들 때 인큐베이팅사업을 하겠다고 설정하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지역사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시민모임이라는 구성을 갖고 시작을 했는데, 일을 하면서 느낀거는 사회복지영역에 일을 하면서 동역자 그룹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처음에 시작을 할때 사회복지영역과 처음에는 동역자그룹인지 알았어요. 공동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느꼈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일을 하면서 우리 단체의 힘만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운동들을 지역안에서 오랫동안 함께 안고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희는 역시 그분들을 돕는 것이 돕는 것이 더 맞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충남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할 때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를 만났고, 그 엄마를 통해서 지역사회에서 그 도움을 받지 못해서 서울까지 간다는, 그런 분들이 한두분이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을 들었죠. 예를 들면 그런 문제가 있다는 시민사회단체로서 이문제를 어떻게 접근해나갈 것인지, 초기부터 인큐베이팅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지역에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누굴까, 처음에는 복지세상이 지역사회의 자원을 모아서 직접 서비스하는, 지역의 장애아들과 부모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그런 고민도 했죠. 어쨌든 그럴 수 있는 여지가 많았고, 결국 장기적 비전으로 봤을 때 끝까지 이 문제를 내문제로 갖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 그건 사실 우리 단체가 아니라 그분들이다, 근데 그분들은 그 역량이 안되잖아요. 그럼 그분들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단체가 돕는다는 거죠. 그 목표를 갖고 조직화작업을 했죠. 초기에는 조직을 만들어서 내보내는 거니까 이사회에서도 갈등문제가 나오기도 했었어요. 복지세상을 개별단체 입장으로 봤을때 덩어리는 작아지는 일이죠. 근데 처음부터 인큐베이팅을 설정한게 아니라 지역문제가 터지고 해결하는 과정에 지역사회전체에서 볼때는 바람직하다 그렇게 판단이 되었고, 4,5년 정도 인큐베이팅 사업을 한 이후에는 설득이 됐는데 초창기에는 이런 부분을 설득하는게 어려웠단 말씀을 드리고요. 사실 한 개의 모임을 꾸리는 것도 어려운데 모임을 만들고 조직화를 하고 변화발전하는 과정에 공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독립해서 나가는 과정은 같은데 단체마다 역량과 활동과제와 지도력의 활동역량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독립해나갈 때 내부지도력이 만들어지지 않은 단체는 절대 창립이 안되죠. 실제로 저희가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맡는 그런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그 조직의 내부지도력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개입을 해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내부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되지 않으면, 저희가 그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그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단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해서 실패한 경험도 있죠.
이: 공짜가 없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네요. 여기 계신 분들이 성공적인 경험을 했다고 해서 아주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과정에 있는 거고, 고민들이 많으실 거예요. 먼저 미리미리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고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네요. 질문이 없으시면 10분 쉬고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2부
이: 여러분들이 질문하실게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질문하시고 싶으신 분은 질문은 종이로 제출해 주시면 분류해서 제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사회활동을 하면서 참여자들이 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까지의 사회운동은 정치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권력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의 대상이 정치권력이었죠. 87년 6월 항쟁이후로 90년대 시민운동이 시작되면서 운동의 대상이 바꾸고자 하는게 정치권력보다는 제도-시민들이 투명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제도- 바꾸고자 하는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입만 떼면 풀뿌리를 얘기하고 있는데 진짜로 제대로 된 풀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풀뿌리운동의 과제는 어떻게 사람을 지역사회 에서 변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지워진 것 같습니다. 지역사람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임파워먼트 시킬 것인가,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들이 주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듣고 싶은데 그런 내용을 하기 전에. 사무국과 일반 주민들, 회원들, 참여하는 분들과의 관계가 밀접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갈등의 소지를 담고 있기도 해요, 그런게 사실입니다. 3분도 사무국활동을 해보셨는데 사무국과 일반 참여자들과의 관계, 사무국의 역할,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2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정외영선생님부터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웃음)
정: 저희같은 경우에는 초기에는 실무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임을 처음 구성할 때 운영위원이라는 걸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이 되면 문도 열고 이런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온전히 생활 속에 있다가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이제 막 욕구를 해결하는 과정에 들어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까 그 동안의 생활의 습성이나 문화나 태도가 모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됐어요. 1차적으로 그 시간대만, 하고 싶은 때만, 프로그램 있는 때만 왔다가니까 책임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상근의 개념이었죠.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해서 이 환경에 관심이 있는 한분이 실무자란 이름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자를 두자라는 문제로 오랫동안 토론을 했어요. 왜 그게 필요하냐, 그렇게되면 교통비라도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가 3천원씩 내서 겨우 이렇게 하는데 부담이 너무 크다, 해결방법에는 뭐가 있냐, 이런 오랜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마침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그러한 것들을 역할을 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거다, 이런 믿음을 갖자, 이러면서 실무자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만원의 교통비 준비를 하면서 실무자의 개념이 생겼는데요. 처음에 주민지도 참여하신 분들은 실무자의 개념도 없고 실무자에 대한 아무런 판이 없었죠. 그냥 사무실을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조금 늦어도 부담이 적겠네, 이렇게 가볍게 생각을 했는데 실무자가 성실하게 자신들과 만나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너무 감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실무자가 그전에는 해보지 못한 기획들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겨울방학교실, 우리는 하고 싶어도 띄엄띄엄 했는게 자원을 개발하는 것도 더 활발해지고 하니까 믿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획득했어요. 서로 격려하고 운영위원회가 역할을 해주는 것에 대해 실무자가 깍듯하니까 이 관계를 이분들은 처음 경험하신 거예요. 지금까지 녹색의 회원들은 실무자에 대한 감동의 경험이 꾸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 실무자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큽니다. 어떤 거냐하면, 우리는 생활자로서 우리의 생활의 문제의식을 갖고 오지만 실무자는 젊은 친구들이 뭔가 목표를 가지고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놀랍다는 거예요. 이 관계는 우리 운영위원들이 성장해가는 것에도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미처 이 신뢰의 경험을 충분히 해보지 못한 분들, 시간이 가고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이게 가능한데 그렇지 못한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의 충돌도 없지는 않았는데 이럴 때마다 우리가 서로 어떤 역할로 만나느냐, 즉 실무자의 역할은 무엇이고, 참여자들은, 특히 주민지도자로서 운영위원들의 역할은 어떤거냐 하는 문제가 굉장히 진지하게 토론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중요한 협력자인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무신뢰나 믿음이 지속된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이: 상호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창권선생님한테 여쭙고 싶은거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실무자와 일반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한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 참여한 회원도 있지만 사무국이 중심적인 일을 하다보면 소외되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사례가 있다면 설명해주시고, 그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 사무국의 문제, 상근자 다 똑같은 과정을 겪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사랑방같은 사무실, 그걸 지키는 사람 이렇게 상근자가 시작되었고, 회원도 없는 상태에서 상근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떨 때는 상근자가 점심을 굶을 때도 있었고,(웃음)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신문배달을 할 때도 있었고 아주 어렵게 지낼 때가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회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역할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으는 역할에서 벗어나서 지속적으로 사업이 확대되고 진행되는 사업이 길게 되면, 모으는 역할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역할이 상근자에게 많이 넘어가게 되지요. 그럴때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오해가 발생하게 되는데 소외감(상근자가 다 정해놓고 우리는 들러리 서는 것 같다)에서부터 시작해서. 저희는 이름을 희망세상으로 바꾸면서 상근자를 2명 더 늘렸는데, 상근비가 작지만 지급되고 있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는 일반회원하고 있는데 상근자는 상근비 받고 있지 않나, 그럼 상근자가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런 갈등. 누구는 상근자고 누구는 자원봉사하는 일반회원이고 회비만 내고, 이런데서 오는 갈등들이 많이 있었고, 이런 문제를 푸는데 왕도가 있을까 저는 먼저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업을 놓고 회원과 상근자간의 긴밀한 소통이 약해질 때 갈등이 반드시 생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통의 구조, 그리고 원만하게 서로가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계속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약해지면 그게 갈등으로 발생되고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복지세상은 희망세상과 녹색삶과는 다른, 처음부터 상근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일으킨 단체인데 양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윤: YMCA는 비영리운동단체로서 한국사회에서는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갖고 있고 기본적으로 조직운영에 대한 틀에 대해 모범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초창기 YMCA가 결성된 과정과체는 똑같은 것 같아요. 청년들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상근자 없이 활동하다 활동역영의 폭이 넓어지면서 상근활동가가 생기고, 그런 체계가 천안YMCA를 만들때는 구조가 정형화되었던 것 같아요. 별로 고민안하고 당연한 걸로, 전문적인 상근활동가가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어요. 실제로 시민운동단체의 의사결정구조가 책임있게 참여하는 그룹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운영위원회와 이사회 구조거든요. 결국 갈등표출은 이사회와 사무국간의 갈등표출이 일반적인데, 실제로 천안YMCA를 할 때는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복지세상을 할 때는 그런 갈등들이 많았어요. 생각해보니까 YMCA는 만들어지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간동안에 사무국과 이사회가 조직화되기 전에 오랜 기간동안에 서로 소통하고 서로 역할에 대해서 교류하고 인정하고 긴 상호간의 신뢰, 조직체가 결정되기 이전에 4년이라는 시간동안에 그런 밑작업들이 있었죠. 그래서 자연스러운 전통으로, 사무국은 사무국대로 일하고, 이사회는 그런 사무국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돕고, 이런 구조로 일을 해왔던 거죠. 근데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 때는 1년정도, 뜻맞는 사람들이 이사회구성하고 정관만들어서 간판붙이면 되거든요. 저희는 간판없이 시작해서 더 시기가 짧았죠.(웃음) 그렇게 하고 나서 제가 이게 문제구나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거죠. 상대적으로 복지세상에 이사회로 참여하신 분들이 젊은 분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운동경험이 없었던 분들이 훨씬 많았고, 그게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운동의 방향이나 내용들을 결정하는데 상당히 역동적이고 이런 부분은 있었지만, 실제로 초기에는 현장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사회복지운동과 문제에 관심이 있을만한 분들을 창립준비위원으로 모시고 그 분들로 이사회를 구성했거든요. 그러니까 전문가그룹들도 일부있었고 시민들 중에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 저희처럼 상근활동가로 경험있는 사람들로 구성을 했는데.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이론적으로, 예를 들면 전문가 구성비율이 많았는데 일반시민들도 전문가분들도 현장을 모르긴 마찬가지인데 어떤 문제가 발생했냐하면, 전문가분들은 말이 되시잖아요. 그래서 모든 이사회 분위기를 자기들 중심으로 끌고 가고. 저희는 사회복지운동을 바닥운동으로 설정하고 나름대로 사회복지운동을 내실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이 운동을 시작을 한건데 이사회에서 계속해서 이념속의 공방을 하게 되고 이사들조차 자기사명을 내면화시키는데 걸림돌을 만드는, 그런 이사회로 되고. 사무국과 이사회의 갈등들이 계속 생기기 시작했어요. YMCA의 조직에 갖고 있던 핑크빛 환상이 계속되는 것 때문에 실제로 조직에 대한 경험이 짧고 낙관적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조직으로 형성되면 조직의 운영되는 논리와 구조가 있잖아요. 사무국은 현장에서 주민조직이나 당사자들을 만나는 기회나 경험들이 많은데 비해 이사회는 그런 경험들이 없잖아요. 그런 이사회를 계속해서 설득하는 과정으로 가게 되었어요. 나중에는 이사회가 점점 교체가 되죠. 보완이 되지는 하지만 실제로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시작했던 저희가 조직구성하는 것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현재 인큐베이팅되서 나간 단체들 중에 하나 예를 들어보면, 장애인단체 같은 경우가 아주 독특한 것 같아요. 장애인단체는 당사자 조직이잖아요. 조직을 만들어서 필요한 사업을 해나가면서 활동가를 채용하는데, 장애인단체에 비장애인이 상근활동가로 채용이 돼서 일을 하는거죠. 생각보다 너무 많은 갈등들이 표출이 되고, 조직의 위기가 올 정도로 갈등들이 표출이 되고. 현재 진행형이예요.
얼마전에 미국에 6개월 정도 연수기회가 있었어요. 아까 장난삼아서 일을 하면서 소진되고 지치고 힘들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현장에 나가서 당사자들을 만나고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자체는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그 과정은 여기 계신 분들 다 아시겠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었고, 그 일을 하는게 떨리고. 근데 결국 문제는 그 일을 하기 위한 조직운영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가 여기에 갈등이 있고 갈등의 핵심이 항상 저는 이사회였어요.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자체가 현재 이사회이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잘해나갈 수 있을까, 참 많이 지쳤던 것 같아요. 미국의 서점에 가서 참 놀란게 비영리민간섹터 쪽 책들을 봤는데 비영리단체 이사회와 관련된 책들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제가 이걸 보면서 이게 비단 한국의 비영리단체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일반적인 문제였구나 라는걸 새삼스럽게 느꼈어요. 거기는 그런 문제들, 갈등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지 또하나는 끊임없이 비영리단체에 참여하는 회원지도력들을 어떻게 지도력으로 성장시키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들이 너무도 많다는 거죠. 실제로 이사들이 자기가 속해있는 단체들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실제적인 기술과 교육내용이 너무 많은 것들을 봤어요. 제가 느낀 것들은, 중요한 것은 한 조직단체에 적어도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바닥에서 현장체험을 하고 자연스럽게 지도력으로 성장하시는 분들이 이사회를 구성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거 분명하거든요. 근데 현재 여건상 너무나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거든요. 근데 이건 어쨌든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제 문제는 이런 비영리단체들의 성격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냐, 문제의 초점은 경험이 없는 분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때로는 지역사회 여건상 활동역량이 있는 분들은 이단체 저단체 이사회로 중복수령, 예를 들어 고창권선생님이 반송지역에서 활동하시지만 지역의 다른 단체들의 요구가 있을 것이고 본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이단체 저단체 이사회에 참여하실 곳이 점점 늘어나고, 그건 무슨 얘기냐 하면, 이사들의 질이 떨어진다는 거죠. 그런 비영리단체 활동들은 현장에서 실무자들이 하지만 실제로 조직운영과 관련되서 이 일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가도록 하는 조직시스템이 중요한데 그 시스템을 결정하는 것 자체는 이사회의 책임이거든요. 근데 그런 것을 결정하는 구조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거죠. 저는 그게 한국 시민운동의 현실이라고 봐요. 그거를 놓고 보더라도 왜 풀뿌리운동이 중요한가 그런 것들도 바닥에서 훈련받아야 되거든요. 근데 한국 시민운동이 일정정도 허수일 수밖에 없는게 조직운영체는 많은데 실제로 그 안에 내실(사람)이 없는거죠. 실제로 한사람의 지도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자체는 10,20년 역사가 짧죠. 그런데 그런 과정없이, 현재 풀뿌리단체, 시민운동단체의 조직구성이 너무나 바닥에서부터 현장에서 일을 배우지 못한 분들이 조직체계를 구성하고 그분들에 의해 모든 것들이 결정되는 과정자체 때문에, 조직을 운영하면서 너무나 소모적인 부분이 많다 그거를 말씀드리고 싶고. 너무 소모적이고 활동가가 소진되는. 저는 그래서 녹색삶과 반송의 모델들이 빨리빨리 나오고, 그래서 이사회와 사무국이 현실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 사회조건으로는. 그럴 경우에 바람직한 이사회와 사무국의 역할, 내용들이 정리되서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교육․훈련되면 좋겠다, 사실 조직자체를 만드는 것들은 지역사회에 헌신하기를 바라는 조직을 만드는 건데, 그 조직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소모적인 경우가 많고 사람을 쓸데없이 소진시킨다, 엉뚱한 부분에 소모되는 부분이 많아요. 한국의 비영리운동에 적합한 이사회와 사무국, 주민조직간의 내용들이 이제는 좀 체계적으로 정리되서 나오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앞의 2단체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분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그런 문제는 별로 없는데, 처음에 단체로부터 시작해서 지역사회의 전문가분들로 이사회를 꾸리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발굴된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활동의 내용을 보자면 녹색삶이 다른 단체보다 특별히 모범적이거나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아주머니들의 주체적인, 임파워먼트, 변화되는 과정들이 그런게 눈에 보여서 좋은 것 같습니다. 참여자들이나 지도자들의 임파워먼트되는 과정이 특별히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행하면서 그렇게 이루어 졌는지, 있다면 프로그램이 어떤건지, 아니면 특별히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변화들을 만들어지게 되는지,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고창권선생님부터.
고: 참여하는 회원들의 역량을 높이는 문제는 지금 10년째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중심축을 이루는 회원들, 특히 활동을 열심히 하는 회원들의 생각,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거기서부터 힘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인식을 가질 때도 같은 방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항상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같이 공부하자, NGO단체의 역할이랄까, 구성에서 중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떤 관점을 가져야 되는지. 교육, 이런 형태의 새로운 교양,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많이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부학교도 많이 했었고요, 여러가지 환경문제라던지, 구체적인 사업에서 다양하게 문제가 제기되면 반드시 전문가를 초빙해서 전체 회원들과 하는 강좌 등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했고. 10년동안 활동을 해보니까 회원들이 생각이 일치하는 선까지만 활동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어느 한사람이 더 생각을 많이 가진다고 해서 활동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회원들이 같은 생각을 가질 때 거기까지는 반드시 실천이 가능하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좋은아버지모임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직장과 집만 오가던 아빠들이 지역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좋은아빠 절대로 그냥 안된다, 좋은아버지가 공부해야 된다 이렇게 해서 좋은아버지학교, 또 여러가지 자녀대화, 부부대화,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들, 그것을 밑받침하는 실천활동들-아이들과 함께하는 좋은아버지 캠프- 이런 다양한 실천활동을 결부해서 다양한 교양과 공부를 체계적으로, 제일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는 선까지는 반드시 실천이 가능했고, 지역에서 활동이 가능했다 이렇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이: 고창권선생님께서 2006년 5.31지방선거에 한나라당의 쓰나미에서 열린우리당 출신으로 1등으로 당선되셨답니다. 호남지역을 제외하고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말씀을 해주시죠.
고: 선거에 참여하는 문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비슷하게 고민할 것 같은데요, 4년마다 지자체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저희도 4년 정도 되었을때 선거가 있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거는 여러 가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판단이나 결정이었다, 상당히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전체 회원들의 힘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 그 당시가 되니까 어디든지 다 그렇지만 지역에서 보면 기득권세력이 어디든지 있습니다. 근데 어떤 단체가 지역활동을 활발히 하다 보면 반드시 힘이 부딪혀요. 부딪치면서 계속 마찰이 일어나게 되고 압력이 들어오게 되고, 심지어는 우리가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으로 풍물패를 운영하는데 강제로 임의로 폐강시켜 버리고, 이런게 공공연하게 벌어지면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있구나, 드디어 때가 왔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웃음) 그런 과정들 속에서 전체 회원들과 선거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상당히 논란이 많았습니다. 한 2,3개월 정도의 시기가 필요했고, 참여할거냐 안할거냐, 우리가 NGO단체를 해왔는데 선거에 참여하게 되면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셨고, 근데 결국 생활정치라는 것은 전체적으로 지역에서 모범이 필요하다, 생활속에서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반응들 속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설득과, 집집마다 찾아다녔습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돌파구다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당시에는 지역의 유지급되시는 분들이 다 나오셨는데 새마을금고이사장님이나(웃음) 4선에 도전하시는 구의원도 계셨고, 암튼 운좋게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전체 회원들이 거의 후보가 되었습니다. 전체 회원들이 다 뛰어들었고, 돈이 문제가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직접 검증받았다, 3년동안의 활동이 우리는 검증했다라고. 선거를 통해서 그 정당성을 획득하고 당당하게 진입을 한거죠. 그 과정들 속에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은 정당공청이 있었는데 우리 회원들 중에도 다 달랐습니다. 이 회원들이 당을 떠나서 같이 하겠다 그런 결의 속에서 또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회원들이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활동했던 것이 옳은 일이었다 하는 것, 계속 어떤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믿어주신다는 부분에서 확신이 섰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10년째 활동을 계속 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선거에 참여한 것이 회원들이 모두 같이 집중할 수 있는, 단결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고, 실제로 선거를 통해서 일치감을 갖게 했고, 그 과정에서 성공함으로써 사람들이 자기의 활동에 대한 인정받고 자부심을 높혀준 계기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외영선생님께서 아까 여쭤본 프로그램에 대한 것을 말씀해 주시죠.
정: 내부에 조직력, 지도력이 성장하기 위해 크게 3가지 정도의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정말로 스스로가 내가 이 조직에 꼭 필요하구나, 내가 없어서는 안되겠구나란 역할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 속에서 스스로가 이 역할을 정말 내가 내것으로, 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인정되어야 한다라는 점입니다. 그건 일반 회원들도 마찬가지로 역할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책임있는 관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지도자가 이 운동을 자기 삶에서 진정으로, 이 조직이 표방하고 있는 목적이나 목표나 원칙에 하는 것들에 있어서 본인이 진정으로, 본인이 갖게 되는 변화의 과정 혹은 그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 동력자, 그 부분을 성실하게 같이 갖고 가야하는 관계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가 프로그램의 문제인데요, 이 프로그램은 굉장히 다양하다고 봅니다. 우선 일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의도 프로그램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외부에 있는 교육이나 내부적인 학습스터디, 이 모든 것들이 프로그램에 들어가는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해서 이 부분으로 누군가에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중요한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3가지가 종합적으로 한사람이 처음 작은 뜻을 가지고 아주 소박한 동기를 가지고 한조직과의 관계를 시작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 자기 삶에서 가치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 그 부분으로 내 삶이 조금씩 의미성을 더 부여할 수 있는 방향성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것이 자기삶이 자긍심과 성취감으로 조금더 성장하고 있다는 걸 수시로 확인해가는 과정, 이것들이 한 조직에서 내부에서 참여자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신뢰와 지지를 받으면서 그 조직운영에 책임을 지고 가는 그런 지도력으로 성장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전 두번째 것을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경험하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적습니다. 그러니까 각각의 조직에서 주민이 만났을 때 이부분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조직은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달라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로 내가 당신의 삶과 우리의 삶의 변화에 대해서, 제 삶이 이 과정 속에서 함께 변화하는 경험을 꼭 하고 싶다고 하는 진정성이 둘과의 관계에서 책임있게 확인되어 지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사람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확인되는 것을 인간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만나는 주민이 자기 삶속에서 이 문제를 진정으로 혹은 책임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주민조직방법에 관련해 보고서를 쓰다가, 외국에는 조직화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와있어요. 조직화의 역할 중에 외부세계와 주민을 연결시킨다 그런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녹색삶이나 주변을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데 그 활동이 인정이 될 필요가 있어요. 그 인정이 외부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게 하는거예요. 제가 본 어떤 곳은 외부에 회의가 있을때 한 회원분을 데리고 가서 자기가 중요한 사람, 역할을 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게. 인터뷰가 들어오면 활동가가 하는게 아니라 그 분이 직접 얘기를 하도록 하는 거죠. 그사람은 사람들이 나의 활동을 인정해주는 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거죠. 그게 아주 조그만 것 같지만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더라고요. 복지세상도 같은 경험이 있을 것 같고, 실무자들이 같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윤: 정외영선생님 말에 동의하구요, 저는 사례만 말씀드릴게요. 복지세상에서 인큐베이팅한 두 단체사례가 하나가 충남장애인부모회라는 장애인당사자의 조직이고, 하나는 미래를여는아이들은 일반 시민들이 만든 저소득가정아이들을 돕기 위한 아동복지단체예요. 두 단체가 내부의 지도력들을 형성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단계가 매우 달랐어요. 복지세상이 98년에 창립하고 지역의 저소득가정 아동들 문제가 심각했고, 이 문제를 접근하기 위해 방과후교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단계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데 미래여같은 사례가 가장 모범적이었다라는 생각을 해요. 일반 시민으로서 지역사회 복지문제에 대해 관심갖고 있는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참여단계가 점점 높아지게 된 사례예요. 방과후교실은 사무국이 중심이 돼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거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셨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 점점 알게 되고 방과후교실 프로그램이 상설화시키면서 일상적인 지원으로 됐고, 방과후교실 운영위원회가 구성되게 됐어요. 처음에 자원봉사자로 소박하게 참여하시던 분들이 점점더 관심이 생기고, 이런 일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 하셨어요. 그렇게 관심폭이 깊어지신 분들을 중심으로 모인 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이분들께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우리 아이들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리는 거죠. 이분들이 참여폭이 넓어지면서 외부후원을 끌어오시는 됐어요. 가장 발전적인 분들은 지역의 아동복지 문제에 대한 포럼이 있으면 참여하시고.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그런 건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단계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만들어지게 되고, 미래를여는아이들이 만들어질 때 이사회를 구성하시고 자원봉사자나 초기에 후원활동가로 참여하셨던 분이 점점 참여단계를 넓혀서 한조직의 운영을 결정짓는, 그런 위치로 발전하게 된 사례를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하나 충남장애인부모회는 전형적인 당사자 조직이예요. 제 경험상 개인적 관심사로부터 출발을 해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적인 모임으로 거듭나는 것은 엄청난 일이예요. 그래서 저는 녹색삶의 사례가 소중하다고 생각돼요. 근데 제가 충남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이분들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의 경험 +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고 계신 분들인거예요. 일상적인 소모임활동도 진행이 안되요. 예를 들면, 관심있는 분들이 나오지만 얘기를 하다보면 삼천포로 빠지게 되요, 서로의 상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근데 상처를 받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면, 상처가 훌륭하게 극복된 이후에는 서로의 상처를 껴안지만 실제로 그 이전에는 동일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상처주게 돼 있거든요. 오히려 조직안에 와서 상처받게 되고. 그리고 모임의 시간을 정하면 그 다음의 약속을 정할 수가 없고 이야기를 한시간, 두시간 들어주다 보면 모임의 끝이 없어요. 근데 그분들은 그동안 받아왔던 상처 때문에 저희같은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을 많이 하시냐면, 저사람, 저단체도 우리를 돕는 걸 이용해서 자기의 위상을 높힌다거나 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조금 도움을 받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 대놓고 그렇게 말씀하기도 하세요. 그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자체가 많이 들죠, 3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 것 같아요. 미래여같은 경우는 일반 시민들이 잘 발전한 케이스였지만 충남장애인부모회는 당사자를 조직화할 때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조직이 갖고 있는 성격과 당사자들의 성향과 외부환경의 여건과 실무자들의 역량, 모든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건 없는 것 같아요.
이: 눈에 보이는 것을 하는거야 어려운게 아닌데 사람관계에 있어서는 어렵죠. 풀뿌리운동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지역사회의 주체로 만드는 것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앞으로도 그 관계는 노력해야 할 과제인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어떤 강연을 가서 질문을 받은게 있는데, 어떤 모임의 한사람이 있는데 사사건건 내가 하는 일을 방해만 한다는 거예요.(웃음)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 있는지?
정: 의견을 내면 총쏘는 사람으로, 잘해보려는 의욕에 찬물을 끼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엔 당혹스럽죠. 왜 습관적으로 저런 부분을 저렇게 얘기할까,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왜 그사람이 그런 행위를 할때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는게 1차적으로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반응을 보이게 하는 개인사적인, 사회사적인 배경이 있는거죠. 그분은 자기의 의견을 제출했을때 존중받은 경험, 성공적으로 끌어내주는 관계의 경험이 없었던 거고,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시는 거예요. 사람이 특별히 나빠서, 여기의 뭔가를 안되게 하려고, 고춧가루 뿌리려고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거의 습관적인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부정적인 경험이 훨씬 많으면서 그렇게 대응을 하는 방식으로 묻어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변화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계속 쓰시게 두면 그룹이 집단적으로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럴때는 정면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그건 따로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당신하고 정말 잘하고 싶은데, 우리가 정말 잘해야 되는데 이럴 때마다 힘이 빠진다, 근데 나쁜 마음이 아니란 것을 안다, 하지만 나쁜 마음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도 힘을 잃게 하면 의도가 아니지 않냐라는 것을 진지하게 얘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가 자주 있지는 않습니다. 보통 그런 반응에 다른 사람이 상처받고 그런 부분은 자기성찰도 하고 과정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변하거든요. 그리고 그분들도 어떤 분위기에서는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도 아세요. 근데 통제가 안되니까 나올 수도 있고, 아직 관계가 충분히 신뢰나 동의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데서 그냥 습관적으로 지나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럴때 쉽게 얘기하는게 아니라 결단을 하면서 애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협력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 그룹이 현재는 서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해야 됩니다.
요즘 에너지버스라는 재밌는 책을 읽었어요. 에너지버스라는, 우리조직으로 생각하면 되죠. 우리 힘받아서 뭔가 희망과 기대를 위해서 서로 작은 힘이라도 모아내야 하는 시점에 부정적인 어떤 요인이 계속 우리의 의지를 꺽는다면 이 사람은 가다가 버스에서 내리시오 할 필요가 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각자의 조직에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신뢰관계는 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신뢰가 없으면 이런 이야기가 먹히지 않으니. 지역사회네트워크로 이야기를 넘어가려고 하는데, 복지세상은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유명하지만 사업방식의 중요한 2가지가 인큐베이팅과 네트워크사업입니다. 네트워크 방식의 사업을 중요하게 배치한 이유와 네트워킹에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어떤게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 한 개인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조직을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로 한 조직은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없죠. 그래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네트워크가 쉽지 않아요. 현재 한국의 풀뿌리단체들의 네트워크는 거품이 많다는 문제가 있어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름만 걸어놓는 단체가 너무 많은 것,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많은 단체들이 하나의 활동과제나 역할을 놓고 어떻게 실제적으로 네트워크해서 활동하느냐, 그런 경험의 폭을 넓혀나가는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활동을 하는 이유는 결국 지역사회의 성격과 성토들을 바꿔나가는거,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조금더 긍정적으로 변화발전시켜나가는게 목표거든요. 그렇게 놓고 볼때 한 개의 개별단체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고 개별단체들이 갖고 있는 역량과 에너지는 상당히 많아요. 근데 그런 단체들이 다 모여서 활동을 같이 했을 때의 시너지효과는 엄청나다고 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네트워크는 중요하다고 봐요. 왜냐면 한국사회에서 사회복지문제는 상당히 소수의제였어요. 시민운동하는 내부에서도 사회복지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삶의 질 문제, 장애인문제, 아동문제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고 대안이 있는지 시민운동단체들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그런 속에서 일을 하면서 결국 이 활동의 이슈들을 지역사회의 중심의제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고, 그렇게 봤을때 복지세상 개별단체의 활동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복지세상에서 인큐베이팅시킨 단체들이 독립해서 활동하고 그 외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저희가 사무국 역할을 했습니다. 소수의제인 사회복지를 중심의제로 내놓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정치력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고, 관심있는 단체들을 구성해서 천안시장 후보초청 토론회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개별단체만으로 추진할 수 없었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한국의 네트워크활동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단체이름 붙여놓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결국 성과를 가져가는 건 한 단체다 라는, 참여하는 단체들의 피해의식인 것 같아요.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거기서 나온 성과나 자긍심조차도 공동의 경험으로 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기관은 개별 기관에 대한 경쟁이 있어 협력할 당위성은 있지만 실제 연계는 힘들었고 왜 협력해야하는지 설득하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공동의 파이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어요. 저는 가장 큰 성과가 참여한 단체가 지역사회변화를 위해서 개별단체들의 이해관계를 극복한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부터 영역별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그전에 실패경험도 있었지만 그 경험들이 소중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또하나 궁금한게 지역에 있는 직능단체들과의 관계를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주민자치센터가 많이 생겨서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뜻 손이 안잡히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창권선생님같은 경우에 반송사람들의 대표로 활동하실 때 주민자치센터와 직능단체와의 관계맺게 되는 과정을 얘기해주시죠.
고: 지역활동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주체는 주민이기 때문에 반대쪽에 있든 어디서 있든 적대적일 수 없어요. 그런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올바른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게 표방해야하는 가치가 있다면 화합과 단결을 중요시해야 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적이다,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주장해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마을은 주택밀집지구인데 500미터 떨어진 곳에 대규모쓰레기매립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용인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제가 직업병, 산업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조사를 해보니까 이것만은 절대 안되겠다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단체가 앞장서서 반대운동을 벌이게 되는데요, 3개월 동안 아주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당시 지역의 분위기는 90%가 용인하는 분위기, 산업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오게 되면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가지고 지역에 환원하겠다, 1년에 3억원을 투자하겠다, 이런 이야기 속에 묵인하는 분위기로 진행된 상태에서 저희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이 그래서는 안된다하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3개월 동안이 매우 힘든 상황이였는데 그 과정에서 부산시와 사업주, 반송주민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힘을 합치는 것만이 이기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동대표를 지역유지와 기존세력들에게 다 주고 우리는 밑바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걸 만들어서 출범식을 하는날 사업이 다 끝나버렸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기존에 있는 여러 자치단체들, 지역의 단체들과는 절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해야 됩니다. 근데 그 사이에 풍물패가 주민자치센터에서 갑자기 폐강을 시키더라고요, 그래도 노래방을 전전하면서 고생하면서 풍물활동해서 1년반만에 주민자치센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구의원이 당선되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송을사랑하는사람들에서 하는 일들을 주민자치위원회로 다 넘겼습니다. 소식지(홍보), 워크샵(활동평가,사업계획)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잡는 거예요. 그리고 주민자치학교 등으로 주민자치를 실현해갔습니다. 이제 희망세상에서는 대상범위를 넓혀 정기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사회에서 무슨무슨 시민단체협의회가 만들어지지 않은 곳이 없는데 유명무실해서 힘을 빼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근데 녹색삶은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입장을 취하시는지 말씀해주시죠.
정: 네트워크를 유념해야 하는 것은 그 조직적 원칙이 있다고 봅니다. 그 조직이 현재 그 활동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조직이 수행해야 하려하는 주요한 과제와 목표가 위협을 받는다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역에 네트워크가 있을 때 실무자진 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실무자가 여력이 있어 든든한 조직이어야 하는데 저희같은 경우는 활동의 중심은 철저하게 주민중심으로 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원칙에서 주민들이 성장해서 그 부분에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건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기에 공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시간이 걸려서 지금같은 경우는 각각의 부문에 활동의 노하우를 갖고 계시는 분들이 나타나셨고 그런 분들이 네트워크에 결합을 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일단은 저로서는 주요하게 생각한 것은 저희 활동에 원칙과 목표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자발적으로 우리들의 문제를 스스로 발굴하고 해결과정을 모색하고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그 과정에 개인 스스로가 그러한 결과들을 서로 나누어서 성장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중심에 놓고 판단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네트워크를 명분에 의해서만 결정하기 보다는 그것을 할 주체가 있는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때 그런 사안에 대해서만 책임있게 네트워크로 결합해야 한다, 명분만으로 결합하기는 힘들다 그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90년대 이후로 많은 시민단체들이 지역에 생겨났지만 그 10년, 15년 동안 시민단체들은 엄청나게 임파워먼트됐다,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행정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힘으로 존재하게 됐다, 이렇게 됐지만 과연 그만큼 시민도 성장을 했느냐, 임파워먼트됐냐, 여기서 볼때 그건 아니지 않는가 시민사회단체만이 임파워먼트 된 거다, 즉 시민단체들의 활동의 역량이 강화됐지만 지역사회 자체가 변화된건 별로 없는 거다, 과연 우선은 사회운동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식의 호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적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고 보는데 어쨌든간에 원론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체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한다면 3분도 그러한 것과 관련되서 특별히 인큐베이터라고 하는 사업으로 풀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복지세상만 인큐베이팅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녹색삶에서도 수많은 인큐베이팅을 했죠. 그리고 희망세상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단체의 성과가 될수 있었지만 지역사회의 성과로 남기려고 하는 그런 노력들이 쭉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쭤볼게요.
고창권선생님이 반송지역에서 주민자치센터에서 ‘반송을 세우자’추진반을 만들어서 반송발전100가지의제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이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게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서 100가지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그부분을 얘기해 주세요.
고: 다른 사람들이 계속 구의원을 할것도 아니고 사안별로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우리마을 발전의 이정표를 아예 만들 수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반송을 세우자’란 이름으로 우리 지역에 필요한 10,20년 뒤의 모습을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이게 반송의 요구입니다라고 정한 것을 의논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이것을 추진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주민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10년 뒤의 한번 생각하게 해본다는 것 반송이 20년 뒤에는 이런 마을이 됐으면 좋겠어, 이런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전체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공청회를 하고 그 과정에서 100가지 정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민자치, 지역경제, 환경, 생태 등등 여러가지 부분에 있어서 어떤 마을로 가야되는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 여러 단체가 대부분의 주민들이 같이 공유, 공감하는 이런 내용을 만들려고 추진을 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하고 나니까 주민들께서 지향해야 되는 생각들이 거의 비슷해지는 거죠. 아주 효율적이 되고 주민들의 힘을 모으는데 있어서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풀뿌리운동하는 사람들의 고민중에 뼈빠지게 일은 하는데 지역사회가 바뀌는가, 변화되는가에 대한 회의에 대해 좋은 대답을 전에 해주셨는데 이 자리에서 좀 해주세요.
윤: 세월이 지나면 보이는 것 같아요. 그게 풀뿌리운동의 매력이고 진실인 것 같아요. 근데 변화가 보이기 이전까지 과정이 지난한 것 같아요. 풀뿌리운동은 정말 바닥운동이기 때문에 변화가 드러나지 않고 그일을 하고 있는 우리외에 어느누구도 운동에 대한 의미부여를 잘 안해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끊임없이 자기의미부여를 하고 나가는 것, 근데 세월이 지나면 변화가 생기는 것 그게 참 중요하다고 봐요. 지역사회가 제도나 지원의 변화가 많이 있죠. 근데 제가 생각할 때 변화는 지역사회에 이런 문제를 갖고 고민하고 같이 머리 맞댈 수 있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나는게 변화라고 생각해요. 같은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실제로 늘어나는 것이 변화라고 봐요.
이: 저한테 해주셨던 답과 다른 답이세요.(웃음) 저한테 해주셨던 답은 장애인부모들의 예를 들어보자, 그분들은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지역에 자기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하나 없었는데 자기들이 모여서 일을 하다보니까 후원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자원봉사자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고 자기를 위한 정책도 생겼다는 거죠. 그 사람들이 볼때 지역사회가 변화된거냐 아닌거냐 라는 거죠. 확실히 변했다는 거죠.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으로 3분께 풀뿌리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한말씀씩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외영선생님은 풀뿌리운동을 해야 할때 지역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에 대해서 명언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해주시죠.
정: 다른 얘기 하나만 먼저 말할게요. 며칠 전에 3년 동안 소식이 없던 회원이 연락이 와서는 다른 지역에서 마을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계시대요. 흥분된 목소리로 ‘정말 배운 도둑질이라고요..’(웃음)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의욕이 나서 그룹을 모았대요. 그런데 지속적이지 않대요. 얼마 못가서 모임이 자꾸 쓰러진다는 거예요. 어떡해야 녹색처럼 신명나게 이모임을 갖고 갈 수 있을지 전화가 와서 배운 도둑질이라고 시민단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 전화를 받고서 반갑고 뿌듯했고 희망과 기대를 느꼈습니다. 짧게 혹은 길게 만났던 우리 이웃들이 각자가 씨앗 하나씩을 갖고 자기 삶터에서 그렇게 한다면 민주주의가 딴데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미 그 꿈의 일부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행복했어요.
이호선생님께서 질문에 대답하면, 처음부터 그림이 있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조금더 존중하고 서로의 경험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서 만나다보니까 한분한분이 함께 모여서 해나가면서 서로 힘을 주고 받고 이야기 끝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찾아지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하고 그런 경험을 마찬가지로 해오고 있거든요. 의욕이 있다면, 내가 이걸 꼭 해야 한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들어가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면 된다는 믿음이 저는 있습니다. 나머지 어떻게 할까? 그건 함께 만들어가고, 이웃들은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반응하고 외부세계와 관계를 가지려는 의욕을 갖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소중한 첫출발에 의의를 가지고 들어가서 만나라 그러면 함께 해결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박수)
고: 아직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정도 지역활동을 한 뒤에 같이 활동하는 많은 회원들은 앞으로의 10년은 뭘까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던 때의 이 이야기를 30년 뒤에는 다시 웃으면서 하게 될거다라고 회원들하고 얘기를 했는데, 저는 무심히 던진 말이었는데 많은 회원들이 가슴에 많이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분명 어렵고 힘들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제도같은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거구나, 실천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박수)
이: 덧붙이면은 오래 있어야 된다, 주민들이 녹녹한 줄 아느냐 그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윤: 저는 요즘에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개인활동가 입장에서도 그렇고 조직모임에서도 그렇고. 한때 한사람이, 한조직이 열심히 할 수는 있지만 활동에너지와 성과내용이 활동하는 몇사람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보다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경험으로 어떻게 전해져 내려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해요. 너무나 소진하고 지치고 활동을 접고 싶은 만큼 힘들던 때가 있었는데 이것은 풀뿌리운동을 하는 모두의 공동의 경험일 거다, 그러면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수 있을까, 그걸 계속해서 개인이 헌신과 결단으로 놓을 것인가, 특별하게 좋은 지도력이 나올 때까지 활동들을 보류했다 또하고 이런 방식으로 갈것인가 등.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활동가가 자기 안에서 계속해서 활동의 역량, 역동성을 지켜가는 것 그건 본인의 몫이겠지요. 근데 그런 것도 조금은 지원해줄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 조직의 목적이나 목표가 세월이 지나면서 포커스가 분명하지 않을 때 갈등이 표출되거든요. 그런 위기상황이 됐을 때 그걸 조직에게만 맡겨둘 것인가, 저는 그런 것도 서로 돕고 원하는 체계가 지금은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 개인적으로 결단하고 소진하는 형태로 언제까지 남겨둘 것이냐, 결국 이런것들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들이 있어야 된다, 실제로 외국은 그렇게 하거든요. 조직에 위기상황이 오는게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 공동이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이제부터 그런 지지작업들을 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고요.
또하나는 개인적으로 저는 풀뿌리운동이 좋아요. 정말 풀뿌리는 마음뿌리라고 생각해요. 풀뿌리운동은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주는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일을 하는 활동가들은 정말 진솔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뿌린 씨앗들이 어느 순간엔가 드러나는데, 뿌릴 당시에는 잘 모르는데 세월이 흐르면 정말 건강한 씨앗은 건강하게 자라고 그렇지 않은 씨앗은 차라리 쳐내는게 낫다고.(웃음) 결국 그런 것들을 앞에서 하기로 결심한 저희들이 자기 마음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일한다 이런거는 이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 일이 자기 삶에서 중요하고 이 일을 하면서 내가 행복하고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는 사람만이 결단하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자기고백과 자기성찰이 전제되어있지 않은 풀뿌리운동은 많은 소음과 잡음과 그리고 풀뿌리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부실화되는데 기여한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더디 가더라도 바닥에서부터 단계적으로 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요즘에 하고 있어요.(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