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운동사례'에 해당되는 글 63건

  1. 2007.06.01 "아줌마의 힘! 주민자치의 힘!" - '열린사회 은평시민회' 를 찾아서
  2. 2007.06.01 "변화로 이끄는 지역활동" - 녹색삶의 사례
  3. 2007.06.01 "주민은 공정하고 정직하다. 다만 정보가 없을 뿐이다!" -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를 찾아
  4. 2007.06.01 "주부의 언어, 삶의 언어" - 천안KYC -를 찾아
  5. 2007.06.01 "마포구 성미산, 주민의 힘으로 지켰다!" -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찾아
  6. 2007.06.01 "관념적 자치, 또는 관념적 소통을 넘어!" -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찾아
  7. 2007.06.01 '주민모임 토박이'가 아름다운 이유 - 열린사회북부시민회를 찾아
  8. 2007.06.01 "민(民)과 관(官)이 만났을 때" -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 -를 찾아 1
  9. 2007.06.01 잔잔한 물결의 ‘학습공동체’운동 - ‘성남YMCA’를 찾아 -
  10. 2007.06.01 찾아가는 교육 - "좋은 동네 시민대학" - 광주YMCA
  11. 2007.06.01 ‘건강 지킴이‘ 에서 ’마을만들기‘까지 -‘인천평화의료생활협동조합’을 찾아
  12. 2007.06.01 자연은 매력이 넘친다! -"수리산 자연학교"를 찾아
  13. 2007.06.01 자활사업은 “사회와 관계 맺기” - "노원자활후견기관"을 찾아 -
  14. 2007.06.01 자생 단체간의 상호인정, 상호신뢰, 상호협력 - “울산 양정동 주민자치센터” -를 찾아
  15. 2007.06.01 아이들의 자치 연습, <책이랑 놀자>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16. 2007.06.01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 “안양시민대학”을 찾아 -
  17. 2007.06.01 주민자치센터의 key word는 결국 ‘주민’이다 - “인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 실무팀”을 찾아 -
  18. 2007.06.01 사회복지인큐베이터, 행복한 복지세상을 꿈꾼다! - “복지세상을 열어 가는 시민모임”을 찾아 -
  19. 2007.06.01 지역문화의 전형을 일군 “원주한지문화제” -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를 찾아 -
  20. 2007.06.01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처럼 - ‘강릉경실련을’을 찾아
  21. 2007.06.01 관악구, 지방선거의 실험실 - 관악주민연대
  22. 2007.06.01 닫힌 학교도서관을 열자 -“경기도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협의회”를 찾아
  23. 2007.06.01 주민 없는 주민감사청구 - 광진주민연대
  24. 2007.06.01 벼리학교, 학교종이 없는 학교
  25. 2007.06.01 안성천 살리기는 공동체회복운동 -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을 찾아 -
  26. 2007.06.01 "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주민자치의 공간" - 산본2동 주민자치센터
  27. 2007.06.01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를 위해" - 마들주민회
  28. 2007.06.01 "녹색삶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29. 2007.05.04 "풀뿌리단체의 부족한 2%를 채워드립니다!!"- "풀뿌리희망재단"을 찾아
  30. 2007.05.04 이천시, 평생교육사가 주민자치센터에 간 까닭 ②
"아줌마의 힘! 주민자치의 힘!" - '열린사회 은평시민회' 를 찾아서
인터뷰 : 최순옥(사무국장)
작 성 : 김 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갈곡리를 사랑하는 주민모임’(이하 ‘갈사모’)은 꽤 유명한 지역조직(?)이다. 최근 몇 몇 언론이 ‘삶터 가꾸기’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주민자치모임으로 소개하면서 그 위상도 높아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짐으로써 뒤따를 부담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내부적인 자부심이 활동의 동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고 최순옥 국장은 말한다. ‘갈곡리’라는 지명은 현 은평구 갈현1동 인근을 예스럽게 부르는 말이란다. 이 곳에는 조금한 공원이 하나 있는데, 말하자면 조금 큰 놀이터이다. 이를 ‘갈곡리 공원’이라 부른다. 놀이터가 일정 규모가 되면 ‘공원’이라고 명명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갈사모’와 ‘놀이터’의 만남,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갈곡리 놀이터는 3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 시설이 낡은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주민들을 더욱 속상하게 만든 것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재활용 쓰레기 때문이었다. 행정기관이 동네에 마땅한 유휴지가 없다는 이유로 쓰레기 적치장으로 사용하게끔 허용한 것이다. 놀이터가 주민에게 소중한 문화시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거나, 아예 그런 마인드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들과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는 주부들이 불만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4년 동안, 항의전화도 하고 민원도 제기했지만, 행정기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부들의 생각도 관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눈치였지, 조직적인 흐름을 선뜻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4월, 놀이터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몇몇 주부들이 ‘원래의 공원으로 돌려 달라’는 취지로 주민 서명을 받게 되고, 삽시간에 500명을 채우게 된다. 그런 와중에 주부모임도 만들고, 발족식도 거행하게 된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일이 너무 빨리 해결됐다. 은평구청이 주부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첫 모임이 4월이었고, 구청장의 지시가 떨어진 시점이 7월이었으니까. 약 3개월 만에 전격 해결된 것이다. 공사도 청산유수였다. 구청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공사가 시작됐고, 8월에 끝났다. 4개월 만에 예전보다 더 깨끗한 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은평구 추경예산에 놀이터 개조비용이 추가되면서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공원이 되었다. 방치되고 죽어 있던 공간이 새로 태어났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 이후 이곳은 갈곡리 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된다. 영화제도 개최하고 각종 문화행사도 개최하고 그림그리기 행사도 전개한다. 무엇보다 해맑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넉넉함 그 자체다.

“그 동안 살면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들을 주부들이 했던 거죠. 뜻밖에 일이 쉽게 끝나긴 했지만 주부들의 결속력은 더욱 돈독해졌죠. 공원에서 문화행사를 하고 아이들 모아서 견학을 가고, 하는 것들은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들이었어요. 공원이 제 모습을 찾으니까 가능해진 것이고, 망가지지 않고 사람들이 다 와서 노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저희가 여러 가지 행사를 하지만, 그런 행사를 한다고 문화가 확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단지 행사를 하면 관심 갖고 와서 변화된 것을 보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은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잖아요? 우리 애들한테도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지역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엄마들도 마찬가지죠. 이런 주민활동을 통해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고, 지역의 여러 일들에 작은 매개가 됐다는 느낌을 심어준 것 같아요. 삶의 질이란 어떤 시설을 하나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하는 식의 택지개발로는 성취되지 않잖아요? 사는 동안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고, 소소하게 문화행사도 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주부들의 ‘삶터 가꾸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저, 관에서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민원인에 그쳤다면 이루기 힘든 일이었다. 참여와 실천은 작은 동네를 바꾸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게 ‘갈사모’는 4년째를 맞이한다. 정회원이 17명 정도, 준회원은 30여 명이 된다. 은평시민회의 최순옥 사무국장도 창립멤버다.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고, 때가 되면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아이들과 견학을 간다. 얼핏 들으면, 4년여 세월 동안 ‘갈사모’가 견고한 조직적 틀을 지니고 있으려니 생각하겠지만, 이에 대해 최순옥 국장은 손을 가로젓는다.

“조직의 형태를 보면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여요. 시민운동에 몸담고 있는 저 자신도 조직에 대한 상이 뚜렷하지 않아요. 그래서 고민이 되긴 하지만, 또 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발전될 것이라고 믿어요. 의식적으로 구체적인 상을 만들어놓고 끌어 올리려고 하다보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목표를 만들어가는 거지, 목표를 딱 두고 그 목표에 맞춰 끌어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지금 현재 2003년도는 지금의 수준으로 합의되는 것이고,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면, 아마도 더욱 발전된 형태로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순옥 국장은 지역주민모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십수 년간 이질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공통의 관심사를 유지해나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잘 훈련된 활동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힘든 세상에, 너와 내가 잘 살아보자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것은 참 버거운 일이다. 이웃간의 소통이 단절된 현대도시생활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자식에게 맡겨져 있는 사회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의 동네’가 아닌 것이다. 아이가 클 때까지 잠시 머물러 가는 곳일 뿐이다. 정주의식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사라진 잃어버린 단어다. 그래서 주민모임이란 더디고 하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풀뿌리들의 모임이 소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구를 지키는 ‘병구’가 있듯, 동네에는 ‘아줌마’가 있다. ‘병구’에게 물파스와 때밀이 수건이 외계인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지만, ‘아줌마’에겐 생활자들의 정서와 진정성, 그리고 직감이 있다. 부천담배자판기 금지조례를 제정하게끔 정책을 유도했던 사람들, 천안 쌍용3동의 아파트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원주 협동조합운동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사람들, 놀이터를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리로드시킨 강북구 미아3동의 사람들, 그늘진 아이들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녹색삶’의 사람들, 이 모든 일의 한 가운데에는 아줌마가 있다. ‘아줌마의 힘!’은 풀뿌리에서 강하다. 풀뿌리란 무엇인가? 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아줌마는 풀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자양분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풀뿌리가 중요한가? 최순옥 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우리가 사회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는 틀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큰 흐름을 만드는데 주력을 했고, 그것에 의해 상당히 많은 제도와 사람들이 변화를 했잖아요. 그렇다면 맨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가 보면, 모두 다 그 제도를 즐기고 향유를 하고 있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거든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흘렀는데, 묵묵히 개인의 삶을 살아왔던 풀뿌리로 들어가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회의라든가, 민주적인 합의의 과정, 토론, 이런 것들 자체가 안 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런 문화는 가정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되는 거고, 부모 자식간에서도 그런 문화가 반영된다는 것이죠. 국가 단위에서 구청, 학교, 기관, 지역사회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그럼 과연 누가 바꿀 것인가? 선언과 제도만으로 절대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구나, 결국 우리 엄마들이 지역에서 이런 모임을 하면서 회의도하고, 조정하고, 교육도 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로 녹아들어간다고 보는 거죠. 그렇게 따지만, 저희가 하는 활동방식은 굉장히 더디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봐요. 그렇게 하면서 사회가 조금씩 변하니까요.”

국가담론의 한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다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제도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실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의 변화 없이는 국가적 담론은 의미가 없다. 최순옥 국장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최순옥 국장은 시민운동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분리시키지 않으려한다. 직업과 생활의 삶이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갈사모’의 활동은 동네 주민으로서의 역할이고, 은평시민회의 활동은 시민운동가, 즉 직업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아,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워요. 동네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이웃과 소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저는 동네와 소통의 매개가 있고, 시민운동가라는 직분도 있잖아요. 개인의 삶으로 보면, 지금과 같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시민운동가라는 타이틀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그렇게 불려지는 것이 힘들 때가 있어요. 시민운동가는 삶의 대의나 가치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반면, 개인의 삶은 질곡 받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내 삶과 그 지향이 어느 정도 합치되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물론 완전히 합일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요. 나 아닌 어떤 것을 강요받거나 그런 가치지향적인 삶을 강요받는다면 힘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모임을 하면서 한 해 한 해 발전하고, 진전되고 성숙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최순옥 국장은 자신을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주제 넘는 일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이런 모임을 통해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보통사람’일 뿐이다. 20명 내외의 회원이지만, 이들과 더불어 변해가고 작게라도 동네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의 문화와 남성의 언어가 주도하고 있다. 매스컴과 인터넷의 확장으로 이런 문화가 서서히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은 여전히 남성의 문화와 언어가 지배한다. 그러나 동네에는 여성의 문화와 언어가 살아 숨쉰다. 온 동네로 확장시키지는 못했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갈사모’가 희망하는 것도 그들의 활동을 지역사회로 좀 더 확장시키는 것이다. 내년부터 주민자치센터를 접수(?)하겠다는 계획도 이런 것에서 나온 의지의 산물이다.

‘갈사모’ 회원들은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런 점이 그들을 더욱 가깝게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인가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것이 정말 보기 좋다. 10년 후엔 나뿐만 아니라 동네가 변해 있을 거라는 그들의 작은 소망대로, 변하지 않고 늘 그렇게 조금씩 전진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갈사모’가 소통하는 공간은 http://cafe.daum.net/GalSaMo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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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로 이끄는 지역활동" - 녹색삶의 사례
이 글은 2003년 10월, 제3기 군포시민자치학교에서 김미선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공동대표님이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김미선 대표님의 양해를 구해 싣습니다. 최근의 녹색삶의 활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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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

학부모로써의 지역주민들은 자녀교육 문제에 가장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이면 아이들 얘기다. 아이들 성적이 어떻고, 어느 학원에 보내니 성적이 올랐다거니, 앞으로 진로에 대한 정보들...등. 이런 대화를 나누며 자녀교육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으며 모두 같은 문제로 걱정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녀들은 원하던 원치 않던 지역사회의 아이들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따라서 우리 자녀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행복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아이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역사회 전체의 건강한 관심과 협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 숙제방 운영배경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문제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늦은 귀가로 보호받을 곳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오락실을 전전한다. 그리고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들기가 일쑤며 숙제나 준비물을 제때 갖추지 못해 학습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연히 탈선의 현장에 노출이 되며 기회도 많다.
숙제방은 지역의 요구와 지역주민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의 합일점이다. 아이들의 방과후 안전한 보호와 다양한 교육 기회제공, 지역사회의 협력을 통한 아동지지망 구축이라는 목표와 “화목한 숙제방, 소중한 나”라는 방훈을 걸고 숙제방이 개방을 하였다.

3. 자원교사의 역할

처음 13명의 엄마 선생님이 ‘내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이웃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한다’ 는 것에 동의하면서 자원활동으로 참여하였다. 각자의 사회적 경험과 다양한 준비 정도에 따라 특별 활동감사, 담임교사, 주제학습별 강사로 참여하였다. 엄마선생님들은 숙제방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애정을 듬뿍 주며 방과후 아이들의 안전한 보호와 숙제 지도 뿐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월1회 교사회의와 또 교사재교육(학습지도준비, 전통놀이지도) 등을 통해 교육활동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며 년1회 가정방문을 하며 아이들을 좀더 이해하며 학부모와의 유대를 갖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녀를 양육하며 갖고 있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이웃상담원’ 교육을 받는 등 지역에서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 학교와의 관계에서는 년2회 숙제방 아이들의 담임선생님과의 면담과 알림장을 통한 의견교환,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단체와의 관계형성 등을 통해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추천해 주기도 하는 열린 태도를 만드는데 동참하였다.
‘환경연극’을 가지고 각반 교실을 다니며 연극공연을 하여 아이들에게 환경의식을 심어주기도 하고 ‘이웃산타’ 활동을 통해 학교에서 추천해준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을 방문하며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음에 놀라고 우리의 조그만 활동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며 이 지역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활동인가 인지하며 책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주부라는 특성 때문에 가정 일이 우선이란 생각으로 빈자리가 많이 생기고 IMF후 경제적 문제로 직장을 찾아 떠나는 엄마 선생님들이 늘어나면서 자원교사 수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의식이 강한 몇 분의 엄마 선생님의 꾸준한 활동으로 많은 힘을 얻고 있다.

4 지역사회와의 연대

1) 학교

지역 교육 공동체로써 ‘열린숙제방’의 활동은 학교와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접촉 시도를 했다. 쉽진 않았지만 꾸준히 찾아가 숙제방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숙제방 아동 모집을 위한 가정 통신문 협조, 녹색 행사에 교장선생님의 참여, ‘이웃산타‘ 활동 시 학교의 적극적인 도움(대상 아동 명단 제공), 정기적인 학교 방문으로 담임선생님 또한 숙제방과 숙제방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보내주시며 숙제방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숙제방을 찾기도 하는 협조와 신뢰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2)지역주민

2000년 2월 더 많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일찻집’의 수익으로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공간마련은 지역 내의 커피숍에서 장소를 무료제공하고 녹색회원, 숙제방 학부모, 숙제방 아이들, 청소년 봉사단체 ‘나누리’까지 지역사회 모두가 합심하여 이루어진 좋은 경험이고 성과물이다. 회원 남편의 직장 동료 분들과 ‘아노사’ 소모임의 회원 분들이 숙제방 아이들의 목욕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아이들의 건강한 자람에 도움을 주고 계시며 이웃 미용실에서는 아이들의 머리손질을 해주시며 지역의 종교단체에서 아이들의 급식과 녹색 행사시 장소 제공, 지역주민인 회원은 아이들의 간식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누군가를 위해 내가 나눌 수 있는 역할에 감사하고 좋은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5. 지역사회의 변화

숙제방 아이들과의 첫 만남.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아 남루한 모습, 어두운 표정, 단체생활에 걸맞지 않은 아이들의 몸짓, 숙제방은 오지 않고 오락실에서 오락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모습 등을 보며 막막하고 당혹했던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 모두의 관심 속에 많이 변했다. 아이들의 건강도 좋아지고 키도 자랐다. 길에서 만나면 멀리서부터 뛰어와 인사하는 명랑하고 밝아진 표정, 단체생황에 적응하며 규율을 지키려고 애쓰는 아이들의 다듬어진 모습. 주변의 좋은 이웃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숙제방 아이들은 놀라운 발전을 하였다.

숙제방 활동에 참여한 자원교사인 엄마선생님들은 그들의 작은 행동이 이웃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안식처가 되며 또 놀랍게 변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깊은 책임의식과 함께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지역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구체적인 활동들을 통해 그래도 세상은 좋은 이웃,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소중한 경험을 하며 나의 성장과 가족의 변화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2003년 김미선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공동대표 발표문)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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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은 공정하고 정직하다. 다만 정보가 없을 뿐이다!"
-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를 찾아
인터뷰 : 조상연 사무국장
작 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오랜만에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은 지역운동단체를 찾았다. 스스로도 ‘좀 과격분자’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과격한 쪽으로는 자부심(?), 또는 일가견이 있는 듯 하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는’다고 했던가?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그렇게 적을 닮아갔다. 그들에게 적은 우리 사회를 좀먹는 ‘부패’였다. 토호세력들의 고질적인 부패, 그리고 이들과 유착한 지방자치단체의 만성적인 부패, 지역정치인들의 각종 부패, 언론의 부패 등은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부패’를 차단하는 일, 그것은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존재이유이며, 지방자치를 뿌리내리고 주민의 권리를 되찾는 원칙이자 기본이다.

최근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활동을 들여다보자. 작년 6.13지방선가 있기 두 달여 전. 당진군의원들이 제주도로 연수를 갔다. 연수는 잘만 활용하면 좋은 제도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았나.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면 됐지, 누(累)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주민들은 지방의원들의 연수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워낙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진군의원들의 연수도 그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방자치와 아무 상관없는 연수였기에,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연수를 다녀온 지방의원들에게 연수비 반환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의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연수비를 반환하는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도 이런 관례를 묵인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응수했다. 그리하여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확인은 어렵지만) 지방선거사상 처음으로 낙선운동을 벌인다. 이장과 같은 여론주도 층에게 편지를 썼고, 특공대처럼 가가호호 3-4000부의 유인물을 뿌렸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했다고 한다.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 한 차례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는데, 이번에는 연수를 다녀온 각 군의원들의 사진이 커다랗게 그려진 편지를 집집마다 발송했다. 13명이 일주일 동안 작업을 했다. 무려 6천500여 통이나. 결과적으로 7명 중 5명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부패를 차단하는데 있어 그들에게 타협이란 단어는 없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그들이 사회를 보는 눈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검찰이 이들처럼 가치판단이 뚜렷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비자금 파동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당진이라는 지역에서 매서운 검찰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좀 과격하죠. 그런데 우리 단체의 운동적 성향은 상대적인 거예요.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이 독재하니까 민주화투쟁도 거칠게 전개된 것 아닙니까? 우리의 이미지가 과격하게 된 것도 사실은 상대가 과격하기 때문이죠. 상대의 부패가 은폐되고 조작될수록 저희의 대응 방식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상대가 민주화되었다면, 우리도 당연히 서로 협력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로 갔을 겁니다. 토론을 거부하고, 정보도 공개 안 하고, 공개된 정보도 왜곡하고, 그러면 저희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중앙의 부패 정도는 그대로 지역에 투영된다. 지난 번 인터뷰했던 천안KYC 장기수 대표가 지적했듯, 삶의 현장에도 음지가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 개개인의 삶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나만 못해먹으면 ‘바보’라는 인식, 그래서 사회를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추구하는 목표도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 모든 부패의 고리를 끊는 것, 이것이 지방자치운동의 우선순위다. 상대의 부패 정도가 심하면,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조상연 국장은 그런 과정의 경험을 통해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커다란 이슈와 싸우다보니,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조상연 국장 스스로도 이 부분이 가장 취약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주민감사청구제도를 활용한 경험, 지방선거 낙선운동의 경험 등을 통해 주민들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졌다. 주민들은 우매하지도, 무지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결코 의식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시민들의 의식은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보다 공정하다고 해야 하나, 정직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정도 선민의식이라든지 도덕적인 우월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절대 그런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제가 10년 동안 운동을 통해 경험한 것은 시골농부가 전혀 우매하지 않다는 겁니다. 단지 정보를 모를 뿐이죠. 얼마나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떤 이슈가 터지면 주민 속으로 직접 들어갑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다섯 명이 떨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했기 때문인데, 정보만 주어지면 시민들은 공정하게 판단합니다.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핵심입니다.”

주민을 계몽하려는 접근이나 언론 보도에 치중한 운동방식은 주민의 호응을 얻는데 한계가 있다. 성명서 작성해서 보도자료 내고, 군청 앞에서 퍼포먼스 한다고 해서 주민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없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식의 홍보방식을 채택하게 된 배경은 앞서 언급한 주민감사청구의 경험 때문이었다. 인구 12만 명인 당진군은 규모에 비해 커다란 이슈가 유달리 많았다. 최근 6-7년 사이, 석문공업단지 반대운동, 한보화력 반대운동, 소난지 상수공사 비리 사건, 학교통폐합 반대운동, 일품가든 예산 낭비 사건, 총선 및 지방선거 낙선운동, 판공비 횡령사건, 중부권 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 정유공장 건설 반대운동.......이 중에서 당진군이 국도 32호를 확․포장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예산을 낭비한 ‘일품가든 사건’과 관련,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주민감사청구를 요청하게 된다. 이 일로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세간에 잘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민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잘 알게 된 계기였다.

“주민감사청구제도는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의 기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도 주민감사청구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운동의 방식을 터득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이런 제도의 이용이 자꾸 활성화된다면, 그만큼 풀뿌리민주주의도 앞당길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주민감사청구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아요.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확하거든요. 결과적으로 이 사건에 연루된 관계 공무원들이 ‘주의’조치만 받았을 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거든요. 감사 자체도 봐주기 감사에 그쳤고,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되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었듯이, 직접민주주의제도를 활용하는 과정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모이면 많은 잡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토론과 소중한 아이디어들을 끌어낼 수도 있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민감사청구제도라는 것을 처음 활용하면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지역에서 주민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주민감사청구제도가 가지는 한계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청구인 수를 줄이고, 상위기관에 감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감사할 수 있는 외부기관, 또는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부정이 적발될 시 엄정한 처벌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부패를 좌시하지 않는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지역의 기득권세력에게 ‘눈엣가시’임에 틀림없다. 60여 명의 회원 밖에 없는 조금한 단체가 찰거머리 같은 근성으로 부패에 대한 예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성격을 규정한 것은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특히 관의 문제에 대한 조상연 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첫째, ‘비밀주의’가 문제입니다.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어느 정도 틀이 다 되면 비밀을 유지한다는 것인데, 이런 것이 주민참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그런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지역주의적인 ‘연고주의’가 문제인데, 상당히 뿌리 깊어요. 연고주의에는 뭐가 있냐면, 힘센 쪽에 붙어서 무임승차하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연고주의에는 보신주의라고 해서 무엇인가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지금까지 동화줄 잘 만들어서 유지하고 있는데, 바뀐다고 생각해봐요. 밑에 줄 선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수구로 갈 수밖에 없어요. 모든 지역주의적 연고주의는 수구주의예요. 모든 진보에 딴지 걸고 와해시키려고 하는 거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조상연 국장은 체험을 통해 보수기득권세력들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기득권세력은 스스로 똬리를 풀지 못한다. 더 공고히 다질 뿐이다. 그러나 다리를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똬리를 풀어보겠다는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의지는 더 견고하다. 그럴 때만이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고 주민의 권리가 회복된다고 믿는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독특한 회원 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다. 80년대 말, 민주화 열기로 만들어진 ‘당진사랑단체연합’(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 구성원의 절반이 고등학생이었다. 스스로 학생회를 꾸리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 ‘소리나눔’이라고 명명하였고, 선배들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도 형성되었다.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지금은 특기적성교육과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로 인해 재생산에 차지를 빚고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회원들은 ‘소리나눔’ 출신이다. 15년 이상의 우애가 이들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소리나눔’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지역운동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조상연 국장은 말한다. 그만큼 ‘소리나눔’에 대한 애정도 깊다. 문제는 현재 활동이 뜸한 ‘소리나눔’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이다. 골방에 갇혀 있는 이들을 끌어내는 것이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과제 중에 하나다.

한 집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은 동네에서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는 일이다. 선명성이 뚜렷한 운동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부조리에 대해 ‘그 정도야 뭘......’, ‘정치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기득권세력의 똬리는 더 튼튼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합리적 협력을 필요하겠지만, 긴장관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상연 국장의 논지였다. 당진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홈페이지는 http://www.djngo.or.kr/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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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언어, 삶의 언어" - 천안KYC -를 찾아
인터뷰 : 장기수(천안 KYC 공동대표)
작 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오늘은 두 이질적인 집단, 즉 한 청년단체와 아파트부녀회의 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들은 천안 쌍용3동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마을만들기’를 해나가고 있다. 한국 사회의 거대 담론만을 쫓았던 한 청년단체와 관변적 이미지로 다가왔던 아파트부녀회 주부들과의 조우, 과연 동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요즘, ‘마을만들기’가 유행이다. ‘마을만들기’라는 운동의 형식이 운동판에 회자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지만, ‘마을만들기’에 대한 해석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지금, 어쩌면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던 6,70년대의 농촌 공동체의 모습도 ‘마을만들기’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마을만들기’가 드러내는 요체는 물리적 변화에 있을 것이다. 대구 삼덕동의 ‘담장 허물기’가 대표적이다. 놀이터 가꾸기나 동네 뒷산 가꾸기 운동 등은 그 정신이나 과정이 어떻든 물리적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리적 마을만들기는 주민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도시계획 분야와 맥을 같이 한다. 도시계획을 하되, 행정부만 독점하지 말고 주민도 참여해서 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마을만들기’는 물리적 변화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부산 금샘마을과 같이 문화적인 접근이나 아파트 공동체 운동으로 접근되는 경우도 많다. 앞서 제시한 담장 허물기, 놀이터 가꾸기 등의 정신도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마을만들기’운동은 물리적인 동네의 개조에서부터 문화적 접근, 공동체 확산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어찌 보면, 박정희 정권의 야심작 ‘새마을운동’도 ‘마을만들기’운동으로 생각될 수 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농촌을 근대적 마을로의 개조함으로써 우리 모두 ‘잘살아보자’는 운동이었으니까. 그러나 ‘새마을운동’을 ‘마을만들기’운동으로 받아들이기엔 좀 꺼림칙하다. 둘 사이의 황량한 간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관 주도와 주민주도의 차이만일까? 천안KYC 장기수 대표는 ‘마을만들기’의 요체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마을만들기’의 대상은 ‘마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마을’을 만드는 주체들이 올곧게 서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저희의 ‘마을만들기’ 운동은 아파트공동체를 만드는데 있어요. 물론 ‘마을만들기’의 상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희도 아직은 막연합니다. 이것이 아파트 공동체라든지, 이것이 주민자치운동의 활성화된 동네의 모습이라든지, 하는 희미한 상을 그리고 있지만, 아직은 저희도 발굴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거죠.......그렇지만 ‘마을만들기’의 구체적인 성과물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분명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람의 변화’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마을만들기’는 강요된 참여가 아닌 자발적 참여, 타치(他治)아 아닌 자치(自治),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정신을 뿌리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관 주도의 강제된 ‘마을만들기’와는 구별된다. ‘마을만들기’는 주민자치, 공동체운동의 또 다른 표현이다.

천안KYC의 ‘마을만들기’운동은 독특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천안KYC의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천안 쌍용3동 주민, 더 구체적으로는 아파트부녀회의 ‘마을만들기’이다. 쌍용3동 주공아파트 입구에는 400년이 넘은 잘생긴 느티나무 2그루가 있었다. 워낙 풍채가 좋은 나무인지라 아파트를 지으면서도 이 두 그루의 나무는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런데 장기수 대표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얼마 있다가 이 느티나무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가 3년 전, 가만 놔두면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전설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그래서 뜻 맞는 사람들과 ‘느티나무 동네 사람들’이라는 아파트 단지 내 소모임을 만들고 느티나무 살리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모금도 받고, 느티나무 옆에서 야외음악회도 하고, 공사를 담당한 주공에 항의도 했다. 모든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은 아니지만 느티나무를 살리자는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잔잔하게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던 차에, 주공의 원인분석이 나왔다. 수령이 400년을 넘으면서 두 그루 느티나무 뿌리의 일부분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아파트 공사를 담당한 주공 측에서는 그냥 흙으로 그 뿌리를 덮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환기는 물론 배수가 되지 않으면서 뿌리가 썩기 시작했다. 생명의 근원인 뿌리의 성장 조건이 열악해지면서 나무는 점점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느티나무 동네 사람들’은 주공에 책임을 물었고, 주공이 이를 인정, 2천만 원의 수술비를 들여 느티나무의 회생을 시도했지만, 결국 두 그루 느티나무는 죽고 말았다. 자연의 선택을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느티나무 동네 사람들’은 동네의 작은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저 자신도 93년부터 청년운동을 했었는데, 그런 구체적인 동네 운동을 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느끼는 것도 많았고, 참, 이런 동네 문제가 여러 가지가 있구나, 했죠. 그 다음 나무는 죽고, 죽은 나무를 베고, 베는 과정에 야외 영화도 하고 해서 그 모임이 지속되었습니다. 후속으로 우리가 뭘 할 것인가 하다가, 아파트 주변에 봉서산이라고 조금한 산이 있는데, 봉서산에 불 탄 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이 사유지이기 때문에 불탄 자리가 방치되고 있었어요. 보기가 흉해서, 우리 모임에서 나무를 심어보자 했지요. 그런 얘기가 나오다가 우리만 하지 말고 부녀회와 같이 해보자 해서 규모가 커졌어요. 그래서 9단지 life 아파트, 10단지, 7단지 이렇게 있는데, 그런 부녀회에 제안을 했고, 규모가 더욱 커진 거죠. 그래서 한 1000그루 나무를 심었어요. 그림그리기 대회도 하고, 빵도 협찬 받고 하면서 행사 치고는 잘 되었어요. 의외로 부녀회에 반응이 좋았죠. 처음에 우리가 나무 살리기 할 때, 무관심했었거든요. 그런데 음악회가 잘 되고, 그런 것에 모범이 되니까, 부녀회도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마을만들기가 시작됐죠.”

이렇게, ‘마을만들기’는 아파트부녀회와 만나게 되고, 지금은 쌍용3동 마을만들기의 주체는 아파트부녀회 주부들이다. 천안KYC는 단지 마을만들기의 파트너일 뿐이고, 서투른 기획력과 실무를 보완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아파트부녀회가 좋은 동네를 위해 주체로 나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으로 청년단체와 아파트부녀회의 조우는 의아스러운 일이다. 이질적인 두 부류의 사람들이 만났으니까. 물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를 지켜본 장기수 대표의 말처럼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다 아줌마들이고 저 혼자 남자였거든요. 가끔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도 돌았어요. 사람들과 사귀다보면 노래방도 가고 그러잖아요. 그럼 대뜸 소문이 납니다. 여자들과 노래방에서 나오는 이상한 남자로 말이죠. 물론 지금은 다 알고 있어서 괜찮은데. 회의 할 때도 제 스스로 안절부절 못하는 거예요. 어색해서요. 그게 한 6개월 가더라고요. 저 스스로 말도 더듬고. 그리고 재밌는 것은, 주부들이 회의에 적응을 못하니까, 한번 삼천포로 빠지면, 한 30분은 기다려야 되요. 저는 급한데, 아줌마들은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억지로 돌리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더 끊기더라고요. 얘기하시다 지치면, “끝났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죠”하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회의 다음 스케줄이 펑크 날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아예 여유롭게, 매주 화요일에 모이거든요. 그래서 화요일은 시간을 비어놔요. 어떤 날은 오늘 점심 먹읍시다, 하는 때가 있거든요.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비어 놓죠. 저희하고 생활리듬이 다르더라고요“

장기수 대표는 주부들과의 조우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다림’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온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는 그들의 삶을 표현한다. 주부의 삶을 모르면, 주부의 언어를 모르면 겉만 번지르르한 남정네들은 영원히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쯤 원기 왕성한 젊은 시설에, 토론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우리와 다른 세대를 살아온 어르신들과의 시각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깨닫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분들이 살아온 삶과 역사적 배경을 한 두 권의 책이나 한 두 번의 대화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르신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르신들의 언어가 필요하고, 주부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주부들의 언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을만들기’의 범주는 많은 것을 포함한다. ‘마을만들기’의 상이 하나가 아님을 뜻하기도 하지만, 막연함이기도 하다. 장기수 대표의 말처럼, 막연함일지라도 그것을 만드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쌍용3동 ‘마을만들기’의 매개로 구체적인 사업이 있다. 하나는 ‘마을신문’이고 또 하나는 ‘녹색가게’이다. 둘 다 주부들이 이끌어간다. ‘푸른마을’이란 이름으로 발행되는 마을신문은 벌써 통권 9호를 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자질구레한 소식까지 담고 있는 ‘푸른마을’은 충남민언련에서 수여하는 공동체신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마을신문이든 녹색가게든 이것이 종결점이 아니라 아파트 공동체로 가기 위한 작은 과정이다.

“마을신문의 역할은 상당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아파트 공동체라든지 아파트운동에 대해 뭔지 잘 몰랐었거든요. 그런데 신문이 나오니까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주부들이 글도 쓰고, 동네 소식을 나누고 하면서 주부들 스스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마을신문을 통해 주민들이 동네의 일에 참여할 수 있고,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고 동네의 문제를 주부들이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이 이웃과 정을 나누는 아파트 공동체로 가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보는 거죠.”

장기수 대표가 타블로이드판으로 제작된 8면의 마을신문을 건넸다. 마을의 냄새가 물신 풍긴다. ‘참여마당’이란 코너에 한 초등학교 3학년 친구의 글이 실렸다. 그들의 정겨움을 들어보자.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안녕하세요? 저 준구예요.
아빠는 힘드시게 일 하시는데 저희는 여기에서 놀고 있으니 제가 좀 부끄럽네요.
아빠도 여기에 오셨으면 좋았는데 아쉽네요. 제가 오늘 가본 데는 대청댐, 뜬봉샘이예요.
내일 가는 곳은 용담댐이고요, 저는 여기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게임도 하고 정말 오늘 하루는 재미있었어요.
아빠. 될 수 있으면 언젠가는 금산에 와서 아름다운 산도 보고
깨끗한 물이 어떻게 우리 집까지 오는지 와서 아빠도 들으세요. 알았죠!
음~~그리고 수영장도 커요. 형들이랑 장난치다가 물에 들어가서 옷과 코 눈 입 귀에 물이 다 들어가고 울은 사연이 있었어요.
정말 그때가 아찔했어요. 아빠 같으면 아들인 저에게 그런 장난은 안 하시겠죠? 그러면 저 정말 화날 거예요. 알았죠? 그러니 심한 장난하지 마세요.
그럼 정말 화날(-_-^)거예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03년 7월26일 토요일
아빠를 존경하는 준구 올림"


‘마을만들기’는 커다란 무엇이 아니다. 막혀 있는 소통의 부재를 뚫고 너와 내가 가까워짐으로써 ‘생활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생활의 가치는 멀리 있지도, 막연하게 있지도 않다. 그것은 내가 서 있는 동네에서부터 싹튼다. 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마을만들기’운동을 하나의 이벤트 행사가 아니다. 주체가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일시적인 바람에 불과할 뿐이다. 장기수 대표가 표현한 것처럼, 절차적인 측면에서 마을 만들기의 과정은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착하는 과정이다.

“저희가 진행하는 일련의 마을 만들기 운동은 민주주의를 동네에 정착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주민자치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고, 풀뿌리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우리 동네 동대표 총무를 맡고 있거든요. 그런데 처음엔 너무 놀랐어요. 이 사회에서 자행되는 안 좋은 관행들이 그대로 존재하더라고요. 리베이트를 받는다던가, 수의계약을 하거나 하면서 저는 굉장히 경악했어요. 그 정도로 저도 무지했던 거죠.......민주주의가 정착된다는 것은 투명한 사회와 병합되잖아요. 개인의 의견이 존중되고, 주민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잖아요. 주민자치도 이것이 가장 큰 핵심이라고 보는 거죠.......이런 과정을 주민들이 많이 겪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도 주부들 소모임을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마을신문이든, 녹색가게든, 소모임이든 주부들 스스로가 서로 나누고 배우고 하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항시적으로 운영을 하는 쪽으로 내년에는 계획하고 있어요. 교육과 주민에 대한 재투자라고 볼 수 있죠. 이런 것이 활성화되려면 주민의 의식도 성숙되지 않을까 합니다.”

천안 쌍용3동 ‘마을만들기’운동은 이제 막 재미를 붙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조급해선 안 된다는 교훈도 배웠다. 주부의 언어로 조금씩 마을은 만들어진다. 아직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 모르지만, 그렇게 풀뿌리의 힘은 만들어진다. 천안의 실험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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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성미산, 주민의 힘으로 지켰다!"
-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찾아
인터뷰 : 김종호(대책위원장)
작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지난 주,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 김종호 위원장을 인터뷰한 후, 오늘자 ‘오마이뉴스’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성미산 배수지 공사 건설 유보”를 발표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올 설 연휴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천막 속에서 추위에 떨며 성미산을 지켰던 많은 주민들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을 하면서 주민들이 겪은 마음고생을 그 무엇으로도 보상해 줄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행정부가 ‘공사 유보’ 결정을 내린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다. 오늘의 이 결정은 불필요한 배수지 공사를 중단시킴으로써 예산 낭비를 막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하나뿐인 주민들의 쉼터를 더 오래도록 가꾸로 지킬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지역운동의 성공 사례로 남을 것이다. 자, 그럼 어떤 과정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김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추적해보자.

일단 배수지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서울, 수도권 지역은 팔당 상수원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이 물이 각 가정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수장을 통과하고 1, 2차 배수지를 거쳐 지역배수지라는 곳에 모여 각 가정에 직결급수를 한다. 그러니까 배수지는 각 가정에 직결급수를 위해 물을 모아 놓은 곳이다. 물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필요한 시설이 아닌가?" 할 것이다. 맞다. 꼭 필요한 시설이다. 그러나 성미산 배수지는 필요하지 않다. 무슨 얘긴가?

“저희가 이 문제에 부딪히면서 공청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 행정 정보공개청구를 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서울시내에 설치된 정수장과 배수장 시설을 갖고도 천만 서울시민이 충분히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저희는 배수지의 필요성을 인정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예산낭비를 할 필요도 없고, 성미산 배수지뿐만 아니라 이후에 서울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18개 배수지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결론에 대해 여러 전문가분들도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를 해주셨고, 서울시 정책에 잘못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서울시는 성미산 배수지를 건설하게 되면, 강북정수장에서 오는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해주겠노라고 천명하고 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이라면 ‘깨끗한 물 공급’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겠지만, 대책위에서 요구한 행정정보공개는 서울시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이미 작년 11월부터 강북정수장에서 오는 물을 인근 주민들이 공급받고 있었고, 그럼에도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그 전까지는 성산동을 비롯해 인근 서교동, 동교동, 합정동 등 7개 지역이 뚝섬정수장을 통해 물을 공급받았으나 최근 강북정수장이 완공되면서 이 곳의 물을 공급받았던 것이다. 강북정수장의 물을 공급하면서 성미산 배수지를 건설하면 강북정수장의 물을 공급하겠다던 서울시의 앞뒤 맞지 않는 논리가 들통 난 것이다. 당연히 대책위는 이런 사실을 주민에게 알렸고, 주민들은 더욱 분노하게 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왜 이런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성미산 배수지 공사를 강행하려 했을까? 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서울시 상수도사업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죠. 공급위주의 정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겁니다. 수요․관리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하다보니 무리하게 시설 수만 늘려왔던 거죠. 지난 93년, ‘수도정비계획법’이 만들어졌는데, 이미 그 당시 성미산 배수지 건설이 계획에 잡혀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18개 지역도 이 때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계획을 수립할 당시의 물소비량이라든지, 인구 예측, 수요예측 등이 현재와 맞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인구도 계속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했는데, 지금은 서울시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또 정부의 물 절약정책에 의해서 시민들의 의식이 변화되면서 물 소비가 줄었습니다. 이것도 이율배반적이죠. 그러니까, 정책이 잘못됐다면 수정하는 것이 당연한데,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되다 보니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김종호 위원장은 수자원공사의 댐건설이나 새만금 공사,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전소 건설 등도 공급위주 정책의 허점이라고 지적한다. 공급위주의 정책이란 시설을 계속 짓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는 늘고 사용량도 느니까, 시설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논리인 것이다. 21세기에도 이런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통한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 혹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까? 김종호 위원장은 공급위주의 정책이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라는 조직의 존립근거 논리로 활용된다고 보고 있었다.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새만금과 위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배수지를 짓고 댐을 건설하고 폐기장을 설치해야 자기 조직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의 예산은 1조원에 가깝다. 서울시 산하기관 중 지하철공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조직의 규모는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절반으로 줄여도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다는 논리이다.

반핵운동을 경험했던 나도 이런 논리에 충분히 공감한다. 현재 현안으로 떠오른 위도의 문제만 보더라고 그렇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포화상태에 놓인 핵폐기물을 더 이상 담을 곳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핵발전소 주변에 있는 임시보관소를 좀 더 넓히면 핵쓰레기 보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행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김종호 위원장이 말하고 있는 조직이기주의다. 수 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소위 ‘핵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많은 시민들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원하지만, 그럴 경우 이들의 존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핵으로 살아 왔고, 앞으로도 핵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공급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급위주의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수요․관리를 중심으로 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땅 속에 묻혀 있던 배수관을 새 것으로 교체하면서 누수율이 상당히 줄었다. 교체하기 전 누수율은 30-40%에 달했으나, 현재는 17%에 그치고 있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수요․관리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조직이기주의는 물이나 에너지 분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교육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성미산은 주민들의 쉼터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생태적인 가치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김종호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포에는 자연숲이라고 할 수 있는 숲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요. 서강대 뒤쪽에 있는 노고산이나 홍대 뒤에 있는 와우산이 있긴 한데, 여기도 이미 배수지가 들어섰어요.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개발붐이 일어났고, 택지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 뒤쪽으로도 매봉산이 있긴 한데, 예전에 석유 비축기지가 들어서면서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성미산은 자연적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산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환경적인 의미가 있고, 또 생태적으로도 천연기념물 소쩍새, 붉은 뱁새, 그리고 여러 서울시 보호종 등 다양한 조류들도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밤섬이나 관악산, 북한산의 이동 경로로써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성미산을 찾는 이들은 줄을 잇는다. 하루 평균 성미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천여 명을 넘을 때도 있다.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에 이들의 참여가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미산은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2년여 전, 한양대학교의 한양재단이 성미산 주변에 8천400백 평 규모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있은 후, 주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과정에 서울시의 배수지 공사 전말을 확인하게 된다. 2001년 8월, 마포두레 생협, 공동육아협동조합, 산을 자주 이용하던 체조부, 역도부, 그리고 그 주변의 교회 등이 모여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라는 자발적인 주민모임을 만들면서 약 두 달여 동안 2만1000명 정도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2001년 11월경으로 되어 있던 착공이 연기되었다. 그 이후, 성미산 음악회 등의 행사를 통해 지역의 여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올 설 연휴 전, 서울시는 기습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게 된다. 기습공사는 고향으로 가야할 주민들의 발걸음을 잡았다. 천막농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 서울시 성미산 배수지 공사 유보 발표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밀어붙이기식 행정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생태적 가치라는 부분이 추상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삭막한 도시 생활을 하는 주민에게 절실히 필요한 생활의 가치라는 것을 되새겨 준다. 반대운동을 통해 드러난 상수도 정책의 허점들도 이번을 계기로 개선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종호 위원장은 성미산 반대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를 넘기기 전에 발족할 예정이란다. 아직 구체적 활동 계획을 잡진 않았지만, 많은 주민들이 공감하고 있고, 성미산을 지키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라 본다. 특히 지역정치 변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가 성미산 반대운동의 조직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면, 주민들이 지방자치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것이 또 다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모두가 성미산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선되었는데, 성미산을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찬성입장으로 간 의원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정치가 제대로 서야 지방자치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저희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지역정치에도 참여해야 하지 않느냐, 이번 싸움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민 출신 시장이 농민들을 대변하고, 울산의 한 구청장이 노동자를 대변하듯, 주민을 대변할 수 있는 올곧은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시민단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정치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질 계획입니다. 생활과 정치는 동격이잖아요.”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보다 더 험난한 길이 ‘마포연대’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산적한 현안과 지역정치개혁. 그러나 성미산 싸움은 그들에게 다른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주민들은 더욱 단단해졌고 공동체 의식도 더욱 성숙해졌다. 바로 이런 것이 그들의 희망이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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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 자치, 또는 관념적 소통을 넘어!"
-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찾아
인터뷰 : 최혁진(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 기획실장)
작 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한 7,8년 전으로 기억한다. 장일순 선생과 이현주 목사가 대담 형식으로 작성한 ‘노자이야기’라는 책을 손에 든 적이 있었다. 도(道)와 무위(無爲), 하나님과 부처님을 넘나들었던 그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솔직히 ‘신선 같은 말씀만 하시는구나!’했다. ‘장일순’이라는 한 인간을 접한 것도 그 때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대목. ‘뿌리가 죽으면 꽃이고 열매고 아무 것도 없지만, 뿌리가 살면 그것들은 저절로 맺힌다, 뿌리가 살아야 한다. 그것은 곧 근본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정확히 지적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취재한 지역운동사례는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였다. 한국 사회의 운동 판에서 원주라는 지역만큼 독특한 곳은 없을 것이다. 협동조합운동의 근원을 찾아가면 만나는 지점이 원주고, 그 곁에는 ‘장일순’과 ‘지학순’이라는 두 ‘사상적 큰 스승’이 있다. 풀뿌리가 살아야 지역사회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그들의 가르침은 현재도 매우 유용한 운동적 사상이다. 기층 민중운동을 통한 반유신독재운동, 김지하의 투쟁, 가톨릭농민회, 한살림운동 등은 소위 ‘원주캠프’가 만든 커다란 물줄기다. 현재의 신협운동, 소비자협동조합운동, 한살림운동, 의료생협운동, 공동육아, 자활운동 등을 지탱하는 자양분이기도 하다.

30여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원주의 소비자협동조합운동이 정치투쟁으로 깃발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80년대 암흑시대의 공백을 깨고 최근, 다시 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 지역운동, 주민자치, 생명운동의 기치를 걸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협동과 자치에 기초한 생명의 도시 만들기가 그들의 화두다. 지난 6월 5일, 원주지역의 협동조합 및 협동운동을 하고 있는 8개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창립했다. 지역자립의 경제를 이루고, 완전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생태적이고 인격적인 도시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협의회 창립의 취지다. 지난 주, 협의회 실무를 맡고 있는 최혁진(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 “밝음의원․밝음한의원”) 기획실장을 만났다. 통상 지역운동사례는 인터뷰 이후, 그 내용이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되지만, 이번 취재는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이 추구하는 바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인터뷰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녹취록 그대로 살리되, 다소 긴 내용은 편집하고, 주요 내용만 갈무리해 실었다. 원주의 독특함이 여타의 지역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풀뿌리운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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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이하 김) : 원주 협동조합운동이 꽤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해주시고, 현재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최혁진(이하 최) : 처음에 협동조합운동이 생기게 됐던 배경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과 지학순 주교님이 1965년 도에 지역운동을 했을 때, 그 때 제일 걸림돌이 됐던 것 중에 하나가 일차적으로 민중의 생존권에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원주뿐만 아니라 강원도 지역은 아주 열악했습니다. 일차적으로 민중생존권들의 기반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주지역 내의 영세상이나 소상인들은 그 때 당시에 규모라 그래봐야 판자 떼기 같은 것들을 만들어 가판을 했던 분들이거든요. 이 분들이 물건을 하나 구입하더라도 돈이 없으니까 돈을 꿔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시장의 고리채업자들에게 나중에는 터전마저 다 뺏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했죠. 이렇게 하다가는 소위 말하는 지역운동의 토대 마련이 안 되니까, 그래서 신협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런 과정에서 “밝음 신협”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 사람들이 조금씩 저축하는 그 돈을 가지고 기본적인 사업자금을 활용하고, 생존을 꾸려나가니까 고리채에 뜯기지 않은 거죠....... 신협이 상당히 활성화됐어요.

또 하나가 공동체를 계속 엮어 나가야 사실 지역운동에 힘이 생기잖아요. 사람들이 각개적으로 있을 때에는 동력이 안 생기는데, 그래서 소비조합운동이 시작이 된 거죠. 소비조합운동이 잘 진행이 되다가 나중에 광산 자체가 붕괴되었는데, 소비조합운동은 주로 광산촌과 강원도 지역의 농촌 지역에서 중심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광산 지역은 물가가 2-3배예요. 서울에서 설탕이 1000원이면 여기는 2-3000원이예요. 그래서 소득은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생활용품은 2-3배 물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계속 몰락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소비조합을 통해서 공동구매를 하자, 이렇게 해서 소비조합운동이 쭉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농업은 계속 몰락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근본적인 대책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그 때 당시에 가톨릭농민회 회원들 21명이 일본을 방문하게 됩니다.......

일본의 유명한 지역운동 조직인 생활클럽 생협을 시찰하고, 여러 개 생협을 다녀왔는데, 그 때, 한국 상황에서 모델링할 만한 곳을 찾은 거죠. 즉 생활클럽 생협의 방식대로 해보기로 결의했던 거죠. 대표적으로 농민들이 유기농으로 전환했는데, 유기농이라고 하는 전환이 생태주의적 사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정부의 관리형 농업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생명운동의 시각들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한국사회에서는 농민과 도심 지역이 완전히 단절돼서, 한 쪽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도 한 쪽에서는 무관심해지는 상황이잖아요. 이것을 깨는 것은 소통이다, 그 소통은 관념적인 소통이 아니라 먹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산지 견학을 오면서, 농촌일손 돕기를 하면서, 뭐 이런 논의들이 그 때 벌어졌던 거죠. 그런 흐름 속에서 생협운동과 한살림운동을 시작했던 겁니다. 철저히 민중의 삶에 대한 분석하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뭘까, 가장 핵심적이 포인트가 뭘까를 짚으면서 그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상적인 포용력도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6-70년대의 일이구요. 80년대 들어와서 운동이 상당히 쇄락이 됐어요. 결정적으로 80년 광주가 생기고 엄청나게 정치적으로 압박해 오니까 힘이 축소되고,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젊은 사람들은 정치투쟁의 노선들로 전환하면서 지역의 생활운동이나 민중자치운동에 대한 역량이 단절이 됐죠. 80년대 판이 이렇게 선배운동과의 단절의식이잖아요. 그러면서 에너지의 동력이 재충전되지 않았고, 그러면서 원주라고 하는 도시 자체가 기본적으로 작은 도시다 보니까, 문제는 전체적인 한국사회의 기형아가 아주 본격화되었던 거죠. 거대도시 중심의 사회가 돼버리는...운동을 하려고 해도 다 서울로 가야 되니까, 그 당시 지역에 운동을 이끌어가던 분들이 다 서울로 다 떠나게 됐죠. 그래서 80년대가 상당한 침체기였어요. 버텨낸 것만 하더라도 굉장한 건데, 어쨌든 운동가들이 다 떠난 상태여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근근히 버텨온 거고, 90년대 들어오면서 NGO 단체들이 활성화되면서 이 쪽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 한 4-5년부터 새롭게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어떤 힘을 모으는 주체, 공통의 카리스마라고 할까, 공론의 장이라고 할까, 소통의 장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의료생협 준비를 여러 협동조합이 모이고 지역주민과 NGO단체와 같이 만들었죠. 의료생협을 만들어서 약간의 소통의 장이 형성이 됐어요. 그 힘을 이어와서 협의회를 만들게 되었고, 협의회 내에서 지역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역시 지역운동이다 라는 논의를 했었죠. 지역운동이라는 활로를 찾게 된 것도 생협운동 판도 그렇고 많은 운동들이 지나치게 수도권 중심인 것 같아요. 지역의 역량이 안 된다는 자기비판은 있지만, 지역의 동력을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것들이 수도권에서 공급받는 식으로 상당부분 재편이 돼 있고, 정책적인 것이나 자본까지도, 그리고 생협조직이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보니까, 완전히 지역조직은 물류조직화 해가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판도로 가면 지역엔 비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결국은 신자유주의와 비슷한 경향이 돼 간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오랫동안 논의를 한 끝에 협의회라든가, 지역의 화두를 지역운동에 두자고 한 것이죠.

김 : 운동의 뿌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말씀 중에 일본 ‘생활클럽 생협’에 대한 언급을 하셨는데, 자료를 보니, ‘워커즈컬렉티브’에 대한 고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최 : 예, 현재 활동이 되고 있어요. 이것도(월간 ‘원주에 사는 즐거움’이라는 신문을 보여주면서) 워커즈 형태로 만든 겁니다. 여러 지역단체에서 발행하는 각각의 회보들이 있잖아요. 전국단위로 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회보를 난잡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연대해서 만들자, 그래서 이것을 만드는 주체도 활동가들의 어떤 개입식의 형태로 만들지 말고, 지역주민들이 만드는 것으로 해보자,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만드시는 분들이 모두 주부들입니다. 다섯 명의 주부와 한 명의 여성 디자이너가 참여하고 있죠.

김 : 그럼, 이것이 ‘출판 워커즈’입니까? 가나가와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같은 거군요?

최 : 예, 그런 전망을 가지고 있죠. 앞으로는 지역의 NGO 단체에서 만드는 홍보물이나 인쇄물들을 편집과 기획을 만들어주는 거죠. 각 단체가 편집위원회를 통해 내용을 만들면, 이 쪽 분들이 그 단체의 성격에 맞게 예쁘게 만들어서 인쇄하는 거죠. 출판을 담당하는 지역의 워커즈컬렉티브라고 생각을 하고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참기름, 들기름 생산하는 워커즈가 올 초에 만들어졌다가 잠시 문을 닫았어요. 원주생협과 생협연대의 갈등이 생기면서 판매처가 막히는 바람에, 조만간에 재가동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생산가동 분야는 계속 워커즈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조합원들도 동의하고 있고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은 생협이 전국화 되다 보니까, 교복, 콩나물 이런 것도 큰 생협 조직에서 공장을 만들어서 공장에서 예쁜 용기로 포장해서 지역으로 다 직송해버리거든요.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공산품 같은 것은 협력해서 다른 소규모 지역과 같이 가야죠. 저희가 다른 지역과 담을 쌓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협력할 부분은 철저히 협력하겠지만, 지역 안에서의 완결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지역의 ‘성공회 나눔의 집’이나 자활후견기관이 들어와 있는데, 거기 빈민들, 자활문제들이 살아남는 방법들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요. 자활후견기관에서 맨날 사업단 만들어서 내보내잖아요. 어쨌든 시장 구조 하에서 경쟁이 안 되거든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본다면 그 분들이 참기름, 들기름 생산워커즈라든가, 콩나물이나 밑반찬이나 우리밀빵이나 이런 것들을 조금씩 생산하는 라인을 만들고 그것들을 이 지역에 있는 생협조직들이 전량구매를 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기초생계를 보장하는 방식을 해서 계속 그물망을 만들어가야 하는 거고, 이 부분들은 내부에서 상당부분 협의점들을 찾아가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사업들을 안정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어요.

저희는 협의회가 뭉쳤다고 하지만, 사실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단일조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장을 하나로 만들자는 겁니다. 마치 가나가와네트워크처럼요. 그렇지만 실제 사업영역은 다 분권화하려고 합니다. 어느 한 조직이 다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워커즈 방식으로 독립적인 사업체를 가지면서 참여하게끔 할 생각입니다. ‘출판워커즈’는 정착단계에 있다고 보고요, 참기름, 들기름 생산 워커즈는 다시 가동될 예정이고요, 또 다른 워커즈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두부, 콩나물, 밑반찬 워커즈 쪽, 쉬운 것부터 가려고 합니다. 의료생협 쪽에서는 ‘홈 헬퍼’ 사업단이라고, 독거노인 돌봐주는 것인데, 그 팀도 어느 정도 성숙하면 그 사람들이 자주적인 조직으로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의료생협과 나눔의 집이 같이 하고 있는데, 저희가 매달 교육하고 있거든요. 그 분들이 마인드가 형성이 되고 리더십을 이끌 사람이 나오면 그 때 가서 워커즈로 전환시켜주려고 합니다.

김 : 협의회 구성은 협동조합 위주로 되어 있겠죠? 다른 NGO단체들의 참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최 : 일단은 저희가 이름은 협동조합운동협의회인데, NGO단체도 참여를 원하면 준회원으로 해서, 의사결정권 등 모두가 똑 같습니다. 다만 대표는 저희 협동조합 조직 가운데 두는데, 저희가 준회원제를 정관에 집어넣은 이유는, 지역의 경제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의 대표는 지역의 신뢰가 있는 NGO조직으로부터도 인정받는 사람으로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준회원 제도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에 국한시키지 않고 공동체운동이나 지역운동을 펼쳐나가는 조직은 누구든지 정회원으로 맞을 수도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은 단체는 준회원으로 참여하되, 의결권이나 투표권은 다 똑같고요.

김 : ‘주민자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각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의 활동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조합원들의 참여는 어느 정도입니까?

최 : 저희가 방향을 지역운동으로 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첫 번째로 조합원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활동가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는 실무 일, 뒷받침하는 일만 하고, 소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조금 마음에 안 들고 부족해 보이지만, 주민들이 나서서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들을 하거든요. 원주생협들은 조합원 활동가들이 계속 소모임을 만들고 있어요. 원주한살림도 조합원 활동을 만들면서 소모임을 형성해가고 있죠. 일단 주민자치의 힘은 주민들이 나서서 무엇인가 해보면, 해볼만 하구나 하는 어떤 다른 경험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이 자치를 어렵게 생각을 하는데, 이런 활동들이 민우회 소모임들이나 원주생협 소모임들이나 협동조합을 뒷받침해주면서 쉬운 먹거리 같은 소모임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경험들이 쌓여 가는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늘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 활동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각 조합의 임원회 주요 직책들을 상당부분 여성분들로 맡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대상자와 결정자가 합치를 해야 되거든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가족의 건강문제를 대개 엄마들이 관리하고 관심을 갖고 있고, 먹거리 같은 경우도 주로 엄마들이 활동을 하잖아요. 이용자는 다 엄마들이고 주부들인데, 의사결정의 주체들은 대개 명망가인 남성 활동가들이란 말이예요. 이런 부분들을 조금씩 바꿔서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이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하고요, 차기 이사회쯤에는 7-80% 이상의 지역 여성 활동가 주체들이 이사 자리에 앉을 것 같습니다. 저희 실무자들은 그 분들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 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이런 다양한 조직의 임원활동가들이 자기 조직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양하게 지원할 계획인데, 특히 월례강좌 프로그램은 모든 조합들이 다 모여서 주최하고, 돌아가면서 주제 하나를 맡아요. 지난 달에는 원주생협에서 월례강좌를 했고요, 이번 달에는 소비자모임이 유전자조작을 가지고 월례강좌를 하고요, 11월에는 민우회에서 개최하기로 했어요. 12월 달에는 학교급식문제를 한살림에서 하고요. 1월에는 보건의료로 하고요. 그래서 소통의 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김 : 어떤 형태의 소모임들이 있습니까?

최 : 의료생협의 경우는 아토피 모임을 갖고 있고요, 이번 달에 새로 생기는 것으로 당료질환 앓고 있는 환자들의 모임, 등산모임 등이 있고, 원주생협은 마을별 소모임, 아파트 동에 같은 조합원들의 소모임을 갖고 있고, 육아교실, 생태기행교실, 동화사랑방 모임, 이런 소모임이 만들어가고 있고요, 그 외에도 자치역량을 키우기 위한 매장운영위원회, 그러니까 생협의 매장을 실무자들이 다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매장 인근에 사는 조합원들의 대표가 매장의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운영의 모든 책임을 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결정권자가 이 사람들이 되는 것인데, 유기농 매장을 관리해 나가면서 그들끼리 네트워크가 생기고 주민과의 만남의 장이 생기고 어떤 모임을 관리하고 운영하면서 키워나가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의외로 주부들의 그런 것을 하면요 의식이 굉장히 커져요. 그리고 순식간에 멀지 않은 시기에 지역자치문제를 제기하고 나옵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일을 해보면 결정적으로 원주시 행정의 문제점들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김 : 어떻게 보면 주민자치 관련해서 소모임이 활성화되는 것이 관건인 것 같은데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최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의료생협, 원주생협, 한살림, 민우회 회원들이, 이를테면, 어떤 아파트 101동에 많이 산다면, 101동에 사는 NGO 회원, 생협회원들이 한 달에 한번씩 정례모임을 만들고, 그 가운데 마을의 현안 문제들, 교류, 마을잔치도 해 나가고, 그 힘에서 그 마을모임에서 최대화될 수 있는 그런 장들을 열어보고 싶은 것이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모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 전체 협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얼마나 되나요? 그 중에서 적극적인 조합원이라고 할까, 그들의 수는 얼마나...

최 : 협의회에 소속된 협동조합들, 8개 조직인데, 회원이 거의 2만 명 정도 됩니다. 많은 편이죠. 물론 그 중에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어느 조직이 의식적으로 어느 정도 고양된 사람이 15%가 있으면 그 조직 전체의 문화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2만 명 중에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이 3000명 정도 되거든요. 나머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협동을 해서 하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김 : 원론적인 질문을 드리면, 원주라는 도시에서 주민자치가 가능합니까? 주민자치의 상을 어떻게 가지고 계세요? 소모임이 많이 활성화 되어서 가는 것이 힘이 될 것 같은데, 그 자체가 주민자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는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갖곤 하는데....

최 : 사상적 철학적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주에서는 생명운동이라고 하는데, 생명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자본중심의 사회에서 생명가치의 존중하는 것, 광범위하잖아요. 그런 영역에 기본적인 동의가 되는 사람들과 누구와도 같이 한다, 노동운동이나 빈민운동도 같이 할 수 있는 거죠. 지역복지운동, 농업살리기운동 등 생명운동이라고 하는 포괄적인 의미들의 비전들을 공유한다면, 분명히 다른 점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의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같다고 생각해요. 생명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유도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방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해야 할 실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환경적인, 생태적인 조직적인 실천의 방안들을 제시하고 실천하고 농민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어 농업문제를 고민하고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위해 노동조합과 교류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안전의 문제를 다뤄야 하고, 그래서 소모임들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활동가들만이 이런 것들을 만들 수가 없어요. 독거노인들이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간호사 한명 딸랑 가서 한번 들여다보고 혈압체크하고 오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목욕시켜주는 사람, 청소해주는 사람, 도시락 갖다 주는 사람 등 다양하게 협동해서 그 분들의 삶터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거든요. 이런 얘기들을 소모임들이 나눠줘야 합니다. 소모임을 조직하는 일과 프로그램은 또 다른 문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강좌나 교육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활동가들과 임원들이 다 공유해서 이런 것들이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하거든요.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실천프로그램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동우회가 되는 거죠. 그리고 철저히 풀뿌리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합의와 논의와 의사결정, 존중 등이 이런 것들을 이끌어나갈 때,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경험들을 축적해 나갈 때 지역정치에도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지역정치도 고려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최 : 저희가 이미 협의회 발족식 자료집에 앞으로 주민의 풀뿌리민주주의의 역량이 강화된다면 지역정치에 참여하겠다고 공식화했거든요. 세상에 비정치적인 것이 있습니까? 다 정치적 조직이죠. 회원들의 생계라든가, 삶의 비전과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지역에서 뭔가 해야 하고, 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리고 주변의 협동조합 활동가들과 그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저는 지역정치에 참여할 때, NGO 활동가들의 대표가 지역정치에 첫 번째로 나서는 것은 좀 아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서울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정치영역에서 일정정도 NGO가 해줘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역에서는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나서도록 성장시킬 것이냐, 단순히 어느 조직의 활동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사실은 풀뿌리 영역으로 내려가야 하잖아요. 정치가 별개 아닌 것이 되어야 하잖아요. 중요하지만요, 누구든 정직하고 원칙과 소신이 있으면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 유지나 학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거기까지 보고 가야 한다고 봐요. 소모임의 아줌마들이 하나의 책임자라는 생각으로 리더로 성장해 가고, 자신감을 가지면, 사실 수천명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거거든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지역정치에 진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경우 조금 더 정치적인 역량이 생겨야겠죠. 문제는 이러한 풀뿌리들이 정치적으로 진출해 있는 소통의 장에 의해서 지역 내에서 정말 추대될 수 있는 사람들, 인정받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사람들이 다 진보정당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주민노당에 제가 원하는 것은, 민노당 당원들이 풀뿌리모임에 들어와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 분들을 모아서 민노당 당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 성공한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당, 이런 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해요. 이 판이 몇 년 깔리면 민노당에서 나온 사람이 당연히 시장된다고 생각해요. 민노당은 늘 밑에서 지역의 민중들을 도와준다는 인식이 되면, 좀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성공한다고 봐요.

김 : 주민자치운동이 활성화되고 풀뿌리 세력이 성장해야 할텐데,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 진영도 가만히 보면, 그 갭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중앙형단체들과 지역단체들의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좋을지, 그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최 : 사실 그런 부분들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되는데요, 한국사회는 성격상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들은 쉽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일본사회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다만 현실적으로는 밑바닥에 인식들의 기반들이 없어서, 기반이 없다면 한 칼에 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제일 걱정되는 것은 NGO 단체가 정치에 다 진출했다가 어떤 문제가 생겨 한 칼에 날아가면, 그 공백이 크다고 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균형 있게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역할분담일 수도 있겠지만,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으로 상당부분 파고 내려갔다고 생각하고, NGO 단체들은 여기에 적극적인 결합을 하면서 정책이나 조금 더 위 단계의 고민들을 생각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김 : 끝으로, 협의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을텐데,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최 : 현재 지역화페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지역 안의 경제순환논리를 만들어내자고 해서 유류공동구매 사업을 통해서 직불카드를 만들려고 해요. 신협과 협의해서요. 지역금융기관을 살리자는 취지도 있고, 또 한 가지는 여기에 있는 협동조합이나 영세상인들이 운영하는 점포나 이런 것들을 직불카드로 연결해서 일반 기업의 카드 수수료를 없애고, 대신에 1%의 수수료를 지역복지기금으로 묶어서 지역복지운동을 하는데 쓰려고 합니다. 가을맞이 행사라든가 이런 것도 하고 있고요, 정책제시, 각종 행사들을 하려고 합니다.

김 :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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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모임 토박이'가 아름다운 이유"
- 열린사회북부시민회를 찾아

인터뷰 : 박운정(간사)
작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이하 북부시민회)는 열린사회시민연합의 9개 지부 중 하나이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은 98년 창립된 신생단체라고 볼 수 있지만, 창립 이후의 세월보다 이전 세월이 훨씬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소위 민통련이라고 불리는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85년 창립)과 서울국본이라 불리던 ‘민주쟁취국민운동서울시본부’(87년 창립)가 새로운 운동의 방향성을 꾀해오다, 98년 서로 합침으로써 ‘열린사회시민연합’을 탄생시켰다. 북부시민회의 역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벌써 10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기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었던 시기에 “독재타도, 민주주의 쟁취”가 그들의 모토였다면, 지금은 “주민참여, 주민자치”가 그들의 화두다. 당연히 구체적인 현장은 운동의 터전이다. 자원봉사사업, 시민교육사업, 주민자치사업으로 불리는 북부시민회의 3대 중점 사업을 보면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민자치사업’은 주민자치센터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주민자치센터가 지닌 한계에 대한 많은 지적들이 있긴 하지만, 동네를 가꾸고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조직의 존재가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의미로서 ‘주민자치센터의 활용론’은 의미가 있다. ‘자원봉사사업’에는 대표적으로 무료 집수리를 해주는 ‘해뜨는 집’이 있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가정 등 어려운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 방송의 러브하우스처럼 멋들어지게 만들지는 않지만, 토목, 건설 쪽 기술을 지닌 자원봉사자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집을 보수해준다. 물론 이 사업에는 기술직 자원봉사자들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몸으로,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시민교육사업’은 어린이 여성, 그리고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열린 학교’라는 이름의 방과후 교실이 대표적인데, 방임아동을 대상으로 학습지도, 생활지도를 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두 명의 교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모든 사업은 ‘사람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강제된 ‘사람의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주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변해야 하는 주체의 자발성이 가장 절실히 요구된다. 북부시민회의 주민 밀착형 사업의 저변에도 이런 주체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마도 이 모든 사업이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지만, 대표적인 주민 주체형 사업을 꼽으라면,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가 아닌가 싶다.

“삭막한 도시에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도시라는 지역에 공동체라는 것을 일궈내서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미아3동 놀이터에서 마을 잔치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저희가 생각한 이상을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상시적으로 이런 것들을 일궈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놀이터라는 곳이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지만 동네 안에 있고, 항상 개방되어 있고, 공공영역기도 했고요. 이런 특성을 잘 살리면 개인의 영역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놀이터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사업은 시작된다. 어둡고 음침한 놀이터를 주민들이 깨끗한 놀이터로 만들기 시작한 때가 2000년부터였지만, 그 계기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7년, 북부시민회는 마을축제를 통해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자 ‘우리 절기 살리기 운동’을 놀이터에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접근성이 용이해서 주민들의 호응은 높았다. 처음에 많은 주민들은 이 행사를 구청이 주관해서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최가 시민단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주변 엄마들이 손쉬운 일, 즉 부침개를 부치거나 허드렛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북부시민회는 이 축제를 계기로 도심 속의 놀이터가 새로운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았다. 그러나 일회성 마을축제는 한계가 명확했다. 축제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일상적인 문화활동이나 주민간 소통의 공간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주부들에게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를 제안하게 되고, 지금까지 봄, 여름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렇게 관계가 익숙해지면서, 엄마들도 이 행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난 2001년 3월에 엄마들이 중심이 된 ‘주민모임 토박이’가 만들어지게 되었죠. 물론 저희가 이 모임을 만드는데 기여한 바도 있지만, 엄마들 스스로 모여서 무엇인가 한다는 생각에 의욕이 대단했어요.......아무래도 놀이터의 특성상 아이들의 안전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엄마들이잖아요. 그래서 엄마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행사의 내용도 엄마들과 아이들 관련된 사업이 많아요. 이런 특성이 오히려 놀이터 문화 사업이 지속성과 내용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다섯 분 정도가 시작을 하셨는데, 이사하고 몇 분이 들쑥날쑥 하시면서 현재는 여섯 분 정도 활동을 하세요. 매월 2회 정도의 모임을 갖고, 1년에 마을잔치를 네 번 정도 하는데, 준비작업부터 평가까지 이 분들이 주도하셔서 합니다. 올해는 발행하지 않았지만, 작년까지 마을신문을 발행했었어요. 동네 행사나 놀이터 사업도 알리고, 놀이터 유래나 좋은 곳, 동네 유래, 칭찬하고 싶은 분 등 신문을 통해 알려나갔죠.”

정보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만, 지역에는 모델로 삼을만한 여러 주민자치 사례들이 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이런 사례들을 평가하는 지점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그런 사례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누가 주체가 되서 하느냐”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몇 몇 활동가나 전문가가 주도하는 사례는 많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서툴거나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사례라면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준비하고,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고, 또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 학교’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북부시민회의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 사례가 우리에게 생각할만한 시사점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북부시민회의 꾸준한 노력이 있긴 했지만, 주민 스스로 놀이터 문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만든 ‘토박이’는 이 사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공모한 ‘풀뿌리 상’에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주민들이 모이니까 산뜻한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 놀이터 안에 버려져 있던 방범초소를 철거 하고, 여기에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한 것도 주민들의 아이디어였다. ‘놀이터 사랑방’으로 불리는 이 곳은 그림책이나 놀이기구, 비상약을 구비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문화공간이다. ‘토박이’회원들은 돌아가면서 ‘놀이터 사랑방’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놀이터 사랑방’은 공간이 꽤 커요. 영화제나 먹거리 행사를 하면서 기금을 조금씩 마련했고, 저희 단체에서도 일부 부담해서 약 100만원 정도를 들여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했어요. '놀이터 사랑방‘에는 그림책이 한 400여 권 정도 있어요.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쓴 것을 직접 제 자리 갖다 놓기도 하고, 다른 친구를 위해 아껴 써야 하고, 아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었죠. 좋은 책을 통해 아이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부분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희 없이 그냥 문을 열어 놓는 건 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토박이’회원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 돌아가면서 ‘놀이터 사랑방’을 지키고 있다. 참여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천금같은 나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다고 누가 잘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참여는 지역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커다란 힘이다. 참여가 확대될 때, 버려진 놀이터가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변해간다.

“지금은 약간 정체인 것 같아요. 4년여 해오면서 ‘토박이’ 회원들도 직장을 구하거나 이사하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 일이 아주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 활동에 대해 갖는 피드백이 없는 것 같아요.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외부의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은 동료의식 같은 것도 생기면서 보기 좋다는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러나 본인이 활동하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이나 프로그램이 없다면, 단순히 교육 차원만으로는 그런 보람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박운정 간사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놀이터를 가꾸는 활동이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일상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엄마들에게 돌아올 피드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돌아서면 또 산적하게 일거리들이 보이는 것이 가사일이라면, 놀이터를 가꾸는 일도 가사일과 똑 같은 특성이 있다. ‘토박이’ 회원들의 소속감은 대단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생활과 결합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박 간사는 말한다. 이슈 파이팅과 같은 사업은 한번에 뜻을 모으기만 하면, 성과나 금방 나타자지만, 이런 일은 성과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물론 마을잔치가 진행되는 시간에 모든 주민들이 흥겹게 놀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지만, 이것을 어떻게 개인에게나 지역사회에게나 의미를 부여하며 지속화시킬지 고민이다.

“저희도 ‘토박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올해 들어서 고민되고 있는 부분은 사업 전반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엄마들의 눈높이와 저희의 눈높이가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 활동가 입장에서 사업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다보니까 욕심이 많은 생기잖아요. 마을잔치가 97년부터 한 7년 정도 되었고, ‘가고 싶은 놀이터 만들기’도 한 4년 됐는데, 회원이 많이 늘지 않은 부분이나 저희 힘으로 잘 안되는 부분 등에 대해 욕심을 많이 부렸던 것 같아요. 주민을 만나는 일들이 상당히 장기적인 안목을 요구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평가를 냉정히 해볼 생각입니다.”

‘토박이’로 대표되는 주민자치 모임들은 단순히 일을 중심으로 지속되지는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일은 통한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맺기’, 나아가 사람과 지역의 ‘변화’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고, 그런 것에서 오는 강박관념도 있었을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으면 좋으련만, 주민자치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북부시민회의 고민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해결의 실타래가 쉽게 보이지 않겠지만, 그 과정이 많은 지역에 공유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열린사회북부시민회의 홈페이지는 http://www.openb.or.kr/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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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民)과 관(官)이 만났을 때" -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를 찾아


인터뷰 : 한건희(사무국장)
작 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회의(UNCED)"는 국가의 환경정책 프로그램과 더불어, 지방정부 차원의 환경 프로그램의 실행을 권고하고 있다. 지역 차원이 지탱가능하지 않다면 국가는 물론이고 지구환경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지방의제21’를 통해 지역 차원의 행동계획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적 편차는 있지만, 벌써 10여 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흔히 ‘지방의제21’을 대표적인 민관협력사업으로 평하고 있다. ‘지방의제21’은 지역의 다양한 주체가 하나의 기구를 구성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의제를 설정∙실천한다는 내용을 주요 뼈대로 담고 있다. 이미 지방의제21을 구성한 대부분의 지역은 여러 영역의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 중에 있으며, 환류하여 보완, 수정하고 있는 지역도 많이 있다.
이번 지역운동사례는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에서 활동하는 한 실무자의 추천을 받아, 민관협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천의제(정확한 명칭은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이다. 이하 ‘부천의제’) 사무국을 찾았다. 최근 시민사회 내에 유행어가 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도 민관협력의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느냐 보다는, 그간의 민관협력 사업을 평가하면서 한국적 내용과 형식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부천의제의 민관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그 가능성을 찾아보자.

부천의 인구는 80만을 훌쩍 넘었다. 인구밀도가 우리나라 최고다. ‘부천국제환타스틱영화제’가 부천의 지명도를 높여주고 있지만, 아마도 시민사회에서는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도시’, 또는 ‘개혁적인 단체장이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부천의제는 99년에 준비모임을 갖고 이듬해에 정식 발족을 했다. 의제 선포식을 거쳐, 현재는 경제행정, 도시환경, 사회문화, 정책교육 등의 분과를 두고 있다. 각 분과에는 ‘작은 도서관 만들기’, ‘보행환경개선 및 자전거 활성화’, ‘아동인권조례제정’ 등의 구체적 사업을 실천하고 있는데, 한건희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의 성격은 네트워크의 개념이라고 한다.

“저희는 설정된 의제 중에서 몇 가지 사업을 선택해서 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학교 숲 만들기’, ‘자전거이용 활성화’, ‘작은 도서관 만들기’, ‘아동인권조례’ 등이 그것입니다. 이 네트워크에는 지역의 여러 단체와 자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이 곳에서 제안된 정책이나 사업을 부천시에 건의함으로써 제도화시키기도 합니다.”

부천의제의 특징이라면, 구체적인 사안을 지역사회와 네트워킹해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있다. 이를테면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은 2001년 봄부터 시작하여 각 동마다 하나씩 설치한다는 목표 하에 현재, 10여 개의 도서관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보행환경 및 자전거 활성화’ 관련 사업은 이미 작년 초에 ‘자전거 활성화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아동인권조례’ 제정도 내년을 목표로 간담회 개최, 선진지 방문 등의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렇게 각 네트워크 사업은 민관의 유기적 협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민이든 관이든 지방의제21을 의사결정의 채널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천의제의 민간협력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절대적인 측면에서는 불만족스러운 점도 있긴 하지만,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민관협력 시스템은 잘 돼 있다고 봅니다. 민간의 제도적인 참여나 행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민간 진영에서 주도적인 실천을 해왔기 때문인데, 이미 지방의제21을 구성하기 전부터 민간에서는 음식물 사료화 운동을 모범적으로 펼쳤고, 분리수거 같은 경우도 부천에서 처음 제안한 정책입니다. 종량제도 처음 실시했고, 다 아시다시피 담배자판기설치금지 조례의 경우도 부천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민간의 움직임이 행정부와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공무원들이 시민단체를 새롭게 보고 있고, 정책을 생산하는 과정에 시민단체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이 결국은 행정부를 움직였고, 현재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한건희 국장의 지적대로 민간과 행정은 지방의제21을 대화채널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대화는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구실을 한다. 시민단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예전과는 달리,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그래서 한건희 국장은 가능하면 민간과 공무원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 각종 워크숍이나 연수 프로그램 시 공무원들의 참여를 필수적이다. 의견을 교류하는 과정이 바로 서로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 부천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즉, 원혜영 시장의 개혁성은 이미 시민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있고, 그런 단체장의 마인드가 의제사업을 추진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한건희 국장에게 물었다. “만약 현재의 단체장과 마인드가 상당히 다른 분이 단체장으로 취임하면, 현재와 같은 민관협력시스템이 유지되겠는가?”

“.......말씀하신 대로 현재 시장이 계속해서 연임을 했기 때문에 그 동안은 민관파트너십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었을 경우, 부천의제의 민간파트너십이 장기적으로 갈 것이냐는 아직 미지수가 아닌가 싶습니다........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제사업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지속가능위원회’의 설치라든지 지방의제21에 대한 지원조례 등이 고민되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누가 되든, 사회적 흐름들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못할 거라 봅니다. 진행 정도가 차이는 있겠지만 되돌려가 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한건희 국장이 걱정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의 발목잡기다. 이미 지방의제21 사업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구비되었기 때문에 단체장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섰다고 본다. 그러나 34명으로 구성된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지방의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사업의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라도 지방의제21의 제도화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도화의 과정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집행부와 지방의원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천의제는 제도화의 전단계로 ‘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간혹 어떤 지역에서는 의제에서 결의한 환경계획이 행정부에서는 전혀 다른 계획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연형 하천을 조성하자는 의제의 결의와 무관하게 복개를 통해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행정부의 계획이 발표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행정부는 시민사회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지방의제가 설정한 계획대로 얼마나 집행되었느냐는 민간협력을 평가하는 좋은 지표가 된다. 부천의제의 경우는 의제사업과 관련된 각 과의 사업을 매년 평가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정책협의회’인데, 부천시의 국장급들, 그리고 분과 위원장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매년 분기별로 모임을 갖고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작년 말에 구성되어 벌써 두 차례 진행되었다. 이러한 채널은 서로가 의제를 이해하는데 기초가 된다. 지방의제21이 설정된 의제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로 평가된다면, 관련 집행부와의 긴밀한 평가와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한건희 국장은 이 ‘정책협의회’를 지속가능위원회의 전단계로 보고 있다. 물론 ‘정책협의회’가 민간에게 오픈된 협의기구는 아니다. 부천시와 의제와의 협의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협의회가 구성된 지역은 거의 없다. 시행착오 없이 ‘지속가능위원회’를 준비하는 것보다는 사전 협의의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채택되는 그런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합리적 토론의 경험들을 쌓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생태공원’이 무엇이냐를 놓고도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건희 국장도 관점의 차이가 민관협력의 가장 큰 저해요소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과 같은 경우, 이 사업을 위해 시립도서관과 운영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하고 협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문구 하나 하나의 이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협약서 하나를 작성하는 대도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민간 쪽에서는 공무원의 행정적 절차에 대해 잘 모르면 강하게 어필하는 경우도 있고, 공무원의 경우도 지금까지 가져왔던 권위적인 태도가 아직까지는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차이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년 해외 연수를 한 차례 갑니다. 여기에 민간 반, 공무원 반이 참여합니다. 그 곳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는데, 연수를 갔다 와서 사업에 반영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민관협력의 과정은 참 어렵다. 민관협력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부천의제만 하더라도 여전히 지속성에 대한 확신은 없다. 또한 현재의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는 시민사회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체장의 마인드는 하나의 변수일 뿐, 지역사회의 성숙도가 크게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사회의 활발한 활동과 건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천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등에서 보여주고 있는 민관협력(‘마을만들기’사업)사업이 어쩌면 이런 흐름을 뿌리내릴 수 있는 바로미터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다. 상층 구조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좀 더 아래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건희 국장이 설명한 아래와 같은 사례처럼 말이다.

“제가 일본에 가서 마을만들기를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공간 구성을 새로 하는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공원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도면을 갖다 놓고 시민들이 공원을 둘러보고, 시민들과 도면에 공원의 그림을 직접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가를 해보면서, 이건 너무 아니다 싶으면 바꿔보기도 하면서 작은 형태의 모형을 만들어 보더라구요. 그리고 그 모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이건 좀 그렇다, 이건 좀 아니다, 그러면 전문가들이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기본안을 만들더군요. 이런 과정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을 보면, 처음부터 딱 만들어 놓고 의견을 들으려 하는데, 그림을 보면 잘 만들어져 있거든요. 거기에 어떤 의견을 들을 수 있냐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공청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방의제21이 말하는 과정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거죠.”

그런 과정을 차근히 밟기를 기대해 본다.

※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의 홈페이지는 http://www.pc21.or.kr/home.htm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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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물결의 ‘학습공동체’운동" - 성남YMCA
인터뷰 : 박진옥(성남YMCA 간사)
작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최근 ‘학습공동체’라는 말이 YMCA를 중심으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학습공동체’가 하나의 뚜렷한 운동적 범주를 형성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학습을 통한 공동체 형성, 또는 공동체적 학습이라는 전반적인 흐름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학습공동체’가 구현되는 각 지역의 운영 형태는 일률적이지 않다. 지역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소개하려다 보니, ‘학습공동체’라는 용어를 채택했을 뿐이다. 더 쉽게 말한다면 ‘공부모임’의 성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학습공동체’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는 이러한 흐름을 ‘스터디 서클(Study Circles)'이라 부른다. 그러나 ’공부모임‘이라는 말에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학습‘에 초점이 맞추진 뉘앙스를 가져다준다. ’학습공동체‘가 가지는 문제의식과 지향성은 집단적 상호작용을 중시 여긴다. 학습이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언제나 쌍방향적이고 공동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문홍빈,2003). 즉, 학습을 통한 개인의 변화, 그리고 가족의 변화, 나아가 지역사회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지향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습공동체‘는 기존 성인교육이 가지고 있던 ’일방적인 가르침‘을 비판하면서, 학습하는 사람이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학습공동체’를 구현하는 지역에서는 ‘학습공동체’라는 말이 통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그러니까 필자가 방문했던 성남YMCA의 경우 ‘등대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어두운 해안가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등대의 이미지에 맞춰 ‘등대모임’은 ‘나’에서 ‘우리’로 관심을 옮겨 시야를 넓히고, 생활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각 지역마다 이런 ‘등대’들은 여럿 있다. 성남의 경우만 하더라도 ‘행복마을’과 ‘해뜨는 마을’에 각 5개, ‘참마을’에 4개, 그리고 ‘살림이스트’에 7개의 등대가 있다. 각 등대의 구성인원은 5-10여 명 정도이고, 전원 주부들이다. 이런 한분 한분의 주부들을 ‘촛불’이라고 부른다. ‘촛불’들이 모여 ‘등대’를 이루는 것이다. 개별 촛불은 위태롭고 꺼지기 쉽지만, 그들이 모여 거대한 등대를 이룬다면 강한 비바람에도 끄떡없다. 물론, ‘촛불 아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아빠들의 모임’이라는 등대모임이 있긴 하지만 직장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아무래도 참여가 폭이 주부에 비해 넓지 않은 편이다.

“성남YMCA 등대모임은 99년 ‘어머니 독서모임’에서 출발했습니다. 소소하게 책을 매개로 활동을 하다, 등대모임으로 전환하였는데, 서로 배움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기존 교육프로그램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주 1회 2시간씩 촛불들의 집이나 YMCA에서 모임을 갖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과 독서, 인간관계,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활동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박진옥 간사의 설명에 따르면, 등대모임은 대체적으로 1, 2부의 활동으로 나뉘는데, 1부는 촛불간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 2부는 다양한 활동을 나누는 시간이다. 1부가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라면, 2부는 구체적인 활동의 영역이다. 또한 1부 ‘마음나눔’ 시간에는 생활의 규칙을 약속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나.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 매월 1회 이상의 책을 읽으며 단순, 소박한 생태적 삶의 양식을 가꾼다.
하나. 가정의 작은 것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며 용서와 화해를 내가 먼저 실천한다.
하나. 생명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전인적 공동체 회복을 위해 힘쓴다.

어찌 보면 생활규칙이 추상적인 구호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구성원들의 정체성은 그 사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인이다. 개별 구성원들의 가치 있는 삶의 변화 없이는 그 사회도 정체(停滯)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촛불간의 마음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히 자신을 성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변화의 주체로 설 수 있다. 이런 개인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성남YMCA에 있는 20여 개의 ‘등대모임’ 중에는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도 한다. 최근 백궁역 난개발에 대한 시민운동, 지방선거와 같은 정치활동에서 개별적인 등대모임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개별 등대모임은 자체적인 활동으로 촛불들을 모으기도 하지만, ‘주부아카데미’를 통해 촛불들을 양성하기도 합니다. ‘주부아카데미’는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8번을 실시했고, 보통 4-50명이 참여합니다. 이 중 약 10여 명이 등대모임에 참여합니다.”

‘주부아카데미’는 등대모임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 등대모임과 별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주부아카데미’를 수료한 상당수 주부들이 등대모임에 결합하기도 한다. 적게는 10강좌에서 많게는 15강좌를 소화하는데, 최근 개최한 ‘주부아카데미’ 8기의 프로그램을 보자.

내 안의 나를 찾아서
1강 : 개강식/자기실현을 위한 체험학습
2강 : 그림으로 읽는 내 아이의 과제
3강 : 나는 들꽃과 이야기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4강 : 도시 속에서의 생태적인 삶
5강 : 새만금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6강 : 우리 아이 자연건강법으로 키우기
삶과 문화의 전환
7강 : 밥상머리 혁명
8강 : 친환경 먹거리를 찾아서
9강 : 더불어 꾸리는 공동체
10강 ; 수료식/YMCA와 생명 공동체

프로그램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부아카데미’ 강좌의 특성은 일상적인 삶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 있다. 나와 가족의 생태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새로운 문화, 변화하는 삶, 그리고 만남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박진옥 간사를 덧붙인다. ‘주부아카데미’ 외에 ‘등대지기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YMCA에서 운영하는 ‘아기 스포츠단’ 학부모들을 주 대상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등대활동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등대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서부터 등대일지를 작성하는 일, 각 촛불의 역할 등의 기본 원칙을 익히고 나아가 다양한 활동과 토론을 통해 서로 배우고, 나누고, 성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수행한다.

‘등대모임’에 참여하는 촛불들을 못 만난 것이 아쉽지만, 등대 활동 안내서에 적힌 몇 몇 촛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대 반 부담 반으로 시작된 활동은 주부들의 모임이다 보니 처음 걱정했던 것처럼 빡빡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런 여유가 오히려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것 같기도 하다. 읽을 책을 함께 정하고 읽으며 느낌 나누기를 통해 서로가 하나 되는 일체감도 느끼고 아이들 키우는 어려움과 기쁨을 서로 나누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 때문에 제쳐놓았던 영화 관람도 하고 작은 봉사활동이지만 아제 자리가 바뀌어 결혼 전 사회복지사로 복지관에 근무했었다. 주부로서 자원봉사자로서 복지관에서 하는 활동이 또 다른 기쁨을 주기도 했다.......”(성남 ‘푸름이등대’에서 활동하는 이건숙씨의 글 중)

“......우리 등대의 이름은 ‘장미’입니다. 장미의 이름으로 작년부터 불 밝힌 우리 등대에는 이미 많은 촛불님들이 지키고 계셨고 그분들은 장미 같은 향기로 새 식구들을 감싸주었습니다. 바라기보다는 줄 것이 없어 안달난 사람들 모양, 그녀들의 적극적인 모습이 과잉행동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등대모임 때 둘러앉아 손에 손잡고 묵상하기, 여는 노래 닫는 노래 함께 부르기 등 닭살 돋을 것 같은 의식의 절차가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여 질 때 나는 그들의 진실함에 빠져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성남 ‘장미등대’에서 활동하는 오연희 씨의 글 중)

‘등대모임’ 활동이 촛불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진솔한 글이다. 목마른 자에게 아무리 퍼주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생수와 같은 사랑의 ‘하나됨’운동이 바로 Y등대운동, 겨자씨 운동(안내서의 글 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듯, 등대운동은 삶의 변화를 이끄는 ‘싹 틔우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냄비처럼 끓어오르는 운동이 아니라 잔잔한 파장을 일으켜 큰 물결을 만드는 긴 호흡의 운동이다. 물론 이런 흐름을 지역사회에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가 운동적 과제로 남아 있긴 하지만, 조급한 접근을 스스로 배제하고 있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실천하면서 구체적인 개인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느리게 질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 성남YMCA 홈페이지는 http://www.snymca.or.kr/ 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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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교육 - "좋은 동네 시민대학"" - 광주YMCA
인터뷰 : 안평환(시민운동팀장)/정의춘(시민운동팀)
작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원론적인 의미에서 ‘풀뿌리 자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정당성은 우리 시대 최대의 화두는 아닐지언정, 지방자치, 나아가 생활 속에서의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당연하게 치부되는 운동론이다. 맨땅을 기면서 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시도만큼 중앙의 빈틈을 파고드는 운동도 중요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제도권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건, 국부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제외하고 ‘풀뿌리 자치’와 상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볼 때, 접근 방식이 상이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시민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보더라도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광주YMCA에서 운영하는 ‘좋은 동네 시민대학’의 경우가 맨 땅을 기면서 주민과 밀착한 교육프로그램의 성격을 띠고 있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구체적인 동네의 생활인들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풀뿌리 자치’는 요원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좋은 동네 시민대학’을 찾아 나섰다.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그대로 옮기면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우리 동네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실제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의 학습 과정이 이런 물음으로 진행된다. 참, 여기서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고 ‘학습’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실무를 맡았던 안평환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은 대규모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규모 단위로 한 20여 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동네를 위해 20명 단위로 사람이 모이는 것도 기적 아닙니까? 그리고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쌍방향 교육을 해보자, 그래서 저희는 ‘교육’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교육’이라는 낱말이 ‘일방성’을 내포하고 있고, ‘학습’이라는 낱말은 ‘쌍방향’을 나타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은 쌍방향 수업, 토론식 수업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거죠.”

학습 과정의 내용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보통 2주 동안 6개의 강좌가 진행된다. 1, 2강좌는 좋은 동네 만들기에 대한 이해와 외국의 사례 및 선진지 견학, 3, 4강의 경우 우리 동네 문제 파악하기 및 동네 디자인하기, 그리고 너머지 5, 6강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실현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그러니까 학습의 내용이 전혀 추상적일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살고 있는 구체적 동네를 대상으로 한다는데 있다. 또, 안 팀장의 설명대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은 토론하고 합의하는 쌍방향 형식을 취한다. 이를 테면, 3강에서 진행되는 “다함께 돌자 동네 한바퀴”라는 프로그램은 학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실을 돌아보면서 마을의 대표적인 지형지물, 살고 있는 사람들, 각종 기관, 마을의 분위기, 역사 등을 조사함으로써 마을 구석구석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의 생각들을 교류하게 되고 우리 동네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찾아나간다. 자연스럽게 학습은 쌍방향 토론으로 이어진다.

쌍방향 수업 방식이 모두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지적 사유를 음미할 수 있도록 지식을 전달해주는 수업 방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수업 방식은 동네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즉,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파악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아 가는 과정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 함께 이루어지는 공동의 작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쌍방향 수업은 이런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쌍방향 수업 방식은 마을의 변화를 이끄는 지도자, 즉 ‘변화추진자’를 발굴하는데 유용한 방식이다.

“저희가 어떤 지역에서 ‘마을만들기’운동을 벌이려고 해도 그 바탕이 미천했기 때문에 시민교육을 통해 그런 바탕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풀뿌리 자치’가 주민들의 마음에 와 닿으면, 이를 토대로 ‘마을만들기’ 등의 자치운동을 펼쳐 나가려고 시작했는데, 이를 진행하려면 마을의 리더가 있어야겠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죠. 마을의 리더, 즉 ‘변화추진자’가 필요했던 겁니다. 교육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변화추진자’가 될 수는 없지만, 단 한 분이라도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교육을 시작한 것은 작년이지만, 그 역사는 1999년으로 올라간다.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스터디 그룹이 만들어졌고, 이 모임에서 공동체의 상을 마련할 수 있었다. 2년 정도 공부를 하면서 “좋은 동네 만들기, 왜 공동체인가”라는 단행본을 출판,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2천부 정도를 판매,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함) 이론의 무장을 갖춘 후, 자연스럽게 눈을 돌린 곳은 구체적 현장이었다. 공동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현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좋은 동네를 만들자는 당위에는 공감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현장은 냉엄했다. 현장 경험의 부재가 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큰 원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주민자치센터’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고, 주민자치위원을 대상으로 적게는 7-80명, 많게는 120여 명에게 교육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주민자치센터의 이해와 역할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었지만, 실제로 지역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싹을 틔우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광주YMCA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결국 마을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면,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지도자를 발굴하는 일, 즉 ‘변화추진자’의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 아무리 좋은 내용이더라도 동네 단위에서 그런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변화추진자’가 없이는 일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발굴할 것인가로 귀착한 것이죠. 그래서 주민교육이라는 형태로 시도하였는데, 여기에도 많은 의문점이 들더군요. 교육이 일반 시민들에게 어려운 것이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성의 물꼬를 틀까? 해서 아이디어를 모은 것이 주민들을 오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찾아 가자, 즉 ‘찾아가는 교육’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외국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죠. 소위 지역 단위부터 풀뿌리민주주의를 시도하려 하는데, 결국 그 일을 할 사람들의 발굴이 중요했던 거고, 이런 사람들을 발굴하기 위해 이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조금한 동네에서 ‘변화추진자’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자치정책센터에서 실시한 ‘시민자치학교’의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수강생은 흔치 않을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지속적 참여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좋은 대학 시민대학”은 대량으로 ‘변화추진자’들을 발굴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 단 한 명이라도 ‘변화추진자’의 가능성이 있다면 언제라도 발 벗고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좋은 동네를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역사가 짧아 두드러진 활동은 없지만, 지금까지 학습이 진행된 동네는 꾸준히 모임을 갖고 있고, 지산동 같은 경우는 그 곳에 유원지가 있는데, 유원지를 활성화시키면서 동네까지 잘 살게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 곳에 벚꽃이 많기 때문에 벚꽃 축제를 어떻게 진행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교육은 학습의 지속성을 위해 ‘전문가 파견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강의가 끝나면 강의를 맡아주셨던 분들에게 ”명예주민“으로 위촉하게 되고, 주민들이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강의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의욕적이고 자발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을 실시하기 전에 주민과의 사전 간담회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는 주민뿐 아니라 동장, 주민자치위원장 및 부위원장, 담당 공무원 등이 참여하며, 마을의 실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다음에 전문가들은 마을을 둘러본다.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다. 책상에 앉아 연구한 내용만으로 구체적 현장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 과정은 형식적인 강좌를 방지한다. 학습하는 사람과 학습을 도와주는 사람, 그리고 실무자의 정확한 현장 인식은 학습의 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실무자들은 이런 교육 방식을 “현장 중심의 강좌”라고 표현한다.

“옛날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자치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자치’라는 것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자치의 실현’이 최대 화두입니다. 저희의 목표는 이 대학을 꾸준히 개최하고 지금은 일반과정뿐이지만, 전문가 과정, 고급과정 등을 거치도록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추진자들을 한 천명 정도 양성을 해서 광주를 지역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 분들이 일반과정을 통해서 여러 가지 겪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제시하려고 합니다.”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 꿈꾸는 것은 각 동네에 ‘변화추진자’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당산나무 아래 주민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마을의 여러 사안을 공론화 하며 제2의 고향으로 삼았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마을, 고향공동체가 형성된 마을, 궁극적으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천 명 정도의 ‘변화추진자’, 그리고 그들에 의한 지역공동체 형성. 어쩌면 벅찬 과제일 수 있다. 한 세대 안에 실현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좋은 동네 시민대학’은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올 상반기에 벌써 두 군데, 하반기에는 5-6군데가 예정되어 있다. 광주가 전체 87개 동 임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모든 동네에 발자취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부터는 학습 경험자들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의욕만으로 지역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겠지만,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민주화의 성지, 빛고을 광주는 여전히 민주주의 열망에 목말라 있다. 광주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진행형이다.

※ 홈페이지 : www.jymca.or.kr
문의 : 안평환(an-peace@hanmail.net)/정의춘(j8559@yahoo.co.kr)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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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지킴이‘ 에서 ’마을만들기‘까지" - 인천평화의료생협

인터뷰 : 송영석(기획실장)
작 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영국의 과학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했던 제임스 버크는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라는 책을 통해 의사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환자의 계급적 관계를 역사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삶이 점점 더 의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수록 질병에서부터 감염, 생활조건, 정상에서의 일탈, 직업에 필요한 자격조건, 범죄에 이르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의학적 측면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인식이 심화되면서, 의학적 문제들은 의사들만이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이 되었고, 따라서 의사는 국가의 권위를 더욱더 대표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20세기 들어 환자의 몸은 점점 비인격적인 치료의 대상이 되었다. 환자는 이제 수동적인 존재로 떨어졌으며, 신체는 수와 통계 분석의 대상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더욱이 의학은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로 다가가면서 환자의 요구에 따라 치료를 하던 관행도 사라졌으며,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유기체를 규명해 내기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행해지면서 그에 따라 환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아무런 개인적인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어쩌면 이런 역사적 맥락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지 모른다. 의사들의 처방에 따라 환자들은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의약분업의 광풍을 보면서, ‘의사들만의 리그’에 환자들은 ‘들러리’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상식의 차원에서, 몸이 성하지 않는 사람을 돌봐주고 치료해주는 분야가 의학이라고 한다면 그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의학은 의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위해 존재해야 마땅하다. 이런 상식의 차원에서 보건의료를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개인의 건강을 넘어 건강한 지역사회를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의료생협은 건강한 삶을 위하여 지역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생활과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만든 주민자치 조직체입니다......조합원과 의료전문가가 힘을 합하여 자신 및 가족, 지역사회의 겅간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보건예방활동을 추진하는 주민의 자율적 협동조직체입니다.”

위는 ‘인천평화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인천의료생협’)에서 만든 홍보물의 일부이다. 명확하게 의료생협이 주민자치를 위한 조직체임을 밝히고 있다. 작년 초, 시민자치정책센터 월례포럼에서 의료생협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주민자치운동의 영역에서도 보건의료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터였다. 그 후 의료생협의 수가 늘어 서울, 원주, 대전 등에서 꽃을 피움으로써 준비하는 지역을 포함, 아홉 군데에 달하고 있다.

‘인천의료생협’은 1989년 만들어진 기독청년의료인회로부터 출발한다. ‘평화의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인천, 부평 지역에서 각종 산업 재해 및 직업병 상담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건강문제가 산업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는 활동을 주로 해오다, 1996년 11월, 현재의 ‘인천의료생협’으로 태어나게 된다. 현재 조합원 수는 1,000여 명 정도이다. 양방의 2명, 한방의 1명을 포함 전체 직원이 15명이다. 연 매출액이 5억 원 정도라고 하니, 운동단체로 판단하면 재정은 꽤 넉넉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송영석 기획실장도 의료생협운동을 자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의료생협이라는 것이 의료진들이 만든 의료운동이 아니고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소비자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직접 그 분들이 출자를 하고 만든 과정에 참여를 하고 만들어진 후 운영에 참여를 하고, 스스로 자신이 만든 것을 운영을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그 분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열어놔야 한다고 봅니다. 원래는 일본 같은 경우는 반 모임이라고 해서 지역 세포 모임이 있구요, 그 모임을 통해 대의원 구조도 갖고 있고, 지부구조도 갖고 있어서 의견들을 수렴하고 의견을 조합 사업에 전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이라는 것은 건강을 주제로 몇 분이 모여 지역에서 같은 분들이 일정한 활동을 하는 모임이죠. 이를테면 반상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의 경우는 반 모임이 잘 안되더군요. 시간적으로나 생활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좋은 의료상품을 선택하거나 또는 직접 참여함으로써 소비자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운동이 의료생협이다. 소비자들의 참여가 없으면 존재 근거도 없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인천의료생협’에는 여러 소모임이 있다. 우선,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무지개 모임’이 있다. 보통 지역 내의 자원봉사자들의 흐름은 자원봉사센터라는 것을 매개로 사람을 모아서 필요한 곳에 배치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무지개 모임’은 지역 내의 어려운 분들을 스스로 발굴하고 돕는, 지역의 자족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단위에서 스스로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고, 보건의료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라도 지역봉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희망엄마 모임’은 이름에서 풍기듯이, 아이들의 교육문제, 건강문제를 중심으로 서로 교류하는 모임이다. ‘체조교실’은 소모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모임인데, 주로 어르신들이 중심이 되어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나아가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6, 7년간 진행되면서 가장 탄탄한 모임으로 성장했다. 그밖에 ‘요가모임’, ‘발마사지 모임’, ‘일본어 모임’ 등의 작은 모임들이 활동 중이다.

아무래도 조합원이 중심이 된 각종 소모임 활동이 주가 되지만,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도 관심의 대상이다. 올해 4회 째를 맞고 있는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가 바로 그것인데, 조합원을 비롯한 주민들이 공동으로 지역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의료생협이 지역에 천착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만남의 장이 있어야 됩니다. 기존의 마을 축제라는 것이 관 주도의 행사였고, 이런 부분을 바꿔 보자는 차원에서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라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래서 ‘새마을 부녀회’를 포함해 흔히 관 조직, 또는 자생단체라고 불리는 여러 단체들과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처음 하는 행사라서 잡음이 많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역에서의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그 동네의 갈등이 심하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희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파에 상관없이 모아서,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고, 각 단체마다 일정하게 역할을 나눠서 했습니다. 찬조금으로 모아진 돈을 전액 불우이웃 돕기에 다 썼고, 밥값도 각자 해결하고, 뒤풀이도 없앴습니다. 처음에는 섭섭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돈과 관련된 문제가 깔끔히 해결되니까 이 행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도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3회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진행되던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프로그램이 작년, 4회 째를 맞으면서 약간 주춤하게 된다.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가 어느 정도 지역사회에 알려지자 부평구에서 부개동으로 “한마음 축제”라는 명목으로 예산을 지원하게 되었다. 인천의료생협은 고민 끝에, 어차피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프로그램이 인천의료생협만의 성과가 아니라 주민들이 가져가야 할 성과라면,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한마음 축제”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기존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풍경과 다를 바 없이 내용 없는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예산만 잔뜩 쏟아 부었을 뿐, 주민자치라는 관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한마음 축제”를 접고,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행사를 조합원 중심으로 다시 준비할 계획이다.

“”한마음 축제“는 일반적으로 하는 마을 축제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측면이 있었죠. 참여는 안 되고 동원만 되는 그런 상황이었죠. 기왕 진행되어 왔던 것들이 잘 이어져야 한다는 측면도 있고, 일신동과 부개동이 붙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엮어서 모범적인 축제의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 가을 정도에 마을만들기 행사를 다시 할 예정입니다.”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행사는 예산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YMCA’나 ‘녹색소비자연대’ 등의 지역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참여하는 단체들에게 일정한 역할을 나눔으로써 공동경비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인천의료생협에서 부담하는 예산은 한 60만원 정도라고 하니, 주민들의 참여가 전체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송실장의 설명이다. 행사는 단 하루가 진행된다. 지역의 여건 상 여러 날을 하기엔 무리가 있는 듯 하다. 초등학교 급식후원회에서 담당하는 바자회, 인천의료생협에서 하는 장애우 체험, 부녀회 중심의 아나바다, 지역의 태권도 학원에서 주관하는 태권도 시범, 그 외 줄다리기, 대동놀이, 풍물 등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큼 시끌벅적 하진 않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를 해본다는 경험 자체가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의료생협의 입장을 본다면, 의료생협이 마을을 위해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주민들로부터 정서적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 측면이 있구요, 마을 축제가 함께 힘을 모아 조금씩 나누면 재미있는 마을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나바다의 경우처럼 마음만 먹으면 작은 일이라도 실제로 참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넓혔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소소한 행사지만 지역을 위해 작은 봉사라도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안성 의료생협 처음 생길 때, 주민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고충을 생각하면 인천의료생협은 많이 나은 편이다. 평화의료원에서부터 주민들을 만났으니,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주민들은 없었다. 그저 좋은 일 많이 하는 병원 정도의 인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바라보면서 의사들이 모든 일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에 의해 움직이는 병원이라는 인식을 넓히게 되고, 지금은 조합원으로 참여함으로써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화를 가져왔다고 송실장은 설명한다.

실제도 인천의료생협은 최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합 운영에 있어 이사회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지역이사가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지역이사란 지역에서 나름대로 비중을 갖고 활동하시는 분들, 오래 사신 분 등 신뢰를 갖고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지역이사의 비율을 더 높일 예정이다. 경영이나 이용에 관련된 위원회, 교육이나 홍보를 위한 위원회, 그리고 보건예방 관련된 활동을 하는 위원회 등 3개의 위원회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각 월 1회의 회의를 가진다. 이사회도 이와 비슷한 간격으로 회의를 가진다.

인천의료생협의 궁극적인 활동의 목적은 민주적 보건의료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참여’와 ‘협력’을 통한 마을만들기에 있다. 그것이 생태마을이 될 수도 있고, 자치마을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지역의 특성이 잘 반영된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그런 과정에 인천의료생협은 노인과 아동의 건강, 나아가 건강한 지역사회를 위해 일정하게 기여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소모임,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와 같은 공동체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려운 측면도 많이 있습니다.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고민이 마을에서 누가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이 주부잖아요. 경제활동을 공간 내에서 같이 하는 농촌이라면 남성들도 같이 하지만, 도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부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의 참여가 관건이라고 보는데, 상대적으로 주부들의 참여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죠. 계속 참여의 동기를 주지 않으면 참여하기가 어려운 부류죠. 그러다보니까 노인 참여를 관심 있게 봅니다. 시간도 많고 참여율도 높고 적극적으로 활동하지죠. 아무튼 조합원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긴 한데, 상대적으로 참여율이 저조한 편입니다. 아무튼, 주부, 노인, 그리고 젊은 층의 참여를 이끌어내려 합니다.”

인천의료생협은 경험을 통해 지역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들을 잘 알고 있었다. 주부들과 노인, 그리고 젊은이들. 보건의료를 매개로 이들과 함께 주민자치의 실현, 바로 인천의료생협이 추구하는 운동의 방향이다.

※ 인천의료생협 홈페이지는 http://medcoop.x-y.net/inchon/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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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매력이 넘친다!" - 수리산자연학교

인터뷰 : 이금순(수리산 자연학교 팀장)
작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국토의 70%가 삼림으로 우거진 우리나라에서 470m 정도 규모의 아담한 산자락은 수없이 널려 있다. 발에 밟히고 눈에 걸리는 것이 삼림이지만, 도시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언제나 목마름의 대상이다. 그래서 웅장한 위엄이 아니라도 도심 한 곁에 자리한 건강한 삼림은 도시민들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군포 수리산은 시민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단지 지리학적으로 안양과 안산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을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도심 속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용량이 넘치면서 수리산이 깊게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민들의 산행은 계속된다.

군포환경자치시민회 내 ‘수리산 자연학교’가 수리산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수리산 자연학교’는 그냥 산이 좋아 생태전문가를 따라 자연의 오묘함을 귀동냥하면서 자연을 닮아 가는 주부들의 모임이다. 매월 ‘자연생태기행’을 떠나고 있고 봄, 가을에 ‘토요생태교실’을 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주부생태지도자교육’을 통해 배출된 지도자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분야별(새, 문화, 곤충, 들꽃 등) 생태교육 교사로 활약하고 있다. 지역 학부형들의 요청에 의해 맞춤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직교사생태지도자교육을 실시하여 제도권 교육에서 살아있는 환경교육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방학을 이용해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환경학교’도 개최한다. 사실, 여건에 비해 생태교육을 많이 실시하는 ‘수리산 자연학교’는 하루아침에 내공을 쌓은 것은 아니다.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주부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이 터득한 삶의 체험을 지역 주민들과 나눔으로써 자연에 한 발 더 다가서려는 노력이 있었다. 지금은 준회원의 자격을 주고 있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전체 회원이 400여명에 이른다.

“잘 아시다시피 90년대 중반에 소각장 문제가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주부가 이런 부분을 잘 알 리가 없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소각장 주변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교육이 있었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교육을 받고서 든 생각은 ‘아, 별거 아니구나. 나도 배우면 잘 알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시골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연생태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이왕 시작한 거, 더 넓고 깊게 접근해 보자는 생각에 3개월 간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간 수료하고 나니, 오히려 앞이 더 깜깜한 거예요. 자연생태를 만만하게 느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너무 어려웠고,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지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관심 있는 주부들과 함께 지속적인 공부를 시작했던 거고, 지금에 이른 것 같아요.”

‘산본’이라는 신도시가 건설되고 입주가 시작되자마자,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커다란 짐이 주민들에게 떨이지고 말았다. 이금순 팀장의 표현대로라면 “낮과 밤이 편한 날이 없던” 시절이었다. 낯선 주제를 따라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덜커덕 손에 잡힌 주제가 바로 자연생태였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줄 않았던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었다. 나무와 더불어 꽃도 피었고, 곤충도 살아가고 있었다. 숲이 없다면 새들의 생존도 불가능할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문화가 그 속에 있었다. 수리산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조개를 위해, 망둥어를 위해 세 발짝 걷고 한 번 절하는 저 삼보일배 팀처럼 말이다. 하나하나 감각의 지평이 넓혀지는 순간, 숲은 새롭게 다가왔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연생태를 이해하는 재미가 솔솔 생겼지만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여기에 와 있다.

처음 시작은 7명으로 시작했다. 그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이금순 팀장뿐이지만, 그 당시는 매우 즐거운 나날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매력은 컸던 모양이다. 네모난 교실에서 숲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느낄 수 있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교육이 생활의 터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즉각적인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교육현장이 진짜 참교육이었다. 대안에너지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치자. 화력발전의 문제는 무엇이고 핵발전의 정치적 배경이 어떠한데...하는 식의 교육보다, 바람에 의해 돌아가는 풍력발전 바로 옆에서 바람이 가져다주는 에너지의 힘을 직접 목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만금 간척 사업의 무리수를 백번 떠드는 것 보다 시화호를 목격하는 것이 백번 좋은 교육이다. 수리산 자연학교가 그렇다. 수리산이 왜 군포시민에게 중요한가를 문자 텍스트롤 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리산 속 여행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느낄 수 있다.

“초등학교에는 “책가방 없는 날”이 있습니다. 지금은 각 학교 재량에 맡기는데, 누군가 “책가방 없는 날”을 활용해 초등학생에게 생태교육을 시키자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한다면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지금까지 70여 학교를 했습니다. 말이 70여 학교지, 한 반에 11개 반까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쩔 땐 3일을 한 적도 있어요.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만난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미래의 주인이 될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행히도 수리산 자연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곤충을 발견하면 무조건 발로 밟았던 아이, 징그러워 바라보지도 못했던 아이, 산이 흔들릴 정도로 악을 썼던 아이, 이런 아이들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릴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숲은 아이들에게는 마냥 신기한 세상이었고 훌륭한 교육의 장이었다. ‘토요생태기행’을 진행한 것도 이러한 호응 때문이었다. 곤충, 들꽃, 새, 문화 등 다양한 접근은 통해 자연생태에 대한 아이들의 관점도 변화시켜 나갔다.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직접 “신나는 자연관찰”이라는 자료집을 내기까지 했다. 교사들도 교육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군포 뿐 아니라 안양, 의왕 지역 초등학교에서 수업신청이 쇄도하자, 현직 교사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98년 11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5년째로 접어들었다. 올해는 ‘물고기 교실’과 ‘자연과 글쓰기’, ‘자연과 그림그리기’ 등의 프로그램이 더 붙여질 것 같다.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는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자연을 보고 느낀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관찰력을 높여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영화 ‘로빙화’의 주인공 ‘아명’처럼, 틀에 박힌 글이나 그림이 아니라 자연을 느낀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수리산 자연학교가 진행하는 사업은 너무 많다. 96년부터 시작해 월 1회, 계절에 주제를 맞춰 진행하는 [월례기행], 96년 시작해 5기까지 배출한 [생태지도자교육], 봄과 가을에 진행되는 [토요생태기행], 98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61회 이상 교육을 나간 [책가방 없는 날](재량활동), 각종 단체나 모임의 요구가 있을 때 실시하는 [비정규 교육],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사연수], 군포시와 함께 진행하며 총 44기를 배추한 [시청 환경학교],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1년 진행하는 [시범교실], 그 외 [맞춤교실]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곤충교실], [문화교실], [새교실], [들꽃교실], [자연과 글쓰기] 등의 사업을 포함하면 올 한 해도 빠듯하다. 위에 열거한 프로그램에 한 달 평균 200여 명이 참여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수리산 자연학교’의 일순위 사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생태지도자교육]이 우선입니다. 애초 우리 모임이 시작된 배경도 지역에서 생태교육을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일이었거든요. 특히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은 주부들을 모집해서 최소한 1년을 수료한 다음 현장에 나가서 교육할 수 있도록 진행됩니다. 그러나 막상 교육을 받고 생태지도를 하자고 하면, 겁을 먹는 분들이 많아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경험한 바로는 3년 이상은 교육을 받아야 제대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주부들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계도 있지만, 지금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스스로가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생태교육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다. 90년대 중반 이후,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시민교육의 중요한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수리산 자연학교’가 고민했던 지점도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생태교육을 주도할 지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 쉬운 길은 아니지만, 본인 스스로가 즐겁다면 자연히 남을 교육시킬 수 있는 능력도 배양될 것이라 믿었다. 군포의 지도자 교육은 일종의 모범이었다. 분당을 필두로 여러 지역에서 지도자교육을 모방하고 있다.

군포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으레 ‘포근하게 숲이 감싼 도시’라고 표현한다. 한 눈에 보더라도 군포는 숲으로 빙 둘려 있다. 그 한 가운데에 수리산이 자리하고 있다. 숲은 구호만으로 보호되지는 않는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하다. 숲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줍는 일도 중요하고 불도저로 산을 깎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저 숲이 내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생태적 감수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숲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현장 교육이 중요할지 모른다. [수리산 자연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수리산을 지키기 위한 보호막 구실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느리지만 숲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요. 적은 양이지만 이슬비 맞으면 옷이 젖잖아요. 보이지 않는 생태교육 속에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만큼 큰 것이 없거든요. 그것이 운동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런 부분을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운동에 있어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개개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장 수리산을 둘러보세요. 수리산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 생태학교를 진행할 때에는 자랑할만한 숲이었었죠. 지금은 한 해가 다르게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돌릴 재간이 없어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자연이 파괴되지 않으면서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면 되지 않을까?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보편적인 개발이란 어디까지일까? 필자도 그 답을 얻고 싶다.

※ “군포환경자치시민회” 홈페이지는 http://www.ecofamily.net/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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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활사업은 “사회와 관계 맺기” " - 노원자활후견기관
인터뷰 : 여광천 실장/이경주 팀장
작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자활운동, 즉 생산공동체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논하고 넘어가자. 생산공동체운동은 지향하는 이념, 사회적 배경, 역사성 등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공동 노동하며, 함께 경영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공동체운동의 역사는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불씨를 지폈던 때는 90년대 이후이다. 주로는 빈민운동진영에서 시작하여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불합리한 하청구조의 극복, 빈민들의 조직 등이 중심 목적이었다. 잘 알려진 하월곡동의 ‘건축일꾼 두레’, 상계동의 봉제협동조합 ‘실과 바늘’, 인천 송림동의 전자제품조립 공동체 ‘협성’ 등이 바로 90년대 들어오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민정부 시절인 지난 96년, 전국에 5개의 ‘자활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것으로 처음 제도화 과정을 겪게 되지만, 워낙에 취약한 시장경쟁력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활로 모색이 필요한 시기가 된다. 그러던 중, 1997년, IMF라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량실업상황이 초래되자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근로 위탁사업이 실시되고 이 과정에서 전국에 많은 실업관련 단체들이 자활생산공동체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정부’는 2000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국기법)’을 제정함으로써 노동능력이 있는 수급권자들에게 생계비를 지급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자활지원정책을 제도화시켰다. (주1)

현재 국기법에 의해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후견기관은 180여 개를 넘고 있다. 생산공동체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노원자활후견기관의 역사도 함께 묻혀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국기법 내 ‘후견기관’은 96년에 실시된 ‘자활지원센터’의 발전적 모습이다. 그 내용은 2년여 동안 자활근로사업을 통해 나름대로 자활공동체로 전환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말한다.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그 역사는 아직 짧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생산공동체운동의 역사는 단절적으로 2000년, 또는 96년부터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까이는 90년, 넓게는 70년대로 넘어간다. 노원자활후견기관도 90년대 후반, 지정위탁을 받고 국기법이 통과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활동하고 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노원자활후견기관의 활동을 살펴보자. 세간에 잘 알려진 노원자활후견기관의 대표적인 사업은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이다. 노원자활후견기관이 음식물처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제3섹터형 일자리 만들기 차원에서였다. 제3섹터란 뜻은 여러 차원으로 쓰이고 있지만, 자활운동에서의 제3섹터는 1섹터인 시장영역과 2섹터인 공공영역을 제외한 영역을 일컫는 말이다. 음식물쓰레기를 예로 들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던 5년 전, 노원구의 폐기물 관리 조례에 의하면 30평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은 반드시 사업자 등록을 마친 음식물 처리업체에 음식물쓰레기를 맡겨야 했다. 문제는 30평이하였다. 즉, 30평 이하의 영세하고 소규모사업장이 일반적이었고, 이들 업체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대한 제도적 걸림돌이 없어 마음내키는 대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들 30평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의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인근 소각장에 침출수 현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다이옥신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조례의 규정상, 이들에 대한 법적 통제수단이 전무한 상태였다.

노원자활후견기관은 바로 이런 공백을 파고들었다. 비감량업체인 중․소형음식점을 대상으로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한 다음 인근 경기도 지역 축산농가에 무상으로 제공하여 사료화하는 형태로 첫 발을 디뎠다. 음식물쓰레기재활용 사업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1)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환경 리스크를 줄였고 2) 중․장년 실업자들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3) 버려진 음식물을 재사용하며 4) 제도적인 허점의 공백을 메우는데 기여했다. 5) 무엇보다 이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장 큰 자산이다. 제3섹터의 영역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시장영역과 공공영역에서 제외된 제3의 영역을 말한다.

“음식물 사업의 경우 30평 이상의 규모의 사업장에 대한 환경적인 처리는 시장이 갖고 있었고 30평 미만인 경우엔 손을 안 데고 있었죠. 그래서 이런 것을 우리가 하자, 이것이 제3섹터 영역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무료 수거라도 진행을 해서 지역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 환경문제도 줄이고 소각장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피해 등을 줄이고, 모아진 음식물을 영세한 농장에다 보내주면 인근 지역의 영농사업자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면 새로운 운동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이런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제3섹터였던 거죠. 당장 필요한 서비스 영역이었고, 일자리가 있었고, 이런 것을 찾는 것이 저희의 주된 관심거리입니다.”

제3섹터운동으로 시작한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은 현재 그 규모도 솔찮게 커졌다. 참여업소도 400개로 늘었고 월매출 1,6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지금의 규모로 커지기까지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99년 공공근로민간위탁의 형태로 시작할 때는 중․소형음식점에서 무상수거, 그리고 경기도 지역 축산농가에 무상제공의 성격을 띠었다. 우선은 이 사업의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업에 참여하는 업소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다. 음식물자원화조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실시하면서 조례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 이와 함께 시민협의체를 결성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2000년에 노원구 음식물쓰레기재활용조례를 개정을 이뤄냈다. 조례의 개정은 이전까지 무상수거를 기본으로 하던 사업을 일자리 창출로 연계시키기 위한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기여했고, 같은 해 1kg 당 100원의 수집운반비를 고시하게 된다. 현재는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4명의 일반참여자와 2명의 수급권자들이 사회적기업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혹자는 수 만개가 넘쳐나는 직업세계를 살고 있는 나라에서 아직도 미개척의 영역이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3섹터 일자리 만들기 운동은 단지 아이디어 차원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사업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익과 효율성만 따지는 시장경제가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역을 경제적인 가치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적인 마인드가 토대가 된다. 그늘지고 소외 받는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분야도 이에 해당된다.

“간병인사업이 대표적인 사업입니다. 의료보험제도의 경우, 국가에서 관리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보험회사에서 개인적으로 보장을 받는 시장이 존재합니다. 이런 두 가지의 틀이 모든 사람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제도상으로 시장과 공공영역에 뻥 뚫려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저희는 봅니다. 거기에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활성화된다면 복지와 일자리가 함께 개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복지서비스가 제공이 되고 거기에 우리가 만나는 주민 분들이 새로운 직업으로 주민들이 전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험해본 사람도 있겠지만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병원에 입원하려면 필히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입원비 미납을 방지하기 위한 병원 측의 보호막일 게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처지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날품팔이라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간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환자를 대신해 거동을 움직일 수 있겠지만 이후 생계에 대한 책임 마저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복지간병인 사업은 이들을 위한 사업이다. 보호자를 대신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족들은 안정적으로 생계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복지간병인 제도의 골간이다. 1999년 서울시 공공근로민간위탁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서울자활후견기관협회 산하 공동간병인사업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노원자활후견기관이의 제3섹터 운동은 뛰어난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미비점으로 많은 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국기법은 2-3년 간 자활근로로 지원 후 공동체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로서 제3섹터 운동은 기존의 노동시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일이다. 단순히 아이템의 차별화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초기부터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운동이다. 따라서 ‘일거리’가 아니라 ‘일자리’로의 이행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복지간병인과 같은 복지 분야의 경우, 수익발생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와 같은 도식화된 틀로 바라볼 수 없다는 점이 있다. 수입발생보다는 복지에 무게를 두어야 하고 분명하게 자리잡아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물쓰레기재활용사업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 여광천 실장의 생각이다.

또 다른 어려움은 공무원과의 관계다. 후견기관 사업의 생리상 공무원들과의 접촉이 불가피하다. 행정부가 얼마나 자활사업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마인드를 가지느냐는 이 사업이 브레이크 없이 잘 달릴 수 있느냐 와도 관련이 있다.

“저희 같은 경우는 10년-20년간 활동할 수 있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주기적으로 바뀌잖아요. 사업을 좀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올라가면 바뀌게 되죠. 그리고 다른 파트에 있던 사람이 오거나 하면 한 1-2년 동안 사업 설명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죠. 지방의원의 경우 오히려 대화하기 용이한데, 담당 공무원들은 참 힘듭니다. 간병인 사업은 돈도 안 되는데 왜 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에 대한 이해가 개별 공무원들이 개별적인 능력으로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관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하겠지만, 자활 사업을 구청이나 지자체 전반적으로 인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음식물의 경우, 사회복지과를 넘어서 청소행정과가 긴밀해야 되는데, 이들 부서가 긴밀하게 연계가 되어야 누가 담당이 되든 지속적으로 관계가 정립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전국적으로 그런 체계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경우는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을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공무원들의 개별 능력 또는 이해 수준, 관심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복지간병인 사업이 수익모델이냐를 놓고 따지기 전에 얼마나 사회적으로 유의미한가를 먼저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관과의 관계가 소원할 때도 있지만, 사업의 성격상 이런 관계가 크게 작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여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들에게 일거리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술잔을 기울기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어야 한다. 경제적인 자립은 물질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노원자활후견기관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활사업이라는 것이 사업 아이템을 중심에 놓고 접하다보니 논의의 공간이나 관계가 협소해지기 마련이다. 월 2회의 전체 참여자 교육도 담당 실무자와 함께 교육받는다. 현장에서 노동을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일거리’를 통해 생활 외적으로 관계 맺기를 한다면 심리적 또는 문화적 코드를 같이 나눔으로써 생활 내적인 부분까지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동, 일 이전에 서로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활사업은 참여자들의 경제적 자립이 일차적 목표라고 볼 수 있지만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일거리’를 통한 ‘사회와 관계 맺기’인 듯 싶다. 사람과의 관계, 사회적 자원들과의 관계, 지역사회의 당면한 과제들과의 관계, 지역사회(주민)와의 관계 등 자활사업의 지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회의 mail stream이 아닌 부류였기에 당당하게 사회와 대면할 수 있는 것 자체도 어찌 보면 지난한 과정의 산물일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당당해지기 위한 연마의 과정일지 모른다. 인터뷰가 끝나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활기’였다. 새로운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해, 총체적인 전망과 가능성을 점치기 이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는 실무자의 진정이 담긴 대답을 듣고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희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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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한국사회 자활운동의 역사와 과제, 김홍일, www.nowonnanum.org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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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 단체간의 상호인정, 상호신뢰, 상호협력"
- 울산 양정동 주민자치센터


인터뷰 : 이태우(주민자치위원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지역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해결하는 주민자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자생단체들이 존재해야 하며 활동단체들 상호간의 유기적인 협조와 역할의 분담이 있어야 한다. 적지 않은 자생단체들이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어떤 단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마을에서 누가 어떤 단체에서 활동하는지 잘 알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에서 주민활동을 하고 있는 인적 자원이 매우 빈약한 실정에 비추어 활동가들이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데 장애가 된다. 더구나 지역단체 상호간에 오해와 갈등이 만연된 경우에는 지역활동의 활성화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참여자들의 의욕을 상실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주민자치의 정착을 위한 자생단체간의 상호관계, 주민자치위원회와의 관계설정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울산시 양정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위촉을 받은 이태우위원장은 오랜 동네 주민활동경험에 비추어 지역자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마을에서 봉사하는 일꾼들 상호간에 안면을 익히고 서로의 활동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각 주민활동단체에 “자생단체단합대회”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 협의회, 새마을 부녀회, 자연보호위원회, 여성자원봉사회, 바르게 살기위원회, 통정회(통장들 모임), 체육회 등 여러 단체에서 회원들을 참여시켰다. 첫해인 2001년에는 88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지리산 노고단으로 등반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회원상호간의 소개와 얼굴 익히기, 등반중 대화, 회식 등을 통하여 마을에 어떤 활동가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서로 알게 되고 상호간의 활동에 협조하려는 분위기에 조성되어 앞으로도 계속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데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의견을 같이 하였고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자생단체단합대회를 통하여 자생단체회원간의 교류에 있어 물꼬는 터졌으나 각 자생단체의 장 상호간에는 적지 않은 오해와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로 활동에 대해서 비방을 하는가 하면 정부나 민간으로부터 지원 받은 지원금의 사용용도가 불명확하고 사적 용도에 부적절하게 사용한다는 비난, 활동은 하지 않고 지원금만 챙긴다는 비난, 어느 단체의 장이 마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고 한다는 상호비난, 각종 인신공격과 험담 등이 끊이지를 않았다. 특히 소각장 건설 반대운동을 통해서 마을발전기금을 10억 2천만 원을 소각장 설립자로부터 받아낸 다음부터는 발전기금의 활용방안을 둘러싸고 악화된 마을 분위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이지 않게 되었다.

동네 일을 하다보면 자생단체간의 문제가 없는 동네는 별로 없다. 상호 알력과 불신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감하면서도 어깨를 나란히 생활하는 동네에서는 터놓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상호불신과 비방은 은밀히 감추어진 지하에서 독버섯처럼 번지고 마침내 동네에 풍파를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 그리하여 주민을 향하여 봉사하여야 할 단체가 험담하느라고 상호 비방하고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활동에 열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동네의 발전을 위하여 단체장간의 반목과 시기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 위원장은 각 자생단체장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위한 회합을 제안하였다. 일부 자생단체장 중에는 단체장회합제안이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을 넘는 월권행위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하였다. 이에 이 위원장은 동장에게 유권해석을 의뢰하였다. 동장은 단체끼리 불화가 있어 말썽이 되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심의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었다. 동네에서 활동하는 10여 개의 단체 중에서 2개의 단체장을 제외한 모든 단체장들이 일요일 오후에 모여서 장장 6시간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 동안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서운한 감정, 단체의 활동현황, 단체의 수입과 지출, 사용내역 등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로 하였다. 서로 맺혀있던 얘기를 풀어놓으면서 뿌리 깊었던 불신의 장막은 서서히 걷혀갔고 다른 단체의의 활동내역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의심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을 요구하기도 하고, 오해를 풀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단체장간의 앙금은 상당히 해소되었다. 얘기가 끝난 후에는 이를 증빙하는 자료를 갖추어 제출하기로 하고 서류로 남기기로 하였다. 긴 시간 동안 해묵은 얘기를 털어 낸 단체장들은 굳었던 표정은 풀고 누가 먼저 제안할 것도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을 함께 하였다. 앞으로 동네활동에 대해서는 서로 알리기로 하고 주요한 동네행사에서는 서로 협조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적지 않은 성과였다. 뒷감당이 무서워 처음에 단체장회합에 대해서 우려를 했던 동장도 원만한 대화의 결과에 대해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각 단체는 단체의 회원 수, 활동현황, 지원금과 회비 등 수입과 지출내역, 주요활동사항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모임이 있은 후 단체상호간의 상호 이해와 협력관계는 상당히 진전되었다. 작년에 이어 개최된 제2회 자생단체 단합대회에는 100여명이 참여하여 화합과 협력을 다졌다. 주민자치위원회가 개최한 경로잔치행사와 한마음 구민행사에는 모든 자생단체들이 지원금을 지원하고 고루 회원을 파견해 주어서 음식준비 등 행사를 준비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행사잉여금 등의 배분 등을 둘러싼 잡음 등도 사라졌다. 단체별로 활동을 계획하거나 기획하는 모임에는 주민자치위원장을 초대하여 설명하기도 하고 자문과 협조를 구하기도 하게 되어 자치위원장의 일정은 더욱 바빠져 가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원만한 활동을 위해서는 자생단체와 관계설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이 위원장은 갖고 있다.

“풀뿌리 주민자치가 올바로 정착되어 동네문제를 ‘아래에서 위로’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단체가 주민자치위원회와 유기적인 협조를 맺으면서 활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단체의 장들이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와서 주민자치의 활동방향을 결정하는데 참여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각 단체를 지원하고 각 단체는 주민자치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실현하는데 협력하여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주민자치위원으로서 함께 하고 있으나 2 개 단체 대표가 주민자치위원 위촉을 수락하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자생단체들이 건전하게 육성되고 주민참여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자생단체들이 주민을 향하여 관심을 가지고 주민을 위한 활동을 하여야 한다. 현재는 이들 자생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상부 즉, 시청이나 구청 등에서 직접 이들 단체에 시달되기 때문에 이들 단체는 주민을 의식하기보다는 지원금 지급기관인 상부의 관심에 너무 민감하게 된다. 돈 생기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면서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을 뒷전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 단체의 시각이 주민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원금의 지원과 그 지출내역에 대한 검증이 주민의 대표기관인 주민자치위원회 권한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자생단체들의 지원금의 사용내역에 대한 검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신뢰성이 없는 간이영수증으로도 충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말썽이 생길 소지가 항상 있고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문제를 해결하는 자치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자생단체대표와 통과 반을 통하여 추천 또는 선임되는 인사로 구성함으로써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동네 일을 맡을 사람은 없고 그나마 동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면 누가 동네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주민자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을 끌어안아야 한다. 주민의 자치활동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동네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인정하고 주민들도 이들의 활동을 존중해 주는 상호 인정이 필요하다. 상호 인정을 위해서는 단체의 활동을 투명하게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하고 알려야 한다. 이점에서 이 위원장이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손대기 어려운 단체장간의 앙금문제를 털어 내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은 앞으로 주민자치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소망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우리 동네는 원래 주민이 20,000명에 이르렀으나 IMF 이후에 12,000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고 마을 분위기가 침체되어가고 있다. 주변에 현대자동차가 있으나 지역사회와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에 권한은 없으나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종합적인 동네발전계획을 구안하여 실현하는데 헌신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이 마을이 잘되도록 헌신하여 ‘떠나고 싶은 마을’을 ‘머물고 싶은 사람 사는 동네’로 가꾸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동네의 여건과 발전가능성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였다. 권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 활동에 개인의 사업활동보다도 많은 시간을 동네 일에 헌신하는 지역일꾼들의 모습에서 주민자치 나아가 지방자치의 미래상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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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자치 연습, <책이랑 놀자>"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작성 : 하승우(운영위원)

가을을 채 느끼지도 못했는데 벌써 몸이 으슬으슬 떨려 온다. 유난히도 올해엔 겨울이 일찍 찾아왔다. 겨울이 오면 제일 심심해지는 것은 아이들이다. 어른들이야 직장과 가정을 왔다갔다하는 일상을 반복하지만, 아이들은 ‘거리’라고 하는 놀이터를 잠시 비워줘야 한다. 여유있는 사람들이야 스키장이다 뭐다 해서 일상을 벗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겨울은 열기를 느낄 수 없는 계절이다. 움츠려들기 쉽기에 내 한몸 신경쓰느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잃어버리기 쉬운 계절, 겨울이다.

그런 겨울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반가운 소식이 왔다. 항상 뭔가 특별함을 주는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하 녹색삶)’에서 날라온 초대장이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부푼 기대감으로 초대장을 펴자 마을 골목에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책이랑 놀자>가 문을 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언제든지 찾아와 실컷 책을 읽고, 친구들과 어울려 궁금한 것도 찾아보고, 독서지도를 도와주실 자원교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신나는 독후활동도 해보고… 또 부모님과 이웃어른들께서 틈나시는 대로 들러 편안하게 책도 읽어주시고, 옛날 이야기와 함께 어릴 적 경험도 얘기해 주시고”

뉴스레터 준비 24호에 [지역운동탐방기]를 시작하며 그 첫 번째로 ‘녹색삶’을 소개했었다. 그 글에서 얘기했지만 ‘녹색삶’의 특징은 지역운동에서 아이들과 지역, 학교를 잇는 삼각 네트워크를 잘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문을 연 어린이 도서관 역시 <열린 숙제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준비되었다.

개소식이 있었던 2002년 10월 31일(목) 오후 부푼 마음으로 도서관을 향했다. 골목 어귀를 돌아서니 땅에 화살표가 붙어 있었다. 아이들이 만들었음직한 아기자기한 화살표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돌아서자 풍선으로 만든 아치와 두 아이가 보였다. 아이들은 함박웃음으로 환영하며 이런 안내장을 주었다.

“우리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 유해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또래와 어울려 행복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 가족, 친구, 이웃과 더불어 밝고 원만한 심성을 기르며 함께 사는 삶을 배울 수 있기를,
● 마음껏 좋은 책을 읽고 다양한 문화활동을 경험하며, 풍부한 상상력과 꿈을 키워갈 수 있기를,
●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며,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자율적인 학습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기를...”

도서관은 <열린 공부방>의 한 켠을 차지하는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그 물리적인 규모보다 훨씬 더 큰 아이들의 꿈을 품고 있기에 결코 작지 않았다. 개소식에는 강북구 부구청장님이 참석해서 지역에서 녹색삶에 가지고 있는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책이랑 놀자>를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았다. 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유명한 MBC 프로그램 '느낌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도서관을 채울 책을 기증했다. 서울지역 10곳을 지원하는데 녹색삶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지난호 뉴스레터(준비 39호)에서 이현희 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이하 서공연) 사무국장님이 말씀하셨듯 어린이 공부방은 단순히 학습을 지도하는 공간이 아니라 “특별활동, 자치회 활동, 생활 지도, 상담 등을 통해서 아이들 개인에 대한 문제, 나아가 가정과 지역 그리고 사회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문제 현실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폭넓은 교육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마련된 <책이랑 놀자>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책이랑 놀자>는 어떻게 운영될까? 녹색삶의 공동대표이신 정외영 선생님은 “따로 사서를 두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관리․운영할 겁니다. 이번에 책에다 일일이 도장을 찍은 친구가 있었는데, 원래 이 애가 공부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책에 도장을 찍다 보니깐 글자에 관심이 생겨서 물어보는 거예요. 얼마나 기쁘던지. 이번에 개소식을 준비하는 것도 아이들 손에 맡겼어요. 앞으로 도서관을 관리하는 것 역시 아이들 손에 맡길 생각이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도서관에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책에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책을 읽는 것은 죽은 문자를 주워담는게 아니다. 책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보고 다른 세상을 꿈꾼다. 자기들만의 작은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관리하고 가꾸면서 자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체화될 것이다.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자치, 그 싹이 <책이랑 놀자> 속에 숨어 있다.

녹색삶은 어린이 도서관에 머물지 않고 마을문고로 관심을 확대할 예정이라 한다. 마을문고라는 것이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녹색삶은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과 여러 회원들의 힘을 모아 유명무실화된 마을문고를 튼튼하게 만들 것이라 한다.

녹색삶에는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또 하나 있다. 녹색삶의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꾸려온 주부환경극단 <만년대계>는 이제 지역의 자랑거리이다. 11월 20일(수)에는 쌍문초등학교 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쌍문1동 주민자치센터 강당에서 10시, 11시 2회 공연을 가진다. 다음날인 21일(목)에는 번동초등학생 1/2/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역시 2회 공연을, 11월 27, 28일에는 우이초등학교와 다른 학교를 대상으로 공연을 가진다. 어머니들이 직접 쓰고 몸으로 보여주는 연극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녹색과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자치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 ‘자신감’이라고 한다면, 강북구에서는 어머니들과 아이들 모두가 그 힘을 가지고 키워가고 있다. 그렇기에 녹색삶의 미래는 밝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하승우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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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 안양시민대학

인터뷰 : 김동영(청소년부장)
작 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회)

한국사회에서 저소득가정, 결손가정, 맞벌이 가정의 삶은 안녕한가? 이들 가정의 미성년 자녀들은 어떠한가? 21세기가 그리 밝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과연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대안은 있는가? 아니, 그럴 의지가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그늘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80년대 이후, 공단이나 빈민 지역 내에서 부모들이 맞벌이로 출근한 후 집과 골목에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공부방. 최첨단을 살아가는 21세기에도 그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아이들이 많다.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까지 그 폭도 다양하다. 가난한 아이들과 청소년에게도 교육을 받을 권리와 건강하게 자라날 권리가 있고,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그런 환경과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 달에 수천 만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 자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는 부자들이 있는 반면, 과외비는커녕 부모의 애정이 미치지 못하는 골목길의 아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간극을 좁히는 일은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안양시민대학은 안양 1번가에서 약간 떨어진 상가 지대에 위치해 있다. 3층에 오르자 할머니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뭐가 그리 신이 나셨는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원래 시민대학은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성인들에 대한 문자해독교육과 그것을 통하여 지역 사회 발전에 참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두고 시작했다. 그러니 이 곳을 찾는 이들은 문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노인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1996년 첫 강의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저희는 원래 문해교육단체라서 성인 문해를 기본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문해 대상자가 성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영역도 다양해지면서 청소년에 대한 문해도 실시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97년부터 했으니까 한 5년 지난 셈이죠. 지역에 있는 아동들 중, 기초학력이 부진해서 학교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거나 제도권 교육 내에서 소외 받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대학에서 운영하는 공부방 명칭은 ‘청소년 배움터’라고 합니다.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데, 주중의 무료공부방, 주말에 있는 기초배움터, 그리고 기초배움터가 운영되지 않을 때는 주말배움터라고 해서 문화유적 탐사, 견학 같은 것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외,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진로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상담합니다.”

김동영 청소년부장의 말이다. 올 초, 교육인적자원부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읽기와 쓰기, 셈하기를 못하는 기초학력부진 학생이 10만 여명이 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이들은 거의 까막눈 수준이다. 또 국가에서 설정한 학업성취 목표 최저기준에 미달한 학생이 약 35만 명으로 집계돼 교육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성인뿐만 아니라 기초학력부진 아이들에 대한 문해교육도 국가 차원에서 세밀하게 지도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시민대학은 97년부터 ‘청소년배움터’라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기초학력부진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김동영 부장은 개인적인 차이보다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학급에 콩나물처럼 들어찬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공평하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40명이 넘는 각각의 학생 입장에서는 그것이 같을 리가 없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에게 쏟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것이 교사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시민대학은 어려운 상황에서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을 폭 넓게 모집해서 교육하는 것이 목표다.

“맞벌이 부부 중 저소득 아동과 결손 아동을 기준으로 뽑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열 명 정도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집하는 것이 그렇게 수월치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와 연계해서 학력부진 아이들을 선별해서 모집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치부로 생각하고 있어서 협조가 잘 안 되는 편입니다. 또 시민대학이 위치한 곳이 주택가가 아니라 상가 밀집 지역이라서 근처 아이들보다는 안양 지역 전체에 퍼져서 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상근자 1인이 청소년부 전체를 맡다 보니 세밀하게 공부방을 운영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더욱이 김동영 부장은 성인부 파트도 겸하고 있어 청소년에만 집중할 여건이 안 되고 있다. 그 나마 다행인 것은 시민대학 전체 자원교사 40여 명 중 공부방에만 10여 명이 활동하고 있어, 상근자의 고충을 덜어주고 있다. 자원교사의 활용면에서는 다른 지역의 공부방과 비교하면 풍성한 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안정적이지 않다. 자원교사로 활동하는 계층은 대부분 대학생이다. 처음에는 투철한 의지로 참여하지만, 중간에 그만 두는 자원교사가 있다보니 지속성이 떨어진다.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말과 같다. 공부방 입장에서는 자원교사들의 기여도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속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과제이기도 하다.

공부방 학생들은 입학금 10,000원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무료로 받는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그런 부담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어보나 마나 시민대학의 재정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어려운 상황에도 후원을 해주는 많은 사람들과(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1년에 두 차례 실시하는 바자회, 자체 운영하는 녹색가게와 벼룩시장, 그리고 경기도와 안양시 공모사업을 통해 사업이 진행된다. 그래도 상근비는 밀리지 않고 꼬박 나온다며 김동영 부장은 애써 웃음 짓는다. 최근에는 재정의 문제나 공동의 과제를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안양 지역 공부방연합회가 만들어져 연대의 장을 마련하였다. 개별 공부방의 역사와 철학이 다소 다르지만, 서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김동영 부장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당장, 안양여성회에서 위탁받아 실시하는 공공근로 교사의 문제가 걸려 있다. 안양시가 공부방 교사의 공공근로 대상자를 다른 형태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다, 안양여성회를 통해 개벌 공부방의 의견을 접수하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부방연합회의 대응이 분주하다.

시민대학 공부방 교육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공동체 교육, 미술 교육, 풍물 교육, 영어 논술 교육이 그것이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전문 지식을 가진 자원교사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공부방 운영은 많은 어려움도 있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철학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자원교사들과 교육철학이나 방식에 대한 토론을 해나가고 있다. 공부방의 핵심은 가르치는 사람의 철학과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저희 단체 교육프로그램의 특징은 아이들이 가정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정서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게끔 지도하는 것이 가장 큰 주안점입니다. 그리고 비록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끔 다양한 소스들을 제공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습지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서 안정 프로그램, 외부 활동 프로그램 등을 위주로 합니다 ‘공동체 프로그램’은 정서적으로 안정화되도록 돕고, 또 사회적응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입니다. ‘풍물 프로그램’의 경우는 안양대 풍물동아리가 돕고 있는데, 아이들은 이 두 가지를 가장 재미있어 합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다. 그들이 당당하게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의 수준이 어떤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많이 가진 자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회,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아래 글은 시민대학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늘배움 늘사랑’에서 발췌한 글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대학에 계신 분들의 얼굴은 모두 웃는 얼굴입니다. 선생님, 어른 학생들, 우리 아이들 모두 웃는 얼굴입니다. 저는 속으로 좋은 사람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순수한 사람들은 저런 얼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한 시간동안 저의 얼굴 역시 미소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면, 아마 그것이 시민대학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 2002년 6월 43호 중/박언진(시민대학 청소년 공부방 자원봉사 교사)

통일이 되면은
유진주(4학년)

통일이 되면은
친구를 사귀어야지
갈라져 있는 동안에
많이 궁금했거든.
통일이 되면은
갈라져 있는 동안
바뀐 말을 배워야지
그래야 친구도 사귀지.
통일이 되면은
악수를 해야지
말을 못 배워도
웃는 미소와
악수를 건네면
친구와 친해질테니!
- 2002년 6월 43호 중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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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센터의 key word는 결국 ‘주민’이다"
- 인천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


인터뷰 : 천선혜(주민자치위원)
작성 : 김현

주민자치센터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공무원들에게는 주민자치센터가 눈엣가시일지 모를 일이다. ‘주민자치’라는 그럴싸한 말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실제로 몇 몇 주민자치센터를 제외하고 자치적인 주민들의 활동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민자치센터 무용론은 과도한 평가일 수 있다. 자치할 수 있는 능력이 미흡한 주민에게 덜렁 주민자치센터를 던져주고, 처음부터 잘 할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현재 수준에서 주민자치센터의 모든 문제점들이 다 드러난 상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개별 단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새로운 모델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양이나 질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 모습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으면서 그 해답이 눈에 보였다. 결국 ‘주민’에 있었다. 훌륭한 제도가 훌륭한 주민들을 만들 수도 있지만, 훌륭하지 못한 제도라 할지라도 주민들이 올곧게 서 있다면 제도는 단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주민자치센터의 그림은 정부나 공무원이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생력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반복하자면 센터를 변화시키는 Key Word는 ‘주민’이다.

인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창조적인 변화의 모습도 결국 주민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민자치위원들이 서서히 '자치'에 눈을 떠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제도적인 한계로 인해 주민자치센터가 도대체 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느냐의 문제, 즉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체성이란 그 조직의 개별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총화한 것이라면, 결국 개별 구성원들의 특성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핵심구성원인 주민자치위원들의 개별 정체성은 곧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를 대변하고, 가뭄에 콩 나듯 “잘 운영되는 주민자치센터”가 드문 현실에서 선례로 삼을만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연수2동은 시민단체 활동가와 주민자치센터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좋은 사례다. 거리를 두고 본다면 주민자치센터를 비판할 대목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잘만 운영되면 지방자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토대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말만 많을 뿐, 정작 그 곳에 안착해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활동가들은 의외로 적다. 비단 활동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민자치센터의 필요성을 인지한 의식 있는 주민들의 참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수2동의 사례는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천선혜 주민자치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주민을 대상으로, 지역을 거점으로 생각하지 말자

“물론, 운동단체의 활동가가 지역에 내려오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주민부터 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 상황을 고려했을 때 옳은 목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선적으로 단체 활동가들이 지역운동을 하려 한다면 지역운동가로서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짧은 소견입니다만, 앞으로는 여러 운동단체가 지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운동으로서의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지역주민들의 눈 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거죠. 사실, 자기 욕구가 없으면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 자신이 꿈꾸던 삶의 모습과 운동간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나가면서 서로 같이 변화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을 대상화시키지 않는 것이예요. 그 사람과 나 하고 다 똑 같은 지역주민이고, 모두 같은 고민을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지역민들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배웁니다. 생활상의 문제를 더 많이 알고, 오히려 개방적입니다.”

시민단체 활동의 경험은 많은 장점을 지니지만,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주민자치위원들의 구성을 상기해보면 얼추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상당수의 주민자치위원들은 동정자문위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들의 면면은 소위 관변 위주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에 적을 둔 사람의 출현은 그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가 색안경을 끼고 적대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주민자치센터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주민자치센터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려고 보니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비롯해 몇 몇 시민단체에 적을 둔 사람들이 공부방을 운영했던 거죠. 우리는 선입관을 버리고 상당히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헌신적으로 하다보니 공부방이 잘 운영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런 모습을 지켜본 주민자치위원들이 “저렇게 하면 잘 되는구나!”라는 판단이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즈음, 주민자치센터가 언론을 통해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공부방을 축으로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 축제를 만들어서 대성공을 거두었죠.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분명히 방관자였던 주민자치위원들을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주민자치위원들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작년 개최된 “주민자치센터 박람회”에서 우수 주민자치센터로 선정된 이유도 주민자치위원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이 높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천선혜 위원도 주민자치센터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역에 애착이 있는 위원들의 참여가 가장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위원을 선출할 때에는 한 개인의 친분관계를 떠나 지역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있다. 올해 초, 주민자치위원들을 영입하는 문제로 주민의 10% 가까이 설문을 받았고, 이 중에서 주민들이 가장 신뢰할만한 3명의 주민을 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이렇게 선출된 위원에게 자부심과 함께 지역사회로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위원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램 내용의 질도 업그레이드 될 수밖에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프로그램

“프로그램 몇 가지만 소개시켜 드리면, 공부방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구요. 우리는 일반 학교나 학원에서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합니다. 올해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자원봉사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 즉 직접적으로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일들을 교육했습니다. 아동프로그램 중에 특색 있는 내용은 두 달에 한번 꼴로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 벌써 6회를 했습니다. 생태, 문화 등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은 무척 재밌어 하고, 하루하루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인대중강좌는 학부모와 강사들 간담회를 가져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인 강좌가 끝나고 나면 수강생, 특히 어머니들이 자체적인 모임을 통해 연극 등의 공연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수지침 강좌의 경우, 강좌가 끝나면 수강생들이 노인관이나 복지관에 찾아가서 배운 것을 실습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하는 일도 합니다.”

위원들의 활발한 활동과 프로그램의 차별화로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역시 공무원들이다. 주민자치센터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공무원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위원들을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주민자치센터를 잘 운영해주길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 천선혜 위원의 설명이다. 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일손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주민자치센터가 본래의 취지와 어긋나면 결국 공무원들의 업무만 부과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는 공무원들에게 옥동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무원과 위원간에는 갈등의 골이 깊지가 않다. 갈등은 서로의 위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역할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다면, 공무원과 위원의 역할이 명확한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경우는 그런 갈등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밑으로 뿌리내리기

그렇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멀다.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이제 만 3년을 넘긴 셈이고, 짧은 역사만큼 새로운 모델도 적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마을의 그림, 즉 큰 틀에서의 주민자치센터의 방향을 잡아야 가야 한다. 프로그램이 우수하고 위원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만으로 그림을 완성할 수는 없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러려면 주민들의 지지와 호응을 기반으로 해야할 겁니다. 위원들의 구성 자체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그렇다고 해서 기존 위원들의 물갈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에 대한 의식과 애착이 있는 위원들과 주민자치센터에 한번쯤 몸담았던 수강생들, 그리고 발굴된 지역의 여러 분야 강사들이 실제로 위원들로 들어오면서 센터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는 구조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방향도 교육이나 복지 쪽으로 가면 그 동안 참여하지 못한 주민들도 관심을 보일 거고, 이 중에서 자치적인 모임들이 활성화되면 이런 모임을 통해 신뢰할만한 주민들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지역자치가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지금보다 더 밑으로 뿌리내리는 것이 과제지요.”

연수2동의 사례를 다른 지역으로 보편화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의 상황과 구성원들의 특성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천선혜 위원이 지적했듯이, 비록 주민자치센터가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지방자치’, 또는 ‘주민자치’라는 커다란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흐름의 구심점이 주민자치센터가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 지금은 제도가 도입된 초기보다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라는 것에서 그 가능성이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풍문이 여기 저기 봇물처럼 흘러나오지만, 주민자치센터가 지역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발전적인 조망이 이루어진다면, 미궁 속에 빠진 실타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또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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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인큐베이터, 행복한 복지세상을 꿈꾼다!" -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일시 : 2002년 9월 19일(금)
인터뷰 : 윤혜란(사무국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김대중 정부가 밝힌 “생산적 복지 구현”은 소외계층이 더 이상 수혜자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순히 복지 재원을 넓히거나 일시적인 프로그램만으로 소외계층과의 간극을 좁힐 수 없다는 인식이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달리고 있고, 더 밑으로 내려가면 중앙 정부의 정책과 지방정부의 정책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는 일정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소비의 영역이기 때문에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의 재량권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단순히 예산배정의 수치만으로 사회복지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복지운동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점점 우리사회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예산배정의 절대적인 취약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사회복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서비스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고, 질적 내용과 시민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가 사회복지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것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한 여지가 없어 보인다.

“......2001년 한해 동안 복지세상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분들은 모두 218명입니다. 우리들의 순수한 땀방울이 영근 결실을 맺게 되는 그 날까지 파이팅!!”

이 글은 “복지세상을 열어 가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서 발행한 ‘2001 Annual Report'에 나온 첫 페이지 글귀다. 민간복지영역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 '시민모임'도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힘을 발휘하기 힘든 조직이다. 또한 자원봉사자가 단순히 자신의 노동을 위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참여의 길을 넓힘으로써 발전적 형태로 지속된다면 사회복지의 지원하는 자원들의 생명력은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1년 한해 동안 218명이 활동했죠. 잘 아시다시피 일반 시민들이 시민운동단체에 자원봉사로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상당히 제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는 사람들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단체에서 추진되는 방과후 교실의 경우, 초창기에는 시민들이 일시적인 자원봉사로 참여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역 아동의 실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중에는 아동복지 포럼 등을 통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식으로 참여의 단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상기한다면, 사회복지 분야는 일반 시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충분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혜란 사무국장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자원을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부터다. 지역 시민운동 단체가 중앙의 운동단체의 운동형식과 비슷하게 당위적인 주장에만 그치고 있을 뿐, 시민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고민 때문이었다. 작년 한해 동안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던 것은 적어도 시민적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윤국장의 해석한다. 그러나 이런 관심을 담기엔 시민운동진영의 운동방식이 시민들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역에서의 운동이 당위적인 주장에 흐를 경우,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판명난다는 것이 윤국장의 지적이다. 시민들의 눈 높이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대변할 마땅한 시민단체조차 없는 지역이라면 이러한 당위적 주장의 방식이 의미 있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당위가 얼마나 지역에서 현실화될 것인지가 시민들의 관심이 된 이상은,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운동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시민들의 관심에 부합하고 참여시키는 일은 곧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역운동이 스스로의 벽을 걷어치우기 위해서는 지역이 실제로 필요한 것, 그리고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윤국장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천안YMCA를 창립하고 오랜 기간 이 단체에 몸담아 오면서 목말라 했던 것은 당위적 주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활로 모색이었다. 사회복지 분야가 시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최 일선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민모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시민모임’은 크게 두 가지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직활동’과 ‘사회복지인큐베이터 활동’이 그것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복지서비스를 누려야 할 소외계층을 조직하고, 그들을 사회에 드러내는 작업이다. 사회의 소외계층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힘을 길러주는 일, 결국 약자들의 연대를 통해 자생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원해 주는 일을 가리킨다. 초기부터 관심을 기울였던 ‘충남장애인부모회’는 이미 ‘시민모임’의 도움으로 독립해서 이제는 당당하게 복지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여성장애인연대’나 ‘지역사회정신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이런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후자, 즉 ‘사회복지인큐베이터 활동’은 소외계층이 필요하고 욕구가 있는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자생적인 운영이 될 때까지 지원하는 활동을 말한다. 저소득가정의 아동들을 위한 방과후교실과 사랑의 밑반찬 나누기 프로그램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방과후교실의 경우, 총 6군데를 운영해 오던 것을 3군데가 독립했고, 지금은 나머지 3군데를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랑의 밑반찬 나누기 프로그램은 자원봉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자원봉사로 참여할 수 있는 지역의 자원들을 발굴하고 자체 운영이 되면 독립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복지인큐베이터 활동은 지역의 지도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방과후교실의 경우, 인큐베이터 사업 중에 잘 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데, 5년이 지난 시점이다 보니, 졸업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하였고, 이들과 함께 청소년프로그램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전부 저소득계층의 아이들입니다. 처음에는 방학 때 한시적으로 두 군데서 시작했는데,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서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전부 뜻 있는 사람들의 후원을 통해 운영되었죠. 부분적으로 프로젝트를 받기도 하구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런 것을 하면서 내부 인력들이 많이 뭉친 것 같아요. 지금 방과후 교사들만 하더라도 10명이 넘고, 물론 교사들의 조건은 열악하지만, 후원자 중심으로 운영위원이 꾸려지고 하면서, 적어도 지역사회의 아동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겁니다. 아무튼 인큐베이터 사업이든 조직활동이든 근원적인 지향은 지도력 계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민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복지 영역은 여전히 소외계층과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앞서도 말했듯이, 작년 한해, '시민모임'에 문을 두드린 자원봉사자는 200여명을 넘는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사회복지 영역이 소외계층 이외의 사람들의 손발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최소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말한다.

“저는 시민들보다 지방정부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저희 같은 단체에 2-300명이 참여하잖아요. 이런 것은 시민적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시민들을 끌어내는 것은 지방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방정부는 관심이 부족한 거죠. 그리고 어쨌든 사회복지의 일차적 수혜자들이 지역사회의 소외 받고 어려운 분이잖아요. 이런 분들을 위한 지원체계나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공공복지 쪽은 이런 것이 없습니다. 특히 천안지역 같은 경우, 장애인 등록자가 10,000명이 넘거든요. 이런 분들은 밖으로 나오기 꺼려합니다. 그 이유는 지방정부의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열악하기 때문이죠. 이 사람들이 지역에서 사회생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체계가 아예 없습니다.”

생계지원이 1차적 목표였던 장애인 운동의 흐름이 이젠 이동권(보행환경의 문제)과 취업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복지는 여전히 생계지원 마저도 그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공공복지와 민간복지가 칼로 무 자르듯이 그 역할이 딱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복지가 1차적인 생계지원 서비스 체계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윤국장의 생각이다. 특히 공공복지는 민간복지운동단체에 대한 마인드가 희박하다고 한다. 더구나 사회복지분야는 두 영역이 확실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질 때만이 가능한데, 현실적으로는 지방정분의 실무자들이 민간복지를 바라보는 위상이 현저히 낮다. 이를테면 환경 관련 부서는 환경단체를 파트너로 삼고, 느슨하지만 서로 역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복지분야는 협력파트너로서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담당 공무원들이 여전히 복지운동 시민단체를 수직적 상하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민모임’의 활동이 5년여를 지나고 있어, 어느 정도 관계가 정립되고 있고, 동등한 파트너로 자리매김 하고 있지만, 여전히 민간 파트를 껴안으려는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이 윤국장의 지적이다.

지금 ‘시민모임’에서 한창 고민하고 있는 사업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다. 정신장애인 프로그램은 상당한 전문성을 요한다. 그래서 민간이 접근하기가 수월치 않다. 지역사회의 정신장애인들을 스크린 해서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신복원센터’의 설립은 그래서 절실한데, 재원이나 역량을 고려해, 선뜩 인큐베이터 활동 사업으로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올 해 말 열리는 토론회를 통해 그 방향을 잡을 생각이다. 정신장애인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복지 분야는 이에 걸맞는 전문요원을 필요로 한다. ‘시민모임’의 경우도 윤국장을 비롯해 실무자 대부분이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또한 각 프로그램마다 일정한 교육은 물론 상시적 학습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과의 연대활동도 필요한 실정이다. 그래서 ‘시민모임’은 천안에 주재한 대학의 사회복지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결성해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전문성을 요하는 정신장애인 모임의 경우, 의도적으로 대학생과의 네트워크를 꾸리고 있다. 이 모임은 올 10월에 창립해서 연합체의 형식을 띨 예정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들은 시민운동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이 윤국장의 지적이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담보하지 못한 사회문제 영역을 이 곳에서 풀어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물론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보통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공공복지를 바라보는 경향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공공복지기관은 월급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민간복지보다 우월합니다. 그래서 오는 갈등이 존재합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시민운동이나 사회활동에 대한 마인드를 갖게 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번 달부터 정기적인 내부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고,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회문제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소할 계획입니다.”

사회복지운동의 주요 과제 중에 하나는 네트워크 구축이다. 사회복지 전공자들과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복지분야는 워낙 광범위한데다, 동일한 대상자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서로 연계가 돼있지 않으면 효율성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복지기관 또는 단체의 실무자간의 네트워크, 또 단체간 네트워크, 그리고 기관과 단체간 네트워크 구축은 통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살고 싶은 복지도시 천안 네트워크”는 그런 이유에서 만들어졌고, 현재 15개의 단체가 들어와 있다. 공공복지기관의 참여도 점차 늘릴 계획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시민모임’의 당면 과제가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복지분야에 너무 소홀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듯 하다. 지속적인 조직활동, 사회복지인큐베이터 활동, 그리고 교육사업과 자원봉사 참여 확대, 네트워크 활성화 등과 같은 내부 과제뿐 아니라, 공공복지의 서비스 확대, 복지정책 대안 제시 등 지방정부의 수평적 파트너로서 역할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 특히 그 중에서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천안시 사회복지 정책제안집’이라는 부제가 달린 “천안을 복지세상으로 만드는 33가지 방법”이라는 자료집이었다. 보육,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 빈곤과 실업, 그리고 보건 등 그야말로 복지세상을 위한 기본적인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지 자료집이 소외되고 어려운 일상의 삶을 꿋꿋하게 견뎌내며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들어졌지만, 이렇게나마 지역사회가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지역운동가들의 눈부신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33가지 방법”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는 윤혜란 사무국장의 다짐처럼, 어두운 그늘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이 주어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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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의 전형을 일군 “원주한지문화제”"
-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일시 : 2002년 8월 9일 오전 10시
장소 :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사무실
인터뷰 : 이선경(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정책연구실장/원주한지문화제위원회 기획위원장)


장장 2시간 동안 이선경 위원장은 거침없이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간 인터뷰 중, 가장 울트라 슈퍼 서스펙스한 대장정의 인터뷰였다. ‘원주한지문화제’에 얽힌 지난한 과정과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각본 없는 한편의 드라마다. 이선경 위원장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한지(韓紙)’만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제 내 머리 속에도 원주 하면 연상되었던 국립공원 ‘치악산’이나 남한강 본류와 합치는 ‘섬강’이 사라지고, 오로지 ‘한지’만이 덜렁 남았다. 세뇌 당한 느낌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지식의 유입이라고 해야 옳을 일이다. 아무튼, 일개의 시민단체가 부단한 노력으로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될, 아니 없던 것을 새로 만든 지역축제로 발전시킨 역사적인 이야기에 우리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단지 번성한 축제가 아니라, 한 지역의 지존(至尊)을 높이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에 지방자치와 문화라는 관점에서도 높이 살만한 일이다. 자 그럼, 그 서스펙트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원주한지문화제”는 이런 과정을 겪었다!!

'원주한지문화제'의 일대기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정리하게 되면 많은 지면이 할애될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고 했는데도, 한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원주시가 이 지역 출신의 최규하 전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를 보전하고 박물관도 짓겠다며 114억 원의 예산을 잡음.(94년) =====>
▶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일제시대 때 만주국 관리 출신으로 친일행각을 했고 광주 학살이 벌어질 때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 최규하 전대통령이 원주를 자랑할만한 인물이 아니며, 또한 생존하는 인물을 기리는 사업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운동을 전개함. =====>
▶ 시의원과 공무원들은 94년부터 원주시 예산서에 올라온 사업이므로 그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강행의사를 비침. 당시만 하더라도 통일문제/민주화문제라는 거대 담론을 고민하던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지역의 구체적인 살림에 대한 고민이 없었음. 예산 심의, 집행 과정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예산’을 공부하기 시작함. =====>
▶ 97년, 처음으로 원주시 예산감시운동포럼 등을 개최, 지역단체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예산감시운동을 전개하고 연구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타 지역에 신선한 자극을 선사함. =====>
▶ 결국, 이런 운동이 기폭제가 돼, 96년부터 전개된 최규하 생가 보전 사업이 3년간의 반대운동 끝에 98년 4월에 백지화됨. =====>
▶ 그렇다면 원주가 무엇인가? 원주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이 최규하 전대통령 밖에 없는가? 라는 고민을 시작하면서, 원주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찾는 일을 시작함. =====>
▶ 원주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찰옥수수 축제”와 “토지문학제”를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았더니, 원주를 대표할만한 축제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됨. 찰옥수수는 강원도 횡성을 대표하는 특산품이었고, “토지문학제”는 박경리 소설가가 허락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원주의 정체성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인식함. =====>
▶ 직접 지역조사를 착수한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3년 동안 비상카메라를 움켜쥐고 일제시대 때부터 살아왔던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사진 찍고, 녹취하고, 막걸리 마시면서 동고동락을 함. 더불어 원주와 관련된 각종 국내 문헌자료를 조사하고,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일본 답사도 여러 차례 실시함. =====>
▶ 이런 결과로 얻어낸 것은, 원주가 한지의 고장이었다는 사실임. 인터뷰에 응한 어르신들의 80% 이상이 “한지”를 거론했으며, 특히 원주시에 좋을 ‘호(好)’, 닥나무 ‘저(楮)’를 썼던 “호저면(好楮面)”이라는 조그마한 면이 있는데, 뜻을 풀이하면 “좋은 닥나무의 마을”이었다고 함.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은 이 호저면에서 생산된 연간 40만근의 닥피(닥나무의 껍질)를 가져갔다고 전하고 있음. 호저면을 비롯해 귀래면, 신림면 등은 유명한 “한지 부락촌”이었다고 증언함. =====>
▶ 문헌에 의하면, 원주라는 마을은 서당이나 서원, 향교 등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고, 이 말은 곧, 종이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고장이라는 것을 암시함. 또한 원주 인근 마을 문막에는 경주 불국사보다 더 큰 ‘법천사’라는 절터가 남아 있는데, 종이를 주로 사용하고 만들었던 곳이 사찰이었음을 감안하면 원주라는 마을의 특수성을 알 수 있음. 이 뿐만 아니라 원주는 600년 동안 강원도 도청 소재지였고, 1년 평균 과거시험에 33명 이상 등급하므로써 한양 이남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합격률을 보였음. 원주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 때문인데, 자연스럽게 종이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음. =====>
▶ 이것으로도 부족해 한지로 유명한 전주를 찾아가기도 했음. 전주시청 문화담당 공무원에 의하면 예로부터 전주는 창호지, 장판지와 같은 하얀색 한지가 유명했고, 원주는 각종 색지 한지로 유명했다고 함. 실제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솔 종이박물관에는 원주를 대표하는 종이로 색지 한지를 전시하고 있었음. =====>
▶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그들의 마수(?)를 뻗친 것은 당연함. 일본을 세 차례 방문하면서 얻은 놀라운 사실은, 일본의 사이따마현에는 인구 5000여명이 거주하는 시가끼시치부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고노’라는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함. 고려시대 강원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이주했다는 뜻에서 ‘고노’라는 성을 사용하는데, 이 마을 곳곳에는 ‘종이를 뜨는 사람의 혼’을 기리는 사당이 있으며, 이들에 의해 원주의 한지기술이 이전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음. =====>
▶ 이런 조사를 밑거름으로 99년 제1회 “원주한지문화제”를 개최함으로써 올해 4회 째를 맞음.


평균 연인원 20여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원주한지문화제”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역일꾼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년이라는 그리 짧지 않은 시간 동은 그들은 아주 소중한 것을 얻었다. ‘숨어 있는 1inch’를 찾은 것이 아니라, 한지문화의 ‘잊혀진 전부’를 찾은 것이다. 인터뷰 내내 이선경 위원장에게서 자부심이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한발 더 나아가 이선경 위원장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가 한지에 주목한 이유는, 한지가 남북이 함께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민족의 대표문화라는 것입니다. 종이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는데, 고려시대 청나라에 조공을 바친 특산품은 고려한지였고, 담징이라는 스님이 일본에 전해준 문화도 한지였습니다. 즉, 한지는 민족의 정신이자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원주의 한지문화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남북이 동질적인 문화를 회복하는데 중요한 매개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선경 위원장이 밝힌 궁극적인 ‘원주한지문화제’의 갈 길이다. 물론 그 길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와 이념이 차지한 자리에 문화와 경제교류가 통일로 가는 더 빠른 지름길임을 경험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선경 위원장의 바람도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한지가 원주의 얼이 담겨 있고, 남북을 잇는 민족의 대표문화라고 한다면 왜 지금까지 원주 한지가 그 실체를 들어내지 않았을까?

“제가 보기엔 이런 것 같아요. 한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이나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 또는 글 읽는 선비들이 사용했는데, 한지를 만든 사람들은 다 민중들이었던 거죠. 흔히 한지를 일컬어 ‘백지(百紙)’라고 합니다. 나무를 심는 것부터 한지를 뜨는 것까지 100번의 손이 간다는 뜻이거든요. 민중들의 삶이 묻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돈과 권력이 있는 양반들이 이를 우습게 본 겁니다. 일종에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하! 그렇구나 싶다. 민초들은 주로 한지를 겨울에 만들었다고 한다. 농번기엔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부락 주민들이 개울에 모여 큰 가마 속에 닥나무를 넣고 쪄서 피를 벗기고, 이를 다시 한지로 뜨는 작업을 하는데, 혼자서 살 수 없는 공동체 노동이다. 이런 공동체 노동을 지체 높으신 어르신들이 장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후손들이 이를 복원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원주한지문화제’를 통해 바라본 지역문화의 방향

‘원주한지문화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철저하게 민간에서 주도했다는데 있다. ‘원주한지문화제’가 처음 개최되었던 지난 99년, ‘원주한지문화제’ 계획서를 들고 경기도청을 찾았다. 공동주관으로 강원도라는 이름을 각종 전단지에 표기해주면 재정적인 지원까지도 약속했지만,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이를 거부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전국의 관 주도의 축제가 7-800여 개가 있지만, 관이 관여하는 행사는 모두 망가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민간이 주도할 때만이 올곧게 지역문화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이선경 위원장의 설명이었다. 생색내지 않고 소리 없이 도와준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수용할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하자, 강원도청도 마음이 동했는지, 후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원주한지문화제’는 민간이 주도한 행사다. 행사 현장을 상기해보자. 노란 조끼 입은 수백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또 빨강 조끼 입은 수백명의 청소년체험단, 그리고 수십명의 아줌마 자원봉사자들, ‘원주한지문화제는’ 이렇게 천 단위의 자원봉사들이 만들어낸 지역문화축제다. 그러니 선심성, 일회성, 전시성이라는 단어가 붙을 리가 없다. 이렇게 4회 째를 맞이하면서 공무원들의 마인드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지금은 오히려 ‘원주한지문화제’를 민간이 계속 맡아 주길 원한다. 그들 스스로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선경 위원장은 이렇게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관이 가지고 있는 우월함, 수월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원을 쥐고 있기 때문에 관과 적절한 파트너쉽을 취한다면 더 좋은 행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한다.

두 번째는 철저하게 주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축제를 상기해보자. 행사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각종 장터와 포장마차가 즐비해 있고, 야밤까지 먹자 분위기로 전락한 모습. 행정당국도 으레 이런 모습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원주한지문화제’는 한지와 무관한 어떤 것도 배제한다. 이를테면, 어떤 지역에 축제가 열리면 소위 ‘축제 브로커’라고 불리는 포장마차 노점상들이 어김없이 몰려온다. 이런 포장마차 상인들이 일정하게 축제 분위기를 돋구는 역할을 하지만, 행사 본래 취지를 상당히 훼손하는데도 일조한다. 아무리 경찰이 으르고 협박해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결국 행사가 망가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원주한지문화제위원회’는 이를 철저히 배제했다. 공권력을 동원하거나 협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며칠 간, 이 행사의 취지가 무엇이고, 기존 행사와 차별성이 무엇인지 등등 진솔한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톨게이트 비용, 하루 운송비 등 약간의 보상을 해주고. 이렇듯, ‘원주한지문화제’는 주제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다. 한지를 소개할 수 있는 각종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한지 공예인들을 육성하기 위해 한지대전을 개최하고, 한지로 만든 옷을 만들어 패션쇼를 하고, 각종 체험교실을 만들고, 각종 포럼도 개최하는 등, 볼거리들을 풍성하게 했다. 이런 노력으로 강원도가 지정한 ‘강원도를 대표하는 우수 기획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밝히고 있듯, 철저한 사전 조사가 뒤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역축제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내용으로 하는가에 앞서 지역을 대표하는 소재를 발굴하고 지역민들이 참여해서 신명나게 놀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가 다리품을 팔며 3년 동안 지역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가 지금의 ‘원주한지문화제’를 만든 것이다. 사전조사는 ‘원주한지문화제’의 근간이기도 하지만 이 행사를 추동하기 위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한지에 얽힌 각종 자료들을 지금의 정서에 맞게 재구성한 노력은 100점 점수를 줘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것이 민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발성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원주한지문화제’를 통해 눈에 보이는 성과도 많이 남겼다. 치악산 구룡사 입구에 마련한 ‘한지공예관’, 사단법인 ‘한지법인’ 설립, 상지대학교에 관련 학과 설립, 그리고 곧 조성될 ‘한지테마파크’의 설립 등이 그것이다. 이 중, '한지테마파크‘의 설립은 한지 대중화에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1차 심사가 끝난 상태이고,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국적으로 종이박물관이 46개에 달하지만, 우리의 실정은 한솔 기업체가 만든 종이박물관이 유일하다. 유수한 종이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실정을 감안하면, ’한지테마파크‘가 기여할 문화적인 효과 및 가치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원주의 대표문화로서 뿐만 아니라 민족의 대표문화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종이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것이 이선경 위원장의 설명이다.

어느덧 ‘원주한지문화제’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지역 축제로 성큼 자라났다. 민간의 숨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원주한지문화제’는 지역에서의 문화운동, 또는 지역의 축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잊혀진 문화를 창조적인 발상과 실천으로 이뤄낸 것이다. 꿈이 있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는 그런 꿈을 이룬 것이다. 올해 ‘원주한지문화제’는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올 가을, 치악산에서 한지의 숨결을 느끼며 동동주 한잔 기울이는 건 어떨까?


▶ 명 칭 : 제4회 2002원주한지문화제 - 2002 Wonju Hanji Festival
▶ 행사주제 : 한국의 美 - 한지 (The Beuaty of Korea - Hanji)
ꡐ전통과 현대의 만남ꡑ (The Communication of Tradition & Modernity)
▶ 기 간 : 2002. 10. 2(수) &#732; 10. 6(일) 5일간
▶ 장 소 : 국립공원 치악산 구룡사 일대(강원도 원주 소재)
▶ 참가대상 : 국내 초대작가, 한지공모대전참가자, 한지예술 관련 학계, 업체 등 각종 단체
▶ 주 최 : 원주한지문화제위원회
▶ 주 관 :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사)한지개발원
▶ 후 원 : 문화관광부, 한국관광공사, 강원도, 원주시, 강원문화재단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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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처럼" - 강릉경실련


인터뷰 : 김진욱(강릉경실련 시민환경센터 사무차장)/김세윤 간사
작 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회귀성 어류들이 있다. 바다에서 자라 성숙한 다음 산란(産卵)하기 위해 태어난 하천으로 다시 돌아오는 습성을 지닌 어류들. 연어, 송어, 뱀장어, 황어 등이 여기에 속한다. 회귀성 어류들에게 산란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본능에 의해 저 멀리 바다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하천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급류와 맞서야 하고 둑을 넘어야 하며, 돌덩어리에 몸을 으깨야 한다. 그야말로 순리와는 정반대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산란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강릉에는 큰 줄기의 강이 두 개 있다. 남대천과 연곡천이 그것인데, 회귀성 어류들이 산란을 위해 찾는 곳이다. 지금도 연곡천은 다양한 회귀성 어류들이 찾아온다. 회귀성 어류가 찾아온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남대천의 상황은 다르다. 하천의 중요성을 잠시 잊어버린 사이, 수질오염이 급속히 악화되었던 것이다.(현재, 연어로 유명한 하천은 양양 남대천이다) 예전에 볼 수 있었던 연어, 은어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도대체 강릉 남대천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강릉경실련을 비롯해 강릉시, 그리고 지역의 여러 단체들은 지난 99년부터 남대천을 살리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해왔다. 강릉시민들에게 있어서 남대천은 단순히 흐르는 물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들의 노력은 각별하다. 이런 노력을 일본에서도 높이 샀는지 지난 ‘강의 날’행사(밑에 윤여창의 글 참조)에서 “히로마쯔 상”이라는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히로마쯔는 일본에서 강 살리기 운동의 대부로 통하기도 한다.

남대천을 살리자는 운동은 지난 99년부터 일어났다. 이전까지 남대천은 죽어 있는 하천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하천을 살리려는 시민들이 움직임은 전문한 상태였다. 시민들이 남대천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는 남대천의 오염원이 강릉수력발전소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지역의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강릉수력발전소는 흐르는 물줄기를 변경해서 다른 곳으로 유도한 다음, 떨어지는 낙차에 의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이를 유역변경식 발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발전소의 방류수가 그대로 남대천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하면서 남대천의 수질은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일종의 냉각의 역할을 하는 이 방류수는 원래의 하천 온도보다 무려 5배가 높다. 더구나 이 방류수의 발원지역이 고랭지의 농약, 축산폐수, 스키장 등으로 인해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라 자연스럽게 남대천의 수질도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1년부터 방류하기 시작했으니 무려 10년 동안 그렇게 방치됐던 것이다. 결국 남대천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강릉 시민들은 남대천 살리기 운동은 전개하게 된다.

“죽어 있는 하천을 살리려고 보니까, 오염원이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죠. 9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릉수력발전소가 원인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발전소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이하 한수원)은 이 사실을 발뺌했습니다. 현재에도 명확하게 인정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공급위주의 전력정책을 펴왔다. “전력이 부족하니까 발전소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아직까지 먹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수력발전소를 해양선 근처나 백두대간 곳곳에 무차별적으로 건설해 왔다. 물론 이후에 벌어진 환경파괴 현상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 없이 말이다. 강릉수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김진욱 사무차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강릉수력발전소의 무용론을 펼친다. 남대천을 오염시키는 주원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발전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데 원인을 들고 있다. 즉, 강릉수력발전소는 첨두부화용(주1) 발전소로서 전력이 모자라는 7-8월에 가동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예산만 낭비하고 남대천 생태계만 파괴한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원성이 높았던지 다행스럽게도 작년 3월부터 발전소 방류수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99년부터 남대천을 살리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거세졌고, 강릉시를 비롯해 시민단체, 관변단체 등이 모인 ”남대천살리기범시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작년 3월, 투쟁위원회는 한수원 사장과의 면담을 통해 방류수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을 어기고 작년 7월 한수원이 방류수를 내보내겠다고 발표하자 지역민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한수원 앞에서 약 두 달 간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의 저항이 완강하자 한수원도 한 발 물러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한 차례도 방류수를 내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의 정도는 매우 높았다고 한다.

“저희 단체뿐만 아니라 관변단체의 참여,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매우 높았습니다. 남대천이 그저 죽어 있는 강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시민들이 오염 원인을 인식하고부터는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한수원과 한창 싸움을 할 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플랜카드를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명운동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수원 앞에서 두 달간 농성할 때도 여러 단체가 돌아가면서 참여했기 때문에 농성장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김 사무차장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이 생활 현장에서 죽어 있는 하천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오염원의 유입이 없었던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남대천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파괴된 환경과 그렇지 않은 환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느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는 것. 이를테면, 하천을 콘크리트로 메우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복개 하천을 생각해보자. 시민들은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상상할 수 없다. 덮여 있음으로 해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남대천은 시민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접근할 수 있다.

“......지금은 꼬마 아이들이 소(沼)(주2)에서 놀기도 합니다. 예전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들어갈 수 있으니까,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민들이 방류하면 안된다, 이 상태로 보호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철새들이 남대천 등으로 날라 오기도 했습니다. 수질이 많이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남대천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하천이 생활 속의 하천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만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강릉경실련에는 ‘남대처친구들’이라는 자발적인 시민모임을 꾸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수질조사, 자전거 타고 식생조사 등을 해왔고 청소년체험환경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도 하천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했던 쓰레기 줍기 운동도 전개했으니 말이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지금의 남대천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불씨는 남아 있다. 강릉수력발전소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강릉시와 시민단체가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산업자원부의 조정안을 두고 한수원이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세는 시민의 입장 쪽으로 흐르고 있지만, ‘국책사업’이라는 미명아래 한수원의 돌발 행동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강릉경실련은 남대천을 반면교사로 삼아 연곡천 의제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남대천보다 생태계가 잘 보존된 연곡천을 그대로 방치하다간 어느 틈에 개발의 물결로 더럽혀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릉시에는 남대천 뿐만 아니라 연곡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있습니다. 연어, 은어, 황어, 뱀장어 등의 회귀성 어류들이 서식처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 여러 기업들이 온천 등의 관광지를 만들려고 하고 했지만, 시민들이 막아냈습니다. 남대천의 오염을 거울 삼아 올해부터 ”하천의제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의제사업과는 무관하게 철저히 주민들과 함께 하는 사업입니다. 올해 중으로 의제를 작성할 예정이고, 지금은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개발에 대한 욕구가 남아 있긴 합니다만, 연곡천 주변의 식당 주민들도 ”연곡천이 잘 보존되어야 사람들도 찾지 않겠느냐“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제만들기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가꿔나가는 모범적인 하천의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관에 맞서 싸워 이긴 하천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해 가꾼 하천”을 위해 강릉경실련은 시민들과 함께 실험을 하고 있다. 하찮은 마을의 작은 도랑이라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켜나가고 있는 일본의 하천 살리기 운동을 배운 것도 큰 소득이었다. 김세윤 간사의 “메이저 단체만이 참여하는 운동이 아니라 지속성을 지닌 소규모 자치모임들이 힘을 발휘하는 하천 살리기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결국 무임승차하지 않으려는 시민들이 많아 질 때, 인간과 인간에 대한 불평등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불평등이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 모쪼록 남대천과 연곡천이 강릉 시민들에게 사랑 받는 하천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노래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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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약간 전문용어인데, 쉽게 설명을 달자면, 발전소는 크게 기저부화용과 첨두부화용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365일 발전소를 가동함으로써 매일 사용해야 하는 기초가 되는 전력인데 비해 후자는 위급한 시기, 특히 여름 같이 전력이 모자랄 때에 가동하는 발전소를 말한다. 보통 5% 예비전력이 남았을 때를 위기상황이라고 말하는데, 최근 10년 간 이런 상황은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전력이 부족한 편이 절대 아닌 것이다. 필자가 반핵운동을 하면서 귀동냥한 내용이다

(주2) 호수보다 물이 얕고 진흙이 많으며 침수 식물이 무성한 곳을 일컫는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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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지방선거의 실험실"

­인터뷰: 한재랑((사)관악사회복지 사무국장)
강내영(관악주민연대 정책기획팀장)
­정 리: 하승우(운영위원)

1991년 6월 20일 시․도의회 의원선거 실시 이후 12년, 1995년 6월 27일 단체장 선거를 포함해 4대 지방선거가 실시된지 8년이 되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 느리다 못해 지겨울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의 눈엔 그 속도의 변화가 빠르기만 하다. 눌려있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기발하고 새로운 욕구들이 분출하고 있다. 그런 변화의 중심에 관악구가 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관악구는 새로운 사고(?)를 쳤다.

(사)관악사회복지의 한재랑씨는 <모색> 3호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관악구를 소개하고 있다.

“관악구는 총 27개동으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4.9%, 인구의 5.5%(약 55만명)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들어 서울 도심부의 주택개량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고 도심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재정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대표적인 빈곤지역이다. 따라서 타 지역에 비해 사회복지 관련 시설과 기관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1970년대부터 빈곤층을 위한 탁아방, 공부방, 어머니학교,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등 도시빈곤층의 기초생활과 복지의 욕구를 중심으로 주민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관악구의 새로운 실험은 이런 주민운동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실험이길래 이렇게 서론이 길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번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관악구 시민사회단체는 '관악지방자치연대'라는 연대기구를 만들어서 후보를 지원했고 4명의 후보 중 2명을 당선시켰다. ‘시민후보를 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맞다. 그건 그렇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관악지방자치연대는 ‘주민의 힘으로 관악을 바꾸자’라는 6․13지방자치선거 정책자료집을 만들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각각 5개 분야(주민자치, 사회복지, 환경, 교육, 통일)의 정책을 만들었고 그것을 하나의 자료집으로 묶어 냈다. 그리고 그 자료집을 묶어낸 비용과 창립대회 비용은 이런 정책에 동의하는 ‘유권자613인 위원회’의 회비로 충당되었다.

이제 좀 새로운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그래도 양에 차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관악지방자치연대가 제안된 것은 2001년 10월. 관악구에 있는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 ‘관악사회복지’, ‘관악주민연대’, ‘전교조 관악동작지회’, ‘통일세상을 열어가는 관악청년회’가 참가단체로 참여했고(한국청년연합회(KYC) 관악지부는 참가단체이지만 결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관악을지구당이 참관단체로 활동했다. 준비위원회 7차례 모임을 포함해 총 15차례 대표자회의가 열렸고, 정책개발모임 12차례, 실무자 모임도 6차례 진행되었다고 한다. 4월 26일(서울대 입구역)과 5월 4일(관악산 호수공원) 두차례 정책캠페인을 진행했고, 4월 27일 창립대회, 5월 21일 주민자치후보 약속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이런 긴 진행과정은 선거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 아니라 자치를 고민하던 사람들의 노력을 모은 모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이 연대기구를 제안했던 (사)관악사회복지 한재랑 사무국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한 단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정책을 내자, 그리고 선거 이후 후보의 당락과 관계없이 그 정책을 제안했던 단체가 그것을 책임지자, 그리고 당선된 후보자들이 그 정책을 실천하도록 계속 모니터하자라는 고민이 있었죠.”

그런 고민과 책임을 모아놓은 것이 6․13지방자치선거 정책자료집이다. 한 권의 자료집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그 속내를 간략히 살펴보자.

1. 주민자치정책: 풀뿌리 민주주의 꽃! 주민들의 참여입니다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빨간 신호등! 주민소환제도.
•내라 바로 구청장! 지역살림도 나라살림도 ‘주민투표’로 결정하자.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민주주의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주민이 스스로 나서야 합니다! 내 아이들까지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참여예산제 시행! 우리 지역의 알뜰한 살림을 보장하자.

2. 생태환경정책: 환경을 생각하는 관악구! 미래세대의 희망입니다.
•관악산을 관통하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건설 반대!
•지역의 쉼터,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인 관악산 ‘서울생태특별공원’ 지정과 적극적인 관리정책!
•도림천을 아이들과 버들치가 함께 뛰노는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자!

3. 사회복지정책: 복지는 권리입니다.
•가난한 이웃들의 생계와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의 복지예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도록 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탈락하는 억울한 이웃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도시지역 보건지소를 운영해야 합니다.
•좋은 보육시설 확대와 공공성 확보를 위해 보육조례를 제정해야 합니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자활사업을 위해 복지행정체계를 정비하고 주민들의 삶에 바탕한 복지 및 자활관련 계획을 수집하며 민간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참여행정을 펼쳐야 합니다.

4. 교육문화정책: 청소년 문화와 교육을 살려야 합니다.
•청소년 문화가 살아있는 관악구! 신림사거리를 청소년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고 문화까페를 설치 운영, 청소년․교육․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청소년 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지역특성에 맞는 교육을 활성화! 방과후 공부방에 지원을 확대하여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지역교육센터 건립, 지역환경 및 역사 등 현장학습프로그램을 활성화합니다.
•지역문화 활성화! 주민과 함께 하는 문화축제를 만들기 위해 관악구와 민간단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문화정책단’을 구성합니다.
•관악도서관, 문화관을 주민에게! 주민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주민들이 도서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5. 통일정책: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관악구
•평양시 대성구역(강남군)과 자매결연! 관악산을 연계한 관광, 특산물 교환, 인도적 지원, 학교간 자매결연과 교환학습 추진.
•단일기 달기 운동 전개! 6․15남북공동선언 기념일과 광복절 주간에 태극기와 더불어 단일기 달기 운동을 전개합니다.

이상이 관악지방자치연대가 만든 무시무시한(?) 지역정책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고민의 진지함이 숨을 막히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을까’, 그냥 대단할 뿐이다.

이런 대단한 일을 하는 과정은 순탄했을까? 같은 지역에 있지만 개별적으로 활동해 왔던 단체들이 같은 이름을 내걸고 일을 하자면 나름대로 갈등도 있었을 것 같다. 한재랑씨는 이런 어려운 질문에도 선뜻 대답을 해 주었다.

“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정책의 의미에 대한 관점은 각 조직의 위상에 따라 달랐어요. 중앙단체라서 지역정책을 내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고 정책을 단순히 도구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죠. 그러다보니 약속운동에 참여한 후보를 지원하는 틀도 애매모호했죠. 지방자치연대가 직접 후보를 내고 당선시키는 것과 정책을 약속하는 후보를 지원하는 작업이 섞여 있다보니 적절히 지원이 안 된 것 같아요.”

‘약속운동’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왔다. 무엇일까? 그것은 지방자치연대에서 마련한 정책을 후보들이 성실히 지킬 것을 약속하는 것이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활동원칙: 나는 주민에 의한 참된 지방자치 실현이라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당락에 관계없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특히 관악주민의 목소리를 올곧게 대변하고자 하는 관악지방자치연대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활동에 반영한다.

2. 활동의 기본방향: 나는 주민참여의 제도화와 직접 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는 등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방자치 실현을 활동의 기본방향으로 하며, 관악지방자치연대가 제시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3. 선거운동: 나는 돈 안쓰는 선거, 올바른 정책이 경쟁하는 선거,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선거를 만들기 위해 선거법을 가장 모범적으로 지키는 것은 물론, 선거비용을 주민 앞에 공개하는 등 맑고 투명한 선거운동, 주민이 주인되는 선거운동을 펼친다.

4. 의정 활동: 나는 당선 후 의정활동을 수행함에 있어 주민들과 약속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공동의정활동을 펼친다. 나아가 관악지방자치연대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례 협의해 공동의 지역과제와 정책을 개발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연 1회 이상 의정보고회를 개최해 주민들에게 의정활동을 보고한다.

실제로 후보들은 5월 21일 관악구 구민회관에서 약속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주민들은 이런 새로운 실험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월드컵 또는 대통령 아들들 때문에 무관심하지 않았을까?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어요. 4월 26일 서울대 입구역에서 진행한 정책캠페인에서는 주민들이 줄을 서서 참여했어요. 그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주민들이 의견을 밝힐 틀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기회가 마련되면 의견을 표시하고 제안하는데. 그래서 일상적인 정책캠페인이 중요할 것 같아요.”

실제로 관악구의 주민 300명 가량이 ‘유권자 613인 위원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금으로 선포식과 정책자료집을 준비했다. 이런 뜨거운 관심과 참여는 관악구를 일구는 새로운 힘이 될 것이다. 자연히 관악지방자치연대도 이런 관심과 참여를 받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지방선거에 만족하기보다 일상 속에 뿌리내릴 수 있는 틀을 만들자라는 평가가 나왔어요. 그래서 상설기구를 만들거나 포럼을 구성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의 ‘대리인 운동’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관악구의 실험은 이 운동과 많은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일본의 대리인 운동이 생활클럽 생협이라는 한 단체에서 진행되었다면, 관악지방자치연대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모여서 선거를 준비하고 후보들과 관계를 맺었다. 외국의 경험과 한국의 경험을 접목해서 독창적인 실험을 진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독창성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언제부턴가 소위 ‘시민후보’라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시민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너도 나도 다 시민을 위해 일하겠다니 대한민국 만세다.

그런데 시민을 위하려면 꼭 선거를 나와서 당선되어야 하는 걸까? 꼭 자기가 후보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조폭들도 “친구야, 니 뒤에 내가 있다”며 눈물겨운 우정을 보이는데, 꼭 자기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냥 묵묵히 자기 영역을 지키며 일하는 것이 더 시민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물론 지역의 발전을 위해 직접 뛰어들고픈 욕심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욕심이 큰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그런 길을 걸어야 한다면 누가 발이 되어 지역을 뛰어다닐까? 독수리 오형제가 지킬까? 선거에 나오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지원하고 감시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서 관악지방자치연대처럼 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가치가 더 돋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시민후보’라는 말이 내키지 않는다. 후보가 시민후보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것은 선거에서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의 ‘시민성’을 검증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동안의 활동경력이 아니라 그가 지금부터 지역에서 실현하려 하는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다. 뛰어난 누구 한 사람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길 기대하는 것은 수동적인 시민을 전제한다. ‘시민후보’임을 백 번 강조하는 것보다 ‘시민정책’을 공약(空約이 아니라 公約이다)으로 내걸고 시민들이 그 과정을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올바르다. 그래서 관악지방자치연대의 실험은 소중하다.

관악지방자치연대와 별도로 관악주민연대에서는 ‘관악구 구의원후보 토론잔치’라는 행사를 마련했다(관악지방자치연대와 합의없이 진행된 문제점이 있다). 보통 구의원후보들의 정책은 잘 논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구의원이 지역과 제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정책의 중요성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구의원 후보들을 위한 토론잔치를 마련했다 한다. 여건상 관악구 전체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일단 봉천 11동과 신림 10동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토론회가 아니라 토론잔치라는 명칭을 쓴 이유는 뭘까? 강내영씨는 “마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토론회보다는 잔치라는 형태가 더 적절할 것 같았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구의원후보들이 풍물패와 함께 시장을 돌며 토론잔치를 홍보했고 함께 손을 잡고 인사했다고 한다. 한 동네에 80~100명의 주민이 참여했다고 한다. 관악구 동규모가 큰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많은 참여이다.

후보들 사이에 갈등은 없었을까? “사전에 사무장회의를 진행해서 사전조율을 하고 과정을 공유했어요. 질문이나 진행방식도 합의해서 진행했죠. 놀라운 일도 있었어요. 봉천 11동의 경우 사무장회의에서 이동 중에 로고송을 틀지 않기로 자율적으로 합의했어요. 저희는 개입하지 않았는데. 토론진행과정도 공격이 아니라 때론 칭찬이나 감사도 하고, 분위기가 좋았죠.”

얘기를 듣고 있으니 참 새로운 시도인 것 같다. “이후에는 동네 주민들이 주도해서 혹은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기존에 진행되던 합동유세나 선관위와 특별한 문제가 없고 잔치의 기운을 선거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은 시도일 것 같다.

그리고 관악구의 시민사회단체는 지방선거라는 당면사안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활동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관악사회복지는 신림 6동과 10동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웃들의 생활실태와 필요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27일까지 한달 동안 23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일일이 가정을 방문하는(총 192가정) ‘빈곤가정 지역사회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욕구조사’를 진행했다.

아마도 관악산의 정기가 활동가들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 그 정기를 갉아먹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는 꼭 막아야 할 것 같다. 더불어 북한산도 꼭 지키자.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하승우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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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학교도서관을 열자" - 좋은 학교 도서관 만들기 협의회
인터뷰 : 류명화 사무국장
정 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운영위원)


기억을 더듬어 보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도서관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럼 중학교는 어떤가? 고등학교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학교도서관의 이미지는 장서로 가득 찬 최신식 시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칙칙한 조명 밑에 칸막이 책상과 의자, 그리고 띄엄띄엄 장서가 꽂힌 책장 위에는 오래된 거미줄도 보였던 것 같다. 물론 관리 선생님이나 사서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 항상 문이 닫힌 버려진 공간이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의 기억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은 어떨까?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 종이에 인쇄된 장서를 일부러 찾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강산이 변한 만큼 양이나 질적 수준은 많이 좋아졌으리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대체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19세기의 시설에서 20세기의 선생님이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그냥 비아냥으로 들리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학교도서관의 실정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다.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제34조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이에 준하는 각종 학교를 포함한다)에는 학교도서관을 설치하여야 한다.”라는 의무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래 표를 보자.(2000년 교육통계연보) 도서관이나 도서실이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학교가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100% 가깝게 설치되었다. 법적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구분 한국 일본설치율(%)
학교수 학교도서관(실)수 설치율

초등학교 5,267 3,056 58.0 99.8
중학교 2,731 2,160 79.1 99.0
고등학교 1,957 1,801 92.0 100.0
합계 9,955 7,017 70.5


“90년대 초, 수원여성회 내에는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모임」이라는 소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의 활동을 통해 느낀 것은 학교도서관이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토대로 96년도에 “우리아이 독서 환경 이대로 좋은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학교도서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사 내내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도서관에 지원되는 예산이 연평균 100만원을 넘지 못했고, 맞춤법 이전 책들이 다수였으며, 사서 선생님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조차 열리지 않는 곳이 허다했습니다. 그나마 점심 시간이나 방과후에 잠깐 열리는 정도였습니다. 이 토론회를 통해 학교도서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었고, 이후 학교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고민들을 끊임없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협의회(이하 협의회)”의 류명화 사무국장은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질적인 수준을 접어두더라도 절대적인 시설의 수준이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학교도서관 현실이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닫힌 공간으로 간주되었던 학교도서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신념이 생기자 해야할 일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주목한 것은 도서관 전문 사서들의 영입이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이렇게 고민할 즈음, 국가적인 환란(IMF)이 몰아친 지난 98년, 실직자를 위한 공공근로 사업이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수원여성회는 학교도서관 사서 파견 계획서를 제출하게 되고, 수원시가 이를 선정하여 이 운동이 가속을 받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안산과 군포에서도 사서파견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난 99년 12월, 지금의 협의회가 구성되었다. 현재는 9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대상 지역은 20여 곳을 넘는다. 참여하고 있는 학교 수도 점차 늘어 2002년 상반기 현재 175개교에 사서를 파견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10개교가 늘면 185개교에 달한다. 이런 노력으로 이 사업은 모범적 공공근로 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공근로 사업이라는 제도는 상당히 불합리합니다. 3개월마다 다시 등록을 해야하기 때문에 학교에 파견된 사서로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퇴직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전혀 받을 수 없다보니 직업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수밖에 없지요. 학교 사정은 더욱 우리를 난감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사서를 보낼테니 상주만 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로 학교장들은 사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죽어 있는 공간을 살리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첫 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생소한 사업에 대한 학교장들의 거부감, 불합리한 제도로 인한 사서들의 불안감, 그리고 교사나 학부모들의 인식 부족 등은 이 운동의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시나브로 진행되면서 눈에 띄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공간에 사서가 들어서는 것 자체가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상주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특히 사서가 파견된 농촌 지역 학교에는 학기 중은 물론이고 여름방학에도 학교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집에 가도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류명화 사무국장이 가장 흐뭇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점이다. 아직은 방과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만, 방과후 특별히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도서관은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옛날을 생각해보세요. 도서관은 발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는 곳으로 여겨졌잖아요. 그러나 활동력이 왕성한 아이들에게 ‘정숙’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거든요. 아이들은 뛰어다니기도 하고, 누워서 책도 보고, 큰 소리로 읽기도 하고...이런 분위기가 아이들에 맞지 않을까 합니다."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은 단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통해 교육환경개혁운동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문화공간, 공동체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류명화 사무국장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급한 것은 죽어 있는 도서관을 살리는 일이다.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아직까지는 필요한 것이다. 류국장은 올해가 마무리하면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내년부터 사서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협의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교육을 통한 학부모들의 의식 변화이다.

“2001년도에는 18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습니다. 32개교의 학교에 사서를 파견하는데 15억을(학교 파견 사서 인건비로 사용), 나머지 3억원은 자원봉사자 교육으로 사용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학부모들은 학교에 눈 도장을 찍기 위해 학교에서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원봉사의 형태는 매우 사적인 영역입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굉장한 힘이 될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일은 교육개혁이라는 거대한 일에 비하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실질적인 봉사를 위해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총 5일 동안 20시간의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약 2,000명 정도 교육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고, 엄마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개혁을 이야기 할 때, 제도 못지 않게 학부모들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 학부모들의 비판과 협력 없이는 개혁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 학부모들의 자원봉사 능력은 많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서는 헌신성을 발휘한다. 이런 풍토에서 학부모들에게 학교와 자식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한다면, 학교운영의 일주체로서 큰 힘이 될 것이다. 수원여성회를 비롯해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고양, 파주, 군포, 의왕, 성남, 용인. 안산, 시흥, 안성, 평택 등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문화자원봉사자 교육을 여러 차례 실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래 표는 성남에서 실시된 문화자원봉사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1강 : 독서의 중요성
2강 : 마음 열고 얘기해요 - 상담기법
3강 : 부모의 역할
4강 : 가정과 학교에서의 독서지도
5강 : 자원봉사의 의의
6강 : 어린이 책의 이해 및 선정방법
7강 : 앞서가는 여성, 당당하게 사는 여성
8강 : 학교도서관 운동의 방향


협의회가 구성된 지 만 3년아 안됐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류명화 사무국장은 말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활동은 미비하지만, 중앙 차원에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운동본부”가 발족되면서, 경기 지역에 한정된 운동을 전국으로 전파할 수 잇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에 담당 사서가 한 명도 없었는데, 올해 정식으로 6명의 사서를 채용하게 되었다. 이 뿐이 아니다. 교육청은 2001년에 51억을 시작으로 2003년까지 179억 원을 투입해 학교도서관 정보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장학사가 담당한 무수히 많은 업무중 하나에 불과했던 학교도서관 업무를 부족하지만 한 명의 담당 직원이 담당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물론 경기도 지역에 1,000개가 넘는 도서관을 한 명이 관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전담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학교장들의 마인드도 차츰 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평균 예산 배정이 100만원도 넘지 못했던 것을 요새는 수천 만원의 돈을 들여 학교도서관을 바로 새우는 일을 스스로 챙기고 있다. 가시적으로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운동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점도 많은 것 같다.

“이 사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있는데, 사서들이 공공근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기도 지원금의 대부분은 사서들의 인건비로 충당되는 데다, 이에 따른 부대비용(보험금 등)도 만만치 않아 경기도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 많은 인력을 어떻게 가동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고, 또 하나는 학교에서 사서들의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식 교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서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싶어도 학교에서 No하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학교도서관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위해서라도 사서들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이런 문제점들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학교도서관에 대한 각 주체들의 의식을 바꾸는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실적수준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이 운동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절대적 시설을 늘리는 일과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 지금 협의회는 두 마리 토끼를 몰아가고 있다. 특히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에는 문화자원봉사자들로 대변되는 학부모들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서들이 역할이 중요하며, 이들을 운동의 주체로 어떻게 세우는가가 관건이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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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없는 주민감사청구" - 광진주민연대

인터뷰 : 조남식 사무처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광진정보도서관(이하 정보도서관)’을 검색하면, 광진구 정보도서관 홈페이지가 뜬다. 여기 저기 서핑을 즐겨보자. 한 눈에 도서관을 확인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홈페이지 첫 화면에 떠 있는 “도서관 안내 동영상 보기”를 클릭하자. 정보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더라도 도서관의 세부적인 정보를 짧은 시간에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11월에 개관한 정보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규모나 시설이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보도서관은 한강을 배경으로 종합자료실, 어린이열람실, 장애인 코너 등이 자리한 본관과 일반 열람실, 영화 및 음악 감상실 등을 보유한 별관으로 나뉜다. 한강 옆에 자리한 야외공연장은 시민들의 눈길을 끌만하다. 동영상에 비친 정보도서관은 광진구 시민들을 위한 '지식의 눈과 귀'가 될 만큼 훌륭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최근 1년 동안 이 도서관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작년 12월 초, 18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정보도서관이 서울시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이유는 1,270여명의 주민들이 정보도서관 ‘부적격 인선’에 대한 감사를 신청한 것이다. ‘부적격 인선’이란 도서관장과 사서과장을 지칭하는 것인데, 광진구청 퇴직관료가 도서관장을, 약사출신의 비전문가가 사서과장을 역임하게 된 것에서부터 문제의 발단이 시작된다. 현행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제24조 1항에 의하면 공공도서관 관장은 사서직에 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법률의 근거를 무시하고 광진도서관의 위탁관리기관인 문화원 측에서는 낙하산식 인사로 퇴직공무원을 도서관장에 앉힌 것이다. 또한 문화원의 이사 경력을 지닌 한 약사출신 비전문가가 가장 전문적이어야 할 사서과장 자리에 역임되었던 것이다. 이런 비민주적 인선관행을 문제제기하며 광진주민연대를 비롯해, 도서관운동연구회, 민주노동당, 전교조 등의 단체와 심범섭 대표 등이 “광진정보도서관 부적격 인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리게 되었고, 2001년 7월부터 주민청구인서명운동을 시작, 10월초에 서울시에 주민감사청구를 접수하게 된다.

“저희가 주요하게 봤던 관점은, 몇몇 소수의 기득권자, 또는 토호세력들이 지역의 알토란같은 자리들을 돌아가면서 차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기득권세력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정보도서관의 도서관장과 사서과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민의 부름으로 행정을 펼쳐야 할 구청장이 측근 세력들을 주요 자리에 앉히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주요 시민편의시설이 제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조남식 광진주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구청장 측근으로 알려진 비전문 인사가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 문제가 지역사회에 불거지자 공대위 측에서는 인선의 문제이므로 구청과 문화원과 충분한 대화로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초기에는 위탁관리기관인 문화원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원 측은 이 사안을 덮는데 급급했고, 구청 측도 책임 회피를 통해 발을 빼려 했다. 결국 공대위는 지방자치법이 보장하고 있는 “주민감사청구”를 활용, 3개월간의 서명을 통해 1,200여명의 청구인을 모으게 된다.

현행 지방자치법 13조 4는 주민감사청구를 규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그 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의 처리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상위 기관에 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 지난 뉴스레터(11호)에 소개된 바 있는 송파구청장 외유사건의 경우도 이 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 절차나 내용은 13조 3 조례 제․개․폐 청구권과 유사하지만(‘뉴스레터 18호’에 자세히 소개) 청구인 수는 좀 더 완화된 수준이다. 그러나 이 법에도 문제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공대위는 서울시 감사를 답답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민들을 대표해서 주민감사청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 과정에는 주민들의 참석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참석뿐만 아니라 참관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감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도적인 문제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공대위 측에서는 서울시의 ‘주민감사청구심의회’가 주민들이 제출한 청구서의 내용만으로 감사를 진행할 경우, 진실이 묻힐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서울시 감사관실에 연락해 주민들의 참석을 요구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파구와 마찬가지로 위원회 명단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상급 행정기관에서 감사하도록 되어 있는 주민감사청구제도는 그 취지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어 왔다. "주민 없는 주민감사청구"라는 말이 주민감사청구제도의 허점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감사결과(2001년 12월 공표)는 "도서관장은 민간위탁 사무의 근본취지에 부합하는 전문가 임용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과 사서과장에 대해서는 ”사서직 경험자 또는 자격증소유자 교체 임용“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광진구청은 서울시 감사결과를 이행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보도서관은 '서울특별시광진구립정보도서관설치및운영조례'의 근거에 의해 설치, 운영된다. 그러나 조문 어디에도 위탁의 선정기준이나 선정과정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한 도서관장은 시장이 임명하며, 위탁인 경우에는 수탁자가 구청장과 협의하여 관장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선정기준이나 절차가 생략되어 있다.

“무엇보다 현행 조례에는 도서관 운영에 대한 책임성이 애매하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 문제만 하더라도 광진구청은 위탁업체에 책임으로 떠넘기고, 수탁자는 이렇다할 책임을 지려하지 않습니다. 운영 상 책임의 소재가 명확치 않아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공시설의 사회적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는 지방자치 시대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가 뒤따라야 한다. 조남식 사무처장이 제기한 책임성의 모호성도 결국 시민들의 참여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유일하게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20조 위원회 설치 조항만 하더라도 위원회 구성에 대한 짤막한 언급 이외에는 위원회의 기능, 선정기준 및 절차, 회의 등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제도의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다.

광진구에서 벌어진 주민감사청구 운동은 공공시설의 인선문제와 관련해서 주민들이 감사청구를 제기한 첫 사례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인선의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조남식 사무처장이 밝힌 대로, 지역사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이 생략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시민참여의 확보, 접근성의 용이함,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 강화, 기타 운영시간의 문제 등 보다 폭넓은 접근을 통해 도서관과 같은 공공시설이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는 밑거름의 산실로 거듭나는 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지금도 정보도서관 건물에는 "전국 최우수 도서관 선정“이라는 커다란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이 글귀가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정보도서관의 인선문제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머지않아 정보도서관 건물에 시설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전국 최우수 도서관 선정“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지길 희망해 본다.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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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학교, 학교종이 없는 학교" - 벼리학교
­ 인터뷰: 감주영 선생님
­ 정 리: 하승우(운영위원)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초등학교 때 많이 들었고 불렀던 노래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종을 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종을 치면 기계적으로 모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권위적인 느낌을 준다.
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부모들은 누구나 한번쯤 웬지 모를 불안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아마도 공동육아를 경험했던 부모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방과후’ 모임이 구성되기도 하고 제도권을 넘어서 대안학교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벌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여러가지 대안학교들이 있다. 잘 알려진 간디학교같은 대안학교도 있고 하자센터같은 도시형 대안학교도 있다. 그런데 대안의 바람은 주로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의무교육의 영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초등교육으로까지 불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대안초등학교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안초등학교로는 광명YMCA의 '볍씨학교', 부천의 '산어린이학교', 일산의 '자유반디학교'가 있다. 그리고 2002년 3월 7일 안양의 성공회교회에서 ‘벼리학교’가 개교했다. 안양YMCA 생협 내의 ‘열린 사랑’이라는 소모임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었고 현재 8가구 9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한 학부모는 대안학교를 준비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돈이 남아돌아서? 아닙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영재교육을 위해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아닙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엄청 욕심이 많고 까다로워서? 아닙니다. 초등 2년을 보내보니 아이와 나의 앞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끔찍해졌습니다. 지금의 학교도 맛보았으니 이렇게 꿈꾸는데로 이룰 수 있고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곳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나름대로의 어려움도 극복해 가며). 세상의 잣대가 살면서 그리 중요하던가요? 세상의 주류는 무엇입니까? 또 하나의 무리들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지 않습니까? 욕심을 비워가며 느리고 평화롭게...지금의 교육은 아이를 뺑뺑이를 돌리고, 나아가선 줄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어 잡아당기게 된 줄로서, 세상의 중심인 아이로 성장하며, 더불어 함께 가는 모습을 의미한다고 한다. 벼리학교는 기본적으로 YMCA의 교육이념인 영(Spirit), 지(Mind), 체(Body)의 균형있는 전인교육을 지향하고, 교육이념은 ●자연과 함께 하는 자연친화교육, ●다름과 함께 사는 공동체정신 지향,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생활중심교육, ●과정중심․학습자 우선의 통합교육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쟁하지 않고 공동체 속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어린이를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는 활동을 개별적 흥미에 맞게 교육한다. 또 교과를 정신․표현․지혜․삶 등으로 통합, 월별 주제를 중심으로 교육하고 농사짓기, 동물기르기, 바느질하기, 요리하기, 집짓기 등 생명과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현장체험 학습을 병행하고 있다.
벼리학교의 교과내용은 총 5개로 구분된다. 첫 번째 교과인 정신교과는 명상과 나눔(생활, 마음나누기)을, 두 번째 교과인 지혜교과는 수(수학), 문화(역사), 생명과학, 외국어, 민주시민(사회)을, 세 번째 교과인 표현교과는 국어와 표현(듣기, 읽기, 감상, 말하기, 쓰기, 그리기, 토론), 마음표현(연극, 음악, 미술), 도예와 풍물(음률과 공동체 정신을 배우기), 몸표현(전래놀이, 몸기르기, 춤)을, 네 번째 교과인 삶 교과는 생활노작(요리하기, 바느질하기, 집짓기, 목공)과 생명노작(농사짓기, 동물기르기)을, 다섯 번째 교과인 특별활동은 벼리운동회, 공동체나들이, 가족나들이로 진행된다.

“일반 초등학교에서 하는 수학이나 국어를 하기는 하지만 교과서 없이 주제에 맞춰서 수업하고 있어요. 일방적인 수업은 아니고 아이들이 아는 내용을 들려주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고 저는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요. 수학같은 경우도 덧셈, 뺄셈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달이 주제가 있어요. 4월은 ‘자연과의 만남’, 5월은 ‘가족과의 사랑’ 등으로. 주제에 맞는 글을 찾아서 아이들이랑 같이 글도 써보고 수학도 그런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하는 수업을 다 하되 풀어내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죠.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진행하고 있어요…저희는 ‘삶이 바로 교육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일반 가정에서 하는 것, 즉 바느질이나 요리 등도 교과내용에 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달에는 요리를 하고 있어요. 다음달에 어버이날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요리를 스스로 준비해서 부모님들에게 대접하려 해요. 재료는 제가 준비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이 진행하죠.”

교재가 없는 수업, 주제에 따른 교과과정은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우리 머리 속에 뿌리내려 있는 고정관념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다.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력, 상상력이 전체에 대한 고려와 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벼리학교에는 학교종이 없다. 정해진 수업시간이나 강제적인 체벌이 없다. 발칙하게도(?) 아이들은 교과과정에까지 개입한다.

“물론 학교 의사과정에는 아이들이 회의를 해서 하기 싫은 수업, 과반수 이상이 수업을 하기 싫다고 하면 그 수업을 하지 않죠. 그 수업을 안한다고 해서 당장 학교가 문을 닫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수업 시간 없이 한시간이든, 두시간이든 아이들의 반응을 보죠.”

흔히들 많은 자유가 주어지면 방종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한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삶을 경쟁과 이기심으로 바라보게끔 길들여진 우리의 편견일지 모른다. 오히려 자율과 함께 적절한 책임성이, 스스로 부여한 책임성이 함께 등장하곤 한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고자질하던가, 학교에서 하듯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든지 왕따를 시키곤 했어요. 지금은 인원이 적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친구가 더 많았으면 느끼고 한 명도 빼놓고 놀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싸우게 되면 그 자리에서 화가 풀릴 때까지 얘기를 하고 해결을 하죠. 그 날 문제는 그 날 해결하고 집으로 가요. 숫자나 글 하나 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이 교육인 것 같아요…정말 답답할 때 약간의 조율을 하고 대부분은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게끔 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체벌도 정해요. 예를 들어, 수업 시간 늦으면 손을 들자, 혹은 누가 왕따를 시키면 어떻게 하라든 둥. 스스로 알아서 정하고 해결하고 있어요. 제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죠. 그리고 제가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아요. 처음에는 개입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깐 그건 아니다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리는 만큼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아이들은 많이 바뀌죠. 자율을 원하는 만큼 그것에 맞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놀기 위해서는 공부시간에도 누군가의 시간이니깐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죠.”

그런 의문이 들 수 있다.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은 부모들의 욕심일 뿐 실제로 그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즐거워할까, 행복해 할까? 대안학교 속에서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변화를 경험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매우 긍정적이다.

“애들이 이 학교 자체를 다니는 것에 행복해해요. 일단은 이전 학교보다 자유롭고 구속도 없고. 집에서도 엄마들이 잔소리를 하지 않죠. 공부하라든지, 학원 가라, 숙제했니, 준비물은 준비했니라는 잔소리가 없어졌죠. 교사도 가급적이면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해요. 아주 크게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해라, 하지 말아라는 얘기를 안 해요. 그리고 수업내용도 전과 많이 다르고. 전에는 자기 얘기를 말할 시간이 없었는데 저희는 무슨 수업을 하던 학생들이 자유롭게 돌아가면서 자기 얘기를 하고 마치죠. 글을 하나 써도 짧은 한마디라도 9명의 아이들이 생각을 다 얘기하게끔 해요. 그러다보니 표현이 많아졌고 전에는 말도 안하던 애가 지금은 시시콜콜한 것도 다 얘기하고 자기 주장도 많아졌어요. 부모님들도 그런 것이 좋다고 하시죠.”

학교의 운영형태는 생협이나 공동육아와 비슷하다.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출자금 300만원에, 캐비넷이나 기자재같은 소모성 용품구입을 위한 가입비 30만원, 매달 내는 교육비 30만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학부모들은 대안교육에 대한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고 매월 1회 학교운영회 회의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

“YMCA대안학교이기는 하지만 YMCA와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죠. 모든 결정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돼요. 특별하게는 엄마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엄마들 공부모임 하시고 계시고 아빠들은 한 달에 한번 정도 공부나 얘기를 하던가 가족 전체가 모여서 전체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대안초등학교를 얘기할 때 가장 궁금한 점은 6~12세 아동에 대해 의무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 초․중등교육법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에서 초등과 중등은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어 이를 위반할 경우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물론 과태료 처분은 행정처분이므로 형사상, 민사상의 법적문제는 없다. 다행히도 아직 법적으로 처벌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아직 과태료를 물은 사람이나 법적인 제재를 당한 사람은 없어요. 사실 학교도 잘 몰라요. 사례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를 잘 모르죠. 그래서 아이를 제적시킨 것도 아니고, 학교는 여기 나오지만 학적은 원래 다니던 학교에 있어요.”

문제는 아이들의 학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6조 (초등학교 졸업자와 동등의 학력인정)는 ‘중학교입학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한 자에게 초등학교 졸업자와 동등한 학력을 부여하고 이 검정고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시․도 교육규칙으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경기도 규칙을 보면 ‘중학교입학자격검정고시는 초등학교(특수학교 포함) 재학생(학칙에 의하여 정원외로 관리되는자 제외)은 응시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대안학교의 아이들 대부분은 아직 이전에 다니던 학교로 학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정원외로 관리되어야 검정고시를 칠 수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29조 제1항에 따르면, ‘초등학교 및 중학교의 장은 취학의무를 유예받은 자 중 입학이후 유예받은 자나 정당한 사유없이 3월이상의 장기결석을 한 자에 대하여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원외로 학적을 관리할 수 있다’. 그리고 제66조 중학교 입학 등의 허가에 따르면, ‘학생의 입학․재입학․퇴학․전학․편입학 및 휴학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교의 장이 행한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이 규정이 대안학교가 활용할 수 있는 규정인 것 같다.
그리고 세부적인 사항은 시․도의 교육규칙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데, 2002년 2월 14일 시행된 경기도 전․편입학 시행지침(중등81212-315)에 따르면 유급대상자 전원을 정원외 학생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이 2001년 12월 22일에 발표한 ‘2002학년도 초․중등교육 주요업무 계획’에 따르면, ‘의무교육 대상자가 취학유예․면제 또는 출석일수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진급 또는 졸업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해당 년수를 의무취학연령에 더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의무교육법 시행으로 퇴학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사유에 따라 의무교육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의무교육대상자의 경우 퇴학(자퇴 포함)시킬 수 없으므로 사유에 따라 유예 또는 면제 처리해야 함. 유예 또는 면제는 교육감이 정하는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보호자의 신청으로 학교의 장이 최종 결정(행방불명 등으로 보호자가 신청할 수 없을 때에는 학교장이 사유를 확인한 후 보호자 신청 없이 결정 가능). 초등학교의 장이 아동의 질병 외에 행방불명, 성장부진 등의 사유로 학부모가 신청한 취학유예를 결정할 때, 의사진단서 외에 교육감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읍․면․동장이나 학부모 소견서 등도 증빙서류로 사용할 수 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정당한 사유없이 3개월 이상 장기결석한 자에 대해서는 정원외로 학적을 관리할 수 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례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다만 세부적인 것은 해당 시․도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의 법률이 아니라 교육규칙 개정을 통해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교육자치라는 화두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대안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항상 고운 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처음의 출자금과 교육비가 부담이 되기도 하고(그런데 교육비는 엄청난 사교육비와 비교할 때 그리 비싼 것 같지는 않다) 마치 영재교육을 바라보듯이 자기 자식들을 특수한 아이들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욕심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당사자들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폐쇄된 공동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얘기[중산층의 운동이 아니냐는]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그거는 모여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벽이라면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의 대안은 없지만 그 고민을 항상 하고 있어요. 교육 이전에 지역 안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죠. 모금이나 기부 등 어떤 형태로든 그것에 맞게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그러기 위해서는 YMCA만이 아니라 같이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처음에 준비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고민하는데 지역 안에서 어떻게 같이 갈 것이냐. 다른 시민단체, 다른 지역과 어떻게 같이 갈 것이냐. 여기 안에서만 머무르는 학교가 아니라 함께 갈려면 많이 열고 받아야 하잖아요. 끊임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끔 교육하고 홍보도 할 생각이예요. 군포YMCA나 다른 곳과 연계해서 더 많은 지역을 포함하면서 갈려고 하고 있어요. 저희도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가 특수한 학교가 되는 것이죠. 특별한 사람,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는 특별하지 않고 아이들도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밖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이 특별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제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YMCA 대안학교의 학부모들이지만 그 이전에 YMCA의 회원이고 생협의 촛불이기 때문에 대안학교가 더 중요하지 않고 YMCA의 회원이자 생협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먼저 하시라고 얘기드리죠.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힘을 받고 갈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 스스로가 인정해주고 힘들지만 작고 소박하게, 아름답게 열심히 가는 학교가 되어야 해요.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외부에서 스스로 느낄 수 있게끔 겸손하게, 특별하지 않게끔,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며 가시라고 얘기드리죠.”

이 말은 대안학교운동이 단순히 교육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자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의 일부분임을 보여준다.

“대안교육이 그런 것이잖아요. 울타리 안에 있는 아이들만 잘 지내고 잘 살기 위해서 대안교육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대안교육은 말 그대로 작게는 학교에서 출발하지만 지역과 사회, 국가와 같이 가는,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이잖아요. 아이들도 그런 것 같아요. 아이들도 교육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자기를 알아가는 것과 더불어 다른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더 많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사회성을 배우지 못해 문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지만, 저는 6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느끼면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하면서 대안교육에 담아내야 한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대안학교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부담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열악한 재정인 것 같다. 하지만 실무자의 생각은 달랐다. 재정이 어렵긴 하지만 어짜피 대안학교가 넉넉한 재정, 풍요로움을 가르치기보다는 절제와 자연을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에 재정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더 큰 고민은 어떻게 아이들, 지역과 함께 하고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가라는 내용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안학교는 더 대안다운 것 같다.

“아이들한테 넉넉함, 풍요로움 속에서 절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예산 부분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많이 여기저기서 도와주세요. 그래서 솔직히 예산 부분에서 이것이 문제다, 힘들다는 모르겠고. 저의 개인적인 고민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라는 내용적인 고민인 것 같아요. 그거 외에는 특별히 힘들다라고 느낀 거 없어요.”

물론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 공동체는 제도권이라는 큰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섬들이 뭉쳐,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부모들도 성장해서 하나의 대륙을 만들 날을 꿈꾸게 된다.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하승우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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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천 살리기는 공동체회복운동" -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인터뷰 : 송숙 사무국장/이경묵 사무처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기름을 물 쓰듯 하다”, “돈을 물 쓰듯 하다”. 우리에게 물은 아주 흔한 존재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삼림이고, 이름을 외지도 못할 정도로 중소형 하천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래서 이경묵 사무차장의 말대로 ‘물을 물 쓰듯’하고 있는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고 있고, 실제로 서울, 수도권을 벗어난 남부 지역은 물 부족 현상을 심하게 겪고 있다. 언론을 통해 땅이 쩍쩍 갈라지는 사진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건기와 우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국가로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겨울가뭄이니 봄가뭄 하는 조어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만 보도라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어느 지역을 가든, 대부분의 하천이 건천화(乾川化)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물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하천을 주제로 지역운동을 펼치고 있는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인다. 이름에서부터 이 단체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안성천은 길이 76km의 짧은 하천에 불과하지만 한천. 진위천 등과 합류하여 아산만(지금의 평택호)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그 유역에 넓고 비옥한 안성평야를 발달시키고 있다. 안성 주민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보배라고 할 수 있다. 시민모임이 만들어진 계기를 물어보았다.

“95년 경, 환경과 생명에 대해 공부를 해왔던 한 교회의 교인들이 환경이라는 주제의 시민단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안성천 생태탐사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안성천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하천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생명의 중심 축이잖아요.”

얘기를 들어보면, 시민모임은 여타 지역의 지역단체들과는 그 태생이 달랐다. 보통, 여느 지역이든 어떤 특별한 사안에 맞물리면서 지역단체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시민모임의 경우 “현재의 자연환경을 잘 지키자”는 취지가 농후하게 묻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색채를 띤 종교단체는 더욱 아니라는 점에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순수한 자발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하천이라는 것은 문화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안성천 살리기’라고 하는 것은 지역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농촌지역 같은 경우, 물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단순히 안성천 살리기가 하천을 살리자는 의미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성을 같이 복원하고 지역의 민주적인 절차를 복원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나지 않았습니까?”

이제야 ‘안성천 살리기’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천’은 모든 생명을 응축하는 그 무엇이다. ‘생명의 근원’이라고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농촌 지역의 하천은 생활, 문화, 환경의 중심이다. 하천이 망가지면, 그들의 생존권도 망가지고, 그들의 업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안성천은 안성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시민모임 사람들은 강조한다.

“......안성천의 수질은 아직 깨끗한 편입니다. 어제도 생태조사팀이 나가서 수질을 체크해봤는데, 상류는 맑고 깨끗한 편이고, 중류는 워낙 갈수기라 수량이 부족한 면은 있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곳은 생활하수로 인해 상대적으로 오염이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천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재생력이 강하기 때문에 도심지를 벗어나 흐르면서 다시 복원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록 수량은 부족하지만, 인상을 찌푸릴만한 오염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설명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민모임에서 진행하는 안성천 살리기 프로그램의 기조는 하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년까지 6회를 진행한 ‘푸른안성어린이학교’와 2회를 개최한 ‘푸른안성어린이탐사대’는 일종의 하천 교육프로그램으로, 자연 속에서 인간과 하천의 관계성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진행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하천을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만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이 곳 아이들은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도시의 아이들처럼 컴퓨터와 학원으로 내던져지고 있는 형편이다.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여유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모임의 환경교육은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교육프로그램과는 달리 주부생태기행단은 내용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단순히 교육프로그램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안성천의 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근 서운산의 심층적 생태조사는 물론이고, 개인의 취미나 관심 사항을 넘어 지역사회의 생태지도자로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올해가 벌써 4기 째를 맞고 있다. 송숙 사무국장도 이 모임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니, 생태기행단의 활동은 시민모임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모임에도 내부적인 고민이 많다. 경기도 남단에 위치한 안성은 그나마 개발의 어두운 그늘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지역민들은 개발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다. 실지로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성으로 진입하는 곳에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개발론은 지난 IMF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4년여 동안 지역의 화두로 자리잡은 소각장 건설만 하더라도 지역민들의 정서는 그 정도의 개발은 필요하지 않냐는 식이다. 특히 개발이 몰아치면, 안성천이 어떻게 변할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모임의 분석을 들어보자

“......안성은 농촌지역이라, ‘자연’ 그 자체는 일상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와는 다르게 ‘자연’에 대한 소중함이나 경외감을 특별하게 느낄 새가 없습니다. 5분-10분 정도 밖으로 나가면, 어렵지 않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활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의 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지역민들의 생각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파괴된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식 운동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환경파괴의 부메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안정된 지역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운동은 버거워 보인다. 시민모임의 고민은 여기에 와 있다.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지역민들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개발은 이미 편서풍을 타고 안성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모임의 또 다른 고민은 일이 흘러 넘친다는 것이다. 보수적 성향을 지닌 안성에서 시민단체는 오직 하나다. 시민모임이 그것인데, 안성천 살리기 사업이나 소각장 반대운동, 그리고 쓰레기 줄이기 운동은 그나마 환경단체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지만, 시정감시를 비롯해 심지어 납골당 등 각종 현안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시민모임의 경우, 안성 지역에서 유일한 시민단체다 보니까, 지역의 갖가지 환경사안은 물론이고 지역현안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됩니다. 이를테면 소각장 싸움만 해도 근 4년간 힘겹게 시민모임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지역민들이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시민모임으로 문의가 옵니다. 그러면 그 문제에 대해 머리 맞대고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지금은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작년서부터는 삼성생명에서 납골당을 짓겠다고 해서 대책위를 꾸리고 있는데, 안성천 살리기보다도 시민모임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거죠."

시민모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역민들로부터 종합적인 시민운동을 종용받는다는 것이 송숙 사무국장의 대답이다. 시민단체의 신뢰성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지역의 시민단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시민모임만의 고민은 아니다. 여타의 지역운동단체가 중앙의 종합적 시민단체의 운동방식과 동일한 이유는 다양한 시민운동단체가 부재한 측면도 있지만, 관이 무관심하거나 손을 놓고 있는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민단체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모임만 하더라도 시정지기운동, 지방선거 관련한 유권자운동, 의료생협운동 참여, 대안농 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주제들이 환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만, 작은 규모에 비해 부과되는 일의 양은 좀 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안성에는 지역민들의 권리발언을 모아내고 표출하는 단위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민모임이 이런 사안을 받아드리게 된 거죠. 농촌 같은 경우는 관을 두려워하는데, 시민모임이 관에 대놓고 반대하다보니, 지역주민들이 시민모임을 아주 센 단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또 고민이 되긴 합니다. 쉽게 참여하는데 부담이 되는 거죠.”

지역의 모든 사안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민들이 바라보는 시민모임은 상대적으로 강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현상은,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시민모임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아직도 관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도 있는 주민들에게 관과 당당하게 맞서는 시민모임이 다소는 부담스런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시민모임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다고 하니,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의식을 높이는 일이 관건이 아닐까 싶다.

안성천이 살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적 환경문제가 안성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가설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상이변은 세계적인 흐름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건기, 우기의 뚜렷한 구분은 기상이변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안성천을 살리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천 살리기 운동은 주변의 자연환경을 살리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나마 안성천이 맑고 깨끗한 이유는 나름대로 주변에 숲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숲과 하천, 토양, 그리고 시민의식 등이 안성천 살리기 운동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시민모임의 모토인 “하늘․땅․그리고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안성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물어보았다. 이 대답이 안성천 살리기 운동의 ‘키잡이’이다.

“안성천 교육프로그램은 물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매월 안성천 가꾸기 행사를 내부 행사로 진행하는데, 도심지를 관통하는 하천의 경우 보통은 직강하 공사를 통해 주차장으로 만들곤 하는데, 친수공간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희 단체 경우, 이런 교육을 통해 친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려 합니다. 지금도 안성천에 나가보면 의외로 쓰레기들이 많이 떠 있습니다. 이는 하천에 대한 소중함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하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질 수 있도록 운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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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주민자치의 공간"
- 산본2동 주민자치센터

인터뷰: 윤성섭 사무장
이미숙 자원봉사자
정리: 하승우(운영위원)

군포를 방문한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 글로만 접했었던 군포 시민사회의 발전. 쓰레기 소각장 반대에서 환경자치시민회로 자생적으로 성장한 군포의 이미지는 약간 낭만적인 기대와 아련한 환상을 줬다.

국철을 타고 가다 4호선으로 갈아타고 내린 곳은 금정역. 지하철을 나오자마자 눈에 띈 곳은 지하철역 출구에 위치한 행정민원실이었다. 서울로 통근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을 고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역시 군포는 뭔가 다르구나.’

김현씨를 만나 차를 타고 산본 2동 주민자치센터로 향했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눈에 확 들어오는 큰 글씨가 보였다. “시민은 주인입니다”. 고압적이고 딱딱한 얼굴을 한 공무원들만 기억하는 내게 그 글씨는 매우 낯설게 다가왔고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리 크지 않은 3층짜리 건물 속에는 부드러움이 흐르고 있었다. 빨간색 조끼를 입은 주부님이 왼쪽에 보였고, 낮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접수창구는 주민자치센터로의 전환 이후 더 가까워진 주민과 공무원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리고 접수창구 위에는 군포시 조례로 제정된 ‘민원사무착오 및 지체 보상제’를 알리는 팻말이 매달려 있고 우측에는 주민들을 위한 인터넷방이 보였다. 더 이상 낯설고 딱딱한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만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 내 기억 속의 딱딱한 동사무소는 그처럼 부드러운 주민자치센터로 변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집어들었던 군포시 <큰시민소식>이라는 소식지에서 군포시청의 전종수씨는 군포시의 주민자치센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첫째, 기관장의 의지, 둘째, 전자결재의 완벽한 시행, 셋째, 동사무소 업무의 본청 이관, 넷째, 생활민원의 해결대책 마련, 다섯째, 자원봉사자와 강사인력은행 구축, 조례/규칙의 정비를 들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산본 2동의 배재철 동장님도 의지가 무척 강하고 많은 새로운 사업들을 진행했다고 한다. 설문조사 결과 장소가 협소하다는 의견이 있자 과감하게 동장실을 없애고 헬스장을 확장했다는 사실에서 그런 의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산본 2동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다. 2000년 12월 7일 구성된 노래동아리를 선두로 해서 5개의 동아리(노래, 볼링, 발맛사지, 장구, 영어)가 활동하고 있으며 임원 선출, 회비징수 등 전반적인 업무를 스스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노래동아리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에 뜻을 둔 회원들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등 훈훈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지금은 ‘능안공원 가꾸기’, ‘안전한 통행로 만들기’ 동아리를 새롭게 모집하고 있다). 현재 동아리 회원은 131명에 달하고 대부분의 회원은 주부들이다(산본 2동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노래동아리는 소년소녀가장돕기 길거리 공연을 통해 3백2십만원의 모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활동도 활발한데 동사무소 민원을 안내하거나 자치센터 시설물을 점검하는 행정 자원봉사자, 홍보물 편집과 자치센터 회원을 관리하는 기획 자원봉사자, 우산이나 자전거를 수선하는 기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런 자원봉사자 체계는 산본 2동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특히 행정 자원봉사자는 넥타이 무료교환 창구와 양심우산 무료대여를 관리하는 동시에 행정을 직접 체험하고 운영을 도움으로써 행정에 대한 지식을 얻고 자원봉사의 기쁨을 얻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현재 행정 자원봉사자는 8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돌아가며 근무하고 있다). 주민으로 구성된 행정 자원봉사자가 있으니 고성을 지르거나 급하게 무엇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없어져서 분위기가 한층 더 부드러워 졌다고 한다. 기획 자원봉사자도 딱딱한 공문서나 여러 장의 문서를 알기 쉽고 눈에 잘 들어오도록 한 장으로 편집해서 보내 준다고 한다.

또한 산본 2동에서는 주민자치센터 기금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센터의 시설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회원들의 증가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기금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적정 수강료를 책정하고 불필요한 예산지출을 억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금을 확충하고 있다. 그 결과 2001년 10월 30일을 기준으로 약 1천7백만원의 기금(대부분이 헬스장 수입)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이 주민들의 독자적인 활동만으로 유지되는 것 같지는 않다. 동사무소는 이런 자원봉사 활동을 팔짱끼고 지켜보기만 하지 않는다. 시청 자원봉사팀과 연계해 전문자원봉사 강사를 영입해서 수강료 부담을 줄이고 필요한 비품(장구, 악보대, 동아리 조끼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의 운영방향을 다음 세가지로 잡고 있다. 첫째, 주민자치센터의 방향설정. 주민의 욕구를 수렴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동아리 강좌를 활성화한다. 둘째, 주민들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참여 유도. 회원 스스로 참여하는 이벤트 행사를 개최한다. 셋째, 행정관서의 적극적인 지원.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비품 등을 지원한다.

또한 변화하는 주민욕구를 수렴하기 위해 2000년 5월 22일에서 6월 9일 동안 지역주민 3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서 헬스장 확장, 편의시설 설치 및 헬스기구를 구입하고 운영시간을 연장했다. 이런 공식적인 설문조사만이 아니라 동사무소 직원과 동아리 회원의 정기적인 친선경기, 강좌별 쫑파티시 동장과의 대화, 강의실 입구에 주민의견 수렴판 설치, 간담회 수시 실시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담당 공무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산본 2동에서 1년 8개월을 근무하신 윤성섭 사무장님에 따르면, 주민자치센터 전환이후 업무가 많이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민들과의 관계개선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행정을 이해하고 행정의 빈틈을 지적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윤성섭 사무장님은 스스로가 사회단체와의 협조, 지속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좋은 느낌을 주셨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그 체계가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에 주민참여가 활성화되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잘 운영되면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하신다.

특히 윤성섭 사무장님은 시 차원의 조례제정만이 아니라 동단위의 규칙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셨다. 자원봉사자들을 더 돕고 싶어도 뚜렷한 기준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금도 투명하게 운영하려면 규칙으로 분명한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직접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주민자치센터를 여기저기 누비며 주민들을 도와드리고 계신 자원봉사자의 시간을 잠시 빼앗았다. 40대의 이미숙 주부님은 작년 9월부터 행정민원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이렇게 밖에 나와 계시면 집에서 부담을 느끼거나 힘들지 않냐는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에 오히려 봉사활동에서 기쁨과 생활의 생동감을 느낀다고 하신다. 집 외에도 내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생활하는데 많은 활력을 주고 하루에 3시간 정도씩 일주일에 2~3번 근무하는 것은 큰 부담이 없다고 하신다. 남을 도우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수줍게 웃으시며 주민들을 도우려 조용히 자리를 뜨셨다.

산본 2동 주민자치센터를 움직이는 힘은 담당 공무원이나 몇몇 주민들의 것이 아니다. 새롭게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깨닫게 된 주민과 공무원은 자치의 씨앗을 함께 심으며 그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능안공원 관리 등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지만 제도를 뒷받침하는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리라 기대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공무원과 주민이 함께 활짝 웃으며 자치의 낟알을 수확하는 광경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이른 낙관일까?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하승우 운영위원 인터뷰)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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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를 위해" - 마들주민회
인터뷰 : 윤은주 조직국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이름에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마들주민회’.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지만, 의정부에서 한강까지 흐르는 중랑천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마들평야’가 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마들'이란 순수 우리말인 '마뜰'(말들이 노닐던 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노원역 부근에 ‘역참기지’가 있어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서울에도 광활한 평야가 있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면서, ‘마들주민회(이하 주민회)’ 윤은주 조직국장을 주민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첫마디 역시 지명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마들’역 근처에 저희 사무실이 있냐고 물어오곤 해요” 주민회는 ‘마들’역이 아니라, ‘상계’역에 있다는 사실.

주민회는 지난 호에 소개된 바 있는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힘으로 굴러가는 풀뿌리 조직이다. 주민회는 문화와 교육, 복지 등에 소외된 빈민지역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쉼터로서, 기초교육의 장으로서 지난 90년 10월에 개설한 [상계어머니학교]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한글 중심의 문해교육 사업이 중심으로 지금까지 배출된 학생들은 1,000여명을 웃돈다. [상계어머니학교]는 해를 거듭하면서 계층과 영역, 그리고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꾀하게 되며, 1997년 지역문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지역여성단체로서, 또는 지역여성공동체로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즉, 이 시기는 [상계어머니학교]가 구체적인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된 전환점이었다. 횟수로 6년을 맞은 지역문화제는 서울산업대 동아리연합회와 손을 잡고 봄, 가을에 개최되는 소공원 축제이다. 그야말로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마을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98년 '동화교실'로 시작한 아동교육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마들창조학교'가 만들어졌고, 저소득 아동들을 위한 '무료방과후 교실', 그리고 다양한 복지사업 등의 대중사업이 활발히 진행된다. 이렇게 해서 [상계어머니학교]는 2000년 10월, 정기총회를 개최하면서 지역주민단체의 위상을 가진 “마들주민회”로 또 한번 조직적 전환을 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주민회 부설기관으로 “마들창조학교”와 “마들여성학교”가 있다.

단체 현황

● 주요 연혁
‧ 1990. 10. : 노원구 상계3,4동을 중심으로 [상계어머니학교] 시작
‧ 1997. 4. : 노원 구청 후원, 시민단체 공모 사업으로 지역문화제 “소공원 한마당” 시작
‧ 1998. 7. : 열린교육 일환으로 ‘동화교실’,‘현장학습캠프’등을 진행.
‧ 1998. 10. : 열린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상계어머니학교 부설기관 ‘마들창조학교’를 시작
‧ 1999. 6. : 지역주민들 대상으로 하는 풍물교실을 1,2기 진행
‧ 1999. 4. : 마들창조학교 내에 결식아동을 대상으로 ‘늘푸른방과후교실’ 시작
‧ 2000. 6. : 지역문화제 ‘노원 사랑 영상문화 한마당’ 실시
‧ 2000. 10. : 지역주민단체의 위상을 가진 ‘마들주민회’로 새롭게 창립함.

● 조직 구성
‧ 상근 활동가 : 상근자 4인, 반상근자 1인, 10여명의 자원봉사자
‧ 부설기관 : [마들창조학교]/[마들여성학교]
‧ 회원 : 정회원 60명, 후원회원 70명
‧ 기구 : 총회/대표/운영위원회/사무국/조직국/부설기관 외 자문위원회 등
‧ 소모임 : 텃발 가꾸는 ‘땅사랑’/풍물모임 '한솔'/MEC(Mothers for English and children)/‘맛기행’/글짓기 반 등 5개
‧ 슬로건 : 나누는 삶! 실천하는 삶!
‧ 소식지 : 격월간 ‘사노라면’

● 주요사업
‧ 지역문화재로서 소공원 한마당 실시
‧ 자원봉사자를 위한 교육사업
‧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교육사업
‧ 결식아동을 위한 교육사업/방과후 학교/급식 프로그램/장학프로그램 등
‧ ‘사례관리’ 프로그램
‧ 저소득층 가정 결연 사업 실시 등


주민회의 활동이념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이다. 물론 이 활동이념은 출발에서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10년 이상 지역에 터를 닦으면서 터득한 실천적 이념이다. 단지, 수혜자로서의 소외된 빈민여성들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주체로서 여성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잊혀진 자치의 기술과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갈 공동체로의 지향을 스스로 일궈내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저희가 12년 동안 상계어머니학교를 통해 소외된 여성들에게 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교육기관 활동만으로 지역운동을 하기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들주민회’로 전환하면서 지역 안에서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운동을 통해 주민과 같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구로써 문해교육이 일정한 성과를 남겼지만, 운동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조직적 전환을 맞게 되는데, 지금의 “마들주민회”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주민회로의 전환은 교육사업으로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자, 운동적 책임감의 사회적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짧은 시간 인터뷰만으로는 허물 벗는 과정의 면밀한 고충을 들어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주민자치나 지역공동체를 실현하려는 내․외적 노력들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민회의 지향점은 분명했고, 그 과정에 있었다. 1,000여명을 배출한 여성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주민회의 목적하는 바를 확인할 수 있다.

“......저희가 주민회로 전환했던 이유 중에 하나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학교로만 존재하다보니까 그 어머니들이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틀을 갖기 못했다는 점이죠. 졸업하면 그냥 떠나가곤 했습니다. 그 어머니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당신들의 활동의 장들을 찾을 수 있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작년 총회를 계기로 주민회는 회원조직으로 거듭났다고 강조한다. 형식상으로는 정회원(주민회 이념에 동의하며,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회원)과 후원회원(재정적인 지원을 주로 하는 회원)으로 나뉘고, 현재 약 60여명 정도가 활동하지만, 앞으로 회원이 뒷받침되는 튼튼한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몇 개의 중점사업을 제외하면 소모임 활성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현재 소모임은 다섯 개가 있습니다. 텃밭 가꾸는 ‘땅사랑’, 풍물 모임 ‘한솔’, 그리고 ‘MEC(Mothers for English and children)’이라고 해서 어린이와 영어를 위한 어머니 모임, 그리고 ‘맛기행’과 ‘글쓰기 반’이 있습니다. 회원제로 바뀌면서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직적으로도 소모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회원제로의 전환은 주민회의 또 다른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 스스로도 “중앙의 거대 단체가 지니지 못한 장점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풀뿌리의 힘이며 우리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슈나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 개개인에 대한 믿음과 변화의 과정에 방점을 찍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섯 개의 소모임 활동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 보인다. 소모임뿐만 아니라 작년에 개관한 문화관이나 앞으로 계획 중인 ‘녹색가게’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듯 보인다.

“ 녹색가게는 앞으로 우리가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계획 중입니다. 문화관은 작년 11월에 개관했습니다. 문화관을 만든 제일 큰 이유는 어머니 회원들이 많이 늘면서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과 회원들이 소모임 활동을 하는데 있어, 특히 어머니들이 좀더 여유 있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공간을 더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1-2년 안으로는 회원들 중심으로 녹색가게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녹색가게는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습니다. 내부적인 합의만 있는 상태입니다.”

문화관 개관에서 알 수 있듯이, 어머니회원들의 증가는 주민회의 많은 가능성을 주고 있다. 몇 몇 활동가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필요에 의해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음은 윤은주 조직국장과의 인터뷰이다.

문) 정회원, 후원회원으로 나누었던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답) 작년에 정기총회를 하면서 회원 자체를 정회원으로 구분하고, 후원회원은 따로 두었습니다. 회원은 우리 모임에 동의하면서 활동(특히 소모임)을 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후원회원들은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입니다. 주로 회비를 내시는 분들입니다. 정기총회를 하면서 회원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작년에 회원체제로 바뀌면서 회원을 많이 모집하는 체제로 가려고 하는데요, 이번 정기총회에서 파악한 바로는 한 절반 정도가 노원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여성학교를 거친 분들이 회원에 가입한 경우는 대부분 노원구에 거주하시구요, 외부에 있는 분들은 따로 회원에 가입한 분들이거나 상근인력들이 많이 차지합니다. 그 외 이전부터 활동하신 분들이 이사하거나 해서 외부 사람들이 늘어났지요.

문) [마들주민회]를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답) ‘주민자치’와 ‘지역동동체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12년 동안 상계어머니학교를 해오면서 소외된 여성들에게 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교육기관 활동만으로 지역운동을 하기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들주민회’로 전환하면서 지역 안에서 ‘주민자치’와 ‘지역공동체’운동을 통해 주민과 같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 ‘여성문화관’ 하고 ‘녹색가게’도 준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답) ‘녹색가게’는 앞으로 우리가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계획 중이구요, 문화관은 작년 11월에 개관했습니다. 문화관을 만든 제일 큰 이유는 어머니 회원들이 많이 늘면서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과 회원들이 소모임 활동을 하는데 있어, 특히 어머니들이 좀더 여유 있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공간을 더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1-2년 안으로는 회원들 중심으로 녹색가게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녹색가게는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습니다. 내부적인 합의만 있는 상태입니다.

문) [마들주민회]의 입장에서 가장 애정을 지닌 사업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제일 애정이 있는 것은 여성학교인 것 같아요. 저보다는 사무국장이 아마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학교가 벌써 올해로 13년째로 접어들었거든요. 첫 사업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만났던 어머니들, 이 학교를 통해 변화됐던 어머니들, 또 이 학교를 통해 성장했던 선생님들도 있었거든요.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이 지역이 원래 빈민 지역이었는데, 제가 여기 처음 발을 디딘게 95년인데, 그 때부터 지역색이 많이 변했어요. 재개발되고 이러면서 그런 빈민이라는 계층 자체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의식도 생기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여성학교 자체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처음 출발할 때는 빈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그 어머니들의 문맹을 깨치고 지역생활을 하는데 지원해주는 역할이 명확했는데, 지역이 변화되면서, 혼란을 많이 갖기도 했습니다. 또 IMF가 터지면서 대부분 힘들어지니까, 많이 안나오시고, 그리고 90년대 말에는 교사수급도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 전에는 자원봉사 하겠다는 분들도 많았었는데, 이 때부터 반년을 넘기는 사람들이 드물었었죠. 이러면서 힘든 과정을 겪었죠. 물론 지금은 예전에 선생님 했던 분들도 많이 돌아오시고, 그리고 최근에 일기시작한 자원봉사 붐 때문에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현재 자원봉사자만 11분 계시니까요.

문) 여성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이 얼마나 되고, 졸업 이후, 자치적인 모임이나 활동들을 일궈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 벌써 16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한 기가 보통 100여분 정도되니까, 1,000여명 넘는 숫자가 배출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가 주민회로 전환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학교로만 존재하다보니까 그 어머니들이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틀을 갖기 못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어머니들은 여성학교를 졸업하면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떠나가곤 했는데, 그 어머니들이 졸업한 이후에도 당신들의 활동의 장들을 찾을 수 있고, 요즘에도 평생교육을 많이 하니까, 이런 부분들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회원조직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러면서 예전에 여성학교 다니시던 분들 중에 현재 회원으로 등록하신 분들이 20여명 정도 됩니다. 앞으로 여성학교를 졸업한 분들을 회원으로 모집할 계획입니다. 물론, 졸업한 어머니 중심으로 계모임 정도는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졸업한 어머니들 중에는 회원에 가입한 후, 열심히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문) 회원 구성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답) 한 마디로 우리 단체 구성원들의 성격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여기 계신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서 스스로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정치든,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됐든, 주민회 회원들이 만들어나가야겠지요. 저희가 교육하는 목적도 ‘민주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여기 계신 분들은 이런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원들 같은 경우는 60명 정도가 되는데, 이 중 20명은 여성학교 졸업자, 그리고 한 20분 정도는 마들창조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청년들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자원교사와 이전에 관계를 맺었던 분들이지요. 그 중에서 가장 활동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여기 상근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이죠. 어머니들은 지금은 소모임 활동 정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마들주민회의 이념으로서 어머니들과 합의를 한 부분은 ‘지역공동체’가 아닌가 합니다.

문) 회원 모집 방법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답) 대외적으로 회원을 모집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그 전까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올해에는 정기적으로 회원 모집에 들어갑니다. 특히 여성학교 졸업시기에 맞출 계획입니다.

문)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고 계십니까?

답) 저희 같은 경우는 재정자립도가 한 50%가 됩니다. 여타의 단체보다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주로 회비, 여성학교 회비, 후원금, 그리고 수익사업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보조금, 지원금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됩니다. 수익사업 1년에 한번쯤(가을에) 일일주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올해에도 창립식에 맞춰 일일주점이 열릴 것 같습니다.

문) 회원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답) ‘사노라면’이라는 소식지를 냅니다. 중요한 내용은 메일을 통해 연락을 취하고요, 정기적인 회원모임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모임을 통해 소식을 나눕니다. 소식지 같은 경우 작년까지 매월 나왔는데, 올해부터는 격월로 나옵니다.

문) 올해에는 지방선거나 대선과 같은 중요한 일이 많이 있는데요, 학교의 차원이 아니라 주민단체로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들이 있습니까?

답)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서는,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국민경선제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관련해서는 이 지역에서 시민후보가 몇 분 나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학교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론 정도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시민후보일 경우는 직접적인 지원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우리 단체 내에서 공식적으로 합의된 부분은 아닙니다.

문) 마들주민회의 한계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답) 가장 큰 부분은 재정인 것 같습니다. 모든 시민단체가 이 부분이 가장 열악하겠지요. 재정이 어렵다보니 여기서 일하는 선생님들의 처우문제도 힘든 편입니다. 또 한 부분은 우리가 농담 형식으로 말하는 게 ‘이 지역은 여자의 기가 세다. 그래서 남자들이 없다’라고 하는데, 여성 상근자들만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성의 갖는 장점도 많지만요. 그리고 아직까지는 회원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주 대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회적인 교육을 떠나서 평생교육, 그리고 지역에 애정을 갖는 만드는 일들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문) 마들창조학교에서 진행된 사업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답) 작년, 재작년 같은 경우는, 결식이 주 대상이었고, 특히 저소득, 한부모 아이들이 주대상이었죠. 그 아이들이 여기에 와서 점심 및 저녁식사를 제공했고요,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여러 가지 특별 프로그램을 했었지요. 나들이, 미술, 요리, 글짓기, 등을 했었지요. 대상은 초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지요. 지금은 중학교 3학년까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년까지 진행했었고요, 그리고 작년에 저희가 ‘사례관리’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이 와서 집단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참여하는 방식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상황이 특수하고 너무나 다양해서 그런 프로그램으로만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여기서 자유롭게 지낸다라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한 것이, 그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우리도 대안을 만들어야겠다는 고민을 했던 거죠. ‘사례관리’란 한 아이를 중심에 놓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정리하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그 아이들을 관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올해는 그 사업을 중심으로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우연히도 심리적, 사회적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아동들이었습니다. 어떤 아동들을 할 것인가를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주로 저학년 아이들, 사회부적응,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아동들은 다른 기관에서도 다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예 오지 말라고 하거나, 복지관 같은 경우도 너무 힘들다고 방치를 합니다.

문) 전문가 네트워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답) 노원에 노원청년의사회가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지역에서 의료체계들을 같이 논의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노원나눔의 집’과도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엄마, 정신과 의사선생님, 학교 선생님, 그리고 복지관 선생님, 덕성여대 교수님 등도 이런 네트워크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문) 그럼 올해가 제2의 도약기가 될 것 같은데요, 장기적인 활동방향은 어떻습니까? 개인적인 생각이라도...

답) 쭉 말씀드렸듯이 회원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구요, 그리고 오랫동안 해왔던 지역문화제가 성과 등을 정리하고 주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리고 여성학교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상황이 열악한데, 요즘 시민교육 등을 많이 얘기하는데, 이런 고민들을 잘 해결해서 풀어갔으면 하구요, 창조학교는 지역네트워크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민들을 길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래서 지역의 문제들을 같이 풀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문) 회원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과 함께, 노원이라는 지역 속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될 것을 순위로 둔다면 뭐가 있겠습니까?

답) 일단 저희 같은 경우는 ‘여성’이 주요 주제입니다. 소외된 여성들, 갑갑하게 살아가는 여성들, 그래서 이런 여성들이 지역사회의 주역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봅니다. 특히 저희 지역 같은 경우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많아서 이런 여성들이 많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동문제가 있겠지요. 여기가 대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편차가 심합니다. 당고개역 지나서 수락산역지나면 아파트단지와 차별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우리 단체가 지역으로 눈을 돌린지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저희가 보완해 나가야겠지요. 그리고 현안 문제로는 아까 말씀드렸던 북한산 문제가 있습니다.

문) 이건 제가 의도적으로 질문하는 건데요, 지역에서의 움직임을 언론이 주목하지 않고, 중앙의 이슈화이팅 단체, 즉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을 주목하는데, 이런 주목을 받다 보면, 이런 단체들도 이런식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단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나요?

답) 지난 번에 발런티어21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교육에서 누군가가 시민단체를 정치적인 조직과 풀뿌리 조직으로 나누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저런 이런 구분에 동의하지 않는데요, 풀뿌리 단체들도 분명히 정치적인 입장들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중앙단체와 다른 지점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힘, 즉 손과 발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여연대 사무구장이 하는 말이, 회원들에 의한 힘이 약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중앙단체는 이런 풀뿌리 조직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부의 지원도 명확한 선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실련과 같은 중앙단체에 엄청나게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너무나 정치적인 부분들, 그래서 본래의 의무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됩니다.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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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삶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하 녹색삶)은 뭔가 특별하다. 그곳에는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있다. 그 활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몇몇의 희생적인 노력만으로 녹색삶이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창립 과정을 봐도 그렇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다. 보통 상식적으로 하나의 사업을 진행할 때 실무자들의 배치를 고민하지만 녹색삶은 그것을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진행하고 있다.

2001년도에는 ‘찾아가는 이웃 상담원’이라는 활동을 새롭게 시작했다. 상담교육과 훈련을 받은 지역여성들이 저소득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긍정적인 지지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열린 숙제방’ 프로그램은 갈수록 지역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제는 지역의 문화복지센터가 방학중 지역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을 녹색삶에 위임할 정도이다(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녹색삶은 그 외연을 더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녹색삶은 2002년도 열린 숙제방의 계획을 ‘마을 속 작은 학교’로 확대 개편할 계획을 세우고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녹색삶의 간략한 소개와 정외영 공동대표님과의 인터뷰이다.

●역사: 1995년 4월 22일 창립→1998년 5월 열린 숙제방, 강북 녹색가게 설립→1998년 9월 주민도서관 개관→1999년 5월 주부환경극단 동아리 활동 시작→2000년 12월 청소년 공부방 시범운영 시작→2001년 2월 청년문화단체 ‘해울’ 창단
●소식지: ‘녹색조직’
●의결기관: 총회(연1회), 운영위원회, 사무국
●주요활동: 1. 지역주민 접촉 및 참여 창구로서의 강좌 사업, 2.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사업, 3. 지속적 참여 및 지도력 발휘 기회가 되는 소모임 활동, 4. 내부 지도력 강화를 위한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 5. 지역사회의 주체를 확대해 나가는 활동.
●시정참여사업: 2001년 서울시정사업 참여(인형극을 통한 어린이 환경교육)


※인터뷰 (정외영 공동대표님과의 인터뷰)

1) 녹색삶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가리킵니까?

=> 녹색이라는 것은 단순히 환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한 삶, 공동체 지향성’을 가리킵니다. 녹색삶도 그런 삶과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녹색삶은 ‘강북․도봉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여성 자신의 발전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보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2) 주요 연혁을 보면 이슈의 발전이 처음에는 환경에서 시작해서 교육, 복지, 정치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발전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발전해 나간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지나치게 사업이 확장될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 활동가 스스로는 나름대로 구상을 할 수 있겠지만 활동하게 되는 계기는 철저히 현장의 요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계획 하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요구를 바탕으로 그것을 프로그램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주민들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업의 기본방향은 각 부분이 전문화되면 분리시킨다는 방침입니다(열린 공부방도 곧 분리예정). 분리된 단체는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조직적인 면에서만 녹색여성모임과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시민운동의 한계로 백화점식 활동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운동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들이 전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 밀착되어 있을수록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역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접촉창구를 다양화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예를 들어, 지역에서 거창하게 환경운동을 벌이면 몇 사람 밖에 참여하지 않지만 녹색가게 같은 것은 큰 준비없이 실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실행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주민 스스로의 발전과 그 활동의 사회적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주민활동가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3) 재정현황은 어떻습니까? 2001년 서울시정 사업(인형극을 통한 어린이 환경교육)에 참여하신 것은 재정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녹색여성모임만의 재정마련 노하우같은 것이 있습니까?

=> 처음에 2평 남짓한 짜투리 공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후 동사무소, 웨딩홀, 보험회사 등 남는 공간을 주로 빌려서 썼습니다. 그러다 주부들의 쌈지돈을 모아서 공간을 대여하고 열린숙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는 회비와 후원금 녹색가게 운영비, 프로젝트 수행비 등으로 큰 재정적 어려움 없이 운영 가능합니다. 시정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은 행사를 치루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4) 별도의 소식지는 없습니까, 소식지가 없다면 회원간의 유대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습니까?

=> 실무자의 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별도의 소식지를 만들 여력은 없고 매월 ‘녹색소식’이라는 짤막한 유인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필요성은 느끼지만 따로 편집을 담당할 일손이 없습니다. 홈페이지 역시 필요성은 느끼지만 일손이 모자라서 못 만들고 있다. 대신 다음에 까페를 운영중입니다(http://cafe.daum.net/glife95).

5) ‘열린 숙제방’같은 활동은 매우 의미있는 지역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활동은 관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 지역활동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이 저소득층의 아이들입니다. 너무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해결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를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저소득층에는 편부나 편모가정이 많고, 특히 편부가정은 양육과 관련된 지식이나 정보가 결여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나 지역사회와도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담임선생님을 방문해서 아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고 구청도 관련자료를 활용했습니다. 반응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숙제방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습니다(현재 공간상의 한계로 22명이 있지만 대기자로 26명이 더 있다). 일단은 가정과 官, 학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워낙 관청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특별한 마찰은 없었고, 녹색여성모임은 100% 지역주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관청도 일방적으로 대립구도로 가지 않습니다.

6) 관악사회복지의 경우 ‘관악구 사회복지지도’를 발간함으로써 복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녹색삶은 그런 시도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지가 아니라면 환경지수를 중심으로 환경지도를 발간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없습니까?

=> 주민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제한된 인력 때문에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7) 지역내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녹색여성모임의 활동자료를 보면 지역의 욕구와 목표를 확인하고 난 뒤 ‘촉진집단’의 형성과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지역의 여성활동가들을 위해 이런 촉진집단을 형성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말해 주세요.

=> 일단은 공동욕구를 형성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 타지역에서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갔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만 얘기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쉽고 패배주의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주민활동을 교육하는 워크샵이나 프로그램이 많아졌습니다(한국도시연구소나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에서 그런 실무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운동의 성격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조금씩 보편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8) ‘주부 환경극단’같은 사업은 매우 독창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기획하게 되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 환경에 대한 생활습관, 태도 등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연극은 이미 3년째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린 숙제방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소규모로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평가가 너무 좋았고 지속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서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9월 달에 3개 초등학교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대본은 주부들이 서로 토론해서 직접 구성하고 소품도 만듭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가진 주부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7~8월 동안 전문강사에게 연기지도를 받을 예정입니다.

9) 지역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자생적인 지도력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활동가가 어느 정도,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 거의 100%가 주민활동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가 갈수록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깨닫게 됩니다. 올해에는 주민들 스스로가 NGO에 대한 학습을 원해서 NGO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지역사회에 대해서 주민들이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연대의식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이 모임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참여를 통해 관청과 지역유지들의 실상을 보고 지역사회의 새로운 부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주민자치센터나 기타의 정책결정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이 확대되면 외부교육에까지 열성적으로 참여해서 주민활동가로 됩니다.

10) 녹색삶이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이웃상담운동’입니다. 이웃상담은 저소득 가정의 여성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최소한의 심리적, 정서적 지지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교육을 실시하고 저소득층 가정과 연결시켜서 친구이자 지지자가 되어 주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아동대상 프로그램을 더 확대시켜 영육아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려 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어릴 때부터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저소득층 가정의 양육부담을 덜어줄 생각입니다. 필요하다면 관과도 협력할 것입니다.

11)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중앙화된 시민단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물론 이제까지의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향후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 필요한 과정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중앙단체의 이슈파이팅과 여론동원은 시민단체에 대한 인지도를 상승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지도 상승은 지역단체의 활동을 도와줍니다. 아직까지는 긍정적, 적극적으로 해석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 활동만이 아니라 조직까지 챙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부담이 커질 것이고 지나치게 외형만 확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장과 중앙의 네트워크입니다. 그 결합지점은 다양할 것이고 많은 실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그런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2) 남성들은 얼마나 참여하고 있습니까?

=>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차량봉사자나 남자아이들 목욕시키는 일에 동참하고 있고 숙제방 자원교사 활동도 합니다. 남성 자원봉사자는 너무 필요한 부분입니다. 청소년 모임인 ‘나누리’를 졸업한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녹색마을지킴이’같은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연말에 계획하고 있는 사단법인화 작업이 되면 남성들을 고려해서 ‘녹색마을사람들’(가칭)로 명칭을 바꾸는 것을 고려중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에도 자원봉사자분들과 공부방 아이들로 사무실은 분주했다. 사무실의 실무자들은 더운 날씨에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고 배웅했다. 이 점이 녹색삶의 가장 특징적인 면이라고 생각된다. 즉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희망이 있었다. 녹색여성모임은 주민들의 자생적인 단체라는 특징만이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고 보살핌으로써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고 가꿔가고 있다. 또한 계속적인 단체의 확장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전문화되면 과감하게 분리시킨다는 원칙도 새로웠다. 지나치게 덩치만 커져 있는 시민단체들이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강북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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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단체의 부족한 2%를 채워드립니다!!"
- "풀뿌리희망재단"을 찾아

인터뷰 : 박성호(풀뿌리희망재단 상임이사)

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2005년 막사이사이상 ‘떠오르는 지도자’ 부분의 수상자는 우리들 옆에서 풀뿌리운동을 실천해 온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의 윤혜란 전 사무국장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상금을 종자돈으로 해서 지난 8월 말 “풀뿌리희망재단”이라는 것을 창립했다. 지역운동을 발판으로 재단이라는 것을 처음 시도한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3억 5천여만 원을 모금했다는 사실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5만 달러가 종자돈이라고 하지만, 지역 차원에서 상당한 재원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풀뿌리운동이 시민운동 사이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때, 천안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왜 ‘재단’의 형태로 전개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복지운동의 메카라고 할 만큼 새로운 모델케이스를 제시해왔던 천안 지역의 경험이 “풀뿌리희망재단”을 잉태한 기반이라는 사실엔 이견이 없을 것이나, 그것이 ‘재단’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엔 나름의 시대적 또는 지역적 요청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궁금증들을 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천안행’ 지하철이 기차 옆을 나란히 달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충남 어딘가로 내려간다는 생각이었지만, 나란히 달리는 지하철을 보면서 천안이 지근지처의 도시가 됐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동수단의 발달은 행정구역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무튼, “풀뿌리희망재단”은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사무실 한 쪽 면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박성호 상임이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부터 어떤 배경이었는지 물었다.


“윤혜란 전 국장의 기탁이 직접적인 배경이었고, 그 외의 배경은 특별히 없었어요. 지역 차원에서 관심들은 있었죠. 지역에 재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희망이죠. 여러 활동가들이 외국에 견학 갔을 때, 지역운동을 지원하는 재단들을 보게 되잖아요? 그런 마음들은 있었지만, 돈 모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뭐, 생각이야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논의하거나 준비한 것은 없었어요. 윤혜란 국장의 기탁금을 어떻게 사용할까? 얘기하다가 결정하게 된 거죠.......그래서 처음엔 ‘풀뿌리인큐베이팅센터(가)’라는 이름으로 작년 말부터 간단하게 프로그램들을 진행했어요. ‘재단’이란 이름으로 구체화한 것은 금년 3월부터예요. 재단으로 아예 명칭을 변경하고 설립을 준비하자고 결정한 거죠. 4월부터 발기인 대회를 했고, 발기인들이 100만 원 이상으로 해서 7월 3일 날 발기인 총회를 하게 된 겁니다.”


‘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바람은 있었지만, 5만 달러를 기탁한 때만해도 구체화되진 않았다는 것이 박성호 상임이사의 얘기다. 2006년 3월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해서 8월 31일 창립했으니, 약 6개 월 간의 준비 과정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재단’으로 본격화될 때까지도,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재단’으로 만들어지는 긴 여정을 염두하고 있었는데, 창립 일정을 조금 앞당겼다는 것이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현재 “풀뿌리희망재단”은 박성호 상임이사를 포함해 1명의 상근 간사가 일하는 구조다. 12명의 이사진과 2명의 감사가 “풀뿌리희망재단”의 임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지금까지 3억 5천 만 원을 모금했고, 그 중에서 5천 만 원은 준비 과정에서 사용했다. 3억이 기본 재산이다.


“준비단계에서 일부 사용했습니다.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임원들이나 회원들을 위한 특강 프로그램 등을 몇 차례 진행했습니다. 공식적인 첫 번째 사업은 ‘풀뿌리활동가 해외연수 지원사업’입니다. 2인 이상 4인 이하로 팀을 구성해서 사업을 받았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 신청을 해서 일본에 1주일 방문을 했죠. 1인당 150만원을 지원해서 전체 600만원 지원을 했어요. 자기계획서의 내용은 일본의 아동복지시설기관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아직은 초기라서 그런지, 1팀만 제출을 했어요. 심사는 참여할 사람 참여해서 계획서에 대한 살을 붙여주는 작업들을 했어요.”


아직 설립허가를 받지 않았지만, “99℃의 불씨, 1℃를 찾아서!”라는 풀뿌리활동가 해외연수 지원 사업을 통해 4명의 활동가에게 총 6백만 원의 해외 연수비를 지원했다. 특이한 것은 지원비에 대한 정산 서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획서에 대략적인 예산 사용처만 포함된다면 씀씀이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는다. 다만 연수보고서만 받고 있었다. 이런 방법은 가히 획기적이다. ‘신뢰에 기반 한 지원’이라는 것이 이런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역에서 가능한 모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는 천안 지역의 운동단체만 적용하지만, 최종적 사업의 범위는 충남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설립허가 과정이 좀 까다롭더라고요. 저희는 재단법인으로 할 계획인데, 최근에 재단법인 설립 작업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처음에 어려웠던 점은 뭐냐면, 소관부서 정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이것을 담당할 부서가 없는 거죠. 몇 개 과를 돌면서 활동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어요. 저희는 지방자치단체 별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 사업 하는 부서가 소관부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과에서는 비영리민단단체의 등록업무만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복지과’라든지 ‘자치행정과’ 등을 섭외하다가 결국 비영리민간단체 지원하는 그 과로 결정하기로 했어요. 그 과와 두 차례 정도 미팅을 했고요, 계속 서류를 보완하고 있는 중입니다.”


공직사회는 새로운 업무에 대한 포용력이 뒤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은 새로운 일이 생기면 행정부의 업무분장도 새롭게 업무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기존 업무분장 체계에서 새로운 일을 부과하려다보니, 딱히 맞는 부서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풀뿌리희망재단”의 경우도 소관부서를 찾는 절차가 가장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다행히 지금은 담당 부서를 찾았고, 미비한 서류를 보완해서 올해 안에 설립하가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천안이라는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지원하는 ‘재단’을 처음으로 만들 수 있었는가?


“글쎄요........활동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재단에 대한 고민과 바람들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재단의 종류나 수가 많을뿐더러 비영리민간단체를 지원하는 사례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거든요. 단체들이 가능하면 재정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기 목표에 의거한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사업개발과 이슈개발에 실행하는데 더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희망하는 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모금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들이 전문적으로 모금을 모으고, 또 사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단체들이 전문적으로 하면서 모금단체들이 지원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겠죠. 사실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도 단체들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재단과 같은 모금단체를 통해서 지원하면, 그 동안 논의된 자율성 훼손 문제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도 앞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이런 고민은 천안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이나 갖고 있는 문제의식일 겁니다. 천안이 조금 다르다면,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을 통해 인큐베이팅된 사회복지기관들이 하나의 유형무형의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을 네트워크 하는 작업들의 결과가 ‘풀뿌리희망재단’이라고 할까요? 다른 곳들도 재단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겠지만, 부딪히는 문제는 돈을 모으는 일에 대한 자신감인 것 같아요. 단체 하나도 운영하기 벅찬 것이 우리의 경험이었기 때문에, 돈을 모은다는 것이 선뜻 착수하기가 엄두가 안 나는 일이겠죠.”


크게 두 가지 동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시민운동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창구가 필요하다는 일반론적인 지역사회의 욕구와 복지운동을 통해 기반을 닦은 유형무형의 자산들을 네트워크 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의지와 후자의 조건이 잘 결합된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외부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역의 특수한 상황, 즉 천안 시민사회가 닦아 놓은 운동의 축적된 신뢰가 “풀뿌리희망재단”을 꽃피웠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이러한 근거는 기금을 모으는 과정을 보더라고 알 수 있었다.


“좀, 막무가내였다고 볼 수 있죠.(웃음) 시작을 하면서 아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았어요. 그런 신뢰가 기본적으로 있었던 거죠. 그 동안에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 한 2,000여명에게 발기인 참여에 대한 요청을 했어요. 놀라운 것은 팜플랫과 전화 한 통화만으로 1백만 원을 기부한 분도 있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말이죠. 내용만 보고 선뜻 기부한 분들이에요. 쉽지 않은 부분이라서 저희도 놀랐죠. 잘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는 전화만으로 얘기해서 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액수가 좀 커서 만나서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분들을 만나는 작업이 아무래도 많았죠. 4, 5, 6월에 집중해서 만났고, 7월 초에 발기인 대회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만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죠. 10만원 이런 것은 전화로 해도 되겠지만, 1백만 원 정도가 되니까, 만나서 설명하는 게 어려웠죠.”


발기인 요청 이외에 지역신문 하단에 광고가 나간 것 말고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한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준비과정에서 몇 차례 실시한 “풀뿌리운동 희망 찾기”라는 특강 프로그램에 적게는 100명, 많게는 200명 정도가 모여 홍보 효과를 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팜플랫만 보고 거액의 기부금을 건네준 시민이 있었다는 것은 “풀뿌리희망재단”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모금문화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올해까지는 설립허가를 받고 세부적인 계획들을 세워나가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테고, 적극적인 모금 마케팅의 시작은 내년부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성호 상임이사는 1년 정도의 사업비 규모를 1억 2-3천만 원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행정비가 5천만 원 정도, 사업비는 7-8천만 원 정도로 시작하고, 해마다 조금씩 늘릴 예정이다. 사무실의 경우도 ‘복지세상’과 함께 쓰는 것에 큰 불편은 없지만, 창립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소규모 회의실이나 100명 단위의 세미나실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냐는 입장이 많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박성호 상임이사는 사무공간의 이전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 했다. 왜냐하면, 다른 지역보다 사회복지 당사자운동(특히 장애인운동)이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공간은 필수적이다. 지역사회에 활용할 공간이 많다 하더라도 이들이 이용할 편의시설을 갖춘 공간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휠체어 전동차는 물론이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최근 시민사회연대회의를 축으로 논의되고 있는 ‘시민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물었다.


“말씀하신 대로 ‘시민센터’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천안 지역에도 그런 욕구가 있거든요. 지방정부의 재원과 민간의 재원이 필요하겠죠.......천안시도 관심을 보이긴 해요. 그러나 공간까지의 생각은 아직은 안 하는 것 같고요, 협력은 할 생각은 있는 것 같아요. 단체들은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더라도, 아마 천안시에 공간까지도 제공했으면 하는 제안을 시민단체협의회에서 하는 것 같아요. 결국 문제는 콘텐츠겠죠.”


자연스럽게 ‘시민센터’가 주제로 떠올랐고, 최근 아름다운재단이나 시민사회연대회의의 시민센터 설립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역재단’에 대해 물었다. 지역 차원에서 “풀뿌리희망재단”이 거의 유일한 모델케이스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시민센터의 경우, 지역재단을 만드는 것보다 시민센터를 만드는 것이 먼저 시작될 것 같아요. 그것을 만들어야 재단의 필요성이 있는 거니까. 우리와는 출발경로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죠. 우리는 수상금이 있으니까 바로 착수가 된 경우죠.........그쪽에서 말하는 지역재단와 우리는 특별히 차별성이 있는 것 같진 않아요. 모금방식은 조금 차이가 있겠죠. 서울은 물적, 인적 자원이 있으니까 조건이 좋고, 지역은 아무래도 모금시장이 작죠. 그 다음에 우리는 초기 단계니까 불특정다수의 모금보다는 인맥 중심의 모금, 즉 이사를 중심으로 모금을 하는 방식을 생각한 거죠. 이사들이 자기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모금과 자기 기부를 더해서 1년 동안 목표량을 정해서 기부한 거죠. 그리고 저희 재단의 공신력은 활동하면서 만들어가겠지만, 어쨌든 큰 규모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대개 지역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기부를 주요모금대상으로 삼고 있어요. 그리고 개인 소액 기부는 어차피 단체들과 겹치니까, 저희가 주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물론 기부하는 분들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모금대상으로 삼진 않습니다. 개인 기부들이 1년에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의 단위들이라면, 저희가 상정하는 모금 부분은 개인이든 자영업체든 중소업체든 1년에 300에서 1,000단위를 한 기업이 내는 이런 규모를 생각하면서 모금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사구성 방식에서도 비슷하죠. 대게 NGO 활동했던 사람 일부, 그리고 뜻을 가진 기업들, 이렇게 섞어서 하는 방법이고요, 그리고 지원방법은 저희가 자체 사업을 하는 것은 최소화할 예정이고, 풀뿌리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역할에 충실한 재단이 되겠죠. 그래서 사무국의 인원과 운영에 들어가는 기금은 최소화하고 지원하는 것에 역점을 많이 두려고 하는 거죠. 꼭 필요하면 연계사업을 할 수밖에 없겠죠. 단체지원에서도 지원방식은 조금 다를 수 있는데, 규모는 다르겠지만, 방향에 있어서 조금 다를 수 있는 것은 사업지원은 현재로서 안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프로젝트 지원을 안 하려고 하는 거죠. 프로젝트 지원을 하더라도 크게 이후 결과로서 만들어지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단체의 성장이 활동가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지만, 그러나 활동가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적 판단이라고 보고, 활동가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또 목표의식을 계속 유지해가고 비전을 계속 창출해갈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저희들의 바람이고 또 거기에 가장 많은 사업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의 교육훈련과 재충전과 복지에 가장 큰 비중을 두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연대회의나 아름다운재단에서 제시한 지역재단의 상이 없기 때문에 박성호 상임이사는 “풀뿌리희망재단”의 계획으로 차별성을 대신했다. 그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모금방식

 - 초기 : 아사회와 같은 인맥 중심

 - 목표 : 중소기업체나 자영업자.

 - 소액기부자 : 지역운동단체와 겹치기 때문에 가능하면 배제

재단 사업 방식

 - 사무국 규모 최소

 - 자체 사업 최소

지원방식

 - 사업 지원 배제

 - 활동가 성장에 최대한 지원

지원비 정산

 - 정산 서류는 받지 않음(자율적 사용)

 - 보고서만 제출


서울과 같이 규모가 큰 지역과는 조금 다른 모금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단 자체 사업을 최소화하면서 활동가 성장에 초점을 둔 지원방식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재단의 고유역할인 ‘기부문화 확산’에 대한 고민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래도 저희도 기부문화 확산이라는 관점을 지울 수가 없겠죠. 기부문화가 확산되는 것이 재단이나 단체 모두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노력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러나 상대적으로 서울은 익명성이 강한 곳에서의 개인 소액 기부는 그렇게 중복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작은 중소도시 같은 경우는 중복되는 점이 강할 수 있죠. 그러나 현재 단체에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권장하는 정도라고 할까요.........아무튼 저희도 기부문화 확산과 풀뿌리단체 지원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다 가지고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는 풀뿌리단체에 대한 지원이 한 축이 있고, 또 하나는 재단이라고 하는 고유목적성의 기부와 기부자의 원하는 곳에 대한 배분을 가지고 있는 거죠. 상대적으로 전자에 아무래도 무게 중심이 있는 거죠. 논란은 있었어요. 크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풀뿌리희망재단’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재단의 이름으로서 갖기는 조금 협소한 개념이라는 점, ‘운동권’적이라고 하는.(웃음) 풀뿌리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긴 하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풀뿌리희망재단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운동의 개념에 더욱 가 있는 거죠. 명칭을 두고 내부에서 약간의 논쟁은 있었죠........아무래도 콘텐츠가 문제인데, 연구를 지금부터 해야 하는 입장이에요. 최근에 여러 가지 기부와 모금마케팅이나 비영리 조직마케팅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교육이나 강연 또는 워크숍 등이 있긴 한데, 아직까지는 구체화되지는 못 한 것 같고요, 일반론에 아직 머물러 있죠. 현장이라고 할 때, 아무래도 지역이라고 하는 작은 규모에서의 모금시장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저희들이 해야겠죠. 그래서 일반적인 모금기술에다가 지역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확대해나가는 방식을 만들어야겠죠. 그런 판단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지 않아요.”


‘기부문화 확산’과 ‘풀뿌리단체 지원’은 “풀뿌리희망재단”의 두 가지 기능 축이다. 그러나 ‘풀뿌리단체 지원’에 대한 상은 어느 정도 잡혀 있는 듯 했지만, ‘기부문화 확산’은 어떤 면에서 지역운동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 상이 미약하다. 지금이 바로 그런 구상을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모금활동’이라는 재단의 고유 업무를 제외하고 “풀뿌리희망재단”의 주요 사업은 크게 네 가지이다.


① 풀뿌리단체의 부족한 2%를 채워드립니다!

 - 풀뿌리 시민단체 운영 교육 및 컨설팅

 - 자원개발 및 연계

② “희망의 씨앗”을 인큐베이팅합니다!

 - 풀뿌리 시민단체의 창립 지원

 - 신규 공익사업 개발

③ “희망을 만드는 사람”을 키웁니다!

 -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가 교육 훈련 지원

 -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가 지원

④ 아시아와 세계를 만나는 새로운 창이 되겠습니다!

 -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NGO Network, 정보교류

 - 활동가 교환 연수


“‘풀뿌리단체의 부족한 2%를 채워드린다’는 잘 하고 있는 곳이나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단체가 조금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방학 동안에 자녀 있는 활동가의 가족문화체험 같은 것을 지원하는 것도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희망의 씨앗’을 인큐베이팅한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결과로서 상도 받았고, 재단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것을 찾아서 재단이 지원할 텐데, 3-4년 동안 중기사업이 될 것 같아요. 인건비가 무엇보다 많이 들어가겠죠. 다른 것은 사업비니까, 활동가를 지원하더라도, 인건비 고정비용이니까 많이 들어가겠죠. 그것은 섣불리 작업하는 것보다 논의들을 잘 모아서 중기사업으로 정해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한꺼번에 많이는 못하겠죠. 한 사업에 3-4년 정도 걸리겠죠. 재원이나 인력풀이 넉넉한 편이 아니니까........활동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앞서서 말씀드렸고........아시아와의 연대 같은 경우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는데, 이를 테면 필리핀 같은 경우, 활동가 중에 한국 지역운동에 관심이 있는 운동가가 1년 정도, 2년 정도든지 할 생각이 있다면 여기서 근무하게 하고 여기서 월급을 주고, 활동가들의 영어사용 능력을 높이도록 그룹으로 영어도 가르치고, 교류업무나 작업이나, 영문 뉴스레터나 그런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리고 혼자 사는 직원과 공동생활을 해도 되고, 아니면 저희가 전세로 얻어도 되는 거니까. 그렇게 하고 어쨌든 활동가들이 영어사용 능력을 높여야 되는 부분은 있으니까. 그런 것이 되어야 사람들이 나가려고 하죠.(웃음) 거꾸로 필리핀의 솔리만 여사 같은 경우는 복지부 장관도 했지만, 필리핀 지역에서 운동을 해왔던 분이니까, 우리나라와의 신뢰관계도 있고, 저희가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곳도 만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주요 사업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풀뿌리희망재단”은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설립허가 작업, 모금에 대한 연구, 지원사업의 체계화, 지역사회 홍보 등 무르익은 논의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남았다. 내년 초부터가 구상을 실현하는 시기가 될 것 같다. “풀뿌리희망재단”은 그야말로 풀뿌리운동에 희망을 주고 있다. 종자돈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촉발된 지역사회의 힘은 “풀뿌리희망재단”이라는 것을 잉태했고, 아무도 가지 않는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풀뿌리운동의 활성화를 열망하는 많은 지역과 활동가들이 그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지역을 돌면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좋은 사례는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으로도 “풀뿌리희망재단”이 뿌리고 가꿀 희망의 씨앗이 천안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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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평생교육사가 주민자치센터에 간 까닭 ②



작성 : 이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 최근, 이천시 주민자치센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14개 주민자치센터에 평생교육사들이 전담 실무자로 배치되면서 주민자치센터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천시가 지난 2004년,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이후 나타난 변화다. 아래는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도시사회분과’에서 작성한 보고서(집필 : 이호/김현)를 간단히 정리한 내용이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를 싣는다.



4. 평생교육사 배치와 주민자치학습센터의 변화


이천시가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되고, 다양한 정책을 읍면동까지 확대 적용함으로써 주민자치학습센터의 운영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시설의 확충과 정책 프로그램의 확대(특히 평생교육사 배치)가 주요한 원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시설의 확충은 이천시뿐만 아니라 여타의 지역에도 해당되는 일반적인 사항이다. 하지만 시설 환경에 따라 프로그램이나 주민들의 친밀성에 상당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요한 변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지점들을 파악해보는 것도 중요한 정성적 평가 과정이겠으나, 본보고서가 이를 조사하는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각 읍면동 주민자치학습센터의 운영 역사도 짧기 때문에 아직은 이른 측면도 있다. 그러나 평생교육사 2명, 주민자치위원 1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주민자치학습센터의 변화 지점들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들과 인터뷰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변화 지점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프로그램의 양적, 질적 변화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의 양적, 질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평생교육사의 전문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평생교육사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민과 대면하면서 주민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매 분기마다 변화․발전시키고 있고, 이에 따라 참여자의 수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타 지역과의 비교이다. 이천시 프로그램을 2006년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 도시사회분과에서 조사한 안성시와 포천시의 그것과 비교해보자.


<표 9> 이천시, 안성시, 포천군 주민자치프로그램 비교

증포동(이천시)

안성3동(안성시)

호법면

화현면(포천시)

프로그램

정원

프로그램

정원

프로그램

정원

프로그램

정원

영어원어민회화초급

20

노래교실

40

비만탈출프로젝트

50

노인컴퓨터교실

10

영어원어민회화중급

20

서예한문교실

30

호법[마에스터대학]

100

어린이미술교실

30

영어한인기초

20

단학교실

40

외국인 가정을 위한 한글교실

24

요가교실

30

영어원어민회화초급

20

요가교실

30

단기해외여행대비

영어회화

24

테니스교실

12

영어원어민회화중급

20

풍물교실

30

어린이풍물

30

스포츠댄스교실

20

중국어 문법

30

책읽어주는

엄마모임

30

생활공예

24

컴퓨터

22

중국어원어민 회화초급

20

컴퓨터교실

30

컴퓨터심화반

12

 

 

중국어원어민 회화중급

20

 

 

스포츠댄스

50

 

 

일본어원어민 회화중급

20

 

 

전통문화학습

북춤체험

20

 

 

요 가 (Body Balance) 

42

 

 

겨울독서교실(1-3기)

150

 

 

디카 사랑 (작품반)

20

 

 

영어스토리텔링

30

 

 

압화 심화반

20

 

 

자녀와 함께하는 경제교실

60

 

 

천연염색 더하기 규방공예

20

 

 

가족극장

100

 

 

쉐도우 아트

15

 

 

그리스로마신화

애니메이션

100

 

 

미디어 활용교육

〈비판적 글씨기와 토론〉

20

 

 

원어민 영어동화구연

-

 

 

엄마와 함께하는 NIE〈신문은 아이디어창고〉

30

 

 

아기와 엄마의

책사랑 북스타트

-

 

 

ABC는 내친구

12

 

 

영상으로 떠나요

세계여행

100

 

 

동화와 국악의 만남

30

 

 

컴퓨터교실

15

 

 

물놀이! 과학놀이!

신나는 과학찾기! 

35

 

 

이천 옛이야기 교실

단체

 

 

징검다리 벼룩시장

-

 

 

1일 도서관체험

단체

 

 


증포동과 호법면은 가장 최근 프로그램 계획서이며, 안성3동과 화현면은 2005년 계획서이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 눈에 보기에도 이천시 주민자치학습센터 프로그램이 양에서도 많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다양성을 띄고 있다. 이천시와 안성시는 비슷한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도농복합형 도시 형태를 띠며 인구도 각각 19만과 16만 명으로 이천시가 3만 명 정도 많다. 표에서 비교하고 있는 이천시의 증포동과 안성시의 안성3동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 도시의 중심 지구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도 안성3동은 안성시에서 가장 많고, 증포동은 이천시에서 두 번째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천시 증포동의 프로그램이 훨씬 다채롭다. 호법면과 화현면의 경우는 농촌형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인구 규모도 각각 4천9백여 명과 3천3백여 명으로 호법면이 다소 많다. 프로그램 수를 보더라도 차이가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호법면의 경우, 겨울방학을 맞아 초등학생과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화현면보다 다채롭다고 볼 수 있지만, 정기 프로그램만 놓고 보더라도 화현면보다 훨씬 다양하고 종류도 많다. 이렇게 두 도시가 엇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지만 프로그램만 놓고 보더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전담자의 유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특히 전담자가 프로그램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평생교육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2) 프로그램 참여자 규모


전문 인력이 설계한 프로그램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변화되자 주민들의 참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주민자치학습센터의 전담 인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는 50명 정도의 주민이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약 300명 정도의 주민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어요. 이 인원 이외에도 ‘징검다리 벼룩시장’이라든지, ‘JC시네마’, 이런 식으로 청소년 대상 교육투어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다 포함하면 400-500명을 넘는 셈이죠. 가장 많은 참여하고 있는 연령대는 30대-50대 성인들이고요, 주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물론 방학 때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곤 합니다.” - A 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


전담 인력이 밝히고 있는 참여의 정도의 변화는 비단 이 주민자치학습센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주민자치학습센터 프로그램의 변화와 함께 주민들의 참여도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 한 주민자치위원의 얘기를 들어보자.


“주민자치학습센터가 신축된 후 시설이 많이 좋아졌어요. 접근성도 떨어지지 않아요. 프로그램은 잘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학 중심으로 잘 하죠. 여기는 어학이 특화가 되었어요. 제가 보기엔 다른 곳보다 나은 것 같아요. 중구난방으로 하는 것보다 특화해서 하는 건 잘 하는 것 같아요........특히 어학은 주민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죠........평생학습 프로그램은 매우 잘 된다고 볼 수 있죠. 보통 일반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서 프로그램을 증설하는 건데, 강의실 문제가 있어서 마냥 늘릴 수 없는 한계는 있죠.” - A주민자치학습센터 주민자치위원


인터뷰에 응한 한 주민자치위원은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이천시가 상당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요인은 전담 인력의 배치로 인해 프로그램이 다양화되고 주민들의 요거에 부흥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자치위원도 그러한 부분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3) 주민자치위원회


여타의 주민자치센터가 그렇듯이, 주민자치위원회의 활성화 정도는 주민자치센터의 활성화화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평가 지표이기도 하다. 이천시의 경우, 평생학습도시 선정 이후 주민자치위원회가 상당히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인터뷰에 응한 전담 인력과 주민자치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무래도 여기는 ‘주민자치학습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민자치’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데, 대체로 주민자치위원회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주민자치위원회 활동도 한 달에 2-3번 할 정도로 상당히 활성화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전담 인력이 오기 전까지는 행정직 공무원이 담당했는데, 지금처럼 활성화되진 못 한 것 같아요. 평생교육사들이 배치된 후에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요인이 있겠죠. 아무래도 전담직원이 배치된 것이 가장 큰 것 같고,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이후 정책적으로 지원한 측면도 있고, 시설 면에서도 확충되고 인적자원이 많이 투입되었던 것 같아요.” - B 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


B 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은 한 달에 2-3번 정도 주민자치위원회 회의가 개최될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전담 인력이 배치되기 전 모습과는 상당한 변화이다. 이천시의 정책적 지원으로 인해 전담 인력의 역할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었다. 주민자치위원 입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전담 실무자가 배치되기 전에도 주민자치위원들의 활동은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않았어요. 대부분 직장이 있기 때문에 위원들이 다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전담 공무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를 들면,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민자치위원들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만, 그것을 전담으로 나서서 누가 강사를 알아본다든가, 수강생 모집한다든가, 이런 것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일을 평생교육사들이 전담해서 하게 되니까 확실히 영향을 미친 거죠.”


A 주민자치학습센터 위원의 대답은 더 생생하다. 프로그램 하나를 운영하더라도 강사섭외에서부터 수강생 모집까지 주업을 갖고 있는 주민자치위원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담 공무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민자치위원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평생교육사의 배치는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대체로 주민자치위원들은 전담 인력의 배치가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


“.........주민자치와 관련된 회의 자료까지도 저희가 준비해요. 평생학습과 관련된 부분은 저희의 관심 분야이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 만들면 되지만, 주민자치 분야는 주민자치위원들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보거든요.........평생학습은 저희와 같은 전담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찌됐든 운영될 수 있거든요. 그러나 주민자치 분야는 당사자가 신경 쓰지 않으면 굴러가기 힘든 구조죠. 개별 위원들의 조건이 전업으로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 한계 내에서도 주민자치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 A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


A 주민자치학습센터 평생교육사는 주민자치위원들의 활동이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민자치 활동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회의 자료를 준비할 때도 평생교육사가 도맡아 하는 구조여서 주민자치위원의 상대적 역할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A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도 인정하고 있듯이, 평생교육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에 한해서는 주민자치위원회도 상당히 활성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4) 홍보


전담 실무자의 배치는 프로그램 홍보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이천시는 도시 성격의 동도 있지만 농촌특성의 지역도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홍보의 방식도 약간의 차이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대체로 도시성격의 동이라고 하더라도 서울이나 수도권과는 다른 조건이기 때문에 홍보의 조건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담 인력의 배치는 홍보 방식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우선 인터넷에 홍보를 해요. 시청, 자치센터, 동사무소 홈페이지 등에 홍보물을 올리죠. 신문에도 냅니다. 그리고 저희 지역은 자연부락보다는 아파트가 많은 편이에요. 통장단, 관리소장, 부녀회장, 주민자치위원, 기타 여러 가지 위원들에게 홍보물을 나눠드립니다. 그 중에서도 통장님과 관리소장님에게 집중해서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면, 통장님께는 아파트 라인이 10개 있으면 12장, 20개면 23장 정도 드려요. 라인별로 붙여달라고 부탁하는 거죠. 협조는 대체로 잘 해주세요. 제가 직접 만나서 말씀드립니다. 관리소장님 같은 경우는 공문을 보내드리면 안내방송을 해주십니다. 그런 방식을 통해 주민들이 많이 오게 되죠. 플랜카드는 다소 형식적이죠.” - A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


A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의 얘기처럼, 주요한 홍보방법은 면대면을 통해 동네 주요 오피니언들에게 부탁을 하고, 그들에 의해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홍보를 하는 방식이다. 또는 관리소장을 통해 안내 방송을 유도한다든지, 부녀회 등을 통해 홍보하는 등 주로 면대면 접촉을 통해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주민자치학습센터가 도시 성격의 지역임에도 적극적인 홍보가 가능한 것은 전담 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래 B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의 대답은 전담 인력의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여기는 농촌지역이다 보니까 홍보가 제일 큰 문제에요. 주로 면대면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크고 작은 모임들이 많이 있거든요. 생활개선회라든지, 이장단 모임이나 부녀회라든지, 기관단체장이나 그런 곳에 홍보를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회의 같은 거 할 때 찾아가서 홍보합니다........이 지역에 온지 얼마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을 제일 많이 알 것 같아요.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다시피 합니다.” - B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


B주민자치학습센터는 도심에서 떨어진 농촌지역이다. 전담 인력도 홍보가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면대면을 통한 홍보방식을 택한 이유도 이런 불가피성이 있다. 전담 인력 스스로도 조직가나 촉진자, 또는 매개자(coordinator)나 활성가(facilitator)의 역할이 맞는 것 같다고 대답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B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의 경우, 이 지역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5-6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보다도 주민들을 더 많이 만났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만큼 전담 인력은 대민업무 서비스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과 밀착한다는 것은 주민들의 욕구를 직접 청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담 인력의 배치는 중요한 매개체인 것이다.


5) 주민들의 욕구 수렴


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은 짧은 기간 동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주민자치학습센터 운영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면에서는 주민들의 욕구에 맞는 내용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삶의 질 개선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제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했어요. 그러나 주민들의 요구기반을 통해서 하다보니까, 주민들이 원하는 내용을 상당 부분 반영하게 됐어요. 이렇게 모아진 주민들의 의견을 주민자치위원회의 회의를 거쳐 면장님이 최종 결정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만족도가 상당합니다. 제가 직접 주민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 분기마다 설문조사도 하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은 편이죠.” - B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인력


면대면을 통한 홍보방식을 택하고 있는 B주민자치학습센터의 경우, 주민들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수렴하고 있다. 주민들은 전담인력이 배치됨으로써 욕구를 전달할 창구가 대폭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주민차지학습센터를 방문하는 주민들은 공무원보다 평생교육사를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딱딱한 공직에 근무하는 행정직보다는 유연하게 주민과 자주 만나는 전담인력이 더 친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A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인력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제가 여기 와서 몇 차례 설문조사를 했어요. 이천시나 시민단체에서도 설문조사를 하지만, 저도 별도로 설문조사를 합니다. 수강생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2문항을 설문하기도 하고, 교육성과와 관련된 설문도 하고,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설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설문을 통해 주민들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죠.”


A주민자치학습센터는 어학프로그램을 특화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프로그램 평가와 욕구조사에 기반 한 것이다(<부로> 참조).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아침 6시부터 수강신청을 위해 줄을 선 모습을 서울이 아닌 이천에서 볼 수 있다. 경쟁률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이런 설문조사나 주민들의 욕구 수렴은 행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전담 공무원이 아닌 이상, 주기적으로 주민과 밀착하려는 시도는 사실 불가능할 것이다. 전담 인력, 특히 평생학습사들은 교육프로그램의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조직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주민자치센터에서도 특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아이템임에 틀림없다.


5. 결론 및 몇 가지 제언


1) 전담 실무자의 역할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방안과 관련하여 상근 실무자의 필요성이 중요한 하나의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주민자치위원들이 자신의 생업을 가지고 자원봉사 차원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및 센터 운영에 관한 전문성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센터의 실제적인 운영책임을 맡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여러 조사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2005년도에 <푸른경기21 실천협의회>에서 수행한 경기도 지역 주민자치센터 관련 의제의 모니터링 결과에 의하면,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 활성화 정도는 11점 만점에 5.09점에 그쳤다. 즉, 활성화 정도를 점수를 평가하였을 경우, 중간 점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세부항목에 따른 비율로 나타내면, 가장 많은 역할이 ‘분과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음’이다. 분과활동이 이루지지 않는다는 것은 주민자치위원들의 일상 활동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주민자치센터 운영에 있어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그에 반해 ‘분과위원회 별로 모임을 가진다’는 내용 이상에 대해서 일정 정도 주민자치위원들의 역할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비율은 모두 합쳐도 35.1%에 불과하다.


또한 2006년도에 <열린사회시민연합>에서 전국의 주민자치센터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주민자치위원회의 고유한 역할이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임에도 응답자의 약 39.2%가 참여하는 편이라고 응답하였으며, 약 13.2%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 결과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으나, 적극 참여가 아닌 참여하는 편이라는 응답의 상당수는 기획을 주체적으로 수행했다기보다는 프로그램의 결정권을 행사한 정도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위원회 자체가 프로그램의 기획과 집행을 주체적으로 수행한 경우는 상당히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각 주민자치센터에는 담당 공무원이 배치되어 있고, 이들이 주민자치위원회를 보좌하여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의 경우에도 주민자치센터를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적 업무도 병행하고 있어 주민자치센터에 집중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공무원들의 지나친 개입은 자칫 주민자치센터가 공무원들에 의해 주도되는 문제점을 낳게 된다. 실제 주민자치센터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는 곳 중에서도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 발전에 한계가 노정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경기도 지역에서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군포시를 꼽을 수 있다. 군포시의 주민자치센터들은 설립 초기에서부터 모범적인 운영의 사례를 보이고 있으나, 주로 공무원들의 주도에 힘입은 바가 크고, 그로 인해 최근에는 그 발전이 정체되고 있는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1).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주민자치센터 중에는 상근 실무자가 배치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천시 연수구 연수2동의 주민자치센터이다. 이 곳에는 주민자치센터 설립 초기에서부터 지역사회 활동 경험이 있는 시민운동단체 활동가가 결합하였고, 그것이 활성화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인천시에서는 한 때 모든 주민자치센터에 상근 실무자를 배치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6년도에 실시한 농촌지역 주민자치센터 모니터링에서도 안성시의 여타 주민자치센터에 비해 상근 간사를 두고 있는 포천시 화현면의 주민자치센터가 상대적으로 활성화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자치센터에 주민자치위원회를 보좌하는 상근 실무자를 두는 경우, 그 형식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주민자치위원 중에서 상근 간사를 두는 경우도 있고, 주민자치위원이 아닌 상근 실무자를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수2동 주민자치센터의 경우에는 초기에 상근 실무자를 두었다가, 주민자치위원회와의 원활한 연계를 위하여 상근 실무자를 주민자치위원으로 위촉한 경우도 있다.


현재의 「지방자치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으로 상근자 인건비를 책정할 수 없다. 따라서 상근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상근비를 지급하고 있는데, 주로 주민자치위원들의 회의수당을 적립한 기금을 활용하거나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임의적으로 그 사용처를 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 수강료 등을 활용하고 있다. 연수2동의 경우에는 초기에 공공근로사업으로 상근자의 상근비를 충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근 실무자의 역할은 전체적으로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행하며, 센터 운영을 책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 및 운영의 의사결정권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의사결정권까지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즉, 주민자치센터는 상근 실무자의 유무와 상관없이 주민자치위원회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는 과정을 통해 운영되어지는 것이 그 설립 취지 및 목적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근 실무자의 역할은 주민자치위원회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규정되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을 보좌하는 역할로 규정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상근 실무자의 구체적인 역할은 프로그램의 기획과 집행에 있어서 주민자치위원회를 보좌하는 것이 적절한데, 주민자치위원회 내부의 위상에 있어서는 조직가와 같은 성격을 지닐 필요가 있다. 즉, 상근 실무자는 주민자치센터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민자치센터와 지역사회 활동의 주체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며, 자극하고 활성화 시키는 역할을 고유한 역할로 여겨야 한다. 즉, 상근 실무자는 주민자치센터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조직가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고, 그 역할을 중심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주민자치센터에서 특정한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려 할 때, 그 역할의 중심은 당연히 주민자치위원회가 맡아야 한다. 그러나 주민자치위원들이 일상적으로 주민자치센터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히 역할을 세분하고 이를 적절한 주민자치위원에게 맡기는 일은 상근 실무자가 사전에 계획하고 조정해야 일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평가에 있어 필요한 평가틀을 주민자치위원들에게 제시해 줌으로써 주민자치위원들이 효율적인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함에 있어서도 프로그램 기획에 필요한 정보와 필요한 자원을 소개해 주는 등의 역할이 실무자의 역할인 것이다.

물론, 주민자치위원회나 주민자치센터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역량이 성장하여 이러한 일들까지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실무자는 그야말로 실무를 지원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조금씩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단계에 이르면, 실질적으로 주민자치센터가 주민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무자의 역할은 주민자치위원들의 역량 정도, 참여하는 주민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의 정도에 따라 그 역할이 적절히 정해질 수 있어야 하고, 실무자는 그 역할의 정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무자의 역할을 매우 전문적인 것이다.


2) 이천시 주민자치학습센터의 특수성


전국적으로 주민자치센터에 (반)상근 실무자를 배치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 배치가 공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 수준도 낮고, 그에 따라 이들의 활동기반이 안정적이지 못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이들을 고용하는 주체가 주민자치센터 또는 주민자치위원회라는 점에서 주민자치센터 그 자체의 활동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에 반해 이천시의 경우 전임 시장의 평생학습에 대한 강한 의지에 의해 평생학습사들이 각 주민자치센터에 배치되었고, 이는 주민자치센터를 평생학습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주민자치센터가 주민들의 자치력을 강화하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운영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평생학습은 주민자치센터의 매우 중요한 기능 중 한 가지이다. 하지만, 주민자치센터는 그 자체가 평생학습센터는 아니다. 이는 굳이 주민자치와 평생학습을 분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학습을 위해 주민자치센터을 활용하는 것과 주민자치적 관점에서 평생학습을 활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천시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들이 여타 농촌지역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들보다 상대적으로 종류의 다양성이나 주민 참여도의 활성화 등에 있어 모범적이기는 하지만, 주로 평생학습 중심의 프로그램 중심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는 주민자치를 지향하기 위한 직접적 프로그램, 예를 들면 주민들의 자치적인 동아리 구성과 지역 현안에 대한 주민들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 개최, 지역복지사업 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점은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주민자치위원회와의 관계성 등에서 더욱 크게 드러날 수도 있다. 주민자치센터는 결국 주민자치위원회 및 주민들의 자치적 역량 강화(empowerment)를 통해 지역사회를 자치적 공동체로 발전시키려는 지향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센터의 실무자들도 단순히 프로그램들의 수준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및 사업이고, 이를 통해 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하며, 그러한 효과가 일정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지향이 좀 더 분명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애초에 평생학습사들이 주민자치센터에 배치된 배경에 평생학습도시를 활성화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평가기준이 될 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민자치센터에 실무자로 배치된 이상, 평생학습을 통한 주민자치력 강화와 지역공동체 형성이라는 방향성을 지향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들과 주민자치위원회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보다 적절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몇 가지 제언 - 전담 실무자를 중심으로


■ 전담 실무자의 근무여건 개선

주민자치센터 활성화에 있어서 전담 실무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천시 주민자치학습센터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14개의 이천시 주민자치학습센터에 배치된 평생학습사들은 모두 ‘비전임 계약직’으로 불안정한 근무조건을 갖고 있다. 업무의 하중에 비해 급여나 처우조건이 열악한 실정에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센터의 질적 운영은 전담 실무자의 질과 무관치 않으며, 전담 실무자의 질은 근무여건이나 처우여건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이러한 전담 실무자의 여건개선은 이천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주민자치센터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천시가 장기적으로 평생학습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민자치학습센터를 기반으로 주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려 한다면, 이를 촉진시킬 수 있는 전담 실무자의 여건개선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 처우개선이 이루어질 것인가? 전담 실무자를 비롯해, 주민자치위원, 그리고 지역사회가 합의하는 과정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 전담 실무자 역할의 변화 - 프로그램 기획자에서 임파워먼트 기획자로

주민자치학습센터는 주민들의 자치력을 강화하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고유한 목적이 있다. 주민자치학습센터가 주민들에게 평생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평생학습에만 귀속되어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전담 실무자는 프로그램 기획자를 넘어, 주민 임파워먼트 기획자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주민자치학습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냈다면, 그 다음 단계의 전략과 비전은 무엇인지 구상하는데 있어서, 전담 실무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직은 역사가 짧지만, 앞으로 이러한 과제가 전담 실무자에게 주어질 것이다.


■ 동아리 및 자원봉사 활성화 전략 필요

많은 주민들이 좋은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주민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주민의 참여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공급자로서의 주민자치학습센터와 수혜자로서의 주민의 관계만 설정될 뿐이다. 주민들이 수동적인 프로그램 참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나 자원봉사 활동 등을 통해 자치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로 나갈 때, 주민자치센터 설립취지에도 조응할 수 있다. 이천시의 경우도 동아리나 자원봉사 활동 활성화 여하에 따라 주민자치학습센터, 나아가서 지역사회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아직은 운영 경험이 짧아서 동아리나 자원봉사 조직이 미약할 실정이다. 이에 대해서는 활동계획이 필요할 것이다.


■ 주민자치위원과의 긴밀한 협력

예상컨대, 전담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정도가 차이가 날 것이다. 이천시만 하더라도 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실무자의 역할은 지대하다. 하지만 전담 실무자가 주민자치학습센터 운영 전반의 중심 주체는 아닐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운영 주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주민자치위원이 전업으로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전개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모든 업무를 분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전담 실무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즉, 주민자치위원회가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 중에 하나는 결정권한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전담 실무자가 주민자치위원회의 결정권한 확대에 일정한 조정자나 매개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동등한 관계에서의 협력시스템을 어떻게 만들까도 남아 있는 과제이다.


■ 과정적 성과로서의 평가지표 개발

일반적으로 행정부는 결과로 나타나는 정량적 지표로만으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정량적 평가가 필요한 부분도 있으나, 정성적 평가, 즉 과정으로서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성도 있다. 특히 평생학습이나 주민자치의 관점에서는 ‘참여 과정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우세하기 때문에 행정부의 평가 방식만으로 이러한 변화를 측정한다는 건 어울리는 방식은 아니다. 따라서 주민들의 참여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이천시는 이런 평가 개발을 위한 좋은 조건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천시의 행정적 지원, 평생학습지원센터의 전문성, 주민자치학습센터 전담 실무자의 현장성, 그리고 점점 활성화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들의 참여 확대 등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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