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대한 불가사의!
불가사의 하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등교해야 하는 평일, 몇 번을 깨워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눈을 뜨지 못하는 딸아이를 보면 마음이 좀 시리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깨워야 하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학교에 보낸다. 그러던 딸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엔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난다. 그것도 남들이 곤히 잠든 아침 일찍.
방학에도 예외는 없다.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신세가 조금 처량하긴 하지만 평상시와 똑같이 아침에 전쟁을 치른다. 그러다가도 주말이 되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단다. 부러, 전날 늦게 재워도 소용이 없다. 귀신 같이 일찍 일어난다. 허긴, 곰곰 생각해보면 내 어렸을 적도 그랬던 것 같긴 하다. 내 짧은 추리로는,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허락된 주말을 ‘잠’으로써 아깝게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인 듯싶다. 이것은 두 번째 불가사의와 맞물린다.
불가사의 둘.
도대체가 낮잠을 잘 생각을 안 한다. 주말에는 낮잠도 잘 필요가 있다고 타일렀지만 잠자는 게 아깝단다. 할 일이 많아서 잠을 못 잔 댄다. 간혹 놀다 지쳐 낮잠을 자다 일어나면 첫 물음은 이런 거다. “아빠, 지금 낮이야 밤이야? 도대체 몇 시야?” 밤이라고 대답하면 울상과 함께 짜증을 낸다. 아깝게 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낮이라고 답하면 얼굴에 회색빛을 띤다. 낮이냐 밤이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이런 단순한 딸아이의 머릿속이 정말로 궁금하다.
잠은 죽어도 싫어! 라고 외치는 듯 한 딸아이.......
잠은 딸아이의 최대 적이 확실하다. 그래서 밤에도 잠재우기 힘든 건 당연하다. 이렇게 꼬신 적도 있었다. “다빈아! 잠자면 돼지꿈 꿀 수 있거든. 돼지꿈 꾸고 아빠한테 얘기해줘! 그러면 용돈 줄게!” 참,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더니 한 동안 먹히긴 했다. 그러나 잠시뿐. 잠잔다고 언제나 돼지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을 뿐이다. 지금은 전혀 통하지 않는 수법이다.
일요일 낮 한때. 피아노 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졸리면 잠 좀 자라!
불가사의 셋.
잠자기 전에 양치질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 그러나 여우같은 딸아이가 이를 역으로 이용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잠을 재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아차! 양치질을 안 했다. “다빈아! 얼른 양치질 해!” 그러면 돌아오는 답은 이렇다. “아빠, 난 양치질만 하면 잠이 깨. 양치질 안 하면 안 될까?” 잠을 재우려는 아빠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술수인지, 아니면 진짜 잠이 깨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딸아이의 불가사의 중 한 가지는 양치질을 하면 잠이 깬다는 것이다.
잠자기 전에 치러야 할 통과의례는 양치질을 놓고 벌이는 실랑이다. 양치질을 좋아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 요것은 할 술 더 떠 잠과 연관시킨다. 지금은 졸린데, 양치질만 하면 잠이 달아나니, 양치질을 안 하고 그냥 자면 안 되겠냐고 항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렇게 타협할 수가 없다. 잠이 깨더라도 양치질은 하고 자는 것이 원칙이라고 조용히 타이르기도 하고 윽박질러 강제로 시키기도 한다. 사실, 나도 잠이 코앞까지 와 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양치질을 감행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신념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이대로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딸아이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고도 남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일이다. 양치질은 잠을 깬다는 신념을 커서도 간직하게 될까 그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그 밖의 잠에 대한 불가사의
그렇게 분기탱천하던 딸아이는 버스만 타면, 혹은 지하철만 타면 곤히 잔다.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힘겹게 들쳐 메고 집에 눕히는 순간 잠이 깬다는 것도 불가사의 중에 하나다. 부모의 바람과 아이의 행동은 정반대에 있다. 부모가 등골이 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축복과 함께 등골이 휜다는 가능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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