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자치, 또는 관념적 소통을 넘어!"
-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찾아
인터뷰 : 최혁진(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 기획실장)
작 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한 7,8년 전으로 기억한다. 장일순 선생과 이현주 목사가 대담 형식으로 작성한 ‘노자이야기’라는 책을 손에 든 적이 있었다. 도(道)와 무위(無爲), 하나님과 부처님을 넘나들었던 그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솔직히 ‘신선 같은 말씀만 하시는구나!’했다. ‘장일순’이라는 한 인간을 접한 것도 그 때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대목. ‘뿌리가 죽으면 꽃이고 열매고 아무 것도 없지만, 뿌리가 살면 그것들은 저절로 맺힌다, 뿌리가 살아야 한다. 그것은 곧 근본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정확히 지적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취재한 지역운동사례는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였다. 한국 사회의 운동 판에서 원주라는 지역만큼 독특한 곳은 없을 것이다. 협동조합운동의 근원을 찾아가면 만나는 지점이 원주고, 그 곁에는 ‘장일순’과 ‘지학순’이라는 두 ‘사상적 큰 스승’이 있다. 풀뿌리가 살아야 지역사회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그들의 가르침은 현재도 매우 유용한 운동적 사상이다. 기층 민중운동을 통한 반유신독재운동, 김지하의 투쟁, 가톨릭농민회, 한살림운동 등은 소위 ‘원주캠프’가 만든 커다란 물줄기다. 현재의 신협운동, 소비자협동조합운동, 한살림운동, 의료생협운동, 공동육아, 자활운동 등을 지탱하는 자양분이기도 하다.

30여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원주의 소비자협동조합운동이 정치투쟁으로 깃발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80년대 암흑시대의 공백을 깨고 최근, 다시 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 지역운동, 주민자치, 생명운동의 기치를 걸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협동과 자치에 기초한 생명의 도시 만들기가 그들의 화두다. 지난 6월 5일, 원주지역의 협동조합 및 협동운동을 하고 있는 8개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창립했다. 지역자립의 경제를 이루고, 완전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생태적이고 인격적인 도시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협의회 창립의 취지다. 지난 주, 협의회 실무를 맡고 있는 최혁진(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 “밝음의원․밝음한의원”) 기획실장을 만났다. 통상 지역운동사례는 인터뷰 이후, 그 내용이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되지만, 이번 취재는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이 추구하는 바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인터뷰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녹취록 그대로 살리되, 다소 긴 내용은 편집하고, 주요 내용만 갈무리해 실었다. 원주의 독특함이 여타의 지역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풀뿌리운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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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이하 김) : 원주 협동조합운동이 꽤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해주시고, 현재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최혁진(이하 최) : 처음에 협동조합운동이 생기게 됐던 배경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과 지학순 주교님이 1965년 도에 지역운동을 했을 때, 그 때 제일 걸림돌이 됐던 것 중에 하나가 일차적으로 민중의 생존권에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원주뿐만 아니라 강원도 지역은 아주 열악했습니다. 일차적으로 민중생존권들의 기반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들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주지역 내의 영세상이나 소상인들은 그 때 당시에 규모라 그래봐야 판자 떼기 같은 것들을 만들어 가판을 했던 분들이거든요. 이 분들이 물건을 하나 구입하더라도 돈이 없으니까 돈을 꿔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시장의 고리채업자들에게 나중에는 터전마저 다 뺏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했죠. 이렇게 하다가는 소위 말하는 지역운동의 토대 마련이 안 되니까, 그래서 신협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런 과정에서 “밝음 신협”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 사람들이 조금씩 저축하는 그 돈을 가지고 기본적인 사업자금을 활용하고, 생존을 꾸려나가니까 고리채에 뜯기지 않은 거죠....... 신협이 상당히 활성화됐어요.

또 하나가 공동체를 계속 엮어 나가야 사실 지역운동에 힘이 생기잖아요. 사람들이 각개적으로 있을 때에는 동력이 안 생기는데, 그래서 소비조합운동이 시작이 된 거죠. 소비조합운동이 잘 진행이 되다가 나중에 광산 자체가 붕괴되었는데, 소비조합운동은 주로 광산촌과 강원도 지역의 농촌 지역에서 중심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광산 지역은 물가가 2-3배예요. 서울에서 설탕이 1000원이면 여기는 2-3000원이예요. 그래서 소득은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이 생활용품은 2-3배 물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계속 몰락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소비조합을 통해서 공동구매를 하자, 이렇게 해서 소비조합운동이 쭉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농업은 계속 몰락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근본적인 대책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그 때 당시에 가톨릭농민회 회원들 21명이 일본을 방문하게 됩니다.......

일본의 유명한 지역운동 조직인 생활클럽 생협을 시찰하고, 여러 개 생협을 다녀왔는데, 그 때, 한국 상황에서 모델링할 만한 곳을 찾은 거죠. 즉 생활클럽 생협의 방식대로 해보기로 결의했던 거죠. 대표적으로 농민들이 유기농으로 전환했는데, 유기농이라고 하는 전환이 생태주의적 사고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정부의 관리형 농업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생명운동의 시각들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한국사회에서는 농민과 도심 지역이 완전히 단절돼서, 한 쪽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도 한 쪽에서는 무관심해지는 상황이잖아요. 이것을 깨는 것은 소통이다, 그 소통은 관념적인 소통이 아니라 먹는 것을 주고받으면서, 산지 견학을 오면서, 농촌일손 돕기를 하면서, 뭐 이런 논의들이 그 때 벌어졌던 거죠. 그런 흐름 속에서 생협운동과 한살림운동을 시작했던 겁니다. 철저히 민중의 삶에 대한 분석하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뭘까, 가장 핵심적이 포인트가 뭘까를 짚으면서 그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상적인 포용력도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6-70년대의 일이구요. 80년대 들어와서 운동이 상당히 쇄락이 됐어요. 결정적으로 80년 광주가 생기고 엄청나게 정치적으로 압박해 오니까 힘이 축소되고,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젊은 사람들은 정치투쟁의 노선들로 전환하면서 지역의 생활운동이나 민중자치운동에 대한 역량이 단절이 됐죠. 80년대 판이 이렇게 선배운동과의 단절의식이잖아요. 그러면서 에너지의 동력이 재충전되지 않았고, 그러면서 원주라고 하는 도시 자체가 기본적으로 작은 도시다 보니까, 문제는 전체적인 한국사회의 기형아가 아주 본격화되었던 거죠. 거대도시 중심의 사회가 돼버리는...운동을 하려고 해도 다 서울로 가야 되니까, 그 당시 지역에 운동을 이끌어가던 분들이 다 서울로 다 떠나게 됐죠. 그래서 80년대가 상당한 침체기였어요. 버텨낸 것만 하더라도 굉장한 건데, 어쨌든 운동가들이 다 떠난 상태여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근근히 버텨온 거고, 90년대 들어오면서 NGO 단체들이 활성화되면서 이 쪽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 한 4-5년부터 새롭게 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어떤 힘을 모으는 주체, 공통의 카리스마라고 할까, 공론의 장이라고 할까, 소통의 장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의료생협 준비를 여러 협동조합이 모이고 지역주민과 NGO단체와 같이 만들었죠. 의료생협을 만들어서 약간의 소통의 장이 형성이 됐어요. 그 힘을 이어와서 협의회를 만들게 되었고, 협의회 내에서 지역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역시 지역운동이다 라는 논의를 했었죠. 지역운동이라는 활로를 찾게 된 것도 생협운동 판도 그렇고 많은 운동들이 지나치게 수도권 중심인 것 같아요. 지역의 역량이 안 된다는 자기비판은 있지만, 지역의 동력을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것들이 수도권에서 공급받는 식으로 상당부분 재편이 돼 있고, 정책적인 것이나 자본까지도, 그리고 생협조직이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보니까, 완전히 지역조직은 물류조직화 해가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판도로 가면 지역엔 비전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결국은 신자유주의와 비슷한 경향이 돼 간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오랫동안 논의를 한 끝에 협의회라든가, 지역의 화두를 지역운동에 두자고 한 것이죠.

김 : 운동의 뿌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말씀 중에 일본 ‘생활클럽 생협’에 대한 언급을 하셨는데, 자료를 보니, ‘워커즈컬렉티브’에 대한 고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최 : 예, 현재 활동이 되고 있어요. 이것도(월간 ‘원주에 사는 즐거움’이라는 신문을 보여주면서) 워커즈 형태로 만든 겁니다. 여러 지역단체에서 발행하는 각각의 회보들이 있잖아요. 전국단위로 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회보를 난잡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연대해서 만들자, 그래서 이것을 만드는 주체도 활동가들의 어떤 개입식의 형태로 만들지 말고, 지역주민들이 만드는 것으로 해보자,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만드시는 분들이 모두 주부들입니다. 다섯 명의 주부와 한 명의 여성 디자이너가 참여하고 있죠.

김 : 그럼, 이것이 ‘출판 워커즈’입니까? 가나가와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같은 거군요?

최 : 예, 그런 전망을 가지고 있죠. 앞으로는 지역의 NGO 단체에서 만드는 홍보물이나 인쇄물들을 편집과 기획을 만들어주는 거죠. 각 단체가 편집위원회를 통해 내용을 만들면, 이 쪽 분들이 그 단체의 성격에 맞게 예쁘게 만들어서 인쇄하는 거죠. 출판을 담당하는 지역의 워커즈컬렉티브라고 생각을 하고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참기름, 들기름 생산하는 워커즈가 올 초에 만들어졌다가 잠시 문을 닫았어요. 원주생협과 생협연대의 갈등이 생기면서 판매처가 막히는 바람에, 조만간에 재가동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생산가동 분야는 계속 워커즈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조합원들도 동의하고 있고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은 생협이 전국화 되다 보니까, 교복, 콩나물 이런 것도 큰 생협 조직에서 공장을 만들어서 공장에서 예쁜 용기로 포장해서 지역으로 다 직송해버리거든요.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공산품 같은 것은 협력해서 다른 소규모 지역과 같이 가야죠. 저희가 다른 지역과 담을 쌓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협력할 부분은 철저히 협력하겠지만, 지역 안에서의 완결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지역의 ‘성공회 나눔의 집’이나 자활후견기관이 들어와 있는데, 거기 빈민들, 자활문제들이 살아남는 방법들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요. 자활후견기관에서 맨날 사업단 만들어서 내보내잖아요. 어쨌든 시장 구조 하에서 경쟁이 안 되거든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본다면 그 분들이 참기름, 들기름 생산워커즈라든가, 콩나물이나 밑반찬이나 우리밀빵이나 이런 것들을 조금씩 생산하는 라인을 만들고 그것들을 이 지역에 있는 생협조직들이 전량구매를 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기초생계를 보장하는 방식을 해서 계속 그물망을 만들어가야 하는 거고, 이 부분들은 내부에서 상당부분 협의점들을 찾아가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사업들을 안정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어요.

저희는 협의회가 뭉쳤다고 하지만, 사실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단일조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장을 하나로 만들자는 겁니다. 마치 가나가와네트워크처럼요. 그렇지만 실제 사업영역은 다 분권화하려고 합니다. 어느 한 조직이 다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워커즈 방식으로 독립적인 사업체를 가지면서 참여하게끔 할 생각입니다. ‘출판워커즈’는 정착단계에 있다고 보고요, 참기름, 들기름 생산 워커즈는 다시 가동될 예정이고요, 또 다른 워커즈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두부, 콩나물, 밑반찬 워커즈 쪽, 쉬운 것부터 가려고 합니다. 의료생협 쪽에서는 ‘홈 헬퍼’ 사업단이라고, 독거노인 돌봐주는 것인데, 그 팀도 어느 정도 성숙하면 그 사람들이 자주적인 조직으로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의료생협과 나눔의 집이 같이 하고 있는데, 저희가 매달 교육하고 있거든요. 그 분들이 마인드가 형성이 되고 리더십을 이끌 사람이 나오면 그 때 가서 워커즈로 전환시켜주려고 합니다.

김 : 협의회 구성은 협동조합 위주로 되어 있겠죠? 다른 NGO단체들의 참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최 : 일단은 저희가 이름은 협동조합운동협의회인데, NGO단체도 참여를 원하면 준회원으로 해서, 의사결정권 등 모두가 똑 같습니다. 다만 대표는 저희 협동조합 조직 가운데 두는데, 저희가 준회원제를 정관에 집어넣은 이유는, 지역의 경제사업을 하는 협동조합의 대표는 지역의 신뢰가 있는 NGO조직으로부터도 인정받는 사람으로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준회원 제도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협동조합운동에 국한시키지 않고 공동체운동이나 지역운동을 펼쳐나가는 조직은 누구든지 정회원으로 맞을 수도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은 단체는 준회원으로 참여하되, 의결권이나 투표권은 다 똑같고요.

김 : ‘주민자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각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의 활동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조합원들의 참여는 어느 정도입니까?

최 : 저희가 방향을 지역운동으로 정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첫 번째로 조합원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활동가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는 실무 일, 뒷받침하는 일만 하고, 소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은 조금 마음에 안 들고 부족해 보이지만, 주민들이 나서서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들을 하거든요. 원주생협들은 조합원 활동가들이 계속 소모임을 만들고 있어요. 원주한살림도 조합원 활동을 만들면서 소모임을 형성해가고 있죠. 일단 주민자치의 힘은 주민들이 나서서 무엇인가 해보면, 해볼만 하구나 하는 어떤 다른 경험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이 자치를 어렵게 생각을 하는데, 이런 활동들이 민우회 소모임들이나 원주생협 소모임들이나 협동조합을 뒷받침해주면서 쉬운 먹거리 같은 소모임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경험들이 쌓여 가는 것 같아요.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늘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 활동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각 조합의 임원회 주요 직책들을 상당부분 여성분들로 맡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대상자와 결정자가 합치를 해야 되거든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가족의 건강문제를 대개 엄마들이 관리하고 관심을 갖고 있고, 먹거리 같은 경우도 주로 엄마들이 활동을 하잖아요. 이용자는 다 엄마들이고 주부들인데, 의사결정의 주체들은 대개 명망가인 남성 활동가들이란 말이예요. 이런 부분들을 조금씩 바꿔서 여성 활동가들이 많이 이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하고요, 차기 이사회쯤에는 7-80% 이상의 지역 여성 활동가 주체들이 이사 자리에 앉을 것 같습니다. 저희 실무자들은 그 분들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 하고요.

그리고 저희가 이런 다양한 조직의 임원활동가들이 자기 조직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양하게 지원할 계획인데, 특히 월례강좌 프로그램은 모든 조합들이 다 모여서 주최하고, 돌아가면서 주제 하나를 맡아요. 지난 달에는 원주생협에서 월례강좌를 했고요, 이번 달에는 소비자모임이 유전자조작을 가지고 월례강좌를 하고요, 11월에는 민우회에서 개최하기로 했어요. 12월 달에는 학교급식문제를 한살림에서 하고요. 1월에는 보건의료로 하고요. 그래서 소통의 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김 : 어떤 형태의 소모임들이 있습니까?

최 : 의료생협의 경우는 아토피 모임을 갖고 있고요, 이번 달에 새로 생기는 것으로 당료질환 앓고 있는 환자들의 모임, 등산모임 등이 있고, 원주생협은 마을별 소모임, 아파트 동에 같은 조합원들의 소모임을 갖고 있고, 육아교실, 생태기행교실, 동화사랑방 모임, 이런 소모임이 만들어가고 있고요, 그 외에도 자치역량을 키우기 위한 매장운영위원회, 그러니까 생협의 매장을 실무자들이 다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매장 인근에 사는 조합원들의 대표가 매장의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운영의 모든 책임을 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결정권자가 이 사람들이 되는 것인데, 유기농 매장을 관리해 나가면서 그들끼리 네트워크가 생기고 주민과의 만남의 장이 생기고 어떤 모임을 관리하고 운영하면서 키워나가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의외로 주부들의 그런 것을 하면요 의식이 굉장히 커져요. 그리고 순식간에 멀지 않은 시기에 지역자치문제를 제기하고 나옵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일을 해보면 결정적으로 원주시 행정의 문제점들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김 : 어떻게 보면 주민자치 관련해서 소모임이 활성화되는 것이 관건인 것 같은데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최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의료생협, 원주생협, 한살림, 민우회 회원들이, 이를테면, 어떤 아파트 101동에 많이 산다면, 101동에 사는 NGO 회원, 생협회원들이 한 달에 한번씩 정례모임을 만들고, 그 가운데 마을의 현안 문제들, 교류, 마을잔치도 해 나가고, 그 힘에서 그 마을모임에서 최대화될 수 있는 그런 장들을 열어보고 싶은 것이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모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 전체 협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얼마나 되나요? 그 중에서 적극적인 조합원이라고 할까, 그들의 수는 얼마나...

최 : 협의회에 소속된 협동조합들, 8개 조직인데, 회원이 거의 2만 명 정도 됩니다. 많은 편이죠. 물론 그 중에 모두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어느 조직이 의식적으로 어느 정도 고양된 사람이 15%가 있으면 그 조직 전체의 문화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2만 명 중에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이 3000명 정도 되거든요. 나머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협동을 해서 하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김 : 원론적인 질문을 드리면, 원주라는 도시에서 주민자치가 가능합니까? 주민자치의 상을 어떻게 가지고 계세요? 소모임이 많이 활성화 되어서 가는 것이 힘이 될 것 같은데, 그 자체가 주민자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는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갖곤 하는데....

최 : 사상적 철학적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주에서는 생명운동이라고 하는데, 생명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자본중심의 사회에서 생명가치의 존중하는 것, 광범위하잖아요. 그런 영역에 기본적인 동의가 되는 사람들과 누구와도 같이 한다, 노동운동이나 빈민운동도 같이 할 수 있는 거죠. 지역복지운동, 농업살리기운동 등 생명운동이라고 하는 포괄적인 의미들의 비전들을 공유한다면, 분명히 다른 점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의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같다고 생각해요. 생명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유도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방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해야 할 실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환경적인, 생태적인 조직적인 실천의 방안들을 제시하고 실천하고 농민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어 농업문제를 고민하고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위해 노동조합과 교류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안전의 문제를 다뤄야 하고, 그래서 소모임들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활동가들만이 이런 것들을 만들 수가 없어요. 독거노인들이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간호사 한명 딸랑 가서 한번 들여다보고 혈압체크하고 오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목욕시켜주는 사람, 청소해주는 사람, 도시락 갖다 주는 사람 등 다양하게 협동해서 그 분들의 삶터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거든요. 이런 얘기들을 소모임들이 나눠줘야 합니다. 소모임을 조직하는 일과 프로그램은 또 다른 문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강좌나 교육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활동가들과 임원들이 다 공유해서 이런 것들이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하거든요.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실천프로그램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동우회가 되는 거죠. 그리고 철저히 풀뿌리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합의와 논의와 의사결정, 존중 등이 이런 것들을 이끌어나갈 때,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경험들을 축적해 나갈 때 지역정치에도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지역정치도 고려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최 : 저희가 이미 협의회 발족식 자료집에 앞으로 주민의 풀뿌리민주주의의 역량이 강화된다면 지역정치에 참여하겠다고 공식화했거든요. 세상에 비정치적인 것이 있습니까? 다 정치적 조직이죠. 회원들의 생계라든가, 삶의 비전과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지역에서 뭔가 해야 하고, 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리고 주변의 협동조합 활동가들과 그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저는 지역정치에 참여할 때, NGO 활동가들의 대표가 지역정치에 첫 번째로 나서는 것은 좀 아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서울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정치영역에서 일정정도 NGO가 해줘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역에서는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나서도록 성장시킬 것이냐, 단순히 어느 조직의 활동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사실은 풀뿌리 영역으로 내려가야 하잖아요. 정치가 별개 아닌 것이 되어야 하잖아요. 중요하지만요, 누구든 정직하고 원칙과 소신이 있으면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 유지나 학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거기까지 보고 가야 한다고 봐요. 소모임의 아줌마들이 하나의 책임자라는 생각으로 리더로 성장해 가고, 자신감을 가지면, 사실 수천명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거거든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지역정치에 진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시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경우 조금 더 정치적인 역량이 생겨야겠죠. 문제는 이러한 풀뿌리들이 정치적으로 진출해 있는 소통의 장에 의해서 지역 내에서 정말 추대될 수 있는 사람들, 인정받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사람들이 다 진보정당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주민노당에 제가 원하는 것은, 민노당 당원들이 풀뿌리모임에 들어와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 분들을 모아서 민노당 당원이 아니더라도 지역에 성공한 사람들이 지역정치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당, 이런 정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해요. 이 판이 몇 년 깔리면 민노당에서 나온 사람이 당연히 시장된다고 생각해요. 민노당은 늘 밑에서 지역의 민중들을 도와준다는 인식이 되면, 좀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성공한다고 봐요.

김 : 주민자치운동이 활성화되고 풀뿌리 세력이 성장해야 할텐데,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 진영도 가만히 보면, 그 갭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중앙형단체들과 지역단체들의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좋을지, 그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최 : 사실 그런 부분들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되는데요, 한국사회는 성격상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들은 쉽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일본사회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다만 현실적으로는 밑바닥에 인식들의 기반들이 없어서, 기반이 없다면 한 칼에 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제일 걱정되는 것은 NGO 단체가 정치에 다 진출했다가 어떤 문제가 생겨 한 칼에 날아가면, 그 공백이 크다고 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균형 있게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역할분담일 수도 있겠지만, 협동조합운동은 지역으로 상당부분 파고 내려갔다고 생각하고, NGO 단체들은 여기에 적극적인 결합을 하면서 정책이나 조금 더 위 단계의 고민들을 생각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김 : 끝으로, 협의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을텐데,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최 : 현재 지역화페운동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지역 안의 경제순환논리를 만들어내자고 해서 유류공동구매 사업을 통해서 직불카드를 만들려고 해요. 신협과 협의해서요. 지역금융기관을 살리자는 취지도 있고, 또 한 가지는 여기에 있는 협동조합이나 영세상인들이 운영하는 점포나 이런 것들을 직불카드로 연결해서 일반 기업의 카드 수수료를 없애고, 대신에 1%의 수수료를 지역복지기금으로 묶어서 지역복지운동을 하는데 쓰려고 합니다. 가을맞이 행사라든가 이런 것도 하고 있고요, 정책제시, 각종 행사들을 하려고 합니다.

김 :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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