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성미산, 주민의 힘으로 지켰다!"
-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찾아
인터뷰 : 김종호(대책위원장)
작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지난 주,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 김종호 위원장을 인터뷰한 후, 오늘자 ‘오마이뉴스’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성미산 배수지 공사 건설 유보”를 발표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올 설 연휴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천막 속에서 추위에 떨며 성미산을 지켰던 많은 주민들의 모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을 하면서 주민들이 겪은 마음고생을 그 무엇으로도 보상해 줄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행정부가 ‘공사 유보’ 결정을 내린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다. 오늘의 이 결정은 불필요한 배수지 공사를 중단시킴으로써 예산 낭비를 막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하나뿐인 주민들의 쉼터를 더 오래도록 가꾸로 지킬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지역운동의 성공 사례로 남을 것이다. 자, 그럼 어떤 과정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김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추적해보자.

일단 배수지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서울, 수도권 지역은 팔당 상수원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이 물이 각 가정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수장을 통과하고 1, 2차 배수지를 거쳐 지역배수지라는 곳에 모여 각 가정에 직결급수를 한다. 그러니까 배수지는 각 가정에 직결급수를 위해 물을 모아 놓은 곳이다. 물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필요한 시설이 아닌가?" 할 것이다. 맞다. 꼭 필요한 시설이다. 그러나 성미산 배수지는 필요하지 않다. 무슨 얘긴가?

“저희가 이 문제에 부딪히면서 공청회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 행정 정보공개청구를 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서울시내에 설치된 정수장과 배수장 시설을 갖고도 천만 서울시민이 충분히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저희는 배수지의 필요성을 인정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예산낭비를 할 필요도 없고, 성미산 배수지뿐만 아니라 이후에 서울시에서 계획하고 있는 18개 배수지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결론에 대해 여러 전문가분들도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를 해주셨고, 서울시 정책에 잘못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서울시는 성미산 배수지를 건설하게 되면, 강북정수장에서 오는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해주겠노라고 천명하고 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이라면 ‘깨끗한 물 공급’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겠지만, 대책위에서 요구한 행정정보공개는 서울시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즉, 이미 작년 11월부터 강북정수장에서 오는 물을 인근 주민들이 공급받고 있었고, 그럼에도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그 전까지는 성산동을 비롯해 인근 서교동, 동교동, 합정동 등 7개 지역이 뚝섬정수장을 통해 물을 공급받았으나 최근 강북정수장이 완공되면서 이 곳의 물을 공급받았던 것이다. 강북정수장의 물을 공급하면서 성미산 배수지를 건설하면 강북정수장의 물을 공급하겠다던 서울시의 앞뒤 맞지 않는 논리가 들통 난 것이다. 당연히 대책위는 이런 사실을 주민에게 알렸고, 주민들은 더욱 분노하게 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왜 이런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성미산 배수지 공사를 강행하려 했을까? 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서울시 상수도사업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죠. 공급위주의 정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겁니다. 수요․관리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하다보니 무리하게 시설 수만 늘려왔던 거죠. 지난 93년, ‘수도정비계획법’이 만들어졌는데, 이미 그 당시 성미산 배수지 건설이 계획에 잡혀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18개 지역도 이 때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계획을 수립할 당시의 물소비량이라든지, 인구 예측, 수요예측 등이 현재와 맞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인구도 계속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했는데, 지금은 서울시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또 정부의 물 절약정책에 의해서 시민들의 의식이 변화되면서 물 소비가 줄었습니다. 이것도 이율배반적이죠. 그러니까, 정책이 잘못됐다면 수정하는 것이 당연한데,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되다 보니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김종호 위원장은 수자원공사의 댐건설이나 새만금 공사,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전소 건설 등도 공급위주 정책의 허점이라고 지적한다. 공급위주의 정책이란 시설을 계속 짓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는 늘고 사용량도 느니까, 시설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논리인 것이다. 21세기에도 이런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통한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다. 혹시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까? 김종호 위원장은 공급위주의 정책이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라는 조직의 존립근거 논리로 활용된다고 보고 있었다.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새만금과 위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배수지를 짓고 댐을 건설하고 폐기장을 설치해야 자기 조직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의 예산은 1조원에 가깝다. 서울시 산하기관 중 지하철공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조직의 규모는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절반으로 줄여도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불필요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다는 논리이다.

반핵운동을 경험했던 나도 이런 논리에 충분히 공감한다. 현재 현안으로 떠오른 위도의 문제만 보더라고 그렇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포화상태에 놓인 핵폐기물을 더 이상 담을 곳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핵발전소 주변에 있는 임시보관소를 좀 더 넓히면 핵쓰레기 보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행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김종호 위원장이 말하고 있는 조직이기주의다. 수 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소위 ‘핵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많은 시민들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원하지만, 그럴 경우 이들의 존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핵으로 살아 왔고, 앞으로도 핵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공급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급위주의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수요․관리를 중심으로 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땅 속에 묻혀 있던 배수관을 새 것으로 교체하면서 누수율이 상당히 줄었다. 교체하기 전 누수율은 30-40%에 달했으나, 현재는 17%에 그치고 있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수요․관리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조직이기주의는 물이나 에너지 분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교육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성미산은 주민들의 쉼터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생태적인 가치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김종호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포에는 자연숲이라고 할 수 있는 숲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요. 서강대 뒤쪽에 있는 노고산이나 홍대 뒤에 있는 와우산이 있긴 한데, 여기도 이미 배수지가 들어섰어요.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개발붐이 일어났고, 택지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 뒤쪽으로도 매봉산이 있긴 한데, 예전에 석유 비축기지가 들어서면서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성미산은 자연적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산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환경적인 의미가 있고, 또 생태적으로도 천연기념물 소쩍새, 붉은 뱁새, 그리고 여러 서울시 보호종 등 다양한 조류들도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밤섬이나 관악산, 북한산의 이동 경로로써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성미산을 찾는 이들은 줄을 잇는다. 하루 평균 성미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천여 명을 넘을 때도 있다.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에 이들의 참여가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미산은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2년여 전, 한양대학교의 한양재단이 성미산 주변에 8천400백 평 규모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있은 후, 주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과정에 서울시의 배수지 공사 전말을 확인하게 된다. 2001년 8월, 마포두레 생협, 공동육아협동조합, 산을 자주 이용하던 체조부, 역도부, 그리고 그 주변의 교회 등이 모여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라는 자발적인 주민모임을 만들면서 약 두 달여 동안 2만1000명 정도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2001년 11월경으로 되어 있던 착공이 연기되었다. 그 이후, 성미산 음악회 등의 행사를 통해 지역의 여론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올 설 연휴 전, 서울시는 기습적으로 공사를 강행하게 된다. 기습공사는 고향으로 가야할 주민들의 발걸음을 잡았다. 천막농성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 서울시 성미산 배수지 공사 유보 발표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밀어붙이기식 행정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생태적 가치라는 부분이 추상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삭막한 도시 생활을 하는 주민에게 절실히 필요한 생활의 가치라는 것을 되새겨 준다. 반대운동을 통해 드러난 상수도 정책의 허점들도 이번을 계기로 개선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종호 위원장은 성미산 반대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를 넘기기 전에 발족할 예정이란다. 아직 구체적 활동 계획을 잡진 않았지만, 많은 주민들이 공감하고 있고, 성미산을 지키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라 본다. 특히 지역정치 변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가 성미산 반대운동의 조직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면, 주민들이 지방자치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것이 또 다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모두가 성미산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선되었는데, 성미산을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찬성입장으로 간 의원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정치가 제대로 서야 지방자치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저희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지역정치에도 참여해야 하지 않느냐, 이번 싸움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민 출신 시장이 농민들을 대변하고, 울산의 한 구청장이 노동자를 대변하듯, 주민을 대변할 수 있는 올곧은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시민단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정치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질 계획입니다. 생활과 정치는 동격이잖아요.”

성미산 개발 반대운동보다 더 험난한 길이 ‘마포연대’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산적한 현안과 지역정치개혁. 그러나 성미산 싸움은 그들에게 다른 눈을 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주민들은 더욱 단단해졌고 공동체 의식도 더욱 성숙해졌다. 바로 이런 것이 그들의 희망이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