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첫째, 셋째, 재수가 좋으면 다섯째 토요일 오전이라고 답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그 날은 우리 딸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랍니다. 쉽게 얘기하면 ‘놀토’가 아닌 토요일을 말하지요.


그 날은 정말로 나만의 시간입니다. 아내의 터치도 없고, 딸아이와의 부대낌도 없는 아주 고요한 반나절이지요.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아라비카 커피 한잔과 음악 감상, 혹은 한 동안 보지 못한 재미난 DVD 감상, 지겹지만 즐거운 인터넷 서핑, 아니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하다못해 잠이라도 잘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1분 1초가 아깝거든요. 경험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런 시간일수록 겁나게 빨리 지나간다는 것, 저에겐 이미 오래 전에 상식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침부처 서둘러 하고 싶은 목록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그래봤자 딸아이 학교 보내고부터 대략 3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일 뿐입니다. 그래도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지요.


그러나 머지않아 갈등이 밀어닥칩니다. 아내를 사무실에 보내고 문을 닫고 방에 들어오는 순간,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들과 방 구석구석 숨어 있는 잡동사니들, 뿌옇게 쌓인 먼지와 날파리들의 놀이터가 된 화장실........내 즐거움을 포기하고 가사 일에 전념할 것인가, 행복한 시간을 누릴 것인가? 햄릿의 고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도저도 못하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 십중팔구 집안 청소를 하게 됩니다.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 개키고 널고 방 청소 하고 화장실 청소를 마치면, 멀리서 요란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일 없이 3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지요. 그 짧은 시간, 물을 끓여 커피를 타 마십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잘 한 일일까, 못 한 일일까를 되뇌는 순간, 복도에서 딸아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결전을 준비해야 할 시간입니다. 잠자는 걸 제일 싫어하는 딸아이와 놀아주기 위해서는 모질게 마음 다잡아야 합니다. 어쩔 땐, 복도로부터 들려오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공포스럽기까지 하답니다.


그렇게 나의 가장 행복한 토요일 반나절을 강탈당하고(?) 2주 후의 그 날을 기약하면 눈앞이 캄캄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기에 즐거워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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