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조상연 사무국장 작 성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오랜만에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은 지역운동단체를 찾았다. 스스로도 ‘좀 과격분자’라고 소개하는 걸 보면, 과격한 쪽으로는 자부심(?), 또는 일가견이 있는 듯 하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는’다고 했던가?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그렇게 적을 닮아갔다. 그들에게 적은 우리 사회를 좀먹는 ‘부패’였다. 토호세력들의 고질적인 부패, 그리고 이들과 유착한 지방자치단체의 만성적인 부패, 지역정치인들의 각종 부패, 언론의 부패 등은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부패’를 차단하는 일, 그것은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존재이유이며, 지방자치를 뿌리내리고 주민의 권리를 되찾는 원칙이자 기본이다.
최근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활동을 들여다보자. 작년 6.13지방선가 있기 두 달여 전. 당진군의원들이 제주도로 연수를 갔다. 연수는 잘만 활용하면 좋은 제도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하지 않았나.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면 됐지, 누(累)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주민들은 지방의원들의 연수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워낙 부정적인 언론 보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진군의원들의 연수도 그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방자치와 아무 상관없는 연수였기에,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연수를 다녀온 지방의원들에게 연수비 반환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의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연수비를 반환하는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도 이런 관례를 묵인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응수했다. 그리하여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확인은 어렵지만) 지방선거사상 처음으로 낙선운동을 벌인다. 이장과 같은 여론주도 층에게 편지를 썼고, 특공대처럼 가가호호 3-4000부의 유인물을 뿌렸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했다고 한다.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 한 차례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는데, 이번에는 연수를 다녀온 각 군의원들의 사진이 커다랗게 그려진 편지를 집집마다 발송했다. 13명이 일주일 동안 작업을 했다. 무려 6천500여 통이나. 결과적으로 7명 중 5명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부패를 차단하는데 있어 그들에게 타협이란 단어는 없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그들이 사회를 보는 눈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검찰이 이들처럼 가치판단이 뚜렷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비자금 파동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당진이라는 지역에서 매서운 검찰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좀 과격하죠. 그런데 우리 단체의 운동적 성향은 상대적인 거예요.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이 독재하니까 민주화투쟁도 거칠게 전개된 것 아닙니까? 우리의 이미지가 과격하게 된 것도 사실은 상대가 과격하기 때문이죠. 상대의 부패가 은폐되고 조작될수록 저희의 대응 방식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상대가 민주화되었다면, 우리도 당연히 서로 협력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로 갔을 겁니다. 토론을 거부하고, 정보도 공개 안 하고, 공개된 정보도 왜곡하고, 그러면 저희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중앙의 부패 정도는 그대로 지역에 투영된다. 지난 번 인터뷰했던 천안KYC 장기수 대표가 지적했듯, 삶의 현장에도 음지가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 개개인의 삶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나만 못해먹으면 ‘바보’라는 인식, 그래서 사회를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만드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추구하는 목표도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 모든 부패의 고리를 끊는 것, 이것이 지방자치운동의 우선순위다. 상대의 부패 정도가 심하면,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조상연 국장은 그런 과정의 경험을 통해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커다란 이슈와 싸우다보니,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조상연 국장 스스로도 이 부분이 가장 취약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으로 주민감사청구제도를 활용한 경험, 지방선거 낙선운동의 경험 등을 통해 주민들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졌다. 주민들은 우매하지도, 무지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결코 의식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시민들의 의식은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보다 공정하다고 해야 하나, 정직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정도 선민의식이라든지 도덕적인 우월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절대 그런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제가 10년 동안 운동을 통해 경험한 것은 시골농부가 전혀 우매하지 않다는 겁니다. 단지 정보를 모를 뿐이죠. 얼마나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떤 이슈가 터지면 주민 속으로 직접 들어갑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다섯 명이 떨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했기 때문인데, 정보만 주어지면 시민들은 공정하게 판단합니다.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핵심입니다.”
주민을 계몽하려는 접근이나 언론 보도에 치중한 운동방식은 주민의 호응을 얻는데 한계가 있다. 성명서 작성해서 보도자료 내고, 군청 앞에서 퍼포먼스 한다고 해서 주민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없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식의 홍보방식을 채택하게 된 배경은 앞서 언급한 주민감사청구의 경험 때문이었다. 인구 12만 명인 당진군은 규모에 비해 커다란 이슈가 유달리 많았다. 최근 6-7년 사이, 석문공업단지 반대운동, 한보화력 반대운동, 소난지 상수공사 비리 사건, 학교통폐합 반대운동, 일품가든 예산 낭비 사건, 총선 및 지방선거 낙선운동, 판공비 횡령사건, 중부권 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 정유공장 건설 반대운동.......이 중에서 당진군이 국도 32호를 확․포장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예산을 낭비한 ‘일품가든 사건’과 관련,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주민감사청구를 요청하게 된다. 이 일로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세간에 잘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민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잘 알게 된 계기였다.
“주민감사청구제도는 좋은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의 기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도 주민감사청구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운동의 방식을 터득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이런 제도의 이용이 자꾸 활성화된다면, 그만큼 풀뿌리민주주의도 앞당길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주민감사청구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아요.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확하거든요. 결과적으로 이 사건에 연루된 관계 공무원들이 ‘주의’조치만 받았을 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거든요. 감사 자체도 봐주기 감사에 그쳤고,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되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확인되었듯이, 직접민주주의제도를 활용하는 과정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모이면 많은 잡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토론과 소중한 아이디어들을 끌어낼 수도 있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민감사청구제도라는 것을 처음 활용하면서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지역에서 주민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주민감사청구제도가 가지는 한계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청구인 수를 줄이고, 상위기관에 감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감사할 수 있는 외부기관, 또는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부정이 적발될 시 엄정한 처벌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부패를 좌시하지 않는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지역의 기득권세력에게 ‘눈엣가시’임에 틀림없다. 60여 명의 회원 밖에 없는 조금한 단체가 찰거머리 같은 근성으로 부패에 대한 예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성격을 규정한 것은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특히 관의 문제에 대한 조상연 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첫째, ‘비밀주의’가 문제입니다.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어느 정도 틀이 다 되면 비밀을 유지한다는 것인데, 이런 것이 주민참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그런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지역주의적인 ‘연고주의’가 문제인데, 상당히 뿌리 깊어요. 연고주의에는 뭐가 있냐면, 힘센 쪽에 붙어서 무임승차하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연고주의에는 보신주의라고 해서 무엇인가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지금까지 동화줄 잘 만들어서 유지하고 있는데, 바뀐다고 생각해봐요. 밑에 줄 선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수구로 갈 수밖에 없어요. 모든 지역주의적 연고주의는 수구주의예요. 모든 진보에 딴지 걸고 와해시키려고 하는 거죠.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조상연 국장은 체험을 통해 보수기득권세력들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기득권세력은 스스로 똬리를 풀지 못한다. 더 공고히 다질 뿐이다. 그러나 다리를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똬리를 풀어보겠다는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의지는 더 견고하다. 그럴 때만이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고 주민의 권리가 회복된다고 믿는다.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독특한 회원 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다. 80년대 말, 민주화 열기로 만들어진 ‘당진사랑단체연합’(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 구성원의 절반이 고등학생이었다. 스스로 학생회를 꾸리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 ‘소리나눔’이라고 명명하였고, 선배들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도 형성되었다.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지금은 특기적성교육과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로 인해 재생산에 차지를 빚고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회원들은 ‘소리나눔’ 출신이다. 15년 이상의 우애가 이들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소리나눔’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지역운동을 기대하기란 어렵다고 조상연 국장은 말한다. 그만큼 ‘소리나눔’에 대한 애정도 깊다. 문제는 현재 활동이 뜸한 ‘소리나눔’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이다. 골방에 갇혀 있는 이들을 끌어내는 것이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 과제 중에 하나다.
한 집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은 동네에서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는 일이다. 선명성이 뚜렷한 운동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부조리에 대해 ‘그 정도야 뭘......’, ‘정치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기득권세력의 똬리는 더 튼튼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합리적 협력을 필요하겠지만, 긴장관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상연 국장의 논지였다. 당진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홈페이지는 http://www.djngo.or.kr/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