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잔뿌리의 역할” - 부천 그린 생협을 찾아
인터뷰 : 이금자(상무이사)

풀뿌리운동의 전면에는 여성들이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들은 주부들이다. 일본 풀뿌리운동의 저력이 주부에게 있듯, 우리나라 풀뿌리운동의 근저에도 주부들이 버팀목이다. 풀뿌리운동에 있어서 여성은 강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부들은 생활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들과 머리 맞대고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고, 동네에서 벌어지는 궂은일을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이자 농사꾼인 윤구병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정작 그 커다란 나무를 살리는 힘은 허리가 굵어서 어지간한 폭풍에도 끄떡없는 줄기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해 주는 깊이 내린 뿌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 힘은 어지간히 예민한 촉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만져도 확인이 안 되는 잔뿌리, 그리고 그 잔뿌리에서 다시 가지 쳐 나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실뿌리에서 나온다.......호밀 한 포기에 자그마치 1,300만 개쯤 되는 잔뿌리가 있다......” 윤구병 선생의 말을 빌면, 풀뿌리운동을 지탱하는 사람들은 바로 주부들이고, 이들은 1,300만개나 되는 잔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풀뿌리운동은 화려하지도, 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운동이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부천 ‘그린생협’은 밥상 살림을 고민하는 3,000개의 잔뿌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걸어온 길을 추적해보면 10여년이 홀딱 지나버리지만, 본격적으로 ‘그린생협’이란 이름을 내걸고 지역생협에 뛰어든 것은 이제 만 3년을 넘겼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은 처음부터 ‘그린생협’의 잉태과정을 지켜보고 이끌어왔던 이금자 상무이사다. 그녀가 생각하는 협동조합운동, 주부들의 지역사회로의 확장 가능성을 들어보자.

먼저, ‘그린생협’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지향하는 바를 물었다.

“그린생협을 처음 시작한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한 10년은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사찰에서 조금한 유기농 매장으로 시작을 했어요. 저 혼자 했는데, 그러다가 아무래도 절 안에 있다보니까, 유기농 매장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더라고요. 저는 80학번이에요. 그 당시에는 뭐 노동운동도 하고 다 했으니까, 저도 할 것은 다 했거든요. 저 나름대로는 현장에서 일도 해보고 노동운동도 하면서 90년대를 지나면서, 어쨌든 노동운동 쪽에서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지속적으로 사회의 어떤 변혁이랄 수도 있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지향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몇 몇 사람의 어떤 선도적 성격의, 일시적 성격의 운동도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그런 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생협을 시작한 것은, 저는 사실 생태적 관점이나 생명적 관점보다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생활권의 영역에서 어떻게 변화가 가능한 풀(pool)로서 봤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사찰 안에서 쭉 하다가 법인으로 그린생협으로 독립한 것은 2001년 4월 달에 시작됐어요. 그러고 나서 사찰 안에 있는 유기농 매장은 사찰 안에서 유기농 매장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고요, 2001년부터 조합원 조직활동이 시작이 됐어요. 제 꿈은 지역자치와 관련된 생활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 제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그러니까 공동체라고 했을 때 지역모임, 마을모임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는데, 저로서는 딱 그 때 법인으로 설립했을 때, 주체가 안 보였어요. 다양한 주체가 형성될 수 있는데, 생협은 기본적으로 주부들이 100%예요. 저희는 이사진의 구성도 주부가 100%예요. 남성 이사는 이사장도 없고요, 이사도 없어요. 상무이사까지 여성인 곳은 조합 중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 보면 저는 포커스를 조금 좁혀서, 지역자치 중에서도 주체를 주부들로 봤어요. 주부들이 지역 안에서 일상의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부들이니까, 그들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발휘하고 생활 안에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일조할 수 있겠느냐 하는 풀로써 생협을 봤고, 그린생협이 처음 그런 일을 시작한 것은 2001년 4월 달부터 해서, 제가 볼 때 1기로 보는 것은 2001년 4월부터 해서 2004년 4월까지, 한 3년으로 봤을 때, 이 때가 1기인 것 같아요. 1기 동안의 저희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의 시기라고 봤고, 그런 일들에 주력해왔어요. 한 쪽에서는 사업이라고 하는 큰 틀이 있고 한 쪽에서는 그렇게 모여 있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의 주체들을 형성할 것인가, 활동가 그룹을 만들 것인가, 주부활동가 그룹을 만들 것인가,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 포커스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금자 상무는 ‘그린생협’을 잉태시킨 장본인이다. 인터뷰 중에 느낄 수 있었던 고민의 깊이가 아마도 ‘그린생협’의 최고 경영자로서의 책임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아 아닌가 싶다. 아무튼 사찰로부터 시작된 먹거리 공동구매운동이 지금은 부천과 시흥을 중심으로 3,000명의 조합원과 연 매출액 21억여 원에 달하는 견실한 조직으로 발돋움했다. 이금자 상근 상무이사 외에 상근 실무자 1인, 반상근 3-4인, 그리고 자원활동을 하는 주부들 30-50명이 ‘그린생협’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조직은 크게 지역별로 중상동지구, 원미소사지구, 시흥지구가 있고, 주제별로 생활재분과, 마을분과, 매장분과, 생태분과, 교육분과가 있다. 분과 활동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물었다.

“각 지역 안에는 분과가 한 5개 쯤 구성되어 있어요. 우리가 취급하는 1차적인 사업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생활재분과’가 이를 담당하고요, 그리고 ‘교육분과’는 주로 어머니들의 사회교육이라든지, 환경교육 등을 주로 하고요, ‘생태분과’는 아이들 생태프로그램이나 환경프로그램을 엄마들이 다 해요. 그 다음에 ‘매장분과’가 있고요, 그 다음은 ‘마을분과’가 있어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조합원 기초조직으로서도 그렇고, 지역적인 연계와 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을분과’에요. 나머지는 분과는 테마별 분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을분과’는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조직이나 마찬가지에요. 지금은 주체들을 만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마을분과’가 주로 얘기하는 내용이 조합과 조합원의 관계라든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 이런 것들도 있지만, 조금씩 마을의 테마를 가지고 들어가고 있어요. 우리 마을에 뭐가 생기는데, 이게 어떻게 될 것이냐, 지금 탄핵정국 때문에 혼란스러운데, 자연스럽게 먹거리 얘기 하는 와중에서 그런 탄핵정국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요. 특별히 다른 일이 없으면 오는 20일에 광화문에 가자, 라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사실은 지역자치분과를 올해 띄어볼까도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것이 주체의 발전 단계만큼 가야 한다고 봤을 때, 바로 띄우는 것보다는 ‘마을분과’에서 자연스럽게 그 마을의 특성에 대해서 공통의 관심사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물론 지역적 관심사가 다를 수 있죠.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모아질 때 분과를 띄우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위적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죠. ‘마을분과’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요, 각 지구마다 마을분과다 가 있는데요, 한 달에 한번씩 해서 한 지구마다 일곱 개 여덟 개씩, 월 1회 계속 만나요.”

이금자 상무이사가 강조하듯,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마을분과’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아직은 정중동의 느린 행보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주민자치의 잔뿌리의 역할을 독특히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분과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든 분과가 분과원들이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굴러간다. 이금자 상무이사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보고서나 활동의 기획 등 모든 분과의 활동을 조합원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합니다. 저는 이것에서 뭘 보냐면, 어쨌든 대한민국이 변화하는 것은, 요번 탄핵정국을 보면서도, 사실은 기층의 시민사회 형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민사회 형성의 주체 중에서도 사실은 남성들은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그리고 일상의 삶으로부터 관심도가 떨어지고요. 그런데 이해관계가 조금 자유롭고, 일상의 삶에 대해 책임지는 주체가 주부들이 아닌가 해요. 그렇다면 주부들이 사회적 가치나 참여민주주의의 훈련의 장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그것은 일상적 삶의 구조여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생협이 굉장히 좋은 것이, 어쨌든 먹거리를 통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 또 자주 매장에서 보고, 그 어느 단체보다 아주 자주 보는 구조에요. 밥도 같이 해먹고. 또 아이들이 연령 때가 비슷하거든요. 저도 놀라운 것이 ‘마을분과’에서 자연스럽게 탄핵 얘기가 나오면, 그것이 뭐 이렇게 해서 동원합시다가 아니라, 스스로도 얘기하면서 그들이 회의를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회의록을 쓰고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고, 그 주제가 비록 생활재에 대한 안건이든, 조합에 대한 안건이든,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몇 번 해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참여민주주의는 어떻게 운용되고, 다양한 인간들 간의 조율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배워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훈련되어진다면, 지역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주체적 힘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동원이 아니라. 자발적인 힘에 의해서요.

주부들의 활동이라는 것이 어떤 상당한 사상과 신념을 가지고 막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주부들 조직이 어디까지는 전제 조건은 아이들을 키우는 거잖아요. 그만큼 진보나 발전의 속도가 굉장히 더뎌요. 그리고 또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그만 두고. 그런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 풀로 각 분과에 5-6명씩 각 지구별로 그렇게 보면 한 50명 정도가 활동가라고 보면 되고, 그들이 조금씩 아줌마들이 처음에 시작할 때는 보고서가 뭔지, 회의가 뭔지, 왜 조율을 해야 되는지, 이런 것들도 모르다가 조금씩 알아 가고, 또 사실은 그 안에서 갈등 구조들도 있잖아요. 그러면 갈등을 푸는 방법들, 이런 것들을 고민해가면서, 저희가 이사회에서 올해는 전면적으로 전환할 수는 없지만, 1기가 끝나고 2기로 접어들었으니까, 지역사회에 조금은 관심을 돌리자, 우리를 향했던 관심을 조금은 타자에 대한 관심을 돌리자, 그래서 학교급식 서명운동 같은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분들이 주체가 돼서 자기들이 목표를 정하고, 학교급식 서명을 몇 명을 하자, 그 다음에 부천시에 있는 지역사회 단체에서 푸른부천21이라든지, 지역사회의 다양한 단체들이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제가 주로 관련을 맺었었는데, 하나씩 점차, 그래서 이번에 평생학습도시 만들기 테마가 있는데, 거기에 처음으로 저희 분과 주부들을 참여시켰어요. 제가 안 가고. 이렇게 조금씩 지역과의 결합도를 높이는 거죠. 그리고 저는 요게 조금 더 주체들이 형성되면서, 만약에 원미소사지구다, 그러면 그 지역 안에서 풀을 가지고, 아 우리 마을에 도서관이 필요하다, 그러면 도서관 만드는 프로젝트를 어디서 받아서 그것에 대한 서포트나 저는 어디까지나 그런 틀만 만들어주고, 그래서 그런 것을 한 번 해보게 한다든지, 그래서 지역사업이 가능한 부분들은 하게끔 할 생각이에요.

저희 시흥의 연성 지구에서는 그런 사업들을 많이 했어요. 시흥에 ‘참이슬’아파트라고 하는 관리사무소가, 제가 볼 때에는 주민들의 힘으로 관리사무소를 운영하는 아주 모범적인 케이스인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관리사무소 2층을 도서관으로 만들고, 순전히 주민들이 만들었거든요. 그런 일을 하는데, 거의 주로 저희 조합원들이 활동했어요. 그린생협이라서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린생협 조합원이 그렇게 하는 거죠. 그렇게 훈련되고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 주민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주민들의 것이죠. 그래서 그 안에서 도서관도 만들고, 주민 대상으로 하는 좋은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을 하고요. 또 거기서 아이들 사업에서 연성지구에서 하는 사업이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역사교실을 해요. 사교육도 중요한데, 아이들한테 역사의식을 어느 정도 심어주는 그런 것을 배울 곳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역사교실을 1년 단위로 진행해요. 그래서 전부 조합원들이 중심이 돼서, 조합원들이 전부 나와서 진행을 하고, 선생님 모셔다가 자녀 중심으로 해서요. 그런 식의 모델들을 만들어가는 거죠.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긴 이야기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분과활동은 사회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주부들이 서로 소통하고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흥 조합원들이 일궈낸 아파트 관리사무소 모델은 이후 활동의 전주곡이기도 하다. 만 3년간의 1기가 주체훈련이었다면 2기부터는 점차 사회로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이금자 상무이사는 말한다.

“1기와 2기로 구분한 것은 제가 임의로 나눈 거예요. 사실은 그린생협으로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힘들 것이다, 지역에서 생협으로 독립하기도 힘들고 살아남기도 힘들 것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3년을 지나봐야, 생존과 안정, 그러니까 생협은 아시다시피, 운동단체가 아니라, 사업과 운동을 같이 가는 곳이기 때문에 사업으로서의 최소한의 뿌리내릴 수 있는가, 뿌리내릴 수 있는 근거를 저는 3년으로 봤어요. 1년은 생존의 기간이니까,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면 1년 안에 나갈 것이고, 그렇지만 생존의 기간을 벗어나면 최소한의 안정의 기간은 3년이 될 것이다, 그랬을 때 그 1기에는 최소한 우리가 생존하고 뿌리내리는 것, 여기에 집중한다, 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최고경영자의 입장인 저의 지표였어요. 그래서 1기가 3년으로 됐고요, 2기부터는 우리가 최소한 안정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생존의 조건과 안정적으로 최소한의 기반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좀 그래도 사회적 책무가 있지 않겠는가, 생협이 가져야 하는. 그런 부분들을 제가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다만 그 사회적 책무에 대한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부터는 조금씩, 결합시켜 나간다 하는 부분에서 저한테는 1기와 2기가 있는 거죠.”

1기의 목표가 사업의 안정성과 주체형성이었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기반형성과 다른 생협에 견주어 규모가 떨어지지 않는 조합원의 수, 그리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조합원들의 활동력, 이 모든 지표들이 어느 정도 달성된 것이다. 한 지역에서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맹아는 싹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기로 접어든 지금, 조금씩 주부들이 가능한 영역에서의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이 확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외부적인 활동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여전히 긴 호흡 중이다.

“외부 활동이 많지는 않아요. 이제 시작이에요. 올해 처음 학교급식 서명을 받은 거죠. 사실 저는 그래요. 정말로 우리 이사회나 위원들이 갈 수 있는 수준만큼만 간다, 그랬을 때 제가 볼 때 3년 동안은 주체들이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가 있을 때, 힘도 있고 훈련도 됐을 때, 그리고 그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졌을 때 시작하겠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지역사회 일 같은 경우는 소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학교급식이 처음 나온 것이고, 원미산 살리기 운동 같은 경우는 이름 걸어주는 정도지 저희가 직접적으로 결합해서 하지는 못했어요. 거기에 제 고민은 어떤 것이 있냐면, 사실은 주부들이 자원활동의 구조에서 주 1회씩 애 둘 엎고 나와서 생협에서 필요로 하는 활동이 있잖아요. 이것만 해도 힘들거든요. 거기에 지역적 과제들을 막 가져들어오면 너무나 부담이에요. 그것이 자기들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서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기 이전에는 그렇게 되면 지치는 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사실은 주부 운동은 그렇게 정리되면 안 될 것 같아요. 되도록이면 생명력 있고, 길고 그리고 이 활동을 통해서 저는 사실 못 꺼냈지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에서 조금만 더 부담이 가는 것, 그래서 즐겁고 재밌다, 부담이나 힘든 것이 아니라 이 정도면 내가 조금 부담되지만, 감당할 만도 하고 즐겁고 재밌있다, 라는 것들이 조합에 뿌리내리길 바라죠.”

이금자 상무이사는 주부들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활동의 에너지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잘 다듬고, 훈련되고, 학습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화된 주부가 아닌 이상, 주부운동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기의 목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이 이금자 상무이상의 다짐이다.

“2기의 활동은 구상단계에요. 1기는 저의 의지로 진행됐다면, 2기는 조합원들과 저희 이사님들이나 활동하시는 분들과 같이 논의해서 만들 생각이에요. ‘그린생협’의 조합 규모가 다른 곳에 비해 꽤 많은 편이에요. 그런데 어떤 대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 한 지역을 조금이라도 변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려면, 저는 수의 규모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수의 규모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차원의 문제는 전혀 아니지만요. 부천은요 세대수가 30만 세대 정도 되요. 생협은 한 사람이 가입하는 것은 한 세대가 가입하는 것이거든요. 먹거리를 중심으로 해서 보면요. 30만이면 한 0.3%정도. 만 세대 정도는 그린생협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도 만들어가고, 한 편에서는 생협에서 하고 싶은 것은 상당히 많죠. 대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과제고요, 지역사회의 협동사회 구조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지역사회 협동조합 만들기, 아니면 협동조합 지역사회 만들기 이렇게요. 지금 보면 협동조합의 구조가 의료, 공동육아, 반찬가게 즉 워크즈컬렉티브 등이 있는데, 저는 만 명의 구조면 그런 것들의 틀이 조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2기 때는 맹아라도 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2기가 했으면 하는 꿈이다. 물론 2기는 조합원이나 사무국 실무자들의 범위나 발전 수준만큼 움직일 것이다. 2기에 다 이루어진다는 것도 미지수다. 그래서 사회와의 관계를 조금씩 형성해 나가기 위한 맹아를 싹틔우는 일이 2기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다. 이금자 상무이사에겐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주부들의 지역정치 진출이다.

“이미 지역정치에 대해서 앞서간 고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동북여성민우회 정도가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지방정치에 진출했을 때, 고민의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단지 내가 혼자 나가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어떤 서포트가 필요한가, 정말 제가 본격적으로 뛰어든다고 하면,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나 우리 조합의 당면과제라고 생각하고 거기까지 고민에 들어가겠죠.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고, 다만 저는 그런 쪽에서는 일본의 가나가와네트워크가 좋은 모델이이라고 생각해요. 그 모델에 관해서는 실제로 아주 기층민들이, 그리고 기층에서 사람을 내보내고 그것들이 어떻게 네트워크 되고 관리되고, 그것들이 힘을 실어주는 전문 섹터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분장하고 기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그 모델을 배워야 되겠죠.”

아직 조직적인 고민의 틀은 마련되지 않았다. 또 조직적으로 그리 급한 일도 아니다. 다만 생활운동과 지역정치가 무관한 것이 아니라면, 유능한 일꾼들이 지역정치로의 진출은 지역사회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당위적 접근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자치라는 큰 틀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자치는 완성된 형태는 없다. 그래서 늘 고민이다.

“저도 그 지점이 고민이에요. 실제로 ‘자치’가 어떻게 가능한가.......저는 자치라고 했을 때, 생협에서 내 놓을 수 있는 모델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협동조합 지역사회 만들기가 앞으로의 답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치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지역경제의 일정한 부분이라도 비영리 섹터로써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자치의 영역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잘은 모르지만, 미국의 경우에 있어서 전체 경제를 움직이는 10%는 비영리경제라고 하거든요. 그랬듯이 사실은 자치의 경제적 의미가 들어가려고 하면, 협동조합의 모델이 있잖아요. 의료에 있어서의 협동조합의 모델, 육아,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아주 작은 단체, 이를테면 최근에는 카센터를 중심으로 한 차생활협동조합도 있잖아요. 조합원들의 출자에 의해 운영되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 식으로 경제를 움직이는 방식을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했을 때, 저는 자치는 경제와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그 모델들이 정말로 주민의 참여에 기초한, 그리고 주민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한 협동조합의 경제공동체, 이런 것들이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의료, 육아 등으로 한정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영역에서 넓혀져 나갈 때, 그랬을 때 워커즈컬렉티브 같은 경우, 지금 주부들이 제일 좋은 것이 반찬가게 하잖아요. 그런 것도 협동조합의 모델이죠. 지금은 기본적으로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것이 개인이라는 개념밖에 없잖아요. 그게 아니라 몇 사람이 그것들이 훈련되었을 때 갖는 경제공동체가 자치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것 같아요.”

주민자치를 위한 경제적, 조직적 기틀을 마련한다는데 있어 협동조합운동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린생협’만 하더라도 생협을 잘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큰 의제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생활공동체를 구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관념적인 자치의 모델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주민자치의 구체성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이금자 상무이사는 주부들이 서 있는 구체적 현장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돈으로 지불되지 않는 자원활동이라는 것이 굉장한 한계가 많아요. 속도도 굉장히 더디고, 해소되고 고조되고, 또 그들이 일상적 책임성이 좀 약해요. 저는 그런 것들도 조금씩 훈련시켜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는데, 만약에 모임이 있었다, 회의가 있었다, 그러면 연락도 하지 않고 안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이라든지, 교육적 과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슈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어려운 점이 많아요.......그러나 아파트 단지와 같이 구체적인 현장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광명YMCA의 경우는 광명의 5단지만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하는 모델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서 각자 지역에서 그런 기운들이 좋은 모델들로 되면 자발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겠죠. 저희가 정책적 방향을 멋지게 딱 정하고 밑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은 모델, 그리고 지역적으로 아주 세분화해서 축소된 모델들이 많이 개발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깨알 같은 모래들이 모여 큰 백사장을 이루듯, 현장의 작은 모델들이 모여 주민자치의 큰 흐름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주민자치가 바로 이런 난해함과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린생협’은 이제 막 기지개를 폈다. 시나브로 그들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끝으로 하시는 일이 재미있는지,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고, 이금자 상무이사의 답변으로 마무리한다.

“저는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요, 힘도 들고 많이 지친 것 같아요. 저 개인만 말씀드리면, 개인 조합원들은 저희가 잘 하는 데도 아니고 지지부진해요. 어쩔 때 잘 되기도 하고, 어쩔 땐 잘 안 되기도 한데, 요즘은 많이 재미있어 하세요. 쾌활하시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그게 처음 시작한 사람의 한계일 수 있는데, 굉장히 당위로부터 출발하고 꼭 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있고, 또 제 성격 자체가 워낙 급하고 또 추진력도 강하고 그러다보니까, 저 개인적으로 지쳐요. 힘이 들죠. 그런데 재미가 없지는 않아요. 제 스스로가 원래 이런 일을 좋아하니까. 그러나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재충전의 기회가 없잖아요. 더구나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어떤 하나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를 향해서 재충전의 시간을 달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이런 일 하는 사람들한테는 뭔가 충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희망도 가져 봐요. 그러니까 굉장히 한국사회에 나름대로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나름대로 사회를 바꿔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재충전 프로그램, 이런 것들이 제도화되고 시스템화 돼서 한 번씩 전국적 단위든 뭐든 몇 년 이상 한 사람은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그 동안 쉬기도 하고, 자기도 돌아보고, 그렇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특히 시민자치, 주민자치 이런 것은 더군다나 주민들이 움직이는 부분이라면 그런 것에 대한 고민들, 활동가들이 많이 양성되었을 때, 실제로 순수하게 주민들을 양성했을 때,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이 한 2-3년 활동하고 나면, 조금 더 한 단계 자기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고 재충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제가 보기에는 저희 같은 사람은 한 5년 있다고 해도 되요. 그러나 그런 사람은 2-3년에 한 번씩은 해줘야 할 것 같더라고요.”

※ 부천 ‘그린생협’ 홈페이지는 http://www.greencoop.or.kr/index.html입니다.
(2004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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