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의 철학, 삶의 철학”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을 찾아
인터뷰 : 정외영 대표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떠오른 사자성어. 청산유수! 정외영 대표는 거침없이 말을 토해냈다. 역대 인터뷰 중, 가장 적은 질문으로 가장 많은 답변을 한 케이스였다. ‘녹색 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하 ‘녹색삶’)과 10여 년간 동고동락을 해온 정외영 대표. 그녀가 토해 낸 말들은 10여 년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생생한 증언이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한편의 ‘감동 드라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촉박하게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시간이 더 허락했더라면, 밤하늘 돗자리 깔아 놓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시작되던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에 버금갈 정도로 밤샘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녹색삶’은 아기자기 지역살림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사랑방이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초기 멤버들. 그러나 그들의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것을 사무실에 들어 선 순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해맑은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해서일까? 사무실은 봄 들판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싹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동화책으로 둘러싸인 아이들 도서관이 목격되고,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 모두는 소외된 아이들의 안식처로서 손색이 없었다. 자, 그럼 ‘녹색삶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맨 처음 하는 질문, ‘녹색삶’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물었다. 첫 질문부터 답변의 내용이 길어 몇 개 단락으로 나누었다.

“제가 이 지역에 94년도에 이사를 왔어요. 이사 오기 전에 구로에 살았었는데, ‘살구 여성회’라는 곳에서 활동하기도 했었습니다. 어차피 저도 이웃들을 사귀어야 했기 때문에 이웃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만나면서 얘기들을 많이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놀랍다기보다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구로 지역에서 만났던 이웃 여성들의 이야기나, 여기 와서 만났던 이웃 여성들의 이야기가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여성의 삶에 밀착된 부분인데, 자녀 양육의 문제, 그리고 여성 자신의 문제, 가족간의 문제, 이런 등등의 문제를 가지고 이웃간에 서로 서로 얘기를 털어 놓고 살잖아요. 그런데 그런 얘기들이 다 공통적으로 여성의 문제였다는 거죠.
이 지역의 많은 여성들이 이야기해주셨던 것은 뭐냐면, 여기가 너무 지역적으로 여건이 열악하다는 거죠. 10년 전이니까 그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일정하게 성장해서 진학하게 될 중학교, 고등학교가 너무 적었어요. 그리고 관내에 도서관이 하나도 없었고, 그리고 구민회관도 없었고, 일반적인 문화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은 욕구들을 충족할 만한 곳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여성들도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해야 하는데 이런 것도 취약하고, 이런 어려운 점을 많이 갖고 있더라고요. 이런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강북 쪽 사람들의 해결 방침이 뭐냐면, 이런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빨리 돈 벌어서 강남으로 가야 한다는,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한 피해의식, 자존감, 이런 느낌, 똑 같은 부모로서의 자괴감,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던 것 같았어요.
한 번은 차를 마시면서 이런 문제를 얘기하다가, 앞으로는 불만만 얘기한다고 해서 어느 날 학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해서,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보자, 이러면서 구로구의 사례를 말씀드렸더니, 한 분이 우리가 못 할 것이 없지,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처음에 우리가 뭘 하고 싶은 지 얘기해보자 했더니, 엄청 쏟아 나오더라고요. 공부도 하고 싶다, 아이들한테 좋은 기회도 주고 싶다, 뭐도 하고 싶다, 쭉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잖아요. 이 중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죠.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순위로 정한 것이, 저희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얘기가 나온 것이 우선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읽히고 싶은 욕구가 많았어요. 그 중에 한 분이 주부들의 독서모임을 소개하면서, 그런 정도는 아이들 책 읽는 정도는 자원봉사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거죠. 그 다음에 여성들은 뭘 하고 싶은가 쭉 봤더니 그 당시만 해도 배움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지금은 지천으로 널렸지만. 영어도 하고 싶다, 일어도 하고 싶다, 이런 얘기들이 올라왔어요. 그래서 이런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사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해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찾은 거죠. 자원봉사자를 찾는 것은 내 이웃에 어떤 자원이 있냐를 찾아보자는 개념이잖아요. 이런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죠. 이렇게 해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선정했고, 놀랍게도 자원봉사자를 찾을 수 있었어요.”

‘녹색삶’의 지역운동은 이렇게 여성들의 수다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주보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고, 그들의 욕구에 대해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하나씩 풀어나갔다.

“자원봉사자를 찾아가는 과정에 많은 힘을 받았어요.......그렇게 조금씩 프로그램도 시작하고, 폐식용류로 무공해 비누 만들기도 하고, 작은 활동들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한 번은 저희가 실무자도 없어서 회원들이 어느 날은 왔다가도 볼 사람도 없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누가 공간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집에 돌아가면서 하자고 의견도 있었는데, 한 회원이 자기가 알고 있는 4층짜리 빌딩 옥상에 비어 있는 짜투리 공간이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2평도 안 되는 공간이었죠. 그것이 좁고 하니까 아무도 안 빌리는 거예요. 다행히도 주인이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하라는 답을 주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 곳을 빌려서 책상 하나, 전화 하나를 빌려 놓고 활동을 시작했죠. 그러다보니까, 사람이 많이 찾아왔는데, 금방 좁은 사무실이 복잡해졌죠. 또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사무실 맞은 편 공간에 다른 사무실이 있었어요. 꽤 크죠. 그런데 이 사무실이 뭐 했냐면, 오전에 악세사리 같은 거 여성들이 쭉 모여서 교육을 받고 나서 팔러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찍 와서 교육만 받고 다 나가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여서 활동하는 때 쯤 되면 이 공간이 비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그 시간을 쓰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공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경험이 저희한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2평짜리 공간도 안 되는 곳에 있으면서 필요하면 밖에 있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활동의 경험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자원봉사자들과 만났던 경험도 소중했지만, 무엇보다 공간을 만들어냈던 과정은 ‘녹색삶’의 전(全)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2평 남짓 빌딩 옥탑방 공간에서 첫 출발을 시작으로 지금의 둥지까지 공간을 얻어나가는 과정은 매우 극적이고 흥미로웠다. 특히 96년 겨울방학, 무턱대고 동사무소를 찾아갔던 기억은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아 있다.

“96년 겨울이었던가, 방학 동안에 아이들한테 새로운 프로그램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때 자원이라는 개념이 물적인 공간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인적 자원이 얼마나 많은지 또 새삼 실감하게 되었는데, 이웃 동네에 덕성여자대학가 있잖아요. 그 대학에 가면 각종 동아리들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중에 한 동아리가 만화동아리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방학 때 만화도 하고 NIE도 하고 이런 활동을 해봤더니, 그 때 120명의 아이들이 신청을 했어요. 폭발적인 반응이었죠. 그만큼 이 지역이 소외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당장 공간이 없잖아요. 저희들이 다시 공간 확보를 위해서 동사무소를 찾았어요. 그 당시 동사무소가 새로 지워졌기 때문에 2층 공간이 꽤 넓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동장님을 만나러 갔어요. 동장님 만나러 갔더니 동장님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소파가 길쭉하게 딱 있고, 동장님은 이렇게 비스듬히 앉으셨고, 우리는 소파 끝에 엉덩이만 살짝 걸쳤어요. 우리가 공간 얘기를 꺼내니까, 동장이 “동사무소 공간이 이 사람도 달라고 하고 저 사람도 달라고 하면 되겠냐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잠시 동안 눈치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한 회원이, “동장님, 저도 이 곳에서 30년 이상 살았는데요.......”라고까지만 했는데, 갑자기 동장님이 이렇게 비스듬히 앉아 있다가 똑 바로 자세를 고쳐 앉는 거예요.(웃음) 그러면서 동장 태도가 달라지더라고요. 우리가 그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안 거예요. 다 주민이잖아요. 그러면서 옆에 있던 사람들도 다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몇 년이다, 나는 몇 년이다, 이렇게 해서 동장이 태도를 바꾸면서, 그러면, 다 우리 주민들이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까 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공간을 처음으로 빌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 곳이 꽤 넓었어요. 책상 다 되어 있죠. 겨울에 난방 되어 있죠. 그래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했어요. 이것이 한 마디로 기폭제가 되었죠.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동 직원들도 보고 동사무실을 들락거리는 주민들도 보시고, 학부모들도 보시니까 이것이 힘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서 욕구가 있는 것도 알았고, 자원봉사자도 어떻게 발굴하는 것도 경험이 생겼잖아요.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기 시작한 거죠.”

권위적인 동장의 태도를 표현할 때는 충분히 수긍이 갔다.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동장의 모습. 지금은 주민자치센터로 바뀌면서 주민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변화가 있지만, 그 당시 높은 지위에 있던 공무원의 태도는 그랬다. 더구나 여성들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그들에게도 커다란 무기가 있었으니, ‘30년을 살아온 주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동사무소의 경험은 그들의 활동에 기폭제가 된다. 그렇다면, 현재 ‘녹색삶’이 가장 주된 활동으로 모델이 되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졌을까?

“모임 시간이 되면 여러 얘기들을 하잖아요. 그 때 당시 언론을 통해 저소득 가정 아이들의 어려운 상황들이 일관되게 기사화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기폭제가 되면서,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혼자 크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이웃 아이들과 다 같이 클 수밖에 없는데, 한 회원이 자기 경험 얘기를 한 거예요. 가끔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준비물 안 가지고 가면 학교에 방문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 어머니가 하루는 방문을 했는데 한 아이가 여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상황에서 겨울 옷 같은 것을 입고, 머리는 덥수룩하게 해가지고 교실 뒤에 벌을 서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 어머니가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께 인사를 하면서, 저 아이가 왜 저러고 있어요, 했더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골치가 아파 죽겠다는 거예요. 준비물 하나 해오나, 숙제를 해오나,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를 하나, 그러니까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초기에는 관심을 갖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이런 경험들이 생기니까, 방해가 돼서 격리시켰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결국은 저 아이들이 커서 주먹질하고 친구들 가방 뺏고 돈 뺏고 그런다는 거예요. 이런 경험이 이야기들이 오가니까 다양한 경험들이 쏟아져 나온 거죠.......

이런 얘기하면서 저희가 중요한 길을 결정한 겁니다. 결국은 우리 아이들이 우리 손바닥에서 우리 애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 어울려서 크기 때문에 각자의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라도 결국 우리 이웃의 아이들이 잘 커야 한다는 것을 쉽게 공감하게 되었죠. 그래서 우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 동안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면 이제는 필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 눈을 돌리자고 했던 거죠. 그래서 그 때 처음 했던 것이 ‘열린 숙제방’이라는 공부방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거죠.......그래서 부모님이 계셔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못 주는 사람, 아니면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들, 자연히 빈곤한 아이들, 빈곤하면서 저소득이면서 맞벌이 하는 부모의 아이들, 그러면서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보호자가 옆에 올 때까지 만이라도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거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만은 막아보자, 그래서 아이들을 보호를 하는 방과후 공부방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어떤 회원들은 두려움을 말하는 거예요. 내 새끼도 제대로 못 가르치는데 애들한테 공부를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에 대한 토론을 계속 했죠. 결국, 공부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어려워서 못한다, 단지 우리가 아이들 한 두 명은 다 키워봤지 않았느냐, 우리 경험 정도를 가지고 도와주자, 선생님이 얘기하듯이, 숙제를 해오나 준비물을 해오나, 그렇다면 적어도 아이들이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할 필요가 없지만, 거기에 대해서 자긍심이 자꾸 줄어들고, 일정하게 사회적 관계에서 계속 소외당하는 이런 일은 없도록 노력을 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숙제를 도와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어머니들이 아이들 숙제를 다 도와주잖아요. 그래서 그 이름이 ‘열린 숙제방’이 된 거예요. 그것이 97년경이죠.”

아주 특수한 지역을 제외하고,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 주변에 가난한 아이들,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아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곧, 내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열린 숙제방’은 ‘측은지심’에 의한 ‘녹색삶’ 여성들의 선택이 아니라, 가난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동네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것도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부모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숙제만이라도 지도해 주는 보모 역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은? 여기서도 중요한 경험을 겪게 된다.

“......그렇게 결정하고 보니까, 공간이 없는 거예요. 이 때 또 한번의 놀라운 경험이 나타난 거죠. 공간 문제 때문에 운영위원회에서 회의를 하다가, 늘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자기 경험 속에서 풀어 나오게 되거든요. 사람들이 모여 온갖 얘기들이 막 했어요. 그러자 한 사람이, 탁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먼저 종자돈을 모아야겠다, 그러면서 우리가 각자 자기가 얼마가 있든지 간에 낼 수 있을 만큼 내자, 이렇게 제안한 거예요. 저는 그 때 정말 놀랬어요. 저는 그런 것을 생각도 못했어요. 일반적으로 삶 속에 있는 여성들이 일상적인 경험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런 여성들이 내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아니면서, 갖고 있는 돈은 내자고 했을 때, 저는 진짜 놀랬고, 감동적이었죠. 대부분의 반응이, 그럼 그렇게 하지, 이렇게 된 거죠. 그 대신에 누가 얼마 냈는지 얘기하지 말자, 모으는 사람만 알게 하자, 이렇게 모았죠. 그렇게 모은 돈이 어떤 사람은 조카들 돼지저금통 갖고 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족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 든 곗돈을 가져온 사람도 있고. 그러게 모은 돈이 500만 원이 좀 넘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 안 되니까, 일일찻집을 했던 거죠. 사소한 얘기이긴 한데, 일일찻집 하면 사람들이 핑계를 대고 안 올 수 있으니까, 이틀찻집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틀찻집을 했어요.(웃음) 그렇게 해서 처음 그 돈을 가지고 마련한 공간이 바로 이 공간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현재 만 6년이 지난 시점이죠.”

주부들의 수다 속에는 많은 정보들이 있다. 나중에 정외영 대표의 ‘수다철학’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수다 속에 삶이 있고, 철학이 있고 정치가 있다. 준엄한 수사적 언어가 아니라, ‘삼천포로 빠진다’는 그 수다 속에 말이다. 삶의 경험 속에서 나오는 그런 정보는 지금의 ‘녹색삶’의 정체성을 만들었고, 여러 번의 놀라운 경험을 싹틔우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1명의 아이들과 첫 호흡은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는 점점 늘어나 현재의 규모로 발전했고, 공간도 몇 군데 더 확보함으로써, 그야말로 소외받는 아이들을 위한 복음자리고 거듭나게 된다. 여기까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그 다음 질문. ‘녹색삶.......’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녹색’이라는 말하면 많은 분들이 환경이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녹색이라는 것은 건강하다, 싱싱하다는 뜻으로 우리 삶이 그렇게 건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거기에는 우리 환경도 중요하고, 사회적 환경도 중요한 거죠. 단순히 자연적 환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녹색삶이라고 한 단계를 높였던 거죠. 우리가 발족식을 하기 전에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었어요. 주변의 사람들이 공부를 해서 이름을 만들자, 해서 창립총회를 할 때 이름을 만든 거죠.”

‘녹색’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녹색삶’ 사무실에는 2명의 실무자가 일을 하고 있고, ‘마을 속 작은 학교’(열린 숙제방)에 1명의 교사, 주민자치센터 내 ‘방과후 교실’에도 1명의 교사, 그리고 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 이렇게 모두 다섯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 한 둥지를 사용했던 ‘녹색가게’는 얼마 전에 완전히 독립되어 나갔다. 대부분 회원들의 회비로 꾸려나가지만, 곧 있으면 재활용사업장이 개장되면 이 곳에서도 수익이 짭짤하게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10여 년의 역사가 현재의 ‘녹색삶’을 이렇게 성장시켰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녹색삶’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제 개인의 꿈이라기보다는 ‘녹색삶’이 꿈꾸는 것은, 신년이 되면 정기적인 워크숍을 하는데, 거기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그 때 나온 결과를 모아보면, ‘녹색삶’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면, 지속적으로 ‘녹색삶’이 해야 되는 가장 1차적인 사업은 주민을 지속적으로 조직하고, 그 속에서 주민리더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토대로 지역에서 필요한 각각의 영역의 사업들에 그 주민 지도자들이 또 다시 역할을 맡아서 또 주민들의 참여를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이 구도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 ‘마을 속 작은 학교’는 마을 속으로 독립적인 활동을 통해, 점점 더 학교의 내용적인 면이나 이런 것들을 해나가면서 생각보다 자기 목표가 빨리 이루어진 것 같아요. 저희가 너무나 필요한 사업이라고 했기 때문에 숙제방을 만들고 나서, 2년 뒤엔가 공청회에서 골목마다 공부방 1개씩 만들기를 제안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혼자서 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주변의 호응와 강북구가 정책적으로 선택하는 바람에 지금 골목에 거의 하나씩 생기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상당히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숙제방 사업은 꾸준히 진행할 것이고.......또 하나는 ‘나우리’(‘녹색삶’의 청소년 모임)에 있는 청소년들이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은 자기들도 공부방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자기들도 학교 마치고 나면 오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청소년 공부방을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나우리’ 학생들의 봉사 경력이 벌써 8년째거든요. 그런 관계를 지속적해서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예요.
도서관의 경우는 지금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저희가 회원 가입을 받아보니까 회원이 꾸준히 가입하고 있거든요. 이 회원 가입을 토대로 신간서적을 모으고 있어요. 도서관은 단순히 도서관 사업이 아니라, 굉장히 복합적인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어요. 보시면 아시지만,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자기가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힘을 기르는데 있어 독서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되거든요. 보통 행사를 하면, 결국 엄마들이 손 끌고 가는 아이들만 가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하는 방식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에요. 여기 있는 도서관은 단지 근거지로 있을 뿐이에요. 실제 여기서 하는 활동은, 회원들이 다섯-여섯 군데 되는 어린이집에 월 2회씩 방문하여, 그 곳에 가서 애들한테 동화책을 읽어주고, ‘독후(讀後)활동’을 합니다. 독후활동은 책을 읽고 난 이후의 활동을 뜻합니다. 즉 자기표현 활동이에요.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반응이 좋아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아이들의 성장에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영향으로 주지 못하는 계층을 대상을 도와줍니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방과후도 들어가죠.”

올해 추진하는 사업 중에는 ‘몽실 아빠, 몽실 엄마’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작년에 심포지엄을 하면서 144가구 정도를 설문조사 했고, 그 중 10가구 정도를 심화 설문을 했는데, 저희가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거든요. 한 아빠만 있거나 한 엄마만 있는 가정이 저희 아이들도 한 70% 이상이 그래요. 저소득에서 가정 해체가 빠르게 일어나거든요. 아무튼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들어가 보면,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는 겁니다. PC방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가, 집에 가면 놀다가 자는 거죠. 그 집은 가관도 아니죠. 마치 폭탄 맞은 집 같았어요.......설거지 그릇은 쌓여 있고, 옷은 여기 저기 나뒹굴고, 이런 아이들한테 어떻게 하라는 지침을 주는 곳이 한 군데 없는 것에 놀랐어요. 또 어떤 아이는 언니가 둘이서 지내는데, 아빠가 늘 일이 늦으니까, 여자 애 둘이서 자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방문을 걸지도 않고 자는 거예요. 저희가 기겁을 했잖아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한 거예요.......얘들은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우리가 검증을 해보면. 그런데 여기 와서 우리가 만난 아이들한테는 그런 생활지도를 가지고 들어가지만, 손 안 닿는 아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 사업이 뭐냐면, 바로 그렇게 주민들이 얽어낸 얘기들을 그대로 정보로 모아서 다시 사업에 들어가거든요. 2차 사업이 지금 저희가 주민자치네트워크 사업이 그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몽실 아빠 몽실 엄마’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주민들이 조직이 돼서 지원을 하는 구체적 생활지원을 하는 거예요. 가서 아이에게 생활지침을 줘요. 밥을 해먹을 때에는 안전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 그 다음에 내 몸이 소중하기 때문에 내 몸이 필요한 것은 뭐다, 그리고 자기 몸이 소중하니까 깨끗하게 관리도 해야 된다, 등등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보통 아빠가 있는 가정의 여자 아이들 하고, 엄마만 있는 가정의 남자 아이들이 목욕을 못하는 거예요. 초등학교 이상이 되면 목욕탕을 데려가지 못하니까요. 엄마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집에서도 그냥 밀고 씻기고 그러는데, 아빠들은 대책이 없어요.(웃음) 아빠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어쩔 때는 저희도 화가 나요. 이런 것이 발견되어 올라오는 즉시 프로그램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얘기하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거죠. 말만 하면 안 되니까.”

덤덤하게 우리 사회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말 속에는 참을 수 없는 가난의 무거움이 있었다. ‘녹색삶’은 그들의 말동무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만으로 그림자를 지울 수는 없다. 아이들의 생활의 터전, 즉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저희들이 활동이 단순한 교육활동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이 부분들을 연결하는 역할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보는 거죠. 어느 순간, 이런 활동이 쳇바퀴처럼 제자리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가? 고민을 해보니까, 추적할 수 있었죠. 그러니까, 아이들한테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가정도 여전히 중요하고, 학교도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이 모두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아이를 돌보는 것, 여기에 그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학교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주요하게 연 2회 정기적인 방문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마다 방문을 합니다. 이런 활동이 가정으로 연결되고, 또 아이들의 정보를 가지고 학교로 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왜 필요하냐면, 요즘엔 학교에서 가정 방문을 안 하시잖아요. 그래서 선생님들은 저희의 활동에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저희의 역할이 이런 거죠. 이 소통을 누가 하느냐, 누가 추진하느냐, 누가 따로 해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각자 아이의 성장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지역이웃이면 누구나가 해야 하는 일이죠.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시민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봐요. 이런 것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우리가 교육운동이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지 않아요. 내용은 같지만,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죠. 그렇다면 지역사회는 뭘 하느냐? 우리의 이웃들이 이런 아이들을 발굴하는 거죠. 통장님도 자기 집 앞에서 애가 뒹굴고 있으면 연락해요. 중국집 아저씨가 배달하러 갔다가 빈곤 가정의 아이들을 만나면, 또 저희한테 연락을 줍니다. 그러면 저희가 당장 방문을 하거든요. 이렇게 주민들이 발굴을 합니다. 이렇게 발굴하고, 그리고 누가 어떻게 연결하느냐, 그러면 아이들 직접 인터뷰를 하고 그 조사를 가지고 자원교사선생님들이 결정하는 거죠. 그 다음 진행은, 아이들 정보를 중심으로 해서 지역에 있는 복지관이나 전문 상담소 등 자원을 쭉 연결하는 거죠. 이것이 각 단계에서 문제를 발굴하고 문제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어떻게 역할을 하느냐가 반드시 이런 과정에 들어가죠.”

‘녹색삶’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학교,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코디네이터이다. 선생님과 학부모와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녹색삶’이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거기에는 주부들이 있다. 전체 자원활동 규모는 12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어린이집을 돌며 책을 읽어지기도 하고, 숙제방이나 방과후의 자원교사가 되기도 하고, 상담 역할도 하고, 조직을 꾸려나가는 운영위원이 되기도 한다. ‘녹색삶’을 이끈 주역은 바로 이런 주부들이다. 정외영 대표에게 물었다. 왜 여성들이 지역운동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지.

“우선은, 지역문제에 1차로 밀접하게 결합된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점이죠. 예를 들면 쓰레기 문제, 자녀교육문제, 가족문제, 노인문제, 전부다 지역 단위의 문제거든요. 누가 제일 많이 노출되고 누가 전적으로 고민하느냐, 그러면 다 여성들이 고민하는 거죠. 많은 문제에 여성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것이 현재는 개별화되어 있고 파편화되어 있는 거예요. 각자 자기 문제로 되어 있는 거죠. 혼자서 고민하는 거죠. 그런데 한 번만 모여서 고민하다보면, 각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동시에 되어버린다는 것을 실감하는 거예요. 얘기하다보면, 저 사람도 나하고 똑같은 고민을 해, 맞아, 맞아, 우리 공동의 문제야, 하거든요. 그런데 공동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없잖아요. 이것을 누가 줘야하느냐, 이것이 지역단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지역단체라는 것이 주민이 참여하고 관심을 갖게 하고 공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런 목표를 갖고 있는 그런 지역단체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럼 각자 자신의 삶의 문제를 갖고 어떻게 보면 개별화 되어 있고 파편화 되어 있는 우리가 어떤 계기를 갖고 모여 보면, 각자 개인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지역사회문제로 전부 연결되어 있는 거죠. 그러면 아, 내 문제가 이 문제구나, 하고 받아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혼자서는 안 되죠.......이렇게 확인하는 과정, 우리가 서로 고립되어 있거나, 서로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관계되어 있다는, 관계성의 확인은 지역운동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의 문제가 단순히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지점, 우리 모두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되, 동시에 내 문제도 해결되는, 이런 구조라야지, 내 문제만 가만 놔두고 남의 문제가 하면 됩니까? 여성의 전체 그런 생활의 문제에 1차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1차적으로 고민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두 번째, 시간적으로도 그래요. 여성들은 아직은 전업주부들이 대상인데, 시간도 낮 시간에 그런 문제를 가지고 이런 기회를 만들 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여성한테 있는 거죠. 그래서 이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여성이고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직장생활을 한다던가 하면 이 구조로는 참여할 수 없잖아요. 지역운동은 그렇게 되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해 보시겠지만, 지금 전업주부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갖 활동을 다 하시고, 심지어 종교 활동도 열심히 하세요. 그런데 단지 전적으로 우겨서 그 일만 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 속에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여성이 지역운동에서 주요하게 주목받을 수 있는 1차적인 여건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그런 욕구가 있어요. 실제 그런 기회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거예요. 단지 그런 장이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기회를 누가 만드느냐, 그런 고민하는 주체들이 기회를 만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하는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이 아니에요. 기회를 주는 거죠.”

일상적인 생활의 문제에 여성들은 전부 노출되어 있다. 당연히 여성들의 생활의 고민은 전방위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인간으로서 삶의 욕구가 있는 것이다. 가정주부로서가 아닌, 사회인으로서 말이다. 자연히 지역운동과 여성은 만날 수밖에 없다고 정외영 대표는 말한다. 조직사회 경험이 없는 주부들이 잘 할 수 있을까?

“.......어려운 아이들이 있으니까 도와줘야 하는 구나, 이렇게 출발은 소박한 마음에 출발하죠. 우리는 준비해서 오라는 소리는 안합니다. 일단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 다음엔 자원교사 교육에 충실히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하나 전제가 있어요. 저희가 믿음을 가져야 해요. 어떤 믿음이냐면, 각자 우리가 바라는 의식적인 어떤 과정의 경험을 갖지 않더라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여해서 30, 40, 50, 60년에 단련된 경험들을 굉장히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전제에요. 물론 왜 문제가 없겠습니까, 여성들 같은 경우는 조직사회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룹을 이루어서 단일한 목적을 가지고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는 경험이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제는 그 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혼생활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이런 경험 자체가 다 소중한 거예요. 그 경험과 그런 경험을 믿어주는 것, 이것이 ‘녹색삶’이 주부들을 바라보는 기본전제입니다.”

‘개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믿는다.’ 쉽지 않지만, ‘녹색삶’은 그렇게 실천해 왔다. 개개인의 삶의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역운동의 정신도 여기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 만나기. 그래서 ‘녹색삶’의 조직화는 의식적이지 않고, 빠르지도 않는다. 매우 더딜 수밖에 없다. 정외영 대표는 ‘수다의 철학’의 끝으로 인터뷰를 마치고자 한다. 짧은 시간,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녹색삶’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 아름다움이 널리 전파되길 희망하며.......

“주부들의 수다스런 만남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직장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을 이루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런 조직이 아니거든요. 여기는 다른 원리예요. 다른 원리의 운동은 다른 원리에 의해 진행된다고 보거든요. 사람을 만날 때도 이 운동은 그냥 어떤 일부의 도움이 되는 부분만 만나고 나머지는 모른다, 이러게 일이 되지 않죠. 전면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수다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정보를 주는 거예요. 굉장히 필요한 정보들이에요. 따로 전화해서 속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저희가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활동가는,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이 들을 때는, 저 사람이 주요하게 어떤 곳에 관심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대로 들어내 보이는 거죠. 아이들 얘기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따라서 저 분은 지금 어떤 지점에서 이야기를 같이 할 때에 힘이 되겠다, 라는 것이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효율성으로 볼 수 없는 문제죠. 그것을 명확히 보셔야 됩니다. 전혀 다른 원리의 운동이기 때문에 다른 원리에 기초한 그런 방법들이 연구되고 고민되어야 한다는 거죠. 단순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보면 굉장히 어렵다는 거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경험이 반복되면, 자기 얘기를 충분히 얘기하고 나면, 변화되죠. 여성의 눈으로 보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습니다.”

※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홈페이지는 http://www.glife.or.kr/입니다.
(2004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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