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명애(사무국장)
주민운동은 목하 변화의 길을 모색 중이다. 분권과 자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와중에 정부는 미흡한 대로 지방자치 활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지역을 토대로 한 시민운동진영도 주민자치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통로들을 만들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시점이다. 그 동안 (중앙)시민운동단체의 담론 수준이 국가시스템 개혁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했다면, 최근의 담론 수준은 구체적인 지역에서부터 개혁의 예각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미완성이긴 하나, 한국사회가 민주화로 통하는 접속이 로그인된 상태에서 밑에서부터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라는 평가를 간과하지 않는다면, 지역적 시스템의 변화에 민감한 측면은 결코 질적 수준의 하락을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최근 몇 차례의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듯,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하는 시점이라고 한다면, 보수기득권세력이 거점하고 있는 구체적 지역에서부터 변화는 필수불가결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 개혁은 요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미완의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국가적 과제와 지역적 실천은 별개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하부단위가 아니며, 오히려 변화를 주도할 새로운 주체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묵묵히 지역에서 운동을 주도했던 시민사회운동세력이 기회이자 도전인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래서 고민의 무게는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모든 시민단체가 그렇지만, 주민운동단체의 전통적인 과제를 꼽는다면 ‘안정적인 재정의 뒷받침’이다. 해체되지 않고 근근이 맥을 잇는 자체가 커다란 성과라는 자조 섞인 말에서 드러나듯, 재정문제는 언제나 주민운동을 가위 눌러왔다. 재정문제는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하드웨어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로서 주민운동단체의 전통적인 과제는 무엇일까? 관악주민연대의 이명애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역운동을 하는 단체에게 영원히 남는 숙제는 어떻게 주민들에게 다가갈 것인가”로 표현한다. 주민들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밀착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눈을 지긋이 감을 것이다.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주민운동은 암중모색이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관악주민연대 사무국장이다. 관악주민연대는 꽤 오래 전부터 주민운동에 천착해왔다. 이명애 사무국장을 만나 그의 속마음을 들어보자. 먼저 관악주민연대의 역사를 간략히 물었다.
“관악주민연대는 95년 3월 11일에 만들어졌는데요, 주민연대를 만들기 위한 논의는 94년 겨울쯤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다른 단체와 다르게 주민연대는 특수한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데, 80년 중,후반에 지역에서 지역운동을 하시던 분들이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이 달동네 지역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주민들 가까이 가서 주민들 생활에 도움이 되는 뭔가 함께 같이 하고 같이 살면서 주민들을 주체로 세울 수 있는 그런 조직운동을 하자, 이런 결의를 가지고 지역에 들어가서 시작하셨고, 그래서 공부방이나 탁아소도 만들고 교회도 만들고, 여러 가지 야학도 하고, 그런 활동들을 지역에서 해오셨는데, 90년대 들어와서 다른 지역과는 뒤늦게 관악구 내 재개발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95년 봄에 광역과 지역의 단체장까지 뽑는 본격적인 지방선거가 시작되었지요. 그러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끼리 실제로 주민들은 지역에서 당장 생존권의 위협의 시달리고 있기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을 그냥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뭔가 조직적인 연대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쉽게 이루어졌고요. 더구나 이게 동단위에서 활동만이 아니라 관악구라는 차원에서 재개발 문제와 관련된 대응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겠다, 이런 공감대가 굉장히 쉽고 넓게 이루어지고, 그리고 당시의 세대위(세입자대책위원회)라고 하는 주민들이 몇 개 지역에서 있었어요. 이름은 나름대로 주거대책위원회도 있고 약간 다르긴 했지만, 그런 주민조직들이 있었고, 또 크게 도움이 된 것은 그런 세대위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들,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활동가들, 그리고 학생들, 주로 서울대생들이었는데요, 당시에 지역에서 그런 재개발 상황이나 이런 것이 대학교에서 지원한 학생그룹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그룹들이 다시 공감대를 만들어서 주민연대를 결성하게 되었고요, 그러다보니까 초창기 주민연대 활동은 철거투쟁을 지원하는데 많은 역량을 투여하자, 이러게 하다가 한 98년, 99년 이렇게 넘어가면서는 지역들이 대부분 철거싸움을 정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는 그 다음부터는 실업극복 관련한 활동들을 많이 했고요, IMF 때였죠. 그 이후에 2001년, 2002년 접어들면서부터는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저희가 1999년 한 해 동안을 저희 조직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같이 하는 그런 기간으로 잡았었거든요. 1년 동안 지역의 활동가들이나 회원들이 토론회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하면서 주민연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의를 거쳐서 2000년에 단체 멤버십이 아니라 개인 멤버십으로 가자, 이렇게 정리를 하고 활동의 변화가 생겼고, 이런 활동의 변화가 본격화된 것은 2002년 정도라고 생각해요.”
관악주민연대는 빈민운동부터 출발했다는 독특한 태생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멤버십의 성격과 활동의 내용에 대해 내부 논의 기간을 두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관악주민연대는 주민이 없으면 성립하기 힘든 조직이었다. 그야말로 주민운동의 전통을 밟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관악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전환을 위한 내부 논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물었다.
“조직 논의 기간 동안에, 사실 저희 같은 경우는 계속 관악주민연대라고 하는 단체에 대해서 어쨌든 지역의 센터들, 그러니까 지역의 단체들의 협의체냐, 개인 멤버십이냐, 이런 것도 굉장히 문제가 되었고, 그리고 지역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저희는 여전히 그 동안 단체가 만들어진 역사에서부터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저소득층 이런 사람들을 기반으로 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관악구라고 하는 지역, 더군다나 재개발이 끝난 이후에 관악구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편으로는 좀 더 광범위한 사람들을 구 단위에서 조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약간의 시민운동의 방법들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던 반면에 여전히 우리가 해왔던 전통적인 주민운동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것이 서로가 상반되는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립각처럼 여겨졌던 것 같아요.”
운동의 성격을 두고 조직 내부의 열띤 토론이 있었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명애 국장이 말하는 전통적인 주민운동의 방식은 CO(Community Organizing)를 뜻한다. 주로 동단위의 주민조직이나 그런 것을 지향하는 운동을 뜻하며, 그 중에서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악주민연대에게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어울리지 않는다. 소위 대변형 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주민이자 곧 활동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과 활동가를 분리하거나 ‘다른 존재’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이명애 국장은 말한다. 그러나 주변 환경은 많이 변했고, 의도와 무관하게 대변적 성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명애 국장도 잘 알고 있었다. 10여 명의 상근 활동가가 여전히 전통적인 주민운동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활동방식들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이명애 국장에게 회원 규모와 활동 내용은 어떤지 물었다.
“우선, 이런 걸 물어볼 때 곤혹스러운데, 내가 주민연대에 돈을 내는 회원, 멤버십을 명확히 갖기 보다는 주민연대 회원이야, 이렇게 하는 사람은 사실 100명도 안돼요. 그게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주민연대가 가진 존재의미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애초에 우리가 2000년을 지나면서 멤버십을 개인멤버십으로 가자라고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센터와 센터에서 일하는 분들, 그리고 센터를 통해서 만나는 분들, 이런 분들이 저희 조직으로서는 상당히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희가 가진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조직적인 힘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어쩔 때는 대게 맥 빠져 하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저희는 활동가들이 많은 만큼 딱 중점사업은 별로 없는데요, 5가지의 중요한 사업을 해요. 하나는 임대아파트 사업을 해요. 임대아파트 사업은 저희가 예전에 어쨌든 계속 해왔던 철거싸움에 그런 맥락을 잇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면, 철거싸움이 임대아파트 사업이고요, 두 번째는 실업사업이에요. 그것은 98년 이후에 계속 해왔던 실업자 조직과 실업운동을 위해서 하는데, 사실 사업을 진행하면서 고민이 굉장히 많고요, 또 하나는 녹색가게를 중심으로 하는 녹색소비와 녹색 생활환경 만들기 운동을 하고요, 또 네 번째는 보육운동이에요. 저희가 올해 초에 얼마 전에 보육문제에 관심이 있는 엄마들과 함께 저학년을 전담으로 하는 방과후 교실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앞으로 보육문제는 굉장히 주민들 생활에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인 것 같고 사업의 가능성도 대게 많다고 생각이 되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가 맡아서 하고 있는 주민자치와 관련한 사업이에요. 이렇게 다섯 가지 사업이 저는 어떤 것들은 예전에 우리가 만났었던 저소득 주민들을 조직할 수 있는 사업이고요, 또 어떤 것들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터에 사시는 분들을 조직하는 운동이고, 또 어떤 것들은 공히 여러 사람이 관심만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고, 가능성을 보고 계속 해가는 측면도 있어요.”
다섯 가지 주요 사업에도 빈민운동의 맥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에 제시한 주민자치 사업은 그 상이 뚜렷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주민자치’ 활동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모든 활동의 기초가 되는 원칙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같이 모임 하는 회원들한테도 얼마 전에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주민자치라고 하는 것이 그 폭이나 그런 것이 넓은 것 같아요. 말로 하자면 자치 아닌 것이 없는 거죠. 각각의 사업들을 우리는 또 주민자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라고 하는 고유한 영역의 역점, 이런 것들을 어떻게 찾을지 상당히 고민이에요. 제가 맡고 나니까 고민이고, 그렇게 되면서 예를 들면, 사회단체보조금 관련한 활동이나, 또 제가 알기로 저희 지역에서 한 번도 판공비 공개에 관한 그런 운동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라든가, 주민자치센터 활성화를 위한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런 관심과 동시에 저는 한편으로는 각각의 우리가 하고 있는 4개 사업 속에 이 주민자치라고 하는, 주민참여라고 하는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녹여내면서 같이 묶여 갈 수 있을까, 그런 측면이 고민이 되죠.”
그렇다. 이명애 국장이 지적했듯, 각각의 활동은 모두 주민자치를 위한 것이고, 그 활동 속에 ‘주민자치’의 정신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는 구체적 활동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가치지향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구현되는 활동의 상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이에 덧붙여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주민자치를 지향하는 단체로서, 지역운동이나 풀뿌리운동이 가지고 있는 과제는 무엇일까? 아니면 주민연대의 과제는?
“지역운동의 과제라.(웃음) 그렇게 큰 얘기들은 고민을 안 해봤는데........지역운동의 과제는 지역운동을 하는 단체에게 영원히 남는 숙제는 어떻게 주민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그것인 것 같아요. 어떻게 다가가서 어떻게 주민들을 참여시킬 것인가, 그게 어떤 활동이든지 간에. 저희가 하는 활동 자체가 나쁜 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문제들, 전국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의 얘기를 한다든지, 그런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제안이나 그런 것들을 어떻게 마련하고,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내 의견은 이렇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그런 얘기들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것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도 지역에서 다양한 주민들을 만났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에요. 주민들은 도대체 뭐에 관심이 있을까, 어떤 문제로 뭘 하면 주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을까, 이런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쉽지 않은 게 갈수록 더 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요즘 다들 살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그냥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문제들, 이런 것을 위해 투여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갈수록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것 같고, 또 전국적인 사안이나 이슈 같은 경우도 예전에 비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지역 안에서 만들어낼 것인가가 고민이죠.”
‘주민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지역운동의 영원한, 그리고 쉽지 않은 과제다. 그래서 주제를 바꿔, 그렇다면 그 동안 관악주민연대가 활동한 사례 중, 주민자치의 상을 발견할 수 있는 모델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갈수록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음.......저는 주민연대가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제가 일한 지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상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하지 않고. 다만, 대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저희가 보육에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활동한 어린이집을 운영 팀이 있었어요. 그 어린이집이 끝가지 놓지 않고 갔던 것은 부모들에 대한 교육, 부모들의 모임이었어요. 물론 굉장히 좋은 마인드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그 부모들 사이에 굉장히 실력을 쌓았죠. 예를 들면 아주 사소한 것, 저희들에게 가능하면 유기농산물을 사용하다거나, 아무리 선생님들이 바빠도 아이들에게 TV를 켜 놓고 그것을 보게 하지 않는다거나, 아이들 건강을 위해서 주에 한번씩 또는 자주, 밖에 나가서 동네 한바퀴라도 돈다거나, 이런 식으로 남다른 교육들이 부모들의 관심, 또 부모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모임 자체를 먼저 제안한 것은 주민연대였지만, 주민연대와 그 어린이집과 그 어린이집 엄마들이 모여서 한 2-3년 동안 계속 모임을 해왔어요. 해오다가 올해 초에 방과후 교실을 만들게 됐거든요. 그런데 방과후 교실을 만드는 기간 동안 어쨌든 부모님들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셨어요. 그 나이 또래에 있는 아이들이 막 초등학교 가거나 아니면 초등학교 가기 직전의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그 모임에 결합해서 같이 해주셨고, 그래서 캠페인 나가기도 하고, 어린이집 만들기 위해서 하루주점을 하기도 하고, 또 엄마들 스스로가 우리가 만드는 방과후 교실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같이 워크숍도 하고 이러면서 방과후 교실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현재 방과후 교실은 아직 아이들도 많지 않고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엄마들이 하나의 고비를 넘기셔서 또 새로운 도전에 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준비한 엄마들 중에 일부만이 아이들 방과후 교실에 보냈어요. 그러면 방과후 교실에 간 그 엄마들이 또 새로 오는 부모의 아이들, 또 부모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면서 그런 보육운동이라는 넓은 차원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이런 것은 새로운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볼 때는 그 기간에 엄마들이 보여주었던 자세나 참여의지나 아이들 문제를 내가 나서서 적극 해결하려고 하는 이런 것들이 작은 사례가 될 수 있다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하는 거죠.”
스스로 보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엄마들의 노력. 그 속에서 함께 토론하고 행동하고 훈련되면서 희미한 자치의 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명애 국장의 얘기. 그러나 자치는 끝이 없듯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고 보육운동이라는 넓은 차원으로 발전해 가야 하는 또 다를 과제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자치의 경험을 쌓이게 된다. 어떤 동력이 그들을 움직였을까?
“저는 신뢰라고 생각해요. 애초에 저희가 어머니들이랑 만나고 일을 하고 그랬을 때는 사실 주민연대라고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지 못했어요. 지금도 주민연대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인식도 없으시고 잘 모르세요. 단지 주민연대와 그 어린이집이 엄마들의 얘기로 하자면, 그냥 그렇고 그런 관계인가 보다, 그렇게만 알고 계시는 거고, 그런데 워낙에 어린이집에 대해서 신뢰가 크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민연대 사람들과 같이 하는 데니까, 나쁜 곳은 아니려니, 하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저희 주민연대에서는 그게 주민연대에서 하는 일이야, 우리 거야, 하는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 그리고 어쨌든 주민들과 한 약속을 우리가 책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하겠습니다, 하는 약속을 했던 것,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끝까지 같이 하려는 그런 마음들과 자세들을 보여줬었죠.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활동가, 또는 주민운동단체와 주민들 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같은 지향을 꿈꾸는 동일한 존재임을 인식시키는 것, 즉 신뢰를 부여하는 만큼 확실한 관계 쌓기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보육이라는 생활의 절박한 과제와 여성이라는 활동의 주체가 맞물렸다는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나,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신뢰는 가장 든든한 무형의 자산이다. 방과후 시설을 준비하는 과정은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소박한 쌈지 돈 때문에 집구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비됐고, 교사 구하기도 힘들고 아이들 모집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현재는 소수의 아이들만 다닌다고 한다. 이제 차차 안정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아이들의 숫자는 더 늘어날 거라고 전망한다. 이명애 국장에게 스스로 관악주민연대 활동을 평가하면서, 가장 잘 했던 일과 가장 아쉬웠던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잘했던 것은 잘 모르겠고, 저는 솔직히 말하면 단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자체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웃음) 문 닫지 않았다는 것.(웃음) 어쨌건 이런 사회단체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서 활동가들의 헌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거죠. 그런 것에 많이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단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대게 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아쉬운 것은, 모르겠어요. 저도 주민연대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주민연대가 물과 같아서,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만약 큰 대야 같은 곳에 담기면 그만큼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거고, 만약 밥그릇 같은 곳에 담기면 밥그릇 밖에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은 그렇게 먹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단체 운영을 위한 조건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 조건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회원이든 후원회원들이 늘어나서 그것을 채워줘야 하고 또 단체는 그만큼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 우리는 진짜 열심히 지역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열심히 맨날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러면서 일을 하는데, 그런 성과들이 주민연대를 지역에 알릴 수는 있을지언정, 주민연대라고 하는 틀 안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 그런 것에 대해서 저는 제가 맡은 역할이 있으니까, 초조하게 생각이 들죠. 그래서 안정되지 않는 것, 그것이 아쉽죠. 어쨌건 제가 사무국이라는 실무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니까, 하여튼 그것이 저한테는 제일 큰 프레셔(pressure)인 것 같아요.”
이명애 국장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작년이었던가? 시민자치정책센터를 평가하면서 한 운영위원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위안을 삼았던 일이 떠올랐다. 동병상련. 관악주민연대는 지방정치에도 남다를 관심과 참여를 보였다. 빈민운동 하던 시절부터 2002년까지 소극적인 지지, 또는 적극적인 후보전술을 펴왔다. 그래서 몇 몇 의원을 배출했고, 지금도 몇 몇 의원과는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도 단체 차원에서 지방정치 참여에 관심이 있냐고 물었다.
“저는 가능하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91년 지방선거를 할 때, 민노당 현재는 부대표님이죠. 김혜경 대표님이 난곡 지역에서 나오신 특별한 이유가 마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비전 가지고 나오셨는데, 그 때는 더 밑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조절되지 않고 그런 게 있었을 수 있지만, 95년 주민연대가 만들어질 때부터는 주민연대 차원에서 지원해서 다른 그룹에 있는 구의원들이 있었고, 98년에도 3명이 나와서 2명이 됐죠. 2002년 선거에는 공식적으로 후보를 내지는 않았어요. 저는 물론 어떻게 되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게 뭐 일본에 있는 가나가와네트워크를 예를 들면서 지역정당을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고, 실제로 의회 진출해서 의원이 되신 분이나 사회단체들 간의 약간의 삐끄덕거림이 산술적으로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가 만난 주민들이 더 성장하고 더 참여해서 바꿀 수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지방의회 같은 경우는요. 그런데 그게 대게 도식적으로 딱 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합의라고 할까, 그런 게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무국장 개인의 생각이긴 하지만 관악주민연대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간 관악주민연대의 지방정치 참여 평가를 물었다.
“그 때 당시는 제가 중요한 위치가 아니고, 주민연대라는 조직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잘 모르는 때였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슨 성과지?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정확히 못할 것 같고, 단지 아쉬운 것은 단체에서 지지하고 동원하고 뽑아줬는데, 실제로 단체가 요구하는 것과 후보가 된 사람이 의회라고 하는 어떤 구조화된 틀 속에서 역할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단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런 것에 대해서 상세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고, 또 의원이 되신 분들은 그것을 산술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또 그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단체와 함께 해결할 것인지, 이런 것에 대해서, 또 허심탄회하게 심도 있게 터놓고 얘기한 것이 실제로는 지역 안에서 작은 것을 바꿔내는 데 있어서 큰 기여를 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런 성과들이 제대로 평가되고 성과를 차곡차곡 쌓이는 그런 것은 좀 안이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약간의 어긋남들이 처음에 작은 것 같지만, 자꾸 시간이 가면 커지잖아요. 커지는 것처럼 서로에 대해서 의원으로서 내가 얼마나 힘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단체가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함이 쌓이는 것 같고요, 그리고 단체에서는 의원이 변했네, 다르네, 이렇게 의원에 대해 불신이 쌓이는 이유가 그런 것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과정들을 저희도 똑같이 겪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명확하게 어떤 것이 단체의 역할이고 어떤 것이 의원이 역할인지 이런 것이 공유가 되거나, 아니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딱 약속을 하는 거죠. 의원은 절대적으로 단체의 명령에 따른다거나.(웃음)”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단체와 의원 간의 어긋남을 어떻게든 메워야 하다는 과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그러면 앞으로는 다른 형태로 준비를 하나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제가 준비를 한다고 말씀을 못 드릴 것 같고요.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이 들어요. 2006년에 선거가 있잖아요. 딱 2년이 남았는데, 그 기간이 별로 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희 단체에서도 또 후보를 내서 지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지만 서로 간의 명확한 관계가 필요하겠죠. 또 이제는 어쩌면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기반이나 분위기들이 전보다 나아진 것 같거든요.”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현실적으로 모르겠어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의원을 되려고 했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가정하는 건데, 만약 의원이 되고 나서, 내가 해서 의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다음 선거를 염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사회단체 입장에서만 서서 대변하고 일을 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나는 단지 내게 주어진 임기 4년 동안 그냥 이 단체를 대변하거나 이 단체가 원하는 어떤 정책이나 목표를 위해서 의원이 된 것 뿐이다, 라고 설정을 한다면 그것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얕은 생각인가?(웃음)”
단체의 상황에 따라 달리 갈 수도.......
“또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의원에게 너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의원도 어쨌건 사람이니까. 적당한 거리라고 하잖아요. 그 전에 선배님들이 그러더라고요. ‘그 사이에서 넘지 않아야 할 인간적인 관계의 거리가 있다’ 그렇게 얘기하셨는데, 그 관계의 거리를 우리가 만약 단체와 의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몇 미터 간격 안에서 서로 공존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합의를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럼 어떤 관계를 가장 바람직하게 보시는지.......
“저는 서로 협력하고 협조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해요. 지역단체가 지역정당이 되지 않는 이상, 우리 단체의 명령은, 우리 단체에서 하는 일은 우리가 다 지지를 해야 돼, 또는 우리가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회 안에서 이렇게 발언을 해야 돼, 이런 것은 좀..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고유한 판단이 있을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의원을 의원으로서 그 사람이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신뢰만 있다면 그리고 그 신뢰를 견제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네가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할 땐 우리가 언제든 너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이런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지만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거나,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언제든지 너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 이런 쿨한 합의만 있다면 저는 의원은 의원으로서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단체는 단체로서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이 어떨 때는 맞아 떨어져서 잘 할 수 있고, 또 어떨 때는 서로 상충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녹음 끊김).......주민이랑 가까이 가면서 우리랑 뜻을 같이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사람을 나름대로 건강하다고 생각을 해서 의원이 되신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 주민들 같은 경우는 어쨌건, 그런 선에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선에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물었다. 그럼 협력과 협조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지방의원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는다거나, 의원이 시민단체의 액션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요구해서 액션을 명분으로 의회 활동을 진행한다거나 등등. 그런 거랑, 또 뭐가 있을까.......그런 것 이외에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런 거죠. 그래서 뭐 예를 들면 어떤 한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잖아요. 저는 공식적이고 일상적으로 제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보면,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예전에 경험에서 보면 의원은 의원으로 단체에 요구하는 것이 또 있어요. 만약 자기가 법안을 발의하려고 하는데, 뭘 해 달라 이런 것을 요구할 수 있지만, 단체로서는 현실적으로 그것을 못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해야 되는 게, 그 이해를 하려면 평상시에 이런 틀이 있어서, 서로의 정보를 유지되고, 소통되고 이래야 되거든요. 그런데 뜬금없이 나 이거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한다거나, 단체는 나 이거 관심 있는데 이것 좀 해줘,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다 공감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적인 틀이 있어야 된다고 보는 거죠.”
이명애 국장은 매우 쿨한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의원의 고유 역할과 단체의 고유 역할이 다르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삐거덕거림이 심각하거나 과도하게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다만, 일상적인 소통의 틀만 존재한다면 쿨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 보인다. 지방정치에 대한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지방정치에 참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애초에 내보냈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의회에 가서 그런 얘기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91년이나 95년도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가 계속 활동을 한 지역은 빈민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잘 알고 스스로 경험하고 이런 사람들의 얘기를 대변해야 하고, 그걸 지역 안에서 정책화활 수 있다면 하는 거고. 음.......지금도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꼭 경제적인 가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얘기하는 건데요, 그런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저는 좀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람이 의원이 됐으면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사실, 동네에서 의원들을 만나서 별로 많이 만나지도 않았지만, 너무나 자질이나 이런 것들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의회라고 하는 게 어쨌든 지역의 사람들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데, 대변하는 거라면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낼 수 있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토론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이런 사람들이 당연히 의회 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목소리 큰 사람들, 또 지역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의원이 돼서 그냥 그걸 하나의 감투로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개혁의 대상으로서 지방정치 논의 중, ‘자질론’은 여전히 우리나라 지방의회의 객관적 수준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이 ‘합리적 사고’인지 명확한 기준이 모호하긴 하지만, 함량미달의 의원들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그래서 진부하긴 하지만, 개혁세력들이 ‘자질론’을 외치는 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다가올 선거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명애 국장이 이야기하고 있듯, 운동단체와 의원간의 사회적인 기반이나 분위기가 이전의 그것보다 나아졌다는 판단에 근거한다면, 지방정치도 변화의 길목에 들어섰다는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시민자치정책센터에서 개최한 지방정치 평가 토론회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2006년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적 방식의 주민운동의 맥을 이어왔고, 지금도 그런 정신을 놓지 않으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몇 차례 변화의 진통을 겪었던 관악주민연대. 어쩌면 전체 주민운동의 진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활동과 행보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명맥을 유지했다는 성과에 그치지 말고, 주민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꾸준히 던져주는 그런 단체가 되길 기대해본다. 끝으로 주민과 어떻게 만날 생각인지, 그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할 계획인지 마지막 질문과 대답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저희가 주민들을 만나는 방법은요, 주민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제가 사무국장 하기 전에 오랫동안 사무국장을 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물론 그 친구가 사무국장을 할 때에는 철거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도 할 때였지만, 그 친구는 어떻게 일을 했냐면, 그 때만 하더라도 저희가 사무실이 없었어요. 그 친구는 동네에 들어가서 세대위가 있으면 세대위 사무실에서도 자고, 그 동네에 있는 활동가 집에서도 자고, 주민들 집에서도 자고, 그러면서 그 동네에 가서 그냥 항상 같이 있고, 그러면서 일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사무실이 필요가 없었죠. 그가 가는 곳이 사무실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임대아파트 활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쨌건 임대아파트 같은 경우는 공간적인 제약, 특수성 이런 것들로 인해서 그냥 무작정 자주 가요, 자주 만나고 얘기하고,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것은 이슈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예를 들면 녹색가게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런 것도 굉장히 주민들을 많이 만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요. 실업 같은 경우는 저희는 그것 역시 사람들의 욕구가 있거든요. 스스로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떻게 묶을 것인가, 조직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대게 고민이 많죠. 주민들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그냥 안녕하세요, 하는 얼굴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이상으로 +α가 있는 거죠. 그렇게 되는 것이 대게 어렵고 힘들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저희 주민연대는 어쨌든 주민들이 있는 곳에 가서 만나는 것밖에 잘 몰라요. 그런 방법, 예를 들면 큰 토론회를 한다거나 공청회를 한다거나 기자회견을 한다거나 이런 것을 통해서 주민들에게 여론을 형성하고, 그래서 관심을 갖게 한다거나, 이런 방식들은 잘 안 쓰기도 하고, 또 그 동안 잘 못했어요. 저희가 제일 취약하고 못하는 것 중에 하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 관악주민연대 홈페이지는 http://www.pska21.or.kr/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