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지역단체 대표의 고민 - "동북여성민우회"를 찾아
인터뷰 : 김인숙(대표)

어떻게 하다보니 최근 인터뷰 대상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다소 의도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지역자치운동을 얘기할 때 여성을 제외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한 마디로 여성, 특히 주부만큼 지역 살림을 잘 아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일상을 돌아보면 삶의 언어는 곧 주부의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시스템 속에 매몰되어 있는 남성들보다는 주부들의 시야와 언어는 더 자유롭다. 집 앞 슈퍼에서, 빨래터에서, 응접실의 찻잔 앞에서 주부들의 수다는 삶을 대변하고 생활을 대변한다. 그렇게 삶의 현장은 주부들의 놀이터다.

오늘 만난 인터뷰 대상자도 여성이다. 민우회 지부 중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는(그렇다고 다른 지부가 왕성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동북여성민우회’를 찾아 김인숙 대표를 만났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바로 앞에 만난 관악의 김금희 의원과 대립되는 인터뷰다. 김금희 의원이 의원의 입장에서 시민단체를 바라봤다면, 김인숙 대표는 시민단체 입장에서 의원을 이야기한다. 자치운동의 하나의 영역으로써 지역정치를 본다면 이 두 그룹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많은 지역운동단체들은 적극적인 후보전술을 펴왔다. 이 모양새를 대리인운동이라고 정립한 틀은 없지만, 느슨한 대리인운동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리인운동의 요체는 후보자와 조직간의 관계에 있다. 대리인운동은 단순히 후보에게 ‘시민후보’라는 명함만 달랑 매달아준 행위가 아니라, 후보가 ‘조직은 나의 모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음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2002년 이후 지금까지 이 두 그룹의 관계는 안녕한가?

김금희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느낀 것이긴 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끈끈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 그 길을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면 충분한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공들인 만큼 현재의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실용주의적인 측면에서 보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지역운동단체이든 지방의원이든 지역정치를 잘 개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풀뿌리 세력의 지역정치 참여는 ‘흑묘백묘론’으로 등치시킬 수 없는 것 같다. 운동세력이 힘겹게 후보전술을 전개할 필요 없이 뛰어난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히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이 다음 선거의 화두가 되지 않을까?

인터뷰로 들어가자. 동북여성민우회의 간략한 역사와 김 대표와의 인연을 물었다.

“동부여성민우회가 만들어진 게 92년도였어요. 지역 여성운동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여성운동을 대중화시키기로 했는데, 대중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생활협동조합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생협을 하려면 지역에 내려와서 회원들을 만나야 된다, 그래서 이 쪽으로 오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 와서는 설문작업부터 했다고 그래요. 이것은 제가 전해들은 얘기에요. 일반 대중 여성을 통해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지역의 문제 거리가 있다는 것, 누군가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아는데, 이것은 자기가 아니고 또 다른 누가 해야 된다고, 이율배반적으로 생각한 거죠. 일반 여성들이 관심 가질만한 일이 뭘까 하면서 교육사업부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당시 초창기 보면, 개혁적인 여성단체가 할 것 같지 않은 프로그램들, 메이크업이니, 수지침이니, 뭐 이런 것들, 이런 다양한 교육부터 시작을 했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작년에 핵심활동가들을 교육 같이 하면서 옛날 얘기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민우회 같지 않게 생각했던 소소한 일들을 통해서 들어왔던 사람들이 핵심 일꾼으로 남은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역의 어떤 단체로서 일반 여성에게 문턱을 낮추게 할 때, 그 처음에 시작했던 그 교육사업, 그리고 생협 등이 주요했구나 라고 느낄 기회가 됐었어요.
저가 인연을 맺은 것은 93년도 정도 됐을 거예요. 그 당시 여성학 소모임을 만들었는데.......그 모임에 제가 결합하게 되었어요.......보통 소모임이 1년 가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가다가 저절로 소멸화가 되죠. 그 그룹이 다시 동화읽기 모임이 되었어요. 어머니들이 아이의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떤 것들을 권할 것인가, 그 당시 이오덕 선생님이니 이런 분들이 책 읽는 모임을 했다가 또 수그러진 시기가 있었죠. 그런데 그러면서 저는 잠시 취업을 했죠. 그러다가 95년도에 다시 합류했어요. 지금은 상담소가 본부에만 있는데, 그 당시에는 지부에도 상담소를 만들 계획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시켰었는데, 그 것을 제가 들었고, 그 인연으로 상담소 간사로 합류를 해서 한 10개월 근무를 했어요. 그래서 상담소를 만드는 작업을 해 놓고 그리고 남편 때문에 외국을 갔어요. 그래서 99년도 11월에 왔으니까, 다시 합류한 것은 2000년이죠. 그래서 제가 했던 것은 2000년부터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동북여성민우회의 역사는 10년을 훌쩍 넘었다. 생협을 토대로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뿌리내린 몇 안 되는 조직인 듯싶었다. 김 대표도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었고 중간에 직장생활과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떠나면서, 귀국하면 민우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2000년에 복귀했으니 벌써 4년이 돼간다. 동북여성민우회가 좋은 모델로 꼽히고 있다는 말과 함께 왜 그런 평가를 듣고 있는지 물었다.

“저도 잘 모르죠.(웃음) 그러나 제가 느끼는 것은 11개 민우회 지부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조금 다른 분위기가 있는데, 여기 동북여성민우회는 하나 하나의 인물을 보면 빼어난 인물이 적어요. 그렇지만 뭔가 굉장히 즐겁고 재밌고, 그리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때, 격려하고 칭찬하고 지지해주고 이런 분위기가 정착되기까지 우리 선배들이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지금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요. 그리고 그것이 제가 여기 있는 보람이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이 아홉 가지가 부족하더라도 한 가지 잘 하는 일이 있으면 그걸 충분히 칭찬을 해주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발견해주는 역할,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게 특히 여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정말 없었잖아요. 굉장히 주눅 들어 있고, 자기 가치들을 못 봐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잘 하는 하나의 점을 보고, 저도 어떤 일을 할 때, 이 사람에게 맡겨요. 그러면 약간 저 사람이 부담이 되겠다 싶어도 맡겨버리면, 정말 더 큰 일을 해 내고, 그러면서 본인들이 기뻐하고 자기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을 볼 때, 저도 기쁘고, 그런 역할을 해내는 것이 저희가 하는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그것은 발견할 기회를 주었을 뿐이지만, 정말 능력 있는 여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것은 우수한 여자들이 지역에 있다는 것, 그것은 사회가 키워낸 일이죠. 그런데 저희는 그것을 이리로 오게 만들고 스스로 찾게끔 만드는 기회 제공을 하는 것, 민우회가 하는 활동의 쪽들이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동북여성민우회라는 조직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 동생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자신의 단점보다 장점을 북돋아주는 조직이라면 누구라도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긴 역사 동안 쌓은 조직운영방식의 노하우일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를 물었다.

“예를 들자면, 활동가로 현재의 사무국장은 월등하게 우수해요. 사무국장이 개입을 해서 어떤 일을 할 때 완결성이 굉장히 높아져요. 일의 완성도가 좋은 거예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업, 어떤 사업이 얼마나 완성도 있게 마무리되느냐가 아니고, 제가 볼 때는 이 사업을 어떤 주체들이 하느냐, 어떤 회원들이 주체가 될 때 핵심적으로 이끌어가는, 그런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한 회원이 어떤 일을 통해서 얼마나 자기 완결감을 느끼느냐, 완성도를 느끼고 자기 역량 체험을 하고 결과물로 성과를 가져갈 수 있느냐, 그러면서 이 사람이 바뀌느냐, 그런 곳으로 저는 초점을 맞추고 싶거든요. 어떤 일로 너무 일이 결과에,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 중심으로 가라고 얘기를 하거든요.......그런데 제가 이런 것을 머리로 안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제가 처음 2000년도에 와가지고 지역자치위원회를 맡으라고 해서 맡았어요. 그럴 때 제가 일련의 중요한 몇 가지 사업을 했었어요.......이 일을 할 때, 실질적으로 이것과 연관된 어떤 실무적인 일을 사무국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잖아요. 서류를 꾸민다거나 설문 안을 대충 만들어 놓으면 손 보고 문서화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사무국에서 서포터를 쭉 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저 개인이 할 수 없는데, 저 개인 플러스 사무국이 붙어 있었죠. 그것을 통해서 제가 재밌고, 나도 할 수 있네, 하면 자기 발견을 하게 된 기회가 있었고 옆에서 서포터해주면서 같이 일이 되더라고요. 저는 우리 회원을 다 할 수 없지만, 최근에 지역자치위원회에서 사회단체보조금 건이 발생하잖아요. 여기서 주 책임을 누가 맡을래, 홍은정 씨라는 인물이 딱 맡았어요. 홍은정이라는 사람이 잘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서포터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이 사람이 가져가거든요. 그리고 성과도 이 사람이 가져가거든요. 이럴 때 자기 계발도 되고 성과를 느끼고 기쁘고 하는 것을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모든 인터뷰는 내 활동의 귀감이 된다. 영감을 주는 김 대표의 한 마디. “활동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또는 “그 사업을 누가 했는가?” 중앙단체든 지역단체든 상근 활동가들은 일당백의 역할을 한다. 아무리 적극적인 회원이라 해도 직업적 활동가만큼 일을 잘 처리할 재간은 없다. 그래서 웬만한 단체들은 상근 활동가 중심의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북여성민우회는 최소한 그런 정서는 아니다. 믿고 맡기고 그 성과를 개인이 가져간다. 개인의 발전은 조직의 발전이고 조직의 발전은 개인의 발전 아닌가? 동북여성민우회가 잘 나가는(?) 비결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마디 덧붙인다.

“그렇지만 회원에 따라 많이 다른 것 같아요.......어떤 회원에게 일을 맡길 경우,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분에게 끊임없이 책임을 맡기지만, 일이 진행이 안 되니까 자꾸 참견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사무국의 욕심만큼 일이 잘 안 되면 자꾸 개입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 수위 조절하는 것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맡은 사람이 일도 잘 하고 그 성과를 가져야는 것이 좋은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 경우도 있어요.......저는 농담이 아니고, 다행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욕심이 많지 않고, 이대로 보고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능력 있는 출중한 사람이 그것을 기다려주고 참고 하면 참 힘들지만, 저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동북여성민우회 회원은 대략 1,900명 정도 된다. 대부분 생협 회원이다. 그 중 150명 정도가 정회원인데, 여기서 정회원이란 꾸준히 회비를 내고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회원을 말한다. 그 정회원 중에서도 정예부대로 분류할 수 있는 수가 약 30명 정도다. 그러니까 동북여성민우회의 활동가는 30명 정도로 보면 된다.(동북여성민우회에서는 이들을 ‘핵심활동가’라 부른다) 다른 단체에 비하면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동북여성민우회에서 운영하는 생협의 월 매출액은 대략 7-8천만 원 정도다. 그리 적지 않은 매출액이지만, 생협의 특성상 마진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연간 순이익은 2천 정도의 규모라 한다. 상근자는 1명, 반상근자는 5명, 그리고 파트타임이 3명 정도다.
김 대표에게 동북여성민우회의 꿈꾸는 그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5년, 또는 10년 후?

“우선 저는, 여성이 살기 편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제도 마련이 기본적으로 되어야 하는데, 국회를 통해서 마련되어야 할 것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도봉구청, 노원구청에서 만들어지는 조례나 이런 제도들이 정말 주민의 입장에서 만들어지는, 주민의 입장에서 행정이 행해질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는 것, 그렇게 잘 만들어지면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지요. 그리고.......도봉구, 노원구만이라도 2년 후의 지자체나 선거 때 적극적으로 여성들이, 특히 민우회 출신 여성들이 의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어요. 지금 현재로는. 단기적으로. 그랬으면 좋겠고. 그리고 제가 주민자치센터에 의원으로도 나가보고 하지만, 요즘에 제가 느끼는 한계는 굉장히 우리가 활동을 잘 하고 지역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게 정말 새 발의 피구나, 우리 삶 속의 갇혀 내 집 밖을 못 본다는 그런 답답한 느낌이 들어요. 여기 있을 때에는 행복하고 누구나 말이 통하는 선생님 같은 분을 다 만나요. 그래서 칭찬 받고. 그러나 몇 걸음 차이로 주민자치센터의 회의에만 나가도 벽에 부딪혀요. 그러면서 내가 살고 거주하고 있는 이 지역의 사람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내야 할까. 주민자치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어쩜 저렇게 비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회의에 나가면 너무나 화가 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민도가 좀 올라가야 되는데, 고민이죠.”

우리에겐 민주주의를 삶의 현장에서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장 우리에게 그런 제도가 뚝 떨어져도 그리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행정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주민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내몰았던 것도 행정이고, 자발적 참여보다는 동원에 의한 강제적 참여를 이끈 것도 행정이다. 예산도 짜고 조례도 만들고 복지도 하고 개발도 혼자 다 했다. 주민은 단지 민원인이다. 그러니 밀려드는 민원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공무원들을 보면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민주주의 경험의 부재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가로막아 왔고, 한 발짝 나가면 우리의 사고체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화의를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는 짧게 적었지만, 김 대표가 사례로 든 주민자치위원회는 우리가 뚫어야 할 두꺼운 벽임에 틀림없다. 화제를 지역정치 참여로 돌렸다. 동북여성민우회는 지난 95년부터 후보를 배출할 만큼 지역정치 참여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 민우회와 민우회를 대변해서 나온 의원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아(한숨!) 골치 아파요. 어.......저는 그 전 상황은 잘 몰라요. 전임 대표에게 많이 들었는데, 항상 저희가 후보를 냈을 때는 전임 대표 같으면 자기 가정 다 팽개치고 간난아이 어디다 놔두고 가서 선거운동을 밤낮으로 했고, 지난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는데.......그 전 의원들을 보면 배출해 냈지만 우리의 대변인 역할을 해주길 공식적으로 요구를 했건 안 했건, 심리적으로 그런 요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의원들 측에서는 너희가 배출했기 때문에 끝까지 의정활동을 책임지기를 또 기대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이 서로 안 맞았죠. 그래서 서운한 관계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의원이었거나. 그러면서 그 의원의 활동이 개인의 역량에 다 맡겨져 있었어요. 다행히 제가 초창기 했던 모 여성 의원은 너무 훌륭하게 활동했죠. 그리고 너무 열심히 했대요.......그 의원 같은 경우 개인이 똑똑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노력과 연구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민우회가 뒷받침 못했기 때문에 섭섭했을 것 같아요. 또 민우회 측에서는 제가 전해 듣기로는 지역에서 환경 관련 사항이 있을 때 그 의원이 시민단체를 대놓고 문제 있다고 지적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의원의 역할과 배출시킨 모태가 되는 시민단체와 일정부분 역할에서 차이가 나는 거구나, 이런 것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연결고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그것이 고민인데.......저는 무엇보다 의원과 조직과의 관계에서 준비된 후발 주자를 만들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현재 의원은, 그 배경을 잘 아시겠지만, 급박하게 우리 후보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현재의 의원과 결합해서 활동하는 과정 속에서 그래서 우리 회원들이 알게 모르게 교육이 되면서 또 다른 주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제가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현 시점에서는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이 구도로는 사람이 키워지는 것이 아닌가보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고민 중이죠. 갈등이 많았어요.”

조직과 의원 간의 관계가 뜻대로 전개되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후보를 배출한지 2년이 채 안 된 시점인데도 매우 회의적이었다. 내부적인 어려움을 진솔하게 내뱉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 대표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만 했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어떤 관계를 희망하고 있는가?

“시민자치정책센터에서 답을 주세요.(웃음) 제가 생각했던 것은 아까 그거예요. 그러니까 서포터의 역할이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의원과 플러스, 우리는 세 명을 마련해 놨었거든요. 딱 붙어가지고 행정사무 감사가 있다면, 몇 달 공부를 하고, 의회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고, 의원에는 어떤 의원이 들어가 있는데, 이들의 성향이 어떻고, 그 다음에 올해 주요하게 다뤄질 의안들이 이런 것이다, 라는 서로 간의 기본 교육이 있고, 그리고 행정사무감사 하면 구체적인 문건을 가지고 같이 공부도 하고, 이럴 때 개인의 서포터가 아니라 민우회라는 조직 속에 있는 서포터니까 얼마나 활동력이 클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같이 공부를 한다고요. 그래서 예를 들어 의원이 A라는 안건을 다루는데, 내가 볼 때, A라는 것으로 처리를 해야 할지, B라는 것으로 처리해야 할지, 그러면 A쪽도 검토해 보는 사람, B를 검토하는 사람, 나는 C를 검토해보겠다 하면, 얼마나 힘을 받겠어요. 이 과정 속에서 몇 사람이 일을 나눠서 교육이 되잖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은 그거예요. 민우회 내에서 11명이 예산분석 팀과 의정감시, 의정연구모임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눴어요. 그런데 의원이 자꾸 마찰을 빚어요.......원인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답답하고.......”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애초에 그런 관계 정립이 잘못 된 것이 아닐까요?

“예, 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에 지역당, 일본의 가나가와네트워크 같은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는데, 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현재로는 예를 들어 사회단체보조금 건으로 해도 민우회가 풀려고 하는 방향성이 있다고요. 그런데 의원과 많이 달라요. 매번 달랐어요. 그리고 정확한 사실은 저희가 100% 서포터도 못하고, 또 의원도 우리의 의사를 100% 대변도 못하고, 이런 관계인데, 그래서 소원한 것이 당연하죠. 그래서 어떻게 의원과 우리와 협조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제가 의원한테 말 한 것은 우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라, 이를 테면, 계도지 예산을 깎으려고 하다면, 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했을 때는 통반장들이 워낙 반발하니까 감당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희 같은 시민단체가 예산 분석을 해서 시민단체 이름으로 항의서를 냈죠. 그러면 의원이 가서 이 항의서를 명분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거죠. 그렇게 하면 반이라도 깎을 수 있거든요. 이런 협조관계를 적절하게 잘 만들어가야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우리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또 활용을 하는 형식으로써 조금 우리와 시각을 맞출 수 있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을 잘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것을 서로 협조하며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늘 느끼는 거지만, 조직과 후보와의 관계가 명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매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양자가 섭섭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서로의 기대치가 다르거나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헛바퀴는 개별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두 지역이 겪고 있는 진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가나가와네트워크>의 모델이 우리에게 던지는 신선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나가와네트워크>를 보면서 ‘빙고!’라고 외칠 수만은 없다. 그대로 적용시키기엔 환경적 차이가 매우 크다. 후보전술에서 어떤 원칙을 가질 것인가, 소통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한국식 협동작업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등등 이런 고민들이 선거 전부터, 오랜 기간 동안 논의되고 고민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김 대표는 한 가지를 덧붙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에게 의원만큼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럴 때 개인적인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런 것은 있는 것 같아요. 무소속이 갖는 한계. 지난 회기 때 당선된 정보연 의원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리고 지역을 잘 몰랐다는 한계. 그리고 시민단체가 문제제기 하는 방식과 의원들이 일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서 아직 좋은 결합 모델을 못 만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음 선거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까 말씀대로 제가 기대했던 것이 그런 것이었는데, 현재는 그것이 무너졌다고 봐야죠. 정말 무너진 건가?(웃음) 지금으로는 현재 지역자치위원회의 활동들이 굉장히 구청 행정 감시 쪽으로 밀착하게 감시 비판하면서 다루기 때문에 그 자체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아직 없는 형편이죠.......도봉 같은 경우는 도봉포럼도 만들고 있고요, 저희는 핵심적인 단체 중심으로, 도봉시민회, 민우회, 한살림 등 단체들 대표, 의원, 몇 명해서 그 때 그 때 이렇게 서로 현안을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자고 제안했었어요. 그 안을 내기 전에 저희가 의정 평가회를 못 했거든요. 저희 단체 내에서는 의원을 배출했는데,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정리하고, 이 기회로 잘 했던 활동들을 비교하고 정리하게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지역자치위원회가 도와야겠다, 의정 보고회를 하자고 결정을 딱 했어요. 그래서 방학3동과 중랑천사람들도 같이 하려고 했는데, 이게 법적으로 서로 다른 동이 모여서 보고회를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평가회로 가자, 그래서 졸지에 평가회가 됐어요.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던 평가회가 되면서 뒤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까 말했듯이 의원은 의원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좋은 접점을 잘 찾지 못한 것, 이런 문제 지점이 있어서 서포터 그룹을 우리 민우회는 있으니까 민우회가 제안을 하는 식으로 했어요. 그래서 각 단체에서 2-3명씩 만들어서 의정도우미라는 서포터 그룹을 짜자, 이렇게 됐어요. 제안을 해놨는데, 다른 단체에서 아무 답이 없는 상태에요. 의원들도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 같고.......그런 상태에서 저는 저대로, 아이구, 이거 어떻게 하나, 이러고 있었어요. 의원 입장에서도 우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어쨌든 단체 대표나 의원 몇 명 주요한 현안을 의논할 수 있는 논의단위가 필요할 것 같고, 일단 몇 개 단체의 대표들과 몇 몇 의원들을 중심으로 꾸려질 것 같아요.”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역운동단체의 정치 참여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따지고 보면 양자가 애초부터 관계의 틀을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한계에 부딪친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다시 주제를 바꿔,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을 했다. 왜 지역에서 여성들의 참여가 중요한가?

“그 얘기는 이론적으로 다 나와 있지 않나요?(웃음) 저는 그런 이론보다, 개인 경험을 말한다면, 우선 우수한 사람이 여자가 많아요. 남자들은 일단, 남편한테도 말해보면, 지역에 관심이 없어요. 지역을 잘 몰라요. 뭐 거대 담론으로 떠드는지 모르지만, 각론으로 들어오면 사고 체계가 틀려서 그런지 잘 몰라요. 한국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학문을 해도, 우리는 오버럴(overall) 하고 묵직하게 주제를 정하고 논문을 쓰는데, 여성 같은 경우는 아주 좁은 영역을 아주 깊숙이 연구를 하고, 이게 하나 하나가 깊이 있는 연구가 되는 거 같거든요. 그런데 남자는 오버럴하게 다 아는 것 같으면서 다 모르는 것. 남자들 사고 체계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잘 몰라요. 그런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여자들이.......왜 그런 건가? 저는 치밀하게 더 잘 알고, 똑똑하고, 그리고 저는 민우회에 있으면서 너무너무 좋은 것이, 일을 하는 방식이 민우회에서 여성조직이 그렇고, 민우회가 그렇고, 동북이 특히 그런데, 누구 하나 특출한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럿이 모여서 같이 하면서 문제해결을 잘 푸는데, 그러니까 어떤 것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떤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 저 개인은 별 생각이 없어요. 우리 모여서 이거 어떻게 할까, 하면 막 의견들이 나와요. 그리고 집을 지어요. 그리고 이것을 해 보면 결과가 좋아요. 이런 식의 토론식, 다수가 참여하는, 이런 운동방식이 여성이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런데 여자니까 가능한 것이 약간의 열등감, 그래서 겸손할 수 있는 것, 특히 저희는 그런 것 같아요. 저희 남편이 노동운동을 했으면서도 잘 모르더라고요.”

확실히 남성과 여성의 사고체계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여성이 더 섬세하고 우수하다는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김 대표의 판단이다.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이 사회에 참여할 때, 우리 사회를 더 윤택해 질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이 일이 재미있냐고 물었다. 힘은 들지만 소중한 경험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민우회 대표로서 기본적으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현안을 판단해야 할 시점에서 그 역할을 대표의 자격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버겁다고 말한다. 그러나 13년의 민우회 역사가 개인의 허물을 감싸 안을 정도로 컸고, 서로 긍정하고 협력하는 조직의 특성이 그런 부담을 덜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보람을 느끼기도 한단다. 아무튼 동북여성민우회의 장점이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자치를 고민하는 모든 지역에 귀감이 되는 좋은 활동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북여성민우회 파이팅!!

※ 동북여성민우회 홈페이지는 http://dongbuk.womenlink.or.kr/입니다.
(2004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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