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금자(함께 하는 보육을 위한 학부모모임 대표 이은희(함께 하는 보육을 위한 학부모모임 총무)
인구 10만 정도의 여주군에는 작년 3월 전까지 2개의 군립어린이집이 있었다. 10만이라는 적지 않은 인구에 군립어린이집이 2개 밖에 없다는 것은 좀 가혹한 것이다. 읍면 당 최소 하나씩을 고려한다면 10개가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리라.(현재 여주읍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읍면이 있음) 이렇게 열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주군은 그나마 두 군데의 군립어린이집 중 하나를 폐쇄하는 과감한(?)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군립 여흥어린이집이 작년 3월에 폐쇄된 것이다. ‘달랑 하나’만이 여주군의 공보육을 버티고 있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주군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여주 보건소가 자리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보건소는 여주군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부서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여주군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므로 예산을 집중 투자한다고 해서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몇 해 전, 여주군은 보건소 주차장이 비좁아 확장 공사를 계획했다. 여기까지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주차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보건소 바로 옆에 있던 군립 여흥어린이집을 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계획은 여흥어린이집을 위탁 운영하고 있던 시설장은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위탁하는 학부모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당연히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한 학부모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늦었지만 대책위를 구성, 여러 통로로 폐원되는 것만은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좀체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손 써볼 틈도 없이 여흥어린이집은 작년 3월 폐원되고 만다. 이리하여 여주군에는 군립어린이집이 ‘달랑 하나’라는 자랑스러운 영광(?)을 안은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보육사무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굉장히 슬픈 일이다. 단순히 보건소 사무에 보육사무가 밀렸다고 평가할 그런 사안이 전혀 아닌 것이다. 보육행정을 바라보는 지방자치단체의 태도나 수준이 후진적이라는 사실도 그렇지만, 알고도 묵인한 시설장의 태도를 보면서 분노보다는 차라리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학부모들의 대책위 활동은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몇 몇 주부들은 여흥어린이집 폐원 이후에도 소소하게 모임을 꾸려왔다. “함께 하는 보육을 위한 학부모모임”이라는 작은 모임이 그것이다. 10여명의 아줌마들이 모여 오순도순 보육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보육조례를 주민발의를 통해 제정해보자고 결정한 시기가 올 초였다. 금명간 청구서를 제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 아줌마들은 벌써 수임인(주민발의 서명 시,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130여명을 받은 상태다. 오늘은 이 모임의 대표와 총무로 활동하는 김금자 씨와 이은희 씨를 만나봤다.
먼저 여흥어린이집 폐쇄 이후 활동에 대해 물었다.
“2003년 3월에 여흥어린이집이 폐쇄가 됐죠. 이 문제에 참여했던 몇 몇 분들이 군수한테 질의서를 보낸다거나 이런 정도로만 활동ㅇ하다가, 저희 모임이 뜻하지 않게 만들어졌어요. 보육조례를 개정하자고 모였던 것은 아니고, 사실은 그 전에 급식조례제정운동을 한 경험이 있는데, 그러고 나서 여흥어린이집이 없어졌는데, 그 이후에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조례를 만들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 라는 제안을 받았죠. 어떤 단체에게 받은 것은 아니고 아시는 분이 전화해서 예전부터 알고 있던 몇 명을 불러 놓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까 좋은 것 같고, 그리고 그 바로 전에 제가 아이를 낳고 같이 있던 아주머니가 아이를 낳고 해서 여흥어린이집이 끝난 다음에 못 움직이는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돌도 지나서 움직여보자 해서 사람들을 모았죠. 그래서 우리가 이런 저런 활동을 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했죠. 그 때가 작년 말 정도였어요. 그래서 연락 닿는 사람들에게 연락 하고, 또 아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을 모으고 해서 몇 명이 모인 거죠. 경기여성연대의 이선화 국장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죠. 우리가 그런 것을 하려고 한다 했더니 설명을 해주셨죠. 다른 지역에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갖고 있고, 여기도 해봐라, 여흥어린이집이 없어진 것은 여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가 됐었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졌고, 저희가 그 힘 받고 출발을 했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여흥어린이집 대책위 활동을 제대로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여흥어린이집이 폐쇄되자 적잖게 당황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몇 몇 주부들이 제대로 타보지도 못하고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함께 하는 보육을 위한 학부모모임”음 만들게 됐고, 올 초에 주민발의를 통해 보육조례를 제정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양한 활동의 방식 중, 왜 하필 주민발의를 선택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여흥어린이집 대책위가 싸우면서 결과적으로 진 거잖아요. 그런 싸움의 과정에 여주군의 입장이라는 것이 보육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하다는 것을 느꼈죠. 주민들의 의견이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거든요. 정말로 무식한 행동을 한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얘기했던 것은, 보건소를 넓혀야 하는데, 그럼 어린이집을 없애지 뭐, 또 대책위가 반대하니까, 우리가 하겠다는데 웬 고집이야, 하는 거예요. 주민들의 의견이 왜 정당한지, 뭘 필요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주시하지 않았던 거죠. 공무원들은 그렇게 얘기해요. 여흥어린이집 없애면서 그 예산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 예산을 어떻게 하냐면, 3세 이상 어린이한테 한 달에 2만4천 원씩 지원을 했어요. 공무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지원을 하는데, 그럼 끝이지.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죠. 사교육이 문제가 있으면 공교육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럼 내가 사교육비를 일부를 지원해줄게, 하는 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죠. 공보육의 필요성은 사보육과는 다르잖아요. 지원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리고 그 지원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아이들 엄마들이 2만4천 원 덜 내게 되었지만 시설장들한테는 일률적으로 그 돈이 다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주군은 돈을 좀 준다는 것만으로 모든 명분을 여기에 맞추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과정에서 의원 몇 명이 필요에 의해서 보육조례를 만드는 것과 주민들이 원해서 필요한 내용으로 보육조례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봐요. 주민의 힘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주민발의를 시작하려 하는 거죠.”
예산의 분배는 곧 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반영하기도 한다. 여주군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 보육예산을 손쉽게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만4천 원씩 일괄 지원. 그 외 보육정책을 고민한 흔적은 없다. 보육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대목이다. 이런 행정력에 창의성과 상상력을 가지라는 주문은 ‘쇠귀에 경 읽기’일까? 아무튼 주부들의 불신은 컸던 것 같고, 스스로 조례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도 어려웠을 것 같았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요,(웃음) 저희가 무식하게 달라붙었죠. 저희 같은 경우, 모이는 아줌마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있는 분들인데, 그러다보니까 무조건 다른 곳 보육조례 자료를 얻어서 그냥 문구 하나 하나 보면서 공부를 했었어요. 어떤 한 사람이 맡아서 이 장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이건 어떠냐, 이건 왜 그렇게 해야 되냐, 이런 식으로 우리가 답을 알고 있지 못하지만 서로 답을 찾아가고 공부를 했죠. 법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런 식으로 공부를 했고요, 다음에는 그냥 무식하게 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너무 못 한다 라는 얘기도 있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우리 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분들조차도, 차라리 아는 의원 소개시켜 줄테니까 그렇게 해라, 물론 나쁜 뜻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요. 그냥 꾸준히 모였어요. 밤에 서로 체크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쉬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서로 사람을 모을 때 각 단체들에게 공문을 띄었었어요. 관 쪽에 있는 단체들에게도 형식적이지만 띄우고, 진보 쪽 단체들도 띄어서 우리가 이런 거 하니까 같이 하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다 무시를 했죠. 관변 쪽 사람들은 여흥어린이집과 관련된 것은 너무 싫다, 그 쪽과 꼭 연관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대책위에 활동했던 사람들이 있으니까 연관이 되어 있다고 봐서 자기들은 너무 싫다, 이런 식의 대답이었죠. 진보 쪽 사람들은 도움을 주겠다는 정도의 답변을 받았고, 민주노동당 같은 경우는 당 사업으로 가져가서 여성분과 사업으로 하자고도 했었어요. 그 쪽은 힘을 실어주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니까, 아줌마들끼리만 하는 것보다 당원들도 있으니까 힘을 받겠죠. 그렇게 고민하다가 저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처음에 모임을 갖고 그 다음에 설명회를 가지면서 아줌마들 몇 분이서 계셨는데, 그 분들은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게 단지 아이들을 잘 키워보자는 순수한 의미에서 참여를 하셨고, 약간은 정치적인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어요. 어쩌면 전체적인 주민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고, 꼭 단체를 끼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살림을 하고 있는 아줌마들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실험해보고 싶어서 그럼 모임을 갖자, 그렇게 해서 진행한 거죠.”
활동 경험이 전무한 아줌마들의 순탄치 않은 과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발성과 순수성 그리고 성실성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동력이었다. ‘왜 어려운 길을 가려느냐?’라는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믿으며 묵묵히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지금은 많은 단체에서 참여를 희망하고 있고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 7월에 주민결의대회 때 공개적인 자리에서 군의원들도 도와주겠다고 했고, 여성단체들도 같이 하자는 말도 했었고, 시민사회운동단체들도 함께 하기로 했기 때문에 큰 틀에서 이 운동을 해보자, 지금까지는 ”함께 하는 보육을 위한 학부모모임“으로 이끌어 왔지만, 이걸 ‘보육조례개정을 위한 운동본부’와 같은 형식으로 다시 한번 거듭날 필요가 있겠다, 사람들도 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주부터 다시 만나볼 생각이에요. 이런 흐름이라면 8월 말에는 아마 운동본부를 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9월 초까지는 청구서를 제출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 받아 놓은 수임인은 130명. 청구서를 제출하고 서명을 시작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보인다. 예의주시하고 있던 여러 단체들도 참여의사의 밝힌 이상 이전보다 탄력 있는 활동이 기대된다. 이미 조례안도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조례안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저희 조례가 제일 좋은데요.(웃음) 왜냐하면 다 좋은 것만 짬뽕해서.......(웃음) 저희가 조례를 만들기 위해서 워크숍을 했었어요. 아이들이랑 남편이라 다 같이 가서 남편들은 다른 교실에서 아이들 보고,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고 그랬거든요. 저희 같은 경우는 보육위원회 강화하는 것과 방과후 교실, 그리고 다른 지역과 다른 내용이 하나 있다면 폐원에 대한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국공립시설을 최소한 읍면 단위에 하나씩 설치하는 것을 넣었는데, 만약에 이것이 군에서 여타의 사정에 의해서 폐쇄할 경우에, 공청회를 몇 차례 해야 하고 어떤 절차를 가져야 하고 등등을 넣었어요. 폐쇄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웃음)”
과천 보육조례를 비롯해 최근 보육조례 제․개정운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각 단체들의 조례안을 참고해서 가장 좋은 내용만 취합했다는 여주 보육조례안. 내용만으로 여주가 가장 훌륭할 것 같았다. 특히 읍면 별로 군립어린이집을 설치한다는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여주 같은 경우, 면 중에 북내면이 있고 강천면이 있고 산북면이 있는데, 강천면에서 여주읍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기가 쉬운 것이 아니거든요. 물론 요즘에는 어린이 셔틀버스가 운영이 되고 있긴 하지만, 시골 같은 경우에 농사짓는 곳에 직접 들어가 보면 집이 떨어져 있고 그래서 그 쪽까지는 안 가요. 그래서 사실은 읍면별로 있어야 하고 시골 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꽤 있어요. 왜냐하면 결손가정, 한 부모 가정이라고도 하는데, 부모가 같이 도외지로 가서 아이를 낳고 살다가 경제적인 문제나 무슨 문제로 헤어진다거나 해서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노인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분들 같은 경우는 정말 어린이집이 꼭 필요한데, 돈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돈 때문에 밀려 밀려 시골까지 온 아이들을 또 노인들이 농사지어야 하니까 일하시는데 방해가 되고, 그렇다고 해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늘었다고 하지만 집집마다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울 수 있는 집도 없고. 그래서 아이들이 노인분들 따라다니면서 화투를 치면서 배우고 이런 일도 있다고 해요........아무튼 예산에 대한 고민은 있어요. 그러나 저희가 말하는 예산에 대한 부분도 뭐 하나 짓고, 뭐 시설 투자 하고 그런 예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주군에 얼마 쓸 수 있는 예산이 있다면 그 부분을 우리가 운영할 수 있는 건 이런 거다, 이러게 내놓을 수 있는 예산을 말하는 거예요.”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와 달리 농촌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르신들이 책임지고 있는 보육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농촌 지역이야말로 정말로 국공립시설이 필요한 지역이다. 문제는 주민발의가 성공하더라도 이런 파격적인 내용을 여주군과 의회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지금까지는 공무원들이 무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시하듯이. 군의원들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몇 가지 묘책도 세우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그 지역 군의원과의 간담회를 11개 지역에서 할 계획이다. 기회가 닿으면 공무원과의 간담회도 준비할 계획이란다. 아무튼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이해를 넓혀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다. 일단 주민들에게는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거부감을 표시하는 주민들은 거의 없고 오히려 맞장구를 쳐주며 아는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는 주민들도 많다.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주부들이 보람을 느끼는 대목도 이런 부분이다.
“저 같은 경우는 여흥어린이집 문제까지만 하더라도 보육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또 제가 안 썼다는 것은 그만큼 들리지도 않았다는 거죠. 교육에 대한 것은 많이 들었지만, 보육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가 의식 수준이 떨어지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막상 제가 모임을 갖게 되고 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의 보육문제가 중요성을 함께 보면서, 아, 내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막연하게나마 더불어 사는 아이들을 키우자거나,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아이로 키우자거나 하는 말은 했지만, 그게 보육이라는 말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지역주민과 국가가 다 함께 보육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 방향 설정을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어요. 지금 모임을 갖고 있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다 모아서 10명이라고 하지만, 일반 아줌마들이 회원 가입도 하고, 밥 하고 아이 키우는 정도로 했던 아줌마들이 그것을 한다고 오셔서 함께 하시면서 이런 것을 주민의 힘으로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서 좋았어요. 모임은 10명이지만, 저희가 행사를 할 때는 그 아줌마들이 동네 아줌마들을 데리고 와서, 이것은 설문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하고 있다고 그러면 동네 아줌마들이 와서 해주시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것이 좋더라고요. 어쨌거나 아줌마, 엄마들도 같이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다들 목말라 했던 부분인데, 어떻게 풀지 몰랐던 것뿐이더라고요. 같이 고민했던 것은 좋았어요. 또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적 성향이나 이런 것을 떠나서도 올바른 일, 옳은 일을 하는 데는 다 같이 모여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어요.”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 중 부녀회장이 몇 분 있다고 한다. 부녀회장 왈(曰), “걱정하지만, 나 혼자 1층부터 10층까지 표쓸이를 할게”라며 웃으신단다. 보육문제에 관한 한, 평범한 주부들에서 활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는 듯싶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동네는 조금씩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부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 모임의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는 아줌마들이 있는데, 그러다보니까, 낮에는 출근을 해서 저녁까지 모임을 가져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아이를 데리고 모임을 가고 사람 만나고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실 대화라고 하는 것이 둘이 만나서, 혹은 셋이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옆에서 아이들이 엄마 뭐 해주세요, 이거 해주세요, 울고 그럴 때, 아이가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이러니까 힘들더라고요.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한다는 게 다들 그것에 대해 힘들어했어요.......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남편이 도왔죠. 아이를 맡겨라, 이랬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남편들의 일정과 부딪치는 거예요. 어제 같은 경우도 회의가 있는 날이었는데, 아침에까지는 오늘은 내가 아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알았다고 했는데, 낮에 갑자기 남편에게 일이 생긴 거예요.......그런 경우가 힘들죠. 편하게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되고 하는 상황인데, 행사 한번 해야 하는 상황에도 그게 제일 문제죠.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번 행사에 아이를 어디에 맡기고 행사를 하지? 아줌마들이 아이들을 맡길 공간이 있을까? 공간 하나를 빌려서 아파트에 아이들을 맡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좀 어려운 상황이죠.”
내가 아는 한 선배가 그런 애길 한 적이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날은 비가 올 때였어. 내 짐 어깨에 메고, 아이 들쳐 메고, 우산 들고.......정말 힘들었지.” 보통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주부들의 모습일지 모른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여성에겐 가혹한 일이다. 그렇게 여주의 아줌마들은 한 보 한 보 전진하고 있다. 소박한 아줌마들의 몸부림이 여주에서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라 노력의 산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 운동본부를 꾸리고, 청구서를 제출하고, 서명을 받아야 하고, 군의원과 공무원을 만나는 작업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앞으로가 더 어려운 여정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열정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아이들을 사랑하는 여주 주부들의 눈부신 성공을 기대해본다. 끝으로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느낀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그 대답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없어질 뻔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큰 성과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흥어린이집에 대한 부분도 끝난 다음에 한 번씩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있었긴 하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끝난 문제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육조례라는 것이 등장하고 그러면서 이것이 끝난 문제가 아니다, 관에서 한 가지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없다, 주민들의 힘으로 바꿀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성과라고 한다면 성과라고 볼 수 있죠.......지금 모임을 갖고 있는 10명 정도가, 열심히 뛰면 저희 생각에는 무모할 수 있지만, 서명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 거예요. 문제는 그 이후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보육조례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감시 체계도 만들어야 하고 보유위원회에도 들어가야 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아줌마 10명으로는 힘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단체들이 같이 모여서 하게 되면 그 이후 부분에 대해서도 가능하겠다고 싶어서 운동본부가 만들어지면 지속성을 유지할 생각이에요.......저희는 처음에 여성모임이라고 국한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모임이 되더라고요.......그런 것은 재미있었어요. 아줌마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쉬운 단어로 얘기를 풀어가면서 그렇게 모임을 가졌는데, 다른 모임에 가면 어려운 말 써가며, 어렵게 얘기해가며, 자기 지식을 과시해가며, 이렇게 많이 회의들 하는데, 저희들 같은 경우는 편하게, 모르는 것 물어가며, 모르는 것 같이 공부하면서 모임을 가졌어요.......남성들은 지역 유지들도 만나고, 누구도 만나고, 공무원 누구는 내가 알고 내가 어느 단체 짱을 알고, 소개 해줄까,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사회적 관계에 남성들은 더 민감한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굴 기분 안 상하게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싫은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보유조례를 제대로 만들어서 제대로 운영하는 것 밖에 안 보는 것 같더라고요.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롭죠. 그래서 편하죠. 그래서 저희는 여성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웃으면서 말을 해요. 어쨌든 이 운동이 공식화되고, 운동본부를 꾸리려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니까, 그런 느낌들을 많이 들어요. 앞으로 잘 되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