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화진 사무국장/ 문종석 대표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고들 한다. 지난 96년, 한 세기 동안 최대의 산불로 기록된 강원도 고성 산불. 8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새로운 생명의 잉태로 산불의 자취도, 산불의 기억도 서서히 잊혀질 만큼, 세월은 그 날의 상처를 아련한 기억 속으로 덮어버렸다.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그뿐인가? 인간의 포크레인도 변화를 이끈다. 산허리를 잘라 도로를 만들고, 콘크리트를 우뚝 세우고, 하천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5년이면 강산 하나가 없어진다. 자연적인 변화든, 인위적인 변하든 그렇게 강산은 변해간다.
10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친다. “북한 김정일이 원자폭탄과 미사일을 내세워 어느 순간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날려버린다며, 한 손에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행정수도 이전 반대’라는 피켓과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존경하는 부시 대통령과 미합중국의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길 기도하자”며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의 마음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 날의 어르신들은 냉전시대의 사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뫼비우스 띠를 돌고 있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10년이면 모두 변하는데 왜 인간의 사고는 변하지 않을까?
동대문구 이문동에는 ‘푸른시민연대’라는 단체가 있다. 지난 94년, ‘진보정치연합’이라는 정치조직 내에서 ‘어머니 학교’를 처음 시작했으니, 올해가 벌써 만 10년이 지나는 시점이다. 10년 간 묵묵히 지역운동을 지켜온 것이다. 문종석 대표, 서화진 사무국장 모두 ‘푸른시민연대’의 태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동고동락을 해왔던 푸른시민연대의 파수꾼이다. 강산이 변했다는 10년. 그러나 사람의 변화는 더딘 10년. 그들을 만나 10년의 지역운동에 대해 들어보자.
먼저 ‘푸른시민연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었다.
“그 전에는 진보정치연합이라는 단체로 있었어요. 94년도에 지역 대중 사업의 일환으로 ‘어머니 학교’사업을 했었는데, 그 때 당시에는 ‘어머니 학교’ 사업을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특화해서 ‘주민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죠. 그렇게 사업을 진행하다가 97년도에 서로 분리가 됐어요. 기존의 정당운동 했던 분들과 지역이나 시민운동을 방향으로 잡았던 분들이 분리가 됐는데 그 때부터 ‘푸른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됐죠.......정당운동을 선택했던 분들은 민주노동당으로 바뀌어간 거고, 저희는 ‘푸른시민연대’로 활동해왔어요. 94년도부터 ‘어머니 학교’를 쭉 운영했고, 98년도부터 이주노동자 사업을, 그리고 2000년도에 들어와서 ‘작은권리찾기운동’을 시작했어요, 2000년에 구청장의 판공비 공개운동을 시작하면서 참여연대가 서울 지역의 구청장을 대상으로, 저희가 동대문구청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였는데, 그게 바탕이 돼 지금의 ‘작은권리찾기운동’이란 사업의 형태로 남아 있게 된 거죠.”
‘진보정치연합’이라는 정치조직 내에서 ‘어머니 학교’라는 지역사업을 진행했던 팀들이 97년 조직이 분리되면서 그 때부터 ‘푸른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 서화진 국장의 요지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얘기해서, ‘푸른시민연대’만을 놓고 본다면 만 7년을 넘긴 셈이고, 사업의 성격을 놓고 봤을 때는 10년을 넘긴 셈이다. 서화진 국장이나 문종석 대표의 경우가 ‘진보정치연합’ 시절부터 ‘어머니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을 토대로 한 시민운동을 해왔다고 보면, ‘푸른시민연대’의 역사를 10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서화진 국장에게 분리될 당시의 배경에 대해 다시 물었다.
“저는 그 때 제일 막내였어요. 그러니까 정당운동이나 이런 것에 동의하지만 오히려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지역주민을 직접적으로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일이 필요하다, 그런 일이 사회 전체운동이나 시민사회가 성장해나가는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어머니 학교’사업이 영향을 미쳤죠. ‘어머니 학교’에 나오시는 분들은 비문해자 주민들이죠. 사실은 교육 혜택을 가장 받지 못하신 분들이고 교육의 측면에서 봤을 때 소외받는 분들이죠. 그리고 애초에 지역운동을 시작했을 때 지역주민 중에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분들이 여성이라고 생각했고, 그 중에서도 소외 받고 있는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까 ‘어머니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지역에 여러 가지 활동이나 사업을 만들어내려고 했었고 지금까지 쭉 활동을 하고 있죠.”
‘어머니 학교’가 ‘푸른시민연대’의 대표 활동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머니 학교’를 거쳐 가신 분들은 1년에 60에서 70명 선. 지난 10년 동안 총수를 합치면 800명가량 된다.
“교육 과정이 있긴 있어요. 어머니들한테도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니까. 그렇긴 한데, 지속적이라고 보시면 되요. 교육과정은 초급, 중급, 고급 등으로 나눠요. 어머니들은 고급과정이 끝나도 학생들처럼 단계가 끝나면 완전히 습득한다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오시기도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탈락하시는 분들도 계시죠.......수업은 한글, 산수, 영어기초, 이렇게 진행을 하고요, 그 외에 주목할 것은 저희 어머니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기관에 자원봉사를 나가세요. 최근에 만들어진 활동들인데, 애초에 저희들이 목표로 했던 것도 나중에 어머니들이 여기서 한글을 배우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또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 사회적 약자 분들과 관련해서도 어머니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선거 있을 당시에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훌륭하게 일을 진행하는가, 이런 것들도 토론하기도 하죠.”
민간단체나 연구기관에서는 성인 인구의 약 25% 정도가 비문해자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한 자리 수치라고 발표하기도 하지만, 그 통계가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설문조사 자체가 매우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어머니 학교’를 꾸준히 찾는 주민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교육으로부터 소외받아왔던, 또는 여전히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운동의 경험이라고 서화진 국장은 말한다.
“‘어머니 학교’를 처음에 시작할 단계에는 포부가 상당히 컸어요. 그 때에는 한글교육 자체에 목표를 두었다기보다 주민조직화라는 부분, 실제로 지역에서 요즘 많이 하고 있는 생협이나 의정감시단처럼 지역 주민들 중에 활동이 활발한 주부들,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계하는 것까지가 목표였어요. 그런데 일단 글을 잘 모르시고, 그 단계까지 나아가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인식의 차원에서도 정치의식이 높지 않고, 실제로 어떤 기능적인 차원에서도 그것을 수행하는 게 어려운 거죠. 그게 사실은 아쉽고 어렵고, 왜냐하면 처음 시작할 때는 그 정도까지 목표를 세웠으니까. 그런 안타까움이 있죠.......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사실은 50년, 60년을 나와 가족만 알고 사셨거든요. 더군다나 당당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 위축돼서 살아오셨거든요. 가족들한테도 한글을 모른다는 것을 숨기고 오신 분들도 많이 있고, 그래서 그런 삶 자체가 남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거죠. 그래서 그것 자체가 한계라는 생각을 들고 그리고 일정정도 포기한 부분도 있고, 오히려 이 분들과는 지역에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본다면 아주 작은 부분, 이를테면 어머니 학교 내에서 어머니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몇 가지 시도는 앞으로도 더 해봐야죠”
10년간 키워온 ‘어머니 학교’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움도 있다고 서화진 국장은 솔직히 말한다. 애초의 목표한 바가 그리 쉽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어머니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은 매우 큰 소득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들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조직화라는 목표는 공허할 뿐이다. 그래서 조금씩 변하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푸른시민연대’가 희망하는 목표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공동체 만들기다. 그것을 위한 전략이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다.
“전략이라기보다는 일단 저희들 생각은 그런 거거든요. 어쨌든 어머니들도 지역주민이고 소외 받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 그 외에도 지역복지 차원에서 주민 복지나 삶의 질의 문제 등을 통해 우리가 개입할 수 있고 나눌 수 있고,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까지는 많이 존재하고 있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다른 단체에서는 방과후 교실 등을 하고 있잖아요. 그게 조금 더 발전을 하면 생협이나 또 다른 활동으로 진행될 수도 있죠, 아니면 최근에 각 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원봉사센터가 있는데, 잘 되는 곳에는 민간위탁을 받아서 하기도 해요, 그런 것처럼 지역에서 참여라고 하는 것이 일상화될 수 있고, 그렇게 해야지 만이 네트워크도 상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야지 권력관계도 작용할 수 있고요. 물론 그 분야에서 특별하게 기울이는 노력들도 있어야 되고 지속적으로 관심 갖고 해야 되겠지요. 저희가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방향을 잡고 있고요,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들이 확장되는 것도 필요하죠. 이주노동자 문제 같은 경우도 사실 그 분들도 어쨌든 큰 틀에서 보면 공동체 일원이 되는 거고요. 서로 나누고 지지하고 지원해주고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는 것 같아요.”
지역주민과 만날 수 있는 과제들을 찾아내고 그 과제들을 실천하면서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 그리하여 일상화된 참여와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 ‘푸른시민연대’가 바라보는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의 그림이기도 하고 전략이기도 하다. ‘어머니 학교’에 나오시는 주민들과 이주노동자센터를 찾는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상근 활동가의 입장에서 불협화음을 초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고 서화진 국장은 말한다.
‘푸른시민연대’가 다른 지역운동단체와 비교해서 특이한 점은 젊은 자원활동가들이 넘친다는 거다. 매월 평균 40명이 넘는 자원활동가가 움직인다. 상근자 3명이서 이들과 호흡하는 것도 큰 숙제처럼 보였다.
“지역이 옆에 외국어대, 경희대, 조금 더 가면 시립대 등이 있어서 학생들은 끊이지 않고 오고 있죠. 그리고 요즘엔 각 대학마다 사회봉사를 학점으로 인정해주니까 한양대, 서울여대 등에서도 많이 오죠.......이들은 어머니 교실의 교사라든지, 이주노동자, 작은권리찾기 등 각 팀에 다 분배가 됩니다. 학생들이 나눠지고 자기 관심사나 푸른의 요구에 따라서 자기 역할을 해요........요즘 학생들은 예전처럼 이런 운동에 생각을 가지고 투신하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약간은 그런 관심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자기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지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가, 활동하면서 그런 것들이 넓어지고 자기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조금 한계는 있지만 학생들도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요. 저희가 학생들의 의식에 도움을 주고자 세미나도 하고 그래요.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자기 삶에서 이런 운동이나 활동들이 계속해서 함께 맞춰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죠.”
젊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푸른시민연대’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매월 40여 명의 학생들은 각각 ‘어머니 학교’, ‘이주노동자센터’, ‘작은권리찾기운동’ 등에 배치되어 자원봉사 이상의 활동력을 펼치고 있다. 매우 부러운 대목이다.
서화진 국장은 94년부터 이 곳에 뿌리박고 있다. ‘어머니 학교’와 역사를 같이 한다. 10년이면 지겨울 법도 한데, 어떠냐고 물었더니 “항상 부족한 마음에.(웃음) 저만큼 가야 하는데 이만큼밖에 못 왔다는 생각에.......”라고 겸손하게 답한다. 그래서 달리 물어봤다.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활동 자체는 사실.......어떻게 보면 변화가 거의 없죠. 이슈가 계속해서 터진다거나 이슈를 잡아서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는 활동인 것 같고, 그런 게 있는 반면에, 오랫동안 하다보면 작은 어떤 보람들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우리 같은 단체가 없다면 주민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존재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서화진 국장에서 연달아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활동, 단체의 과제, 그리고 얼마 전 토론회에서 열띤 논쟁이 되었던 상근자 중심의 활동과 대변형 중심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 생각은 자원봉사센터 활동 같은 것, 어머니 학교를 중심으로 해서 확장될 수 있는 방법, 물론 한계는 있지만, 생협 같은 것, 지금 사실은 이 근처에 ‘아름다운 가게’가 생겨버렸어요. 저희가 애초에 그것을 목표로 했지만 못했거든요. 지금은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작은 과제이기도 하고요. 그 다음에 이주노동자 분들과 지역에서 교류할 수 있는 방법, 작은권리찾기운동 같은 경우도 사실 무궁무진하잖아요. 문제는 인력과 재정, 이 부분이 항상 따라다니니까 그 부분을 얼마나 해소하느냐에 따라서 사업의 내용도 바뀔 수 있겠죠.......사실은 작은권리찾기 같은 경우도 안정적으로 상근 활동가가 있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자원활동가가 결합이 되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부분이 미약하죠. 그 부분이 시급한 과제이죠.......그런데 그게 그렇잖아요. 적정 비율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자원활동가는 40명 정도 충분한 인원인데, 이 인원들을 가지고 더 많은 깊이 있는 활동들을 끌어나가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상근활동가가 필요하거든요.......대변형 운동의 경우, 그런 사업들에 직접적으로 주민이 참여하는 것은 지금은 어렵잖아요.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물꼬를 틔워주는 역할들을 지역의 단체들이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학교든, 아니며 방과후 학교든 지역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매개물이 항상 열려 있다는 생각은 들거든요. 근접하게는 그렇게 해서 홍보가 되고 나눠지는 거겠죠 아마 그런 얘기도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지역의 여론, 이 지역에도 ‘동대문신문’이라고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안 하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활성화되는,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져야 만이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대변형 운동이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서화진 국장의 이미지가 그런지, ‘푸른시민연대’는 조용하고 잔잔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0년 해보니 별 것 아니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서두른다는 기색을 엿볼 수는 없었다. 운동의 경험이 가져온 풍토가 아닌가 싶다. ‘긴 호흡의 운동’이라는 말만큼 모호한 표현도 없지만, 정말로 그들은 ‘긴 호흡’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 풀뿌리운동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변화의 응축된 에너지가 가져올 사회적 위력을 믿는 ‘푸른시민연대’가 무궁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기원해본다. 서화진 국장과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문종석 대표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와 많은 얘기는 못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푸른시민연대’의 10년을 대답한 것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10년 딱 지났는데, 우리가 예전에 말했던 것과 딱 맞아 떨어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잖아요. 노무현과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나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밑에서부터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옛날에는 미래의 비전이나 전략을 가지고 토론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얘기를 거의 안 하거든요. 왜냐하면 지금 10년 정도 됐는데, 이제는 우리가 하는 액션 자체대로 가고 있다고 봐요. 그 과정이. 절망으로 느꼈던 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지역운동이라는 것이 훨씬 더 지루하고 길다, 이런 것을 느낀 것이었고, 희망을 본 것은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더라.......저희가 얘기하고 있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그런 겁니다.......지난 수십 년 간 익숙해져버린 생활의 풍토를 바꿔내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만나서 바꿔내는 수밖에 없어요. 훈련해야 되죠. 그 작은 훈련이 실제로 저희 어머니 교실에서도 하는데 저희가 800분 정도를 얘기했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가 있는데, 선거 때만 되면 머리를 싸맸어요. 왜냐하면 명색이 저희가 정치조직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당장 돈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선거 국면에서. 그런데 현금이 됩니까? 안 되죠? 이번 선거 때 뭘 해야 하나, 결국은 말 잘못 꺼냈다가 한 번 혼나기도 했었고, 논쟁이 막 붙었어요. 그래서 몇 번 시도했다가 아예 포기를 했어요. 그래서 뭘 했냐면, 가장 기본적인 것들, 정책을 가져와서 읽어보고, 이런 기본적인 것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그 동안 함께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어머니들에게 이렇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던 것이 어머니들 바탕에 깔려 있었던 거예요. 특별히 의식화 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어머니들이 선거가 되면, 이번에 누구를 찍어야 되요? 젊은 사람 찍으면 돼? 깨끗한 사람 찍으면 돼? 이렇게 생활속에서 학습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번 같은 경우는 탄핵국면이나 총선 때, 어머니들이 중에 보수적인 사람이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다른 어머니들한테 크게 당해요. 그런 것을 보면서 저희들이 희망을 느끼는 거죠. 생활에서 더불어 산다는 것이 심어지니까 결국은, 상부구조라고 하는 의식의 부분이 따라서 바뀌는 것이죠. 10년을 평가하고 앞을 내다보면서 아까 공부방 같은 얘기를 꺼낸 것 같은데, 저희는 순환을 생각하는 거예요. 인적인 측면에서의 사업의 순환, 어머니들이 연세가 다 60대, 50대인데,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은 부담이거든요.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직접적 참여는 아니지만 옳은 일, 좋은 일, 나누는 일의 사업은 참여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어머니들이 다니는 이 곳을 도와주십시오, 하면 잘 안 통해요. 왜냐하면 여기니까, 나니까, 제 3의 기관은 도와줄 수 있다는 거죠. 공부방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원래는 어머니들이 지역의 필요한 공부방에 보내드려서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가 다른 단체가 온다고 환영하지도 않고, 우리가 직접 할 수밖에 없죠. 공부방 같은 것을 열어서 어머니들이 그 쪽에 참여해서 활동도 하시고, 어머니들이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만나서 자연스럽게 국경 없는 사람들이 되는 거죠. 인적인 순환문제가 우리의 첫 번째 과제죠. 지역커뮤니티라고 하는 그런 문제.......장기적 발전계획? 뭐 우리도 이런 일에 크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해보니 10년 별것 아니더라는 거죠. 해보니 10년 갖고 택도 없더라 이겁니다. 아마 옛날 같으면, 장기발전계획이라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워서 시작했을 거예요. 물론 지금도 장기발전계획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계획이 마음 먹은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계획이 아니라 신념과 꾸준한 실천이고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동력이 핵심이지요. 여력이 되면 사업을 순환시키는,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을 파악하고 도와줄 수 있는 손을 모집해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거죠.......대학생 같은 경우도 정착되지는 못하지만 거쳐 가는 것만으로 훈련된다고 보는 거죠. 욕심 같으면 다들 남아서 여기서 활동하면 좋은데, 여건이 그렇게 안 되는 거죠. 그런 시민들이 흩어져서 세상이 좀 더 밝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는 생각이고, 10년을 돌아보니 약간 느낄 수 있는 정도로 느껴지고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훨씬 더 느껴질 수 있겠죠.”
※ 푸른시민연대 홈페이지는 http://www.epurun.org/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