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남미정 회장
인구 7만의 작은 도시 과천은 한국 시민운동사에도 적지 않은 이정표를 남겼다. 90년대 초, 소위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현장에서 ‘시민운동’의 물꼬를 틔웠고, 탁아소 설립운동을 통해 보육문제를 지역에서부터 풀어보려는 노력이 처음으로 시도되기도 했으며, 과천에서 벌어진 송전탑 반대운동은 근본적인 전력구조문제의 핵심을 짚으며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불소화사업’의 경우, 시민운동에 의해 보건의료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에 부닥쳐 ‘불소화사업’이 중단된 곳도 과천이다. 공동육아부터 대안교육운동까지 그 과정을 논할 때도 과천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잔잔한 파동이 거대한 물결로 승화된 ‘녹색가게’운동은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성운동의 중요한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과천생협․녹색가게’는 알뜰시장 개최 10주년을 맞아, 단체 이름을 ‘푸른 내일을 여는 여성들’로 개칭했다. 소재나 형식으로서의 정체성은 구(舊) 명칭이 잘 드러내지만, 이념으로서의 정체성은 현재의 명칭이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곳에서 15년 가까이 몸담고 있는 남미정 회장을 만난 건, 봄소식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지난 2월 말이었다. 비좁은 사무실을 꽉 채우고 있는 재활용 물품들 속에 10여 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북적댔고, 그 곳을 지나 한 모퉁이에 마련된 좁다란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녹색가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의 정외영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남미정 회장도 청산유수와 같이 거침없이 말을 토해냈다. 일목요연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빼놓지 않는 그의 언변은 오랫동안 몸에 밴 리더로서의 기풍이 아닌가 싶었다. 소주잔을 벗 삼아 동창이 밝을 때까지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해낼 수 있는 그런 활동가였다. 지금부터 그가 전하는 과천 ‘녹색가게’운동을 들어보자. 한 가지! 인터뷰 내용이 무지 길다. 인내를 갖고 읽는다면, 생활운동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먼저, 빠지지 않는 질문. 과천 녹색가게의 역사에 대해 물었다.
“우리 과천 녹색가게는 91년도 서울 YMCA에서 개최한 생활협동운동을 위한 공동체 교육에 참여했던 분들이 과천에서 공동체를 만듦으로 해서 91년 6월에 시작됐어요.(이 때, 최근에 제작한 홍보 리플랫을 보여준다) 그 교육을 계기로 공동체가 만들어졌는데, 과천 1단지에만 회원이 10명 정도 참여했죠. 그 회원들이 생협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얻은 환경 지식들을 지역에서 실천을 하자, 그런 차원에서 1단지 자원재활용 캠페인을 92년 11월에 시작을 했습니다. 재활용품들을 모아오면 재생휴지와 재활용 세탁비누로 나눠주는 작업이었어요. 그것이 최초의 지역 환경활동이었어요. 그런데 캠페인을 통해 나온 물건들이 재활용 처리하기엔 아까운 물품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모이는 저희 회원들이 각자 집에서 따로 보관했다가, 94년 6월에 정기 알뜰시장을 중앙공원에서 열기로 하고, 매달 한 번씩 알뜰시장을 개최해왔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재활용 캠페인과 알뜰시장을 월 1회 개최하고 있죠.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각 단지별로 회원들이 한 60여 명이 흩어져 살았었는데,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 같이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서 소식지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모아가고 의사소통도 하자, 이런 차원에서 소식지 창간을 94년 말에 했죠. 그리고 95년에는 지방선거가 있었잖아요. 저희가 1단지에 있다보니까, 중앙동으로 출마하는 분들이 굉장히 부정선거, 불법선거 하는 유형을 많이 보게 됐어요. 그래서 1단지에 있던 회원들이 우리가 선거와 관련해서 가만있을 것이 아니라, 이런 선거들을 고발하고 부정선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활동을 해보자, 그래서 즉각적으로 결의를 해서, 선거가 6월이었으니까, 5월 1일부터 공선협 활동을 시작했어요. 좀 뒤늦은 활동이었죠. 96년에는 95년 말 쯤에 알뜰시장이 거의 2년 동안 진행해 오면서 상설매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민들과 회원들에게 나와서 과천시에 장소 신청을 했었고, 96년 시민회관이 오픈됨과 동시에 지하 2층에 5평의 공간에 알뜰매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게 돼서 오늘의 시민회관 내 25평짜리 녹색가게가 운영되고 있는 거죠.”
정리하자면, 91년 서울YMCA가 개최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일군의 주부들이 1단지에서 ‘자원재활용 캠페인’을 시작한 때가 92년 11월이었고, 거기서 나온 물품들을 가지고 94년 6월에 정기 ‘알뜰시장’을 개최하게 된다. 95년 지방선거에는 잠시 공선협 활동을 경험하게 되고 96년에는 시민회관 내 매장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매장활동은 96년부터지만, 토대가 된 역사적 뿌리를 찾아가 보면 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횟수로 15년의 역사를 지닌 것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 흔히 ‘녹색가게’하면 YMCA가 떠오르는데, YMCA와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 전까지 서울YMCA와 깊은 관계는 없었고요, 97년을 맞이해서 IMF 때, 저희 알뜰매장이 매우 성황리에 되는 것을 서울YMCA가 알고, 서울Y에서 ‘녹색가게’라는 이름으로 연대활동을 제안했죠. 저희도 OK를 했고요. 그래서 그 연대활동으로 저희가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운영 시스템과 자원봉사자들의 수칙, 이용자 수칙, 모든 내용과 정보를 서울Y에 넘겼습니다. 그래서 그게 전국적인 확산에 이르러서 올해 녹색가게가 전국에 52개가 되는 것 같아요.”
서울YMCA와 과천 녹색가게는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다. 연대운동으로써 ‘녹색가게’ 사무국은 서울Y에 있고, 하나의 연대 단체로 과천 ‘녹색가게’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녹색가게’의 모델을 과천에서 제공했다는 데 있다. 매장 개장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 더 물었다. 본문이 길어 중요한 내용만 정리했다.
“저희가 그 동안 재사용 운동 관련해서 여러 가지 행사를 해왔어요. 98년 12월에 ‘장바구니 들기 캠페인’과 전시회를 했고요.......99년에는 거의 1년에 한 번씩 가게에 나왔던 옷들을 고쳐서 입는 ‘이야기가 있는 재활용 패션쇼’를 했고요.......2000년 10월에는 ‘추억이 담긴 생활 물품전’을 이 자리에서 개최했어요. 이 행사는 15년 이상, 집에서 아껴 쓰던 물건, 아직도 쓰고 있던 물건들을 전시했는데, 물건을 아껴서 오래 쓰는 것이 곧 환경운동의 기본이 된다는 차원에서 진행했는데,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참여해서 물품이 약 250개 정도 나왔어요. 6.25 전쟁 당시 쓰던 모포, 담요 같은 것, 선풍기, 재봉틀도 옛날 수동식 재봉틀, 축음기 이런 거 있잖아요. 이 시대에 보기 어려웠던 물품들을 주민들이 많이 내주셔서 이것도 상당히 성황리에 개최됐죠. 이 행사로 경기도의 자원봉사단체 경기도지사 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우연치 않게 그 당시에 조선일보와 환경부가 주최하는 환경운동 부문에 있어서 환경대상을 2001에 수상하기도 했고요. 2002년, 2003년에는 ‘손이 부지런하면’, ‘다시 한번 써 봐요, 이렇게’라는 제목으로 작품 전시회를 열게 됐고요.......재활용 강좌도 쭉 열고 있는데, 이 사업은 앞으로 지속사업으로 갈 거예요.......2004년 작년의 특징으로 얘기드릴 수 있는 것은 재사용운동에 늘 연구를 하다보니까, 여러 단체들도 현수막 만들 때 고민을 하면서도, 필요하니까 만들어 쓰잖아요. 그런데 만들어 쓰고는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래서 과천시 조사를 해보니까 전량 소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소각량을 줄이고 재사용에 현수막도 가능하다는 취지에서 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추진한 거죠.”
남미정 회장은 최근의 활동까지 세세하게 소개했다. 98년 개최한 ‘장바구니 들기 캠페인 및 전시회’는 ‘녹색가게’ 브랜드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업이기도 하다. 남미정 회장이 특별히 강조한 사업은 2002년과 2003년에 진행된 ‘손이 부지런하면?’과 ‘다시 한 번 써봐요! 이렇게’였다. 이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우리가 녹색가게 운동과 매장을 운영하다보면, 사람들이 물건을 사 놓고 금방 싫증을 내서 가게로 가져오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가 가게를 하는 취지는 집에서 오래 썼지만 이제 작아져서, 아니면 그것 말고 다른 게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그 물건을 이웃과 나눠 쓰자는 취지거든요. 그런데 새 물건을 너무 많이 사서, 어떤 것은 딱지도 떼지 않고, 소비 심리에 의해 샀다고 그냥 녹색가게에 갖다 놓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고요. 일종의 소비에서도 소비자로서의 책임이 따르는데, 그 생각을 전혀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그저 다른 사람과 바꿔 씀으로 해서 자기의 소비 패턴을 바꾸거나 즐기려는 식의 양상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이렇게, 우리가 판단하기엔 단순히 물건을 바꿔 쓰는 문제는 상당히 개인적인 문제가 따른다, 그리고 여기 와서 욕심을 내서 많은 물건을 골라가서는 입으려면, 한 번 세탁을 다 하잖아요. 거기서 에너지와 물 낭비가 있는데, 그것을 며칠 내에 또 와서 다른 것을 교환한다면 이것은 자원의 순환이 약간 겉도는,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순환이 아니라, 약간의 겉돌면서 오히려 환경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산 물건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이 물건에 애정을 듬뿍 받아서 그 물건이 내 손에 폐기될 때까지 써보자, 가능하면 가게를 거치지 않더라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게 ‘손이 부지런하면?’과 ‘다시 한 번 써봐요! 이렇게’입니다.”
과천 ‘녹색가게’는 근본적인 환경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녹색가게’의 근본 취지는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이전에 ‘아껴 쓰는’데 있다. 아껴서 오래오래 쓰다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물건일 때, 이웃과 나눠 쓰는 것이 ‘녹색가게’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비패턴이다. 그러나 ‘녹색가게’가 과천에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즈음, ‘녹색가게’ 취지에 어긋나는 소비행태를 발견하게 됐고, 다양한 강좌와 행사를 통해 이러한 소비행태를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따른다’는 남미정 회장의 일침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현수막도 재활용한다는 남미정 회장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았다. 현수막을 어떻게 재활용하지?
“광고를 내면 현수막이 많이 들어와요. 그것을 우리가 빨아요. 특히 밖에 오래 걸린 것은 아무리 빨아도 잘 안 지워져요. 처음엔 우리 회원들이 집에서 목욕탕 통에 다 빨았어요. 그 안에 넣어서 발로 밟고 그랬는데, 그 찌든 때가 그 통에 끼어서 나중에는 그게 안 빠지더래요.(웃음) 그래서 몇 번 해보고는, 아주 오래 된 것은 아예 안 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들었고, 실내 사용한 것이나 밖에 나가서 너무 오래 하지 않는 것들만 모아서 각 분과가 나눠 가졌죠. 대부분은 재활용 분과장이 집에서 세탁기로 돌려서 빨아 오세요.......작년 같은 경우는 쓰시협 사업으로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했기 때문에 재봉틀을 일괄 대여해서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면 약간의 사업비가 있는데, 우리들끼리 하는 사업보다 지역주민과 결합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복지관을 통해 광고를 했어요. 연세 되신 분들, 용돈이 필요하신 분, 재봉틀을 할 수 있는 분, 그 분들에게 한 장에 500원이나 1,000원의 수고비를 드리고 이것을 맡겼어요. 빨고 재단하는 것은 우리 재활용 분과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지역복지차원에서 용돈이 필요한 분에게는 재봉 1,000원씩에 박아오도록 맡겨서 그 분들과 사업을 같이 해서 만들었어요.......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마트용 장바구니죠. 그리고 과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실험했던 것은 아이들 보조가방, 아이들 신주머니를 만들었죠. 이 사업은 많은 환경단체에서 취재해 갔고요, 작년에는 쓰시협 우수 재활용 사업으로 뽑히기도 했어요. 요즘 보니까, 복지과나 지역에 있는 복지관들, 그리고 자활사업을 위해서 아이템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데서도 저희를 많이 방문하셔서 노인 분들에게 일을 맡길 수 있고, 그리고 지역마다 항상 생활 문제로 되고 있었으니까, 작년에는 많은 단체가 여러 가지 내용을 배워서 가기도 했고, 봉천동의 자활후견기관 같은 경우는 이 아이템으로 사업비를 2,000만원을 받기도 했어요.”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은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한 아이디어다. 현수막을 많이 사용하는데다, 폐현수막 처리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봤기 때문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재활용운동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함으로써 환경산업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생활을 통해 터득한 주부들의 아이디어는 실로 대단했다. 이렇게 과천 녹색가게는 재활용 운동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것에 대한 회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남미정 회장은 말한다. 이 대목에서 단체 명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물었다. 결정적 계기는 사무국과의 마찰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사무국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어요.......사무국은 우리가 한 내용을 가져가서 사업을 벌이길 원했어요. 그런데 다른 지역의 녹색가게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키워주고 지원해 주는 역할을 사무국이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사무국은, 이를테면, 장바구니 캠페인 같은 것을 벌였을 때도 우리 물품 다 가지고 가서 개최했으면서도 과천 녹색가게 물품이라는 얘기를 안 하고 사무국의 것처럼 한 적이 있거든요. 저희 회원들이 반발하는 거죠.......그런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우리가 거기 그냥 수긍을 하고 따라가면 좋은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어서, 오히려 우리 독창적인 단체로, 우리가 독자적이면서 계속적으로 우리 활동을 특화시켜 나가는 단체로 좀 더 노력을 하자, 그런 차원에서 사실은 이름을 바꾸었죠. 어떻게 보면 이게 자원봉사운동이었고, 여성들이 굉장히 노력하면서 여성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내는, 그리고 여성들이 가정에서 늘 옷 정리 하고, 쓰던 물품을 정리하고, 살림하고, 그런 경험이 그대로 녹아나는 운동이었거든요. 여성들의 생활의 관점이 녹아나는 운동이었던 것을 좀 더 알리는 차원에서 그리고 그건 또 YMCA 운동 차원과는 조금 안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건 우리의 판단인데, 그래서 우리가 좀 더 독자적인 모습으로 가자는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거죠.”
모든 중앙단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역단체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명칭 바꾼 결정적 계기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아무튼 과천 ‘녹색가게’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푸른 내일을 여는 여성들’의 정체성을 말한다면 “재활용을 주제로 한 주부들의 자원봉사 단체”인 것이다. 과천 ‘녹색가게’의 이력 중, 독특한 것 중에 하나는 ‘공선협’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활동이 거의 없었던 것에 비춰보면 꽤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 때 제가 회장을 하고 있을 때여서 공선협 위원장을 했었어요.......공선협 활동을 한 계기는 그 당시 여당의 후보 쪽에서 부정선거의 움직임이 많았었어요.......결정적으로 그 후보가 사는 단지에 10만 원짜리 음악회 티켓을 상당히 뿌려서 우리가 수거해오기도 했어요.......공선협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소방서 강당을 빌려서 시장 후보 초청 토론회를 가졌거든요. 후보자 7명이 다 참석했죠.......주민들에게 정책적인 측면에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정책선거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봐요.......그 당시 여당의 후보자가 시장이 되셨는데.......우리 단체에 대해서 늘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늘 들어왔어요.......그런데 우리 회원 10명이 공선협 활동을 하는데요, 공선협 활동이라는 게 저녁 10시까지는 보통 열고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밤늦게까지 남아서 이걸 지킨다는 것이 참 어려웠고, 그리고 수시로 고발이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야 되잖아요. 그 때 저희들도 녹음기 들고 다녔고요, 열성적인 회원의 경우, 갈비 집에 어떤 의원이 초대를 해서 거기 후보가 밥 먹으로 간다면, 같이 가면서 몸속에 녹음기를 숨겨가서 녹음을 해오기도 하고 그런 일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우리가 당위적으로 해야 된다, 등을 떠밀어서, 회장부터 나서는, 이런 식으로 했지만, 하고 나서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했나, 너무 과했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과한 활동이었다, 완전히 리더들 몇 명이 하자니까, 휩쓸려 했다, 이런 평가가 회원들에게 나온 거죠. 다시는 우리한테 맞지 않게끔, 무리하게 활동을 하지 말자, 그게 평가에서 주된 내용이었어요. 그 다음부터 공선협 얘기가 나오지 않았죠.(웃음) 힘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공선협 활동은 과천 ‘녹색가게’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였던 것 같다. 조직이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냉정하게 평가했던 것이다.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과천 ‘녹색가게’가 외부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확장된 활동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공선협’활동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회원들은 당위적 운동이라고 해서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위적이면서, 내 색깔에 맞고, 나를 발견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던 재활용운동이고, 청계산 살리는 생태운동이고, 불소화와 같은 생활의 문제였다. 회원들을 힘에 부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생활운동을 선택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는 초창기 멤버에요.......우리가 본격적으로 지역활동을 전개할 당시에는 회원이 65명 정도 됐거든요........지금도 그 정도의 회원이 있죠........제 기억에는 초창기 멤버가 한 여덟 분 정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10년이 넘었네요. 굉장한 동지들이죠. 애들 다 초등학교 다녔는데, 요즘엔 다 대학생들이죠.”
이 대목에서도 과천 ‘녹색가게’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60여명의 회원 규모가 큰 변동 없이 이어져오고 있고, 그 중에서도 한솥밥을 먹으며 뜻을 같이했던 10여명의 동지들이 지금도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관계’는 조직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과천 ‘녹색가게’ 규모를 요약해보면, 자원봉사자 겸 회원이 약 50여명, 활동분과는 6개, 하루 이용자 수는 100-120명, 교환하거나 접수되는 물품은 하루 약 600여점, 현금 수익금은 하루 5-6만원, 그리고 98년부터 지금까지 1명의 상근 실무자를 두고 있다. 주제를 바꿔, 과천 지역에서의 활동 내용을 듣고 싶었다. 특히 분과를 중심으로 해서.
“저희는 ‘알뜰시장분과’, ‘교육분과’, ‘재활용 연구분과’, ‘후원분과’, ‘홍보출판분과’, ‘마을분과’, ‘녹색가게 분과’, 이렇게 있는 것 같고요.......‘교육분과’ 같은 경우는 전반적인 우리 단체의 내용, 운영 등 한 달 쯤 지나서 봉사를 하시다가 2회 교육을 하면서 본인 느낀 점들 듣기도 하고, 그런 교육을 주로 하고 있죠.......그리고 청소년들을 방학 때 받아서 가게 일도 돕게 하면서, 또 청계산에 가서 야생화 가꾸는 일, 나무 이름 조사하는 일, 생태기행 체험도 하고 또 알뜰시장 나가서 청소도 하고 시장에 참여도 해보고, 뭐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에게 교육하는 ‘교육분과’ 활동이 있어요.......그런데 이 ‘교육분과’는 자원봉사 교육 관련해서는 상당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어요.......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현수막 사업을 하는 ‘재활용 연구분과’가 있고요.......그리고 ‘후원회 분과’ 같은 경우 여기에 있는 분들이 대단한 분들인데, 제일 회원도 많은데, 소년, 소녀 가장도 돕고, 복지관에 후원금을 내기도 하고, 안양 지역에 있는 한 복지단체에 가서 버려진 아이들을 씻겨 주고 우유 먹여주는 노동봉사, 현장봉사를 계속 하고 계세요.......‘마을분과’에서는 청계산 지킴이를 하는데요, 청계산 약수터 주변으로 나무 이름표도 달고 월 한 번씩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작년(2004년)에는 1년 내내 야생화를 시장님과 쭉 심고 가꾸는 일을 했죠. 그 다음에 ‘녹색가게’는 하나의 분과로 있어요. ‘녹색가게분과’에서 지역 행사를 하고요.......그리고 과천의 NGO와 연대활동을 하는 것은, 잘 아시다시피, 의제와 결합해서 활동하고 있고요, 자원봉사센터에서도 개별적으로 자문위원을 하고 있고요.......한살림과 저희 단체가 재작년인가 불소화 반대운동을 했는데, 이것은 저희 단체 활동으로 같이 했죠.”
매장운영(‘녹색가게분과’)을 포함한 7개 분과에서 5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는 ‘전원 회원, 전원 활동가’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또한 과천 ‘녹색가게’의 특징을 대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새롭게 보충되는 회원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1년에 5-6명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한 한 번 결합하면, 어떤 조직보다 깊은 유대관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새로 회원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보충될까?
“교육을 통해서 보충되는 것은 거의 없어요. 가장 흔한 경우는 친구를 데려오는 경우가 있고, 교회 다락방을 하면서 공부를 같이 하는 친구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어요. 최근에는 청계사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두 분이 오셨고요.......그리고 다른 케이스로는, 여기 이용하던 분들이, 내가 애를 어느 정도 키웠고, 내가 여기 매일 이용해서 아이를 잘 키웠기 때문에 이제 봉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그 다음에 지역 홍보를 보거나 자원봉사센터에서 홍보하는 것을 보고 오시는 분들도 있죠.”
역시, 가장 좋은 조직 방법은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과천 ‘녹색가게’는 유행에 신경 쓰지 않고(사실, 시민운동 판에도 유행, 또는 당위라는 것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묵묵히 정예부대만으로 조직을 탄탄히 이끌어 왔다. 과천 ‘녹색가게’는 첫째, 회원의 의견, 둘째, 재사용․재활용운동과 연관된 운동 셋째 아이디어 연구와 실천, 이렇게 활동 방향 설정이 되어 있다고 남미정 회장은 말한다.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한 가지 주제로 15년 가까이 활동한 것만으로도 고리타분할 것도 같아서 물어보았다. 지겹지 않았습니까?
“저는 만족하고 있어요.......그런데 좋은 거는요, 동지들이, 10년씩 온 아주 친한 친구들이 되는 거죠. 우리 단체 성격이, 제가 보기에 일반 주부들 중에서 생각이 있는 분들이 많이 들어오세요. 그 분들과 만나서 나누고 생각을 교환하면서, 그리고 우리가 책 읽기 모임을 늘 하면서 토론들을 하다보니까, fresh한 면이라고 할까, 그런 면을 많이 접하면서, 사람들 간의 서로 좋은 점을 주고받는 그런 즐거움도 크고요, 저 같은 경우는, 그러니까 오래 된 분들은 약간의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도 인정해요. 어떤 면인가 하면, 저는 제가 외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것은, 물론 과천 지역 말고요, 한 3년, 2년, 얼마 안 됐어요. 서울의 여성환경연대나,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 본부 등인데, 이렇게 나가게 되면, 사실 이 지역에서 보지 못했던 중앙운동의 차원에서, 아니면 좀 더 넓은 시야에서 풀뿌리 진영 운동들과 관련해서 다른 단체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죠. 푸른경기21을 가도, 도 전체 내용을 보니까. 그게 상당히 fresh해요. 그런 면에서는 많이 충전이 되면서, 또 우리 내용은 내용대로 가니까, 지루함이 최소화되면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회원들과 학습과 교육, 그리고 토론이 주요한 매개였던 것 같다.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십년지우(十年知友)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주제를 더 좁혀, 과천의 지역운동에 대해 물었다. 일단, 지역에서 과천 ‘녹색가게’활동의 성과는 어떤 것인지 물었다.
“.......외부의 녹색가게처럼 전국적으로 추진됐다, 정책을 완전히 바꾸었다, 하는 면은 지역 내에서는 적죠. 그런데 굳이 저희는 재사용 운동을 하나의 생활운동이라고 보니까요, 굳이 얘기를 하자면, 알뜰시장 같은 경우 저희가 10년을 했잖아요. 초기에는, 사실 중앙공원의 알뜰시장을 우리가 세웠지만, 좀 어색하다, 이렇게 참여하는 사람도 없고, 재사용하는 인식도 없는데, 어디 쓰다 남은 물건을 모아 놓고 서 있기가 좀 민망하다 싶을 정도의 참여 의식이 약했죠. 그러나 최근의 모습을 보시면, 우리가 마지막 토요일만 알뜰시장을 하지만, 이미 그 알뜰시장의 의식이 늘 중앙공원에 오면 장이 선다, 그러면서 매주 장이 서요. 저희가 있거나 없거나 주민들 스스로 장을 서는 것만큼 생활화가 된 거예요. 물론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렇게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과천에서 10년 동안 장을 지켜온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굉장한 파급효과가 아닌가, 이렇게 보거든요.”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실시했던 과천 ‘녹색가게’의 알뜰시장이 이제는 그것과 무관하게 매주 ‘주민들에 의한 알뜰시장’이 서고 있다. 처음 시작했던 단체 입장에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천 지역의 시민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지 물었다.
“제가 먼저 지역운동을 적극적으로 못 펼쳐서, 그런 말 할 자격은 별로 없어요.(웃음)”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느끼시는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진 것 같아요. 시대적 흐름에서 NGO의 특징으로 짚어지는 부분이 예전에는 좀 더 이슈 중심이라고 할까, 이슈 파이팅을 강하게 했고, 생활운동은 예전엔 별로 인정을 못 받았죠. 그런 분위기에서 저희가 참여하기 시작했잖아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 재사용 운동은 보조를 받아야 되지만, 시의 보조를 받는 유일한 단체라는 인식으로 되다보니까, 사실 NGO 활동에 있어서 초기에, 93년 이 때에, 지역연대에 결합을 했는데, 우리와 다른 일을 하는 NGO가 정말 많구나, 이렇게 느껴졌었어요. 그 분위기와 우리들의 성격이 그랬기 때문에. 그러다, 공선협 활동을 한 번 겪고요, 그 다음에 불소화 사업 반대운동을 한살림과 함께 했고, 또 하나 기억 남는 사업으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게, 청계산 서울대공원 쪽에 산을 파괴하면서 놀이동산을 좀 더 늘린다고 개발하려고 했을 때, 반대운동을 몇 몇 단체와 했거든요.......그런 걸 하면서, 조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생활운동을 하고 매장을 운영하면, 사실 지역의 NGO나 지역의 다른 활동에 결합할 여력이 상당히 약하다, 그런 것을 많이 느꼈고, 그리고 이슈 파이팅을 하는 단체의 회원들 의식과 생활운동을 하는 단체의 의식이 똑 같을 수는 없다, 활동 내용도 다를뿐더러, 시간적이 투입이 다르고, 그러면서 예전에 내가 NGO에 자신 없고 너무 내용이 다르니까 모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미안한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몇 번 연대활동을 같이 해오면서 요즘 느끼는 것은, 약간 나름대로 정체성에 기인한 우리 활동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게 당연하다.......우리도 NGO니까 무조건 합해서 한 길로 가야 되고, 모든 것에 결합해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은 항상 부담으로 왔어요.......사실은 그 단체들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좀 더 열린 NGO의 모습이 이 시대에는 더 맞지 않는가, 왜냐하면 NGO라는, 이제는 예전에 이슈 파이팅의 모습에서 이미 생활 운동을 하는 NGO들이 많아졌고요, 그런 내용이 우리 지역사회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 느끼는 것은 NGO라는 영역도 넓어지면서 결합의 형태도 매우 다양하게 가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우리가 변명을 하자면, 굳이 지역에 의제에 결합한다거나 불소문제, 청계산 지키기, 공선협 이런 것들을 보면, 최소한의 역할은, NGO로서 우리도 하려고 노력은 했다(웃음)는 식으로 평가를 해요. 그러니까 NGO가 아니다, 그것은 아닌 것 같고요, 나름대로 역할을 했고, 또 이슈 파이팅이나 좀 더 강성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분들은 조금 제가 바라기는 생활환경운동을 하는 측의 입장과 여건들을 조금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남미정 회장의 요지는 이렇다. 다양한 NGO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생활운동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나 차이를 인정할 때 ‘열린 자세의 연대’는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일견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보는 이에 따라 쟁점이 되는 지점도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조직의 내적 토대와 지역의 정치적 사안의 균형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펄럭이는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개인의 변화를 어떻게 사회로 확장할 것인가’/‘탈정치화의 막기 위한 조직적 견제 장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생활운동이 성별분업을 고착화시키는 특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시간적 제약도 있지만, 나도 정리가 안 됐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물었다. 생활운동을 전개하는 단체가 너무 빨리 탈정치화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크리스찬 아카데미라든가 나름대로 다른 교육을 받고 토론회 참석하고 느낀 것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정치다,(웃음) 일종의 그런... 사실은 처음에 그것을 어색하게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런 얘기를 자꾸 생각하면서 우리 회원들과 얘길 하다보면, 이론가들은 다 그렇잖아요. 그런 얘기 속에 우리 의식들이 충분히 녹아 남아서 이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내용들을 담아나간다는, 그런 얘기들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우린 또 주부들에게 토론의 의식을 키우자, 이런 시도들도 사실은 많이 하잖아요. 소그룹에서도 하고. 그래서 저는 단체들에서 하는 것이 탈정치다, 그것은 아닌 것 같고, 우리가 밑바닥의 씨앗들, 우리가 이렇게 한 얘기, 소모임에서 하는 시도들이 다 씨앗이 돼서 결국은 위에서 정말 정치적 활동을 내놓고 하는 분들에게 힘을 실어 가는, 다 같이 정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개인의 정치적 의식은 내부적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나름대로 정치적 고리를 연결하고 있다고 남미정 회장은 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행동으로써 드러나지는 않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과천 ‘녹색가게’의 특이점 중에 하나는 남성들의 참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후원 정도의 참여는 하는데, 사무실 나와서 컴퓨터 관련이나 사무적인 일들을 돕겠다는 남자 자원봉사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회원들이 별로 싫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저는 회원 의견에 따르는데, 여자들끼리만 있으면 편한 세상인데, 사무실에 나왔을 때 남자가 옆에 있으면(웃음).......이게 전업주부의 특성이에요. 전업주부들이 하다보니까, 저는 남자 분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불편한 것 같아요.”
이것은 확실히 남자들과 다른 점인 것 같다. 남미정 회장도 남성이 참여함으로써 의식을 변화시키고 생활의 문제를 더불어 고민하는 토대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녹색가게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과천 ‘녹색가게’의 한계와 문제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도 초기에는 의식이 여러 가지 면에서 없었거든요. 제 과제라면 우리 회원들이 어떻게 좀 더 의식적으로 활동을 하는 운동가들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과제에요. 그래서 좀 더 효과적인 의식 교육이 뭘까, 그게 사실은 어떻게 보면 이 단체 전체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지면 쉬운데, 순수 자원봉사로 들어왔던 분이, 그것도 이슈 파이팅으로 결합한 것도 아니고 생활 환경운동으로 해서, 그냥 매장운동으로 결합해 있고, 우리의 내용이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내용들을 담아가다보니까 한계들을 느끼는데, 의식화 작업을 효율적으로, 눈에 띄게 바꿔나가고 싶다, 그런 욕심이 있긴 해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서서히, 저희 10년 된 동기들에겐 그런 것을 발견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그런 한계가 있고요. 그래도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상당히 고심을 하고 최선을 다 해요. 어떻게 하면 의식 있는 주부들로 키워낼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이슈가 되거나 좋은 책들을 읽게도 하고, 그러거든요.......그리고 우리가 하고 있는 재사용 운동의 한계는, 단체 활동이 폭을 넓혀 가려면 매장이 좀 커야 되요. 왜인가 하면, 크면서 더 다양한 물건도 담고, 한 쪽 구석에는 교육장도 있고, 재활용 작품이 수십 점이 있는데, 다 집으로 갖다 놓았다가 무슨 전시회에서 빌려달라고 하면, 또 가져와서 모아서 쌓아 보내거든요. 전시 공간도 없고. 내용에 비해서는 하드웨어가 상당히 부족해요. 그런데 이것을 아무도, 물론 노력부족이고 역량 부족이긴 하지만, 우리처럼 하는 곳이 없는데.......(웃음) 공간 확보가 쉽지 않네요.”
생활운동은 장기적인 목표를 두고 갈 수밖에 없다고 남미정 회장은 말한다. 그래서 의식을 변화시키고 리더를 길러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작은 일이라도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비록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하더라도. 한 단체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배운 계기였다. 내부적으로 이해하는 수준과 외부적인 이해의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둘을 올바로 이해하는 선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정신과 연대의 정신이 합리적으로 작동될 때 가능하다. 경제발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달려온 시민운동의 과정은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느리게 전개되는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시민운동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시점에서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남미정 회장과 더 많이 대화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시간을 뺏을 수가 없었다. 기회가 닿으면 또 만나고 싶은 분 중에 한 분이다. 끝으로 과천에서 재활용운동이 발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물었다. 이 답으로 오늘의 인터뷰를 마치고자 한다.
“저는 가능하다면, 시민회관이나, 중앙로 같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시는데, 환경교육센터처럼, 재활용교육센터가 들어서서 좀 더 큰 물건을 다룰 수 있게, 소각장에 들어가 있는 저런 물건들이 다 시내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것을 우리 단체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 전문 파트가 있으니까, 그 쪽은 그 쪽대로 나와서 결합을 하고, 교육은 NGO연대나 시민단체들이 자기 내용들을 연결해서 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환경센터, 교육센터의 개념을 가진 재활용센터, 이런 게 사실 중앙로에 세워지면 좋겠다, NGO적인 마인드와 환경적인 마인드, 자원봉사적인 마인드를 다 엮어서 할 수 있는, 그건 연대체로 내용의 결합만 하면 되잖아요. 항시적으로 굴러가면서, 청소년이 오면 청소년 단체도 결합하고, 그런 종합적인 재사용운동, 재사용센터, 아니면 그냥 환경센터라고 하든지, 이런 게 하나 생기는 게 꿈이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