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대체 뭐하고 다니느냐?는 아내의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대학도 그만뒀는데,
뭐 그리 바쁘게 쏘다니냐?는 핀잔이기도 하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저도 왜 바쁜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여러가지로 몸과 마음이 부산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2월 초에 지역을 많이 돌았는데, 3월에는 지난주에 여러 지역을 다녀 왔습니다.

14일날 전남 해남에 해남신문 좌담회가 있었서 다녀왔는데, 봄기운이 물씬하더군요.
다녀온 용건은 봄기운과는 무관한, 좀 쌀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전국공무원노조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 사용한 것을 전국적으로 열람했는데, 무척 문제가
많이 나왔다는군요. 아마 조만간에 그 관련된 발표가 있을 것같은데, 세금을 무척 우울
하게 썼다고 합니다. 특히 영.호남의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문제가 많았다는데, 두고
봐야 할 것같습니다.
아 참, 해남신문은 옥천신문처럼 지역신문의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유료독자
수가 6천명에 달하는 지역신문입니다. 이번에 가서 좌담회를 하는데, 여성편집국장
님이 맞아 주셨습니다. 최근에는 좀 어려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앞으로 해남신문이
 더욱 발전하고 자리를 잡아가기를 기원합니다.

16일날에는 전남 무안에 갔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비행기를 타고 갔었는데요. 무안
에 공항이 있느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무안에는 국제공항이
있답니다. 그렇지만 공항은 좀 썰렁했습니다. 김포-무안은 하루에 1대밖에 비행기가
없더라구요. 지역분에게 '공항생겨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느냐'고 여쭤봤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시네요. 이런 식이라면 토목사업 하나 벌인 것밖에 안 되겠습니다. 물론
공항운영도 적자를 면치 못하겠지요. 이게 우리나라를 '토건국가'라고 부르게 하는
현실입니다.

무안에 간 이유는 '무안아카데미'라는 지역 학습모임이 제안해서 지방선거 후보검증을
위한 100인위원회 발족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는 현실
에서 지역주민들이 참여해서 후보검증.평가작업이라도 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이었습니다. 남성/여성, 지역 등을 고려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분들을 모았는데,
 132명이 모였다고 하네요. 아무쪼록 잘 진행되어서 또 하나의 모범사례를 만드시기를
기대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8일에는 경남 밀양에 갔습니다. 밀양에서 여러 조직과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새로운 지역운동을 계획하고 계시는데, 그 과정에서 '마을학교'를 열기로 하셨답니다.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추진하기 위한 일종의 지역기금을 조성하고 계시고, 또 장애인
야학, 공부방 등의 일들도 시작하고 계십니다.


30여분 정도 오셨는데,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시고 또 질문도 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2주 연속 강의라 이번주 목요일에도 밀양에 가게 되는데, 좋은 얘기 많이 나누고 오려고
합니다.

20일에는 제주에서 '제주사회포럼'이 있어서 내려갔다 왔습니다. 사실은 며칠전부터 제
주의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포럼가서 발제만 하고 올라왔습니다.
기회가 되면 한라산도 올라가고 올레길도 걸어보고 싶습니다만.... 제주를 떠난 후에
제주가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제주사회포럼은 제주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상상하라. 다른 제주는 가능
하다'라는 뜻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올해가 처음인데요. 지역농업, 복지, 자치모델, 지역
정치 등에 대해 풍성한 얘기들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제주에서 '제주다운 제주'를 만
드는 움직임들이 더욱 활발해질 것같습니다.

20일 제주도는 기온이 24도가 넘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습니다. 모쪼록 지역에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이 우리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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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월간 자치행정 2007년 10월호에 실은 원고입니다.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실상과 과제③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풀뿌리 자치를 위한 노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치’의 개념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 자치는 “스스로 다스림”이라 정의된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는, 첫 번째 연재에서 정의 내렸듯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시민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더불어, 풀뿌리라는 말이 “근본적 원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풀뿌리 자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는 대의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간접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매우 가깝다.

그렇다면, 풀뿌리 자치의 강조는 직접 민주주의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인가? 얼핏 생각해 봐도 현대 사회, 특히 산업화된 도시지역과 같이 이웃 간에도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이해를 갖고 살아가는 지역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가능해 보이지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들 대의제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다면 주민참여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외형적으로는 대부분의 주민참여제도를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참여제도만으로 자치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는 없다. 자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 실천적 의미에서의 자치는 과연 어떠한 형태를 지칭하는가? 그에 관한 본격적 논쟁과 설명을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치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 지향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풀뿌리 자치는 정태적인 개념이기보다는 현실의 조건들을 자치라는 이념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가려는 ‘운동(運動)’, 동태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치의 주체가 정치권력이나 행정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풀뿌리 자치는 일반 시민들이 벌이는 풀뿌리 자치‘운동’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풀뿌리 자치가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자치를 현실태에서 육성하고 강화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은 이미 지역사회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론,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에 모두 풀뿌리 자치운동이라는 위상과 격(格)을 부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풀뿌리 자치운동은 일반 시민사회운동 중에서도 몇 가지 특징적인 활동들을 지칭한다. 그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 특징은 누군가에게 한시적이고 즉자적인 요구나 반대가 아니라, 지역사회 시민들이 스스로 지역사회 발전의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러한 활동이 가시적 성과를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empowerment)하는 과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풀뿌리 자치의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민간의 자발적 노력으로 진행되어 왔다. 널리 잘 알려진 유명한 사례로는, 대구 삼덕동에서는 주택가의 주차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담장을 허물면서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례는 단순히 담장을 허물면서 주차문제를 해결했다는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 사례가 보다 주목받을 필요가 있는 것은 담장을 허문 공간에 주민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들 스스로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의 대안을 만들었다는 것과 더불어, 그 활동의 성공으로 인해 이에 참여한 주민들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즉, 주민들의 참여역량이 강화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는 지속적인 지역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형성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서울시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적 활동을 벌이다 점차로 지역사회 저소득층 자녀들의 문제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에 이들은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자비를 모아서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이들의 욕구를 조사하여 행정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공부방을 건립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현재는 주민자치센터의 공간을 활용하여 또 다른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경기도 과천시 주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설립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지리산권에서는 지리산을 보호하고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주민들이 모여 공동학습을 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공동육아협동조합이나 대안학교, 보육시설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활동, 지역사회의 자원들을 모아 지역복지활동을 전개하는 다양한 사례들,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전개하는 사례 등등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있어 행정의 지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서울 은평구 갈곡리 마을과 강북구 미아동 주민들이 쓰레기 적환장으로 방치된 어린이 놀이터를 스스로 개선하여 어린이들의 놀이공간과 지역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관할 구청은 초기에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쓰레기 적환장의 이전 문제는 행정의 협조 없이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였기에 주민들은 담당 공무원과 구청장을 만나는 등으로 노력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에 주민들이 한 편으로는 행정에 항의를 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 자구적으로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행정은 뒤늦게 쓰레기 적환장 이전문제와 개선비용 일부를 부담하였다. 이 정도의 지원으로도 주민들은 충분했다. 결국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린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데 성공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공간을 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은 주민들을 고무시켜, 또 다른 활동을 모색하도록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 유럽의 풀뿌리운동 사례를 탐방하고 돌아온 여성단체 실무자들이 유럽의 ‘돌봄과 나눔’ 활동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풀뿌리 자치운동 활동가들은 그 정도의 활동 사례는 우리에게서도 많이 발견된다는 자부심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먼 거리를 비싼 돈을 들여가며 모범사례라고 조사한 데에서는 우리와 차별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민간의 이러한 자발적이고 대안적인 활동에 대한 행정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유럽의 사례들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에 대해 행정이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에서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공간을 제공하는 등 행・재정적 지원을 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들의 활동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실정은 열악하다. 물론, 우리의 행정도 외형적으로는 시민들의 참여와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높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자신들의 업무라 여기지 않는 경향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 그것도 외형적인 성장이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권한의 배분을 통한 시민들의 실제적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시민사회가 성숙해 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또 다른 의미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시민들의 참여를 집단이기주의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행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데에 지원하고, 이들의 활동에 적절한 권한과 책임을 분배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정 시민들의 참여가 공적인 성격을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믿음직한 시민들을 조직하고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시민사회와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준비되지 않았으니 아무런 권한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10년 후에도 똑같은 이유로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풀뿌리 자치는 우리 사회의 풀뿌리들이 자치의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밟아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이 바로 지역사회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길이며, 진정한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길이다. 더구나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면, 성가신 존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보듬어 안는 것이 행정의 진정한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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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성공회대NGO자료관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하세요..

저자: 라미경
주제어: 거버넌스, 로컬거버넌스, 지역문제, 화장장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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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성공회대NGO자료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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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영일
주제어: 지방의제21. 지속가능사업, 거버넌스. 연대사업, 평가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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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성공회대NGO자료관에서 가져왔습니다.
참고하세요..

이 글은 '사회갈등연구소'의 박태순 소장이 쓴 글입니다.
자치발전(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월간지) 8월호 특별기획으로 실린 글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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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4월11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시리즈 글 중 5회째로 연재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참가,분권,자치,공개의 민주주의적 수법

나일경

‘참가,분권,자치,공개의 민주주의적 수법’은 시민자치형 문제해결수법의 내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즉 ‘참가․분권․자치․공개’는 생활자ㆍ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권에 근거해 사회적 권력(문제해결의 힘)을 만들어 내는 운동의 지침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작동’시킨다고 하는 ‘자율적인 개인’을 기초로 하는 개념이다. 또한 그러한 개인들에 의한 시민자치형 체제’(국가통치형 민주주의에 대치되는 개념)의 구체적인 운영 메커니즘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생활클럽 생협운동에서는 생활자,시민의 문제해결 활동이 다음과 같은 행동원칙과 조직운영 원리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하나, 그 해결을 영리기업이나 행정활동에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조직과 권력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그 운영에 스스로 ‘참가’한다.

 둘, 여기서 말하는 ‘참가’는, 권력을 집중하여 지도부의 결정에 일반멤버가 단지 복종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과정에 참가하는 것을 말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진다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참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결정권의 분산, 즉 ‘분권’이다. 그리고 이 분권화된 조직구조 하에서 결정권을 실질화하는 것, 즉 결정능력의 향상시키고 결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정보공개’이다. 

 셋, 분권을 적절하게 행함으로써 생활자․시민의 조직활동은 타인이 결정한 것을 단지 수행한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 것을 자신이 실행한다고 하는 ‘자치’의 실현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요코다 카쓰미(橫田克巳), 『시민섹터를 만들다 Ⅲ-포스트 자본제 시스템의 섹터 밸런스』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2001년, 19-20쪽을 참조.)
 
 따라서 생활자 정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기성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1) 청부형 문제해결 수법에 대항해서 ‘참가형 문제해결 수법’, 2) 집권적 구조에 대항해서 ‘분권’적 구조를, 3) ‘백지위임의 정치’에 대항해서 ‘자치’와 ‘공개’의 정치를 대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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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2003 10월15일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인도 케랄라주의 자치실험이 주는 교훈

하승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우리 귀에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가 익숙하다. 하지만 브라질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자치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소가 차를 가로막고 종교적인 차이 때문에 도끼 들고 설치는 나라, 카스트라는 야만적인 신분제도가 아직도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류시화라는 한 인물이 철학과 명상의 나라로 인식을 바꾼 인도, 이제 그 속에서 ‘자치’라는 새로운 인식의 싹을, 로드맵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자.

인도는 한편으로 뿌리깊은 의회주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심각한 계급적․신분적 차별의 역사를 가진 불평등의 나라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관료들이 독자적인 하나의 사회계층을 형성하면서 중요한 자원을 국가가 독점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1996년 케랄라 주에서 좌파민주전선이 집권하면서 중요한 자치실험이 시작된다. 이 실험이 바로 “지방분권적인 계획입안을 위한 대중 캠페인”(이후 캠페인)이다.

캠페인은 단순히 밑단위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를 밑에서부터 강화하고, 실험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인 장치들(마을 단위의 회의와 개발 세미나, 임무수행팀 등)을 만들었으며, 이 제도들은 참가자들의 이성적인 토론에 바탕을 두고 프로젝트 선택과 구성을 실질적인 실행과 연계시켰다(자세한 내용은 자료실에 있는 번역글을 참고하길).

보통 먼저 행정적인 지원구조들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재정 자원을 지방으로 넘기지만, 인도 케랄라 주정부는 이 방식을 뒤집었다. 즉 먼저 재정자원을 지방으로 이전한 다음 지방의 제도들을 구성했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예산을 재량껏 운영해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지역 정치가나 관료들의 개입을 막았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와 인도 케랄라의 캠페인은 몇 가지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

첫째, 주민참여를 유도하는 핵심적인 방법으로 예산을 이용했다. 예산은 주민들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기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참여동기를 제공한다. 중립적인 공무원이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생각은 이미 착각임이 증명되었다.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내고 서로 갈등하고 조절하면서 참여를 활성화하고 있다.

둘째, 참여예산제와 캠페인은 주민들의 삶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부분에서 향상시켰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는 수도/하수처리시설비율, 도로포장비율을 높였고 주택과 공공자치학교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케랄라의 캠페인 또한 주택과 위생변소, 우물, 수도 공급 등에서 인상깊은 성과들을 낳았다. 이것은 참여가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구체적인 성과가 참여를 더욱더 촉진하는 ‘긍정의 순환고리’를 만든다.

셋째, 이 실험들은 그동안 배제되고 주변화되었던 사람들을 참여의 주체로 만들었다. 즉 전에는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여성,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 빈민, 노동자들의 참여율을 높였다. 그리고 그런 참여를 통해 이 사람들이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자신들의 가치와 존엄을 인식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도록 도왔다. 이것은 시민사회를 실질적으로 강화시킨다.

넷째, 주민참여에 의한 직접민주주의가 복잡한 현대사회에도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즉 구체적인 권한이 주어지고 참여가 활성화되면 직접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처음부터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점차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행착오는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민주주의 방식(민주주의 이념이 아니다!)을 찾도록 돕는다.

다섯째, 실험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미리 제시될 수 없다. 청사진이 없다는 사실은 불안보다 ‘실행에 의한 학습(learning-by-doing)’을 가져왔다. 참여예산제와 캠페인은 위에서 제시하는 계획이 아니라 위와 아래의 지속적이고 활발한 피드백과 세심한 조절이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국가와 사회를 연결하는 역동적인 네트워크로부터, 사회운동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논리가 제도를 구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여섯째, 진보적인 정당이 권력을 잡아야 할 뿐 아니라 권력을 잡음과 동시에 진보적인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브라질 노동자당(PT)이 포르투 알레그레 주정부를, 좌파민주전선이 인도 케랄라 주정부를 장악함으로써 새로운 자치실험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권력은 부정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결과를 생성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을 사라지게 한다. 다만 그 정당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프로그램을 위로부터 진행하는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생성적인 힘을 모으도록 집권과 동시에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와 케랄라의 캠페인은 공통점만이 아니라 차이점도 가진다.

첫째, 케랄라의 캠페인은 주민들의 참여를 위해 기존 단체들을 활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었다. 참여예산제가 시민단체의 결성과 대중평의회(Popular Councils)의 활성화 같은 ‘운동의 방식’을 강조했다면, 캠페인은 훈련 프로그램과 개발 세미나같은 새로운 ‘제도적 장치들’을 강조했다. 캠페인은 투명성과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각각의 목표, 핵심활동과 연계된 정교한 훈련프로그램을 강조했다. 좀 길지만 인용하면, “첫해에 주와 구역, 지역 단위에서 7차례의 훈련 라운드를 통해 약 5천명의 선출직 의원과 2만 5천명의 공무원, 2만 7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훈련을 받았다. 6백 명에 달하는 주 단위 훈련을 받은 사람들­핵심적인 인적 자원이라 부르는­은 거의 20일간의 훈련을 받았다. 약 1만 2천명의 구역단위 훈련을 받은 사람들­구역의 인적 자원­은 십일간의 훈련을 받았고 지역단위에서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약 5일간의 훈련을 받았다. 모든 선출직 의원들은 한 단위나 다른 단위에서의 훈련프로그램에 참가했으리라 기대되었다. 각 훈련 라운드는 특정한 계획입안활동들에 초점을 맞췄다. 각각 약 4천 페이지에 달하는 핸드북과 가이드가 각 라운드를 위해 준비되고 배포되었다.” 이런 대규모 훈련프로그램이 캠페인 과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둘째, 참여예산제가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소극적인 형태라면, 캠페인은 예산에 따른 프로젝트의 계획과 실행, 평가를 직접 담당하는 능동적인 형태를 띤다. 물론 참여예산제도 우선순위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행과정의 규칙을 정하고 여러 가지 의제를 설정하는 새로운 포럼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케랄라의 캠페인 역시 그라마 삽하(grama sabha)라 불리는 지역회의에서 개발 우선순위를 토론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캠페인은 예산순위나 규칙, 새로운 의제설정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예산배정과 실행, 평가까지 시민들이 담당하도록 했다. 즉 시민들이 더 세부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디자인했다.

셋째, 캠페인은 인도의 유동적인 정치환경에서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 그 과정에서 케랄라주의 계획입안국(the Kerala State Planning Board)은 캠페인의 구상, 디자인, 실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계획입안국은 캠페인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지침들을 만들었고, 이 지침은 지시나 명령의 형태가 아니라 구역에서 지역단체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와 인도의 케랄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자치실험들의 특징을 살펴봤다. 이제 우리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착각 하나를 지적하고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건강한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는 상식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런데 그 ‘건강함’의 기준은 뭘까? 보통 그 건강함은 소득수준이나 교육수준이 높고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안정된 정당체계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런 논리는 미국식 정치발전 모델이 제3세계에 강요하는, 제3세계의 사람들을 스스로 작아지게끔 만들려는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부시가 날뛰도록 내버려두는 미국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시민사회가 브라질이나 인도보다 건강함을 증명할 수 있을까?

사회학자 스카치폴(Skocpol)과 피오리나(Fiorina)는 질서와 안정이 아니라 갈등이 민주적인 능력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갈등하는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시민단체들의 확산이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인도의 역사, 즉 엄격한 카스트제도, 심각한 토지불평등과 노동억압이라는 역사를 가진 인도 사회에서 활기차고 효율적인 자치실험이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명한다. 결국 갈등이 심한 곳에서 자치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역주의와 기형적인 경제구조, 그에 따른 노동과 자본의 대립, 불안정한 정당체계를 가진 한국에서도 자치실험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으로 될 수 있다. 대통령 한 명 바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의 결단’이 아니라 ‘과감하고 투명한 분권과 자치’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 활기차고 효율적인 민주주의는 갈등과 사회적 동원의 역사를 통해 나타날 수 있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운동과 제도를 잇는 연결고리는 바로 ‘교육과 훈련’이다. 그런 대규모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인도 케랄라에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에게 나눠주기식 프로젝트를 공모하는 게 아니라 자기 지역의 예산을 분석하는 방법과 과정을 훈련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어떨까? 그런 프로젝트는 설사 관변단체들이 진행한다해도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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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2003년 10월1일 자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청소년 반란, 자치를 꿈꾼다

김지수(푸른희망군포21실천협의회 사무차장)

“경진대회는 대학가는 데 필요하니깐 있으면 좋지만 다 짜고 상 줘요. 공부 잘 하는 애들만 주고, 항상 타는 애들만 타고... 시에서 하는 청소년행사에 청소년들은 동원용일 뿐 이예요. 봉사점수로 꼬시고, 상으로 꼬시고... 정작 청소년을 위한 건 없어요.”

요즘 들어 나오는 10대들의 푸념이다. 새마을 세대도 아닌데 아직도 행사 동원용으로 불려 다니고 있는 현실이 바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활동들이다. 한국사회가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아마도 1991년 뉴키즈언더블럭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 막가파사건, 인천호프집 사건 등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대형 사건’에 맞춰진 ‘청소년문제’에 초점이 맞춰졌고, “뭐 저런 괴물 같은 얘들이 다 있어 쯧쯧...”에 머물러 있다.

반면 1990년대 들어 이런 10대들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신문지상에서 자주 접했던 용어 중 먼저 떠오르는 것은 N세대와 90년대 중반까지 대표적으로 썼던 X세대가 있다. 그리고 Y세대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Z세대라는 단어까지 등장했고, 지금은 R세대, P세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떠오르고 있는 세대론... 물론 이런 분석들은 대부분 10대를 겨냥한 마케팅을 위해 기업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면서 청소년들에 대한 다양한 욕구와 성향을 분석함으로써 나타난 세대론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데는 아마도 세대구별 방식이 단순했던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를 맞으면서 인간의 생활과 사회구조는 크게 변화됐기 때문에 기성세대와 젊은이로 나누던 지금까지의 양분법만으로는 이들 두 세대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거센 변화의 소용돌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세상은 변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풍경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의 인권적 삶이다.물론 아이들도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반란은 청소년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역사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고, 그러한 반란은 결코 적지 않았으며, 현재도 크고 작은 반란은 청소년자치활동의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일제하 3․1 민족해방운동, 6․10 만세운동, 1929~1930년의 광주학생운동의 물꼬를 트기까지 중심 세력은 다름 아닌 중․고등학생인 청소년이었다.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을 기리는 학생의 날은 그 주체적 저항을 상징한다. 4.19와 한․일정상회담반대운동도 그 연속선상에 있지만 그 뒤, 한국의 역사에서 청소년들은 오랫동안 감추어진 존재였다. 청소년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1987년 6월, 바로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서고련)을 통해서였고, 이후 고등학생운동은 88올림픽이 있던 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보충수업, 자율학습 폐지운동’으로 이어졌으며, 고등학생운동이 전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으로 인한 교사 대량 해직 사태였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청소년자치활동은 인터넷의 발달로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청소년자치활동이 청소년 인권신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청소년자치활동이 지속적인 운동으로써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데는 그 한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청소년자치활동의 모습은 그 편차가 클뿐 아니라 여건도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제 친구가 학생회장인데요. 걔도 뭐 하고 싶어 한 게 아니라 대학 잘 가려고 그냥 한 거래요. 선생님들은 그렇게 뽑아놓고 대학 잘 보내려고 봉사점수 그냥 주고요. 정말 짜증스럽네요.”
“학생회가 하는 일 전혀 없어요. 그냥 대학 잘 가려고 하는 거지... 우린 다 그렇게 생각해요.”
“학생회 회의 공고도 없어요. 회의는 하는 건지... 초.등학교 때는 회의 내용을 회의록 만들어 기록하는데, 고등학교는 뻔해요. 교칙 잘 지키자. 청소 열심히 하자 등... 유치해서... 교무회의 내용이나 운영위원회의나 학생회 회의 등 학생들에게 다 공지되면 학교에서 하는 일에 관심 갖고 참여할 생각이 있는데...”
“학생회요. 믿을 수 없어요. 진짜 공약 실천하려면 교칙 위반해야 하는데 하겠어요? 대학가려고 하는 짓인데...”

'유엔 아동․청소년권리협약’은 아동․청소년을 보호의 대상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권리 주체로 인식하는데 필수적인 권리로서 참여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참여의 권리를 의사표현의 자유와 자기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권리,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아동․청소년 자신의 능력에 부응하여 적절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권리주체로서의 한 개인이 온전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여의 권리가 보장되었을 때를 의미하며, 학교에서의 학생의 권리는 자기 결정과 같은 ‘참여’가 보장되어 있을 때 그 권리가 온전하게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의 참여권, 즉 적법절차를 보장받을 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학생 참여가 교무회의, 학교운영위원회, 학칙과 생활규정의 제․개정, 징계위원회 등에서 여전히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회자체에도 있다. 형식적인 학생회 선거를 치르면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다보니 학생회 활동의 주체가 되는 학생들도 학생회 사업에 대한 전망과 구상을 가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학생회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회에게 자율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주지 않는 학교 측의 태도다. 그러나 학생회의도 형식만 갖추고 있을 뿐 학생들의 다양한 의사를 모으고 학교 측에 전달해 현실화시키는 본연의 역할과 거리가 멀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동아리 현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아리활동도 정말 문제가 많아요. 풍물반, 방송반, 교지편집실, 학생부 같은 동아리들만 잘해주지 나머지 동아리들은 만나는 것도 바깥에서 사비내서 모인다니깐요.”
“지도 선생님들은 자기 동아리 애들이 누군지 모르고, 동아리 애들도 지도 선생님이 누군지 모르고 그냥 따로 따로예요. 그리고 학기 초에 동아리 들지 말라고도 해요. ‘너 동아리 들면 공부 못한다. 들지 말아라.’ 처음에 못박더라구요.”
“지도 선생님이 꼭 있어야 하는데 지도 선생님 못 구해 동아리 못 만드는 경우도 많아요. 지도선생님 해달라고 애들이 부탁하지만 선생님도 바쁘다면서 잘 안 해주세요.”

학교에서는 풍물반, 교지편집부, 학생부 등 특정 동아리에 대해서만 예산지원을 하고 있다. 동아리활동을 활성화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아리 들어가면 공부 못한다”는 식으로 동아리 활동의 참여를 비공식적으로 막고 있었으며, 지도교사를 못 구해 동아리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하고 있었다. 청소년자치기구에 대해서도 별생각이 없다.

“글쎄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지만 참여하지 않을 것 같아요. 공부 아닌 다른 활동하는 것을 부모님들이 반대하니깐... 저도 못할 것 같아요”
“필요하긴 한데, 실질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애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거예요. 시간도 그렇고, 권한문제도 그렇고...참여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네요.”
“만들어도 우리가 포기할 거예요. 저희한테 어른들이 권한을 주겠어요. 전 어른들 못 믿어요.”

대부분 청소년들은 청소년자치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인 참여에 대해서는 “글쎄요? 생각해 봐야겠는데요”라는 시큰둥한 대답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잠재적으로 어른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뭔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불이익이 올 것이라는 생각, ‘손해=찍힘’은 늘 같은 연결선상에서 아이들을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옥죄고 있었다. 찍힘은 곧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의 어려움과 직결돼 있으며, 대학 가기 힘듦과도 연결돼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들이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못해 두려움으로 자리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반란이 학교나 지역사회를 일시적으로 교란하는 데 그칠지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를 재편하는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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