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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에서 열린 지역운동의 소통과 연대 방안 (심규상)

곳곳에서 '지역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장(충남대 교수)은 지역운동이 뜨는 이유로 '지역운동에 뿌리를 두지 않은 전국운동'의 쇠퇴를 꼽았다.

그는 30일 배재대학교 국제교류관에서 열린 '2007대전지역사회포럼' 주제 강연을 통해 "그동안 운동역량이 중앙에 집중되면서 지역과의 운동 역량의 격차가 확대됐고 결국 사회 구조의 변화나 사람들의 삶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왜? 그가 예시한 사례는 두 가지. 하나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쌀 개방 반대투쟁이다.

낙천낙선운동으로 부패 정치인 상당수가 낙선되고 국회의원 정수도 일정하게 줄어들었다. 박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민운동이 마치 혁명군처럼 국회를 장악하는' 전과를 올렸다.

낙천낙선운동, 쌀 개방 반대운동이 일회성으로 끝난 이유

박 교수는 "하지만 그 후 슬그머니 의원 정수가 원래대로 돌아가고 국회 또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며 "이는 전국적 운동을 통해 획득한 '제도변화'를 열매 맺게 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90년 초 시작된 쌀 개방반대투쟁은 정부로부터 42조원의 농업투융자계획을 세우도록 했고 2003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은 이른 바 119조원 투융자 계획을 수립하게 했다. 하지만 전국적 운동은 말했지만 누구도 풀린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그럴 역량도 없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현실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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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뜰 나눔장터 (대전여민회)


그는 "결국 막대한 돈이 지방토호와 일부 약삭빠른 농민 배를 불러주었을 뿐 다수 농민들은 빚만 늘어나 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지역이 바꾸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 즉 "지역운동을 토대로 한 전국운동의 발전을 추구하자"는 역설로 모아진다.

박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앞세운 신개발주의, 신성장주의의 포로가 되고 있다"며 "지역운동을 통해 신개발주의 광풍에 맞서 지역을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생활현장인 지역을 새로운 삶의 공동체로 만들어 중앙권력을 변화시키는 진지로 구축하자는 호소다.

"운동이 즐겁지 않으면 아예 손을 놓아라"

어떻게?

권선필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도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활동, 기초적 인간관계, 지식의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지속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우 대전충남통일연대 조직위원장은 "각 노동, 여성, 빈민 등 부문 운동진영 또는 단체 간 소통과 신뢰에 의한 연대와 화합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지역 의제에 대한 정기적 의사소통구조를 만들어 토론 및 교육을 통한 대안 찾기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민경우 한국진보연대 정책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은 "서울 경기지역에서도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 등 서민대중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경희 대전여민회 공동대표는 "그동안 단체 대표를 맡아 온 경우에도 일상적인 별도의 사업을 맡아 주민들과 함께 기획에서 마무리까지 직접 챙겨왔다"며 "단체 상근자 등 운동 주체들이 권력화돼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단체 상근자나 운동가들은 지역 주민들의 주체 역량을 강화하는 일 속 자체에서 즐거움(보람)을 찾아야 한다"며 "일이 즐겁지 않으면 아예 손을 놓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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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배재대에서 열린 '지역운동의 희망을 찾아서' (심규상)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대안의 하나로 대전참여자치연대의 3지체, 3운동론을 소개했다.

"소통과 연대 계기 만들기"

지역사회 권력 감시운동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권력영역)에서, 정책의제 대항 담론의 형성은 대전시민사회연구소(연구영역), 마을어린이도서관만들기 등 주민사업은 주민운동지원사업단(주민영역)이 맡아 진행하고 있다는 것.

이날 지역사회포럼에서는 교육, 노동, 문화예술, 지역 언론, 인권, 통일, 환경 등 각 부문에 대한 분야별 토론도 진행됐다.

이날 포럼 진행을 맡은 대전시민사회연구소 관계자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진보개혁세력의 성과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지역운동의 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지역사회운동의 소통과 연대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지역사회포럼은 대전지역 진보개혁세력간 단절을 넘어 소통과 연대를 위한 한시적 네트워크로 대전지역 35개 단체가 조직위원회를 구성해 행사를 벌였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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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성공회대NGO자료관에서 가져 온 자료입니다.
참고하세요..

본 자료는 2007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1차 정책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입니다. 세부 내용은 첨부자료를 이용하시기 바라며, 전체 프로그램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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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하승우 박사의 글입니다. 얼마 전에 수원 지역에서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양해를 구해 싣습니다.

새로운(?) 비전으로서 풀뿌리민주주의와 지역운동


하승우1)


1. 들어가는 말


현재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그 위기의 여러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해왔기 때문에 그 위기의 단면들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직 확대, 한미FTA, 토건국가, 삼성공화국, 보수언론2) 등의 단어들은 도저히 견디지 못할 무게감으로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사실 이런 큰 얘기들을 이해하지 않아도 얼마 전 EBS 지식채널e의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이미 외딴 낭떠러지에 서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초딩’의 문제는 바로 우리 ‘미래’의 문제이고 그들의 고통과 자살은 미래의 고통과 그 파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극복해 가야할 소위 진보운동3)은 지나치게 권력화되고 대중과 분리되어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으며 과거의 관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합법주의에 매몰되고 있으며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진보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박래군 2007). 여기에 조금 더 덧붙이자면 진보운동은 과거의 낡은 이념적/정파적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대립구도는 내용적인 대립이 아니라 내용을 바라보는 기본틀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고, 그 틀을 벗어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4)

그리고 사회가 암울해질수록 진보운동이 개입해야 할 이슈는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운동의 침체는 활동가의 감소, 활동연령의 고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활동가들에게 과중한 활동력을 요구해 지속적인 활동을 어렵게 하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또한 과거 군사독재 때는 국가/시장 대 시민사회/민중의 대립구도가 유지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민사회 내부의 분화, 즉 뉴라이트나 보수세력들이 시민운동의 이름을 내걸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5) 즉 보수적 시민운동이라는 생뚱맞은 경향이 출현하기도 한다.6) 그리고 민중진영 내부도 정규직/비정규직/실업 간의 대립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7) 따라서 과거에는 국가/시장을 대상으로 뚜렷한 대립선을 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기가 어렵다. 더구나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의 출현은 그런 대립선을 긋는 것을 마치 시대에 맞지 않는 케케묵은 행동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풀뿌리민주주의, 풀뿌리운동, 지역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내용에 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이런 관심이 높아지게 된 그 맥락을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예전에 없었던 운동도 아닌데, 왜 하필 지금 그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걸까?



2. 운동의 연속과 단절: 386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고리들


기존의 사회운동에서는 풀뿌리민주주의, 풀뿌리운동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고 지역운동, 지역사회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것은 사회운동이 여전히 조직중심이고 ‘풀뿌리’라는 말이 가진 가치지향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사회운동은 지역사회를 운동을 펼치기 위한 장으로 파악한다. 예를 들어, 김현우는 지역사회를 “자본의 포섭과 통제, 회유와 그에 대한 순응과 크고 작은 갈등, 저항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각축장”(김현우, 2005: 83)하면서, 지역노동시장에 대한 개입, 지역경제운영을 위한 지역파트너십, 지방자치체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개입, 사회공공성 담론에 기반한 지역이슈, 지역발전전략이나 성장기획, 지역주민과의 유대강화에서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결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김현우, 2005: 86~90). 그런데 이런 관점은 정책이나 이미 존재하는 지역자원과의 연대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런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즉 조직화 이전에 필요한 그런 조직을 구성하기 위한 과정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한계를 가진다.

그리고 시민운동은 풀뿌리화를 위기극복의 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기존의 운동에 대한 치열한 반성의 결과라기보다는 시기적인 방편으로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8) 왜냐하면 어떻게 풀뿌리화를 할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전략이나 실천방향 없이 담론으로만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9) 풀뿌리화는 단지 운동의 폭을 더 확장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운동에 대한 관점변화를 요구한다.

사실 한국사회의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은 그 내용이나 지향이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중의 욕구나 의식을 인정하지 않고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소위 ‘과학적인 이론’의 틀에 운동의 방향을 맞추고자 한다는 점이다. 즉 민중이나 시민을 역사의 주체라 얘기하지만 정작 그들이 주체화되는 과정을 마련하지 않고 조직내 민주주의도 취약하다.

그런데 이런 경향을 한국사회 운동의 근본적인 성격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조직 중심의 운동관이 대두한 것은 맑스-레닌주의가 보급되고 과학적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중심적, 이론중심적 운동방향이 강화된 1980년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10) 그리고 그 이전의 운동 1970년대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가톨릭 노동청년회, 가톨릭농민회, 크리스챤 아카데미, YMCA노동교육협회, 수도권특수선교위원회, 도시산업선교회, 야학협의회 등이 추구했던 운동은 1980년대와 다른 결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홍은광에 따르면, 1971년에 프레이리 교육사상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기독교 교육운동 활동가를 중심으로 프레이리 사상이 논의․실천되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과 더불어 선교조직 방법론으로서의 알린스키의 조직 이론이 중요한 실천원리로 자리잡았고, 이는 ‘의식화․조직화 교육’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의식화․조직화’는 이후 민중교육운동의 중요한 지향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후반 활동하였던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는 알린스키의 조직화론과 프레이리의 의식화론에 기반하여 빈민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조력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 나감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인식해나가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의식화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홍은광, 2003: 119~158)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 얘기되었던 의식화, 조직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맑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의식화, 조직화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의식화와 조직화라는 말은 동일하지만 그 기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앞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대중이 자신의 조건과 세계를 인식하고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강조했다면, 뒤의 의식화와 조직화는 전위조직이 대중을 계몽시키고 선도하는 정치세력화를 강조했다.11)

분명 사회운동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지만 사회운동을 바라보고 이끄는 관점은 단절되었다.12) 그리고 이 단절은 기존에 진행되어 왔던 사회운동을 자유주의나 개량주의 등으로 단순화하고 폄하하는 경향을 낳았고, 사회변혁을 둘러싼 논쟁마저도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특정 텍스트의 과학성이 쟁점의 수준과 논의의 진척에 따라서 검증되기보다는, 어떤 텍스트에 권위가 항구적으로 부여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허재영 2004: 193)가 발생했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 중 운동을 이끌었던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운동의 성과를 독점하고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기득권이든 운동권이든 그 방식이 동일했다. 즉 그 누구든 자신들의 입을 빌어, 또는 자신들을 통해서만 민중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민주주의와 풀뿌리운동은 기존의 운동에 대한 반성이자 단절된 고리를 다시 이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3.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


시민운동, 지역운동, 풀뿌리운동은 어떤 차이점을 가질까? 제주참여환경연대의 고유기 사무처장은 시민운동과 지역운동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고유기, 2006)

시민운동

지역운동

가치지향적

담론적

대변자, 감시자

갈등주체, 갈등중재

정책지향적

실용적

감시자, 제안자

갈등주체(관리), 갈등중재

그렇다면 풀뿌리운동의 위치는 어디일까? 일단 풀뿌리운동의 특징을 뽑아보자면,

- 풀뿌리운동은 주민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가는 운동이다.13)

- 풀뿌리운동은 주민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시작하고 주민에 대한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전제하지 않는다. 상식에서 시작해 주민이 전체적인 사회구조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 풀뿌리운동은 활동가와 주민의 상호 이해와 신뢰관계 위에 구성된다. 삶의 터전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활동가가 아니라 주민들이다.

- 활동가는 주민을 끌어가는 지도자가 아니라 주민이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 활동가는 새로운 지도자를 기르는 역할을 해야지 스스로 지도자가 되면 안 된다.

- 풀뿌리운동은 느린 운동이다.14)

이 특징에 따라 표를 다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시민운동

지역운동

풀뿌리운동

가치지향적

담론적

대변자, 감시자

갈등주체, 갈등중재

정책지향적

실용적

감시자, 제안자

갈등주체(관리), 갈등중재

구체적인 욕구를 정책화

경험적 지식과 실용성

제안자이자 변화추진자

갈등주체이자 갈등해결자


예컨대 풀뿌리운동은 ‘지역’보다 ‘삶의 공간’으로 정의되어 “폭넓은 의미의 지역운동과는 구분”되고 있다. 즉 운동공간을 지역으로 설정한다 하더라도 전문가나 활동가 중심의 운동노선을 따르면서 사람들을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킨다면 풀뿌리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하승수, 2006). 즉 풀뿌리운동은 지역을 기반으로 삼기는 하지만 단순히 지역에서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풀뿌리운동으로 정의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풀뿌리운동을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겠다.

주민운동의 관점에서 풀뿌리운동을 바라보는 이호는 주민을 “권력을 지닌 자나 전문가들로부터 대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 가야 할 주체”(이호, 2002: 47)라 명명한다. 그러면서 이호는 “주민자치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를 통해 평가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는가,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를 과정으로서 개념지웠듯이, 주민자치운동 역시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호, 2002: 57)고 주장한다. 즉 주체는 ‘존재’의 관점이 아니라 ‘생성(becoming)’의 관점이다.

그리고 풀뿌리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풀뿌리운동이 실현하는 민주주의다. 사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은 민중(demos)의 지배(kratia)였다. 그러니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에서는 같은 의미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동일한 의미가 반복되게 된 이유는 기존의 민주주의가 그 어원에 담긴 뜻을 실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의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민중이 아니라 민중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또는 그렇게 스스로 칭하는 사람들이 민중을 지배했다. 즉 언제나 이름 있는 대표자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이름 없는 민중들을 지배했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이런 ‘거짓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등장했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거짓된 현실을 바꾸려는 ‘운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풀뿌리민주주의의 내용 역시 특정한 것으로 정해질 수 없고 현실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다만 풀뿌리민주주의를 특징짓는 그 원칙은 풀뿌리운동과 마찬가지로 어떤 이가 다른 사람을 대신하지 않고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 과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4. 풀뿌리민주주의가 기성담론에 맞설 힘은 있는가?


이런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가 기성의 보수화된 담론이나 잘못된 진보담론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있는가? 즉 기득권세력이 주장하는 선진화담론이나 신개발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가? 특히 한미FTA를 비롯한 자본의 세계화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사실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는 특정한 내용을 의식화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내용을 담론으로 제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런 대안담론을 구성하지 않는다면 지역적인 실천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겠지만 국가적인 변화에서 한계에 부딪치고 그 변화의 파도에 휩쓸릴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이론화 방식과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이론이 구성되어야 한다. 즉 소수의 이론가들의 머리로 만든 대안이 아니라 대중(지식인도 대중이다)의 경험과 지식이 한데 어울려 미래의 대안을 구성해야 한다.

일단 현재 국가나 시장의 개발과 자본의 세계화를 막을 방안은 지역 차원에서의 변화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개발과 세계화가 빼앗아가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권한이 바로 ‘자치(自治)’와 자기결정권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은 우리 삶의 자기결정권을 지속적으로 박탈하고 있는데, 지역사회에서의 변화는 그런 자기결정권을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꼬뮨commune이라 부를 수도 있다). 어렵고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전개되는 운동은 개인의 삶과 생활 자체를 변화시키며 능동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15) 만일 자치와 자기결정을 어떤 완성된 이상적인 단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실에서 실천해야 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면, 지역적인 변화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작은 지역적인 변화만으로 국가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어렵지만 작은 지역의 실험들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낼 때 사회는 변할 수 있다.

실제로 지역사회의 비민주적인 권력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노동조합주의(community unionism)는 노동운동과 지역사회의 접합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비정규직 또는 이주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지역사회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에서도 개별 기업이나 해당 산업의 틀을 넘어서 지역적인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김현우 외, 2006: 26~30).16)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매개로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도 이루어지고 있다. 사업장 급식을 하는 기업과 농민들이 물류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있고17), 이런 운동은 친환경학교급식운동과도 맞물리는 등 다양한 접합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희망무역, 공정무역으로 얘기되는 fair trade는 제 1세계와 제 3세계를, 지역과 지역을 잇는 새로운 실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생협운동과 결합된 희망/공정무역은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전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고18),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s) 등도 대안경제의 가능성을 가진 지역적인 대안이다(호지/ISEC, 2002; 크롤, 2003; 하승우, 2007).

이런 구체적인 실험들을 묶을 수 있는, 생활과 세계화를 잇는 대안담론이 필요하다. ‘탈정치 생활운동’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된 말인데, 생활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강한 정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라는 말은 선거나 정당같은 제도화된 정치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을 나누고 조절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뜻한다.19)

그런 담론구성을 위해서는 일단 생활의제가 전국적 의제, 지구적 의제와 맞닿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계속 만들 필요가 있다. 희망무역/공정무역이라 불리는 fair trade가 생활과 지구를 잇는 단초를 마련하듯이, 학교급식과 WTO조약이 연관되듯이, 일상생활 속에서 세계화, 지구화와 연관된 구체적인 사안들을 계속 찾아내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슈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이 생활의 담론은 이론과 실천이 분리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진다).20)

이런 이슈들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욕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 이제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린스키는 미국 빈민운동의 경험을 통해 모든 운동이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운동은 현실이 “직접적인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권력장치의 투기장이며 그 안에서의 도덕이란 한낱 자기 이익과 정략적인 행동을 위한 수사학적 원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모순되고 이중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알린스키, 1983: 141).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중요성을 절대로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이 인간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인 추진력의 기능을 하고”, “자기이익의 중요성은 한 번도 의심되어 본 적이 없고, 인간 생활의 불가피한 요소로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알린스키, 1983: 155).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의 변화는 추상적인 당위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욕구(때론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 해도)로 가능하다. 구체적인 삶의 욕구가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고, 설령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더라도 그것이 기존의 제도적인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운동으로 전환된다면 주민의 능동성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띠라서 주민의 이해관계나 욕구를 부정하지 말고, 다만 그것이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되고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21)

이런 이슈와 대안담론구성에서 중요한 원칙이 있다. 일단 그 이슈와 대안담론은 주민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알린스키는 지역조직화 전략에서 주민의 관습, 경험, 전통, 금기, 가치관 속으로 들어가 그 생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주민들의 전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편견과 믿음과 가치관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고 “그것은 민주적 행동을 방해하는 사회적 힘과 마찬가지로 건설적이며 민주적인 행동을 주장하는 사회적 힘을 확인하는 것”(알린스키, 1983: 119)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고 의사소통도 그런 체험을 통해 가능하다. 따라서 운동은 주민들 속에서 주민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그들의 잠재된 능동성을 자극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담론은 사람들의 의식틀을 바꾸는 더 보편적인 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치심리학자 레이코프는 이렇게 얘기한다. “사무실이나 교회 등에서 토론이 벌어졌는데 누군가 “나는 게이들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안 그래?”라고 말했을 때 간단하게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나는 평등권을 믿어. 그게 다야. 주정부가 사람들한테 너는 누구랑 결혼하고 누구랑은 결혼하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 결혼은 사랑과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할 권리를 부인하는 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거야.”라고 응수하는 것이다.”(레이코프, 2005: 104~105) 풀뿌리운동이나 풀뿌리민주주의가 지역을 바꾸고 국가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전략임을 확신시키려면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보육, 교육, 문화, 참여 등 풀뿌리운동의 화두를 ‘공공성’과 묶을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런 대안담론 구성을 위한 주민/대중/시민의 역량강화(empowerment)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볼 때, 주체를 성장시키고 역량을 강화하는 과제는 시민/지역/풀뿌리운동 모두의 몫이다. 싸우고 개입해야 할 영역이 넓어지고 많아질수록 그에 개입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어떤 회의 과정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고, 주민들이 직접 지역을 경험하고 지역의 현황을 이미지로 보여주게 하는 것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오래된 미래가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1)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2) 전규찬은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바로 이 선전 권력에 의한 언론 역능의 구속이 그 중대한 요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전규찬, 2006: 266)

3) 무엇을 진정 진보적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조금 뒤에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라 진보운동이라 부르려 한다.

4) 이 틀은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과 비슷한 말이다.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레이코프, 2005)

5) 이들은 시민운동이 과거 민중운동과 동일하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는 “참여연대의 성공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북한의 식량난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기존 운동권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NL과 PD라는 핵심 콘텐츠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변화 없이 시민운동의 외피를 뒤집어쓰는 ‘민중운동의 시민운동화’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조선일보> 2006년 7월 10일자)

6) 이상돈은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데, “민노총과 전교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아름다운재단과 환경재단 등에 비한다면 보수단체의 조직과 능력은 미미하다. 다만 反좌파를 염원하는 국민 여론에 부응, 주요 보수 신문이 보수단체의 주장을 일정 부분 반영해 주고 있어 그런대로 국민들에게 활동상이 알려지고 있다.…보수시민운동에 있어 또 하나의 좌절은 운동을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는 우호적 정당이 없다는 현실이다. 한나라당이란 큰 야당이 있기는 하지만 보수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정체성이 희미하고 용기도 없는 현실안주형 정당일 뿐이다.”(<브레이크뉴스> 2006년 11월 22일자) 그 내용은 정반대이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들이다. 진보운동은 이런 따라쟁이들에게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나?

7) 김원은 한국통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내부정치를 분석하면서 “정규 비정규 노동조합 내부정치라는 이슈가 가진 의미는 첫 번째,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형성된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균열 구도―민주 대 어용 혹은 정규직 내부의 실리주의를 둘러싼 균열―가 ‘정규-비정규’라는 새로운 사회균열로 변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두 번째, 산별체제를 지향하지만 ‘유사기업별 노조체제’로 유지된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자기한계’를 드러내는 사례이다. 세 번째, 세계화 이후 확대된 비정규 노동의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가 지체됨으로 인해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대표성의 위기’―가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라고 얘기한다(김원, 2007: 47).

8) “민주화운동세력들은 대중과 만나는데, 특히 대중을 교육하는데 등한시했다. 한국의 노조는 평조합원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으며, 시민운동은 풀뿌리 조직을 건설하는데 소홀했고, 진보정당은 평당원 교육에 진력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의 진보세력들은 사회운동의 뿌리는 간과했던 것이다.”(김정훈, 2006a: 76)

9) <희망제작소>의 김광식은 “공중전이 주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아젠다를 선정해 풀뿌리운동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풀뿌리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없음을 잘 보여준다(<시민의신문> 인터넷판 2006년 7월 6일자). 이에 대해서는 곽형모의 글이 적절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직도 풀뿌리운동을 정치권력의 향방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즉 부분과 부분, 전체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발적 변화보다는 권력구조의 하부인 풀뿌리에서부터 포섭해 들어가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회변화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풀뿌리는 그야말로 창발적 변화의 중심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기반이요, 하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시민운동 리더십도 창발성에 기초한 리더십이라기보다는 지역에 ‘민주주의 포스트’를 세우기 위한 리더십이 된다.”(<시민의신문> 인터넷판 2006년 4월 3일자)

10) “80년대 맑시즘의 유입으로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레닌주의 중심의 사회변혁론이 중점적으로 대두됨에 따라서 민중교육에서도 사회구조적 변혁 추동의 의미가 더욱 강해지게 된다. 이에 따라 민중교육의 개념도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는 사회변혁운동의 측면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강해진다.”(홍은광, 2003: 24); “1980년대 초반, 야학 교사들은 각기 분산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야학교육의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일개 야학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교재 편찬 등을 위해 ‘야학협의회’를 결성하기도 하고, 1982년에서 1983년까지는 야학교사모임을 가지면서 야학의 성격과 방향, 교사훈련 프로그램, 교재편찬, 수업방법론, 야학운영방법, 야학노동자 의식구조 등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한다.…‘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야학에서 담당하였던 노동교육 기능이 민주노조운동의 소그룹 학습운동으로 상당부분 옮겨지면서, 노동야학으로서의 야학의 기능이 약화되기 시작한다.”(홍은광, 2003: 96); “의식화 교육론이 맑스-레닌주의적으로 해석되면서 기독교 교육운동은 전체 민중교육운동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되며, 동시에 프레이리 교육사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홍은광, 2003: 135)

11) 유경순은 1985년 8월 25일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의 결성 이후의 운동관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서노련은 “‘변혁성과 계급성’을 관념적으로 인식했으며, ‘정치투쟁’을 우위에 두고 경제투쟁과 노동조합을 수단화시켰고 노동자 대중을 수동적 존재로 인식하는 대중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대중정치노선이란 ‘대중의 정치투쟁’이 아니라 ‘전위’로 자처하는 정치적 집단이 ‘선도적인 정치투쟁’을 통해 대중의 정치의식을 고양시켜 대중을 정치투쟁에 참여시키는 투쟁노선이다. 이들은 대중의 본질적 혁명성은 전위집단의 선도적 정치투쟁에 의해 표출된다고 생각한다.” “조직내 민주주의 부재 또는 상부에서 ‘내리꽂기’ 방식의 조직운영은 초기 모호한 성격의 조직정체성을 조직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것을 억압했다. 심지어 조직원을 대상화시키기까지 했다.” “하루는 공장활동을 하는 후배 조직원이 보자 하여 만났다... ‘언니, 난 우리 조직의 대표인 동지가 싫어. 학생출신인데 너무 어려운 말만 해.’...‘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해, 너의 단위에서 함께 얘기하고 함께 해결해야지’ ‘얘기해도 안 될 걸 뭐, 그 동지는 나보다 훨씬 말을 잘해서 다 받아칠 거야, 그러니 얘기할 자신도 없어.’...말에 자신이 없다...‘언니, 삼민이 뭐야?’”(유경순, 2006)

12) 이런 조직관은 기성의 다수자운동을 비판하며 소수자운동을 주장하는 이론가에게서도 여전히 낭만적으로 회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민중혁명의 승리를 표시하는 1987년을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1985년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억한다. 구로동맹파업, 그것이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운동마저 금지된 상황에서 사업장 단위를 뛰어넘는 최초의 연대파업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것을 통해 이제 운동은 양심에 기초한 자생적 투쟁에서 벗어나 정확하게 레닌이 말하는 “목적의식적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선언되었고, 노동운동은 계급적 노동운동, 계급투쟁으로 조직화되어야 한다고 요구되었으며, 학생운동을 비롯한 다른 모든 운동이 그 혁명적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천명되었다. 그리고 운동이 ‘목적의식적 혁명운동’이 되어야 하는 만큼, 이론이나 이념 역시 혁명적 사회주의의 잣대에 따라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했다.”(이진경, 2006: 295)

13) “참된 교육은 ‘A’가 ‘B’를 위해, 또는 ‘A’가 ‘B’에 관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함께 행하는 것이다. 양측을 매개하는 세계는 양측에게 영향과 자극을 주며, 세계에 관한 개념과 견해를 형성하게 한다.”(프레이리, 2003: 119)

14) “조작의 상황에서 좌익은 거의 언제나 ‘신속한 권력 장악’의 유혹을 받는다. 그럴 경우 좌익은 피억압자와 더불어 조직을 형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잊고, 지배 엘리트와의 불가능한 ‘대화’에 주력하게 된다. 그 결과 좌익은 지배 엘리트에 의해 조작되어 제 발로 ‘현실적 사고’라는 이름의 엘리트 게임 속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프레이리, 2003: 192)

15) “세계화는 생활세계를 변화시킨다. 비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생활세계를 파괴시키는 효과를 갖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한 경향을 상쇄할 수 있는 반대경향 역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래로부터의 반세계화 운동이며, 또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김정훈, 2006b: 332)

16) 파인(J. Fine)은 “지역사회 노동조합이 노동관련 이슈들을 많이 강조하지만 주거와 보건, 교육 등 다양한 생활상의 측면들도 포함하는 폭넓은 의제를 추구한다”(Fine, 2005: 154)고 주장한다. 파인에 따르면, 미국사회에서 지역사회 노동조합운동의 한 부분인 이주노동자센터만 따져도 80개 이상 지역에 약 133개가 만들어졌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17) “경북의 농촌 지역 생산자들이 식당을 갖고 있는 기업들과 협약을 맺어 지역 농산물 직거래를 위한 생산 및 지역 물류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학교 급식뿐만 아니라 기업 구내식당 급식․병원급식․공공기관 급식 등 사회적 수요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농민 운동과 노동운동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서, 민주노총 사업장 급식을 지역 농민회와 연대하여 지역 농산물로 수급하려는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윤형근, 2006: 121)

18) “생협의 목표는 기존의 산업질서와 그 가치체계에 복종하지 않으며, 자립적이며 생태적인 자급사회라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생협은 이런 점에서 반지구화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그러나 생협이 공정무역과 만나게 되면서 생협은 대안적인 지구화의 단서를 제시하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즉 제3세계의 민중/여성과 제1세계의 여성 소비자가 지구적인 호혜적 관계망을 구축함으로써 ‘안전 식수에 대한 밀레니엄 발전 목표’와 같이 유엔이 국가의 과제로 제시한 것을 민간의 힘으로 이루어내고 있음은 물론, 초국적 자본에 빼앗긴 식량주권을 초국적 수준에서 회복해 가고 있다.”(김정희, 2006: 132)

19) 한국사회는 과거 식민지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정치라는 말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운동세력에서는 정치라는 말을 지나치게 순수화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정치가 높은 선을 구현하고 악을 몰아내는 방법인양 사고되는데, 사실 정치는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단계씩 발전하는 불순하고 잡종된 개념이다.

20) 진보정당이 이렇게 찾아낸 사안들을 정책화, 제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가 힘을 받을 수 있을 터인데, 아직까지 그런 진보정당이 구성되지는 못한 듯하다.

21) 로젠버그(M. B. Rosenberg)는 비폭력대화(NVC: Non-Violence Communication)의 단계를 관찰, 느낌 표현, 욕구표현, 구체적인 행동부탁의 4가지로 제시하면서 그런 이해관계나 욕구의 비폭력적인 공감가능성을 제안한다. 로젠버그는 “공감이란 우리의 모든 관심을 상대방이 말하는 것 그 자체에 두는 것”이고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로젠버그, 2004: 140)이라고 주장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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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기. 2006. “지역운동의 현실과 과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포럼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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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2006a. “민주화세대는 어디에 있는가?”, 『황해문화』 2006년 겨울호.

김정훈. 2006b. “민주화․세계화 ‘이후’ 생활세계의 변화와 시민참여적 대안”. 신영복․조희연 편. 『민주화․세계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 체제모형을 찾아서』. 함께읽는책.

김정희. 2006. 「필리핀 네그로스 지역의 공정무역과 여성」. 『여성학논집』 제 23집 2호.

김현우. 2005. “지역사회와 결합하는 노동운동을 위한 시론”. 『노동사회』 2005년 12월호.

김현우․이상훈․장원봉. 2006. 『지역사회와 노동운동의 개입전략』.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레이코프, 조지. 유나영 옮김. 『꼬끼리는 생각하지 마』. 삼인.

로젠버그, 마셜 B. 캐서린 한 옮김. 2004. 『비폭력 대화: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바오출판사.

알린스키, S.D. 조승혁 편역. 1983. 『S.D. 알린스키: 생애와 사상』. 현대사상사.

유경순. 2006. “서울노동운동연합의 등장과 정치적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논문.

윤형근. 2006. “먹을거리의 공공화와 새로운 지역자립운동”. 『환경과 생명』 제 49호.

이호. 2002. “주민자치․주민자치운동의 현황과 과제”. 시민자치정책센터 편.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갈무리.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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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오관영 처장님의 지방선거 평가 글입니다. 지난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회 자체 토론회에서 발제할 글을 다시 정리해주셨습니다. ==============  

2006년 지방선거에 대한 평가와 지역운동의 진로


2006. 6. 12. 오관영



  2006년 지방선거가 끝났다. 구속된 후보나 선거공보도 보내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고 심지어 후보가 없는데도 당선되는 등의 선거결과는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선적이고 무능한 여당의 참패, 노무현 정부에 대한 탄핵, 중앙정치에 대한 생활정치의 패배 등등이 이번 지방선거를 대한 대체적인 평가를 인 듯하다. 또한 여당의 혼란과 정개개편 논란, 향후 대선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박근혜대표, 초록정치연대 등 5.31공동행동의 녹색당의 창당 움직임, 최열대표의 서울시 인수위원장 참여 등은 선거이후의 향후 전망과 관련한 내용이다.

  이러한 각각의 정치세력의 움직임이 시민운동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에게 보다 절실한 평가는 지역운동의 주체 혹은 지방선거에 개입 한 시민운동의 입장에서의 평가이고 향후 지역운동 혹은 지역정치운동에 대한 전망과 관련된 평가이다.



1. 지방자치1년의 평가와 2006년 지방선거의 과제

  2006년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운동의 과제는 지방자치의 기초인‘자기결정권’즉 주민참여제도를 제도화하는 것과 개발주의에 맞서 그간 시민운동이 제기해왔던 생태, 복지, 문화 등의 가치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난 1995년 1대 지방자치단체선거로 시작하여 현재의 2006년 임기가 끝나는 3대 지방자치까지의 평가에 기인한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지난 11년간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나눠주는 분권이 확대되고 지역주민들에 대한 행정서비스가 좋아지는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반면에 지난 2월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듯 부당한 행정으로 4,200억의 예산낭비가 이루어지고, 막개발과 난개발로 자연이 파괴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이 저하되었다. 이러한 예산낭비와 막개발은 주민들을 자치(自治)의 주체가 아닌 행정의 동원 대상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행정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현재의 지방자치 하에서 이러한 잘못된 행정을 견제하고 주민의 요구를 올바르게 대의하는 임무는 지방의회에 있다. 의회는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와 조례를 집행부를 견제하는 한편 지역의 다양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정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집행부와 의회를 한 정당이 장악하고 있어 견제와 균형이라는 지방자치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개발세력 혹은 토호세력의 입장만을 과도하게 대표하는 왜곡된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 한국지방자치의 문제는 주민들의 자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속에서 경제적 측면에서 ‘지역발전 = 경제 발전 = 개발’로 인식되고 있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특정 정당의 대표성이 과다하다는 정치대표체계의 왜곡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민운동의 측면에서 한국의 지방자치 11년을 평가하면 한국의 지방자치는 1998년 정보공개법 도입을 시작으로 올해 4월의 주민소환제도도입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 중앙집권론자, 다른 한편으로 지역내 성장연합 혹은 토호세력과 대립하면서 스스로의 권리를 확대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지역 주민들은 정보공개법이 도입되자 이를 통해 판공비 공개 운동을 벌렸고, 이 운동의 결과로 주민들의 청구가 없어도 알아서 판공비를 공개하는‘적극적인 정보공개’로 법의 취지가 개정되었다. 이와 같은 주민운동과 주민참여제도와의 관계는 <표1>과 같다.


<표1> 주민 운동과 제도의 관계

주민참여제도

주민운동

프로그램

제도개혁

정보공개법

판공비공개운동, 정보공개 등

조례 제정운동

정보공개청구, 조사 및 발표

정보공개법 개정,

조례 제정

주민발의

급식/여성/주민참여 등

조례 제정운동

교육, 주민조직구성, 주민서명,

의회모니터 등

주민참여 조례

제정

주민감사청구

판공비/공무원해외연수 등

감사청구 운동

제보, 조사, 발표, 주민서명 등

주민소송/소환제도

도입요구

주민투표

직접투표(부안)/입법청원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주민투표도입

주민소환

조례제정(광주)/입법청원

주민발의운동/ 주민소환운동

주민소환제 도입


  그러나 이러한 주민운동과 제도의 변화가 지역사회를 얼마나 변화시켰고 지역의 운동주체- 특히 지역에서 생활하는 여성(주부)들이 얼마나 조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지역사회가 개발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보수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있고 지역의 정치구조는 당연히 이들을 대변하는 구조로 짜여 있는 것이다.

  시민참여는 형식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정책결정과 정책평가 과정에 지역주민이 일정한 형태로 참가하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내용적으로는 가치에 기초하여 사업의 우선순위 혹은 주민의 선호를  정책과정에 반영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 개발과 생태, 성장과 분배 등의 대립되는 가치가 충돌한다. 시민참여의 확대는 흔히 진보적 시민단체만의 참여가 아니라 새마을, 자유총연맹 등 보수적 시민단체의 참여도 포함한 확대이다. 실제로 지역의 군소도시로 오히려 진보적 시민단체가 아예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이 향후 4년간 지방자치단체의 비전과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후보자의 공약에 대하여 시민운동이 그간 주장해왔던 가치를 기준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필요했지만 이러한 선거개입이 지역사회의 유권자들에게까지 전달되어 표로 연결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지역은 강고한 보수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기 때문이다.


2. 2006년 지방선거 대응과 평가


  그간 선거에 대한 시민운동의 대응은 크게 포지티브전략과 네거티브전략,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운동과 후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운동 등으로 <표2>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표2>선거와 시민운동의 대응

기본전략

대상

운동유형

특징

방식

포지티브(positive)

유권자

공명선거운동

공정한 감시자

선거과정 감시와 정보공개



정책캠페인

정책선거 유도

유권지위원회, 정책 및

공약 제안․평가, 초청토론회


후보자

시민후보 전술

정치세력화 추진

직접 참여, 정당결성 등



지지 당선운동

후보에 대한 선호

여성후보, 환경후보 등 선호에

따른 지지표명

네거티브(negative)


낙천․낙선운동

적극적인 비판

정보공개(낙천․낙선자명단),

유권자 운동


  물론 이와 같은 선거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공명선거운동이나 정책캠페인은 계속되고 있고, 지지 및 당선운동도 낙선운동과 연계되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지지후보 선정과정에서 물갈이연대는 2004 총선연대의 낙천대상자, 총선환경연대와 총선여성연대가 발표한 반환경․반여성 후보, 도덕성 문제 및 선거법 위반자는 검토대상에서 배제했다.


  1) 생명, 평화, 성평등, 풀뿌리민주주의 등의 가치에 기초한 무소속 후보 출마

  2006년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단체의 대응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우선 초록정치연대, 구로시민센터, 군포풀뿌리정치연대, 도봉시민정치네트워크 무지개 등 단체가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을 결성하여 21명의 후보가 출마를 했다.

  10명의 초록정치연대 공식후보 중 1명, 21명의 531공동행동 후보 중 단 2명만이 당선되었다. 초록정치 의원단에 10명의 현역의원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결과는 더 참혹하다. 기존의 현역이원이 각 지역에서 우수한 의정활동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은 시민사회운동을 기반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후보자를 포함한 개인 및 그룹들의 네트워크로, 2006년 지방선거를 함께 치르고 향후 생명, 평화, 성평등, 풀뿌리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기성정당에 대해 독자적인 정치운동을 추구한다는 합의(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 2006.3, 「풀뿌리․초록정치네트워크 531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자료집」)에 따라 선거 이후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무소속 후보전술 만으로는 이들이 지향하는 초록가치의 차별성을 분명히 드러낼 수도 없고 대중에게 한국사회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정치집단임을 보여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중앙정치에 의해 뿌리 채 뽑혀진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이 땅에 초록가치를 실현할 녹색당 창당을 위해 더욱 매진할 태세이다.


  2) 매니페스토(Manifesto)운동

  2006년 지방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매니페스토(Manifesto)로 대변되는 정책선거 캠페인이다. 지난 2월 출범한 매니페스토추진본부는 기존 공약과 다르게 첫째, 검증이나 평가가 가능한 구체적 목표(수치, 달성시기, 재정적 뒷받침) 둘째, 실행체제와 장치 셋째, 정책실현 공정표(로드맵)를 포함한 ‘국민과 정권 담당자의 계약’운동을 전개하였다.(매니페스토운동은 「531 스마트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추진본부」http://www.manifesto.or.kr 참조.)

  ‘매니페스토 추진본부’는 이번 531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하여 정책선거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한국형 매니페스토 공약의 형식과 SMART-SELF 등 검증지표들이 개발되고 적용되어 매니페스토 운동의 내용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지역정치, 지방자치가 중앙에 포섭되어 방치되어 왔으나 이번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하여 지역의 소중한 활동들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라 지방선거의 의미를 살려낼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매니페스토운동이 정착되기 위해서 주민들의 요구와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개발 및 매니페스토 작성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천확정 시간을 앞당기고, 선거운동 기간에는 자유롭게 매니페스토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각 단체와 기관들이 제안한 매니페스토 형식과 평가지표들을 보완하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한국형 매니페스토 형식과 평가지표를 완성시켜 나갈 것과 전국적 규모의‘매니페스토 이행평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합리적인 이행평가 지표를 개발, 가칭 ‘매니페스토 비젼센터’설치, 정책증권거래소를 기획, 운영해 나갈 것을 향후 계획으로 발표했다.(“정책선거, 매니페스토 원년을 선언한다. - 매니페스토 추진본부 531 지방선거 총평 및 향후 활동 대국민 제안서” 참조.)


  3) 막개발․헛공약 감시운동

  시민사회연대회의에 함께하고 있는 참여연대, 전국 YMCA연맹, 함께하는 시민행동, 녹색연합, 문화연대 등 서울의 부분단체와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지방선거 연대기구 등 280여개 단체가 참여하여 구성된 2006년 지방선거연대와 경실련은 각각 ‘막개발․헛공약 감시운동’과 ‘헛공약 감시운동’을 했다.(이하에서는 지방선거연대 활동만을 살펴보겠다.)

  2006년 지방선거연대는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질 전국적인 개발주의와 복지 축소, 환경훼손 등의 현실을 극복하고 자치와 복지, 생태와 문화의 확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공동대응을 위해 결성되었다.(2006지방선거시민연대, 2006.3, 「2006지방선거시민연대 출범선언문」, www.bote.humanbelt.net 참조.)

   2006년 지방선거시민연대는 첫째, 주민소환 등 주민참여제도, 지방의원이 유급화 됨에 따라 영리행위를 규제하고 정당공천에 따른 올바른 선거구 획정 등 진정한 자치의 바탕이 되는 6대 입법과제를 선정하고 4대 지방자치단체가 구성되기 전인 4월 임시국회에서 입법할 것을 촉구했고 주민소환제가 입법되는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다음으로 2006년 지방선거는 주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환경․교통, 복지, 문화, 자치 등 4대 분야에 대해 10과제 등 정책과제를 제안하고 각 후보들에게 이의 수용을 촉구하였다. 전국차원에서 제안된 정책제안은 각 지방선거연대의 요구를 일반화시킨 것으로 각 지방선거연대와 녹색교통, 문화연대, 서울 환경운동연합 등의 부분 단체들은 각 지역과 부분의 특수성을 더해 정책제안 활동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2006년 지방선거연대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여 ‘지역발전=개발’이라는 막개발 논리에 맞서 주민들의 삶을 저하시키고 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훼손하는 44개의 막개발․헛공약을 선정했다. 막개발․헛공약의 선정기준은 지속가능성과 실현가능성을 기준으로 10개의 평가지표를 가지고 22명의 정책자문단회의와 전국에서 모인 70여명의 유권자위원회, 그리고 2006지방선거연대 집행위원회를 통해 최종 확정했다.

  2006년 지방선거연대의 공식적인 평가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방선거에 대한 최초의 전국적 대응이 이루어졌고, 주민소환제 입법을 통해 10년 동안 노력해온 주민참여제도 입법 운동이 소중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개발에 대항하여 환경․교통, 복지, 문화, 자치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지속가능한 ‘가치’에 기초한 정책제언과 공약평가를 시도했다는 것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 주민생활에 밀접한 공약들이 제법 발굴되었고 후보토론회 과정에서 헛공약․막개발로 선정된 사례들이 일부 정책쟁점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연대의 이러한 목소리가 유권자들에게 전달되어 후보들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2006년 지방선거연대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이번 선거가 정당공천제가 확대되면서 당의 개입이 확대되고, 대선을 앞두고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띠면서 정책보다는 정당중심의 선거가 이루어졌다. 특히 5월 20일 박근혜대표 피습사건 이후 한쪽으로 여론이 쏠리면서 선관위 주최의 후보 정책토론회가 무산되는 등 정책선거를 하기가 더 힘든 조건이 되었다.


3. 지방선거이후의 과제와 지역운동의 모색


  주민들의 개발요구에 비해 2006년 지방선거연대 등 지역운동이 제기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목소리는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어쩌면 지방선거에 대한 일회성 대응으로 개발을 바라는 주민들의 욕구를 바꾸고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는 후보들의 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이 확인됐다. 일상적인 시기에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생활을 바꾸고 지역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막개발을 저지할 수 없다. 2006년 지방선거의 활동은 시민운동의 시선을 지역과 주민들에게 돌려놓았다는 점에서 지역운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1) 한나라당의 지역권력 독점에 대한 개입


  3기 지방자치단체에서 특정정당의 대표성의 과잉은 이번 4대 지방선거를 통해 더욱 심해졌다. 이번 선거는 이슈 측면에서 ‘중앙권력 심판론’이니 ‘지방권력 교체론’과 같은 중앙정치의 쟁점만 부각됐고, 시기적으로는 정권의 중간평가적 의미로 시행되었다. 지방의회를 다양한 대표성으로 구성하기 위해 도입된 정당공천, 중선거구제 등은 결과적으로 역기능만 부각되고 말았다.

  정당공천, 중선거구제, 동시선거, 기초의원 기호 배정 등의 선거제도에서 드러난 부작용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정당공천제의 경우, 단순히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것보다는 시민들의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출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권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로컬파티와 같은 정치세력의 진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 우선적으로는 기초지방자치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더라도 근본적인 선거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참여예산제, 독립적인 감사 등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주민직접 참여제도와 외부의 견제장치를 통해 특정 정당이 과잉 대표됨으로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지역운동의 몫이다.

  그간의 지역운동의 전략은 지역의 이슈를 중심으로 시민을 대변하고 지방행정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입은 행정이나 의정에 대한 모니터로 나타나기도 했고 지방의제21 등처럼 제도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제도화는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확대되었다. 반면 지역주민들을 조직화하는 활동은 전면화 되지 못했고 여전히 지역의 풀뿌리는 새마을 등 관변단체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최근 유력한 시민운동의 리더쉽 중 한사람이 서울시의 인수위위원장을 맡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수락의 변은 한나라당의 독점된 구조에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역시민운동의 전략이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하는 것이라면 맞는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을 주체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선거에 많은 후보들이 약속한 참여예산제를 실현하는 것은 제도를 잘 설계하는 것에 있지 않고 참여할 주민들을 조직하는 것에 있다.


  2) 지역정치운동의 진로


  대체적으로 이번 선거는 중앙정치의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생활정치가 실종되는 형국이었다. 인물, 정책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보고 ‘묻지마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에게 초록의 가치나 생활의 가치는 별 다른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무소속 후보들이 만나는 유권자들의 공통된 대답은 “시민운동은 현 여당과 한패 아닌가?”, “먹고살기 힘든데 세금 많이 걷고 부동산 잡겠다고 해서 우리 동네 아파트값이 안 오른다.”는 것이었다. 시민운동의 경력이나 지난 의정활동의 성과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시민운동 출신들이 정치권(특히 여당)에 들어가는 것은 알고 있어도 무소속 후보들이 기존 정치와는 다른 가치와 철학에 기초하여 새로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모르고 있다. 지역정치운동이 지역유권자들에게 기존의 정치와 다른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유권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지역개발에 반대하는 모습뿐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놓고 한편에서는 일상적 정치를 준비하기 위해 초록정치의 지향을 분명이하는 녹색당을 결성을 본격화하자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변화시키는 운동을 복원해야한다고 한다. 전자의 입장은 정치와 운동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하고 일정한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인 것 같다. 반면 후자의 입장은 정치와 운동의 역할분담론은 ‘전략과 전술’이 일치해야 가능한 일이므로 정치와 운동을 역할론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지역운동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또는‘생활 정치로의 뿌리내리기’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이번선거의 실패가 무소속 후보의 불?/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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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는 2007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1차 정책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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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한 비전 만들기' 참고 자료집
 
이 자료집은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1년 동안 9차례 워크숍을 가졌던 '지역비전 만들기 워크숍'을 총 정리한 자료집입니다.
하승수 변호사님이 대표집필을 맡았고,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장 시민들의 참여에 의한 시민자치(주민자치) 실현
2장 성평등이 실현되는 지역사회 만들기(여성)
3장 참여와 협력에 의한 지역복지공동체 만들기(복지)
4장 아동/청소년들의 인권과 참여가 보장되는 지역사회(교육/청소년/아동)
5장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보육(보육/방과후 보육)
6장 문화공동체 만들기(문화)
7장 생태순환적 지역 만들기(환경)
8장 시민이 참여하는 친환경적 도시계획(도시계획)
9장 지역경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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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대안적 발전모델과 그 경로"
-정건화(한신대/경제학과)
2006년 3월 29일(수) 오후 4시, 한양대제3섹터연구소에서 열린 포럼 발제문입니다. 한신대 정건화 교수님이 안산을 중심으로 "지역사회협약"의 이론적 검토와 사례를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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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현장보고서"-오관영
 
이 자료는 2006년 25일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에서 발표한
오관영(함께하는 시민행동) 처장님의 발제문입니다.

지난 2006년 여름, 전국 풀뿌리 현장을 돌면서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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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지방자치와 공직협의 역할과 과제
 
이 글은 2002년 7월, 공직협 관련 토론회에서 하승수 변호사가 발제한 글입니다. 지방자치단체 공직협(공무원 노조)의 활동 현황/일본의 自治勞(전일본자치단체노동조합)의 사례/풀뿌리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위해 공직협(공무원 노조)에 거는 기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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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공동체 운동의 실태와 전망 - 아파트주민운동을 중심으로
 
이 글은 한국도시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얻은 자료입니다. 대구대 최병두 교수의 글입니다. 공동체운동의 이론적 배경/아파트주거 발달 과정과 문제점/아파트 주민 운동의 실태와 전망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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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현장보고서"-오관영

이 자료는 2006년 10월 25일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에서 발표한 오관영(함께하는 시민행동) 처장님의 발제문입니다. 지난 여름, 전국 풀뿌리 현장을 돌면서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공간적인 의미로 지역이 희망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지역이 희망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꿈꾸는 것을 실현하는 공간이 지역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들의 삶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 희망투어를 떠나며”

필자는 지방선거가 끝나고 7월초에 약 3주간 지역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남원, 구례 등 지라산 5개 권역의 공동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워크숍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울산, 여수, 순천, 목포, 제주, 나주, 광주, 부안, 군산, 천안, 옥천, 대전, 청주, 원주, 춘천을 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지역의 운동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오마이뉴스는 "세상을 바꿔나가는 현장 보고서 - 희망버스의 16일간 전국일주"를 통해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느릿느릿 세상을 바꿔가는 현장과 풀뿌리 시민운동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겼다.

지역을 찾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민운동이 ‘위기’와 관련하여 하나의 대안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풀뿌리운동의 현장을 보고 싶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의 시민운동가들과 시민운동의 고민과 전망을 나누고 싶었다.

지역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은 멀리서 찾고 있지 않았다. 자신 생활하고 삶의 영위하는 곳에서 생활인으로 지역주민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운동가라고 드러내기 보다는 일상의 생활이 곧 운동이라고 한다. 달리 표현하면 말과 실천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민운동을 위기라고 하지도 않는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희망을 보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이들은 이미 운동과 생활과 정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5년 10년 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끊기 있게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새로운 가치, 대안의 가치를 실험적으로 실천하고 내면화 하고 있다. 생협, 공정무역 운동, 지역 통화 운동(LETS)과 같은 대안 경제 운동, 느리게 살기 운동과 같은 대안적 삶의 운동, 귀농이나 문화 등과 같은 지역 공동체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각 지역에서의 다양한 실천이 어떠한 모습으로 네트웍되고 사회를 변화 시키는 힘으로 모아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존의 90년대 식 운동과 다른 새로운 운동이 더욱 많이 실험되고 확산되어야 만 풀뿌리 민주주의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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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6일, 만해NGO교육센터에서 개최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창립 토론회의 발제문입니다. 하승수 변호사님의 글이며, "왜 풀뿌리가 희망인가 - 풀뿌리 운동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글은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운영위원들이 공동으로 준비한 집단발제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세부적인 내용은 발제자 개인의 의견이나 자료들을 덧붙인 것입니다. 발제를 위해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들끼리 토론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각의 흐름은 같거나 비슷한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은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는 것같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이후의 숙제로 남깁니다.

제목 : 왜 풀뿌리운동이 희망인가?
글쓴이 : 하승수
출처 :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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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대안, 지역운동으로서의 생협운동


하승우(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1. 들어가며


어제 세계화의 의미나 식량주권에 관해 좋은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들을 심화시키는 자리에 이렇게 서게 되서 굉장한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세 개의 키워드인 세계화, 지역운동, 생협운동, 하나하나가 굉장히 크고 중요한 주제라서 그 부담은 더 커지는 듯합니다. 이 부담감을 놓치 않으면서 부족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일단은 어제 많은 얘기를 나누셨을 세계화에 관해 얘기를 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는 세계화, 지역화라는 사안에 관해 일정정도 공감이 있어야 지역에 관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생협운동을 잘 아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생협운동의 가능성을 얘기하려 합니다.



2. 세계화와 지역화, 동전의 양면


세계화, 언제부턴가 이 단어를 쓰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상시엔 잘 신경도 쓰지 않던 다른 나라와의 무역협상이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건, 이제 그런 협상이 우리의 일상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세계화의 가능성과 이득을 강조합니다. 즉 세계화가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과 이동을 활성화시켜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가 1세계와 3세계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건전한 경제를 파괴하는 대재앙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세계화에 대한 ‘당위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계화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금융자본과 초국적 산업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약소국에 개입하고 이득을 꾀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동노동과 착취노동이 제3세계의 대중에게 죽음과 가난, 폭력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분명 세계화의 부정적인 면이고 ‘허울뿐인 세계화’라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세계화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초국적 자본이나 그들을 대변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는 아닌, 자본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운동도 1999년 시애틀 이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움직임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진정한 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요즘 많이 얘기되는 공정무역fair trade도 이런 흐름의 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1) 그리고 실상 인류문명은 세계화되면서, 즉 서로 다른 문명들이 충돌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세계화는 인류 역사의 발전방향이기도 합니다.(각주2)

더구나 이미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는 상당 부분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를 중지시키고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그 부분은 많은 고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지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세계화의 대안이 진정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지역에 독립적인 규모의 경제를 수립하는 것인가? 그런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의 대안은 지역화인가? 라는 물음은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진지하고 깊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의 대화를 요구합니다.

제가 조금 자극적인 단어일 수도 있는 ‘당위적인’ 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현재의 상황이 간단한 노력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의 삶 속에는 세계화의 영향이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간단한 먹거리만 살펴봐도 이제 국내(지역이 아닙니다!)에서 생산된 재료만을 가지고 국내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각주3) 먹거리만이 아닙니다. 노동환경이나 생활환경 등에 관한 권한들이 점점 국가기관이나 초국적기업, 초국적기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각주4) 따라서 지역을 강화하자는 주장만으로는 사회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없고 여러 영역의 다양한 활동이 필요합니다.

또한 세계화(globalization)는 세방화(glocalization, globalization+localization)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황사가 중국에서 한반도로 국경을 넘어 불어 닥치듯이, 과거의 국민국가(nation-state)체제의 경계가 느슨해지면서 국가의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제 각 지방이 중심이 되어 세계화 시대에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지역혁신이니, 지역 차원의 공공서비스 강화니,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니, 거버넌스니, 이런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건 전통적인 복지국가 체계나 국민국가 체계가 지방정부 중심의 공공서비스 체계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건 전혀 아니지만요, 지방화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만이 아니라 이런 지방화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때로는 지역의 억압적인 노동관행이나 생활방식이 지방의 고유함이나 특수성으로 포장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각주5) 그리고 자칫 지역공동체의 폐쇄성이 강화될 경우 ‘그들만의 공동체’로 닫혀서 ‘운동’으로서의 방향성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계화의 문제점은 지방화의 문제점의 동전의 양면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세계화의 대안으로 지역화를 주장하는 건 때론 위험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를 주장하니 아마도 제 입장이 뭔지 궁금하실텐데요, 실은 딱히 입장이 없습니다.^^;; 그건 잘 몰라서 그런 면도 있고, ‘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무엇이 무엇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운동의 방향성은 그 운동에 참여해서 이끌어가는 주체들의 몫이라고 전제하면서, 제가 한쪽 발을 담구고 있는 지역운동에 기초해서 앞으로의 운동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으면 좋을지를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지역이란 무엇이고 지역운동이란 무엇일까?


제가 생각하기에 세계화든, 지역화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흐름에서 가장 문제점은 바로 ‘자기결정권의 상실’입니다(여기서의 ‘자기’에 인간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명체도 포함시킨다면 이 상실감은 훨씬 더 깊어질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먹거리, 놀거리, 일할거리 등 모두가 자신의 결정권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점점 재래시장을 대체하면서 한 가지 상품에 수천 km의 이동거리가 포함되고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쉴새없이 TV가 제공하는 오락거리들은 우리가 진정 무엇을 하며 노는 걸 즐기는지를 잊어버리고 자극적인 욕망에 몸을 맡기게 합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일터는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타율적인 노동공간이고, 무한경쟁의 논리가 도입되면서 노동규율은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결정권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지역은 이런 흐름을 강화시키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런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역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전에 본 <GO>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팔을 쭉 뻗어서 그릴 수 있는 그 공간이 진정 자신의 공간이라고. 그 말을 바꾸면, 내가 직접 걷고 보고 만지며 다니는 공간만이 지역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지역이라는 말은 가능하지 않지요. 더 좁혀서 제가 사는 과천이라는 곳도 제가 지역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심심하면 산책을 많이 하는데도, 아직 과천의 행정구역을 다 돌아본 건 아니니까요. 따라서 행정구역은 지역이 될 수 없고, 내 마음에 그려지는 일종의 심상(心想)이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역은 유동적입니다. 내가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며 파악할수록 지역은 넓어지고 움직이지 않고 같은 길만 오가면 지역은 그대로이고, 때론 좁아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직접 눈으로 봤다고 해서 지역을 다 아는 건 아닙니다. 그런 부분적인 단면들을 모아서 전체를 구성할 때 지역사회가 온전히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직접 마을지도를 그려보거나 제작된 지도에 자기 마을을 그려보는 게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이런 기초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겠죠.

그리고 돌아보면 지역사회에 무엇이 있는지가 보입니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만 따져보면 지방정부와 여러 가지 공공기관이 있을 터이고, 공장이나 기업체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시민단체들도 존재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을 것이구요. 이런 다양한 주체들이 한데 어울려 지역사회를 움직이고 있습니다.(각주6) 따라서 지역사회를 바꾸려면 이런 다양한 지역의 주체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이런 주체들이 다 우리 편이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죠. 따라서 두 가지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주체들과 협상/거래(bargain)하거나 토론/설득(deliberation)해야 할 겁니다. 운동은 어떤 가치지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로 그런 가치지향과 방법을 가지고 다양한 주체들과 접촉을 하게 됩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치는 개발인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 강한 듯 합니다. 다양한 주체들을 묶고 있는 강력한 가치가 ‘개발’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방정부나 기업, 지역토호 등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생태’나 ‘여성’, ‘평화’ 등의 가치는 지역사회에서 쉽게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토론/설득으로 공감을 얻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소속된 단체 이름만 듣고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리라 미리 넘겨짚고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이런 경향은 소위 진보적인 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더구나 지역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곤 합니다. 소위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학연, 혈연 등이 동문회, 향우회, 종친회 등을 통해 은근히 힘을 발휘합니다(농촌지역의 경우 어떤 사안에 관해 사람들을 모으려고 하면 고모에서 큰아버지까지, 동문선배에서 후배까지 전화가 쭉 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사람들을 거의 모을 수 없다고). 거기에다 정부지원을 받는 관변단체에서 자영업자들의 다양한 협회들이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합리적인 협상이나 토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죠.

그렇다면 지역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지역에서 가장 보수적(이념이 아니라 그 관습적인 면에서)이면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주민들입니다. 따라서 주민의 마음을 얻고 주민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제 아무리 지방정부나 기업이라 하더라도 주민들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면 지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역운동은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지리산생명연대>라는 곳에서 도로확장반대운동을 해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환경단체임을 분명하게 연상시키는 ‘생명연대’라는 단체이름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지리산생명연대>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한 당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히 설득하고 토론해서 그들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다수의 환경운동이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지역주민들과의 교감이나 공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역운동은 직접 몸으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지역사회의 대안적인 발전모델을 구성할 때 자신의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공감을 얻으며 주체의 범위를 확대하고, 운동의 방향성을 현실 속에서 잡아나갈 때 지역운동의 성공이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대들이 강력하게 연대하듯이, 지역운동도 지역 내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묶고, 때로는 입장이 다르더라도 설득이 가능한 사람들로 생각되면 계속 만나고 접촉해서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양성 속의 연대’가 추상적인 구호로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죠.

생협운동을 논하는 자리에서 왜 이렇게 지역운동을 길게 얘기하고 그것의 어려움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운동을 펼친다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역은 분명히 세계화의 시대에,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를 거스르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협운동이야말로 지역운동에 적합한 조직일 수밖에 없고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운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생협운동이 지역운동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생협운동은 지역운동의 토대가 될 만큼 지역사회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나, 생협운동은 소수 활동가 중심의 운동방식이나 사업운영방식을 벗어났나, 생협조직에는 조합원들의 자발적고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있나, 지역사회에서 생협은 폐쇄적인 조직이 아닌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나, 생협은 지역사회의 다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나,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할 겁니다.(각주7)



4. 지역사회에서 생협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아무래도 제가 생협운동을 직접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제가 잠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여성민우회 생협도 일본과의 교류가 잦은 듯합니다. 일본의 클럽룸이나 데포에 관한 호기심도 많으신 듯하구요. 사실 제가 직접 일본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일본쪽 시스템의 문제가 뭐일 것 같고 우리와 뭐가 안 맞고 이런 얘기들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대충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는 한국사회를 중심으로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심심하니까 잠깐만 얘기해 볼까요? 만일 한국에서도 그런 공간을 마련하면 여러 가지 클럽들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외국의 좋은 모델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현재 소속된 조합원들이 어떤 욕구를 품고 있는가를 먼저 조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생협이 지역복지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해 가고 있고, 워커즈 콜렉티브를 통한 대안적인 사회경제도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생협의 움직임은 분명 주목할 만한 의미를 가지지만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흐름이 한국사회의 남성 중심의 정규직 노동구조와 맞물리면서 여성노동의 제한이나 저임금화 현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워커즈 콜렉티브에 속하거나 생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노동권에 관한 논란은 일본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장점을 수용하려면 단점에 대한 고민도 함께 받아 안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조금 전 얘기한 욕구조사와 관련해 조금 더 얘기를 해보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조합원이 아니라 오히려 활동하지 않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나 면접조사를 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조합원(활동가)와 적극적이지 않은 조합원들을 구분해서 역량강화(empowerment)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적극적인 조합원들은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구조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동할수록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각주8) 적극적인 조합원들에게는 조합원 개인보다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리더십 교육을 병행해서 풀뿌리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민주적이고 비폭력적인 의사소통방법이나 의사결정방식을 함께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이지 않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는 일종의 수다모임을 조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욕구조사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이 실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에서 조금 더 큰 사안으로 서서히 의식을 확대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이런 확대과정이 바로 생활정치라고 생각합니다.(각주9)

또한 일방적으로 어떤 가치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서 있는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조합원들이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총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가족이 직면한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개인 또는 가족이 개별적으로 대응하며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족이 공동으로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위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듯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문제인식이나 사유의 틀은 국제적이어야 하지만 문제해결은 개인이나 한 가족에 의존할 수 없고 공동체적인 연대를 필요로 합니다. 가족을 보호하려면 그 속에 머무르길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확장시키고 사회적인 영역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같이 학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모르는 생협에 관한 얘기는 이쯤 해두고 외부의 사람으로서 생협운동이 지역운동과 접목될 수 있는 몇 가지 단초들을 제안하고 얘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사실 지역경제의 재구성에 관한 총체적인 그림은 호지가 이미 제시했다고 봅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면,


“지역 소비를 위한 지역 생산을 장려함으로써 지역공동체들은 세계화 경제의 질곡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는 건강에 더 이롭고, 낭비적인 포장과 수송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돈이 지역사회 안에 머물고 생물학적 다양성이 커지고 시골생활의 활기가 되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은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시킨다. 10개 이상의 나라에 생겨난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s)는 상품과 서비스를 돈 없이 거래할 수 있게 한다. 영국만 해도 이미 400개가 넘는 레츠 조직이 형성되어 있다. ‘지역생산품 사기’ 캠페인은 작은 사업체들이 심지어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캠페인은 돈이 지역경제로부터 ‘새나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값은 더 싸지만 멀리서 생산된 상품을 구매할 때 따르는 감춰진 비용­환경과 지역공동체가 치르는 대가­에 대해서 알려주는 데도 보탬이 된다…또한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학교들은 어린이와 학부모로 하여금 그들의 공동체에 보다 큰 소속감을 갖게 하고, 지역에 절실히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작은 도시와 마을의 힘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호지/ISEC. 2002. 『허울뿐인 세계화』, 15~16쪽).


이제 조금 더 상세하게 논의해 보면, 저는 생협운동이 교육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주부나 가족이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이 점은 일본사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에서는 생협이 교육에 관심을 쏟으며 교육활동센터를 건설하는 등 교육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각주10) 일본의 시민운동을 연구한 한영혜의 글은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생협운동이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학교 또는 교육전문가 집단이 아닌 생협 조직이 주도하는 교육운동의 의의는 바로 이런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추진하는 ‘학교와 지역사회 및 가정의 연계’는 자칫하면 학교가 가정과 지역사회에 더 많은 협조를 요구하는 결과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거꾸로 이른바 지역유지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행사나 강화를 위해 학교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문제도 좀더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 시민조직인 생협(쓰루오카 생협 측의 입장에서는 시민조직이라는 용어보다는 대중조직이나 민중조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음)이 전개하는 지역교육운동은 지역에서 자본의 논리에 지배받지 않는 대안적인 사회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이에 기초한 교육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급진적인 성격을 띤다.…이것은 곧 교육이 단지 조합원 육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청소년이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논리에 대항하여 주체로서 ‘살아가는 힘’을 획득할 수 있게 한다는 교육목표의 실현이 결과적으로 조합원의 육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한영혜,, 275~276쪽)


그런 점에서 생협운동과 전교조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지역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전교조만큼 중요한 조직이 없는데도, 그 조직이 아무런 힘도 못 쓰고 영향력을 상실하거나 폐쇄적인 이익집단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 전교조와 상호작용을 하며 방향성을 잡아나갈 단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근 ‘학교급식’에 관한 관심이 높은데,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만이 아니라 건강한 교육내용을 습득하게 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저도 구체적인 방안을 찾지는 못했지만 함께 고민하다보면 좋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와 실업을 가져오는 시대에 생협운동이 지역운동의 토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지역화폐’ 또는 ‘지역교환무역체계(레츠)’ 또는 ‘사회경제체제’(각주11)의 구축이라고 봅니다.

1996년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지역화폐운동은 이미 30개를 넘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전의 <한밭레츠>처럼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은 곳도 있습니다. 아마 생협에서도 이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것이 필요하니까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위험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지역화폐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부역량이 이것을 담당할 수 있을 만한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 대다수가 지역화폐체계에 가입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지역화폐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각주12) 그러니 내부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는 게 반드시 필요하고 그 과정은 아주 장기적인 설득을 필요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앞에서 얘기한 교육과도 연관된 문제인데, 조합원들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의 지역화폐를 구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역화폐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경제관념을 익히게 되고 지역사회도 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거든요.(각주13)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른들도 관심을 가지며 서로 연결되게 될 거구요. 그런 것에 기반해 어른들의 레츠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과 개인이 서로 도울 뿐 아니라 지역의 소규모 가게들과 연합해서 지역화폐망을 구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지역경제망이 형성된다면 지역경제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대형마트의 독점 현상을 견제하면서 소매상들도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겁니다.

특히 생협이 주부들의 공동체로서 적극적인 매개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협은 생활의 가장 기본인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지역화폐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단지 소속된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지역의 실업자나 노동이 어려운 분들에게도 지역화폐는 생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푸드뱅크>활동과의 결합도 가능합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차원의 노력들은 지역사회의 복지에 관한 확장된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남성/여성, 제도정치/생활정치 등의 구분이 분명한데, 이런 노력들은 그런 구분선을 지우는 역할도 하리라 생각됩니다. 즉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세력들이 힘을 모으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각주14) 그리고 먹거리 정치를 중심으로 이런 네트워크가 실제로 시도되고 있습니다.(각주15) 또한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학 등이 보육시스템을 갖추고 지역주민들에게 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며 새로운 연대를 모색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5. 나오며...


요즘 드는 생각들을 그냥 주절주절 떠들었습니다. 생협은 지역사회/지역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촉매제라는 말이 암시하듯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특히 자본과 상품의 세계화라는 시대에서는 어느 한 부문운동의 힘만으로는 그 무엇도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다양한 운동의 흐름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하고, 그 뭉쳐진 힘들이 지역사회만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지 않고, 세계를 고민하면서 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잠재력이 살아나리라 봅니다.


※ 각주


1. “생협의 목표는 기존의 산업질서와 그 가치체계에 복종하지 않으며, 자립적이며 생태적인 자급사회라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생협은 이런 점에서 반지구화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그러나 생협이 공정무역과 만나게 되면서 생협은 대안적인 지구화의 단서를 제시하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즉 제3세계의 민중/여성과 제1세계의 여성 소비자가 지구적인 호혜적 관계망을 구축함으로써 ‘안전 식수에 대한 밀레니엄 발전 목표’와 같이 유엔이 국가의 과제로 제시한 것을 민간의 힘으로 이루어내고 있음은 물론, 초국적 자본에 빼앗긴 식량주권을 초국적 수준에서 회복해 가고 있다.”(김정희, “필리핀 네그로스 지역의 공정무역과 여성”. 『여성학논집』 제 23집 2호, 132쪽)


2.  “내가 이런 역사적인 비유와 숙고를 전개한 이유는, 세계화를 문화적인 궁핍과 빈곤을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이다. 기술적 변화의 편재성과 속도의 결과로 인간의 호기심이나 창조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할 이유는 없다. 전 지구적인 사회․경제적 통합에 의해 만들어질 세계 문화는 로마에서 번성했던, 이상한 동양의 신전으로 출현했던 문화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색채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문화는 대부분의 서구와 아시아 국가들에 의해 오늘날 제공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개인적 다양성의 공간을 허용할 것이다.”(리차드 로티, 2006. “철학과 문화의 혼성화”. 『지식의 지평』, 40쪽)


3. “현재 우리는 먹을거리의 7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소비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범지구적인 먹을거리 시스템에 소비자로 편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윤형근, 2006. “먹을거리의 공공화와 새로운 지역자립운동”. 『초점과 대안』. 117쪽)


4. “지역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국가와 국제적 차원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거대기업의 독점시대에 ‘지역적인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는 지역공동체를 매우 취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더욱 무력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풀뿌리 조직이 다국적기업과 초국가기관의 손아귀에 엄청난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유럽의 많은 녹색주의자들은 유럽연합과 더불어 권력이 지역분산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에서 국민국가의 해체에 기꺼이 찬성하고 있다.”(헬레나 노르베리-호지/ISEC 지음. 이민아 옮김. 2002.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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